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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단종 주모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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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원주시

    단종이 유배가고 보부상이 거닐던 싸리재 옛길
    원주시 신림면의 싸리재 옛길은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 가던 어린 단종이 넘어갔던 고개이며, 보부상들이 물건을 싸서 등에 지고 다니던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넘나들던 애환이 서린 길이다. 삼국시대부터 원주와 영월을 연결하던 주요한 통로 역할을 하며 두 지방의 물자 교류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통되었으며, 지금은 고개 아래로 신림터널이 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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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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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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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보성군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구 보성여관
    구 보성여관은 1935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세워진 2층짜리 고급 여관이다. 1층의 온돌방들은 객실로 꾸며졌고 2층의 4칸짜리의 넓은 다다미방은 연회장으로 이용됐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도여관’의 실제 장소이다. 한국인 강활암(姜活岩)이 지은 건물로, 당시 벌교를 많이 찾던 일본인들을 상대로 여관을 하기 위해 업소용으로 건축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여관으로 영업을 계속하다가 1988년부터 상점으로 이용되었다. 2008년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 보성군이 17억 원을 들여 2년간의 공사 끝에 옛 모습을 복원했다. 현재는 카페, 소극장, 숙박업소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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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이색 기차숙소, 영월 석항트레인스테이
    폐광이 된 후로 전체 주민 500명도 채 남지 않은 강원도 영월군 석항에는 간이역 석항역이 있다. 그 옆에 폐열차 9량을 개조해 만든 숙소가 있다. 4인실, 6인실, 도미토리로 나뉜 객차는 온돌형과 침대형이 있다. 단체 방문객을 위한 중앙광장도 있고, 삼겹살과 치킨을 파는 간이역 식당도 있다. 2층의 카페와 책방에서는 애프터눈티, 쿠킹클래스, 할로윈 파티 등의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이색 숙소에서 추억을 만들기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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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고창군

    요정의 시대는 갔어도 - 고창 조양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조양관’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여관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한국전쟁 후 전라북도 전주의 요정 ‘행원’에서 주방 일을 하던 사람이 ‘국일여관’을 인수해 ‘조양관’이라는 음식점을 열었다. ‘조양관’은 일반 음식점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요정으로 영업을 했다. 요정은 요리가 주목적이 아니라 술과 여흥을 파는 업태로서, 기생제도의 변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곳곳에 생겨났던 업태다. 조양관은 1970년대까지 고창의 손꼽아주는 요정이었으나, 이후 고급 한정식 음식점으로 전환했다. 조양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주거시설의 특징을 간직한 건물로 평가받아 2007년 등록문화재 제32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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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목표물까지 날아가서 폭발한 최초의 포탄,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폭발할 때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를 낸다.’ 하여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라는 이름이 붙은 화약무기는 조선 선조 때 병기(兵器) 제조 등을 관장하는 군기시(軍器寺) 화포장(火砲匠)이었던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했다. 당시 포탄은 화포에서 발사되어 적의 성(城)이나 성문(城門)을 공격하는 귀갑차(龜甲車) 형식이었다. 이는 군사들이 끌고 돌진해야했다. 하지만 비격진천뢰는 오늘날과 같이 신관(信管, 발화) 장치가 있어 목표물까지 날아가서 폭발하는 폭탄으로, 조선시대 병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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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선조 때 제작된 개인 휴대용 화기, 승자총통
    보물 제648호 승자총통(勝字銃筒)은 조선 선조 12년(1579) 제작된 총통이다.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소형 총통으로 개인이 휴대할 수 있었다. 전체길이 56.8㎝, 통길이 34.8㎝, 입지름 4㎝, 무게 4.5㎏로 마디는 6개가 있다. 약실쪽의 3마디의 간격을 총구 쪽 보다 좁힌 것은 화약의 폭발 위력을 염려하여 터지지 않도록 한 것이며, 적이 가까이 와서 백병전이 벌어지면 곤봉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명문에 의하면 전라좌수사 김지가 만들었다. 당시 휴대용 화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우리 병기 제조사에 길이 남을 만 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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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철화기법으로 새긴 안극인 묘지
    안극인 묘지는 공주 학봉리 가마에서 출토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자 분청사기나 백자에 죽은 사람의 이름과 신분, 행적 등을 기록하는 묘지를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묘지는 대체로 음각 기법이 주를 이루고 청화, 철화기법이 뒤를 이었다. 17~19세기는 백자 묘지의 전성기로, 직사각 판형의 백자에 철화나 청화로 묘지를 새겼다. 이후 원통형이나 대접형, 접시형과 같은 모양도 만들어졌다. 안극인은 고려의 재상으로 안극인 묘지는 공덕을 기리고자 후손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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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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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과 신부가 한 술잔을 나누는 합근례
    대례의 한 절차로 신랑과 신부가 잔을 주고받는 의식을 의미한다. 술을 주고 받을 때는 하나의 표주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사용하며 도우미인 시자들을 통해서 주고 받는다. 합근례까지 마치면 대례가 끝난다. 지역에 따라서 술을 주고받는 방식이나 횟수 등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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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키는 장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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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적으로 시신을 소멸시키는 풍장
    풍장은 비바람에 자연적으로 시신을 소멸시키는 장례법이다. 유골을 따로 수습하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복장제나 이중 장제와 구분된다. 언제부터 풍장을 행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전염병이나 어린아이가 죽었을 경우 행해졌으나 지금은 행하지 않는 장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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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기지 환경 문제, 군산 시민사회의 목소리
    2011년, 군산 미군기지 앞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시민 100여 명이 모여 기름유출, 석면 매립, 고엽제 살포 의혹 등을 규탄하며 대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미군이 사고를 은폐하고도 사과하지 않는다”며 민관합동조사, 책임자 처벌, SOFA 개정 등을 요구했다. 시의원과 정치권도 해당 의혹을 제기하며 주민 건강 조사 및 오염 실태조사를 촉구했다. 집회는 공동 선언문 낭독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구호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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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으로 나눈 바지의 종류, 대구고(大口袴)와 궁고(窮袴)
    북방계 유목민이었던 우리 민족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복식인 바지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착용했다. 상대복식의 기본인 고는 폭이 넓은 바지인 대구고(大口袴)와 폭이 좁은 바지인 궁고(窮袴)가 있었으며, 신분에 따라 바지의 폭·길이·색 따위를 구별하였다. 이 외에 길이가 짧은 바지인 곤(잠뱅이)이나 관고, 세고 등이 있고, 여자들의 경우 치마 밑으로 속바지를 입은 모습을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다. 삼국의 바지 형태는 모두 비슷하지만 백제는 백제국사가 착용한 통이 넓고 대님을 매지 않은 바지 형태에서 백제 바지의 특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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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이 뾰족한 관모라는 뜻을 가진 변상관모(弁狀冠帽)
    변(弁)은 우리 말로 ‘곳갈’ 또는 고깔이라고도 한다. ‘곳’은 첨각을 의미하고 ‘갈’은 관모를 의미한다. 그래서 ‘곳갈’은 정상이 뾰족한 관모라는 뜻이 된다. 변상관모는 이러한 변의 형태를 지닌 관모라는 뜻이다. 변상관모는 고구려 뿐만 아니라 가야, 백제, 신라에서도 통용되었던 상대 우리나라 고유의 관모로서 삼국문화의 공통성을 엿볼 수 있다. 상대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된 관모로 이 관모에 새의 깃털을 꽂아 전투모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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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방계와 북방계의 신발, 이(履)와 화(靴)
    이(履)는 신목이 짧은 신의 총칭으로 신발의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며, 남방족계의 신이며, 화(靴)는 장화와 같이 신목이 높이 달린 신으로 방한, 방침에 적당하여 무풍적인 북방계의 신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두 종류의 신을 혼용하여 착용했기 때문에 먼저 생긴 신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고유 복식이 북방호복 계통이므로 고유의 신은 목이 긴 화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 이전에는 이미 풀과 가죽을 이용한 신을 신었으며, 부여의 초탑, 마한의 초갹, 초갹답, 초리 같은 다양한 신의 종류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의 신발이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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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적 여성규범을 실천한 여중군자, 장계향
    장계향은 어릴 때는 여성에게 금지된 지식 세계에 도전해 성인이 되길 꿈꾸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은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책을 멀리하고, 출가해서 시부모와 남편을 섬기고, 어머니로서 유교적 여성규범을 충실히 실천한 여중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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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차례의 국난과 충성, 이상길
    이상길(李尙吉, 1556~1637년)은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선비다. 조선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모두 겪은 그는 선비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직한 성품에 충심이 깊었던 그는 정유재란 당시 몸소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맞아 싸우기도 했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부임지였던 용천에서 청군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격화되기 시작한 붕당정치는 간간이 그의 발목을 잡았으며, 관직에서의 진퇴가 반복되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묘사(廟社)를 모시고 인조를 호종하여 강화도에 따라 들어갔던 이상길은 전세가 기울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비분강개의 마음으로 자결했다. 이상길의 묘소는 그가 은사로 거처했던 노원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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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회의 개화를 꿈꿨던 지식인 지석영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池錫永, 1855~1935년)은 조선의 개화를 꿈꿨던 지식인이었다. 19세기 조선의 위태로운 운명 아래, 그는 조선의 살길이 개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서양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지석영은 조선 사회에 종두법을 보급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천연두의 위협에서 조선의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지석영은 어려운 한문의 사용이 조선의 개화를 늦추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에 한자를 새롭게 풀이한 한자사전 『자전석요』를 저술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 가로쓰기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1910년 조선은 국권을 빼앗겼고 모든 공직을 내려놓은 지석영은 어린이 치료에 힘쓰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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