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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국채보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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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보령시

    경상북도지역 신교육운동을 이끈 김광제
    김광제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888년 23세때 관계에 진출하였으며 이후 1905년에 배일(排日)과 내정부패 탄핵상소로 유배당하였으나 2개월 만에 특별사면되었다. 김광제는 사면 이후 1906년 대구광문사 사장이 되었고 같은 해 2월 대구광문사에서 설립한 사립보통학교 교장과 달명의숙(達明義塾) 부교장·강사로 활동하였다. 1907년 서상돈의 발의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공동명의로 취지서를 발표하였다. 김광제는 대한협회에 가입 후 대중강연을 통한 민중계몽 활동을 하였다. 김광제는 조선노동대회 전국연합회장·경성본부장으로 전국 순회강연 등 활동을 전개하다 1920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김광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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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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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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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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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통감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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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주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출처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구 >군위군

    역주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은 조선 시대 1786년 정조 10년에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가 간행한 역사교재이다. 동국통감은 단군 말부터 고려말까지 역사를 연대별로 다룬 책으로, 동국통감제강은 이를 바탕으로 교재용으로 지은 책이다. 경북 군위문화원은 국학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자 동국통감제강을 번역해 책을 발간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청주우체국 율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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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충청도 청주를 통과하던 율봉도(栗峰道)
    율봉도는 조선 시대 충청도 청주의 율봉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다. 율봉도는 청주를 중심으로 북쪽의 진천, 동북쪽의 청안, 동남쪽의 보은-회인-상주로 이어지는 구간, 남쪽의 문의-옥천-영동-황간-추풍령으로 이어지는 구간 등을 관리했다. 지금의 충청북도 서북부를 제외한 충청북도 전 지역의 역을 관할했다. 조선 시대의 역로였던 율봉도와 이를 계승한 현대의 도로망은 청주가 충청북도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도시임을 짐작케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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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그 시대를 잊지 않겠다는 결기 ‘잔존 건축물’
    캠프 하야리아 주둔 역사는 통상 1945년에서 2006년까지 60년으로 잡는다. 주둔 기간이 긴 만큼 부대시설이 많았다. 건물 수로 보면 총 338동이었다. 숙소와 창고, 병동이 많았다. 부산시민공원을 조성하면서 대부분 철거했지만, 일부 건축물은 그 시대를 잊지 않겠다는 결기와 염원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장교클럽 하나와 퀀셋 막사 다섯, 하사관(현재의 부사관)과 위관급 관사 각각 열둘과 셋, 사령관 관사, 학교, 영화관 입구, 그리고 지적도에는 표기되지 않았지만 2층 초소와 기억의 기둥도 보존 건축물로 남아 있다. 기억의 기둥은 부대에 남아 있던 나무 전봇대만 따로 모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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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유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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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프랑스산 포도나무를 재배하여 생산에 성공한 포도주
    포도주는 포도를 압착시켜 즙을 발효시킨 술인데 별도로 누룩을넣지 않아도 만들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는 프랑스 포도 묘목을 조선에 심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이 안성포도이다. 이와 별개로 민간에서 생산한 대표적인 포도주가 포항의 미쯔와(三輪)포도원의 포도주로, 1920년대에는 약 4만석의 포도를 수확했고, 약 5백석의 생포도주를 양조하였다. 최초의 국산 포도주는 1970년대에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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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송파구

    위례(慰禮)에 백제의 터를 다지다. 온조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은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 주몽의 아들이다.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인근에 십제를 건국한 온조는 함께 남하하여 미추홀에 자리 잡은 형 비류의 세력이 귀화해오자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로 바꾸고, 성을 부여로 하였다. 이후 한성지역으로 천도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진 온조왕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고 내부를 안정화하여 백제의 기틀을 다졌다. 현재의 송파구에 위치한 몽촌토성과 풍납동 토성은 한성(漢城)으로 아울러 지칭되었는데, 한강 유역의 상실로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백제의 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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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창군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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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울주군

    원효스님이 도를 닦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도통골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에 ‘도통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님 가운데 한 분인 원효(元曉)가 도를 통한 골짜기라서 불리는 지명이다. 원효는 도통골에서 수행하면서, 장안사에 ‘척판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놓고, 제자들과 함께 기거하였다. 하루는 원효가 척판암에 거주하고 있을 때, 한 제자에게 체에다 물을 떠 오라고 하였다. 제자는 체에다 물을 담아 원효에게 갔다. 원효는 체에 담긴 물을 공중에 뿌렸는데, 오색구름이 일어나더니 불국사 대웅전에 난 불을 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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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죽은 용이 썩어 냄새가 나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구리내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동대리(銅大里)’라는 마을이 소재한다. 동대리의 옛 지명은 ‘동천(銅川)’으로 한글로 표기하면 ‘구리내’다. 당나라군이 백제를 공격하였을 때, 백제군은 당나라군에 맞서 항전하였다. 백제군의 항전으로 당나라군이 전멸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계룡산에 가서 기도하였다. 하루는 그의 꿈에 백발도인이 나타나 백제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금강에 있는 용을 잡아 죽이는 것이었다. 소정방이 낚시로 금강에 사는 용을 잡았는데, 그 용이 떨어진 곳이 현재의 동대리다. 용은 육지에 떨어지면서 썩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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