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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하야리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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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
    ‘캠프 하야리아’는 기지촌이 두 군데 있었다. 정문 맞은편의 연지동에 있었고 후문에 해당하는 ‘게이트 3’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범전동에 있었다. 범전동 기지촌의 시작은 ‘마을 빨래터’였다. 범전동 주민 박 할머니에 따르면 한국 군인에게서 빨래를 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먼저 받았고 이후 미군의 부탁을 받았다. 군인 좋고 주민 좋은 ‘윈-윈’의 시작이었고 상생의 시작이었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캠프 하야리아’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눈치가 빨랐던 아이들은 어찌어찌 램프를 구해 와서는 1달러에 팔았다. 영어가 짧았던 꼬마들이 미군에게 접근하면서 했던 콩글리시가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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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일 장사 잘하면 집한채 생겨
    ‘핫 나잇’은 미군을 상대로 장사하던 범전동 본동마을 점포 상호였다. 열에 열 ‘뜨거운 밤’이 연상되겠지만 실제론 이불 가게였다. 보드랍고 따뜻한 한국 담요에 매료된 미군들은 귀국 선물용으로 담요를 꾸러미째 사 갔다. 하나에 20달러 하는 담요를 10장, 20장씩 사서는 귀국했다. 미군 상대 양복점도 성업했다. 기념품 가게도 잘됐다. 범전동 본동마을 기념품 가게 ‘고려공예사’는 자개, 공예품, 금도금 제품, 인삼, 인형 등의 기념품을 팔았다. 팀 스피릿 같은 대규모 훈련이 있을 때면 5천 명 이상의 미군이 부산항으로 들어와 하야리아 부대에 임시 주둔했다. 4∼5일 장사 잘하면 집 한 채가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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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60년대 ‘시위 1번지’ 캠프 하야리아
    1950년대와 60년대 미군기지에서 시위가 이어졌다면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한국의 여진이 여전해 한국 주둔 미군은 거의 구세군으로 여겨지던 때였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1950년대 중반 ‘캠프 하야리아’에 가깝던 부산상고 학생들은 1년 이상이나 부대 정문에서 시위를 벌였다. 같은 시기 조방(朝紡) 노조와 선원 노조 등 노조원 1만 5천 명은 ‘하야리아’를 포위하고서 4곳에 땅굴을 파며 부대 진입을 시도했다. 부산시의회 역시 시민 궐기 데모에 전원 동참하기로 결의했다. 부산진구 미군기지가 1950·60년대 부산의 ‘시위 1번지’가 된 자초지종을 당시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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