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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잡화상을 하던 청년의병장 최산흥
    최산흥은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잡화상을 하다가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켜 이경춘의병장과 이석용의병장, 양윤숙의병장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최산흥은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임실·남원·진안·용담·순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친일 밀정을 처단하였으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후 체포된 최산흥은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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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아우와 의병을 일으킨 진치언
    진치언은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진재평이라고도 하며 한말 후기의병기에 의병을 일으켜 김경관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9년 동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후 주로 소규모의 의병을 이끌고 순창군 유등면·오산면·적성면·인화면 일대에서 의병군자금을 모금하는 활약을 펼쳤다. 정부에서는 진치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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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보성군

    보성의진의 3대 대첩을 이끈 정기찬
    정기찬은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한말 후기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7년 일제가 고종황제를 강제퇴위시키고 구한국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국권침탈이 심화되자 안규홍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전라남도 보성·순천 일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보성의진의 3대 대첩인 파청대첩·진산대첩·원봉대첩에서 큰 공을 세우고 활약하다 1909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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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의병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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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재란과 구례의병 '석주관을 지켜라'

    출처 :전라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전남 >구례군

    정유재란과 구례의병 '석주관을 지켜라'
    전남 구례의 석주관에 묻힌 조선 시대 의사 7명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이다. 석주관(石柱關)은 전라도 내륙 침범을 방어하는 관문성으로, 조선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여러 차례 왜와의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열악한 상황에서 왕인득·왕의성 부자를 위시하여 구례의 선비들이 의연히 의병을 일으켰고 대다수 장렬히 순절하였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남 >구례군

    석주관을 사수하다 전사한 칠의사 유적
    칠의사묘는 1598년(선조 31) 정유재란 때 석주관 전투에서 전사한 7인의 의병장과 당시 남원성에서 전사한 구례현감 이원춘의 무덤이다. 석주관은 전라도 구례와 경상도 하동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군사 전략상 중요한 요충지이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 봄 대규모 왜적의 공격에 칠의사를 비롯한 의병들은 큰 피해를 당하였고, 왕의성을 제외한 칠의사도 모두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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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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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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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영월의 한말의병장 정대억
    정대억(丁大億, 1872~1908)은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의병과 1907년 정미의병에 참가하였다. 1908년 청풍면 까치성전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영월에서 눈이 뽑히고 목이 베어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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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횡성의 한말의병장 한상열
    한상열(韓相烈, 1876~1926)은 강원도 횡성군에서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인근의 지평, 홍천, 원주, 영월, 평창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51세에 중국에서 총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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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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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구국의 혼 포천의 면암 최익현과 최면식
    포천 구국의 혼 면암의 일생은 고난과 형극의 연속이었다. 오직 대의와 구국의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제주도 위리안치, 절해고도 흑산도 유배, 두 번에 걸친 일본 헌병대 구금, 그리고 대마도 구금 순국 등 난국 때마다 역사의 전면에서 우국충정과 대의로서 저항하였다. 그의 손자 염재 최면식역시 항일 군자금 모금, 광복회 가입, 군자금 수합 등 항일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독립군 조직과 연락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43년 운명하였다. 포천 구국의 혼 최익현과 손자 최면식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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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구례군

    ‘구례 정신’ 움 틔운 구례 석주관전투
    구례는 왜군 치하의 세상이었다. 그들도 호남인의 의기를 잘 알았기에 의병을 일으킬 낌새라도 있을라치면 발본색원했다. 그렇대도 앉아서 당하기만 할 호남 민중들이 아니었다. 구례 광의면의 명망 높은 집안이었던 왕득인이 가솔 50여 명으로 첫 발기를 하고 석주관성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총 5차례 걸친 석주관전투에서 결국 패해 구례현민 3,500여 명이 몰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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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류인석 의병부대 남산전투지
    제천 남산은 한말 을미의병기에 류인석의 연합의병이 충주를 상실한 이후 추격해온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제천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장소이다. 이 전투에서 의병장 안승우와 홍사구가 순국하였다. 남산전투는 류인석 의병부대가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류인석은 의병을 확충하고 무기도 더 확보하고자 평안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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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장수군

    호남의병단의 선봉장 박춘실
    박춘실은 전라북도 장수 출신으로 한말 후기의병기 문태수 의병장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6년 최익현 의병장 휘하에서 의병항쟁을 시작하여 1907년 문태수 의병장과 ‘호남의병단’을 결성하고 덕유산을 근거지로 무주·진안·용담·장수·안의·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1909년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문성전투에서 체포된 후 옥에 갇혔다가 1914년 대구형무소 감옥 벽을 부수어 동지들을 탈출시킨 후 스스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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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부안군

    전 계층이 하나로 뭉쳐 죽음으로 싸운 정유재란 호벌치전적지
    호벌치전적지는 채홍국을 비롯한 의병들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을 맞아 싸운 곳이다. 이를 알리기 위해 이곳에 호벌치전적비를 세웠고, 이 일대를 전라북도에서는 기념물 제30호로 지정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126명의 의병이 참가했는데, 선비, 농민, 천민, 승려 등의 모든 계층이 참가하여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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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의병장 최익현의 궐기가 서려있는 순창객사
    최익현과 임병찬 의병장이 의병들을 모았던 순창객사는 관청에 딸린 손님맞이용 여관이었다. 그리고 객사는 초하루 보름과 나라에 일이 있을 때 임금을 향해 제사를 올리고, 새로 부임한 현감은 이곳에서 가례를 올리기도 했다. 객사의 역할이 다양했음을 볼 수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이 객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74년 9월 시도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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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부자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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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한말의 부자의병장 정환직
    정환직(鄭煥直, 1844~1907)은 경상북도 영천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아들 정용기와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1907년 전사했다. 그가 의병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고종황제의 밀조가 있었다.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와 함께 거의를 의논하여 자신은 의병을 후원하기로 하고 아들을 영천에 내려보내 거의토록 하였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병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나 영천일군수비대의 급습을 받고 영천으로 압송되어 6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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