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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수원시

    영화도의 중심 영화역
    영화역은 정조 때에 양재역을 수원으로 이전한 후 영화역으로 이름을 고친 역으로, 한양에서 충청도로 이어지던 영화도를 관할하던 찰방역이었다. 수원 화성이 축조되고 수원이 삼남 지방으로 이어지는 요충지로 부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의 북쪽이 다소 취약했기 때문에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 밖에 역관과 영화역을 설치했다고 한다. 영화역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영화역을 모든 역 가운데 우두머리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역이 자리했던 수원 화성의 북문 밖은 여전히 서울과 수원을 오가는 주요한 교통요지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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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화성을 거쳐 안성까지 가던 영화도(迎華道)
    영화도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에 있던 역도 가운데 하나이며, 경기도 수원의 영화역(迎華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본래 양재도에 속해 있었던 것이 수원 화성 축조 이후 개편되어 영화도가 되었다. 영화도의 전신인 양재도는 고려 시대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광주도(廣州道)에 속한 역들을 중심으로 편제되었다. 1796년 충청도 정역찰방이 관할하던 역과 동화도가 영화도로 개편되면서 과천역과 영화역이 새롭게 설치되었으며, 중심역은 양재역에서 영화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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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마당과 바깥마당이 구분된 화성 홍승인 고가
    홍승인 고가는 경기도 부농의 전형적인 주거생활을 보여주는 집이다. 안채는 ‘ㄱ’자형, 사랑채는 ‘ㄴ’자형, 행랑채는 ‘ㅡ’자형이며, 전체적으로는 ‘ㅁ’자 평면을 이룬다. 본래 전주 최씨가 건축한 것이나 나중에 남양 홍씨에게 양도된다. 바깥마당과 사랑마당을 구분해 사용한다는 점이 독특하지만, 전체적인 배치가 튼‘ㅁ’자형이라는 점은 일반 민가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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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살림집, 화성 정원채 고가
    화성 정원채 고가는 조선 후기에 지은 살림집이다. 본래는 행랑채를 비롯한 많은 부속건물이 있던 규모가 큰 집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만이 남아 있다. 대문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1904년(광무 8)에 지어졌다고 하나 안채는 이보다 이른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건넌방과 사랑채 사이의 공간에 입식 부엌과 화장실을 새롭게 꾸미면서 안마당이 트인 부분이 없는 ‘ㅁ’자형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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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 가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화성 정시영 고택
    화성 정시영 고택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는 궁에서 관리하는 땅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시영 고택의 집터는 누대에 걸쳐 재록(財祿)을 누릴 명당 터라고 한다. 이 고택은 남쪽에 있는 안채 공간과 북쪽에 있는 사랑채 공간이 전체적으로 누워있는 ‘월(月)’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 고택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없다. 이는 전형적인 경기도 양반가옥의 모습이다. 정시영 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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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축조

연관자료

  • 지역문화 이야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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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축조를 위한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화성 건설에서 돌은 숙지산과 여기산 두 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 그리고 팔달산 등 모두 여섯 군데에서 채취하였다. 모두 28만 7,600여 덩이가 축성에 소요되었다. 목재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재목을 베어 오거나 사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조달하였다. 먼저 국가에서 관리하던 안면도 · 장산곶 · 강원도 지역에서의 조달은 직접 베어내어 운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기와와 벽돌은 왕륜면 백운동 성역소에서 땔나무를 마련하여 조달하였다. 기와가마는 왕륜과 서봉동에 설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철물은 그 사용 용도가 다양하였다. 철물은 해서(황해도), 호서(전라도), 관동(강원도), 서울, 수원부 등 각처에서 사왔다. 다산 정약용의 발명품인 거중기는 왕실에서 1부를 내려주었다. 유형거는 왕실에서 1량을 내려주고 10량을 새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숯, 석회, 장기산 뇌록, 종이, 붓, 먹, 벼룻돌, 숙마, 느릅나무 껍질인 유피, 쇠가죽, 빈 가마니, 숫돌 등이 조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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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화성, 화성의 도시 기반시설
    정조는 화성을 조선의 제2 도시로 조성하고자 여러 가지 행정적 조치를 취하였다. 한편 상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는데 수원부사 조심태는 새 고을에 점포를 설치하는 일에 대해 본고장 백성들 중 살림밑천이 있고 장사물정을 아는 사람을 골라 읍 부근에 자리 잡고 살게 하면서 이자 없는 돈 6만 냥을 빌려주자는 상업진흥책을 내놓았다.그리하여 이제는 수원을 ‘상왕의 도시’, ‘조선조 제2의 도시’를 건설하려는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하게 된다.1793년 1월에는 ‘수원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좌의정을 역임한 채제공을 초대 화성유수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 사이 행궁을 둘러싸는 5.7km에 달하는 성곽이 건설되고 도시기반 기설도 새롭게 조성되었다.먼저 성안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남북대로와 행궁을 중심으로 동쪽을 향하여 사거리를 만들고 이를 ‘십자로’라 불렀다. 이곳에는 상가가 들어서고 민가들이 주변에 조성되었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면서 관청, 도로, 다리, 상가 등의 도시기반 시설은 물론 저수지와 둔전을 만들어 생산기반 시설도 완비하였다. 뿐만 아니라 도시조경도 중요시 여겨 도로변에 수많은 나무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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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화성의 역사와 함께한 수원영동시장
    '수원영동시장'은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인근에 있으며, 조선시대 개설된 '성내시장'과 '성외시장', 그리고 '수원우시장'의 전통을 잇고 있다. 이 시장은 화성이 만들어진 후 정조의 계획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정식으로 시장을 등록한 것은 1919년이었다. 현재는 200여 개의 점포가 입점한 상설시장으로 운영되며, 한복을 비롯하여 주단, 포목, 커튼, 수예, 의류, 패션잡화, 생활잡화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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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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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화성의 모든 것, 화성성역의궤
    1794년 1월부터 시작된 화성 성역이 끝난 것은 1796년 9월 10일이었다. 그 뒤 10월 15일 낙성연을 벌인 뒤 11월 9일 『화성성역의궤』가 완성되었다. 축성과 관련한 의궤는 『화성성역의궤』가 유일한 것이다. 이 『의궤』를 살펴보지 않고는 조선시대 고건축의 세부명칭, 재료와 도구 등에 관해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의궤』를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사회상과 경제생활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의궤』는 권수(卷首) 1권, 본문 6권, 부록 3권을 합하여 총 10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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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시 마을신앙 디지털 사전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도 >화성시

    화성시 마을신앙 디지털 사전
    경기도 화성시의 마을신앙을 정리한 디지털 사전이다. 경기도 화성시의 마을신앙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도시화를 거쳐 쇠퇴하고 있다. 이에 16개 읍의 마을마다 전해오는 동제나 산신제 등 다양한 민간신앙을 취재 및 정리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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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고랑 넘어야 먹을 수 있는 바지락칼국수, 그 깊은 시원함”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면적 0.98㎢)이다. "저비섬", "접비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북쪽의 자갈밭과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모두 갯벌인 제부도에서는 예전에는 바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갯벌에 숨은 바지락을 한 양동이씩 캐왔다. 전국적으로 바지락이 생산되고 있지만, 서해안의 바지락이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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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지 '백조'를 만든 시인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쓴 시인 홍사용은 17세에 휘문의숙에서 3.1운동에 체포되었다가 3개월 뒤 풀려났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문예지 『백조』를 기획하여 3회 간행했다. 토월회에도 가담했고, 희곡 「김옥균전」을 쓰기도 했다. 그는 주로 감상적이면서 민족주의적인 장시와 민요시를 썼다. 경기도 화성시에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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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을 전하는 불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부모님의 은혜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불교 경전이다. 단순히 효행의 실천을 제시하기보다 부모의 은혜를 알고 보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많은 이본이 전하고 있으나 경기도 화성 용주사본이 대표적이다. 용주사본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 현륭원을 조성하며 용주사를 창건하고 함께 봉안한 것이다.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행은 오늘날까지 그 정신이 이어져 경기도 화성이 효의 고장이라는 지역문화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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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정조는 1793년 12월 6일에 영의정을 역임한 채제공(蔡濟恭)을 총리대신으로, 훈련대장을 역임한 조심태(趙心泰)를 감동당상으로 임명하면서 화성건설을 본격화하였다. 이어 12월 8일에 화성성역소를 설치하고 낭관(郎官)의 우두머리인 도청에 이유경(李儒敬)을 임명하였다. 그 하위 단위는 작업관리 및 현장감독 분야와 사무관리 및 지원부서로 나누었다.화성 성역에 동원된 기술자는 석수, 목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수레장이, 화공, 가칠장이, 큰끌톱장이, 작은끌톱장이, 기거장이, 걸톱장이, 조각장이, 마조장이, 선장, 나막신장이, 안자장이, 병풍장이, 박배장이, 부계장이, 회장이 등 549명이었다.기술자를 제외한 모군(품팔이)은 화성 성역 현장에서는 자재를 운반하는 담군과 허드렛일을 하는 모군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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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정조는 1793년 12월 6일에 영의정을 역임한 채제공(蔡濟恭)을 총리대신으로, 훈련대장을 역임한 조심태(趙心泰)를 감동당상으로 임명하면서 화성건설을 본격화하였다. 이어 12월 8일에 화성성역소를 설치하고 낭관(郎官)의 우두머리인 도청에 이유경(李儒敬)을 임명하였다. 그 하위 단위는 작업관리 및 현장감독 분야와 사무관리 및 지원부서로 나누었다.화성 성역에 동원된 기술자는 석수, 목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수레장이, 화공, 가칠장이, 큰끌톱장이, 작은끌톱장이, 기거장이, 걸톱장이, 조각장이, 마조장이, 선장, 나막신장이, 안자장이, 병풍장이, 박배장이, 부계장이, 회장이 등 549명이었다.기술자를 제외한 모군(품팔이)은 화성 성역 현장에서는 자재를 운반하는 담군과 허드렛일을 하는 모군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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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축조를 위한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화성 건설에서 돌은 숙지산과 여기산 두 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 그리고 팔달산 등 모두 여섯 군데에서 채취하였다. 모두 28만 7,600여 덩이가 축성에 소요되었다. 목재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재목을 베어 오거나 사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조달하였다. 먼저 국가에서 관리하던 안면도 · 장산곶 · 강원도 지역에서의 조달은 직접 베어내어 운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기와와 벽돌은 왕륜면 백운동 성역소에서 땔나무를 마련하여 조달하였다. 기와가마는 왕륜과 서봉동에 설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철물은 그 사용 용도가 다양하였다. 철물은 해서(황해도), 호서(전라도), 관동(강원도), 서울, 수원부 등 각처에서 사왔다. 다산 정약용의 발명품인 거중기는 왕실에서 1부를 내려주었다. 유형거는 왕실에서 1량을 내려주고 10량을 새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숯, 석회, 장기산 뇌록, 종이, 붓, 먹, 벼룻돌, 숙마, 느릅나무 껍질인 유피, 쇠가죽, 빈 가마니, 숫돌 등이 조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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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한만큼 받는 화성건설의 성과급제
    화성 건설에서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항은 임금 지불 방식에서 날품팔이들에게 짐을 옮긴 거리와 크기 그리고 회수에 따라 차등 지급한 성과급제를 시행한 것이다.그러나 대부분 하루에 2전 5푼 정도 일당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하였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는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조선 초기 강제로 동원되어 일을 하던 방식에서 화성 건설 시 돈을 주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은 보다 세상이 발전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자본주의적’인 사회로 변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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