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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한말 부자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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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한말의 부자의병장 정환직
    정환직(鄭煥直, 1844~1907)은 경상북도 영천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아들 정용기와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1907년 전사했다. 그가 의병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고종황제의 밀조가 있었다.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와 함께 거의를 의논하여 자신은 의병을 후원하기로 하고 아들을 영천에 내려보내 거의토록 하였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병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나 영천일군수비대의 급습을 받고 영천으로 압송되어 6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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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부평구

    미군부대 자리에 있었던 의문의 지하공간 ⓶
    최근까지 부평에 남아있었던 미군기지 캠프마켓. 바로 옆에는 부영공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며 일상 속 휴식처가 되고 있다. 공원이지만 다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형태이다. 곳곳에는 군부대 연병장과 사열대의 흔적, 군용차량을 보호하는 ‘ㄷ’자 형태의 진지도 남아있다. 애스컴시티 당시에 부대 이름은 캠프헤이즈(Camp Hayes). 애스컴시티가 해체되며 떠난 자리에는 한국군 600수송대대(경자동차대대)가 주둔했었다. 이후 부영공원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곳에 길이 300미터가 넘는 의문의 지하시설이 있다는 것이 비교적 최근에서야 확인되었다. 도대체 무슨 역사가 숨겨져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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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부평구

    미군부대와 한국군부대를 연결하는 철길이 왜 있지
    부평에는 생각보다 군부대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남아있었던 미군 캠프마켓과 국군의 제3보급단을 연결하는 철길이 부평 도심 한가운데 있다. 두 부대 사이에 거리는 도보로 10분 정도거리이다. 왜 기찻길이 존재하는 걸까. 물자를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군 부대의 수송을 위해 미군 부대 내에 철길을 깔아서 부평역까지 연결한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그 이유를 지난 2021년 제3보급단 내부에 있는 부평지하호 콘텐츠 조사 사업을 하면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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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칠백의병의 의로운 죽음, 조헌 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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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임란의병장 고경명선생 비
    고경명선생비는 고경명의병장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는 비로, 비가 자리한 이곳은 그가 왜적과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1656년 금산군수 여필관이 비문을 짓고 그가 전사한 건너편 산기슭에 비를 세웠는데, 1940년 일제 경찰의 만행으로 파괴되었다가 1952년 후손들이 여필관의 비문을 다시 새겨 복원하였고 1962년 석조비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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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스님이 총칼을 들고 나섰다 영규
    영규(靈圭, ? ~ 1592)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청주전투에서 승리하여 선조는 영규의 승전을 듣고 영규에게 당상의 벼슬과 옷을 하사했지만 영규는 그 전에 금산전투에서 전사했다. 영규는 임진왜란의 최초 승병으로 전국 곳곳에서 스님들이 총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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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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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진천군

    한봉수의병장의 항일의거비
    한봉수의병장 항일의거비는 한봉수의병장이 이끄는 의병들이 모래재에서 우편물을 호위하는 일본군 2명을 공격하여 사살하고 총기·탄약·현금을 노획한 곳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그는 의병항쟁 당시 무적장군, 번개대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전의, 옥천, 평택, 여주, 횡성, 문경 등지에서 활약했는데 33번의 공격동안 1번 패한 전과를 거둔 명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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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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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넋 위령비가 있는 동네의 동산동물병원
    동산동물병원은 여연수가 1962년에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에 개업한 동물병원이다. 여연수는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1950년 6·25전쟁으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가 인천에 정착하였다. 공공수의사였던 여연수는 동물 진료를 위해 인천의 많은 섬들을 다녔다. 2010년 여연수가 병환으로 병원을 꾸릴 수 없게 되자 아들인 여성진이 병원을 이어받았다. 여성진은 원래는 불문학 전공으로 수의사를 하고 싶지 않았으나 성장 환경의 영향으로 수의사 과정을 밟았고, 대를 이어 아버지의 동물병원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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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서 받은 것은 사회로, 영제한의원
    영제한의원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한의원이다. 노학영은 일제강점기에 무의도로 피난을 하면서 생계를 잇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하였다. 광복 이전부터 노학영은 한의원을 개업했고, 그 의술은 일본 관료에게 소문이 났다. 그럼에도 영제한의원은 1945년 광복이 된 때를 공식 개업 연도로 하고 있다. 노학영은 광복 후 숭의동 현재의 자리에 가게를 열고 상호는 ‘영제침료원’이라 하였다. 1978년 노학영을 이어 노두식은 영제한의원을 운영하였고, 2010년 노두식의 아들인 노승조가 영제한의원에 합류하여 노두식과 같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3대에 걸쳐 한의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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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진골목의 소중한 문화유산, 정소아과
    정소아과는 정필수가 1947년 현재의 위치에 개업한 소아과 병원이다. 정필수는 정소아과를 개업하고, 62년 동안 진료를 하다가 2009년 건강상의 이유로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2017년 정필수가 사망하고, 2018년 정필수의 아들인 정진오가 다시 병원문을 열었다. 정진오는 부친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병원 건물과 간판을 그대로 보존하였고, 정소아과는 대구 진골목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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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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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병아리값으로 팔고 황소값으로 산 내 땅
    미군 부대 주둔 당시에 사유지 수용과 관련한 주민들과 당국자들 간의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국가사업이므로 주민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땅을 헐값에 빼앗기다시피 수용당했지만, 미군 철수 후에 필요한 땅을 다시 불하받을 때는 몇 배 오른 값을 주고 구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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