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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바위에 일곱 아들의 이름을 새긴 대구광역시 북구의 칠성동
    대구광역시 북구에 ‘칠성동(七星洞)’이 소재해 있다. 칠성동은 칠성바위가 소재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명이다. 조선시대 정조 때 경상감사로 부임한 이태영(李泰永)이 대구읍성 북문 밖에 북두칠성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확인해 보니, 대구읍성 북문에 꿈에서 보았던 일곱 개의 바위가 북두칠성처럼 놓여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곱 아들들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 그 이후 경상감사의 아들들의 성품이 각자 이름을 새긴 바위와 닮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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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를 묻은 부산광역시 반송동의 개좌골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기장군 철마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부산에 속해 있는 각 진영에 입방군(入防軍)으로 복무를 해야 했다. 당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살던 ‘서홍인(徐弘仁)’도 부산성에서 입방군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노부모를 봉양하기에 집에서 매일같이 24㎞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던 중 부산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개좌산 고갯길 입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불이 나서 서홍인이 위험해지자 그가 길동무 삼아 데리고 다니던 개가 개울물을 묻혀 서홍인 주변에 번지는 불을 껐다. 그런데 개는 연기 속에서 질식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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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대전광역시 >서구

    명당자리로 유명한 대전광역시 괴정동의 지치울
    대전광역시 서구 괴정동에 ‘지치울’이라는 마을이 있다. 지치울은 말 그대로 ‘지치가 많다’라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조선시대 세종 때 박신함[또는 박신성]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박신함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풍수를 불러서 자신이 묻힐 명당자리를 찾게 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지치울이었다. 그리고는 자손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첫째부터 순서대로 재산을 분배해 주었는데, 막내딸[또는 손녀] 차례가 되었다. 막내딸은 지치울에 있는 밭을 물려달라고 하였다. 지치울 밭을 물려받은 막내딸은 그곳에 자신의 시부모 묘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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