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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안동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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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안동의 의병장 김해
    김해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그는 안동의 유명한 선비 퇴계 이황에게서 사사 받은 유능한 학자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안, 예천, 문경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안동에서도 계속해서 분전했다. 의병을 이끌고 경상 좌도의 곳곳을 동분서주하며 왜군을 토벌하던 김해는 6월 19일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경주 진중에서 순국하니 향년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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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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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진주성을 찾은 한말의병장 노응규
    노응규(盧應奎, 1861~1907)는 한말의병장으로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안의에서 거의를 하게 된다. 이후 정한용 진주의병장과 힘을 모아 진주성을 되찾고, 영호남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1907년 핵심 의병진들이 충청북도 경무서 황간분견소 순검들에게 일시에 체포되면서 의병진은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그는 옥중에서도 하거하다 경성감옥소에서 고문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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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찬의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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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주시

    군대해산이후 창의좌군장으로 의병을 일으킨 정용대
    정용대는 대한제국 군대의 정교로 활동하다 한말 후기 의병기에 해산당한 군인들을 모아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8년 2월 일제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자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창의좌군장에 올라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정용대는 일본 헌병대 및 경찰과 교전을 벌이는 한편 각지로 다니며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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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문을 열어 의병을 구출한 강기동
    강기동은 서울 출신으로 헌병보조원으로 일하다 체포된 의병들을 탈출시키고 의병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그는 한말 후기 의병인 정미의병기에 주로 양주, 포천 등의 경기도 동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였고, 이은찬의 창의원수부나 연기우·전성서 등과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강점 이후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북간도로 이동하던 중 체포되어 서울 용산 일본군영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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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명사수 한봉수의병장 유적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학평리에는 한말의병장이자 3.1운동도 주도했던 항일지사 한봉수의병장의 유적지가 있다. 그는 의병항쟁 당시 무적장군, 번개대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전의, 옥천, 평택, 여주, 횡성, 문경 등지에서 활약했는데 33번의 공격동안 1번 패한 전과를 거둔 명사수였다고 한다. 한봉수는 1919년 3.1운동 때에도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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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한말 원주에서 창의한 의병장 이춘영
    이춘영(李春永, 1869~1896)은 조선말의 의병장으로 양평의 지평 출신이다. 화서학파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가 단발령과 을미사변 등의 참상을 보면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지평감역으로 있는 맹영재와 같이 거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고종32년(1895)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모아 활약하다 충주전투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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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및 충청일대에서 활약을 펼친 한말의병장 민긍호
    민긍호는 1897년 진위대에 입대해 군인이 되었다. 이후 정미조약으로 인해 1907년 군대 해산 후 원주에서 원주진위대를 꾸려 의거하였다.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에서 유격전을 펼치는 등 여러 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긍호부대는 전투력이 막강하였으나, 1908년 2월 29일 일본군과 강림촌에서 격전 끝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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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의 한말의병장 윤기영
    윤기영(尹起榮, 1856~1907)은 원주 호저면 무장리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관리로 있다가 동학에도 가담했다. 단발령 이후 원주 이강년 의진에서 중군장을 맡아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7년 강릉 연곡역에서 적의 기습을 받아 부상을 당했는데 적이 체포하려 하자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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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이 불분명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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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직‧정용기의병장의 생가터, 충효재
    충효재는 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산남의진 정환직의병장과 그 아들인 정용기의병장 부자의 충효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3년 건립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가 조직한 의병부대이다. 1907년 9월초 정용기가 입암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자 정환직이 의병장을 이어 항전하였으나 그 역시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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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孔山)에서 의병을 일으킨 박연백
    박연백(朴淵伯)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태어났고, 자는 응구(應九), 호는 암재(巖齋)이다. 그는 1905년에 체결된 을사늑약 이후 공산(孔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 의병투쟁을 시작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기에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정용기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연합작전을 벌였고, 이후 경상북도 의성·청송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정부에서는 박연백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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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경상도 의병장 이하현
    이하현(李夏玄, 1874~1917)은 경상북도 영양출신으로 다른 이름은 이현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양 등지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장이 된 이하현은 의병들을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훈련시킨 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전투에서 이하현은 독립 의진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고,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寧海) 성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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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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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군 기병대 의병장 신창현
    신창현은 서울 출신으로 대한제국 군인이었다가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김봉기·조인환·민긍호 의병진에 참여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신창현은 해산당한 군인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교전하며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1908년 체포되어 경성고소원에서 종신 유형을 받고 고초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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