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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류인석 의병부대 남산전투지
    제천 남산은 한말 을미의병기에 류인석의 연합의병이 충주를 상실한 이후 추격해온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제천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장소이다. 이 전투에서 의병장 안승우와 홍사구가 순국하였다. 남산전투는 류인석 의병부대가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류인석은 의병을 확충하고 무기도 더 확보하고자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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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봉화군

    한말의병의 서벽전투를 기념하는 항일의거기념비
    이강년 의병부대의 항일의거기념비는 정미의병시기 경상북도 서벽리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이강년의병부대의 전과를 기념하는 비이다. 이강년의병장은 을미의병이래 정미의병 시기까지 5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크게 활약하여 일본군을 공포에 떨게 한 의병장이었다. 이 기념비는 1984년 12월 봉화군민들이 뜻을 모아 이강년의병부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서벽전투 현장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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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류인석의병 사령부 터 아사봉
    제천 아사봉은 1896년 5월 남산전투 때 제천의병 지휘사령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건너보이는 곳이 남산으로 고장숲과 남산에서 관군과 의병의 교전이 있을 때 류인석 의병대장이 적의 상황을 보고받고, 전투를 지켜보며 지휘하였다. 류인석 의병부대는 많은 희생을 치렀으나 결국 남산전투에서 패배하여 제천에서 물러나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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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춘천시

    윤희순의 해평윤씨일생록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현 구리시 출신으로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출가하여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는 말년에 중국에 있으면서 자신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기록하였는데, 「해평윤씨일생록」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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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윤희순 의사와 조선독립단의 항일독립투쟁
    윤희순의 생각으로 류돈상과 음성국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조선독립단은 학교와 가족부대 등을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구국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흥경진공전과 무순공격전 등에 참가하여 일제와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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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춘천시

    윤희순의 해외 의병활동 근거지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가 처음 의병활동을 한 것은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이다. 이후 1910년 나라가 망하자 1911년 가족을 이끌고 중국으로 가서 구국활동을 펼치다가 76세 때 아들 류돈상이 옥사를 하자 곡기를 끊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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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영남 3대 의병장 김면 유적
    김면의병장의 유적은 경상북도기념물 제76호로 김면의병장을 기리기위해 1666년 건립된 도암서원과 사당, 신도비, 묘소로 조성되어 있다. 김면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 3대의병장 중 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의 선봉에서 30여 차례 전투를 치르며 큰 공을 세우고 1593년 금산 의병진에서 전투준비 중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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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을 기린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예안이씨 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홍인(李洪仁, 1525~1594년)의 충(忠)과 그의 후손 이한오(李漢伍, 1719~1793년)의 효성(孝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는 이홍인의 충을 기려 내려진 정충각(旌忠閣)과 이한오의 효성을 기려 내려진 정효각(旌孝閣)이 함께 있어 쌍수당(雙修堂)이란 별당도 있다. 쌍수당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충효당은 보물 제553호로 지정되었고, 정충각과 정효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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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구한말 항일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의병장 신태식 생가지 (義兵將 申泰植 生家址)는 2005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태식은 통훈대부중추원의관(通訓大夫中樞院議官)의 벼슬을 하다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고향에 돌아갔다. 그러다가 1907년 8월 그는 을사늑약과 군대해산이라는 치욕을 보고는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을 했다. 그리고 1908년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나 다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형무소에 갇혔다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국 1932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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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의성의병창의지 의성향교
    의성향교는 1896년 을미의병기에 의성의병이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향회를 열기위한 통문을 작성한 곳이다. 의성지역 유림들은 1896년 3월 14일 향회를 열어 김상종을 의병장으로 뽑았다. 김상종은 의병을 모으고,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3월 25일 의병대장에 취임하였다. 의성의병은 4월 2일 구봉산에서의 첫 전투 이래 황산전투·감은리전투·비봉산전투를 치르며, 5월 26일까지 항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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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의성의병의 충의정신을 기리는 의병기념관
    의성의병기념관은 창의부터 해산까지 62일동안 결사적으로 항전한 의성의병부대의 의병투쟁을 널리 알리고 의롭게 싸우다 순국한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16년 11월 사초마을에 의성군에서 건립하였다. 의성의병은 김상종의병장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킨 지 8일 만인 4월 2일 의성읍 구봉산전투부터 5월 25~26일 치러진 비봉산전투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싸운 전투의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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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양평출신 의병장들의 묘역
    양평의병장들의 묘역은 모두 양동면 출신으로서 이른바‘지평의병’을 대표하는 안승우, 이춘영, 김백선등이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킨 후, 원주‧충주성 등을 점령하며 위세를 떨치고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 의병장들의 묘소이다. 묘역 내에는 묘비 및 을미의병추모비, 그리고 의병장들의 어록비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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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양평의병을 기리는 양평 을미의병기념비
    양평 을미의병기념비는 1895년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화서학파의 문인인 이춘영·안승우 등과 김백선을 주축으로한 포수 400여명이 의병을 일으킨 것을 기념하는 비이다. 이들은 1896년 1월 12일 원주의 안창리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이 비는 양평의병이 일어난지 100주년을 기념하고 의병들의 정신을 선양하기 위하여 양평문화원을 중심으로 1996년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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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찬의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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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주시

    군대해산이후 창의좌군장으로 의병을 일으킨 정용대
    정용대는 대한제국 군대의 정교로 활동하다 한말 후기 의병기에 해산당한 군인들을 모아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8년 2월 일제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자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창의좌군장에 올라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정용대는 일본 헌병대 및 경찰과 교전을 벌이는 한편 각지로 다니며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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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옥문을 열어 의병을 구출한 강기동
    강기동은 서울 출신으로 헌병보조원으로 일하다 체포된 의병들을 탈출시키고 의병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그는 한말 후기 의병인 정미의병기에 주로 양주, 포천 등의 경기도 동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였고, 이은찬의 창의원수부나 연기우·전성서 등과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강점 이후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북간도로 이동하던 중 체포되어 서울 용산 일본군영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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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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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좌도의 의병 유종개
    유종개(柳宗介, 1558~1592)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1585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 관정자가 되었다가 고향에 돌아와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에 의병 수백 명을 모아 태백산을 근거지로 왜군을 무찌르다 봉화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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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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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의 의병장 김해
    김해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그는 안동의 유명한 선비 퇴계 이황에게서 사사 받은 유능한 학자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안, 예천, 문경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안동에서도 계속해서 분전했다. 의병을 이끌고 경상 좌도의 곳곳을 동분서주하며 왜군을 토벌하던 김해는 6월 19일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경주 진중에서 순국하니 향년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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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지키다,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위치한 중앙공원에는 중봉(重峯) 조헌(趙憲) 전장기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은 왜적의 침입으로 함락되었다. 하지만 이튿날 중봉 조헌 선생을 필두로 영규대사(靈圭大師)와 박춘무(朴春茂)가 이끄는 의병이 합심하여 수복하였다. 조헌 선생은 이에 그치지 않고 금산에서 왜적과 재차 싸웠지만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조헌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36년인 1710년 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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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이 도운 의병장 박춘무
    박춘무(朴春茂, 1544 - 1611)는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토정 이지함의 제자이면서 침구술에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했으며, 이때 “전진(戰陣)에서 용기가 없는 것은 효가 아니다.”라고 병사들에게 훈계를 하여 충과 효를 전장에 활용했다. 또한 산신이 도와 우물을 주어 포위를 풀고 나왔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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