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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정문부 의병장을 기리는 의정부 충덕사
    충덕사는 임진왜란 의병장 충의공 정문부의 위패와 영정을 배향한 사당이다. 함경도 '북평사'의 직위에 있었던 정문부는 처음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경선전투를 시작으로 길주·장평·쌍포·단천·백탑교 등에서 승리하며 왜병 천여 명의 목을 베어 ‘북관대첩’을 이루었다. 또 여진족까지 토벌하여 국경 6진을 공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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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을 추모하는, 경주 삼괴정
    삼괴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삼괴정길 14-19(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68호이다.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방린(李芳隣, 1547~1624)과 그의 형제 이유린(李有隣)·이광린(李光隣)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방린의 7대손 이화택(李華宅)이 1815년(순조 15)에 건립하였다. 삼괴정이라는 정자명은 이방린 삼형제가 의병으로 출병하기에 앞서 충성을 다지며 정자터에 괴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놓고 출전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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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일본에 건너가 포로를 찾아온 유정
    유정(惟政, 1544~1610)은 조선 중기의 고승이면서 승장이었다. 별호는 사명당이며, 호는 송운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장에게 찾아가 살상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부탁했으며, 직접 승병장이 되어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에 건너가 포로를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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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한말 민용호의병장의 격전지 대공산성
    대공산성은 강원도 기념물 제28호로 강릉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대관령 옆 해발 944m의 대궁산 자락에 축성되었다. 대궁산성, 보현산성으로도 불리며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 부분에 축조된 성으로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와 성산면 보광리에 걸쳐 있다. 대공산성은 대궁산의 험준한 절벽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축성하였는데, 현재는 대부분 붕괴하였고, 남쪽 일부만 높이 2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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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북지방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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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관북지방의 의병장 정문부
    정문부(鄭文孚, 1565 ~ 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일등 공신 좌찬성 대제학 의병장이다. 최배천, 이붕수, 정현룡, 오응태, 각 진의 수장과 조사들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였다. 왜병들은 관북(함경도)에는 발을 붙이지 못했고, 정문부 장군 명성만 들어도 도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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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명사수 한봉수의병장 유적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학평리에는 한말의병장이자 3.1운동도 주도했던 항일지사 한봉수의병장의 유적지가 있다. 그는 의병항쟁 당시 무적장군, 번개대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전의, 옥천, 평택, 여주, 횡성, 문경 등지에서 활약했는데 33번의 공격동안 1번 패한 전과를 거둔 명사수였다고 한다. 한봉수는 1919년 3.1운동 때에도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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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용인의병장 임경재 동상
    임옥여 의병장은 대한제국 시기에 농상공부 주사직에 있다가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침략에 항일 투쟁을 결심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정미의병기에 이천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총살되었다. 임옥여 의병장의 동상은 그의 뜻을 기려 용인시민의 정성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고향마을인 평창리 입구에 1993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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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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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영월의 한말의병장 정대억
    정대억(丁大億, 1872~1908)은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의병과 1907년 정미의병에 참가하였다. 1908년 청풍면 까치성전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영월에서 눈이 뽑히고 목이 베어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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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 한말의병장 한상열
    한상열(韓相烈, 1876~1926)은 강원도 횡성군에서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인근의 지평, 홍천, 원주, 영월, 평창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51세에 중국에서 총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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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궁호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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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병장 한상렬의사추모비
    한상렬 의병장은 정미의병기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민긍호 의병장의 관동창의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하기도 하고 의병대원을 이끌고 독자적인 활동도 하였다. 일제강점 후 한상렬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1926년 만주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고향인 횡성에서는 그의 혼백을 위로하고자 추모비를 건립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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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수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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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창군

    월성의병 봉기지 월성서당 터
    월성서당은 을사의병기에 오일선을 중심으로 김성진·김현수·하거명·박화기 등 40여 명이 모여 월성의병을 결성하고 의병 봉기를 결의한 곳이다. 월성서당은 멸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후대에 세운 정자와 기념비가 있다. 월성의병은 도총, 유격, 후군, 군수, 정보 등의 부서를 편성하고 문태수 의병장이 이끄는 호서의병에 합류하여 군수 물자를 공급하기도 하고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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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 3대 의병장 김면 유적
    김면의병장의 유적은 경상북도기념물 제76호로 김면의병장을 기리기위해 1666년 건립된 도암서원과 사당, 신도비, 묘소로 조성되어 있다. 김면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 3대의병장 중 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의 선봉에서 30여 차례 전투를 치르며 큰 공을 세우고 1593년 금산 의병진에서 전투준비 중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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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을 기린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예안이씨 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李洪仁, 1525~1594년)의 충(忠)과 그의 후손 이한오(李漢伍, 1719~1793년)의 효성(孝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는 이홍인의 충을 기려 내려진 정충각(旌忠閣)과 이한오의 효성을 기려 내려진 정효각(旌孝閣)이 함께 있어 쌍수당(雙修堂)이란 별당도 있다. 쌍수당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충효당은 보물 제553호로 지정되었고, 정충각과 정효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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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항일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義兵將 申泰植 生家址)는 2005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태식은 통훈대부중추원의관(通訓大夫中樞院議官)의 벼슬을 하다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고향에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7년 8월 그는 을사늑약과 군대해산이라는 치욕을 보고는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을 했다. 그리고 1908년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나 다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형무소에 갇혔다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1932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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