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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평민 출신의 한말의병장 신돌석
    신돌석(申乭石, 1878~1908)은 19세의 나이로 1896년 3월 13일에 영해에서 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거의를 했다. 1905년에도 영릉의병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의병장이 되어 항일에 앞장섰다. 아직도 신돌석은 ‘신장군’ 또는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러지고 있다. 신출귀몰했던 그의 활약상이 ‘수십 장의 구릉을 한 발로 뛰어넘었다’라는 전설 속에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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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한말 경상도 의병장 이하현
    이하현(李夏玄, 1874~1917)은 경상북도 영양출신으로 다른 이름은 이현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양 등지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장이 된 이하현은 의병들을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훈련시킨 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전투에서 이하현은 독립 의진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고,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寧海) 성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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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을사의병
    을사조약의 체결로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간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국권침탈에 분노한 의병들도 다시 봉기하여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이때부터 일어난 의병투쟁을 을사의병이라고 한다. 원용팔을 중심으로 하는 의병부대가 제일 먼저 봉기하였고, 민종식‧최익현‧신돌석 등의 의병부대가 대표적인 의병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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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박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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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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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산신이 도운 의병장 박춘무
    박춘무(朴春茂, 1544 - 1611)는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토정 이지함의 제자이면서 침구술에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했으며, 이때 “전진(戰陣)에서 용기가 없는 것은 효가 아니다.”라고 병사들에게 훈계를 하여 충과 효를 전장에 활용했다. 또한 산신이 도와 우물을 주어 포위를 풀고 나왔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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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8척의 멋진 의병 제말
    제말(諸沫)[1567~1593]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고 총부수문장(摠府守門長)을 역임하였다. 조카 제홍록과 함께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웅천, 김해, 정암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성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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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임진왜란 의병장이 물새와 어울리던 반구정
    반구정(伴鷗亭)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두암 조방(趙垹)이 지은 정자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공(戰功)에 대한 논공행상을 요청하는 문서를 만들자 빼앗아 불태웠다. 이후 물새와 벗 삼아 지내겠다며 이 정자를 만들고 낙동강 맞은편에 자리한 곽재우의 망우정(忘憂亭)을 오가며 한가로이 지냈다. 임진왜란 때 함께 활동했던 곽재우와 조방은 벼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유를 얻었다. 후손들이 장소를 옮겨 새로 지은 반구정에서도 그때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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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군위군

    임진왜란에서 순절한 장사진의병장 유적
    장사진의병장 유적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에 있다. 장사진의병장은 임진왜란 초기에 의병을 일으켜 군위․인동지역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793년(영조 29) 군위현감 남태보가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에 ‘고리비’를 세워 장사진의 충절을 기렸다. 고을 주민들이 장군의 넋을 기리기위하여 사당을 지어 충렬사라 하고 매년 한식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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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부여군

    토지를 팔아 군자금을 내고 의병에 참여한 조병두
    조병두는 충청남도 부여 출신으로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9년 5월 민종식의병진이 홍산에서 재기할 때 토지를 팔아 군자금으로 헌납하고 의병진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후 조병두는 홍주성전투에서 패한 후 이용규를 중심으로 의병진을 재정비하여 활약하다 연산 부흥리에서 일본군을 만나 교전중 부상을 입고 체포되어 공주부로 호송중 대전역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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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임진왜란 최고의 의병장 고경명
    고경명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박광옥과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약속하고, 6,000여 명의 의병을 담양에 모아 진용을 편성했다. 7월 10일 곽영의 관군과 합세,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기로 하고 800여 명의 정예부대로 선제공격을 했다. 그러나 겁을 낸 관군은 싸울 것을 포기하고 앞을 다투어 도망갔다. 이에 사기가 떨어진 의병군마저 붕괴되었으나, 그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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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의병에서 임시정부까지 활약한 노원섭
    노원섭은 충청남도 공주군 우송면 동곡리 출신으로 한말 후기의병기에 공주 용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충청남도 공주 용당, 전라북도 무주·진산·고산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의병활동으로 유배형을 치렀던 노원섭은 한일병탄 이후 풀려나 1919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으로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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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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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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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의병장 홍계남장군 고루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그의 옛 싸움터인 목촌의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홍계남장군이 전사한지 140여 년 만에 그의 고향인 안성주민들이 장군의 공을 잊지 못하여 돌을 다듬어 그가 싸우던 지역에 비석을 세우고 그 공적을 기록한 것이 고루비이다. 옛날에 진대가 있던 자리에 비를 세웠다 하여 고루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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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에서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
    홍계남(洪季男)은 1590년(선조 23) 통신사 군관으로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1591년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와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활동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지로 승진하였다. 홍언수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홍언수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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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강화분견대를 이끌고 항전한 유명규
    유명규는 경기도 출신으로 유명계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한말 후기의병기 해산군인을 이끌고 대일항전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진위대 부교 연기우·지홍윤과 함께 강화분견소 무기를 탈취하여 50여 명의 병사들과 500여 명의 주민들을 이끌고 강화성을 점령하였다. 유명규는 강화성 갑곶진에서 일본군을 맞아 격전을 벌이고 해주·통진 등에서 항전하다가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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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구한말 의병들의 근거지였던 연천 심원사지
    연천심원사지(漣川深源寺址)는 2006년 8월 경기도 기념물 제213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1907년 9월 27일 의병장 허위가 이끄는 의병 800여 명이 은신하고 있다가 일제토벌대의 공격으로 수많은 의병이 희생되었다. 심원사는 신라 진덕여왕(647년)에 흥림사란 이름으로 세워졌는데, 1396년(태조 5)에 무학대사가 개창하면서 심원사로 바꾸었다. 이 절은 일제강점기와 6.25한국전쟁 때 모두 불탔으나 현재는 터를 다시 발굴하고 심원사를 복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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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주시

    왕족으로 척화대의를 주장한 의병장 이재윤
    이재윤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한말 후기이병기에 최익현의병장 휘하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그는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스승 최익현을 따라 개항반대를 주장하고 서구열강의 침입에 위정척사를 주장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결성하여 활약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자 중국에 들어가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1911년 한일병탄에 울분을 못이기고 자결하여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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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정문부 의병장을 기리는 의정부 충덕사
    충덕사는 임진왜란 의병장 충의공 정문부의 위패와 영정을 배향한 사당이다. 함경도 '북평사'의 직위에 있었던 정문부는 처음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경선전투를 시작으로 길주·장평·쌍포·단천·백탑교 등에서 승리하며 왜병 천여 명의 목을 베어 ‘북관대첩’을 이루었다. 또 여진족까지 토벌하여 국경 6진을 공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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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을 추모하는, 경주 삼괴정
    삼괴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삼괴정길 14-19(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68호이다.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방린(李芳隣, 1547~1624)과 그의 형제 이유린(李有隣)·이광린(李光隣)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방린의 7대손 이화택(李華宅)이 1815년(순조 15)에 건립하였다. 삼괴정이라는 정자명은 이방린 삼형제가 의병으로 출병하기에 앞서 충성을 다지며 정자터에 괴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놓고 출전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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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일본에 건너가 포로를 찾아온 유정
    유정(惟政, 1544~1610)은 조선 중기의 고승이면서 승장이었다. 별호는 사명당이며, 호는 송운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장에게 찾아가 살상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부탁했으며, 직접 승병장이 되어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에 건너가 포로를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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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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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합천군

    경남 합천의 의병장 이대기
    이대기(李大期, 1551∼1628)는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에서 태어났다.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42세 되던 해 합천 초계에서 전치원과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초계 의병군은 1597년 7월까지 활동하였다. 계속해서 초계 의병군은 거창·합천·고령·성주 등의 의병군과 합세하여 적을 사살하고 군량미를 노획하였다. 이후 5읍 의병군은 재차 9월 10일 왜군을 공격하여 왜군의 진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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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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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의 의병장 김해
    김해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그는 안동의 유명한 선비 퇴계 이황에게서 사사 받은 유능한 학자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안, 예천, 문경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안동에서도 계속해서 분전했다. 의병을 이끌고 경상 좌도의 곳곳을 동분서주하며 왜군을 토벌하던 김해는 6월 19일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경주 진중에서 순국하니 향년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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