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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전남 의병의 중요거점인 화순 쌍산 항일의병유적
    전라남도 화순군의 쌍산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을 해 왔던 쌍산의소는 2007년 8월 사적 제485호로 지정되었다. 쌍산의소는 의병들이 직접 무기를 만들어서 싸웠던 곳이다. 그래서 야철소, 유황굴, 무기제작소, 성벽 등의 유적이 있다. 이곳 의병들은 1906년부터 1909년까지 활동을 했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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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해남군

    승병의 전라도 활약, 처영대사
    처영은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군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처영의 호는 뇌묵,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자 호남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일으켜 싸웠다. 이후에도 3,800명의 병력과 함께 해우주산성에 주둔했을 때, 700명의 승병으로 적병 3만과 대전하여 2만 4천 명의 사상자를 내어 임진왜란의 최대 승첩을 이루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절충장군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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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화순의 의병장 최경회
    최경회(崔慶會, 1532∼1593)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면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다. 전라도 화순에서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나 진주성 싸움에서 패했다. 그래서 최경회는 김천일, 고종후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북쪽을 향해 4배를 한 후 인장과 병부를 가슴에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결국, 최경회와 문홍헌을 비롯한 동향의 의병들은 죽음을 함께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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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명사수 한봉수의병장 유적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학평리에는 한말의병장이자 3.1운동도 주도했던 항일지사 한봉수의병장의 유적지가 있다. 그는 의병항쟁 당시 무적장군, 번개대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전의, 옥천, 평택, 여주, 횡성, 문경 등지에서 활약했는데 33번의 공격동안 1번 패한 전과를 거둔 명사수였다고 한다. 한봉수는 1919년 3.1운동 때에도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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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장수군

    호남의병단의 선봉장 박춘실
    박춘실은 전라북도 장수 출신으로 한말 후기의병기 문태수 의병장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6년 최익현 의병장 휘하에서 의병항쟁을 시작하여 1907년 문태수 의병장과 ‘호남의병단’을 결성하고 덕유산을 근거지로 무주·진안·용담·장수·안의·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1909년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문성전투에서 체포된 후 옥에 갇혔다가 1914년 대구형무소 감옥 벽을 부수어 동지들을 탈출시킨 후 스스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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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부안군

    전 계층이 하나로 뭉쳐 죽음으로 싸운 정유재란 호벌치전적지
    호벌치전적지는 채홍국을 비롯한 의병들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을 맞아 싸운 곳이다. 이를 알리기 위해 이곳에 호벌치전적비를 세웠고, 이 일대를 전라북도에서는 기념물 제30호로 지정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126명의 의병이 참가했는데, 선비, 농민, 천민, 승려 등의 모든 계층이 참가하여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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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의병장 최익현의 궐기가 서려있는 순창객사
    최익현과 임병찬 의병장이 의병들을 모았던 순창객사는 관청에 딸린 손님맞이용 여관이었다. 그리고 객사는 초하루 보름과 나라에 일이 있을 때 임금을 향해 제사를 올리고, 새로 부임한 현감은 이곳에서 가례를 올리기도 했다. 객사의 역할이 다양했음을 볼 수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이 객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74년 9월 시도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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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박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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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산신이 도운 의병장 박춘무
    박춘무(朴春茂, 1544 - 1611)는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토정 이지함의 제자이면서 침구술에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했으며, 이때 “전진(戰陣)에서 용기가 없는 것은 효가 아니다.”라고 병사들에게 훈계를 하여 충과 효를 전장에 활용했다. 또한 산신이 도와 우물을 주어 포위를 풀고 나왔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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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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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의병장 홍계남장군 고루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그의 옛 싸움터인 목촌의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홍계남장군이 전사한지 140여 년 만에 그의 고향인 안성주민들이 장군의 공을 잊지 못하여 돌을 다듬어 그가 싸우던 지역에 비석을 세우고 그 공적을 기록한 것이 고루비이다. 옛날에 진대가 있던 자리에 비를 세웠다 하여 고루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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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에서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
    홍계남(洪季男)은 1590년(선조 23) 통신사 군관으로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1591년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와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활동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지로 승진하였다. 홍언수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홍언수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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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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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영월의 한말의병장 정대억
    정대억(丁大億, 1872~1908)은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의병과 1907년 정미의병에 참가하였다. 1908년 청풍면 까치성전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영월에서 눈이 뽑히고 목이 베어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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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 한말의병장 한상열
    한상열(韓相烈, 1876~1926)은 강원도 횡성군에서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인근의 지평, 홍천, 원주, 영월, 평창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51세에 중국에서 총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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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의병장 기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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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북지방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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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관북지방의 의병장 정문부
    정문부(鄭文孚, 1565 ~ 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일등 공신 좌찬성 대제학 의병장이다. 최배천, 이붕수, 정현룡, 오응태, 각 진의 수장과 조사들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였다. 왜병들은 관북(함경도)에는 발을 붙이지 못했고, 정문부 장군 명성만 들어도 도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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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영남 3대 의병장 김면 유적
    김면의병장의 유적은 경상북도기념물 제76호로 김면의병장을 기리기위해 1666년 건립된 도암서원과 사당, 신도비, 묘소로 조성되어 있다. 김면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 3대의병장 중 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의 선봉에서 30여 차례 전투를 치르며 큰 공을 세우고 1593년 금산 의병진에서 전투준비 중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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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을 기린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예안이씨 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李洪仁, 1525~1594년)의 충(忠)과 그의 후손 이한오(李漢伍, 1719~1793년)의 효성(孝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는 이홍인의 충을 기려 내려진 정충각(旌忠閣)과 이한오의 효성을 기려 내려진 정효각(旌孝閣)이 함께 있어 쌍수당(雙修堂)이란 별당도 있다. 쌍수당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충효당은 보물 제553호로 지정되었고, 정충각과 정효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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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항일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義兵將 申泰植 生家址)는 2005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태식은 통훈대부중추원의관(通訓大夫中樞院議官)의 벼슬을 하다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고향에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7년 8월 그는 을사늑약과 군대해산이라는 치욕을 보고는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을 했다. 그리고 1908년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나 다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형무소에 갇혔다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1932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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