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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영남 3대 의병장 김면 유적
    김면의병장의 유적은 경상북도기념물 제76호로 김면의병장을 기리기위해 1666년 건립된 도암서원과 사당, 신도비, 묘소로 조성되어 있다. 김면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 3대의병장 중 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의 선봉에서 30여 차례 전투를 치르며 큰 공을 세우고 1593년 금산 의병진에서 전투준비 중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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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을 기린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예안이씨 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李洪仁, 1525~1594년)의 충(忠)과 그의 후손 이한오(李漢伍, 1719~1793년)의 효성(孝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는 이홍인의 충을 기려 내려진 정충각(旌忠閣)과 이한오의 효성을 기려 내려진 정효각(旌孝閣)이 함께 있어 쌍수당(雙修堂)이란 별당도 있다. 쌍수당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충효당은 보물 제553호로 지정되었고, 정충각과 정효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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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구한말 항일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義兵將 申泰植 生家址)는 2005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태식은 통훈대부중추원의관(通訓大夫中樞院議官)의 벼슬을 하다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고향에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7년 8월 그는 을사늑약과 군대해산이라는 치욕을 보고는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을 했다. 그리고 1908년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나 다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형무소에 갇혔다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1932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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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연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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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진보의병이 결성된 진보향교
    진보향교는 한말 진보의병의 창의가 논의된 곳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1호이다. 한말 진보지역에서는 을미의병기에 허훈 의병장이 진보지역의 의병을 모집하여 1896년 4월 진보향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을사의병기에는 이현규 의병장이 1905년 11월 진보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청송 주왕산 대전사, 울진 불영사 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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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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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이천의 한말의병장 김하락
    김하락(金河洛, 1846~1896)은 한말 의병장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창의하여 경상도까지 가서 싸우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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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의병장 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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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한말 영천의 의병장 정용기
    정용기(鄭鏞基, 1865~1907)는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서울로 진격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여러 곳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1907년 일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그러나 이때 의진의 주둔지를 탐색해 낸 일본군이 입암리 뒷동산 엄준한 암석을 거점으로 야음을 틈타 공격을 해왔다. 의병들은 용감하게 대항했으나 모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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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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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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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부 의병장을 기리는 의정부 충덕사
    충덕사는 임진왜란 의병장 충의공 정문부의 위패와 영정을 배향한 사당이다. 함경도 '북평사'의 직위에 있었던 정문부는 처음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경선전투를 시작으로 길주·장평·쌍포·단천·백탑교 등에서 승리하며 왜병 천여 명의 목을 베어 ‘북관대첩’을 이루었다. 또 여진족까지 토벌하여 국경 6진을 공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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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을 추모하는, 경주 삼괴정
    삼괴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삼괴정길 14-19(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68호이다.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방린(李芳隣, 1547~1624)과 그의 형제 이유린(李有隣)·이광린(李光隣)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방린의 7대손 이화택(李華宅)이 1815년(순조 15)에 건립하였다. 삼괴정이라는 정자명은 이방린 삼형제가 의병으로 출병하기에 앞서 충성을 다지며 정자터에 괴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놓고 출전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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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건너가 포로를 찾아온 유정
    유정(惟政, 1544~1610)은 조선 중기의 고승이면서 승장이었다. 별호는 사명당이며, 호는 송운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장에게 찾아가 살상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부탁했으며, 직접 승병장이 되어 싸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에 건너가 포로를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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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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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고령의 의병장 정세아
    정세아(鄭世雅, 1535년(중종30)~1612년(광해군4))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하여 900여 명을 모집하여 의병대장이 되었다. 그해 8월 권응수의 지휘 아래 영천 의병장 정대임 등과 함께 영천 박연에서 왜병과 싸워 큰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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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민 출신의 한말의병장 신돌석
    신돌석(申乭石, 1878~1908)은 19세의 나이로 1896년 3월 13일에 영해에서 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거의를 했다. 1905년에도 영릉의병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의병장이 되어 항일에 앞장섰다. 아직도 신돌석은 ‘신장군’ 또는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러지고 있다. 신출귀몰했던 그의 활약상이 ‘수십 장의 구릉을 한 발로 뛰어넘었다’라는 전설 속에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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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경상도 의병장 이하현
    이하현(李夏玄, 1874~1917)은 경상북도 영양출신으로 다른 이름은 이현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양 등지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장이 된 이하현은 의병들을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훈련시킨 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전투에서 이하현은 독립 의진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고,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寧海) 성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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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을사의병
    을사조약의 체결로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간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국권침탈에 분노한 의병들도 다시 봉기하여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이때부터 일어난 의병투쟁을 을사의병이라고 한다. 원용팔을 중심으로 하는 의병부대가 제일 먼저 봉기하였고, 민종식‧최익현‧신돌석 등의 의병부대가 대표적인 의병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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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직‧정용기의병장의 생가터, 충효재
    충효재는 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산남의진 정환직의병장과 그 아들인 정용기의병장 부자의 충효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3년 건립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가 조직한 의병부대이다. 1907년 9월초 정용기가 입암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자 정환직이 의병장을 이어 항전하였으나 그 역시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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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의 한말의병장 양한규
    의병장 양한규(梁漢奎, 1844~1907)는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무기를 사들여 의거를 준비했으며, 1907년 2월 12일 남원성을 습격해서 점령했으나, 도망가는 일본군을 추격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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