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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동해의 바닷물과 바람, 햇볕으로 구운 울산소금 이야기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울산광역시 >남구

    동해의 바닷물과 바람, 햇볕으로 구운 울산소금 이야기
    바닷물과 바람, 햇볕으로 구운 울산 소금의 문화와 역사를 채록한 영상. 바닷물을 염전에 끼얹고 말리는 일을 반복해 만든 건세를 섯등에 넣고 바닷물을 부어 우려낸 함수를 다시 끓이는 독자적인 제염방법을 재현해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제염문화를 담아 이야기로 풀어낸 콘텐츠.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울산광역시 >남구

    먹어는 봤나요? 호른호른, 야들야들, 쫄깃한 고래고기
    장생포 ‘고래 문화마을’은 포경산업이 성황을 이루었던 60~70년대의 마을 모습을 재현했다. 당시 장생포 항구는 우리나라 최대 포경항이었다. 1899년 러시아 태평양 포경회사가 고래를 해체하는 장소로 선정한 이래 한국의 대표 포경기지였던 셈이다. 이 당시에는 해체한 고래를 주로 일본으로 수출했다. 그렇지 못한 부위는 장생포 사람들이 먹었다. 소금을 넣고 삶아서 수육으로 먹거나 이것저것 부위별로 섞어 탕도 끓여 먹었다. 그때만 해도 고래고기는 돼지나 소가 없었던 바닷사람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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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울산광역시 >남구

    일제강점기 한해 100여 마리씩 잡은 고래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부터 고래사냥을 하였으나 근대적인 포경은 대한제국기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독점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동양포경회사가 포경을 독점하여 한반도 해안에서 한해 평균 100여 마리의 고래를 잡았다. 고래는 고기와 기름 등이 수요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포경선이 모이는 곳은 울산 장생포였다. 이외 제주도 서귀포에도 고래잡이 전진기지가 있었다. 장생포항의 향도(向島)나 서귀포에는 고래공장도 있었다. 1978년 우리 나라는 국제포경위원회에 가입하였으며 이때부터 고래의 포획대상 종류 및 조업시기 등에 제한을 받았고 1985년 11월 1일부터 포경어업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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