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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원주의병장 이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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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한말 원주에서 창의한 의병장 이춘영
    이춘영(李春永, 1869~1896)은 조선말의 의병장으로 양평의 지평 출신이다. 화서학파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가 단발령과 을미사변 등의 참상을 보면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지평감역으로 있는 맹영재와 같이 거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고종32년(1895)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모아 활약하다 충주전투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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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양평출신 의병장들의 묘역
    양평의병장들의 묘역은 모두 양동면 출신으로서 이른바‘지평의병’을 대표하는 안승우, 이춘영, 김백선등이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킨 후, 원주‧충주성 등을 점령하며 위세를 떨치고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 의병장들의 묘소이다. 묘역 내에는 묘비 및 을미의병추모비, 그리고 의병장들의 어록비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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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류인석 의병부대 남산전투지
    제천 남산은 한말 을미의병기에 류인석의 연합의병이 충주를 상실한 이후 추격해온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제천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장소이다. 이 전투에서 의병장 안승우와 홍사구가 순국하였다. 남산전투는 류인석 의병부대가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류인석은 의병을 확충하고 무기도 더 확보하고자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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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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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여주시

    여주의 한말의병장 김현규
    김현규(金賢圭)는 여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인물이다. 김현규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는 충분하지 않으나 여주시 북면 출신으로는부하 250명과 함께 여주, 지명, 양근에서 활동했다라는 짧은 기록이 있다. 또 23도 창의대장 편에 보면 이인영과 허위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서울로 진격을 감행했던 13도 창의진에 김현규의 여주의진이 참여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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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나주의병봉기지 나주향교
    나주향교는 사적 제483호로 1896년 을미의병기 이학상을 중심으로 나주의병을 결성한 장소이다. 나주의병은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기우만의 격문이 전달되자 나주의 유림들과 향리들이 나주향교에 모여 이학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나주의병은 광주로 진출하여 북상을 준비하다 선유사가 내려와 왕명으로 해산을 종용하자 결국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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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의병 김천일을 기리는 정렬사
    정렬사는 진주성에서 순절한 김천일을 비롯한 나주 출신 충절 인물 5위를 모신 사우이다. 1606년에 뜻있는 인사들이 나주 금성산 서쪽 월정봉 아래 교동에 창건했으며 1607년 정렬사로 사액되면서 사우를 나주 읍내로 옮겼다. 김천일의병장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남지역에서 왜적의 침략을 막다가 1593년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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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일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렬사비
    정렬사비는 전라남도 기념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각지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왜군을 따라 남하했다가 진주성 전투에서 패하여 자결 순국하였다. 정렬사비는 김천일이 순절한 지 34년 뒤인 1626년에 당시 관찰사 민성징을 비롯하여 지역의 유림들이 그를 제사하는 정렬사에 세운 비석이다. 임진왜란 초기의 의병활동과 전투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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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유성구

    문석봉의 유성의병을 기리는 유성의병사적비
    유성의병사적비는 유성을 비롯한 대전일대의 백성들이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비이다. 문석봉의병장은 1895년 9월 18일 국모의 원수를 갚기위하여 지방 유학자들과 함께 유성의병을 일으켰다. 이 사적비는 2004년 유성의병의 사적을 기리며 의병의 기개가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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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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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미의병의 효시 의병장 문석봉
    문석봉(文錫鳳, 1851~1896)은 한말의병장이었다. 1893년 별시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1894년 양호소모사로 임명되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후 단발령과 변복령 등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9월 18일 대전시 유성에서 의병을 모아 의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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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공청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사용한 유품
    ‘정공청 유품’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울산광역시 남구 두왕로 울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유품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공청 장군이 사용하던 유품으로 투구와 갑옷·장갑·혁대·칼·화살 등으로 당시의 복식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정공청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선조를 호종하였으며, 안강전투·서생포전투 등에 참전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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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울산을 지킨 박홍춘의 환도
    ‘박홍춘환도’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울산광역시 남구 두왕로 울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환도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던 박홍춘이 사용하던 칼과 칼집으로 조선시대 사용했던 대표적인 장검이다. 박홍춘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천리에서 적을 맞아 물리치고 서면장을 임명받아 울산으로 들어오는 동래와 기장의 왜적을 막아 싸웠다. 그 공적으로 선무원종1등공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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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봉 김성일의 신도비 및 묘방석
    ‘학봉 신도비 및 묘방석’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수내길 38-1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도와 공을 세운 학봉 김성일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묘 옆에 두어 묘비로 사용된 묘방석이다. 김성일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초유사로 임명되어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관군과 의병이 연합하여 왜적을 물리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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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민 출신의 한말의병장 신돌석
    신돌석(申乭石, 1878~1908)은 19세의 나이로 1896년 3월 13일에 영해에서 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거의를 했다. 1905년에도 영릉의병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의병장이 되어 항일에 앞장섰다. 아직도 신돌석은 ‘신장군’ 또는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러지고 있다. 신출귀몰했던 그의 활약상이 ‘수십 장의 구릉을 한 발로 뛰어넘었다’라는 전설 속에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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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경상도 의병장 이하현
    이하현(李夏玄, 1874~1917)은 경상북도 영양출신으로 다른 이름은 이현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영양 등지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병장이 된 이하현은 의병들을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훈련시킨 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전투에서 이하현은 독립 의진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고,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연합하여 그 돌격장으로 활약하여 영해(寧海) 성을 함락하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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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을사의병
    을사조약의 체결로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간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국권침탈에 분노한 의병들도 다시 봉기하여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이때부터 일어난 의병투쟁을 을사의병이라고 한다. 원용팔을 중심으로 하는 의병부대가 제일 먼저 봉기하였고, 민종식‧최익현‧신돌석 등의 의병부대가 대표적인 의병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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