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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이천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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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이천의 한말의병장 김하락
    김하락(金河洛, 1846~1896)은 한말 의병장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창의하여 경상도까지 가서 싸우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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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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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의병장 홍계남장군 고루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그의 옛 싸움터인 목촌의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홍계남장군이 전사한지 140여 년 만에 그의 고향인 안성주민들이 장군의 공을 잊지 못하여 돌을 다듬어 그가 싸우던 지역에 비석을 세우고 그 공적을 기록한 것이 고루비이다. 옛날에 진대가 있던 자리에 비를 세웠다 하여 고루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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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에서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
    홍계남(洪季男)은 1590년(선조 23) 통신사 군관으로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1591년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와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활동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지로 승진하였다. 홍언수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홍언수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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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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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영월의 한말의병장 정대억
    정대억(丁大億, 1872~1908)은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의병과 1907년 정미의병에 참가하였다. 1908년 청풍면 까치성전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영월에서 눈이 뽑히고 목이 베어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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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 한말의병장 한상열
    한상열(韓相烈, 1876~1926)은 강원도 횡성군에서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인근의 지평, 홍천, 원주, 영월, 평창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51세에 중국에서 총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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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최초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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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한말 원주에서 창의한 의병장 이춘영
    이춘영(李春永, 1869~1896)은 조선말의 의병장으로 양평의 지평 출신이다. 화서학파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가 단발령과 을미사변 등의 참상을 보면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지평감역으로 있는 맹영재와 같이 거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고종32년(1895)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모아 활약하다 충주전투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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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8척의 멋진 의병 제말
    제말(諸沫)[1567~1593]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고 총부수문장(摠府守門長)을 역임하였다. 조카 제홍록과 함께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웅천, 김해, 정암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성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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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의병장이 물새와 어울리던 반구정
    반구정(伴鷗亭)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두암 조방(趙垹)이 지은 정자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공(戰功)에 대한 논공행상을 요청하는 문서를 만들자 빼앗아 불태웠다. 이후 물새와 벗 삼아 지내겠다며 이 정자를 만들고 낙동강 맞은편에 자리한 곽재우의 망우정(忘憂亭)을 오가며 한가로이 지냈다. 임진왜란 때 함께 활동했던 곽재우와 조방은 벼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유를 얻었다. 후손들이 장소를 옮겨 새로 지은 반구정에서도 그때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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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에서 순절한 장사진의병장 유적
    장사진의병장 유적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에 있다. 장사진의병장은 임진왜란 초기에 의병을 일으켜 군위․인동지역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793년(영조 29) 군위현감 남태보가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에 ‘고리비’를 세워 장사진의 충절을 기렸다. 고을 주민들이 장군의 넋을 기리기위하여 사당을 지어 충렬사라 하고 매년 한식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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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궁호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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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병장 한상렬의사추모비
    한상렬 의병장은 정미의병기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민긍호 의병장의 관동창의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하기도 하고 의병대원을 이끌고 독자적인 활동도 하였다. 일제강점 후 한상렬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1926년 만주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고향인 횡성에서는 그의 혼백을 위로하고자 추모비를 건립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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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영남 3대 의병장 김면 유적
    김면의병장의 유적은 경상북도기념물 제76호로 김면의병장을 기리기위해 1666년 건립된 도암서원과 사당, 신도비, 묘소로 조성되어 있다. 김면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 3대의병장 중 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의 선봉에서 30여 차례 전투를 치르며 큰 공을 세우고 1593년 금산 의병진에서 전투준비 중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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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을 기린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예안이씨 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李洪仁, 1525~1594년)의 충(忠)과 그의 후손 이한오(李漢伍, 1719~1793년)의 효성(孝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는 이홍인의 충을 기려 내려진 정충각(旌忠閣)과 이한오의 효성을 기려 내려진 정효각(旌孝閣)이 함께 있어 쌍수당(雙修堂)이란 별당도 있다. 쌍수당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충효당은 보물 제553호로 지정되었고, 정충각과 정효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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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항일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義兵將 申泰植 生家址)는 2005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태식은 통훈대부중추원의관(通訓大夫中樞院議官)의 벼슬을 하다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고향에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7년 8월 그는 을사늑약과 군대해산이라는 치욕을 보고는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을 했다. 그리고 1908년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나 다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형무소에 갇혔다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1932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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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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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의 의병장 김천일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라·충청·경기·경상 4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김천일은 유교경전을 몸소 실천했으며,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수령을 잘 임명해야 한다는 등 당시 폐단을 개혁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서울 수복을 목표로 북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화도전투, 선유봉 및 사현전투,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10만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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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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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합천의 의병장 이대기
    이대기(李大期, 1551∼1628)는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에서 태어났다.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42세 되던 해 합천 초계에서 전치원과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초계 의병군은 1597년 7월까지 활동하였다. 계속해서 초계 의병군은 거창·합천·고령·성주 등의 의병군과 합세하여 적을 사살하고 군량미를 노획하였다. 이후 5읍 의병군은 재차 9월 10일 왜군을 공격하여 왜군의 진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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