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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문무를 겸비한 큰 호랑이, 김종서
    김종서는 충청남도 공주시 월곡리에서 태어나, 과거급제 후 세종이 즉위하는 동안 왕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하였다. 1433년(세종 15)에는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어 6진을 개척함으로써 두만강을 국경으로 확정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문종 때는 우의정이 되었지만 이듬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문종이 사망하였다. 어린 임금인 단종이 즉위하자 그는 좌의정이 되어 임금을 보필하였으며,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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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서울 용산구 청암동에서 모시는 이성계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조선의 제 1대 왕인 태조이다. 그는 고려의 장군으로 랴오둥 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고려 궁궐로 되돌려 와서 고려의 마지막 왕인 우왕을 폐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위화도 회군’이다. 이성계를 모시는 당은 서울 용산구 청암동 부군당과 그 옆의 영당이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지내기 때문에 이성계와 관련되어 특별한 제의의 양상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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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구리시

    고려의 전통을 이으며 조선의 권위를 세운 태조 건원릉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묘인 건원릉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내에 위치한다. 전체적인 형태는 고려 공민왕의 능인 현릉과 유사하나, 고려시대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곡장(曲墻)이 봉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봉분은 병풍석이 감싸고 있고, 병풍석 위에는 12지신이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이 교대로 2쌍씩 배치되어 있다. 봉분의 앞쪽에는 혼유석(魂遊石), 고석(鼓石)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이 있다. 태조는 죽어서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원하였으나, 태종은 아버지의 묘를 가까이에 두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싶어 했다. 때문에 태조의 건원릉은 현재의 위치에 조성되었고, 태조의 유언도 지키고자 함흥의 억새와 흙을 공수해 와서 단장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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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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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동두천시

    동두천 미군과 함께 74년, 그 흔적을 찾아서_부대찌개
    동두천의 부대찌개는 6·25 전쟁 직후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이 동네 구멍가게 등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그 햄, 소시지, 스팸, 베이컨 등을 김치와 고추장, 고춧가루로 양념해 한국식으로 볶아 먹었고, 이것이 부대찌개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군부대 식재료가 이른바 ‘블랙마켓’ 경로를 통해 양키시장(양키라는 명칭은 당시의 사회적 언어환경을 반영한 표현)으로 유통되면서 부대찌개가 더 널리 퍼졌고, 한때는 ‘존슨탕’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다만 ‘존슨’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해 보이며, 글에서는 “아마도 미군 취사병의 이름이 아닐까” 정도로 조심스럽게 추정하는 표현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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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명소의 숨은 이야기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충북 >청주시

    충북명소의 숨은 이야기
    충북 12곳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 충주 탄금대, 제천 의림지, 보은 속리산, 괴산 산막이길 등 명소 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역사, 문화적 의의가 큰 지역을 문헌조사, 현장 답사 등을 통해, 역사와 문화, 자연과 인물, 예술작품 등으로 조명해 역사적 의미를 기록했다.  현재 모습도 사진으로 보여주며 문화적 가치를 찾아낸 책자.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일흥사와 소사공단 이야기
    소사에서 벌응절리로 넘어가던 옛길이 지나던 현재의 소사구청 일대는 약 100여 년 전만 해도 임야(산)가 펼쳐진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이 지역에 철 관련 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군수용품 생산을 목적으로 일흥사(日興社) 소사공장이 설립되면서부터였다. 해방 이후 일흥사 소사공장이 있던 자리에 서울기계제작소와 서울주철제작소가 차례로 들어섰고, 이후 이들 공장은 각각 신한주철과 서울주철공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3년에는 이천중기(삼양중기)가 입주하면서 이 일대는 소사공단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 공장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해당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한때 소사공단에서 쇠를 녹이고 달구어 기계를 만들던 공장들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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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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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부모님을 향한 효심이 담긴 삼년상
    상례를 치르며 상복을 입는 기간을 삼년상이라고 부른다. 실질적인 기간은 25개월 정도이며, 이 기간에는 묘소 옆에서 여막을 짓고 부모님의 신주를 모시고 소상과 대상을 지내고 탈상을 할 때까지 생활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을 벗어날 수 있었으므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3년은 돌봐야 한다는 효 사상이 담겨있는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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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남한 최초의 탄광 문경광업소
    문경지역에 탄광의 문을 열게 된 것은 1926년에 ‘문경탄광’이 광업권을 설정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은성탄광’은 1929년 6월 박남득이 광업권을 설정하고, 일본광업주식회사가 개발권을 인수하여 1938년 12월부터 개발에 착수하였다.문경탄광과 은성무연탄광이 대규모의 자본을 앞세운 일본 회사에 의해 개발되자 두 탄광을 합하여 문경탄광으로 불렀으며, 채굴한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는 김천과 점촌 간에 부설된 산업철도를 이용토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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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삼척군과 삼척시의 분리 승격(1개 군에서 3개 시와 1개 군 탄생)
    강원도 삼척군 도계지역은 도내 석탄생산량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큰 탄광촌이었다. 석탄개발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1975년에는 294,000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급기야 1980년에는 삼척군 북평읍을 떼내 명주군 묵호읍과 합쳐 동해시로 승격시킨다. 또 1981년에는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이 태백시로, 삼척시와 삼척군이 별도 분리 승격한다. 1개 삼척군이 4개 시·군을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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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정선군

    동양 최대의 민영탄광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석탄개발임시조치법’에 따라 정선군 사북읍에 자리 잡은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1962년 4월에 개광하여 2004년 11월 폐광에 이르기까지 약 40여 년에 이르는 동안 동양 최대의 민영 탄광기업으로 성장하였다.동원탄좌는 24개의 광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예상매장량은 약 5,400만 톤에 달한다. 초창기에는 종업원 600여 명으로 1963년 생산량이 1십5만5천 톤에 불과하였으나,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5천여 명의 탄광노동자가 종사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민영탄광으로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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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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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산시

    수형자 카드에 남은 독립운동가의 초상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 운동은 주요 도시를 거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안산에서도 수암면에서 3월 30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당시 수암면의 인구는 약 8천여 명이었는데 2천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의 만세운동이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형벌을 받은 6명 중 한 명인 김병권 선생의 수형자 카드가 남아있어 독립운동가의 생전 얼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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