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솟대와 장승이 복합된 충북 옥천 청마리 제신탑
    옥천 청마리 제신탑은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에 있는 탑신제당이다. 청마리는 청동리의 청동리의 청(靑)자와 마티리의 마(馬)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청마리 제신탑은 일정하지 않은 크기의 돌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쌓은 탑이다. 원탑(조산탑), 솟대, 장승, 산신당 등이 복합된 제신탑은 제신당 혹은 탑신제당이라고 불린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7개의 돌을 쌓아 만든 제천 입석리 선돌
    제천 입석리 선돌은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665-3에 위치하고 있다. 입석리라는 지명은 마을 입구에 선돌이 세워져 있다고 붙여진 것이다. 입석리 선돌은 7개의 돌을 쌓아 만든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길에서 돌을 던져 선돌에 올라가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기자신앙이 전해지고 있다. 이 선돌은 마고할미들이 힘자랑 승부내기를 하면서 던진 돌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입석리 주민들은 1974년부터 ‘선돌회’를 조직하여 선돌을 보호·보존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에 입석리 선돌제를 지내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용화세계를 구현한 미륵대원과 오층석탑
    미륵리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을 사용한 고려 중기 석탑이다. 석재를 연결하는 결구 방법이나 탑신석과 옥개석 등의 가공이 섬세하지 못한 점 등은 제작 시기가 후대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옥개석 층급이 5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추녀선이 매우 짧아 6단으로 보이게 한다. 또한 상륜을 구성하는 노반과 복발 역시 매우 커서 1개층의 탑신석과 옥새석을 겹합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이방운의 그림에 보이는, 청풍 한벽루
    한벽루(寒碧樓)는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물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이다. 보물 제5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청풍면 읍리에 있었지만, 충주댐 공사 이후에 마을이 수몰되자 198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원래 고려 1317년(충숙왕 4)에 청풍현 출신의 승려인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면서 청풍현을 군(郡)으로 승격시켰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청풍현 객사의 동쪽에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7년(태조 6)에 청풍군수 정수홍(鄭守弘)이 중수하였으며, 이후 1634년(인조 12)에 청풍군수 권경(權璥)이 중창하였는데, 오늘날의 모습이 이때의 건축 양식을 많이 반영하였다고 한다. 한벽루란 정자명은 청풍명월의 고장인 청풍의 산수가 맑고 차고 푸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변의 절경으로 수많은 문사들이 방문하여 시문을 남기고 있으며, 화가들에 의해서도 그림으로 그려져 오늘날 그 모습을 알 수가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영동군

    조선 중기의 명 역술인 남사고를 제향한, 영동 화수루
    화수루는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하도대3안길 33-18(하도대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65호이다. 원래는 1546년(명종 1)에 옥계에 있는 옥계서당을 지었을 때 그 옆에 작은 누각으로 지어졌다. 1613년(광해군 5)에 중수되었으며, 1804년(순조 4)에 지금의 위치인 하도대리로 옮겨 짓고 이름도 화수루로 바꾸었다고 한다. 옥계서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역술인인 남사고(1509~1571)가 제향되었던 곳이다. 남사고는 그가 살던 당대의 명 역술인으로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등고강변의 지극히 선한 경지를 실천하고자 했던, 청주 지선정
    지선정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중척리 산25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1호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오명립(1563~1633)이 1614년(광해군 6)에 등고강변의 언덕 위에 세운 정자이다. 등고강은 오늘날의 청주시 현도면 중척리 앞으로 흐르는 금강의 별칭으로, 이 일대를 가리키는 ‘등고’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현재의 청주시 현도면과 문의면 일대는 보성오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아온 지역이다. 지선정이라는 정자명은 『대학』의 지어지선(止於至善)에서 취한 것으로,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이후 피폐하고 어지러운 정사 속에서 풍속을 교화하고 향촌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오명립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구미시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었던 구미 쌍암 고택
    구미 쌍암고택은 조선 영조시대 진사 최광익(1731~1795)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반가이다. 쌍암고택은 고택 부근에 큰 바위 2개가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 쌍암고택은 대문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사당의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쌍암고택은 유일하게 남향으로 자리 잡은 사랑채를 빼고 모두 동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쌍암고택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과학성과 실용성을 엿볼 수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아름다운 별서정원 안에 안사랑채가 있는 의성 소우당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윤암리에 위치한 소우당은 대표적인 의성지역의 양반사대부 가옥이다. 소우 이가발(李家發)의 형인 운곡 이의발(1768~1849)이 영월부사로 재직하던 때에 지은 건물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 일자형 대문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며, 사랑채 옆의 중간문채를 통해 안채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본채 서쪽에는 별도의 토담을 두른 넓은 공간에 별서 정원을 조성하였다. 정원의 중앙부에 안사랑채 혹은 별당이라 부르는 건물을 두고 그 남쪽에 연못과 산책하는 길을 마련해 둔 것이 특징이다. 안사랑채 서쪽과 북쪽에는 소나무, 전나무, 청단풍 등의 나무를 식재한 숲이 조성되어 있고, 안채와 사랑채에서 출입하도록 협문을 달아두었다. 조선후기 양반집의 풍류와 운치를 엿볼 수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임진왜란 때 농포 정문부 가족의 피난처였던 포항 오덕리 애은당 고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0호인 포항 오덕리 애은당 고택은 임진왜란 당시 농포(農圃) 정문부가 가족들의 피난처로 사용했던 가옥이다. 포항 오덕리 애은당 고택은 정문부의 할아버지인 정언각이 지은 것으로, 지형이 거북 모양인 까닭에 건물도 거북 모양으로 배치하였다. 덕동마을에는 호산지당이라는 민속전시관이 있으며, 덕동마을 숲은 2006년 산림청 주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아름답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계명산에서 자리를 옮긴 충북 충주의 심항산 봉수
    심항산 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에 소재한 심항산 정상부에 있다. 이 봉수는 고려 말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동쪽에 있는 제천 오현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서쪽에 있는 마산 봉수로 연결했던 내지봉수였다. 본래 심항산 봉수는 계명산에 있었는데, 당시 산이 높고 험준하여 봉수군의 고역이 크고 날이 흐리면 조망이 좋지 않아 조망이 좋은 지금의 심항산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현재 심항산 일대는 신과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충주를 대표하는 명소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신성한 믿음의 공간이 된 충북 제천의 오티 봉수
    오티 봉수는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의 봉화재 정상에 있다. 이 봉수는 내륙에 소재한 내지봉수로 단양과 충주의 봉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현재 봉수터에는 무너진 방호벽의 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고, 중심부에는 나무로 만든 산신각이 있다. 오티리 주민들은 산신각을 제천오티별신제의 발원지로 상징화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신성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충북 청주의 것대산 봉수
    것대산 봉수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의 것대산에 있다. 이 봉수는 남쪽으로 문의 소이산 봉수와 북쪽에 있는 진천 소을산 봉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현재 방호벽과 연통을 단 다섯 개의 아궁이가 복원되어 있으며, 청주시는 인근에 있는 상당산성과 연계하여 역사문화와 휴식공간이 조화를 이룬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것대산 주변 마을에는 약혼녀 선이를 위해 것대산 봉수에 불을 밝힌 백룡에 관한 슬픈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양산시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지키는 신기리 산성
    양산시의 중심부 북동쪽 해발 325.6m의 산성봉에 위치하는데 북서쪽으로는 산의 정상 약간 아래 부분을 둘러싸고 동남쪽 계곡을 포함하는 둘레 약 2.6km의 석축 복합식산성이다. 양산을 비롯하여 기장, 울산, 언양, 동래의 군민이 전쟁이 일어나면 들어가서 지키는 입보(入保)산성이다. 성황산성이라고도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양산시

    신기리 산성의 쌍둥이, 북부동 산성
    양산의 시가지를 발 밑에 두고 멀리 낙동강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해발 195m의 동산의 꼭대기 부근에 만들어진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신라 때 낙동강을 따라 수도 경주로 침입하려는 왜구를 막기 위해서 처음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성곽과 성벽 모두 파괴되고 허물어진 상태로 남아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칠곡군

    영남 제일의 산성, 칠곡 가산산성
    동명면과 가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901.6m의 가산 산정에 위치한 조선시대 석축 산성이다. 동문과 중문의 좌우 연결성벽을 포함한 성곽의 총길이는 11.04km이며 동문․중문의 좌우 연결 성벽을 제외하고 내성․외성 모두를 합친 총 둘레는 10.164km이다. 성에는 각종 문과 포루, 장대 등 성곽방어시설물과 성안에는 객사와 동헌 등 관아지와 사찰, 창고 등이 구비된 영남 제일의 산성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2·8 독립선언’ 주역의 고향,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1919년 3·1 운동을 촉발시킨 2·8 독립선언의 주역 중에 나용균이 있다. 동경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나용균은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후 야당 정치인을 하며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평생 독립투사 및 정치 지도자로 국가에 공헌한 나용균은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받았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나용균의 생가와 사당이 있다. 사랑채, 문간채, 고방, 사당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사당 건축은 호남의 유명한 목수 중 한 명인 심사일이 담당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북 >전주시

    새로운 여명을 열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전주 신흥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900년부터 근대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했다. 신흥학교 본관은 학당 희현당 자리에 1928년 세워졌고, 강당은 1936년 준공되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윈즈브로우 홀과 규모와 형태, 구조가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신흥학교는 1919년 3.1 만세운동과 1930년 광주 학생 항일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에도 항의 시위에 나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신흥학교 옛 본관은 1982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으나, 현관 포치만은 화마를 피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인천 >부평구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부평의 상황(강제동원)
    ‘남선(南鮮) 최대의 군수창’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당국이 부평을 지칭한 말이었다. 한반도 남쪽의 최대 군수기지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부평은 군수공장지대가 되었을까. 조선 시대 부평은 인천을 속읍으로 삼았던 부평도호부가 있었던 지역의 중심지였다. 1920년대에도 여전히 전통적 농촌 지역으로 농업과 염업, 잠업, 목축업을 영유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부터 부평은 당국이 조성한 군수물자 생산기지이자 군수공업도시가 되었다. 부평이 군수공업도시가 된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식민지 조선공업화정책과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 때문이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