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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국화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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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천안시

    호두를 넣은 국화빵 사촌, 호두과자
    호두는 고려시대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천안에 처음 심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천안이 호두의 명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호두생산의 증가를 위해 노력하여 호두 생산량이 늘었다. 이 호두를 과자에 넣은 것이 호두과자의 시작이다. 호두과자는 1934년 처음 만들어졌는데 국화빵을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밀가루 반죽에 호두를 넣었다는 것이다. 틀에다 과자를 굽는 것의 기원은 유럽의 와플인데 와플기계가 미국에서 대중화되고 이것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호두과자가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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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충청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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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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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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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적도평양점령(赤都平壤占領) 선두부대
    나의 소대는 베티고지 아군의 전초진지(前確陣地)에 배치되었다. 적과의 거리는 불과 얼마 안 되어 육안으로도 관측할 정도였다. 밀고 밀리는 전투는 계속 되었고 피아(波我)구분이 안되어 육박전을 할 때면 서로 머리를 만져 보고 피아를 구분하면서 난투를 하는 진경은 차마눈뜨고 볼수없는 처절한 생지옥이었다. 베티고지에서 전투중 휴전을 맞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나는 92연대 인사주임및 부관을 끝으로 1964년 2월 29일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성평리에서 여생을 보내며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 비운(悲運)을 가져온 6.25를 회상하고 무엇하나 우리들의 피와 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고귀한 국토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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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병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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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국가에서 의병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의병의 날
    의병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의병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의병이란 외국의 침략에 맞서 민중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저항 조직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징발 명령과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종군하여 전쟁에 참여하는 자위군에 해당한다. 의병의 전통은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의병이라 하면 임진왜란과 한말 일제 침략기에 일어났던 항일 의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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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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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일제강점기에 수난을 겪은 백제 돌 그릇, 공주 중동 석조
    석조(石槽)는 돌로 만든 물 그릇으로써 주로 사찰이나 궁궐에서 사용되었다. 석조의 모양은 크게 정해진 바는 없으나 통일신라 이후에 만들어진 석조는 대체로 사각형이다. 공주 중동 석조는 원형으로서 겉면에는 연꽃을 활용한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중동 석조는 원래 백제시대 사찰 대통사에서 사용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헌병대가 말 먹이통으로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받침돌과 물 그릇 가장자리도 훼손되었다. 현재 공주 중동 석조는 국립공주박물관 앞 마당에 전시되어 있으며 삼국시대 백제의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자료로써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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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부천 농업훈련의 산시, 4H 한미재단
    1952년 6·25전쟁 중,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와 한국 이승만 정부는 전후 복구와 냉전 전략이 결합된 민간 원조 프로젝트인 ‘한미재단(Korea America Foundation, KAF)’을 창립했다. 이 재단은 비정치·비영리·비종교를 원칙으로 삼고, 한국 사회를 물질적·정신적으로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53년부터 1979년까지 약 5천만 달러의 원조금이 보건의료, 주택 건설, 지역사회 개발, 교육, 농촌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입되었다. 특히 1954년 이후에는 4-H 운동(Head, Heart, Hand, Health)을 통해 청년 농업 지도자 양성과 농촌 근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운동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부천 소사 4-H 훈련농장은 1963년에 설립되어 농업기술과 생활기술을 교육하는 실습장으로 활용되었다. 이곳에서는 남성에게 농지 관리·원예·축산 기술을, 여성에게는 재봉·미용·요리 등을 교육했다. 이 부천 소사 4-H 훈련농장은 단순한 교육시설을 넘어 자립형 모델 농장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1968년에는 200만 원, 1969년에는 400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1979년까지 총 3,602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지역사회 개발의 핵심 인력을 길러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새마을운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훈련농장의 상징이었던 사일로(Silo)는 가축 사료 저장 시설이자 농업 근대화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이 사일로는 2021년 10월 27일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1960~1970년대 한국 농업 근대화와 국제 협력, 청년 교육 운동이 교차한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부천시 소사체육공원(소사본동 364-6)에 남아 있는 사일로는 전후 한국 농촌 재건의 상징이자, ‘머리·마음·손·몸’을 다해 미래를 일군 청년들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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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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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충청도 성환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성환도(成歡道)
    성환도는 조선 시대 충청도 충주의 연원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며, 충청도를 지나던 호서로에 포함되었던 6개의 역로를 구성했다. 조선 시대에 천안, 공주, 아산, 예산, 연기 등지로 이어지던 역로를 관할했다. 성환도는 한양에서 전라도를 지나 제주도로 이어지던 제주로의 근간을 이루는 구간이었으며, 지금의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중심 역로였다. 지금은 경부선 철도와 장항선 철도를 비롯하여 국도 1호선이 통과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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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의 끝사랑, 대장동과 엄비 이야기
    철종 4년(1854년) 2월, 한성부 서소문(현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에서 태어난 엄비는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입궁하였다. 이후 왕비가 거처하던 내전에 소속된 상궁이 되어, 중전이었던 민비(閔妃)를 가까이에서 모시다가 고종의 승은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질투로 인해 1885년 궁궐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 궁을 떠나 생활하게 된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엄비는 곧바로 고종의 부름을 받아 다시 입궁하였다. 이후 1911년 사망할 때까지 고종을 최측근에서 모시며 생을 마쳤다. 그러나 엄비가 궁궐에서 쫓겨났던 1885년부터 재입궁하기 전인 1895년까지 약 10년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명확하게 전해지는 기록이 거의 없다. 다만 이 시기 동안 엄비가 당시 부평부 주화곶면 대장리에서 거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은 엄비의 일생을 되짚는 동시에, 궁에서 쫓겨났던 10년의 시간과 주화곶면 대장리와의 연관성을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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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의 친척 아저씨 이야기
    고종의 친척 아저씨, 완평군 이승응은 쇠락해가던 대한제국 시기, 모든 국가 의례를 주관하며 왕실의 마지막 품격을 지켰다. 화려했던 생애와 달리 그의 무덤은 안산에 쓸쓸히 방치되어 있다. 지금은 누구도 찾지 않는 그의 묘는 대한제국의 쓸쓸한 황혼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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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가구 완성의 화룡점정, 장석의 형태와 문양
    목가구의 결합 부분을 보강하고, 문이나 설합 등 여닫는 부분이나 손잡이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며, 잠그는 기능을 하는 경첩, 감잡이, 광두정, 귀장석, 자물쇠, 들쇠 등의 금속 장식을 통틀어 장석이라고 한다. 장석은 기능뿐 아니라 목가구의 품격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장석은 금·은·동·철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광택이 은은하면서 화려한 백동을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재료에 수복강녕의 의미를 담은 각종 동식물, 사물, 문자 등의 형태와 문양으로 가구의 미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 장석이다. 소박한 목조가구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자개와 장석으로 장식되면서 고가의 혼수품이나 뇌물로 사용할 정도로 사치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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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위와 벽사와 구복, 전통 열쇠와 자물쇠의 상징
    인류는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열쇠와 자물쇠를 만들어 사용했다. 발견된 유물로 추정할 수 있는 한, 우리나라에서 열쇠와 자물쇠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로 오면 열쇠와 자물쇠는 더욱 화려해진다. 이 시기 열쇠와 자물쇠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불교에서 자물쇠는 단순히 잠금장치인 것만이 아니라 벽사(辟邪)의 의미도 있었다. 조선 시대 이후 전통 자물통은 물고기, 거북 등의 형상 및 각종 문자와 문양에 다산과 장수, 부귀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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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으로 만들어진 금속 공예의 정수, 금관(金冠)
    금관(金冠)은 삼국에서 모두 사용한 관모의 일종이며, 왕과 왕비를 비롯한 상류층에서 예관(禮冠)으로 머리에 썼던 관모이다. 금관은 형태와 색상의 조화에서 최고의 미를 표현하였고, 정적인 미와 동적인 미를 나타내는 최고의 작품이다. 이러한 금관은 삼국시대 왕실과 귀족사회의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한다. 또한 금관은 삼국시대 복식의 특징으로 금속 공예의 정수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삼국에 찬란한 문화가 꽃피워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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