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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맹인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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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광양시

    한말의 맹인의병장 백낙구
    백낙구(白樂九, ?~1907)는 1906년 전남 광양일대에서 진주의 실직한 향리들과 광양의 주민들을 규합해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광양에 이어 순천을 기습하려했으나 여의치 않아 구례로 돌아가던 중 체포되어 의병이 해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백낙구는 다시 의병진에 합류하였으나 1907년 말 태인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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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제천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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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춘천시

    춘천의 한말의병 도총장 정경태
    정경태(鄭敬泰, 1873~?)는 한말의병으로 춘천출신이다. 자세한 알력은 알 수 없다. 1907년 성익현의 휘하에서 도총장으로 활동하였고, 9월 평해의 군아와 경무분파소를 습격하였다. 1908년 5월 6일 삼척 울진에서 이강년 의진과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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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실의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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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무주군

    문태서의병 훈련지에 세워진 문태서순국비
    의병장문태서순국비는 정미의병시기 덕유산을 무대로 활약하다 순국한 문태수의병장의 순국을 추모하는 비이다. 문태수의병장은 군대해산이후 의병을 일으켜 한일병합이후까지 의병투쟁을 계속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1913년 옥중에서 자결 순국한 의병장이다. 이 순국비는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무주군민들이 뜻을 모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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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류인석 의병부대 남산전투지
    제천 남산은 한말 을미의병기에 류인석의 연합의병이 충주를 상실한 이후 추격해온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제천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장소이다. 이 전투에서 의병장 안승우와 홍사구가 순국하였다. 남산전투는 류인석 의병부대가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류인석은 의병을 확충하고 무기도 더 확보하고자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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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봉화군

    한말의병의 서벽전투를 기념하는 항일의거기념비
    이강년 의병부대의 항일의거기념비는 정미의병시기 경상북도 서벽리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이강년의병부대의 전과를 기념하는 비이다. 이강년의병장은 을미의병이래 정미의병 시기까지 5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크게 활약하여 일본군을 공포에 떨게 한 의병장이었다. 이 기념비는 1984년 12월 봉화군민들이 뜻을 모아 이강년의병부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서벽전투 현장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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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류인석의병 사령부 터 아사봉
    제천 아사봉은 1896년 5월 남산전투 때 제천의병 지휘사령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건너보이는 곳이 남산으로 고장숲과 남산에서 관군과 의병의 교전이 있을 때 류인석 의병대장이 적의 상황을 보고받고, 전투를 지켜보며 지휘하였다. 류인석 의병부대는 많은 희생을 치렀으나 결국 남산전투에서 패배하여 제천에서 물러나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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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직‧정용기의병장의 생가터, 충효재
    충효재는 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산남의진 정환직의병장과 그 아들인 정용기의병장 부자의 충효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3년 건립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가 조직한 의병부대이다. 1907년 9월초 정용기가 입암전투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자 정환직이 의병장을 이어 항전하였으나 그 역시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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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孔山)에서 의병을 일으킨 박연백
    박연백(朴淵伯)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태어났고, 자는 응구(應九), 호는 암재(巖齋)이다. 그는 1905년에 체결된 을사늑약 이후 공산(孔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 의병투쟁을 시작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기에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정용기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연합작전을 벌였고, 이후 경상북도 의성·청송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정부에서는 박연백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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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경상도 의병장 이하현
    이하현(李夏玄, 1874~1917)은 경상북도 영양출신으로 다른 이름은 이현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양 등지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장이 된 이하현은 의병들을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훈련시킨 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전투에서 이하현은 독립 의진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고,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寧海) 성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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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삼연의병 주둔지 문수사
    문수사는 기삼연의병장이 의병대원들에 의해 의병장으로 추대 받은 곳이자 의병들의 주둔지이며 일군과의 격전하여 크게 승리한 곳이다. 기삼연의병장은 을미의병기에 기우만과 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바 있고, 정미의병기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회맹소라 하였다. 기삼연은 전라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순창에서 체포된 후 광주로 이송되어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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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서부지역 의병대장 이기손 의적비
    의병대장 이기손장군 의적비는 정미의병시기 전라남도 지역에서 활약하다 순국한 의병장 이기손의 공적을 기념하는 비로 광주광역시 송정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의적비는 1975년 광주향교를 중심으로 이기손의병장의 불멸의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애국선열을 추모하고자 건립되었고, 1978년에는 광주광역시 본량초등학교에도 의적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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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김원범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김원국
    김원국은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본명은 김창섭(金昌燮)이며, 한말 후기 의병기에 동생 김원범과 함께 광주 무등촌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항일투쟁에 나섰다. 그는 1906년 의병진을 구성 후 1907년에는 김태원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였고, 1908년에는 조경환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구성하여 광주·나주·능주·동복·창평·담양·장성·영광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일본군과 교전중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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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춘천시

    윤희순의 해평윤씨일생록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현 구리시 출신으로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출가하여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는 말년에 중국에 있으면서 자신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기록하였는데, 「해평윤씨일생록」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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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순 의사와 조선독립단의 항일독립투쟁
    윤희순의 생각으로 류돈상과 음성국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조선독립단은 학교와 가족부대 등을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구국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흥경진공전과 무순공격전 등에 참가하여 일제와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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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순의 해외 의병활동 근거지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가 처음 의병활동을 한 것은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이다. 이후 1910년 나라가 망하자 1911년 가족을 이끌고 중국으로 가서 구국활동을 펼치다가 76세 때 아들 류돈상이 옥사를 하자 곡기를 끊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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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석봉의 유성의병을 기리는 유성의병사적비
    유성의병사적비는 유성을 비롯한 대전일대의 백성들이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비이다. 문석봉의병장은 1895년 9월 18일 국모의 원수를 갚기위하여 지방 유학자들과 함께 유성의병을 일으켰다. 이 사적비는 2004년 유성의병의 사적을 기리며 의병의 기개가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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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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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미의병의 효시 의병장 문석봉
    문석봉(文錫鳳, 1851~1896)은 한말의병장이었다. 1893년 별시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1894년 양호소모사로 임명되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후 단발령과 변복령 등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9월 18일 대전시 유성에서 의병을 모아 의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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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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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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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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