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충청남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청룡이 자신을 화살로 맞추라 했던 이유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남 >서산시

    청룡이 자신을 화살로 맞추라 했던 이유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있는 황금산 앞바다에는 조기에 관한 설화가 전해진다. 황금산 앞바다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조기잡이로 생활하였는데 조기가 점차 잡히지 않자 마을을 떠났다. 어느날 마을에 사는 박활량이라는 활을 잘 쏘는 사람 꿈에 '황금산 앞바다의 청룡'이 나와 조기가 없어진 원인을 황룡이라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황룡과 싸울 때 꼭 자신을 맞추라고 부탁했지만 두 용의 싸움날, 고뇌하던 박활량이 쏜 화살이 청룡에 맞아 이후 조기를 완전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호랑이가 만들어준 스님 오누이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남 >공주시

    호랑이가 만들어준 스님 오누이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계룡산 연천봉 중턱의 청량사지의 남매탑, 오누이탑에는 호랑이와 얽힌 설화가 전해진다. 한 스님이 계룡산의 어느 절에서 불도를 닦고 있었다. 어느 날 호랑이가 나타나 울부짖어 잘 살펴보니 목 안에 비녀가 걸려 있었다. 스님이 비녀를 빼주자 호랑이는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다음 날 기절한 여인을 스님에게 데려왔다. 기력을 회복한 여인은 스님을 따라 불도를 닦겠다고 간청하여 결국 둘은 의남매를 맺었고 훗날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여 남매탑을 세웠다.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고려의 호국불이었던 관촉사의 은진미륵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는 관촉사가 있다. 관촉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 불상으로 알려진 은진미륵이 있다. 은진미륵은 고려 광종 19년에 혜명대사가 조성했다고 한다. 혜명대사가 땅속에서 솟은 바위로 불상을 만들라는 명을 받고, 36년이 걸려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불상이 너무 커서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혜명대사가 강변에서 두 동자가 탑을 쌓으며 노는 것을 보고 불상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다섯 고개가 이어져있는 오형제 고개
    오형제 고개는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장리와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 사이에 있는 고개다. 대체로 ‘솟을 고개’라 불리는 충청남도 아산시와 충청남도 예산군 경계에 있는 고개를 오형제 고개라 부른다. 오형제라는 이름처럼 다섯 개의 고개가 연달아 있으며, 각각 서낭댕이(서낭당) 고개, 시총재, 고숫고개, 분고개, 오형제 고개라 부른다. 그리고 오형제 도둑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태조의 탯줄이 묻힌 만인산
    만인산(萬刃山)은 대전광역시 동구 하소동과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걸쳐 있는 538m의 산이다. 만인산이란 명칭은 ‘말흘’이란 명칭이 중국식 한자로 바꾸어 ‘만인’이라는 표현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탯줄이 묻혀있다 하여 태봉산, 태실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까마귀와 까치의 보금자리 오서산
    오서산(鳥樓山)은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와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의 경계에 있는 높이 791m의 산이다. 각종 기록에서 명칭의 차이는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까마귀가 머무는 산이란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 과거 인근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서 등대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강경포구로 돛배 줄지어 들어오던 시절 – 논산 강경갑문과 배수지
    충청남도 강경읍 강경 갑문과 채운산 배수지는 강경의 전성시대를 떠받친 주요 토목 시설이다. 강경은 조선 2대 포구, 조선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번성하던 고장이다. 금강과 논산천, 강경천, 대흥천이 합류하는 강경은 천혜의 내륙 포구다. 개항 이전부터 중국과 일본의 상인들이 드나들었던 번성하는 포구였던 강경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하천 직선화 등을 통해 물길을 다스리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1924년 대흥천에 갑문을 설치함으로써 신 강경 포구가 안정적으로 하역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고질적인 강경의 홍수에도 대처하고자 했다. 강경 갑문은 일제강점기에 내륙 하천에 설치된 유일한 갑문이다. 채운산 배수지도 1924년 건설되어 강경 거주 일본인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했다. 두 시설은 강경의 전성시대를 보여주는 시설로서 가치가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생명연장의 꿈이 붐비던 곳,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건물은 1923년 지어졌다. 1926년부터는 연수당이라는 간판으로 건재 한약방이 운영되었다. 연수당은 병이 난 사람들, 보약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강경의 대표적 한약방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때 남일당이 이름을 바꾼 한약방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남일당은 인근에서 성업했다가 사라진 다른 한약방이다. 연수당 건재 한약방은 전통의약 시대 보통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준 상징적 공간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도청을 빼앗기고 대신 받은 다리 – 충남 공주 금강철교
    충청남도 공주는 조선 후기 강경, 청주 등지와 더불어 물산이 집결하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철도가 발달하게 되자 수운을 중심으로 한 공주의 번영은 서서히 막을 내렸다. 당초 조선총독부는 경부선과 호남선을 공주에 부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철도는 대전으로 가고 말았다. 연이어 충남 도청마저 대전으로 이전하자 공주 사람들은 반대 시위에 나섰다. 일제는 분노한 공주 시민들에게 도청 이전에 대한 보상으로 공주에 금강철교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금강철교는 1932년 1월 2일에 착공하여 1933년 10월 23일에 준공되었다. 당시 철교는 대부분 철도교(鐵道橋)로 건설되었지만 금강철교는 도로교(道路橋)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금강철교는 1950년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교량의 2/3 가량이 파괴되었다. 1952년 복구공사에 들어가 1956년 9월에 준공하였다. 문화재청은 금강철교가 교량건설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하여 2006년 3월 2일 등록문화재 제232호로 지정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대부호 양반집인 99칸 반 크기의 홍성 전용일가옥
    전용일가옥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에 위치한 부농형 주택이다. 상촌리는 갈미 위쪽에 있는 마을인 상촌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용일가옥은 처음 건립될 때는 99칸 하고도 반 칸을 더한 대규모의 큰 집이었으나 현재 28칸의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중부지방 가옥이며,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 기술과 세련된 솜씨가 드러나 있다. 전용일가옥은 홍성 대부호 양반집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는 전형적인 가옥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예산군

    중부와 영남 지방의 전형적인 대갓집 형식 예산 추사고택
    예산 추사고택은 중부와 영남 지방에 분포한 전형적인 대갓집형 가옥으로,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1700년대에 지은 집이다. 오랫동안 후손들이 거주하였다가 1968년 다른 사람에게 매도된 것을 1976년 4월 충청남도에서 매수하였다. 건물이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고, 마루 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추사고택 근처에 김정희의 묘가 있으며, 김정희가 고조부의 묘 입구에 심었다는 백송도 있다. 예산군에서는 매년 10월 한글날 둘째주 주말에 추사고택 일원에서 추사김정희선생추모 전국휘호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사육신 매죽헌 성삼문의 제사를 모셨던 홍성 노은리고택
    홍성 노은리고택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 위치해 있다. 노은리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매죽헌 성삼문이 태어난 곳이다. 노은리에는 성삼문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은데 홍성 노은리고택도 그중 하나이다. 현재 홍성 노은리고택은 안채와 중문간채만 남아 있어 전체적인 건물의 배치형태를 파악할 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집의 구조로 보아 충청과 경상 지역의 건축기법이 함께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홍성군이 문화유산청의 국비 지원을 받아 홍성 노은리고택을 매입하여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앙증맞고 노오란 호박송편
    추석 명절에 먹는 가장 대표적인 떡인 송편은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 모양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양한 채소를 잘 활용하는 충청도에서는 추석이면 호박송편을 만든다. 호박송편은 썰어 말렸던 가을 호박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찐 호박을 으깨어 멥쌀가루와 섞어서 피를 만든다. 모양 역시 호박의 모양을 따서 만들어 앙증맞고 귀엽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서산시

    밥도둑 인정, 서산 어리굴젓
    굴은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고 불릴 만큼 영양가가 높다. 선사시대 유적지인 부산 동삼동이나 김해 회현리의 조개무지에서 조개와 굴 껍데기가 많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굴을 먹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어리굴젓은 생굴과 소금, 고춧가루를 버무려 담근 젓갈로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는 것이 다른 굴젓과 다른 점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새우젓은 1년 되어야 살이 부서지고 젓국물이 구수하죠”
    새우젓은 담그는 시기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음력 3~4월에 담그면 춘젓, 5월에 담그면 오젓, 6월에는 육젓, 9-10월이면 추젓이라 한다. 그중 육젓이 가장 맛있는데, 어획량이 많지 않아 값이 비싸다. 새우젓은 숙성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저장온도, 염의 비율, 보관 용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냉장시설이 좋아진 요즘은 소금의 양이 많이 줄었다. 1년 넘게 잘 숙성한 새우젓의 젓국물은 막걸리 같다. 새우젓은 1년이 되어야 살이 부서지고 맛있어진다. 젓이 죽이 되지 않고 새우가 예쁘고 또렷한데, 감칠맛이 나고 국물 빛이 묽다면 조미액을 따로 넣은 것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천안시

    행랑채가 크고 높은 곳에 가묘가 있는 천안 민익현 가옥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에 조선후기 규장각 대제학 민승세(閔承世)가 건립한 가옥이다.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마치고 낙향 후 지은 집으로, 약 2,000㎡[600평]의 넓은 대지에 안채, 사랑채, 가묘, 행랑채, 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민승세의 5대손인 민익현이 소유주이기에 ‘민익현 가옥’으로 불린다. 민승세가 건립한 이후 6대에 걸쳐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현대식 건물을 추가하는 등의 변화를 겪었으나 문화재 지정 후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보령시

    은행나무 3,000그루와 함께하는 보령 신경섭 가옥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사랑채 건물이다. 가을이면 고택 앞을 100년 된 은행나무 3,000그루가 빙 둘러싸 황금의 길이 완성된다. ⏌자형의 사랑채와 ㅡ자형의 안채가 어우러져 ㄷ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상량문에 숭정기원후계묘(崇禎紀元後癸卯)라 쓰여 있어 건물의 건축 연원이 1843년임을 알 수 있다. 평대문의 상부에는 신석붕의 효자정문 편액을 걸려 있다. 이 가옥의 가장 큰 특징은 다섯 칸의 사랑채 건물의 우측 끝에 누마루 형태로 방을 만들어 두었다는 점이다. 바깥마당에서 보면 아랫부분은 벽이며, 윗부분에 마루방을 설치한 구조로, 하부 공간을 수장공간으로 활용했다. 부모의 병구완을 위해 드나든 쪽문인 모정문과 안마당에는 우물이 정겹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서산시

    여미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가옥 서산 유기방가옥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위치한 서산 유기방가옥은 1919년 건립된 일제강점기의 전통 가옥이다. 여미리에는 서산 유기방가옥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가 분포되어 있다. 서산 유기방가옥은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은 지형에 지어진 집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튼 ‘ㅁ’자형으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출입구를 구분하여 사생활을 존중하는 공간 구성을 한 점이 특이하다. 서산시는 아라메길 프로그램을 통해 서산 유기방가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서산시

    꽉 찬 ㅁ자형에 차양이 있는 서산 경주김씨 고택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위치한 경주김씨 고택은 정순왕후의 작은댁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 김씨 집성촌인 한다리 마을 중심부에 있고, 사(巳)자형 평면에 일자형 사랑채를 붙인 ㅁ자형 평면구조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지만 안채는 동향으로, 사랑채는 본체와 직각이 되도록 배치하여 남향이다. 안채 주위에 부속채를 배치하여 안마당에 틈을 두지 않아, 튼 ㅁ자형의 충청도 일반집과 달리 꽉 찬 ㅁ자형이다. 대문을 행랑채와 별도로 대지의 모서리에 배치하였고, 본체는 팔작지붕을 얹고, 부속채에는 우진각지붕을 얹어 건물 간의 위계성을 부여하였다. 사랑채 앞쪽에 차양을 설치하여 여느 살림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충청 지역 대지주 양주조씨 종가, 홍성 사운 고택
    홍성 사운 고택은 2013년에 ‘홍성 조응식 가옥’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병자호란 때부터 산성리에 거주한 양주조씨는 지주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이다. 현재는 양주조씨 11대 종부와 12대 종손이 거주하고 있다. 부속건물, 그 중에서도 창고가 많아 충청 지역 대지주 반가였음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집이다. 2018년에는 홍성군에서 고택스테이도 운영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부여군

    백제도성 방위의 중요산성, 석성산성
    해발 200m의 파진산에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다. 2개의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包谷式) 외성 1,600m를 축조하고, 그 안에 테뫼식으로 주위 580m의 내성을 축조하였다. 6세기 전반에 세워진 것으로 둘레 약 1,5㎞, 폭 약 5m, 높이 4m 정도로, 바깥쪽은 돌을 쌓아 올리고 안쪽은 흙을 파서 도랑(호)처럼 만들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부소산성에서 남으로 약 10km 떨어진 백제도성 방위의 중요산성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부여군

    부여도성의 최전방, 청마산성
    월명산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 당시 수도였던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 성의 둘레는 약 5~6㎞이고, 토석혼축의 포곡식 산성이다. 전반적으로 성벽이 많이 무너져 있으나 서쪽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공주·논산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방비하는 부여도성 방위에 제1선을 담당한 산성이었으며 백제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석성산성·성흥산성·증산성과 함께 부여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로서 의미가 크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칠백의병의 의로운 죽음, 조헌 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임란의병장 고경명선생 비
    고경명선생비는 고경명의병장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는 비로, 비가 자리한 이곳은 그가 왜적과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1656년 금산군수 여필관이 비문을 짓고 그가 전사한 건너편 산기슭에 비를 세웠는데, 1940년 일제 경찰의 만행으로 파괴되었다가 1952년 후손들이 여필관의 비문을 다시 새겨 복원하였고 1962년 석조비각을 건립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스님이 총칼을 들고 나섰다 영규
    영규(靈圭, ? ~ 1592)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청주전투에서 승리하여 선조는 영규의 승전을 듣고 영규에게 당상의 벼슬과 옷을 하사했지만 영규는 그 전에 금산전투에서 전사했다. 영규는 임진왜란의 최초 승병으로 전국 곳곳에서 스님들이 총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