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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국

    불행하게 죽었으나 정통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
    정여창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호는 일두(一蠹)이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무오사화로 인하여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었으며, 갑자사화로 인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 :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어 처형하는 극형)의 잔혹한 형벌을 당했다. 그는 이 같이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학문적으로는 정몽주,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유학의 정통을 전수 받은 성리학의 대가로서 학문의 목적을 성인이 되는 것에 둔 정통파 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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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달을 희롱하는, 함양 농월정
    농월정은 선비문화의 산실인 경남 함양의 대표적인 누정이다. 농월정은 인조 때 도승지를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지은 누정이다. 오래전의 농월정은 2003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지금은 새로 지은 누정이 그 자리에 대신 서 있다. 주위 풍광과 어우러지며 너럭바위 위에 자리한 농월정과 옛 선현들이 흥취에 겨워 새긴 암반의 각자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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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게’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꿈꾸던,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
    정여창을 향사하는 남계서원(灆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았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한 것이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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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멋진 풍경 속에 기우제 지내던 와룡정
    와룡정은 남강이 휘감고 흐르는 강변 절벽인 용수암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바라보는 풍경이 멋지다 보니 진주 부사도 소문을 듣고 와서 놀았고, 함안군수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와 즐겼다. 또 용과 관련이 깊은 물가여서 기우제를 지내면 뚜렷한 영험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며 많이 낡고 허름해졌는데, 이대로 둔다면 여기서 보는 강과 들판과 산과 하늘의 조화를 묵히게 될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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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활을 쏘며 호연지기를 길렀던, 창경궁 관덕정
    관덕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창경궁 내 춘당대 터 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춘당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과거와 활쏘기 등 무술 연마를 왕이 신하들과 관전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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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흥선대원군의 별서, 서울 석파정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산16-1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형 정자이다. 석파정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창의문 밖에 있으면서 인왕산 동쪽의 돌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거대한 암석과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아 예로부터 한양 도성의 경승지로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을 소유하기 이전부터 이곳에는 조정만이 세운 소수운렴암이 있었으며, 19세기에는 김흥근의 삼계동정사가 있었다. 고종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고 안동김씨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한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으로부터 그의 별장을 빼앗아 자신의 호를 따서 석파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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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강서구

    이태백의 시문을 따서 지은, 서울 이수정
    이수정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염창동 103번지 도당산(都堂山) 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옛날에 이곳은 양천현 지역으로, 원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임정(林亭)이 있었다. 후에 그의 후손 한산군(韓山君) 이덕연(李德演)과 그의 아우 이덕형(李德泂)이 이수정(二水亭)이라는 이름으로 정자를 다시 지었다. 이수정은 이태백(李太白)의 시 ‘이수는 백로주를 끼고 둘로 나뉘었다[二水中分白鷺洲]’라는 구절에서 정자명을 취하였다. 현재 그 터에 표석만이 남아 있는데, 정선이 그린 「이수정도(二水亭圖)」를 통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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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옛적 영천이야기

    출처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북 >영천시

    옛날 옛적 영천이야기
    경북 영천지역에서 내려오는 역사, 전설, 설화를 쉽게 풀어낸 어린이용 이야기책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태몽, 중앙석굴과 김유신, 노귀재 전설, 임진왜란 당시 정의번과 그의 종 억수의 이야기 등 16개의 이야기가 삽화와 함께 수록되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장수도의 중심 장수역
    장수역은 조선시대 경상도 신령(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장수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경상북도 남부 내륙과 동해안 및 경상북도 남부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관할했다. 장수역이 관할하던 역은 본래 15개이었다가 조선 후기 13개로 줄었다. 영천 지방이 한양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조선통신사의 이동 구간이었던 만큼, 장수역은 교통의 요충지로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장수역이 있던 곳에는 조선시대에 역에서 이용했던 우물인 관가샘터가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다. 과거에 말을 다루던 고을이라는 데에서 현대 영천은 말의 고장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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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로 유명세를 탄, 장성 백양사 쌍계루
    장성 백양사의 쌍계루(雙溪樓)는 백학봉을 뒤로하고 수정 같이 맑은 못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절의 이름은 백암사 – 정토사 – 백양사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백암사(백양사)가 알려진 것은 고려 말 쌍계루가 중건되면서 목은 이색이 기문을 짓고, 포은 정몽주가 시를 쓰면서부터이다. 이후 목은과 포은을 기리는 시인과 묵객들이 쌍계루를 방문하여 남긴 시가 200편이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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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날 정하기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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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결혼일자를 택하여 알려주는 납길
    혼례의 한 과정으로 육례 중에 세 번째 의례가 납길이다. 택일, 날받이, 연길이라고도 하며, 혼인하기 좋은 날을 정하여 신랑이 신붓집에 알려주는 의례이다. 반대로 신붓집에서 신랑집으로 알려주기도 하는데 이를 연길이라 한다. 육례가 점차 사례로 축소되면서 생략되었으며, 요즘은 하객들의 참석을 배려하여 주로 주말에 날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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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자연과 더불은 유유자적을 어찌 바꿀소냐, 함안 하환정
    하환정(何換亭)은 무기연당(舞沂蓮塘) 정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무기연당과 함께 국가민속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후기 이인좌의 난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주재성이 1717년(숙종 43)에 무기연당을 조성하고 1728년(영조 4)에 하환정을 건립하였다. 정자명의 ‘하환(何換)’이란 말은 “어찌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부귀영달을 할 수 있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삼공이라도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삶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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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온갖 경치 모두 모인 조물주의 무진장, 함안 무진정
    무진정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4길 25(괴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58호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무진(無盡) 조삼(趙參:1473~?)이 후진 양성과 여생을 보내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1567(명종 22)에 조삼의 후손들이 그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중건하였다. 주변 경관이 예로부터 뛰어나 조물주의 무진장이라고 칭하여졌다. 조선 전기의 정자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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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담양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태어난, 담양 송강정
    우리나라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송강 정철.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등 주옥같은 가사문학 작품을 남긴 그였다. 이 가운데 「사미인곡」「속미인곡」은 1585년 담양의 송강정에 낙향하여 지은 것이다. 「전후미인곡」으로 불리는 두 가사는 왕에 대한 신하의 충절을 지아비에 대한 아녀자의 애절한 사랑으로 바꾸어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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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송강 정철이 반한 담백하면서 비리지 않은, 꾹저구탕
    꾹저구는 강바닥에 붙어사는 토종 민물고기로서 강릉의 남대천 등 영동지역의 하천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다. 뚜거리, 뚝저구, 뿌구리, 꾸부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꾹저구는 강원 영동지역 주민에겐 오래된 토속 어탕재료로 이용되어 왔다. 꾹저구탕은 강원도의 향토음식으로 뚜거리탕이라고도 하며, 추어탕보다 담백하면서 맛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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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송강 정철과의 꿈같은 만남, 광주 환벽당
    환벽당은 광주의 대표적인 누정이다. 환벽당은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가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벗들과 친교를 나누던 곳이다. 대표적인 제자가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성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송순은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와 같은 정자’라고 했고, 또한 ‘소쇄원 – 식영정 – 환벽당’을 이 지역 대표적인 세 명승이라 했다. 실제로 세 곳 모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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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합천군

    자연과 더불어 호연지기를 키우길 바라는, 합천 호연정
    호연정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문림길 40-19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요당 주이가 벼슬에서 돌아와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본래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후손들이 인조무렵에 다시 중건하였다. 호연정의 정자명은 맹자의 ‘호연지기’에서 따와 자연과 더불어 정정 당당한 호연지기를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자를 지었다. 정자의 건축물도 가공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하여 독특한 자연미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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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합천군

    처마의 빗물이 강물에 바로 떨어지는, 합천 함벽루
    함벽루(涵碧樓)는 합천 8경 가운데 제5경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처마의 빗물이 강물에 바로 떨어지는 유일한 누정이 바로 함벽루다. 1321년 고려 후기에 지어진 함벽루는 유수곡의 황강이 내려다보이는 배산 임수의 지형에 지어졌다. 강 건너에서 보면 강물에 떠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되고 경관 좋은 만큼 많은 시문을 남겼다. 함벽루에는 송시열이 쓴 암각문과 영남학파의 두 거두인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시가 나란히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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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합천군

    최치원이 신선되어 하늘로 올라간, 합천 농산정
    합천 농산정(籠山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4대 계곡인 가야산 홍류동 계곡 입구에 있다. 해인사가 있는 곳이다. 농산정의 주인은 최치원이다. 그의 호 고운(孤雲)에서 보듯이 구름 같은 삶을 살았던 그였다. 신라의 골품제 굴레에 갇혀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한 그는 전국을 떠돌며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바로 농산정이다. 이곳에서 세속의 티끌 다 털어내고 홀연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까지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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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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