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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 망소이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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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는 못 살겠다', 망이 망소이의 난
    고려 명종 때 충청도 지역에서 망이와 망소이가 주동이 되어 과도한 부역과 차별 대우에 항의하며 일으킨 농민과 소민(所民)들의 봉기를 말한다. 공주 명학소(鳴鶴所, 현재의 대전광역시 서구 부근)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으므로 ‘공주 명학소의 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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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의 고대국가, 우휴모탁국 이야기
    지금의 부천은 아파트와 문화예술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나 그 땅 아래에는 고대 국가의 흔적이 잠들어 있다. 부천의 고강동 일대에서 발견된 환호형 제사 유적은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등장하는 마한 54개 소국 중 하나인 우휴모탁국의 실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돌을 둥글게 쌓고 그 주변에 도랑을 판 적석환구 구조는 마한의 제사 중심지인 소도(蘇塗)의 전형적인 형태로 당시 제사장들이 북과 방울을 울리며 공동체를 이끌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이는 부천이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제사와 정치가 공존한 도시국가이었음을 시사한다. 부천의 지리 또한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굴포천 유역의 비옥한 평야와 한강 하류, 서해와 맞닿은 교통망은 농업과 해상무역의 발전에 유리했고, 『삼국지』에 묘사된 마한인의 생활양식인 면포 짜기와 평야 거주와 같은 특성과 정확히 부합한다. 일부 학자들은 백제 건국 전설의 주인공인 비류의 활동 무대가 바로 이 부천 일대였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 외에 마한의 문화는 농경적이면서도 유목적이었다. 하천과 구릉, 해안이 만나는 부천은 제사와 교역, 농경과 이동이 공존한 복합적 문화를 키운 터전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부천을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고대 문명의 교차로로 만들었다. 지금은 도시로 변했지만, 고강동의 흙 속에는 북과 방울의 울림, 제사와 공동체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영화와 만화, 예술로 대표되는 오늘의 부천이 지닌 상상력의 뿌리는 바로 이 우휴모탁국이라는 고대 서사에 닿아 있다. 부천은 ‘고대의 제사 도시’에서 ‘현대의 문화 도시’로 이어지는 긴 시간의 서사를 품고 있으며, 우휴모탁국은 그 역사적 상상력을 되살릴 수 있는 원형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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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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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와 돼지로 만들게 된 갈비구이
    해방 이전까지 한국에서 갈비찜이나 갈비구이를 만드는 갈비는 소갈비를 의미했다. 이시기까지 돼지의 갈비를 쇠갈비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쇠갈비는 소 1마리에서 많은 양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쇠갈비요리는 고급요리가 되어갔다. 해방이후 쇠갈비값이 비싸지면서 상대적으로 싼 돼지갈비를 쇠갈비 대용으로 갈비찜이나 갈비구이에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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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고려시대에도 유교는 국학 차원에서 교육되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간섭기를 거치면서 유교문화와 교육이 쇠퇴하였지만, 원나라에서 들여온 송대 유학이 전해지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다. 안향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교경전을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우면서 무너진 교학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소수서원 외에도 길재를 배향하는 금오서원이 고려 시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비훼철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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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 안향
    안향은 경상북도 흥주(興州: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 출신이다. 호는 회헌(晦軒)이고 초명은 안유(安裕)였으나 뒤에 안향(安珦)으로 고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종의 이름이 같은 글자였으므로, 이를 피해 초명인 안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회헌이라는 호는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고려 후기 정치적 불안정과 몽골의 침략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부패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가중되었다. 안향은 이러한 때에 불교보다 한층 주지적인 특성을 지닌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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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시대 유학을 진흥시킨 안향
    소수서원은 고려 시대 문신인 안향을 배향하고 있다. 안향은 원나라에서 성리학 서적을 들여와 이를 탐독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당시는 무신 집권기를 이은 원나라 간섭기로, 안향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국학을 진흥하고 인재를 양성해 고려를 문치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안향이 들여온 송나라의 성리학은 이후 조선이 세워지는 토대가 되었고 교육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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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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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세종

    연개소문도 마셨다는 세종특별시 부강면의 부강약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부강약수가 소재하고 있다. 부강약수는 부강면 문곡리 ‘넉바위’에 있는 약수터이다. 지역에서 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고구려 연개소문이 금강을 거쳐 부강에 왔을 때 부강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고 힘이 강해져 전장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부강약수는 문곡천 인근 암반에서 용출하는 약수로 철분 성분이 풍부한 광천수다. 충청도의 ‘초정약수’, ‘전의약수’ 등과 함께 3대 약수로 유명했다. 부강약수는 1960년대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였다. 특히 피부병과 위장병, 눈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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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하며 부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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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거창군 거창읍에서 나무하며 부르는 어사용
    경남 거창군에서는 「나무하는소리」로 어사용을 불렀다. 어사용은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베며 부르는 독백체 노래이다. 나무꾼의 고된 생활과 정서를 표현하는 신세타령적 성격이 강하다. 통절형식의 노래로서 곡소리의 바탕 위에 내지르듯 꺾어내는 소리로 부른다. 주로 영남지방에서 활발하게 전승되었다. 거창읍에서 전승된 어사용은 남녀 간의 애정 행각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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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나뭇짐 지며 부르는 어사용
    경남 창녕군에서는 「나뭇짐지는소리」로 어사용을 불렀다. 어사용은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베며 부르는 독백체 노래이다. 나무꾼의 고된 생활과 정서를 표현하는 신세타령적 성격이 강하다. 우리 민요 중 남성하층민의 신세한탄적 노래로는 유일하다. 창녕군 영산면에서 채록된 어사용에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나무꾼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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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서산시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서 산판 목도하며 부르는 허영차소리
    충남 서산시에서는 「산판목도하는소리」로 허영차소리를 불렀다. 「산판목도하는소리」는 산판에서 벤 나무를 굵은 막대기(목도채)에 걸어 옮기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목도꾼들이 걸음을 맞추어야 한다는 일의 특성상 노래는 “허영차”와 같은 짧은 구음을 주고 받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서산시 대산읍에서 채록된 허영차소리는 1마디짜리 짧은 사설에 “어기영차”와 같은 구음을 붙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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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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