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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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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서울 >은평구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던 연행길
    조선 시대에는 정기 사절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명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조천이라 했으며, 청나라로 가던 길은 수도인 연경(燕京)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연행이라 했다. 연행길에는 30여 명의 공식 사절단과 함께 4~5백 명의 수행원이 뒤따랐다. 연경에 한 번 다녀오는 기간은 6달 이상이나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근대 이전 나라 밖으로의 여행이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고려하면 조선 시대의 연행은 나름의 세계여행에 빗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이동 경로는 한양에서 출발하여 평양과 의주를 지났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서면 봉황성-요양-심양-백기보-광녕-영원위-산해관-풍윤현-계주-통주를 지나 북경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한양으로 오던 사신들도 이 길을 따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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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장흥 고씨의 금기 전설
    장흥 고씨 진사공파는 대대로 ‘자라를 먹지 않는 금기(禁忌)’를 지켜왔다. 그 기원은 고자신의 모친 광산김씨가 태몽을 꾼 뒤, 삶아 먹으려던 자라 일곱 마리를 강에 풀어주었고, 그로써 아들 일곱 형제를 얻게 된 데서 비롯된다. 이 신성한 인연은 고구려 시조 주몽을 도왔던 자라 설화와도 맞닿아 있다. 지금도 장성·담양 등 장흥 고씨 집성촌에서는 자라 포획과 식용을 금하며, 이 전통은 도산사·천산재 등의 후손 제향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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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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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조선의 비밀정원 서울 성북동 별서 영벽지
    서울 성북동 별서 영벽지는 성락원내에 있는 연못이다. 성락원은 조선후기 전통정원으로 199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 제35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그리고 명칭도 ‘서울 성북동 별서’로 하였다. 영벽지는 성락원의 부속 연못이기는 하지만 자연미와 인공미가 어우러진, 조선시대 도성 내 남아있는 별서 가운데 몇 안 되는 정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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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
    캠프 하야리아에는 기지촌이 두 군데 있었다. 정문 맞은편 연지동과 후문에 해당하는 게이트 3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범전동이었다. 범전동 기지촌의 시작은 마을 빨래터였다. 범전동 주민 박 할머니에 따르면, 한국 군인에게서 빨래해달라는 부탁을 먼저 받았고, 이후 미군의 부탁을 받았다. 군인도 좋고 주민도 좋은 상생의 시작이었다. 6·25전쟁 초기에는 캠프 하야리아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눈치가 빨랐던 아이들은 어찌어찌 램프를 구해 와서는 1달러에 팔았다. 영어가 짧았던 꼬마들이 미군에게 접근하면서 했던 콩글리시가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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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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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중매인을 사이에 둔 만남, 맞선
    맞선은 과거 의혼과 같은 과정이다. 의혼은 중매인을 통해 신랑집과 신붓집이 혼인을 의논하는 절차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중매인을 통해 혼담이 오갔다. 본래는 혼인을 하는 당사자보다는 집안과 부모의 의견이 더 큰 역할을 하였으나 산업화가 되고 신분이 평등해지면서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있다. 자유연애가 증가하면서 맞선 역시 증가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관련 전문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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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전주시

    평생 갓을 쓰고 붓을 든 강암 송성용
    한국 서단의 흐름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 이후 전라도 남쪽은 특히 회화가 발달했고, 전북 지역은 서예와 사군자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전북의 역대 서예가 계보를 보면 조선 중기의 송일중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는 이삼만이 활약하며 지역 서단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 일제강점기에는 조벽하·이정직·송기면 등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고, 근현대에 이르러 시·서·화를 모두 겸비한 ‘시서화 삼절’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 바로 강암 송성룡이다. 강암의 위상은 오늘날에도 여러 사찰과 문화 명소에서 그의 글씨를 쉽게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높다. 대표적으로 경상도의 석굴암과 불국사, 내장산 내장사 일주문, 호남제일문 편액, 한벽당 편액 등이 그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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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동해안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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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경상도 청하의 송라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송라도(松羅驛)
    송라도는 조선시대 경상도 청하(지금의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있던 송라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며, 경상북도 동해안을 연결하는 역로를 관할했다. 송라도는 고려시대의 경주도를 계승했으며, 주변의 여러 역로와 통합 및 분리되는 과정을 거쳐 역로가 최종적으로 획정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를 비롯하여 경주시와 영덕군에 걸친 구간이 포함되었다. 포항에서 영덕까지는 동해선 철도가 개통되어 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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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보은군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던 말티재길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 불리는 말티재는 신라 진흥왕 때에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의신조사가 넘어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옛길이다. 말티재는 사람을 가마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힘든 구간이었다. 사람이 가마에서 내린 후 말에 옮겨 탔다는 고개일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도 어려웠던 길이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법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말티재 옛길의 북쪽에 속리터널이 개통되면서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이 감소했다. 말티재를 넘어가면 임금이 벼슬을 하사한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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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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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하동군

    지리산을 넘어 섬진강과 내륙을 연결하던 벽소령길
    지리산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벽소령은 경상남도 하동군과 함양군의 경계이다. 내륙에 자리한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은 소금을 구하기 위해 남해안 소금이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하역되는 화개장이나 하동장에서 소금을 구입한 후 벽소령을 넘어 마천면으로 돌아왔다. 당시 소금을 지고 걷던 길은 소금길이라 불리며, 소금을 짊어진 사람들이 걷던 소금쟁이능선이라 불리는 구간도 있다. 경상남도 사람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사람들도 섬진강에서 소금을 구입하기 위해 벽소령 옛길을 넘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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