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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의성의병창의지 의성향교
    의성향교는 1896년 을미의병기에 의성의병이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향회를 열기위한 통문을 작성한 곳이다. 의성지역 유림들은 1896년 3월 14일 향회를 열어 김상종을 의병장으로 뽑았다. 김상종은 의병을 모으고,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3월 25일 의병대장에 취임하였다. 의성의병은 4월 2일 구봉산에서의 첫 전투 이래 황산전투·감은리전투·비봉산전투를 치르며, 5월 26일까지 항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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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의성의병의 충의정신을 기리는 의병기념관
    의성의병기념관은 창의부터 해산까지 62일동안 결사적으로 항전한 의성의병부대의 의병투쟁을 널리 알리고 의롭게 싸우다 순국한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16년 11월 사초마을에 의성군에서 건립하였다. 의성의병은 김상종의병장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킨 지 8일 만인 4월 2일 의성읍 구봉산전투부터 5월 25~26일 치러진 비봉산전투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싸운 전투의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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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춘천시

    춘천의병 화약제조지 여의내골
    가정리 여의내골은 정미의병기 류홍석의 춘천의병들이 전투에 사용할 화약을 제조하고 전투 훈련을 받던 곳이다. 춘천의병은 부족한 무기를 보충하고자 여의내골에 무기제작장을 마련하여 각 가정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모아 화약이나 무기를 만들어 전투를 준비하였다. 또 군사훈련이 부족한 의병들을 훈련시키고 전략전술을 마련하는 등 여의내골은 춘천의병의 항일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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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박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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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산신이 도운 의병장 박춘무
    박춘무(朴春茂, 1544 - 1611)는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다. 토정 이지함의 제자이면서 침구술에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했으며, 이때 “전진(戰陣)에서 용기가 없는 것은 효가 아니다.”라고 병사들에게 훈계를 하여 충과 효를 전장에 활용했다. 또한 산신이 도와 우물을 주어 포위를 풀고 나왔다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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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한말 경상도 의병장 이하현
    이하현(李夏玄, 1874~1917)은 경상북도 영양출신으로 다른 이름은 이현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양 등지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장이 된 이하현은 의병들을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훈련시킨 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전투에서 이하현은 독립 의진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고,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寧海) 성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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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궁호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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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병장 한상렬의사추모비
    한상렬 의병장은 정미의병기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민긍호 의병장의 관동창의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하기도 하고 의병대원을 이끌고 독자적인 활동도 하였다. 일제강점 후 한상렬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1926년 만주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고향인 횡성에서는 그의 혼백을 위로하고자 추모비를 건립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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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칠백의병의 의로운 죽음, 조헌 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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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임란의병장 고경명선생 비
    고경명선생비는 고경명의병장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는 비로, 비가 자리한 이곳은 그가 왜적과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1656년 금산군수 여필관이 비문을 짓고 그가 전사한 건너편 산기슭에 비를 세웠는데, 1940년 일제 경찰의 만행으로 파괴되었다가 1952년 후손들이 여필관의 비문을 다시 새겨 복원하였고 1962년 석조비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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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스님이 총칼을 들고 나섰다 영규
    영규(靈圭, ? ~ 1592)는 조선 중기의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청주전투에서 승리하여 선조는 영규의 승전을 듣고 영규에게 당상의 벼슬과 옷을 하사했지만 영규는 그 전에 금산전투에서 전사했다. 영규는 임진왜란의 최초 승병으로 전국 곳곳에서 스님들이 총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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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이남규부자 순국지 외암리
    외암리는 이남규·이충구 부자가 일제에 의해 순국한 곳이다. 을사늑약 이후 1906년 홍주의병이 민종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결성되자, 이남규는 선봉장으로 참여하였다. 이남규는 서천, 남포, 보령 등 서해안 일대를 평정하고 홍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결국 체포되어 아들 이충구와 함께 온양 평촌 냇가에서 일제의 칼날에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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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충남 홍주의 의병장 김복한
    김복한(金福漢, 1860~1924)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승정원 승지를 지냈다.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왔다. 1895년 단발령과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다시 1906년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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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홍주성전투에서 희생당한 홍주의사총
    홍주의사총은 한말 을사의병기 홍주성전투에서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홍주의병의 유해를 발굴하여 조성한 묘역이다. 홍성의병의 홍주성전투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전개된 을사의병기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일어난 의병부대의 전투이다. 이때 순국한 의병들의 유해를 해방이후 1949년 발굴하여 한 곳에 모아 합장하고 의사총을 만들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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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8척의 멋진 의병 제말
    제말(諸沫)[1567~1593]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고 총부수문장(摠府守門長)을 역임하였다. 조카 제홍록과 함께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웅천, 김해, 정암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성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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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임진왜란 의병장이 물새와 어울리던 반구정
    반구정(伴鷗亭)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두암 조방(趙垹)이 지은 정자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공(戰功)에 대한 논공행상을 요청하는 문서를 만들자 빼앗아 불태웠다. 이후 물새와 벗 삼아 지내겠다며 이 정자를 만들고 낙동강 맞은편에 자리한 곽재우의 망우정(忘憂亭)을 오가며 한가로이 지냈다. 임진왜란 때 함께 활동했던 곽재우와 조방은 벼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유를 얻었다. 후손들이 장소를 옮겨 새로 지은 반구정에서도 그때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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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군위군

    임진왜란에서 순절한 장사진의병장 유적
    장사진의병장 유적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에 있다. 장사진의병장은 임진왜란 초기에 의병을 일으켜 군위․인동지역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793년(영조 29) 군위현감 남태보가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에 ‘고리비’를 세워 장사진의 충절을 기렸다. 고을 주민들이 장군의 넋을 기리기위하여 사당을 지어 충렬사라 하고 매년 한식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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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구례군

    고광순의병장 순국지 연곡사
    연곡사는 1907년 10월 고광순 의병장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곳이다.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구례군민들은 1958년에 고광순이 순국한 연곡사 경내에 순절비를 건립하여 그의 숭고한 의병활동을 기리고 있다. 고광순은 1895년 을미의병기에 기우만의 장성의병에 참가하였고, 을사의병기에는 고제량 등의 지사들과 함께 담양군 창평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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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만의 장성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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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지리산 일대에서 활약한 고광순의병장 사적비
    고광순의병장 사적비는 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남원‧광주‧화순‧순천 등지에서 활약하다 연곡사에서 순국한 의병장 고광순의 공적을 기념하는 비이다. 고광순의병장은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출생하여 한말 일제침략기에 의병을 일으켜 1907년 순국할 때까지 항일투쟁을 전개한 호남의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다. 이 사적비는 그의 생가터에 1969년 포의사를 세우며 포의사 앞에 건립한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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