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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서울 바위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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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자녀를 얻고 싶을 때 기도하는 인왕산 선바위
    선바위는 서울의 인왕산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의 모양이 스님이 장삼을 입은 모습과 같다 하여 선(禪)바위라 한다. 조선시대에 한양도성을 쌓을 때 선바위의 포함 여부를 두고 태조 이성계, 정도전, 무학대사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선바위를 석불님, 석불각, 관세음보살님이라고도 한다. 선바위와 인근 바위에는 풍화작용으로 인한 구멍이 많다. 그 바위들의 구멍에 작은 돌이나 동전을 붙이고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자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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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세초례(洗草禮)를 했던 세검정 차일암
    조선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새로운 왕이 실록청이라는 기구를 임시로 만들고 사초를 모아서 정리를 하는데, 그 결과물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이 완성되면 실록의 토대가 되는 기초 사료인 사초를 세검정에 모여 정자 아래 흐르는 물에 씻어낸다. 이러한 의식을 세초례라고 한다. 세초례는 사초의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종이가 귀한 당시의 상황에서 재활용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세초례를 하던 바위에 차일을 치고 행사를 했기 때문에 바위의 이름을 차일암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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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한국 소설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이태준
    이태준은 한국의 대표적 근대 소설가이다. 「달밤」, 「장마」, 「손거부」 등의 단편소설은 문체와 구성이 탁월하여 근대 소설 형식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쓴 「문장강화」는 지금까지도 글쓰기의 교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종합문예지 「문장」을 만들었으며, 순수문학을 지향한 구인회에 가담했으나 1946년 월북했다. 서울 성북동의 수연산방은 이태준이 거주했던 가옥으로 운치있는 분위기의 찻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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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
    추사체를 만든 조선후기 문신이자 실학자, 서화가이다. 김정희는 학문뿐만 아니라 그림과 초서, 해서, 전서, 예서 등의 글씨에까지 뛰어났던 인물이다. 학문, 예술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북한산에 있던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라는 것을 고증학적으로 밝혀냈다. 말년에 그만의 글씨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산수화와 난초 그림을 잘 그렸다. 그가 남긴 「세한도」에는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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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화강암 석조건축으로 학교를 만든 건축가 박동진
    박동진은 한국의 건축가이다. 우리나라 제1세대 근대건축가의 한 사람으로 고딕 양식의 석조건물로 우리 민족의 정신과 기풍을 담아낸 건축가로 평가된다. 붉은 벽돌로 지은 일본계 학교와 대조되는 화강암 고딕 양식의 한국 학교건축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주요 작품으로 보성전문학교 본관과 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영락교회, 남대문교회, 중앙중학교 본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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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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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4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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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낙성대 강감찬 장군 이야기
    강감찬 장군에게 제자가 있었다. 가을에 제자와 어디를 가는데 고개에서 머리에 보자기를 이고 오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둘은 보자기에 무엇이 들었는지 내기를 했다. 강감찬 장군은 밤이 64개 들어있다 하고, 제자는 고구마라고 하였다. 아주머니는 밤 64개가 들어있다고 알려주었다. 길을 가는데 해가 저물어 어느 집에서 하루 저녁 쉬어 가고자 사람을 부르니 중년 부인이 나왔다. 부인이 저녁을 차리는데 둘이서 또 내기를 하였다. 강감찬 장군은 전이라고 하고, 제자는 국수라 하였다. 부인이 가지고 온 음식을 보니 전이었다. 강감찬 장군이 제자에게 어떻게 국수가 나오리라 생각했는지 묻자 제자가 사시가 뱀 사(巳)이기 때문에 뱀이 길기에 국수라 하였다 했다. 강감찬 장군은 뱀은 방에 또아리를 틀고 자니까 전이 나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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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중랑구

    터를 누른 성덕사
    중화동 303-10번지에 성덕사가 있다. 한 노인이 산 중턱에서 나무를 했는데, 베어도 다시 세워져 있는 나무를 보고는 마을로 도망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스님이 그곳은 많은 사람의 원한이 서린 곳이라서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치성을 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넷인 과부가 스님이 당부한 대로 매년 인형을 매달아서 치성을 올렸다. 덕분에 과부의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다. 이후 과부는 자기가 죽기 직전 자손들을 모두 불러 치성을 올려야 한다고 당부하며 세상을 떠났다. 광복이 되고 이곳에 성덕사를 짓게 되었는데, 절이 건립된 후로 치성을 드려 사람들이 크게 다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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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중랑구

    봉화산 아기장수가 무릎을 짚은 장사바위
    아차산 아래 동네에서 장사가 태어났는데 옛날에는 장사가 나면 부모가 몰래 묻어 죽이거나 숨겨서 멀리 도망가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모는 아기를 죽일 수 없어서 몰래 키웠다. 하루는 아기장수가 몰래 다른 동네에 가서 놀다가 바위에 무릎을 짚고 엎드렸는데 무릎을 짚은 자국이 바위에 파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기장수는 동네 사람들에게 발각되었고, 사람들은 아기장수를 죽이려고 했다. 아기장수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군사들에게 맞아 죽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해마다 중랑천이 넘쳤고, 손바닥 자국이 생긴 바위가 있는 마을은 검은 석탄가루가 날리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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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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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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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토지주택박물관’, 살냄새 나는 집과 땅에 관한 이야기
    토지주택박물관은 우리의 ’주거 문화’와 ‘건축 기술’을 주제로 연구, 조사, 교육하는 박물관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운영하고 있다. 1997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문을 열었다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진주로 옮겨오면서 함께 이전했다. 전시실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1층은 시대별로 다른 형태의 집 다섯 채를 만들어 놓은 뒤 관련 유물을 두루 전시했고, 2층은 건축에 쓰이는 도구와 재료의 종류를 알고, 직접 재료를 체험할 수 있게 꾸며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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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활을 쏘며 호연지기를 길렀던, 창경궁 관덕정
    관덕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창경궁 내 춘당대 터 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춘당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과거와 활쏘기 등 무술 연마를 왕이 신하들과 관전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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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흥선대원군의 별서, 서울 석파정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산16-1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형 정자이다. 석파정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창의문 밖에 있으면서 인왕산 동쪽의 돌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거대한 암석과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아 예로부터 한양 도성의 경승지로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을 소유하기 이전부터 이곳에는 조정만이 세운 소수운렴암이 있었으며, 19세기에는 김흥근의 삼계동정사가 있었다. 고종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고 안동김씨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한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으로부터 그의 별장을 빼앗아 자신의 호를 따서 석파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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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강서구

    이태백의 시문을 따서 지은, 서울 이수정
    이수정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염창동 103번지 도당산(都堂山) 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옛날에 이곳은 양천현 지역으로, 원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임정(林亭)이 있었다. 후에 그의 후손 한산군(韓山君) 이덕연(李德演)과 그의 아우 이덕형(李德泂)이 이수정(二水亭)이라는 이름으로 정자를 다시 지었다. 이수정은 이태백(李太白)의 시 ‘이수는 백로주를 끼고 둘로 나뉘었다[二水中分白鷺洲]’라는 구절에서 정자명을 취하였다. 현재 그 터에 표석만이 남아 있는데, 정선이 그린 「이수정도(二水亭圖)」를 통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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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북구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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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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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문인들이 모인 산속의 집, 성북구 상허 이태준 가옥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상허 이태준 가옥은 이태준이 1933년에 지어 1946년까지 살던 집이다. 이곳에서 이태준은 단편 「달밤」, 「돌다리」, 중편 「코스포스 피는 정원」, 장편 『왕자 호동(王子好童))』, 『황진이(黃眞伊)』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가옥은 별채가 없이 안채와 사랑채가 결합된 본채만 있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1호인 상허 이태준 가옥은 1900년대 개량한옥의 요소들을 잘 갖춘 중요한 민속자료이다. 현재 이 가옥은 이태준의 외종 손녀가 ‘수연산방’이라는 전통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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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애국지사 한규설의 개량한옥, 장교동 한규설 가옥
    장교동 한규설 가옥은 1890년대 지은 것으로,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애국지사인 한규설이 살던 개량식 한옥이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7호인 장교동 한규설 가옥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여 사랑채에 보일러 난방을 하였으나 국민대학교로 이건하면서 제외되어 지금을 볼 수 없다. 장교동 한규설 가옥은 현재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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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1906년 건립된 목조 기와집, 성북동의 마포 최사영 가옥
    최사영은 대한제국의 관료로 금융업과 창고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마포 최사영 가옥은 마포동 236번지 일대에 지어졌으나 여러 차례 토지 분할로 인해 2001년 성북동으로 옮겨진 안채만 남아 있는 상태다. 마포 최사영 가옥은 건물의 조형미와 부재의 가공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건축 당시 서울지역에 살던 최상위 계층의 가옥의 건립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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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비롯된 양조간장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선땅에 살게 되면서 일본인 거주구역에 일본간장공장 즉, 장유공장이 설립되었다. 일본은 1882년 이후 간장의 양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공장에서 간장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1차 세계대전 후 아미노산 간장을 대량으로 제조했다. 그 대표적인 회사인 야전장유공장에서 만드는 기꼬망간장은 일본 궁내성에도 납품할 정도였다. 야전장유공장의 분점이 인천에도 설치되었고, 이곳은 관광지로 견학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조선인들은 양조간장을 낯설어했지만 곧 익숙해지게 되었고 지금 한국인의 부엌에는 양조간장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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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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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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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동대문구

    조선시대 한양의 강우량을 측정하다. 서울 청계천 수표
    청계천은 조선시대에도 비가 적은 시기에는 건천이지만 우기에는 홍수가 날 정도로 유량의 차이가 큰 하천이었다. 청계천은 도성의 한가운데 위치했기 때문에, 청계천의 범람은 인근지역의 수몰과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따라서 청계천의 유량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으며, 세종은 청계천 정비 과정에서 수표를 설치하여 수위를 측정하게 하였다. 오늘날 서울 청계천 수표는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원래는 수표동 수표교 옆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1960년에 장충단으로 옮겨졌으며 197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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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중구

    관료의 등급에 따라 정해진 조정의 자리, 품계석
    조선시대에 국가를 운영한 것은 양반 관료였다.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국가 관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양반체제는 조선시대에 확립되었고, 조선 초에 이르러 문반과 무반의 관직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품계가 완성되었다. 조선의 품계는 정1품부터 종9품까지 총 18단계로 구성되었다. 양반 관료들은 조회, 하례와 같은 국가의 주요 행사 때 정전 앞뜰에 모여 행사를 진행했는데, 품계석을 세워 관료들이 품계에 따라 설 자리를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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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도로의 시작점, 도로원표
    도로원표(道路元標)란 도로의 시작지점[起點]과 도착지점[終點] 또는 경과지점을 표시한 도로 부설물이다. 도로원표는 주로 내구성이 높은 석재로 제작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원표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광장 중앙에 설치한 것이다. 이 도로원표에는 전국 18개 도시까지의 거리를 표시해두었다. 이후 교보빌딩 앞에 위치한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稱慶紀念碑)’로 자리를 옮겨 보존하였다. 1997년에는 새로운 도로원표를 제작하였는데, 기준점 위치인 광화문 광장에서 151m 떨어진 세종로 광화문파출소 앞 광장에 설치하였다. 도로원표는 전국 도로 교통망의 연계를 보여주는 표식이자 상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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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염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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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마포구

    소금장수가 많이 살았던 마포나루 옆 염리동의 소금길
    소금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식품이다. 서해의 갯벌에서 생산되어 한양으로 운송된 소금은 한강을 통해 마포나루에서 하역되었다. 마포나루에서 부려진 소금은 광흥창 부근의 소금창고로 이동해 보관되다가 한양에 사는 소비자들에게 공급되었다. 광흥창 부근의 소금창고에서 소금을 구입하려는 상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생긴 마을이 염리동이다. 즉 염리동은 소금장수들의 마을이었다. 지금은 염리동 사람들이 소금을 판매하고 운송하던 옛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과거 염리동 사람들의 생활상은 현대에 조성된 소금길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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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연기우 의병부대의 부장으로 활동한 한 남자의 이야기
    양주군 노원면 출신의 김성삼은 시위대 군인 출신 의병이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연기우 의병부대의 부장으로서 연합 의병부대인 13도창의군과 관동창의원수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노원 지역을 근거로 군자금과 군수물자를 모집하다가, 1908년 6월 24일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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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진공작전의 주역, 노원에서 의병전쟁을 이끌다
    이은찬은 1907년 9월 이인영의 관동창의대장 중군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3도 창의군에도 가담하여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 이어 임진강연합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창의원수부를 결성하여 1908~1909년 서파동‧돌압산 전투 등 포천, 양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전과(戰果, 전투에서 올린 성과)를 올렸다. 1909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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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동학농민군이었다가 농민의병으로도 항쟁한 김수민
    김수민은 한말 후기 의병기에 경기도 동북부 지역의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이다. 그는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한 바도 있는 농민으로서 의병전쟁에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무기를 제조하거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1908년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도 참여하였으며 경기도와 강원도, 황해도 일대를 옮겨다니며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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