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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밭일구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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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괭이로 밭을 일구면서 하는 소리 괭이소리
    괭이소리는 괭이로 밭을 일구면서 부르는 소리로 주로 화전밭을 일굴 때 많이 불렀다. 화전밭을 만들어 일구는 여러 사람이 함께 선후창으로 부르는 노동요이다. 괭이소리가 주로 발견되는 곳을 살피면 이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는데 영월이나 정선과 같은 주로 강원 산골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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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일흥사와 소사공단 이야기
    소사에서 벌응절리로 넘어가던 옛길이 지나던 현재의 소사구청 일대는 약 100여 년 전만 해도 임야(산)가 펼쳐진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이 지역에 철 관련 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군수용품 생산을 목적으로 일흥사(日興社) 소사공장이 설립되면서부터였다. 해방 이후 일흥사 소사공장이 있던 자리에 서울기계제작소와 서울주철제작소가 차례로 들어섰고, 이후 이들 공장은 각각 신한주철과 서울주철공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3년에는 이천중기(삼양중기)가 입주하면서 이 일대는 소사공단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 공장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해당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한때 소사공단에서 쇠를 녹이고 달구어 기계를 만들던 공장들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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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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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인천 도원동 철공소 거리의 최고령 대장장이
    인일 철공소는 도원동의 최고령 대장장이가 운영하는 철공소이다. 이곳의 주인장인 송종화 장인은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현역 대장장이로 일한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골목이지만 장인은 이곳을 65년 넘게 지키며 묵묵히 대장장이의 삶을 살아간다. 열 사람이 배우면 한 사람도 되기 어렵다던 대장장이의 맥을 잇는 장인의 삶이 인일 철공소에 고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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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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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관들의 영빈관 호텔이었던 손탁호텔
    손탁호텔은 현 이화여고의 이화백주년기념관에 있던 호텔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Marie Antoinette Sontag, 1838-1922)이라는 여성이 1902년 설립하여 1909년 경영권을 프랑스인 보에르에게 넘겼다. 보에르가 운영한 손탁호텔은 1915년 문을 닫고, 1917년 건물부지가 이화학당 기숙사로 팔렸다. 손탁호텔은 1909년까지 조선왕실의 영빈관의 역할을 하는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궁내부 소속의 특정호텔로 각 국의 외교사절과 귀빈 등 일부 예약 손님만 머물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각종 리셉션이나 연회는 반드시 손탁호텔에서 개최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정부의 기능이 약화되자 손탁호텔의 기능도 사라졌다. 손탁여사는 1909년 7월 16일자로 궁내부를 사퇴한 후 프랑스 칸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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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흥사와 소사공단 이야기
    소사에서 벌응절리로 넘어가던 옛길이 지나던 현재의 소사구청 일대는 약 100여 년 전만 해도 임야(산)가 펼쳐진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이 지역에 철 관련 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군수용품 생산을 목적으로 일흥사(日興社) 소사공장이 설립되면서부터였다. 해방 이후 일흥사 소사공장이 있던 자리에 서울기계제작소와 서울주철제작소가 차례로 들어섰고, 이후 이들 공장은 각각 신한주철과 서울주철공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3년에는 이천중기(삼양중기)가 입주하면서 이 일대는 소사공단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 공장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해당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한때 소사공단에서 쇠를 녹이고 달구어 기계를 만들던 공장들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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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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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쌍산의병창의지 증동마을
    증동마을은 1906년 양회일이 증동마을의 임노복 등을 찾아가 쌍산의소 결성을 논의하고 수개월간 준비한 곳으로 한말 의병의 대표적인 창의소이다. 증동마을의 쌍산의병 유적은 사적 제485호로 지정되어 있고, 현재 양화일 순의비, 호남창의소 터, 무기 제작소, 마을 뒤편의 의병 막사 터와 화약 원료인 유황 등을 보관했다는 유황굴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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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청양군

    55년 동안 벼를 빻아온 청양군 영양정미소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에 있는 영양정미소는 1962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배석기 씨로 1980년에 영양정미소를 인수했다. 그때로부터 39년간 쌀을 찧어왔다. 한창 때는 곡주들한테 위탁을 받는 일도 있어 전국의 낯선 도시에 쌀을 내려주러 방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이 많지 않다. 벼는 석발기, 현미기, 도정기, 정미기 3단, 미각기, 연미기를 통과해 쌀이 되어 나온다. 이곳으로 길이 날 예정이라 영양정미소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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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근대 볍쌀의 껍질 벗기기
    한국은 전근대 시기 주로 절구나 디딜방아나 물레방아로 벼의 껍질을 도정하여 먹었다. 이런 방식은 쌀의 손실률이 높았다. 일본인은 메이지 유신 직후부터 10분도로 도정한 백미를 먹었기에 한국에서 쌀을 수입하면서 개항장에 정미소를 설치하고 한국의 쌀을 다시 백미로 도정해 갔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면서 군산항 등 일본으로 연결되는 항구에는 정미소가 생겨 한국쌀을 도정하였다. 한국인은 정미소에서 메갈이꾼(현미 운반)과 미선공(쌀가려내기)으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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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태안군

    해송따라 피어난 태안의 송화소금
    태안 갯벌에서는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전통 자염이 주로 생산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천일염 방식이 도입되면서 소금 생산 방법이 대대적으로 전환되었다. 봄이면 송홧가루가 염전에 떨어져 자연스럽게 송화 소금이 생산되었다. 이 소금은 태안의 특산품으로 독특한 맛과 풍부한 영양을 자랑한다. 하지만 요즘은 염전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 보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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