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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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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9건)
  • 지역문화 Pick (74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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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공원 성씨비 (충주 홍주석씨, 전체)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 성씨비 (충주 홍주석씨, 전체)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인 뿌리공원에 소재한 성씨별 조형물에 대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써 영상물을 제작 및 보급하고자 함. 뿌리 공원의 성씨비를 사진 및 영상으로 촬영하고, 비문(설화)를 데이터 정리하여 추후 콘텐츠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 구축.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뿌리공원 성씨비 (대구서씨,전체)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 성씨비 (대구서씨,전체)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인 대전 뿌리공원의 사진이다.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공원시설 등을 갖춘 체험학습 교육장이다. 성씨비에는 각 성씨와 성과 본관, 유래 등을 표기하고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영양군

    얼음 구멍으로 잉어가 날아 나온 영양 비릿골
    경북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에는 비릿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소문난 효자인 조금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병이 들어 누워있던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조금은 잉어를 구하기 위해 강으로 갔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강물도 꽁꽁 얼어있었다. 조금이 잉어를 잡기 위해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얼음 구멍으로 잉어 한 마리가 날아오르듯 튀어나왔다. 조금이 잡은 잉어를 먹은 아버지는 병이 싹 나았다. 이후 사람들은 조금이 살던 마을을 잉어가 날아오른 곳이라 하여 비리골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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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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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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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북도 >완주군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한 전북 완주 유석진 효자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읍 읍내리에는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던 유석진의 효행을 기린 유석진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유석진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생존했던 인물로,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이니 아버지의 병이 곧바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고 『삼강행실도』에 실리게 되었다. 유석진이 실천한 방법은 현대에서는 어려운 것이지만 그의 효행 정신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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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세종특별자치시

    남양 홍씨 9명의 효자를 기리는 연서 효교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 713-55 번지에는 연서 효교비가 세워져 있다. 연서면 일원에는 남양 홍씨 문중에는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있었다. 홍연경(洪延慶)과 아들 홍연설(洪延卨), 손자 홍우적(洪禹積), 홍우평(洪禹平), 홍우구(洪禹九), 증손자 홍방만(洪鈁?), 현손 홍득후(洪得厚), 홍득일(洪得一), 5세손 홍상직(洪相直)이다. 이러한 홍씨 문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49년인 1773년에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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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충청남도 >예산군

    조선을 감동시킨 우애 깊은 형제, 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06-2 번지에는 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가 건립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효심이 깊고 형제간에 우애가 좋았던 이성만 형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는 1418년인 세종 1년에 하연(河演)의 청원에 따라 1497년인 연산군 3년에 건립되었다. 효제비는 본래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의 대흥관아에 위치해 있었지만, 예당저수지 수몰로 인하여 197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비문은 이성만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내용이며, 전면과 좌측면에 총 173자로 가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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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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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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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광역시 > 달성군

    연꽃향이 은은하게 나는 하향주
    하향주는 연꽃향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실제로 연꽃이나 연잎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향주는 백일주,유가주, 음동주라도 부르기도 하는 술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음리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향주는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있는 역사가 깊은 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기록과 현재 만드는 법에는 다소 차이가 나타난다. 하향주가 유명해진 이유는 광해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슬산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지휘관이었던 광해군이 비슬산에 머물면서 하향주를 맛보게 되었다. 그 맛에 감동한 광해군이 천하의 명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 이후 상달인 10월이면 왕실로 하향주가 진상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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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남도 >하동군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 발효차
    한국에서 차의 재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발효한 찻잎을 뭉친 떡차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오늘날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차나무를 재배하던 지역인데, 전통적으로 발효차를 마셨다. 발효차는 찻잎을 따서 일정시간 둔 다음 쪄서 말린 것이다. 찻잎을 발효하였으므로 차의 색깔이 녹색이 아니고 홍색이나 검은색이다. 이 지역에서 발효차는 갈증을 해소할 때, 기분 전환할 때, 손님을 접대할 때, 고된 노동을 달래주는 음료, 혼례, 제례 등에 의례용 등으로 쓰였다. 1960년대까지 발효차는 하동과 전남 광양․순천․곡성 지역에서 차시(茶市)를 포함한 장시와 방문판매 등의 형태로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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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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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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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북도 >부안군

    염장만큼 숙성이 중요한 젓갈
    젓갈은 어패류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킨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젓갈생산지역으로 유명한 곳 중 하나가 곰소만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섬이었던 곰소가 육지가 연결되고 그 부근의 갯벌은 염전이 되었다. 염전에서 천일염이 많이 생산되어 젓갈의 재료로 쓰였다. 곰소만에서 잡히는 어패류가 다양했으므로 곰소만의 젓갈은 다양하다. 젓갈은 신선한 해산물을 잡은 즉시 바로 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숙성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젓갈의 숙성은 곰소만의 객주들이 했는데 이들은 주로 충남의 광천굴, 폐광, 폐터널 등에서 젓갈을 숙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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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광역시 >강화군

    70년대까지 객주가 팔았던 강화도 새우젓
    새우젓이 대중적으로 소비된 것은 조선시대 19세기 무렵이다. 젓새우잡이 어업은 황해도 해주에서 광양만에 이르는 서해안 일대에서 발달하였다. 젓새우가 큰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뻘 지역에 많이 살기 때문이다. 젓새우는 음력 3월부터 바다의 깊은 곳에 갔다가 8월 무렵 연안으로 회유하는 습성이 있다. 그리하여 가을 무렵 젓새우를 잡아 염장한다. 1960년대 이후 강화도 어장의 어민들이 젓새우 잡이에 관심을 가지면서 1970년대 중반 이후 강화도에서 젓새우잡이가 중심어업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한강지역의 오염, 간척사업, 영종도 국제공항의 건설 등으로 강화도 인근의 젓새우잡이는 위축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지구온난화로 젓새우가 강화도 지역에 많이 출현하면서 다시 왕성해졌다. 2005년 이후 매년 ‘강화새우젓축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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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의 최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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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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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국

    청나라의 침입에 다시 일어난 정묘의병
    1627년 1월 13일 후금군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침범하자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 의병투쟁에 나섰다. 의주에서는 최효일․백종남이 활약하였고, 철산에서는 김려기, 선천에서는 지득남, 용천에서는 김우 등이 의병을 조직하여 항전하였다. 그중 가장 뛰어난 의병부대는 용골 산성에서 봉기한 정봉수 의병장이었다. 의병들은 후금과 강화 이후에도 8월까지 곳곳에서 항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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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의 애환과 별미, 막국수
    막국수는 메밀로 만든 국수에 국물을 넣거나 양념장을 넣어 비벼먹는 음식이다. 메밀의 알맹이 외에 껍질도 국수반죽에 넣어서 색깔이 갈색인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메밀을 재배하여 조선시대까지 국수는 대부분 메밀국수였다. 메밀이 특히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잘 자랐으므로 메밀로 만든 막국수는 강원도의 향토음식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막국수는 춘천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메밀 경작이 줄어들자 평창군이 메밀경작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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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도 >횡성군

    한겨울에 홍시를 구한 효자
    냉동 기술 같은 것이 없던 겨울에 자신의 어머니가 병환에 홍시를 찾았다. 그래서 효자는 감나무밭에 가서 감을 찾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호랑이를 타고 한 산골 집에 갔는데, 그 집이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그 집에서 마침 제사음식을 내왔는데 거기에 감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홍시를 갖다 드릴 수 있었다. 홍시는 효자의 효성이 지극해 한 겨울에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모두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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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도 >횡성군

    효자와 호랑이
    옛날에 임금이 효자, 효녀에게 교지라는 벼슬을 주었다. 한 아버지가 아주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가 아파서 헐었는데, 약이 없어서 자식은 그 종기를 자기 입으로 빨아서 빼냈다.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후 장사를 지내려고 죽은 사람을 싣고서 떠나려는데 호랑이가 와서 등에 타라고 했다. 이후 장사를 모두 지내고 나서 호랑이와 자식은 3년을 같이 살았다. 이 이야기는 임금님 귀에 들어가서 그 아들에게 벼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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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남도 >함안군

    동자삼과 외아들
    옛날 효성이 지극한 한 부부가 외동아들을 늙으신 병환에 시탕하여 노모를 살려낸 이야기가 대산면 서촌리 동촌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전해오고 있다. 노모를 살리기 위해 자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시탕한 것은 외동아들이 아닌 동자삼이었다. 이는 하늘이 효성을 시험했던 것으로 외동아들이 아닌 동자삼으로 노모를 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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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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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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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도 >춘천시

    효자가 살았던 춘천시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孝子洞)과 거두리(擧頭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춘천의 지명에 효자동과 거두리와 대룡산이 있다.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는 이 지명이 생긴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효자는 조선조 때 춘천에 살던 반희언이라는 사람 이야기라고도 한다. 효자 반희언(潘希彦)은 임진왜란 때 용감했던 장군 반처량(潘處良)의 아들로서 희언은 1554년 5월 18일 춘천 퇴계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를 임진왜란에 잃고 홀로 어머니를 돌보면서 효자노릇을 했다. 그의 효성을 표창하여 나라에서 효자문을 내렸는데, 그 때문에 효자동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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