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한말 부자의병장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한말의 부자의병장 정환직
    정환직(鄭煥直, 1844~1907)은 경상북도 영천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아들 정용기와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1907년 전사했다. 그가 의병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고종황제의 밀조가 있었다.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와 함께 거의를 의논하여 자신은 의병을 후원하기로 하고 아들을 영천에 내려보내 거의토록 하였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병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나 영천일군수비대의 급습을 받고 영천으로 압송되어 6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의병항쟁 추모탑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충남 >당진시

    소난지도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총
    서해안 당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소난지도는 1908년 3월 15일 소난지도의병 100여명이 순국한 곳이다. 1908년 정미의병기에 들어서는 홍원식이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소난지도의병을 결성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3월 15명으로 구성된 일본경찰이 소난지도를 공격하여 의병 100여 명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되어 소난지도의병은 전멸된 것으로 보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서울 의병장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서울 >중랑구

    대한제국군 기병대 의병장 신창현
    신창현은 서울 출신으로 대한제국 군인이었다가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김봉기·조인환·민긍호 의병진에 참여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신창현은 해산당한 군인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교전하며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1908년 체포되어 경성고소원에서 종신 유형을 받고 고초를 치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조헌의병장의 표충사
    표충사는 조헌의병장의 묘 아래쪽으로 영모재와 함께 있는 사당으로 조헌의병장 순절 후 1608년에 처음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세워 이듬해 조정에서 편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진천군

    진천군민이 기억하고 기린 구한말 의병장, 진천 한봉수 의거비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는 한봉수 의거비가 세워져 있다. 한봉수는 1910년 일제 강점기에 항일 투쟁 운동을 벌인 의병장이다. 번개장군이라 불릴 정도로 신출귀몰한 용병술로 일본군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1919년에는 괴산과 청주 일원에서 3·1 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한봉수 의거비는 한봉수 의병장이 일본 헌병을 사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진천군민이 힘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의병들의 칠백의총
    금산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선생과 의승장 영규대사가 이끄는 칠백여 명의 의병이 조국강토를 지키기 위해 만오천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그들의 유해를 함께 모셔놓은 곳이다. 조헌의병장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 등이 금산전투가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그 후 1647년에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오래된 병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3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인천 >동구

    동물 넋 위령비가 있는 동네의 동산동물병원
    동산동물병원은 여연수가 1962년에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에 개업한 동물병원이다. 여연수는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1950년 6·25전쟁으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가 인천에 정착하였다. 공공수의사였던 여연수는 동물 진료를 위해 인천의 많은 섬들을 다녔다. 2010년 여연수가 병환으로 병원을 꾸릴 수 없게 되자 아들인 여성진이 병원을 이어받았다. 여성진은 원래는 불문학 전공으로 수의사를 하고 싶지 않았으나 성장 환경의 영향으로 수의사 과정을 밟았고, 대를 이어 아버지의 동물병원을 지키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인천 >미추홀구

    사회에서 받은 것은 사회로, 영제한의원
    영제한의원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한의원이다. 노학영은 일제강점기에 무의도로 피난을 하면서 생계를 잇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하였다. 광복 이전부터 노학영은 한의원을 개업했고, 그 의술은 일본 관료에게 소문이 났다. 그럼에도 영제한의원은 1945년 광복이 된 때를 공식 개업 연도로 하고 있다. 노학영은 광복 후 숭의동 현재의 자리에 가게를 열고 상호는 ‘영제침료원’이라 하였다. 1978년 노학영을 이어 노두식은 영제한의원을 운영하였고, 2010년 노두식의 아들인 노승조가 영제한의원에 합류하여 노두식과 같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3대에 걸쳐 한의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대구 >중구

    대구 진골목의 소중한 문화유산, 정소아과
    정소아과는 정필수가 1947년 현재의 위치에 개업한 소아과 병원이다. 정필수는 정소아과를 개업하고, 62년 동안 진료를 하다가 2009년 건강상의 이유로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2017년 정필수가 사망하고, 2018년 정필수의 아들인 정진오가 다시 병원문을 열었다. 정진오는 부친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병원 건물과 간판을 그대로 보존하였고, 정소아과는 대구 진골목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이시원, 형제가 함께 순절(殉節)하여 우국충정의 정신으로 길이 남다.
    이시원(李是遠)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자직(子直), 호는 사기(沙磯), 시호 충정(忠貞)이다. 19세기 조선의 문신으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양명학을 계승하였다. 1815년 27세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에 제수되었다. 이후 사간원정언, 태천현감, 홍문관 교리 등 내외직을 두루 거치면서 중앙관료로서의 경험과 자질을 쌓았다. 1883년 특명으로 경기암행어사가 되어 성실하고 엄정하게 직무를 수행함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1864년(고종 1) 사헌, 좌참찬, 예조판서, 이조판서,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등 요직을 지냈다. 50여 년간의 관료생활을 마치고, 노년의 삶을 향리(鄕里)의 전원에서 보내던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아우 이지원과 함께 순절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프랑스군에게 패배를 안긴 강화 삼랑성
    삼랑성은 경기도 강화도의 남쪽 옛 하도면, 즉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해발 231m의 정족산에 있다. 길상산의 북쪽, 마니산의 동북동, 강화부의 30~35리에 있으며 3개의 봉우리가 솥발처럼 서로 맞서서 대치한 형세여서 생긴 이름이 정족산성이라 한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용인의병장 임경재 동상
    임옥여 의병장은 대한제국 시기에 농상공부 주사직에 있다가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침략에 항일 투쟁을 결심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정미의병기에 이천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총살되었다. 임옥여 의병장의 동상은 그의 뜻을 기려 용인시민의 정성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고향마을인 평창리 입구에 1993년 건립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