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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영천의병장 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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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한말 영천의 의병장 정용기
    정용기(鄭鏞基, 1865~1907)는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서울로 진격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여러 곳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1907년 일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그러나 이때 의진의 주둔지를 탐색해 낸 일본군이 입암리 뒷동산 엄준한 암석을 거점으로 야음을 틈타 공격을 해왔다. 의병들은 용감하게 대항했으나 모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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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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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함평군

    호남의소의 의병장 심남일
    심남일(沈南一, 1871~1910)은 본명이 심수택인데, 의병으로 나서면서 심남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심남일은 전남(全南) 제일(第一)의 수장(首將)이라는 의미이다. 을사늑약 후 호남창의회맹소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의병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심남일은 의병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민간인 피해를 하지 말 것을 조항에 넣었다. 이를 어길 시는 엄격히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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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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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안동의 의병장 김해
    김해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그는 안동의 유명한 선비 퇴계 이황에게서 사사 받은 유능한 학자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안, 예천, 문경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안동에서도 계속해서 분전했다. 의병을 이끌고 경상 좌도의 곳곳을 동분서주하며 왜군을 토벌하던 김해는 6월 19일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경주 진중에서 순국하니 향년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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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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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의병장 홍계남장군 고루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그의 옛 싸움터인 목촌의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홍계남장군이 전사한지 140여 년 만에 그의 고향인 안성주민들이 장군의 공을 잊지 못하여 돌을 다듬어 그가 싸우던 지역에 비석을 세우고 그 공적을 기록한 것이 고루비이다. 옛날에 진대가 있던 자리에 비를 세웠다 하여 고루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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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에서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
    홍계남(洪季男)은 1590년(선조 23) 통신사 군관으로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1591년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와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활동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지로 승진하였다. 홍언수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홍언수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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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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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정환직‧정용기의병장의 생가터, 충효재
    충효재는 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산남의진 정환직의병장과 그 아들인 정용기의병장 부자의 충효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3년 건립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가 조직한 의병부대이다. 1907년 9월초 정용기가 입암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자 정환직이 의병장을 이어 항전하였으나 그 역시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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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남원시

    남원의 한말의병장 양한규
    의병장 양한규(梁漢奎, 1844~1907)는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무기를 사들여 의거를 준비했으며, 1907년 2월 12일 남원성을 습격해서 점령했으나, 도망가는 일본군을 추격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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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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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영월의 한말의병장 정대억
    정대억(丁大億, 1872~1908)은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의병과 1907년 정미의병에 참가하였다. 1908년 청풍면 까치성전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영월에서 눈이 뽑히고 목이 베어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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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 한말의병장 한상열
    한상열(韓相烈, 1876~1926)은 강원도 횡성군에서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인근의 지평, 홍천, 원주, 영월, 평창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51세에 중국에서 총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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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부자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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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한말의 부자의병장 정환직
    정환직(鄭煥直, 1844~1907)은 경상북도 영천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아들 정용기와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1907년 전사했다. 그가 의병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고종황제의 밀조가 있었다.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와 함께 거의를 의논하여 자신은 의병을 후원하기로 하고 아들을 영천에 내려보내 거의토록 하였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병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나 영천일군수비대의 급습을 받고 영천으로 압송되어 6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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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의병장 기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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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강화분견대를 이끌고 항전한 유명규
    유명규는 경기도 출신으로 유명계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한말 후기의병기 해산군인을 이끌고 대일항전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진위대 부교 연기우·지홍윤과 함께 강화분견소 무기를 탈취하여 50여 명의 병사들과 500여 명의 주민들을 이끌고 강화성을 점령하였다. 유명규는 강화성 갑곶진에서 일본군을 맞아 격전을 벌이고 해주·통진 등에서 항전하다가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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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구한말 의병들의 근거지였던 연천 심원사지
    연천심원사지(漣川深源寺址)는 2006년 8월 경기도 기념물 제213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1907년 9월 27일 의병장 허위가 이끄는 의병 800여 명이 은신하고 있다가 일제토벌대의 공격으로 수많은 의병이 희생되었다. 심원사는 신라 진덕여왕(647년)에 흥림사란 이름으로 세워졌는데, 1396년(태조 5)에 무학대사가 개창하면서 심원사로 바꾸었다. 이 절은 일제강점기와 6.25한국전쟁 때 모두 불탔으나 현재는 터를 다시 발굴하고 심원사를 복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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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주시

    왕족으로 척화대의를 주장한 의병장 이재윤
    이재윤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한말 후기이병기에 최익현의병장 휘하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그는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스승 최익현을 따라 개항반대를 주장하고 서구열강의 침입에 위정척사를 주장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결성하여 활약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자 중국에 들어가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1911년 한일병탄에 울분을 못이기고 자결하여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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