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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이정암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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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왜장 구로다를 무찌른 이정암
    이정암(李廷馣, 1541~1600)은 1561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서 두루 벼슬을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이조참의로 있었다. 이후 의병장이 되어 황해도 연안성에서 왜군 구로다군과 싸워 승리하고, 정유재란 때도 초토사로서 수양산성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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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청양군

    금정도의 중심 금정역
    금정역은 조선시대 충청도 청양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금정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충청남도의 서남부 지방으로 뻗어 있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금정역이 관할하던 역은 모두 9개였다. 1756년 본래의 금정역과 인접한 용곡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기존 용곡역을 금정역이라 명명하면서, 금정역의 위치가 지금의 청양군 화성면 용당리로 옮겨갔다. 금정역은 정약용이 천주교 사건과 관련하여 좌천되면서 찰방으로 근무했던 역이기도 하다. 지금은 조선 후기의 금정역 건물이 사라지고 역터 입구에서 찰방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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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지역대학 연계 지역N문화 맞춤형 콘텐츠] 걸어서 화성속으로
    본 영상은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해 한성대학교·성북문화원·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에서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창작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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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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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정조가 하사품(下賜品)으로 내린 오뉴월 밴댕이 한 두름”
    강화도에는 5월부터 7월 사이에 밴댕이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밴댕이는 이 시기에 산란을 준비하기 때문에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가장 많다. 겨우내 바다 깊은 곳에 있다가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먹이활동을 한다. 바로 이때, 살이 오른 통통한 밴댕이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다가 산란기를 마치면 살도 기름기도 빠져서 맛이 조금 덜하다.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있다. 밴댕이의 맛이 가장 좋은 제철에 대접을 받는 것, 바로 후한 대접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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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전주시

    평생 갓을 쓰고 붓을 든 강암 송성용
    한국 서단의 흐름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 이후 전라도 남쪽은 특히 회화가 발달했고, 전북 지역은 서예와 사군자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전북의 역대 서예가 계보를 보면 조선 중기의 송일중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는 이삼만이 활약하며 지역 서단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 일제강점기에는 조벽하·이정직·송기면 등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고, 근현대에 이르러 시·서·화를 모두 겸비한 ‘시서화 삼절’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 바로 강암 송성룡이다. 강암의 위상은 오늘날에도 여러 사찰과 문화 명소에서 그의 글씨를 쉽게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높다. 대표적으로 경상도의 석굴암과 불국사, 내장산 내장사 일주문, 호남제일문 편액, 한벽당 편액 등이 그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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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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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보성군

    안규홍의병의 의사안공파청승첩비
    의사안공파청승첩비는 안규홍의병장이 처음 의병을 일으켜 승리를 거둔 파청전투를 기념하는 비이다. 안규홍의병장은 머슴 출신으로 정미의병기에 보성을 중심으로 인근 고흥·여수·돌산·곡성·남원·구례·장흥·순창에 이르는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이 비는 1947년 보성향교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다가 순국한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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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정문부 의병장을 기리는 의정부 충덕사
    충덕사는 임진왜란 의병장 충의공 정문부의 위패와 영정을 배향한 사당이다. 함경도 '북평사'의 직위에 있었던 정문부는 처음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경선전투를 시작으로 길주·장평·쌍포·단천·백탑교 등에서 승리하며 왜병 천여 명의 목을 베어 ‘북관대첩’을 이루었다. 또 여진족까지 토벌하여 국경 6진을 공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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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관북지방의 의병장 정문부
    정문부(鄭文孚, 1565 ~ 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일등 공신 좌찬성 대제학 의병장이다. 최배천, 이붕수, 정현룡, 오응태, 각 진의 수장과 조사들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였다. 왜병들은 관북(함경도)에는 발을 붙이지 못했고, 정문부 장군 명성만 들어도 도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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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고종의 끝사랑, 대장동과 엄비 이야기
    철종 4년(1854년) 2월, 한성부 서소문(현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에서 태어난 엄비는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입궁하였다. 이후 왕비가 거처하던 내전에 소속된 상궁이 되어, 중전이었던 민비(閔妃)를 가까이에서 모시다가 고종의 승은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질투로 인해 1885년 궁궐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 궁을 떠나 생활하게 된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엄비는 곧바로 고종의 부름을 받아 다시 입궁하였다. 이후 1911년 사망할 때까지 고종을 최측근에서 모시며 생을 마쳤다. 그러나 엄비가 궁궐에서 쫓겨났던 1885년부터 재입궁하기 전인 1895년까지 약 10년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명확하게 전해지는 기록이 거의 없다. 다만 이 시기 동안 엄비가 당시 부평부 주화곶면 대장리에서 거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은 엄비의 일생을 되짚는 동시에, 궁에서 쫓겨났던 10년의 시간과 주화곶면 대장리와의 연관성을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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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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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성주군

    박이현 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충신문
    충신문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공을 세운 박이현과 이괄의 난 때 순절한 박영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각이다. 박이현은 김면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성주에서 활약하였고, 박영서는 창성부사로 이괄의 난 때 장만의 선봉장으로 참전하였다가 순절하였다. 정부에서 1625년에 정려를 내리고 세운 정려각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어 두 부자의 충절을 선양하는 역사적·교육적 자료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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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울주군

    정려각에 얽힌 열녀와 호랑이의 우정
    조선 초 신녕현감 유혜지가 세상을 뜨자 그의 부인 정씨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정씨의 친정에서는 재혼을 권하였지만 정씨가 거부하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짓 소식을 전하여 친정으로 오게 하였다. 정씨가 친정에 갔다가 거짓말인 것을 알고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가게 되었다. 그 후 정씨는 남편의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매일 밤 호랑이가 찾아와 정씨를 보호해주었다. 어느 날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구해달라는 꿈을 꾸고 정씨가 호랑이를 구해주었다. 삼년상을 마치자 무덤이 열렸고 정씨가 들어가 남편 옆에 누우니 무덤이 다시 닫혔다. 사흘 뒤 호랑이도 정씨를 따라 죽었고 가족들은 호랑이를 거두어 묻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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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장수군

    성인 육십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었다는 육십령 옛길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에 자리한 육십령은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이어주는 주요한 교통로 구실을 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호남지방으로 넘어오는 진격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넘던 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통되었고, 지금은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육십령 터널이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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