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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국가에서 허가받은 장사꾼 시전상인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상설 상점을 ‘전(廛)’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시전은 국가에서 일정한 건물들을 지어 주고, 상인들은 시전 건물들을 빌려서 물건을 팔거나 거래를 하였다. 대신 국가에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지불하거나, 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였다. 조선시대의 시전상인들은 국가로부터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과 임시로 길가에 벌여 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난전(亂廛)을 금지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민간 상공업이 발달하고, 개항 이후 외국 상품이 유입되어 ‘금난전권’은 붕괴가 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았던‘시전상인’ 들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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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의 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은 고려 시대와 유사한 형태로 경시와 향시 그리고 국제시장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을 육성하면서 전기보다 발전했다. 특히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장악했고, 지방의 향시들은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시장에서는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일본 및 중국과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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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일본과의 개시무역을 담당한 동래상인
    조선시대 동래는 일본과의 관계로 경제적으로 중시되었던 곳이다. 1407년에 왜인의 왕래를 허락하고 동래의 부산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동래상인은 동래왜관과 왜관 주변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상인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좁은 의미의 동래상인은 개시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래상인들 가운데 ‘도중’은 왜관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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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경주를 지키는 경주읍성
    경상북도의 중심도시인 경주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이다. 완전한 평지성으로 방형이며 성벽 양쪽을 돌로 쌓아 올리는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2,412m에 이른다. 경주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경상도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행정읍성이었다. 특히 성벽 주위에 너비 3m의 해자를 둘렀는데 지금도 북쪽은 하수구로 이용되며 동쪽에도 일제강점기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읍성의 남문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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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결정하고, 그해 10월에는 국왕과 정부관리들이 한양으로 옮겨갔다. 조선 전기에는 산성 축성이 크게 유행하여 태종 10년경을 전후로 북방의 여러 거점 성곽과 경상도·전라도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하여 약 111개의 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 산성은 점차 퇴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에 읍성 축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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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통시장에서 거래물건의 대체방식
    한국의 전통시장에서는 다양한 상품들이 거래되었으며, 거래 관행에 따라 거래물건의 대체하는 다양한 거래문서들이 생겨났다. 특히 상품을 거래할 때는 수표, 임치장, 출차표 등을, 돈을 빌릴 때는 어음, 환간, 보음지, 삭채표 등의 문서들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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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도구
    전통시장에 물건을 운반하는 도구에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의 한 종류인 '달구지'가 있다. 달구지는 가장 능률적인 운반수단으로 대규모의 상단이 이동하는 경우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달구지를 대신한 운반도구에는 수레가 다니기 어려운 지역에서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하던 '썰매'와 '구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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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조선 후기 꿈꾸던 사회가 담긴 태평성시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미터가 넘는 비단에 그린 8폭짜리 그림이 있다.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그림을 “태평성시도”라고 부른다.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조선 후기 그림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따름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상점과 그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의 모습은 무엇을, 왜,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문자등으로 밝힌 ‘태평’을 통해 당대 태평한 도시를 꿈꾸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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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
    추사체를 만든 조선후기 문신이자 실학자, 서화가이다. 김정희는 학문뿐만 아니라 그림과 초서, 해서, 전서, 예서 등의 글씨에까지 뛰어났던 인물이다. 학문, 예술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북한산에 있던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라는 것을 고증학적으로 밝혀냈다. 말년에 그만의 글씨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산수화와 난초 그림을 잘 그렸다. 그가 남긴 「세한도」에는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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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조선시대 궁중정재를 집대성한 김창하
    김창하는 조선 후기 가전악, 전악, 집박아가를 역임한 음악가이자 무용가다. 정조 때 악사 대건의 둘째 아들로, 대대로 음악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김창하는 가얏고와 정재를 전공하였으며, 1816년(순조16)가전악에 임명, 1827년 전악으로 임명되었다. 궁중무용을 집대성하고 정재를 안무하기도 하였으며 당시의 정재를 정리하여 정재의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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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누항사』를 지은 조선의 3대 시인 박인로
    박인로는 정철, 윤선도와 함께 조선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1561년에 태어나 1642년에 돌아가셨는데, 생의 전반부는 무인으로, 생의 후반부는 문인이자 가객으로 살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 활동에 가담했다가 1599년에는 무과에 합격해 수문관, 선전관을 했으며 조라포 만호였던 시절 선정비도 세워졌다. 40세를 전후해 이덕형을 비롯한 문인들과 교유했는데, 그때 쓴 시조로 「조홍시가」, 「선상탄」, 「사제곡」, 「누항사」, 「영남가」, 「노계가」, 「입암별곡」, 「소유정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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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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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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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고려 충신이었으나 조선에서 추앙받은 포은 정몽주 선생묘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인 정몽주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격동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이성계가 의지하던 인물이었고, 정도전의 둘도 없는 정치적 동반자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정몽주는 고려를 버릴 수 없었기에 결국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당했다. 정몽주 묘는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이장하려다가 이장 행렬이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명정(銘旌)이 날아가 현재 묘 자리에 떨어지자 그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몽주의 묘에는 묘비, 문인석, 상석, 곡담 등의 석물 등을 배치하며 정몽주를 필두로 하는 정치적 대척세력을 포용하고자 하였다. 정몽주 묘의 석물 중 묘비와 문인석 1쌍, 상석, 곡담 등은 조성될 당시의 원형이 보존되어 내려오는 것으로 고려시대 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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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김해시

    김해에 남아있는 사대부의 묘의 석물양식, 김해 능동 석인상 및 상석
    김해 능동 석인상 및 상석은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 능동마을의 뒷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인상과 상석이다. 이곳에 있는 무덤은 가야 왕릉으로도 전해지고 있으나 석인상과 석상의 제작 기법을 볼 때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석인상은 두 기가 있는데, 키가 대략 160cm, 폭이 45cm 정도이며, 직사각형 돌기둥을 깎아 만들었다. 상석 중앙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는데, 양 끝에 안상의 일부가 남아있어 좌우로 상석이 더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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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동대문구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총통, 경희고소총통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약무기는 총통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된 화통도감에서 화약무기 연구를 시작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화약 무기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었다. 특히 세종은 재위 29년에 무기 개혁을 추진하여 조선의 화약무기는 성능이 한층 상승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세종의 무기 개혁 이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경희고소총통이 남아있다. 경희고소총통은 외부 형태가 명나라 초기의 것과 유사하며, 내부 구조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총의 구조와 비슷하다. 조선시대 무기 발전사를 이해함에 있어 경희고소총통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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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남구

    조선을 대표하는 의장용 보검, 삼인검과 사인검
    검은 흔히 만병의 왕, 곧 모든 병기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곤 한다. 이러한 검은 사람을 해하는 무기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사에서 사용하는 의례용구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검을 소지하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의장용·장식용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삼인검과 사인검은 조선의 왕실에서 제작한 대표적인 의장용 검이다. 이 검들은 아무나, 아무 때나, 아무 공간에서나 만들 수 없는, 제작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검이었다. 그 이유는 까다로운 제작 조건을 통해 삼인검과 사인검에 나쁜 귀신과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또한 삼인검과 사인검을 살펴보면 글자와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검이 지닌 벽사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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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이순신의 마음이 아로새겨진 충무공 장검
    충무공 장검은 길이 196.8㎝와 197.2㎝의 2점이며, 보물 326호로 지정되었다. 두 자루의 장검은 이순신이 1594년 4월 한산도 진중(陣中)에 있을 때 스스로 만든 칼이다. 전장에서 실제로 쓴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칼날에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친필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고, 칼자루 속에 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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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허미수(許眉叟)의 지네 퇴치와 허적(許積)의 출생담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조선 시대 후기의 학자인 허목(許穆)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허미수(허목) 설화들은 대부분 그의 이인적(異人的)인 풍모를 강조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허적과 관련된 출생담도 그중 하나다. 허미수가 지네를 죽이고 난 후에 동생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허미수가 죽인 지네가 환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는 족족 없앴다. 하지만 셋째 아이를 낳자 허적의 아버지는 가문의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며 아이를 죽일 수 없다고 한다. 결국 허적으로 인해 동생의 집안은 삼족이 멸하는 화를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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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동대문구

    조선시대 한양의 강우량을 측정하다. 서울 청계천 수표
    청계천은 조선시대에도 비가 적은 시기에는 건천이지만 우기에는 홍수가 날 정도로 유량의 차이가 큰 하천이었다. 청계천은 도성의 한가운데 위치했기 때문에, 청계천의 범람은 인근지역의 수몰과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따라서 청계천의 유량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으며, 세종은 청계천 정비 과정에서 수표를 설치하여 수위를 측정하게 하였다. 오늘날 서울 청계천 수표는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원래는 수표동 수표교 옆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1960년에 장충단으로 옮겨졌으며 197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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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쇄국 의지, 척화비
    척화비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서구 열강의 침략을 경계하고자 전국 곳곳에 세운 비석이다. 조선의 개항을 두고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이 일어났고 결정적으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무덤 도굴 사건이 독일인 오페르트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경계하고 쇄국의지를 알리기 위해 척화비를 설치하였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는 내용의 척화비는 그러나 조선의 개항을 거치며 철거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척화비는 20여기로 일제강점기 이후에 다시 발견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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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남양주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려라, 광릉 하마비
    옛날 사람들은 타고 있던 말에서 내림으로써 특정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공경심을 드러냈다. 하마비는 말에서 내려야하는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석으로 조선시대에 처음 설치되었다. 조선에서 하마비는 궁궐의 입구를 비롯하여 종묘 및 왕릉・조선 시대 교육 시설인 성균관・왕실과 관련된 사찰 앞에도 놓여졌다. 말을 타고 온 사람은 하마비에 이르면 말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걸어가야 했다. 광릉 하마비는 조선 왕릉의 하마비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광릉은 세조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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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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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조선시대의 옛 도로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은 전국 각 지방과 왕실을 연결하는 외방 도로를 만들어 중앙집권을 강화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6개의 대로가 방사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조선 후기 들어서는 10개의 대로를 확립했다. 도읍지인 한양과 그 주변 지역이 육상 교통로와 물길을 통한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한강 하류 지역은 한반도 교류의 중심지로서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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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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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강진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강진 염걸장군 묘소
    강진의 염걸 장군 묘소(康津廉傑將軍墓所)는 전라남도기념물제36로 1978년 9월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산61번지이다. 묘의 주인공 염걸은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했으며, 글재주 또한 뛰어나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비범함을 인정받았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서 능력을 발휘해서 수문장(守門將)의 벼슬에 올랐으나 도망가던 왜군을 추격하다가 거제도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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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조형도가 교유 장소로 활용했던 청송 동계정
    동계정은 동계 조형도의 정자이다. 조선 후기에 관직에서 물러난 조형도가 교유(交遊)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1613년(광해군 5) 덕성리 절벽 위에 동계정을 지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 전투에서 활약하고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에까지 올랐으나 광해군 때 불의를 보고도 충언하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낙향하여 동계정을 지었다. 정자는 원래 보현산 북쪽 용연의 동쪽에 있었다고 하나 6.25 전쟁과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규모도 더 증축하여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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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기수(沂水)와 무우(舞雩)의 즐거움이 있는 곳, 청송 풍호정
    풍호정은 풍호 신지(申祉)가 말년에 진보현 합강에 세운 정자이다. 신지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으로,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지만, 벼슬을 거부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신지는 그의 아버지 유언에 따라 합강마을에 풍호정을 지었다. 풍호정은 논어에 나오는 '기수(沂水)'는 멀고 '무우(舞雩)'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기수와 무우의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며 동생과 함께 풍류를 즐겼다. 풍호정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킨 신예남과 그의 부인 여흥민씨를 기리는 쌍절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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