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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언젠가는 실행될 ‘용화산하동범’의 꿈
    『용화산하동범록』과 『용화산하동범록 후서』는 1607년 정구·곽재우·장현광 등 의병장과 지역 명사 35명이 낙동강에서 보낸 이틀간의 기록이다. 이 모임은 단순히 흥을 돋우는 뱃놀이가 아니라, 임진왜란 승전을 자축하고 전란의 고통을 서로 위로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역경을 함께 견뎌낸 끈끈한 운명 공동체였다. 이렇듯 깊은 뜻을 품은 풍류였기에 4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기억은 후손과 지역사회를 통해 전승되고 있다. 낙동강의 수려한 경관과 숭고한 의병 정신을 한데 아우르는 이 뱃놀이를 다시금 재현해 보고 싶다는 꿈,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현실로 구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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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함주지」가 지금껏 살아남은 비결
    『함주지』는 함안군수 정구가 1587년에 이칭·박제인·이정·오운 등 지역인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임진왜란 이전에 편찬된 유일한 읍지다. 430여 년 전 함안의 산천과 사람과 물산이 40개 항목별로 기록돼 있다. 이 책이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이 책을 만든 선인(先人)들에 대한 애정과 정구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특히 사람 이야기가 풍성한 이 책은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창조될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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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한국과 미국의 공존, 부산과 미군의 공존
    하야리아(Hialeah)는 무슨 뜻일까. 미국 인디언 언어로 아름다운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다. 2차대전 당시 유명했던 미국 플로리다주의 하야리아 경마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군이 처음 부산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16일이었다. 해방되고 나서 한 달 후였다.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일부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했다. 미군이 다시 돌아온 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연합군으로 참전한 미군은 서면경마장 자리에 기존 조성했던 주둔 기지를 캠프 하야리아로 명명하고, 군수물자 보급과 후방 기지 지휘 임무를 맡았다. 캠프 하야리아는 이후 반세기 넘게 군사 기능을 위한 독립적 공간으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부산과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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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군정서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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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문경의병장 신태식 유적
    신태식유적은 한말의병기부터 일제강점기 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신태식이 태어나 살았던 집이다. 신태식은 1895년 을미의병기에 의병투쟁을 시작하여 정미의병기에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을 조직하군자금을 모아 서로군정서를 후원하였다. 그가 살던 생가는 의병투쟁중 1907년 9월 일본 경찰에 의해 본가가 불태워진 것을 2017년 복원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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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중국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중국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국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일본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일본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일본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영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영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남 >보성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가 조선 사대부, 서재필과 그의 생가
    서재필(徐載弼, 1866~1951)은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전근대와 근현대 시기를 관통한 인물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조선의 문신이자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 서양 의사라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884년의 갑신정변과 1896년 독립협회 창설의 주역이었던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고문으로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에 헌신하였다. 그가 태어난 전라남도 보성군의 생가는 그의 외가이며, 현재는 1992년부터 조성된 ‘서재필 기념공원’과 함께 2003년 복원된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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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서대문구

    격변의 시기, 조선의 눈을 뜨게 하다. 서재필
    1986년 4월 7일, 서재필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단체인 독립협회가 설립되었다. 연이어 최초의 민간 발행 신문 「독립신문」까지 창간되었다.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민중 계몽이 기필코 필요하다고 생각한 서재필의 결실이 이룬 역사적인 날이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의 발간 의도대로 대중을 계몽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무너지며 조국에서 추방당하면서도 조국의 계몽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조국을 향한 처절한 사랑은 대한민국 역사 위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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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서대문구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염원하며 세운 서울 독립문
    서울 독립문은 독립협회가 자주독립국가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세운 석조문이다. 19세기 말 열강에 의한 이권침탈과 주권침해 압력이 거세지자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다. 이에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 주도하에 국왕의 동의를 얻고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뜻을 모아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 근처에 독립문을 건립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사신을 접대했던 모화관을 고쳐 독립관이라고 이름하고 독립협회의 집회 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부터 중국에 대한 사대의 상징으로 존재했던 영은문과 모화관은 자주독립의 상징들로 변모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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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장승백이의 기억, 부천 삼정동 장승제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에는 과거 ‘장승백이’라 불린 마을이 있었다. ‘백이’는 끝이나 경계를 뜻하는 옛말로,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승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금의 부천IC 인근 신흥동 70~80번지 일대가 그 자리로,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장승 앞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승제를 지냈다. 장승은 외부의 악귀를 막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남녀 한 쌍의 장승이 서 있었고 그 표정은 해학적이었다. 주민들은 장승을 손질하고 새로 세우며 제를 올렸고, 풍물과 나눔이 어우러진 축제를 함께 즐겼다. 장승 근처 논에서 거둔 곡식은 제물로 쓰였으며, 아이들은 장승 주변을 자연스러운 놀이터 삼아 뛰놀았다. 하지만 1980년대 산업화와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장승백이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장승제는 명맥을 이어 오고 있으며, 장승과 관련된 기억 역시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장승은 단순한 나무기둥이 아니라 공동체의 마음을 모으는 기둥이자, 지금도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정신적 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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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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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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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렀던 경기도 의정부
    경기도 북부에는 서울 북쪽의 관문 도시로 알려진 의정부가 있다. 의정부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며, 조선 시대 최고의 행정 기관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정 기관의 명칭이 도시 이름이 된 까닭은 태종 이방원과 그의 아버지였던 태조 이성계와 연관되어 있다. 조선 초 이방원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그러자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났고, 방원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사신을 보낸다. 그러나 크게 화가 났던 태조는 보내는 사신들 모두 죽여버렸다. 이후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돌린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의정부 지역에 머물게 된다. 그때 조정의 대신들이 이곳으로 와서 태조에게 업무를 보고했다고 하여, 이 지역을 ‘의정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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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군마 목장에서 유래된 의정부 녹양동과 군마 목장 녹양평
    경기도 의정부시 최북단에 위치한 녹양동은 조선시대 군마 사육 목장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녹양이란 지명은 『고려사』, 『보한집』, 『조선왕조실록』 등에 등장한다. 군마 목장은 조선왕조 개국 초기인 1406년에 경기도 시흥군에서 녹양동으로 옮겨졌다. 군마 목장이 설치된 이후 태종을 비롯해 여러 임금이 녹양동으로 거둥하여 강무장으로 활용한다. 현재 녹양동에 예전에 군마 목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녹양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말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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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하금오리의 지명 변천과 연주현씨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는 금곡리와 서오리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것으로, 상금오리․중금오리․하금오리로 나뉜다. 하금오리는 6.25 전쟁 이전까지 연주현씨 세거지였다. 하금오리에 소림사를 비롯한 여러 개의 절이 들어서면서 절동네로 이름이 바뀐다. 마을 주민들은 본래의 동명인 하금오리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동네에 꽃을 심고 꽃동네로 홍보하여 현재는 하금오리보다 꽃동네로 널리 알려졌다. 하금오리에서는 음력 10월 1일 산치성을 드리는데,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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