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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한양에서 함경도로 향하던 경흥로(慶興路)
    경흥로는 조선시대에 수도인 한양에서 한반도의 동북쪽 끝 두만강 하구의 경흥 지방으로 연결되던 간선도로이다. 조선시대 함경감영이 이 노선상의 함흥에 자리했다. 경흥로의 일부 구간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통과하는 구간이 되기도 했다. 일찍부터 동해안의 원산 지방의 해산물이나 수산물이 경흥로를 따라 한양까지 이동하는 경로이기도 했다. 걸어서 이동하던 길이 철도 교통로로 바뀌었고 다시 자동차 교통로로 변화하면서 한반도를 남북으로 잇는 구실을 하는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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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긴 골짜기를 품은 삼태기 서울 성북구 길음동
    서울 성북구 길음동은 골짜기가 길게 놓여 있는 동네라는 뜻인 '기리물골', '기리묵골' 등으로 불리다가 길음동이 되었다고 한다. 개발이 이루어져 지금은 지명의 유래가 되는 골짜기를 찾아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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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신선들의 놀이터 서울 성북구 삼선동
    서울 성북구 삼선동은 4소문의 하나인 혜화문 밖 평평한 들판의 이름이었던 삼선평에서 따온 지명이다. 삼선동에는 사적10호인 한양도성 광희문과 조선 말기의 군사기관이었던 삼군부의 중심 건물인 삼군부 총무당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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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도심 속의 무릉도원 성북동
    서울성곽을 서쪽 울타리로 두고 있는 성북동의 이름은 도성의 북쪽, 도성의 북문 밖에 있는 골짜기였던 데에서 연유한다. 또 조선시대에 도성수비를 담당했던 어영청의 북둔이 1765년(영조 41)에 설치되어 동명이 붙여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도성 사대문 밖에는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성북동만이 성의 북쪽을 의미하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산수의 경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빼어나 예로부터 도성민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서 손꼽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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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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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산시

    사리포구의 그 많은 횟집은 어디로 갔을까
    6‧25전쟁 이후 실향민과 이주민들이 터를 잡은 안산 사리포구는 1980년대 서해안의 대표 어항으로 번성했다. 그러나 1987년 시작된 시화방조제 건설로 포구는 기능을 잃고 1999년 폐쇄되었다. 국가적 개발사업 속에서 사라진 사리포구라는 어촌 공동체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기록하였다. 현재는 안산호수공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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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부천의 살아있는 갈대, 유일한
    유일한(兪鎰煥)은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기업가로서 한국 근대 산업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기독교 신앙이 깊은 상인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박용만이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서 수학하며 독립정신을 키웠고, 이후 미시간주립대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서는 독립 결의문을 낭독하며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귀국 후 그는 1926년 서울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나라의 자립은 산업에서 비롯된다”는 신념 아래 국산 의약품 개발에 매진했고, 1936년 부천 소사면에 국내 최초의 현대식 제약공장을 설립했다. 이 부천공장은 기술혁신과 복지가 결합된 새로운 산업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유일한은 종업원 주주제와 공개주식제도를 도입하며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철학을 실천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OSS 고문으로 활동하고 맹호군을 조직하며 산업 기반의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광복 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을 맡았고, 스탠퍼드에서 국제법을 공부하며 국가 경제 자립의 길을 모색했다. 전쟁 후에는 폐허가 된 부천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유톤, 코푸시럽 등 새로운 의약품을 생산했으며, 한국 최초의 민간 제약연구소를 설립하고 IBM 전자자료처리기를 도입하는 등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사회공헌도 활발했다. 그는 펄벅재단에 부지를 기부해 전쟁고아들을 위한 소사희망원 설립을 도왔고, 유한공고·유한중·유한공전 등 교육기관을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71년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주식 14만 주를 사회에 기증하고 “기업은 공기(公器)”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일한은 산업을 통해 조국의 독립과 복지를 실현한 인물이자, 부천의 땅에 산업보국과 사회적 책임의 씨앗을 심은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갈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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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김천시

    경상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던 우두령 옛길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가운데 하나인 우두령은 조선시대부터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는 지름길로 이용되었던 옛길이다. 우두령 옛길은 조선시대의 역로 가운데 김천도에 편성되었다. 고개 마루에는 우두령을 넘는 길손의 휴식처인 소지원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도에서 전라도 무주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우두령에서 무찔렀다. 우두령은 경상북도 김천으로 흐르는 감천과 경상남도 거창으로 흐르는 계수천의 분수계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에서 고도가 낮은 고갯길이었던 우두령 옛길은 일찍부터 교통 및 군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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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충청수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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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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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충청도 청양의 금정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정도(金井道)
    금정도는 조선 시대 충청도 청양의 금정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며, 충청도를 지나던 호서로에 포함되었던 6개의 역로를 구성했다. 조선 시대에 지금의 청양을 중심으로 충청남도 중서부 지방에 자리한 청양, 홍성, 서산, 태안, 보령 등지로 이어지던 역로를 관할했다. 조선 초기 이인도에 통합하는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금정도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이인도의 북쪽으로는 조선 시대에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인 충청수영로가 보령까지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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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이인도의 중심 이인역
    이인역은 조선시대에 충청도 공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이인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공주의 서남부 지방으로 뻗어 있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이인역은 한양과 호남지방을 잇는 육로 교통의 요충지로 기능했으며 9개의 역을 관할했다.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었던 이인역은 1894년 동학 농민군이 관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있던 역의 이름을 따서 근대에 면의 이름이 변경되었을 정도로, 과거 이인역의 기능과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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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북한

    도원도의 중심 도원역
    도원역은 조선 시대 경기 동북부의 역로를 관할하던 도원도의 중심이 되는 역이었다. 도원역에는 조선 초기 역승이 주재했으나 나중에 찰방이 파견되어 역무를 관할했다. 한반도의 북부지방에서 한양으로 드나드는 주요 길목에 자리하여, 여진족을 접대하거나 6진을 개척하는 등 외교는 물론 국방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1460년에 장단군의 읍치가 도원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도원역은 기존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다. 도원역은 현재 군사분계선 넘어 임진강 북쪽의 황해도 장단군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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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동래구

    한양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던 동래로(東萊路)
    동래로는 조선시대에 수도인 한양에서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 동래 지방으로 연결되던 간선도로로서, 영남지방으로 향하는 도로라는 데에서 영남대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내륙에 위치하여 전략상 중요한 교통로였으며 정치·군사적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 길은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큰 꿈을 품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지나던 ‘과거길’ 이었고, 다른 나라의 문물이 전파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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