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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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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정순 언니
    벽계리 마을에 가난한 집 큰딸, 정순 언니가 있었다. 정순 언니는 미군 부대 세탁소에서 일하다 미군과 눈이 맞아 결혼했다. 마을에서는 미군과 살림을 차린 정순 언니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정순 언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순 언니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해했다. 다행히 정순 언니는 미군과 잘 살고 있었고, 미군 남편은 한국식 결혼 풍습을 익혀서 맏사위 역할을 다했다. 마을 사람들은 정순 언니가 잘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놓았다. 정순 언니와 미군 남편에 대한 곱지 않던 시선도 완전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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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은평구

    격동의 개항기, 조선의 관료로서 중심을 지키다. 김병국
    김병국(金炳國, 1825~1905년)은 19세기 세도정치를 이끌었던 안동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가문의 후광을 업고 문과 급제 후 빠르게 진급했던 그는 고종의 즉위와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세도가문이 위축될 때에도 오히려 신임을 얻었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이전 주변의 눈을 속이려 방탕한 생활을 할 때, 김병국이 그 속뜻을 알아보고 여러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외세 배척적인 태도를 지녔던 흥선대원군과 달리 중도적 입장을 가졌던 그는 흥선대원군의 실각에도 조정에서 중용하는 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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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조선의 역사와 함께하다. 신정왕후
    조대비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신정왕후(神貞王后, 1809~1890년)는 19세기 조선의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조선의 왕비 중 가장 장수했던 그는 순조 때 왕세자빈으로 간택된 것을 시작으로 궁중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아들인 헌종이 즉위하였으나 후사없이 사망하고 이후 철종과 고종이 즉위할 때까지 왕실의 어른 역할을 했던 신정왕후는 19세기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고종의 즉위와 함께 마무리된 세도정치는 사실 신정왕후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었다. 신정왕후는 조선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자 노력했으며, 고종의 즉위 후에는 3년간의 수렴청정을 끝으로 정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도봉구 도봉산에 위치한 광륜사는 신정왕후가 별장으로 삼았던 곳으로 말년을 주로 보냈던 곳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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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진 하늘에 외로운 따오기 나는, 대구 달성군 하목정
    하목정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104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6호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1566~1638)이 임진왜란이 평정된 후 1604년(선조 37)에 하복정을 짓고 강산의 풍경에 묻혀 만년을 보낸 곳이다. 낙동강변의 저녁 노을이 낀 명사십리에 하늘을 나는 따오기의 모습이 장관을 이뤄 하목정이라는 정자명이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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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의의 상징 사육신 박팽년 종택의 정자, 대구 달성군 태고정
    태고정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55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지은 사당과 종택에 딸려 있는 정자이다. 1479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4년에 중수하였다. 절의의 상징처로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문객들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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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 전통을 이어가는, 달성 도동서원 수월루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 수월루(水月樓)는 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공간이다. 도동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9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김굉필(金宏弼)을 모신 서원으로, 1607년 도동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라는 의미이다. 도동서원의 공간은 ‘수월루 – 환주문 – 동ㆍ서재 - 중정당 – 내삼문 – 사당’이 일렬로 이어진다. 문루인 수월루는 창건 당시에는 없다가 1849년 처음 지어졌다가 1973년 중건한 건물이다. 수월루(水月樓). 말 그대로 ‘물에 비친 달’을 의미하듯이 누각에 오르면 앞으로 낙동강의 물줄기와 주변 경관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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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적 기능이 중시된, 공주 공산성 만하루
    공주 공산성 만하루(挽河樓)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누각이다. 일반적으로 누각은 문루이자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하지만 만하루는 풍광도 즐기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성 동쪽 누대에 해당하는 군사적 기능이 우선시되었던 누정이다. 금강을 내려다보는 만하루는 바로 뒤에 연지와 함께 홍수로 매몰되어 1984년 복원된 건물이다. 누각이지만 1층 기둥이 짧아 단층 건물같이 보인다. 바로 곁의 새로 복원된 연지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영은사가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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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조가 피신 왔던, 공주 공산성 공북루
    공주 공산성의 공북루(拱北樓)는 성문에 해당하는 문루이다. 공북루의 양쪽은 금강을 따라 석벽으로 이어져 있다. 1층 정면 5칸 가운데 중앙의 1칸만 성으로 출입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4칸은 모두 석벽으로 둘러쳐 있다. 공산성의 다른 누각인 만하루(挽河樓)와 마찬가지로 휴식 공간 보다는 군사적 목적이 더 큰 건물이다. 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공북루의 원래 이름은 망북루(望北樓)였다. 공북루의 명칭은 1603년 쌍수산성을 수축할 때 고쳐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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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3품의 두 그루 나무가 있던, 공주 공산성 쌍수정
    공주 공산성에 있는 쌍수정(雙樹亭). 이괄의 난 때 공산성으로 피난 왔던 인조가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머물던 곳에 있던 두 그루 나무에게 정3품 품계를 내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누정이다. 공주는 백제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다. 수도를 방어하는 성을 쌓아 백제 때는 웅진성, 고려 때는 공산성,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 때 공산성으로 피난 온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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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대사 휴정의 의승군
    휴정(休靜, 1520~1604)은 평남 안주 출신으로 호는 청허(淸虛)이고,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해서 싸웠다. 그때의 나이 73세였다. 85세에 결가부좌한 채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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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병의 전라도 활약, 처영대사
    처영은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군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처영의 호는 뇌묵,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자 호남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일으켜 싸웠다. 이후에도 3,800명의 병력과 함께 해우주산성에 주둔했을 때, 700명의 승병으로 적병 3만과 대전하여 2만 4천 명의 사상자를 내어 임진왜란의 최대 승첩을 이루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절충장군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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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호국불교의 상징, 휴정
    서산대사(西山大師)로 유명한 휴정(休靜, 1520~1604년)은 조선 호국불교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6세기 불교에 귀의를 결심하고 스스로 머리를 깎은 휴정은 주변에서 인정받는 승려였다. 그는 승과에 합격하여 벼슬을 받기도 하고 승려 보우의 뒤를 이어 봉은사의 주지가 되어 조선 불교 부흥에 힘을 쏟기도 하였으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을 위해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부름을 받은 휴정은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승병을 모아 전쟁터로 나섰다. 평양과 한양을 수복하는데 큰 역할을 한 휴정은 선조의 한양 환도와 함께 다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묘향산에 들어가 수행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호국 정신은 유정, 처영과 같은 제자들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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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의 숨결이 느껴지는, 안동 고산정
    고산정은 천하의 명산 청량산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마주하는 절경에 위치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제자 금산수가 건립한 고산정은 창건 당시부터 안동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퇴계를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자주 왕래하며 남긴 시가 수백 수에 달한다. 청량산을 유난히 좋아했던 퇴계 이황도 고산정을 자주 왕래하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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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나라를 멀리하는 절의의 상징, 안동 청원루
    청원루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장동김씨(壯洞金氏)의 시조인 김번(金璠:1479~1544)이 지은 살림집이었는데, 김번의 증손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다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자 조상의 고향인 안동 풍산읍 소산리의 종택으로 내려와 ‘청원루’란 현판을 내결고 은거하였다. ‘청원루’라는 정자이름은 ‘청나라를 멀리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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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유씨 강학처, 안동 삼산정
    삼산정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94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4호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유정원(1703∼1761)이 1750년(영조 26)경에 건립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삼산정이라는 정자명은 창건자 유정원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그의 호는 그의 집 앞산의 세 개의 봉우리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유정원의 덕행을 기리며 자손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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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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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장 구로다를 무찌른 이정암
    이정암(李廷馣, 1541~1600)은 1561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서 두루 벼슬을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이조참의로 있었다. 이후 의병장이 되어 황해도 연안성에서 왜군 구로다군과 싸워 승리하고, 정유재란 때도 초토사로서 수양산성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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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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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지명유래 개념과 분류
    지명유래는 전부터 내려오는 지명의 전승 내력이다. 그리하여 지명유래는 전설과 통한다. 이에 연구자들은 지명유래를 지명 전설이라고도 한다. 지명을 분류하는 데 있어 정설(定說)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자연과 관계된 지명과 인문과 관계된 지명으로 분류하였다. 지명유래 또한 이러한 지명의 분류를 바탕으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연과 관계된 지명유래는 다시 마을의 지형, 위치·방향, 산·바다·바위 등의 자연물 그리고 동식물 등 네 개의 하위 범주로 나눌 수 있으며, 인문과 관계된 지명유래는 산업·경제, 교통, 역사, 유적과 유물 등 네 개의 하위 범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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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지명유래담의 종류 - 역사, 교훈, 풍수지리
    지명유래담은 내용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하여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면의 이야기나 전설을 전하는 지명, 윤리적으로 민중을 계도할 수 있는 교훈을 주는 지명, 지형을 풍수지리로 설명하는 지명이 그것이다. 전국 곳곳에는 효자 이야기, 개무덤, 탁발 온 스님 이야기 등 비슷한 내용의 지명유래담이 전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선비들이 신성시하고 좋아했던 매화, 학, 거북, 용 등의 풍수지리와 관련된 이야기도 곳곳에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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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지명의 명명과 지명유래의 전승
    지명유래는 지명으로부터 시작한다. 곧 지명이 명명된 사연이 지명유래이니 지명의 존재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한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는 지명 및 지명유래를 구술(口述)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구비(口碑) 전승(傳承)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런데 처음에 명명된 지명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며, 이에 따라 그 유래 또한 달라진다. 그런가 하면 지명은 그대로 있는데 전승 과정에서 지명유래가 구술자에 따라 변하거나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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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의 그림에 보이는 한강변의 압구정
    압구정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산310번지 일대에 있었던 정자이다. 조선초기 권신 한명회가 만년에 서울 두모포 남쪽 언덕에 지은 정자로 조선말기까지 존립하다가 1884년에 헐렸다. 조선후기 화가 정선이 그린 「압구정도」를 통해 오늘날 그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 압구정은 당대에도 서울에서 꼽히는 명승지 중 하나로, 정선의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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