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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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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도를 펼친 유학자, 공자
    공자는 노나라에서 숙량흘과 안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주왕조의 몰락이 점차 가속화되고 12개의 제후국들이 패권 다툼을 벌이던 시기로, 반란이 끊이지 않던 혼란기였다. 이런 때에 공자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모델을 주나라로 삼아 현실에 구현하려 했다. 인과 예를 중시하고, 13년간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세상에 도를 펼쳤으나,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말년에는 노나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시경』과 『서경』, 『춘추』, 『대역전』 등 유교의 기본이 되는 경전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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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문의 번영을 이끈 재산가, 단목사
    단목사는 춘추 시대 위(衛)나라 사람으로 성은 단목(端木)이고, 이름은 사(賜)며, 자가 자공이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재아(宰我)와 더불어 언변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언변으로 외교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단목사는 이재가(理財家)로서도 알려져 수천 금(金)의 재산을 모았다. 공문(孔門)의 번영은 그의 경제적 원조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거부열전에 비견되는 『화식열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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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춘추'를 후세에 전한 복상
    복상(卜商)은 자를 자하(子夏)라 했고, 공자보다 44년 아래였다. 진(晋)나라 온(温, 지금의 허난성 온현) 사람으로 공자의 수제자인 공문십철로 꼽혔다. 공자가 이야기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자공이 “사(師, 자장)와 상(商, 복상) 누가 더 뛰어납니까?”라느 물음에 대한 답으로 나왔다. “자장은 지나치고, 복상은 미치지 못한다.”면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이나 같다.”라고 했다. 복상은 내면보다 객관적 형식인 예를 중시했고, 공자의 『춘추』를 비롯한 유교 경전을 후세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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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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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강동구

    베트남 참전자들이 만든 에너지생태마을, 십자성마을
    베트남 종전 후 부상을 입고 돌아온 군인들이 파월전상자 자립회를 만들고 기금을 마련하여 1974년 천호동에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후 십자성마을은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에 동참하여 2012년부터 에너지 자립마을로 변신했다. 주택 태양광을 설치, 환경운동과 에너지절감을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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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싸우다, 서일
    서일은 일제강점기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다. 그는 어려서부터 민족교육을 받으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고민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교육에 매진하였으나, 1910년 국권피탈 후 만주로 망명한 후에는 중광단을 조직하여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가 이끌었던 대한군정서는 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후 벌어진 자유시참변 등으로 청년들이 희생되자 그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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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김좌진은 1889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김좌진은 어렸을 때부터 기질이 호방하여 친구들과 병정놀이를 즐기고, 『삼국지』 등 영웅호걸이 등장하는 책을 즐겨 읽었다. 김좌진은 대한제국무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독립을 위한 전쟁에 대비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군사학을 공부하였다. 김좌진은 만주로 망명한 후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좌진은 신민부, 한족총연합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해 힘쓰다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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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상설은 1870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우 총명하여 27살의 나이에 성균관 교수 겸 관장이 되었다. 또 세간의 흐름에 맞춰 신학문 또한 수학하였다. 이상설은 관직에서 항일을 위한 뜻을 밝혀왔으나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직하고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그는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으나 회의에 참석하는 것에는 실패하였다. 그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대한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연해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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