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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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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를 강하게 만든 신라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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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

    신라를 강하게 만든 신라성곽

    신라는 서남쪽으로 백제, 가야와 국경을 접하게 되고 바다 건너 왜(倭)의 침공도 그치지 않았다. 또 동북으로는 동해안을 따라 말갈이 수시로 침범해 왔고 진평왕 때부터는 남으로 내려오는 고구려의 세력에 맞서 항쟁해야 했다. 이러한 세력들의 사이에서 성장한 신라는 일찍부터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시조 박혁거세가 기원전 37년(혁거세 21)에 서울에 금성(金城)을 쌓았고 101년(파사왕 22)에 월성을 쌓았다. 470년(자비왕 13)에는 지방의 요새인 삼년산성을 쌓기도 하였다. 월성을 방어하기 위해 경주지역 내에 산성 11개소가 축조되었으며 신라지역에 있는 신라 성곽 수는 대략 160여 개소로 추산한다. 신라 초기 성곽은 흙으로 쌓은 토축이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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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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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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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의 도읍을 지키는 백제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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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백제의 도읍을 지키는 백제성곽

    백제의 성곽의 변화는 첫 도읍이었던 위례성(지금의 풍납토성)을 중심으로 한 500년간의 한강 중심 지역인 한성시대가 주를 이루고 공주의 웅진시대와 부여로 수도를 옮긴 사비시대를 합한 200여 년간을 나누어 살펴야 할 것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한성시대의 성곽은 위례성․탕정성․북한산성 등 16개가 있다. 474년(개로왕 21) 9월에 고구려왕 거련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한성을 에워싸고 백제 개로왕을 죽였다. 그리하여 한성시대가 막을 내렸다. 475년(문주왕 1) 10월에 도읍을 웅진으로 옮겼다. 도성인 공산성은 웅진성이라고도 한다. 538년(성왕 16) 봄에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다. 이때 도성을 부소산성 또는 사비성이라 한다. 백제의 성은 풍납동 토성과 정주의 정북동 토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성으로 분류된다. 목책을 상대적으로 많이 세워 활용하였고 토축 특히 판축기법이 일찍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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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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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국외

    몽고족과 왜구로부터 고려를 지켜준 성곽

    고려는 태조 이후 예종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 동안 북방의 변경에 많은 성을 쌓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천리장성의 축조와 윤관의 9성 설치는 적극적인 영토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고려시대에는 석성보다 토성을 더 많이 쌓았으며 도성인 개경이나 강화에도 토성을 쌓았다.

    고려 말에는 왜구를 막기 위해 해안지방에 읍성이 만들어졌다.

    개경의 도성은 황성, 궁성, 나성, 내성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건설 시기는 각기 다르다. 13세기에 이르러 몽고족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시기가 있다. 이 시기의 강도(江都) 역시 개경 도성을 그대로 모방하여 궁성을 포함한 내성(內城)과 중성(中城) 외성(外城)을 축조하였다. 경기도에는 110여 개소의 성곽이 고려시대에 새롭게 축조되거나 수· 개축의 과정을 거치면서 재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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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발해유적이 숨쉬고 있는 발해성곽

    발해(698~926년)는 지금의 북한지역과 중국 동북지역,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아무르지역에 걸쳐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발해유적은 이 지역들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성곽의 규모를 보면 중경, 동경, 상경 지역권에 수도와 부성이 위치했기 때문에 대형 성곽이 많다. 특히 상경 지역권은 특대형인 상경성이 있어 이 지역이 오랫동안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평지성에는 각 행정의 중심지가 있었다. 성곽의 입지,규모 등의 요소는 행정 단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중대형과 중형성은 주의 중심지, 소형성은 현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발해성곽에는 중원 고구려 말갈의 축성 전통이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특징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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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한양도성 중구 투어 리플렛 (앞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한양도성 중구 투어 리플렛 (앞면)
    서울 한양도성 4내산(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구간 중 남산 성곽 부분, 특히 각자성석을 중심으로 중구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함. 남산(중구) 성곽의 각자성석과 조선시대 공사 실명제 및 남산성곽 암문 자료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당시 모습을 스토리텔링하는 책자와 홍보 리플렛 제작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성곽 내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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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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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광주시

    고구려의 방패, 고구려성곽

    고구려 성곽은 요령성의 요하와 태자하 주변, 길림성의 집안 그리고 평양에 주요 성곽들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한강유역과 임진강, 한탄강 및 남한강에도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고구려는 중국의 한나라와의 긴장 상태에서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비롯하여 55년(태조대왕 3)에는 요서에 10개 성, 환도성 등을 쌓았다.

    후한이 220년에 망하고 위, 오, 촉 삼국이 들어선 후 위나라의 관구검에 의해서 환도성이 함락되면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성곽은 평지성과 산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구려 성곽은 석축성, 토축성, 토석혼축성, 목책성 등이 있는데 주로 석성이 발달하였다. 축조방식은 들여쌓기와 그랭이공법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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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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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광주시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그해 10월에는 국왕과 정부관리들이 한양으로 옮겨갔다. 한양성의 전체 길이는 약 18km로서 외겹성의 평산성으로 되어있다.

    남동쪽과 북쪽에는 각각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이 구축되었다. 특히 수원화성에는 총포에 대비하여 숙종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큰 성돌로 쌓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학자들의 견해를 반영하여 벽돌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점이 특징이다.

    조선 전기에는 산성 축성이 크게 유행하였다. 태종 10년경을 전후로 북방의 여러 거점 성곽과 경상도․전라도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에는 약 111개의 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 산성은 점차 퇴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많은 산성이 축조되었다.

    읍성의 축조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이다.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에 읍성 축조가 계속되었으며 특히 주민들이 모여 사는 읍성이 190여 개나 되었는데 약 절반에 해당하는 읍들에 새로 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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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성을 동시에 볼 수있는 홍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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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충청남도 >홍성군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성을 동시에 볼 수있는 홍주읍성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가 남아있고 높이 4~5m이다. 동쪽을 제외하고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는 삼태기형의 돌로 쌓은 평지읍성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1451년(문종 1)에 새로 고쳐 쌓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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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로왕이 굴욕을 겪은 아차산성

    출처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광진구

    개로왕이 굴욕을 겪은 아차산성

    해발 285m의 아차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퇴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약 1,125m이다. 268년(책계왕 원년) 이를 수축하여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였으며 475년(개로왕 21) 9월 고구려 장수왕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백제에 침입하여 개로왕을 죽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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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가 가득한 호암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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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금천구

    이야기가 가득한 호암산성

    호암산성은 해발 347m의 호암산 산마루를 둘러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테뫼식 산성이다. 해발325m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고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였다. 성곽의 둘레는 약1,547m, 그 중 약 300m 구간에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1991년 3월 26일 사적 제343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7월 28일 ‘한우물 및 주변산성지’에서 서울 호암산성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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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송파구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 몽촌토성

    한강의 지류인 성내천 남쪽에 있으며, 둘레가 약 2.7㎞ 되는 백제 전기의 토성이다. 성벽의 축조는 순염토와 모래가 섞인 점질성 토양을 물에 개어 굳게 다진 것처럼 견고하게 쌓았으며, 성벽 위의 성가퀴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그 성가퀴 위에 목책을 설비하였다. 또 토성 밖 둘레에는 해자시설이 되어 있었다.

    성의 성격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있는데, 백제의 도성인 위례성이라는 견해와 방어용 성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낙랑, 말갈 등 북방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국사적 목적으로 3세기 중후반경 전략적 요충지로서 몽촌토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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