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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사랑으로 독립운동을 실천한 산돌 손양원
    산돌 손양원 목사는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했고,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무릎 꿇지 않고 감옥행을 택한 것도 사랑의 힘이었다. 두 자식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것과,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가 결국 북한군에게 죽임을 당한 것도 사랑이 원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하기 어려운 사랑을 가슴에 품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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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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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상주의 의병장 이봉
    이봉(李逢)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이었다. 조헌과 정경세 등과 의병을 규합하여 험준한 요지에 진을 치고 적군의 후방을 교란하여 물리쳤다. 그는 서울 수복 이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왕명으로 상경하여 1595년 사헌부감찰에 발탁, 이듬해는 옥천군수로 나아가 부호들의 창곡(倉穀)을 풀어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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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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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중랑구

    대한제국군 기병대 의병장 신창현
    신창현은 서울 출신으로 대한제국 군인이었다가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김봉기·조인환·민긍호 의병진에 참여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신창현은 해산당한 군인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교전하며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1908년 체포되어 경성고소원에서 종신 유형을 받고 고초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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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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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원, 형제가 함께 순절(殉節)하여 우국충정의 정신으로 길이 남다.
    이시원(李是遠)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자직(子直), 호는 사기(沙磯), 시호 충정(忠貞)이다. 19세기 조선의 문신으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양명학을 계승하였다. 1815년 27세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에 제수되었다. 이후 사간원정언, 태천현감, 홍문관 교리 등 내외직을 두루 거치면서 중앙관료로서의 경험과 자질을 쌓았다. 1883년 특명으로 경기암행어사가 되어 성실하고 엄정하게 직무를 수행함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1864년(고종 1) 사헌, 좌참찬, 예조판서, 이조판서,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등 요직을 지냈다. 50여 년간의 관료생활을 마치고, 노년의 삶을 향리(鄕里)의 전원에서 보내던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아우 이지원과 함께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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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프랑스군에게 패배를 안긴 강화 삼랑성
    삼랑성은 경기도 강화도의 남쪽 옛 하도면, 즉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해발 231m의 정족산에 있다. 길상산의 북쪽, 마니산의 동북동, 강화부의 30~35리에 있으며 3개의 봉우리가 솥발처럼 서로 맞서서 대치한 형세여서 생긴 이름이 정족산성이라 한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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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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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해남군

    호남의병 전투지 대흥사 심적암 터
    대흥사의 심적암은 1909년 7월 황준성·황두일·추기엽 등이 이끄는 의병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한 곳으로 호남의병의 최후의 격전지이다. 황준성은 대한제국 군대의 참령으로 추기엽·황두일 등과 함께 의병 150여명을 모집하여 총으로 무장하고 완도·해남 일대에서 활약하다 1910년 4월 22일에 대구 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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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잡화상을 하던 청년의병장 최산흥
    최산흥은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잡화상을 하다가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켜 이경춘의병장과 이석용의병장, 양윤숙의병장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최산흥은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임실·남원·진안·용담·순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친일 밀정을 처단하였으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후 체포된 최산흥은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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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와 의병을 일으킨 진치언
    진치언은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진재평이라고도 하며 한말 후기의병기에 의병을 일으켜 김경관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9년 동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후 주로 소규모의 의병을 이끌고 순창군 유등면·오산면·적성면·인화면 일대에서 의병군자금을 모금하는 활약을 펼쳤다. 정부에서는 진치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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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의진의 3대 대첩을 이끈 정기찬
    정기찬은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일제가 고종황제를 강제퇴위시키고 구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국권침탈이 심화되자 안규홍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전라남도 보성·순천 일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보성의진의 3대 대첩인 파청대첩·진산대첩·원봉대첩에서 큰 공을 세우고 활약하다 1909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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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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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춘천의병 전투지 보납산
    보납산은 강원도 춘천시와 경기도 가평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다. 1896년 1월 18일 새벽 봉기한 춘천의병은 2월 3일 보납산을 사이에 두고 관군과 맞닥뜨린 춘천의병은 관군의 우수한 화력에 맞서 대등하게 싸웠으나 비 때문에 화승총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차츰 열세에 몰리게 되어 끝내 패하여 후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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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 한말의병장 이소응
    이소응(李昭應, 1861~1928)은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큰 학자이며 춘천에서 창의한 한말의병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전보를 올렸던 인물이다.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이 1915년에 사망하자 그의 유고를 모아 편찬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그의 스승 유중교의 문집을 정리해서 간행했다. 이소응은 1930년 79세의 나이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요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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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병 류홍석의병장 생가터
    가정리 황골은 정미의병기 춘천의병을 이끈 대표적인 의병장인 류홍석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다. 류홍석은 일찍이 1895년 왜적에 의하여 국모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류인석 의병부대에 참여한 바 있다. 정미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나자 류홍석은 춘천에서 의병을 다시 일으킬 것을 모의하고, 가정리 황골에서 격문을 발표하고 후기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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