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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정조가 광릉을 참배할 때 통과하던 축석령길
    경기도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에 있는 축석령은 오래전부터 한양에서 강원도 철원을 지나 함경도로 이어지던 조선시대의 간선로에 포함된 구간이다. 금강산을 유람하는 사람, 변방으로 귀양 가는 사람들이 넘던 고갯길이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은 남양주시에 있는 광릉을 참배하러 다니던 능행길에 축석령을 통과하기도 했다. 한양으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까닭에 동학혁명 때에는 일본군과 의병 사이의 전투가 있었고, 6·25전쟁 때에는 한국군과 적군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곳이 축석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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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시흥시

    중림도의 중심 중림역
    중림역은 조선 시대에 한양에서 인천으로 연결되는 역로인 중림도를 관할하던 중심역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서 금곡도에 속했다가, 1413년에 경기도와 황해도의 역을 정비하면서 중림도에 편제되었다. 중림역은 찰방역 이었음에도 한양 주변의 다른 찰방역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았다. 중림역은 조선 시대에 한양에서 인천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당시에는 역촌도 꽤 번창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소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역 터가 사라져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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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군정서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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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문경의병장 신태식 유적
    신태식유적은 한말의병기부터 일제강점기 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신태식이 태어나 살았던 집이다. 신태식은 1895년 을미의병기에 의병투쟁을 시작하여 정미의병기에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을 조직하군자금을 모아 서로군정서를 후원하였다. 그가 살던 생가는 의병투쟁중 1907년 9월 일본 경찰에 의해 본가가 불태워진 것을 2017년 복원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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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강서구

    ‘겸재정선미술관’, 우리의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에 빠지다
    겸재정선미술관은 강서구에 위치한 구립미술관으로, 2008년에 문을 열었다. 겸재정선미술관이 들어선 이곳은 궁산 아래, 겸재정선이 65세에 현령으로 부임한 양천현 관아가 있던 자리다. 5년 동안 양천현에 머문 인연으로, 겸재 정선의 작품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진경산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세워졌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겸재정선의 일대기와 작품을 볼 수 있는 ‘겸재정선기념실’과 ‘원화전시실’이 위치한다. 3층에서는 조선시대 양천현의 모습을 작게 재현해 놓은 모형을 감상하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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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강서구

    이태백의 시문을 따서 지은, 서울 이수정
    이수정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염창동 103번지 도당산(都堂山) 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옛날에 이곳은 양천현 지역으로, 원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임정(林亭)이 있었다. 후에 그의 후손 한산군(韓山君) 이덕연(李德演)과 그의 아우 이덕형(李德泂)이 이수정(二水亭)이라는 이름으로 정자를 다시 지었다. 이수정은 이태백(李太白)의 시 ‘이수는 백로주를 끼고 둘로 나뉘었다[二水中分白鷺洲]’라는 구절에서 정자명을 취하였다. 현재 그 터에 표석만이 남아 있는데, 정선이 그린 「이수정도(二水亭圖)」를 통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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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정선의 그림에 보이는 태고적 고요함이 깃든, 서울 태고정
    태고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52-8번지, 지금의 청운초등학교 뒤편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청풍계라 불리던 골짜기로 19세기 세도정치의 상징 안동김씨들의 세거지가 있었던 곳이다. 1608년(선조 41)에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상용이 자신의 집에 지은 정자이다. 정자명은 ‘산이 고요하니 태고(太古)와 같다.’라는 중국 북송대 문인 당경의 시귀에서 따왔다. 당시 한양 도성 내의 산천 중 으뜸인 명소로 꼽히었다. 정선이 장동에서 자라 이곳의 명소를 그림으로 남겨 놓았는데, 태고정도 정선의 그림을 통해 그 모습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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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시기 등 우리 민족이 위기와 고난에 처해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어려웠을 때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켰다. 간송이 지켜낸 문화유산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형필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립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만들어 어렵게 모은 문화재를 간직했다. 등록문화재 제 521호인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은 그의 민족혼이 배어있는 집이다. 간송이 생전에 머물렀던 가옥으로는 현재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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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단종 복위에 힘쓰다. 사육신 성삼문
    성삼문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조선시대 문인이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뽑혀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성삼문은 조선시대 충절을 지킨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사람이다. 1454년(단종 2) 아버지 성승,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밀고에 의해 발각되어 군기감 앞에서 온몸이 찢기는 최대의 형벌인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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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서천군

    사육신 이개, 죽음 앞에서도 태연하게 시를 읊다
    이개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출신의 조선전기 문신이다. 1441년(세종 23) 집현전 저작랑으로서 당나라 명황(明皇)의 사적을 적은 《명황계감(明皇誡鑑)》의 편찬과 훈민정음 창제에도 참여하였다. 이개는 단종 복위 사건을 도모하다 숨을 거둔 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성원·유응부와 함께 사육신으로 불린다. 이개는 끔찍한 거열형을 앞두고도 태연하게 시를 읊으며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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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이인좌의 난을 막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제주도 오흥태비
    제주도 서귀포시 난산리에는 이인좌의 난을 막기 위해 의병을 모집하여 국가에 대한 충의를 지키고자 한 오흥태를 표창하고 세운 비석이 있다. 1728년 이인좌, 정희량 등이 역모를 일으켜 나라를 위협하자 오흥태는 의병을 모집하자는 글을 지어 제주도 모든 고을에 전달하였다. 의병이 출발하기 전에 역모가 진압되어 실질적인 공을 세우지 못했지만, 제주목사 심낙수가 그의 의로운 행적을 조정에 보고하여 사후에 표창을 받았다. 비석에는 오흥태의 행적, 표창 과정 등이 상세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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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울주군

    어머니의 열녀비와 아들의 효자비가 함께 있는 울산 언양 양세정려각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곡리에는 열녀비와 효자비가 함께 보관되어 있는 양세정려각이 있다. 어머니 파평윤씨의 열녀 파평윤씨 정려비와 아들 장계룡의 효자 장계룡 정려비가 함께 보존되어 있는 비각이다. 파평윤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 눈이 멀게 되었다. 아들 장계룡이 어머니의 눈이 뜨이기를 10년 동안 지성으로 빌자 마침내 파평윤씨가 눈을 뜨게 되었고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각이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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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남원시

    의병을 일으킨 양씨부자를 기리는 전북 남원 부자충의문과 양대박 정려비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는 양대박과 양경우 부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부자충의문(梁大撲父子忠義門)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대박은 남원에서 의병을 모아 고경명과 합세하여 운암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후 양대박은 진산을 지키다 세상을 떠났고, 양경우는 군량미 7천석을 모아 명나라 군대를 지원한 공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796년 양대박과 양경우 부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정려각과 비석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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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장승백이의 기억, 부천 삼정동 장승제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에는 과거 ‘장승백이’라 불린 마을이 있었다. ‘백이’는 끝이나 경계를 뜻하는 옛말로,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승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금의 부천IC 인근 신흥동 70~80번지 일대가 그 자리로,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장승 앞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승제를 지냈다. 장승은 외부의 악귀를 막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남녀 한 쌍의 장승이 서 있었고 그 표정은 해학적이었다. 주민들은 장승을 손질하고 새로 세우며 제를 올렸고, 풍물과 나눔이 어우러진 축제를 함께 즐겼다. 장승 근처 논에서 거둔 곡식은 제물로 쓰였으며, 아이들은 장승 주변을 자연스러운 놀이터 삼아 뛰놀았다. 하지만 1980년대 산업화와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장승백이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장승제는 명맥을 이어 오고 있으며, 장승과 관련된 기억 역시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장승은 단순한 나무기둥이 아니라 공동체의 마음을 모으는 기둥이자, 지금도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정신적 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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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의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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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우리 고유의 의복의 변형시킨 변복령
    1895년 3월 공사 예복을 개정하여 답호의 착용을 금하였고 입궐 때에만 사모·목화·사대를 착용케 하였으며 또한 관민이 다 같이 흑색의 두루마기를 입도록 하였다. 이러한 을미변복령은 의병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전통적인 의복제도를 문화적 긍지의 한 척도로 인식하고 있던 수구적 지식인들은 변복령 반포를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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