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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에 소재한 금석문(金石文: 쇠붙이나 돌로 만든 비석에 새겨진 글)을 사진 촬영하고 탁본을 해석한 자료집이다. 완주지역 각 읍·면별로 사적비, 신도비와 묘비, 암각서, 편액, 선정비, 전적비 등을 구분하고, 이에 대한 설명과 비문, 해석문을 차례로 수록했다.
완주와일드푸드축제는 청정완주의 신선한 로컬 푸드와 지역주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축제이다. 완주와일드푸드축제에서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 그리고 차별화된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다. 냇가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거나, 감자와 밀떡을 구워먹으며 어린 시절의 고향의 맛과 멋, 그리고 정을 느낄 수 있다.
옛날에 콩쥐라는 아이가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새어머니와 팥쥐가 들어와 늘 구박을 당했다. 외갓집 잔칫날 새어머니는 팥쥐만 데려가면서 콩쥐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키고 다 마친 뒤 잔치에 오라고 하였다. 콩쥐는 두꺼비, 새떼, 선녀의 도움을 받아 새어머니가 시킨 일을 마치고 선녀가 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서 집을 나섰다. 가다가 냇가에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는데 마침 원님이 발견하고 주인을 찾다가 결국 콩쥐와 혼인하였다. 콩쥐를 질투한 팥쥐는 콩쥐를 연못에 빠트려 죽이고 자신이 콩쥐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콩쥐는 환생하여 원님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원님은 콩쥐의 시신을 찾아 살려낸다. 원님은 팥쥐를 죽여 새어머니에게 보내고 새어머니는 죽은 팥쥐를 보고 놀라 기절하여 죽고 말았다.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용마골에 아이 없는 부부가 살았다. 부부는 오래 치성을 드린 끝에 아기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아기장수였다. 아기의 정체가 소문날까 두려워 부부는 동굴에 아기를 숨겼다. 군사들이 찾아와 아기를 내놓으라 했으나, 부부는 아기를 끝까지 지켰다. 군사들이 물러가자 하늘에서 엄청난 비가 내리더니 아기가 용마를 타고 나타나 부부를 데려갔다. 이후 마을 앞에는 용마의 형상을 한 커다란 산이 생겼고, 마을 아래에는 널따란 웅덩이가 파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용마골이라 불렀다.
전라북도 완주군 원등산에서 발원한 만경강은 만경평야의 젖줄이다. 만경강은 너른 곡창지대를 적시며 전주, 익산, 군산 등을 거쳐 황해로 흘러간다. 만경강에는 구 만경강 철교가 놓여있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화전동과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를 잇는 교량이다. 구 만경강 철교는 구 삼례 양곡창고와 더불어 일제의 미곡수탈을 증언하는 완주의 대표적 근대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 때 만경평야 일대의 미곡이 삼례역을 통해 철도로 군산까지 운송되어 일본으로 실려 갔다. 이곳에 철도를 처음 놓은 것은 한국인 강제징용으로 악명을 떨친 미쓰비시(三菱) 계열의 동산농장이었다. 동산농장이 경편철도를 부설하면서 나무로 만경강 교량을 지었는데 나중에 조선총독부가 이를 국유화하면서 구 만경강 철교로 바꾸었다. 풍요로운 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로부터 무자비한 수탈을 당했던 호남의 농민들은 땅을 잃고 고향을 떠나 화전민으로 전락하거나 만주로 이주해 가야 했다. 그래서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만경강 철교 주변의 풍경에는 농민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은 조선 시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갈라지는 교통 요충지였다. 삼례읍은 또한 만경강 주변 평야의 수확물이 집산되는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은 1900년대부터 전라북도 곡창지대에 진출해 다양한 방식으로 농토를 헐값에 사들였다. 삼례에도 이등농장, 이엽사 등의 일본인 지주의 농장이 여러 곳 있었다. 1914년 삼례역이 생겨 쌀을 철도로 군산으로 실어낼 수 있게 되자 1920년대 초 삼례역 앞에 양곡창고가 들어섰다. 당시 세워진 삼례 양곡창고는 목조 3개 동에, 벽돌조 2개 동, 목조 관사 1개 동 등 6개 동이었다. 일본식 창고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삼례 양곡창고는 해방 후 농협이 사용했다. 1970년대 말에는 철근 콘크리트 창고가 1개 동 더 건축되었다. 삼례 양곡창고는 2010년까지 활용되다가 완주군으로 넘어갔다. 완주군은 옛 양곡창고를 ‘삼례 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시켰다. ‘삼례 문화예술촌’은 창고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전북 완주의 송광사 종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십자형 누각이다. 창덕궁 주합루와 수원화성의 방화수류정도 십자형 건물이지만 명칭 그대로 정자의 형태이다. 송광사 종루는 이층 누각으로 중앙의 범종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1칸씩 덧대어 십자가 되는 구조이다. 1층에 세워진 기둥 12는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4개의 기둥이 나열된 모습이다. 2층은 누마루로 가운데 칸에 종을 두고 돌출된 곳에 법고·목어·운판을 놓았다. 종루의 가장 화려한 부분은 지붕으로 마치 사방으로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조선 후기 변란에 대비하여 주민들을 대피시켜 보호할 목적으로 위봉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1675년(숙종 1)~1682년(숙종 8)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 둘레는 약 8,539m, 성벽 높이는 1.8~2.6m이고 군사적 목적뿐만이 아니라 유사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행궁을 성 내부에 두는 등 조선 후기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옛날에 13살 먹은 9대 독자가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손자를 보고 싶어서 9대 독자 아들을 장가를 보낸다. 그런데 신부의 정부(情夫)가 나타난 죽을 뻔 한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간다. 이번에도 신부의 정부가 나타난다. 죽을 고비를 넘긴 9대 독자가 신부와 정부를 죽인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를 간다. 신부가 어린아이를 낳는다. 9대 독자는 아이를 콩밭에 숨긴다. 갓난아이를 발견하여 고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9대 독자와 신부는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고 한다.
완주 화암사의 우화루는 우리나라 사찰의 누각을 대표한다. 화암사에는 보물인 우화루와 국보인 극락전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우화루(雨花樓)’. ‘꽃비가 내리는 누각’, 아니 ‘꽃비를 바라보는 누각’이다. 우화루는 계곡과 암반 사이에 터를 잡다보니 계곡 쪽으로 축대와 기둥을 세워 바깥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단층이다. 우화루는 극락전 쪽을 제외한 3면이 막혀있는 형태인데, 우화루 양옆의 흙벽에는 고색창연한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고, 빛바랜 목어가 화암사 우화루를 더 빛내준다.
강감찬이 어느 곳을 가다가 신행을 가는 일행을 만난다. 신행 떡에는 악귀가 앉아 있었다. 강감찬이 신부의 가슴 위에 앉아 있는 악귀를 물리치고, 누구 택일을 했느냐고 한다. 강감찬은 택일한 노인에게 악귀 살이 있는 날을 혼인날로 잡은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그러자 노인은 하늘의 천당성이 와서 악귀를 물리쳐 주기 때문에 이날을 길일이라고 한다. 노인의 말인즉슨 강감찬이 바로 천당성이라는 것이다.
남계정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두현길 12-12(두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34호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남계(南溪) 김진(金瑱:1527~?)이 1580년(선조 13)에 후진양성을 위해 강학처로 건립하였다. 그 뒤 후손들에 의해 1673년(현종 14)에 중수하였으며, 1856년(철종 7) 경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계정이라는 정자명은 창설자 김진의 호를 따서 지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읍 읍내리에는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던 유석진의 효행을 기린 유석진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유석진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생존했던 인물로,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이니 아버지의 병이 곧바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고 『삼강행실도』에 실리게 되었다. 유석진이 실천한 방법은 현대에서는 어려운 것이지만 그의 효행 정신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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