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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읍실마을 동제
    읍실마을의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가장 신성한 의례였다. 제관을 정한 후 황송아지를 제물로 올리고 당산나무에 금줄을 치며 온 마을이 정성을 다했다. 동아줄을 꼬아 하늘 높이 매다는 행위는 주민들의 단합을 상징했다. 음복과 떡,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액을 막고 복을 비는 풍습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성대한 의식으로 치러졌으나 지금은 쇠고기 몇 근과 전깃대에 걸린 줄 정도로 형식만 남아 있다. 이는 산촌 공동체의 기억과 생활신앙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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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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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새벽녘의 무장공비 침투 마을방송
    1978년 11월 7일 14시 30분경,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소재 말봉산에서 나무를 하던 여성 두 명이 살해되었다. 이는 무장공비의 소행으로 밝혀졌고, 곧바로 대간첩 작전이 전개되었다. 무장공비들은 광천읍 벽계리 미군 부대를 탐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전이 개시된 것은 사건 발생 몇 시간이 지난 이튿날 새벽녘이었다. 무장 공비는 한 달여 동안 육로를 통해 도주하며 마주치는 민간인을 사살했고, 12월 4일 김포의 간암포를 통해 북으로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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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노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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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목도질에 발맞추기 위해 부르는 임실 발산마을의 「허영차소리」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는 해발 150∼400m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수많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산간마을이다. 벌목현장이나 큰 토목현장에서 통나무나 바위 등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여러명이 목도질을 한다. 목도질을 해서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 목도꾼들의 발맞추기이다. 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1마디짜리 구령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부르는데, 임실군 발산마을 「허영차소리」에서는 조심하고 환기시키는 내용으로 노랫말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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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조선후기 과학자 하백원
    하백원은 조선후기 때 과학문명의 꽃을 피워낸 과학자이자 성리학자로, 위백규(전남 장흥), 신경준(전북 순창), 황윤석(전북 고창)과 더불어 호남 실학의 4걸(傑)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농민들에게 필요한 양수기 ‘자승차’를 발명하고,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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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천안시

    조선시대 뛰어난 과학사상가 홍대용
    홍대용은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地轉說)과 독창적인 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실학자이다. 홍대용은 작은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군관으로 북경을 방문하게 되었고, 북경에서 우연히 항저우(杭州) 출신 중국 학자들과 친교를 맺었으며, 서양 선교사들을 찾아가 서양 문물을 접하고 필담을 나누었다. 또한 그가 남긴 『담헌서(湛軒書)』의 내용은 약간의 시·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홍대용이 북경에서 돌아온 후 10여 년 사이에 쓴 것으로 홍대용의 북경방문은 그의 사상적 성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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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박제가, 조선 사회에 일으킨 거침없는 파장
    박제가(朴齊家, 1750~1805년)는 조선 후기의 서얼 출신 실학자이다. 어려서부터 시, 서, 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집안이 어려워졌으나 어머니와 장인의 덕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제가는 그와 같은 처지에 있던 서얼 출신들과 교우했는데, 이들을 ‘백탑시파’라고 부른다. 박제가는 당시 조선의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우고 상공업과 소비를 중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가 조선 사회에 일으킨 파장은 조선 후기의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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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오수도의 중심 오수역
    오수역은 조선시대 전라도 임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오수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전라북도 동남부와 전라남도 동부지방으로 뻗어 있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오수역이 관할하던 역은 모두 11개였다. 오수역은 일찍부터 주변 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1894년 역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기능했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뒤에 주변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오수역터에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2017년에는 오수역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졌다. 오수는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구한 개의 사연을 담은 오수의견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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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동구

    태종에게 화살을 쏜 서울시 성수동의 살곶이벌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과 광진구 화양동 일대를 ‘살곶이벌’, ‘전관평(箭串坪)’ 등으로 부른다. 일반인들에게는 ‘뚝섬’으로 알려져 있다. 뚝섬은 조선시대 군대를 사열하거나, 출병할 때, 이곳에 ‘둑기(纛旗)’를 세우고, ‘둑제(纛祭)’를 지낸 곳이기에 생긴 지명이다. 한편, ‘살곶이벌’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전해지는 유래를 지닌 지명이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는 방석(芳碩)을 세조로 삼았다. 방원(芳園)은 일부 무신들과 모의해, 방석을 따르는 사람들과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이에 화가 난 태조는 함경도 함흥으로 가서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으려 하였다. 한편, 왕위에 오른 방원, 곧 태종은 태조의 마음을 돌려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게 해 살곶이벌에서 태조를 맞는 환영연을 준비하였다. 태조는 자신을 만나러 온 태종이 곤룡포에 면류관을 하고 나온 것을 보고 다시 화가 나, 태종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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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전주시

    무학대사 이야기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기 위해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돌아다녔다. 점심을 같이 먹다가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보고 돼지 얼굴처럼 생겼다고 웃었다. 반대로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보고 부처님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이성계는 세상은 올바로 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하루는 무학대사가 한양 어딘가를 갔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소를 보고 무학이 같은 멍청한 놈이라고 말했다. 이 소리를 들은 무학대사는 할아버지에게 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할아버지에게서 경복궁을 짓는 터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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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산시

    고종의 친척 아저씨 이야기
    고종의 친척 아저씨, 완평군 이승응은 쇠락해가던 대한제국 시기, 모든 국가 의례를 주관하며 왕실의 마지막 품격을 지켰다. 화려했던 생애와 달리 그의 무덤은 안산에 쓸쓸히 방치되어 있다. 지금은 누구도 찾지 않는 그의 묘는 대한제국의 쓸쓸한 황혼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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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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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임진왜란을 피해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이야기, 전북 정읍 임계기사
    전라북도 정읍시 부전동 정읍시립박물관에는 『임계기사(壬癸記事)』라는 책이 소장되어 있다. 『임계기사』는 임진왜란 때 전라북도 정읍시에 살던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이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겨 1년 남짓 전쟁을 피해 온전히 지켜낸 과정을 기록한 자료이다. 안의와 손홍록의 행적이 담긴 『임계기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숭고한 업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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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농주의 실학자 정약용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변화하는 시기를 살다간 정약용은 성호학파의 경학(經學)적 기초 위에 그 학파의 비판적이고 개혁적인 학문 풍토를 계승하였다. 토지의 공유와 균등 분배를 통한 경제적 평등의 실현을 기저로 하면서 상업적 농업에까지 이른 그의 경제 사상은 선배・동학의 중농주의 학풍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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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후생의 실학 사상에 입각해 과농소초를 쓴 박지원
    박지원은 조선후기 소설, 철학, 천문학, 병학, 농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한 북학파의 대표적 학자이다.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등과 교류하며 후일 북학파라는 학맥을 형성하게 된다. 1780년 중국사신단에 참여하여 접촉한 청의 문물은 그의 사상체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용적인 학문태도로 『과농소초』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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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급자족 경제론을 펼친 서유구
    조선 후기 실학자로 정약용과 함께 18, 19세기 실학 계열의 농업개혁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규장각에서 젊은 시절 활동하면서 폭넓은 학문적 토대를 닦았다. 그의 학문적 토대는 서명응・서호수로 이어지는 가문의 학문적 풍토, 박지원・이덕무・박제가 등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주위 인물, 그리고 청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그는 실학파의 여러 농서, 중국의 문헌 등을 참조하여 만년에 조선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임원경제지』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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