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관동의병의 기틀을 놓은 권인규
    권인규는 강릉의 대유학자로 아들 권종해와 손자 권기수까지 3대가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이후 의병투쟁에 나서 민용호의 관동창의진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관동창의진이 영동지역에서 통일된 조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고, 주로 격문이나 포군문을 작성하여 의병의 정당성을 알렸으며 의병 모집에 힘을 다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관동의병주둔지 대공산성
    강릉 대공산성은 언제 축조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영동지역의 외적침입에 대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을미의병 당시 민용호의 관동의병이 장기적인 항일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주둔했던 곳이다. 민용호는 강릉을 근거지로 북으로는 고성, 남으로는 울진에 이르기까지 태백산맥을 주축으로 하는 동해안 일대에서 일본군 및 관군을 상대로 활발한 항일전을 펼쳤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관동창의진을 이끌고 투쟁한 강윤희
    강윤희는 경기도 가평 사람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며 각국공사에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의병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이인영의병장이 일으킨 관동창의진에 들어가 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끝난 후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강원도 화천·양구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강진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강진 염걸장군 묘소
    강진의 염걸 장군 묘소(康津廉傑將軍墓所)는 전라남도기념물제36로 1978년 9월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산61번지이다. 묘의 주인공 염걸은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했으며, 글재주 또한 뛰어나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비범함을 인정받았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서 능력을 발휘해서 수문장(守門將)의 벼슬에 올랐으나 도망가던 왜군을 추격하다가 거제도에서 순국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해남군

    승병의 전라도 활약, 처영대사
    처영은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군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처영의 호는 뇌묵,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자 호남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일으켜 싸웠다. 이후에도 3,800명의 병력과 함께 해우주산성에 주둔했을 때, 700명의 승병으로 적병 3만과 대전하여 2만 4천 명의 사상자를 내어 임진왜란의 최대 승첩을 이루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절충장군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화순의 의병장 최경회
    최경회(崔慶會, 1532∼1593)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면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다. 전라도 화순에서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나 진주성 싸움에서 패했다. 그래서 최경회는 김천일, 고종후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북쪽을 향해 4배를 한 후 인장과 병부를 가슴에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결국, 최경회와 문홍헌을 비롯한 동향의 의병들은 죽음을 함께 맞이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류인석 의병부대 남산전투지
    제천 남산은 한말 을미의병기에 류인석의 연합의병이 충주를 상실한 이후 추격해온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제천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장소이다. 이 전투에서 의병장 안승우와 홍사구가 순국하였다. 남산전투는 류인석 의병부대가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류인석은 의병을 확충하고 무기도 더 확보하고자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임진왜란을 극복한 호남 인물과 유적  - 호남 출신 관군 의병 인물을 중심으로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전남 >무안군

    임진왜란을 극복한 호남 인물과 유적 - 호남 출신 관군 의병 인물을 중심으로
    임진왜란의 주전장인 호남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인물과 임진왜란 유적지를 담은 책자. 임진왜란 전후 호남의 실태와 대응을 사료적으로 연구하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호남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활약했던 관군과 의병 등 호남의 인물들을 찾아 기록했다. 그 시대의 역사를 생생히 되살리며 호남의 정기를 후손들에게 전하는 콘텐츠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이석용의병의 격전을 기리는 운현전적의혼추모비
    ‘운현전적의혼추모비’는 한말 정미의병시기 일제와 싸우다 순국한 의병장 이석용과 28의사를 추모하는 비이다. 이석용의병장은 을사늑약이후 의병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한일병합 이후에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이 추모비는 2005년 10월 임실군민들이 뜻을 모아 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운현전투가 있었던 곳에 건립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천일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라·충청·경기·경상 4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김천일은 유교경전을 몸소 실천했으며,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수령을 잘 임명해야 한다는 등 당시 폐단을 개혁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서울 수복을 목표로 북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화도전투, 선유봉 및 사현전투,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10만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정환직‧정용기의병장의 생가터, 충효재
    충효재는 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산남의진 정환직의병장과 그 아들인 정용기의병장 부자의 충효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3년 건립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가 조직한 의병부대이다. 1907년 9월초 정용기가 입암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자 정환직이 의병장을 이어 항전하였으나 그 역시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공산(孔山)에서 의병을 일으킨 박연백
    박연백(朴淵伯)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태어났고, 자는 응구(應九), 호는 암재(巖齋)이다. 그는 1905년에 체결된 을사늑약 이후 공산(孔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 의병투쟁을 시작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기에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정용기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연합작전을 벌였고, 이후 경상북도 의성·청송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정부에서는 박연백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한말 경상도 의병장 이하현
    이하현(李夏玄, 1874~1917)은 경상북도 영양출신으로 다른 이름은 이현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양 등지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장이 된 이하현은 의병들을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훈련시킨 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전투에서 이하현은 독립 의진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고,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寧海) 성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쌍산의병 유적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쌍산의병창의지 증동마을
    증동마을은 1906년 양회일이 증동마을의 임노복 등을 찾아가 쌍산의소 결성을 논의하고 수개월간 준비한 곳으로 한말 의병의 대표적인 창의소이다. 증동마을의 쌍산의병 유적은 사적 제485호로 지정되어 있고, 현재 양화일 순의비, 호남창의소 터, 무기 제작소, 마을 뒤편의 의병 막사 터와 화약 원료인 유황 등을 보관했다는 유황굴 등이 남아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원주의병장 이춘영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한말 원주에서 창의한 의병장 이춘영
    이춘영(李春永, 1869~1896)은 조선말의 의병장으로 양평의 지평 출신이다. 화서학파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가 단발령과 을미사변 등의 참상을 보면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지평감역으로 있는 맹영재와 같이 거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고종32년(1895)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모아 활약하다 충주전투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일흥사와 소사공단 이야기
    소사에서 벌응절리로 넘어가던 옛길이 지나던 현재의 소사구청 일대는 약 100여 년 전만 해도 임야(산)가 펼쳐진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이 지역에 철 관련 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군수용품 생산을 목적으로 일흥사(日興社) 소사공장이 설립되면서부터였다. 해방 이후 일흥사 소사공장이 있던 자리에 서울기계제작소와 서울주철제작소가 차례로 들어섰고, 이후 이들 공장은 각각 신한주철과 서울주철공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3년에는 이천중기(삼양중기)가 입주하면서 이 일대는 소사공단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 공장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해당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한때 소사공단에서 쇠를 녹이고 달구어 기계를 만들던 공장들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병마절도사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울산 >중구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한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경상좌도의 병마절도사가 머물던 성으로, 조선 1417년(태종 17)에 쌓은 해발 45m 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의 성이다. 석축성으로 둘레는 2,120m에 달한다. 초기에는 성벽 위에서 담처럼 생겨 몸을 숨긴 채 총이나 활을 쏘는 시설인 여장을 비롯한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 그 후 세종 때에 이르러 국방력 강화를 위해 성을 보호하고 공격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옹성·적대·해자 등 여러 방어시설을 설치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