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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경포대와 승경을 다투던, 강릉 호해정
    강릉 호해정은 경포대와 자웅을 겨루던 정자였다. ‘호해정(湖海亭)’은 말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였다. 옛 선인들은 경포대와 호해정의 호수를 ‘내호’와 ‘외호’라 부르면서 그 승경을 칭송하였다. 관동팔경의 절경을 화첩으로 담은 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도 경포대와 호해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 송림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돛단배 떠있고, 호수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호해정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수가 흙으로 메워져 농경지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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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강릉선교장의 별서, 강릉 방해정
    방해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449(저동 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0호이다. 원래 이 자리는 삼국시대 때 화랑들이 모여 심신을 단련했던 고찰 인월사(印月寺) 터였는데, 1859년(철종 10)에 강릉선교장의 주인인 이봉구(李鳳九)가 선교장의 객사 건물을 뜯어다 지금의 자리에 별서 건물로 지었다. 경포대 가는 길가에 있으며, 정원이 잘 꾸며져 있으며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가옥형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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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고상하고 단아한 명가의 사랑채, 강릉 활래정
    활래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동 운정길 63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조선후기 전형적인 상류 주택인 선교장에 부속된 정자이다. 1816년(순조 16)에 이후가 지었다. 온돌방과 마루가 같이 있는 정자로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활래정이라는 정자명은 ‘맑은 물은 근원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이 만발한 연못 위에 위치한 활래정은 고아하고 단아한 기품을 풍기는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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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담양군

    원림의 으뜸, 담양 소쇄원
    담양 소쇄원은 대한민국 원림의 대명사로 불린다. 소쇄원은 양산보가 스승인 조광조의 죽임을 당하여 세상을 등지고 낙향하여 지내던 곳이다. 1536년에 조성된 소쇄원은 담양 – 광주 지역의 묵객들의 명소였다. 특히 김인후는 「소쇄원 48영」 을 지어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소쇄원을 대표하는 광풍각·제월당은 주위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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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우리나라 3대 민가 정원, 영양 서석지 경정
    영양 서석지는 우리나라 3대 민가 정원으로 불린다. 서석지는 퇴계의 문인이자 정경세의 제자인 정영방이 조성한 연못과 정자를 말한다. ‘경정’ 보다는 ‘서석지’로 더 알려져 있다. 높지 않은 담으로 둘러싸인 서석지 정원에는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은 ‘사우단(四友壇)’과, 사우단을 ‘∪’자로 둘러싼 연못인 서석지, 중심 건물인 ‘경정’과 부속 건물인 ‘주일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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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완도군

    윤선도와 송시열의 엇갈린 운명,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는 1637년 이후 보길도에 부용동 원림인 ‘세연정 – 낙서재 – 동천석실’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 세연정(洗然亭)은 두 곳의 인공 연못 사이에 지은 정자이다. 사람의 손이 더해져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곳이 세연정이다. 대청마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멋진 액자 속의 명화이다. 보길도에는 남인 윤선도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던 서인 송시열의 흔적이 함께 남아있다.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가다 풍랑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보길도였다. 그는 보길도 끝 암벽에 죽음을 예감하듯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새겨놓고 그해 죽었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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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정문부 의병장을 기리는 의정부 충덕사
    충덕사는 임진왜란 의병장 충의공 정문부의 위패와 영정을 배향한 사당이다. 함경도 '북평사'의 직위에 있었던 정문부는 처음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경선전투를 시작으로 길주·장평·쌍포·단천·백탑교 등에서 승리하며 왜병 천여 명의 목을 베어 ‘북관대첩’을 이루었다. 또 여진족까지 토벌하여 국경 6진을 공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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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관북지방의 의병장 정문부
    정문부(鄭文孚, 1565 ~ 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일등 공신 좌찬성 대제학 의병장이다. 최배천, 이붕수, 정현룡, 오응태, 각 진의 수장과 조사들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였다. 왜병들은 관북(함경도)에는 발을 붙이지 못했고, 정문부 장군 명성만 들어도 도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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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무진정 배롱나무에 일렁이는 무욕의 바람
    함안의 으뜸 명물인 무진정(無盡亭)은 서울에서 벼슬을 하던 조삼(趙參)이 용퇴(勇退)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정자다. 원래 사람이 넘쳐나는 큰길가의 거친 언덕이었는데, 그가 용케 알아보고 명승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500년 전부터 많은 사람이 찾아와 즐겼는데, 고을의 공공 행사뿐 아니라 봇짐장수 대회도 열리는 등 귀천과 관계없이 열린 공간이었다. 조삼이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용퇴했기에 후손들이 여기서 호사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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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보성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가 조선 사대부, 서재필과 그의 생가
    서재필(徐載弼, 1866~1951)은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전근대와 근현대 시기를 관통한 인물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조선의 문신이자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 서양 의사라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884년의 갑신정변과 1896년 독립협회 창설의 주역이었던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고문으로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에 헌신하였다. 그가 태어난 전라남도 보성군의 생가는 그의 외가이며, 현재는 1992년부터 조성된 ‘서재필 기념공원’과 함께 2003년 복원된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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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서대문구

    격변의 시기, 조선의 눈을 뜨게 하다. 서재필
    1986년 4월 7일, 서재필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단체인 독립협회가 설립되었다. 연이어 최초의 민간 발행 신문 「독립신문」까지 창간되었다.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민중 계몽이 기필코 필요하다고 생각한 서재필의 결실이 이룬 역사적인 날이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의 발간 의도대로 대중을 계몽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무너지며 조국에서 추방당하면서도 조국의 계몽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조국을 향한 처절한 사랑은 대한민국 역사 위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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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서대문구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염원하며 세운 서울 독립문
    서울 독립문은 독립협회가 자주독립국가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세운 석조문이다. 19세기 말 열강에 의한 이권침탈과 주권침해 압력이 거세지자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다. 이에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 주도하에 국왕의 동의를 얻고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뜻을 모아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 근처에 독립문을 건립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사신을 접대했던 모화관을 고쳐 독립관이라고 이름하고 독립협회의 집회 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부터 중국에 대한 사대의 상징으로 존재했던 영은문과 모화관은 자주독립의 상징들로 변모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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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정씨

연관자료

  • 지역문화 Pick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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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공원 성씨비 (나주정씨,후면비문)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전 >중구

    뿌리공원 성씨비 (나주정씨,후면비문)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인 대전 뿌리공원의 사진이다.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공원시설 등을 갖춘 체험학습 교육장이다. 성씨비에는 각 성씨와 성과 본관, 유래 등을 표기하고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뿌리공원 성씨비 (나주정씨,전면비문)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전 >중구

    뿌리공원 성씨비 (나주정씨,전면비문)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인 대전 뿌리공원의 사진이다.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공원시설 등을 갖춘 체험학습 교육장이다. 성씨비에는 각 성씨와 성과 본관, 유래 등을 표기하고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뿌리공원 성씨비 (나주정씨,우측면)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전 >중구

    뿌리공원 성씨비 (나주정씨,우측면)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인 대전 뿌리공원의 사진이다.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공원시설 등을 갖춘 체험학습 교육장이다. 성씨비에는 각 성씨와 성과 본관, 유래 등을 표기하고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산마루 너머의 약속, 먼마루도당우물대동제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의 ‘먼마루’는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마을 이름으로, 산등성이 위에 자리한 지형에서 비롯된 ‘멧마루’가 변형된 것이라는 설과, 춘의동 당아래에서 바라볼 때 멀리 둥근 산마루처럼 보였던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름 그대로 먼마루는 오래전부터 지형과 시선,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해 온 공간이다. 이 마을에는 예부터 특별한 우물이 하나 있었다. 단순한 식수원이 아니라 마을의 신령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던 이 우물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먼마루 도당 우물대동제’가 열렸다. 이 제의는 마을의 평안과 풍요, 그리고 주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행사로, 현재는 원종동 161-1번지로 자리를 옮겨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의 우물은 오각형 울타리로 둘러싸인 형태로, 2007년에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적 변화에 맞게 변모한 모습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먼마루 우물제는 단순한 무속 의례를 넘어 마을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이다. 주민들은 제기와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어르신들은 옛이야기와 제례의 의미를 전하며, 아이들은 직접 생생하게 제의를 지켜보며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을 몸으로 체험한다. 이 과정 속에서 우물제는 세대를 잇는 살아 있는 배움의 장이 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우물의 물이 마르지 않으면 풍년이 들고 병이 없지만, 우물을 함부로 건드리면 재앙이 따른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은 이 우물이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신령이 깃든 생명의 자리’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먼마루 우물제의 가장 큰 특징은 도당 신앙과 우물 신앙이 결합된 형태에 있다. 도당이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공간이라면, 우물은 생명을 품은 땅의 입구이다. 이 두 신앙이 어우러지며 먼마루 우물제는 마을의 생명력과 공동체적 결속을 상징하는 제의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까지 이 전통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르신들의 기억과 전승 의지, 그리고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다. 노인들은 제사의 순서와 제문을 기억해 전하고, 청년들은 이를 영상과 기록으로 남긴다. 일부 주민들은 우물제를 촬영해 온라인에 공유하며, 전통은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로 공장과 도로, 아파트가 들어선 풍경 속에서도 먼마루 우물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해마다 우물가에 모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 제의를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먼마루 우물제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공동체 회복의 상징이자, 도시 속에서도 끊기지 않는 지역문화의 생명선이다. 먼마루 우물제는 과거의 풍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는 ‘살아 있는 전통’이다. 비록 이름은 오래되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부천의 계절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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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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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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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임실에서 처음 생산된 국산 치즈
    치즈는 소, 염소, 물소, 양 등의 동물의 젖에 들어있는 단백질을 응고시킨 식품이다. 한국에 치즈공장이 대규모로 세워진 것은 신부 지정환씨(본명 디디에세 스테벤스)가 고향인 벨기에에서 치즈 제조법을 배워 돌아온 1967년이다. 임실군의 10여 농가와 같이 국내최초로 산양젖으로 치즈 공장을 만들었으나 1970년대 젖소를 농가에서 많이 사육하면서 우유로 만들게 된다. 1975년 삼양식품과 서울우유협동조합에서 치즈를 만들고 1979년 해태유업에서도 치즈를 만드는 등 오늘날 여러 기업에서 다양하게 치즈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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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구국의 혼 포천의 면암 최익현과 최면식
    포천 구국의 혼 면암의 일생은 고난과 형극의 연속이었다. 오직 대의와 구국의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제주도 위리안치, 절해고도 흑산도 유배, 두 번에 걸친 일본 헌병대 구금, 그리고 대마도 구금 순국 등 난국 때마다 역사의 전면에서 우국충정과 대의로서 저항하였다. 그의 손자 염재 최면식역시 항일 군자금 모금, 광복회 가입, 군자금 수합 등 항일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독립군 조직과 연락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43년 운명하였다. 포천 구국의 혼 최익현과 손자 최면식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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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한말 홍천에서 의거한 대한독립단 도총재 박장호
    박장호(朴長浩, 1859~1922)는 경기도 가평출신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강원도 홍천에서 의거를 하였다. 1910년 주권을 빼앗기자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1919년 만주 유하현에서 대한독립단을 결성하여 도총재를 맡았다. 1921년 7월 일제의 앞잡이 김헌에게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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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와 중국에서 의병장을 지낸 우병렬
    우병렬(禹炳烈, 1856~1929)은 황해도 평산 사람으로 을미사변을 당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평산에서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퇴위 및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활동을 하게 되었다. 평산에서 러시아, 중국으로 가서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1929년 중국 봉천성 흥경현에서 황해도 고향으로 돌아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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