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정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남양주, 열수 정약용을 품다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남양주시

    남양주, 열수 정약용을 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기념인물인 조선 시대 천재 실학자 열수 정약용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2018년 ‘정약용 해배(解配: 유배지에서 풀려남) 200주년’과 ‘목민심서 집필 200년’을 기념하여 경기도 남양주에 지역적 기반을 둔 그의 저작물, 사상, 유적지, 발명품 등을 알아본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남 >강진군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정약용은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정약용은 형 정약전과 함께 삼남대로를 따라 남도로 유배를 갔으며, 전라도 나주에서 형 정약전과 이별했다. 나주에서 영암군을 거쳐 강진군으로 이동했던 구간이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로 조성되었다. 남도 유배길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다산초당 근처의 다산수련원에서부터 영암군에 이르는 65.7㎞ 구간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유배 생활을 하던 정약용이 머물렀던 거처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중농주의 실학자 정약용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변화하는 시기를 살다간 정약용은 성호학파의 경학(經學)적 기초 위에 그 학파의 비판적이고 개혁적인 학문 풍토를 계승하였다. 토지의 공유와 균등 분배를 통한 경제적 평등의 실현을 기저로 하면서 상업적 농업에까지 이른 그의 경제 사상은 선배・동학의 중농주의 학풍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정자나무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정자나무의 3년상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사촌리의 기동마을에는 삼년상을 지냈다고 하는 느티나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의 일이다. 기동마을에 살던 어떤 사람이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느티나무는 해를 거듭할수록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 해 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자 느티나무가 3년 동안 나뭇잎을 피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가 식수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삼 년 동안 나뭇잎을 피우지 않은 것으로 믿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정릉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복제의 개정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전국

    우리 고유의 의복의 변형시킨 변복령
    1895년 3월 공사 예복을 개정하여 답호의 착용을 금하였고 입궐 때에만 사모·목화·사대를 착용케 하였으며 또한 관민이 다 같이 흑색의 두루마기를 입도록 하였다. 이러한 을미변복령은 의병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전통적인 의복제도를 문화적 긍지의 한 척도로 인식하고 있던 수구적 지식인들은 변복령 반포를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산마루 너머의 약속, 먼마루도당우물대동제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의 ‘먼마루’는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마을 이름으로, 산등성이 위에 자리한 지형에서 비롯된 ‘멧마루’가 변형된 것이라는 설과, 춘의동 당아래에서 바라볼 때 멀리 둥근 산마루처럼 보였던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름 그대로 먼마루는 오래전부터 지형과 시선,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해 온 공간이다. 이 마을에는 예부터 특별한 우물이 하나 있었다. 단순한 식수원이 아니라 마을의 신령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던 이 우물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먼마루 도당 우물대동제’가 열렸다. 이 제의는 마을의 평안과 풍요, 그리고 주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행사로, 현재는 원종동 161-1번지로 자리를 옮겨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의 우물은 오각형 울타리로 둘러싸인 형태로, 2007년에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적 변화에 맞게 변모한 모습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먼마루 우물제는 단순한 무속 의례를 넘어 마을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이다. 주민들은 제기와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어르신들은 옛이야기와 제례의 의미를 전하며, 아이들은 직접 생생하게 제의를 지켜보며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을 몸으로 체험한다. 이 과정 속에서 우물제는 세대를 잇는 살아 있는 배움의 장이 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우물의 물이 마르지 않으면 풍년이 들고 병이 없지만, 우물을 함부로 건드리면 재앙이 따른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은 이 우물이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신령이 깃든 생명의 자리’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먼마루 우물제의 가장 큰 특징은 도당 신앙과 우물 신앙이 결합된 형태에 있다. 도당이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공간이라면, 우물은 생명을 품은 땅의 입구이다. 이 두 신앙이 어우러지며 먼마루 우물제는 마을의 생명력과 공동체적 결속을 상징하는 제의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까지 이 전통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르신들의 기억과 전승 의지, 그리고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다. 노인들은 제사의 순서와 제문을 기억해 전하고, 청년들은 이를 영상과 기록으로 남긴다. 일부 주민들은 우물제를 촬영해 온라인에 공유하며, 전통은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로 공장과 도로, 아파트가 들어선 풍경 속에서도 먼마루 우물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해마다 우물가에 모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 제의를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먼마루 우물제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공동체 회복의 상징이자, 도시 속에서도 끊기지 않는 지역문화의 생명선이다. 먼마루 우물제는 과거의 풍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는 ‘살아 있는 전통’이다. 비록 이름은 오래되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부천의 계절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류인석선생의 항일정신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강원 >춘천시

    의병의 정신을 담고있는 의병주
    의병주는 고흥 류씨 가문이 400여 년 전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대대로 빚어온 제사술이다. 제사 술은 쌀로 밑술을 만들고 누룩으로 한 번 더 익힌 전통 곡주로 맛과 향이 뛰어나고 숙취가 없어 오래전부터 명주로 입소문을 탔던 술로 류인석 선생을 기리는 의암제 때 제주로 사용해 왔다. 의암 류인석선생의 항일정신, 그 역사와 문화가 깃든 술이니 명주라 할 수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정려각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2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경북 >성주군

    박이현 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충신문
    충신문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공을 세운 박이현과 이괄의 난 때 순절한 박영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각이다. 박이현은 김면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성주에서 활약하였고, 박영서는 창성부사로 이괄의 난 때 장만의 선봉장으로 참전하였다가 순절하였다. 정부에서 1625년에 정려를 내리고 세운 정려각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어 두 부자의 충절을 선양하는 역사적·교육적 자료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울산 >울주군

    정려각에 얽힌 열녀와 호랑이의 우정
    조선 초 신녕현감 유혜지가 세상을 뜨자 그의 부인 정씨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정씨의 친정에서는 재혼을 권하였지만 정씨가 거부하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짓 소식을 전하여 친정으로 오게 하였다. 정씨가 친정에 갔다가 거짓말인 것을 알고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가게 되었다. 그 후 정씨는 남편의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매일 밤 호랑이가 찾아와 정씨를 보호해주었다. 어느 날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구해달라는 꿈을 꾸고 정씨가 호랑이를 구해주었다. 삼년상을 마치자 무덤이 열렸고 정씨가 들어가 남편 옆에 누우니 무덤이 다시 닫혔다. 사흘 뒤 호랑이도 정씨를 따라 죽었고 가족들은 호랑이를 거두어 묻어주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