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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강화도의 토착세력 하음 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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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음 봉씨 시조설화
    「하음 봉씨 시조설화」는 하음산(봉두산) 일대의 유적과 관련되어 전승되는 하음 봉씨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밝혀 주는 성씨시조설화이다. 시조가 출생하는 과정을 신이하게 묘사하고 신격시 하는 것은 조상에 관한 신성성과 당위성, 그리고 씨족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봉가지, 봉천대, 봉은사 등을 증거물로 활용하여 시조인 봉우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중엽 이후에 하음 봉씨에 의해 창작․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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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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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분의 주인을 알수 없는 강화 능내리 석실분
    능내리 석실분은 피장자가 알려지지 않은 왕릉급 고분으로, 강화도의 왕릉급 고분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능내리 석실분은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 발굴 당시 능내리석실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으나, 석실 내부에서 대접, 접시, 잔 등 다양한 청자류와 봉황문과 당초문이 타출된 은제도금장식과 동곳, 호박구슬 등의 장신구류, 개원통보(開元通寶(621)) 등의 동전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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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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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당배로 잡은 뻘 밴댕이, 은빛 냉정함에 살살 녹는 속살이 최고”
    밴댕이는 꽁당배(안강망, 鮟鱇網)로 잡은 뻘 밴댕이가 맛있다. 닻배(정선망, 碇船網)로 잡은 밴댕이는 그물에 있던 다른 물고기들과 부딪혀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꽁당배로 밴댕이를 잡을 때는 그 길목에 그물을 펼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밴댕이가 어느 정도 그물에 차면 물살 방향으로 그물을 끌어 올린다. 예전에는 지금의 닻 대신 삼나무나 박달나무로 닻을 만들어 꽁당배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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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의 역사와 특산물이 한 그릇에, 강화도 젓국갈비
    강화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특산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향토 음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젓국갈비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이 음식이 어떠한 음식일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새우젓이 들어간 국물과 갈비의 조화는 어떠한 맛일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음식은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슬로푸드로 다시 한번 재기를 꿈꾸는 젓국갈비, 어떤 음식인지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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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옷을 쌓아 배를 타러 갔던 인천 강화 갑곶나루
    강화군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을 오가는 나룻배를 운영하던 나루인데, 강화도와 뭍을 연결하는 중요 통로였다. 정묘호란(1627년)이 발발하자 인조가 후금을 피해 건넜던 나루이며, 그의 아들 봉림대군도 병자호란 때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로 들어왔다. 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신하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병인양요(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읍으로 진입한 곳이다. 세종대에 박신(朴信)이 경비를 부담하고, 주민들 노역하여 14년간 선착장 석축로를 쌓았으며, 그 후로 1920년에 김포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를 신설하기 이전까지 중요 나루로 활용되었다. 1970년에 강화대교가 생기면서 나루터는 제 기능을 잃었고, 제방 공사로 인해 나루터 시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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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향민과 함께 교동을 지켜온 동산약방
    동산약방은 나의환이 1961년 경부터 문을 연 약방이다. 1950년 6·25전쟁 전까지도 교동도에는 장터가 없었다. 교동 생활권은 황해도 연백읍이었기 때문에 큰 장터가 없었던 것이다. 교동 대룡리에 시장이 생기게 된 것은 피란민 연락소가 있어 실향민들은 자연스럽게 대룡리에 모여들게 되면서 부터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교동에서 약방은 응급실과도 같은 소중한 가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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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백의 공기와 흙냄새를 가져다주는 제비가 둥지를 트는 연안정육점
    연안정육점은 1953년 최수재가 처음 가게를 열었고, 1955년 아들인 최덕권이 물려받았다. 그리고 2014년 최덕권의 아들인 최성호가 연안정육점을 이어받아 3대에 걸쳐 가게를 이어오고 있다. 최성호의 아들 역시 현재 정육 및 축산 관련 일을 하고 있어 언젠가는 정육점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최성호는 가지고 있다. 연안정육점의 연안은 인천의 연안부두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황해도 연백의 연안을 뜻하는 것으로, 실향민의 아픔을 간직한 상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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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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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랑캐의 침입에 죽음을 택한 순절자들의 배향, 강화도 충렬사
    강화도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정신으로 죽음을 선택한 39인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물살이 거세 적군이 들어올 수 없다는 철옹성이라 여기던 강화도에 청나라군이 들이닥치자 도성의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오랑캐 여진족에게 굴복하기보다 자결로 절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김상용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충렬사에 배향된 인물들 외에도 자결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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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북송시대에 만들어진 전등사 철종
    보물 제393호 전등사 철종(傳燈寺鐵鍾)은 높이 1.64m, 구경 1m의 철제종이다. 종의 정상에는 좌우에 쌍룡(雙龍)이 한 몸으로 등을 지고 웅크려서 꼭지를 이룰 뿐 우리나라 동종에서 보이는 용통(혹은 음통)은 없다. 전체적인 형태에서 개성 연복사종(演福寺鐘)을 연상하게 하는 중국 종의 특징을 보여준다. 비록 철로 만든 종이지만 종소리가 청아하며, 중국 북송 시대에 만들어진 명문을 지니고 있어 중국의 종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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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에서는 고정도 이동도 가능한 원둘[주목망]로 고기잡는다
    인천광역시 강화도 일원의 해안마을에서는 전통어구인 주목망(柱木網)으로 고기를 잡는다. 주목망은 경기만과 충남도서 지방, 전남 영광군 앞바다의 칠산도 근방에서도 사용되었다. 강화지역의 주목망은 다른 지역과 달리 먼 거리로 이동하는 원정 어업으로 행해졌고, 주목망의 변형인 지앙망[연안안강망], 낭장망 등으로 개량 및 변화되었다. 그 초기 형태가 강화군 해안 일대에 원둘의 형태로 남아 있다. 원둘은 오랜 연원을 지녔지만 현행 어업법에는 규정되지 않은 어구이다. 두 개의 말뚝을 설치한 후 그것에 그물을 매단 형태로, 고정된 터에 주로 설치했다. 갯벌 위 바위 옆에 설치했으며, 개인소유였다. 꽃게, 밴댕이, 병어, 가을 새우젓이 주로 어획된다. 4∼5월과 9∼10월 사이에 꽃새우를, 요즘은 젓새우, 깨나리(표준명 싱어) 등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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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포왜란 토벌의 주역, 황형
    황형은 성종~중종 연간에 활약한 무신으로 성종 때는 1491년(성종 22) 두만강 유역을 침범한 우디케[兀狄哈]의 여진족을 대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중종 때는 1510년(중종 5) 동래의 부산포(釜山浦), 웅천의 제포(薺浦), 울산의 염포(鹽浦)의 3포(浦)에 거주하는 왜인 4~5천여 명이 대마도(對馬島)의 왜인과 합세하여 일으킨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벌하는데 결정적인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황형의 묘는 향토유적 제6호,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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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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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가 없어진 백련사 미륵불
    「코가 없어진 백련사 미륵불」은 기자습속(祈子習俗)과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강화군 백련사 미륵불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미륵불의 코를 가져가면 신기하게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미륵불에 불공을 드렸다. 그런데 아들을 낳지 못해 쫓겨난 어느 부인이 욕심이 많아서 미륵불의 코를 몽땅 떼어냈다. 그 뒤부터 미륵불의 영험이 사라졌다고 하여 더 이상 불공을 드리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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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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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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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창대군이 죽음을 맞이한 인천광역시 강화도의 살챙이마을
    경기도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의 수도 인근에 있는 큰 섬이라 왕족들의 유배지로 유명하였다. 유배를 온 왕족 가운데 강화도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이다. 선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광해군은 여덟 살이던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냈다. 그리고 그의 측근인 정항을 강화부사로 내려보냈다. 강화부사 정항은 영창대군이 거주하는 초가집 아궁이에다가 마른 솔가지와 장작더미를 쌓고 불을 놓아 영창대군을 불 태어 죽였다. 강화도 사람들은 영창대군의 비극적인 죽음을 지명에 담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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