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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안성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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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의병장 홍계남장군 고루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그의 옛 싸움터인 목촌의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홍계남장군이 전사한지 140여 년 만에 그의 고향인 안성주민들이 장군의 공을 잊지 못하여 돌을 다듬어 그가 싸우던 지역에 비석을 세우고 그 공적을 기록한 것이 고루비이다. 옛날에 진대가 있던 자리에 비를 세웠다 하여 고루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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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안성에서 활약한 의병장 홍계남
    홍계남(洪季男)은 1590년(선조 23) 통신사 군관으로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일행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1591년에 돌아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홍언수와 함께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활동하면서 전공을 세워 첨지로 승진하였다. 홍언수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홍언수를 대신하여 의병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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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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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화순의 의병장 최경회
    최경회(崔慶會, 1532∼1593)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면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다. 전라도 화순에서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나 진주성 싸움에서 패했다. 그래서 최경회는 김천일, 고종후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북쪽을 향해 4배를 한 후 인장과 병부를 가슴에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결국, 최경회와 문홍헌을 비롯한 동향의 의병들은 죽음을 함께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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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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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중구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한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경상좌도의 병마절도사가 머물던 성으로, 조선 1417년(태종 17)에 쌓은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의 성이다. 석축성으로 둘레는 2,120m에 달한다. 초기에는 성벽 위에서 담처럼 생겨 몸을 숨긴 채 총이나 활을 쏘는 시설인 여장을 비롯한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 그 후 세종 때에 이르러 국방력 강화를 위해 성을 보호하고 공격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옹성·적대·해자 등 여러 방어시설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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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이천시

    이천의병 전투지 백현
    백현은 1896년 1월 18일 이천의병이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곳이다. 이천의병은 1896년 1월 1000여명의 의병을 규합해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며 백현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격돌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일본군 180명을 거의 전멸시키는 대승리를 거뒀다. 이것은 전기의병사상 최초로 거둔 대규모 승전의 의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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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임진왜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지키다,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위치한 중앙공원에는 중봉(重峯) 조헌(趙憲) 전장기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은 왜적의 침입으로 함락되었다. 하지만 이튿날 중봉 조헌 선생을 필두로 영규대사(靈圭大師)와 박춘무(朴春茂)가 이끄는 의병이 합심하여 수복하였다. 조헌 선생은 이에 그치지 않고 금산에서 왜적과 재차 싸웠지만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조헌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36년인 1710년 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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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산신이 도운 의병장 박춘무
    박춘무(朴春茂, 1544 - 1611)는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토정 이지함의 제자이면서 침구술에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했으며, 이때 “전진(戰陣)에서 용기가 없는 것은 효가 아니다.”라고 병사들에게 훈계를 하여 충과 효를 전장에 활용했다. 또한 산신이 도와 우물을 주어 포위를 풀고 나왔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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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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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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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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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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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의령군

    홍의장군 곽재우
    곽재우(1552~1617)는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고, 왜군의 호남진출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들고 붉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녀 홍의장군으로 불렸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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