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색
고급검색
관리번호
발행년도
시 대
연 대
선택조건
지역N문화 포털은 콘텐츠 생산자 및 연구자들을 위해 서지정보 내보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지관리 프로그램은 문헌 및 온라인 콘텐츠 등 자료를 관리하고 공유하는데 사용됩니다.
※ 해당 프로그램은 소속기관 또는 개인 가입이 필요할 수 있으며, 지역N문화 포털은 링크만 제공하고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관심지역 :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지역N문화 시작하기
마지막으로 로그인한 계정입니다.
지역N문화는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 사용중인 SNS로로그인하여 간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방문화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문화콘텐츠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전자책 제공
전북 완주에 소재한 금석문(金石文: 쇠붙이나 돌로 만든 비석에 새겨진 글)을 사진 촬영하고 탁본을 해석한 자료집이다. 완주지역 각 읍·면별로 사적비, 신도비와 묘비, 암각서, 편액, 선정비, 전적비 등을 구분하고, 이에 대한 설명과 비문, 해석문을 차례로 수록했다.
옛날에 콩쥐라는 아이가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새어머니와 팥쥐가 들어와 늘 구박을 당했다. 외갓집 잔칫날 새어머니는 팥쥐만 데려가면서 콩쥐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키고 다 마친 뒤 잔치에 오라고 하였다. 콩쥐는 두꺼비, 새떼, 선녀의 도움을 받아 새어머니가 시킨 일을 마치고 선녀가 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서 집을 나섰다. 가다가 냇가에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는데 마침 원님이 발견하고 주인을 찾다가 결국 콩쥐와 혼인하였다. 콩쥐를 질투한 팥쥐는 콩쥐를 연못에 빠트려 죽이고 자신이 콩쥐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콩쥐는 환생하여 원님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원님은 콩쥐의 시신을 찾아 살려낸다. 원님은 팥쥐를 죽여 새어머니에게 보내고 새어머니는 죽은 팥쥐를 보고 놀라 기절하여 죽고 말았다.
옛날에 13살 먹은 9대 독자가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손자를 보고 싶어서 9대 독자 아들을 장가를 보낸다. 그런데 신부의 정부(情夫)가 나타난 죽을 뻔 한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간다. 이번에도 신부의 정부가 나타난다. 죽을 고비를 넘긴 9대 독자가 신부와 정부를 죽인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를 간다. 신부가 어린아이를 낳는다. 9대 독자는 아이를 콩밭에 숨긴다. 갓난아이를 발견하여 고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9대 독자와 신부는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고 한다.
강감찬이 어느 곳을 가다가 신행을 가는 일행을 만난다. 신행 떡에는 악귀가 앉아 있었다. 강감찬이 신부의 가슴 위에 앉아 있는 악귀를 물리치고, 누구 택일을 했느냐고 한다. 강감찬은 택일한 노인에게 악귀 살이 있는 날을 혼인날로 잡은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그러자 노인은 하늘의 천당성이 와서 악귀를 물리쳐 주기 때문에 이날을 길일이라고 한다. 노인의 말인즉슨 강감찬이 바로 천당성이라는 것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읍 읍내리에는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던 유석진의 효행을 기린 유석진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유석진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생존했던 인물로,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이니 아버지의 병이 곧바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고 『삼강행실도』에 실리게 되었다. 유석진이 실천한 방법은 현대에서는 어려운 것이지만 그의 효행 정신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완주와일드푸드축제는 청정완주의 신선한 로컬 푸드와 지역주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축제이다. 완주와일드푸드축제에서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 그리고 차별화된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다. 냇가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거나, 감자와 밀떡을 구워먹으며 어린 시절의 고향의 맛과 멋, 그리고 정을 느낄 수 있다.
만경강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원등산에서 발원해 전주, 익산, 군산을 거쳐 황해로 흘러가는 만경평야의 젖줄이다. 구 만경강 철교는 일제강점기 만경평야의 미곡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던 흔적을 간직한 근대문화유산으로, 농민 수탈의 아픔을 담고 있다. 이 철교와 주변 풍경은 당시 농민들의 고통과 한숨을 떠올리게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삼례읍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갈라지는 교통 요충지이자 만경강 평야의 곡물 교역 중심지였다. 1914년 삼례역 개통 후 1920년대 초 일본식 양곡창고가 세워져 쌀을 군산으로 운송하는 거점 역할을 했다. 목조와 벽돌조로 지어진 창고는 일본식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며, 해방 후 농협이 사용했다. 2010년 완주군에 인수된 뒤 문화예술 공간인 ‘삼례 문화예술촌’으로 재탄생해 성공적인 리모델링 사례로 평가받는다.
조선 후기 변란에 대비하여 주민들을 대피시켜 보호할 목적으로 위봉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1675년(숙종 1)~1682년(숙종 8)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 둘레는 약 8,539m, 성벽 높이는 1.8~2.6m이고 군사적 목적뿐만이 아니라 유사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행궁을 성 내부에 두는 등 조선 후기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용마골에 아이 없는 부부가 살았다. 부부는 오래 치성을 드린 끝에 아기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아기장수였다. 아기의 정체가 소문날까 두려워 부부는 동굴에 아기를 숨겼다. 군사들이 찾아와 아기를 내놓으라 했으나, 부부는 아기를 끝까지 지켰다. 군사들이 물러가자 하늘에서 엄청난 비가 내리더니 아기가 용마를 타고 나타나 부부를 데려갔다. 이후 마을 앞에는 용마의 형상을 한 커다란 산이 생겼고, 마을 아래에는 널따란 웅덩이가 파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용마골이라 불렀다.
전라남도 완주군 수양면에 자리한 종남산의 남쪽 기슭에 송광사가 있다. 송광사는 평지형 사찰로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편안히 둘러볼 수 있다. 송광사의 창건과 관련하여서는 보조국사의 뜻에 따라 조선 시대에 건립하였다는 기록과 신라 시대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함께 전해진다. 관련하여서 외팔인 목수가 홀로 송광사를 지었다는 연기설화가 전해진다. 송광사는 가을의 단풍과 더불어 여름의 연꽃이 핀 풍경이 아름답기로 잘 알려져 있다.
대원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의 모악산에 위치한 절로, 모악산은 그 경관이 뛰어나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원사는 660년에 창건되었으며,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되었지만 1606년에 승려 진묵에 의해 중건되어 복원되었다. 대원사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한 목조 석가여래삼존불과 오층석탑, 9기의 부도 등이 있다. 대원사는 자연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여 봄과 가을과 진달래화전축제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는 백운사가 있다. 백운사는 보문종에 소속된 절이다. 백운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자이지만 인색한 서장자가 스님을 멸시한 벌로 가세가 점점 기울었고, 결국 그의 부인이 서장자의 집터를 보시하여 그 자리에 지은 절이 바로 백운사이다.
문화유산
지방의 역사
종교와 문화 / 문화예술
SNS에 공유해보세요.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QR코드를 스캔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