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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조선시대 기록문화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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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관악구

    1896년에 만들어진 민간 야담집, 동야휘집
    『동야휘집』은 1869년에 이원명이 민간에서 전하는 이야기와 문헌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한 한문 야담집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정식적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꾸며 쓴 것이다. 『동야휘집』에는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 어려움에 놓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은혜를 갚는 이야기,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사회적인 상황과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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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한국 지도학의 성과가 집대성된 대동여지도
    서울역사박물관과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는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전국지도이다. 한반도를 22권의 책에 나누어 담아 휴대와 열람이 편하게 제작되었다. 김정호는 나라를 다스릴 때 국가의 지리와 역사를 담은 지도와 지리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에 축적된 지도학 자료를 바탕으로 신헌과 최한기 등의 도움을 받아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대동여지도』는 현대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과학적인 지도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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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관악구

    허균이 편찬한 은둔과 한가함에 대한 기록, 한정록
    『한정록』은 허균이 1618년에 관직에 물러나 있으면서 은둔과 한가함에 관한 중국 서적의 내용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한정록』의 핵심적인 내용인 ‘은거’는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개념이다. 옛날부터 지식인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자신의 목숨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은거 행위를 택했다. 허균은 『한정록』을 통해 ‘은거’에 한가로움을 더해 ‘한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한정록』은 당대 현실과 허균의 학문적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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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장인의 이름이 새겨진 현감 원만춘 청백선정 영세불망비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연봉리에 세워졌던 현감 원만춘 청백선정 영세불망비는 탑신이 철로 만들어진 철비이다. 원만춘은 홍천현감으로 재직할 때 주민들의 과중한 역을 조정하여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이 철비에는 다른 비석과 달리 장인 내금이가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간지에 따르면 1661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 머리에는 좌우로 돌기를 표현했으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홍천군 향토사료관으로 이전,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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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 천년의 기다림
    우리옛돌박물관은 천신일 관장이 설립한 돌 조각 전문 사립 박물관이다. 2000년 개관 당시에는 ‘세중옛돌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용인에 있었으나, 2015년부터 성북구로 옮겨 이름을 바꾸고 전시, 연구, 교육 활동을 더욱 활발히 벌이고 있다. 소장품으로는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벅수 등이 있는데 이 중 47점은 천신일 관장의 노력으로 일본에서 환수받은 것들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은 오랫동안 관심받지 못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우리의 소중한 옛 돌 조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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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 기록물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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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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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봉화군

    한양에서 태백산 사고를 연결하던 봉화로(奉化路)
    봉화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태백산 사고(太白山史庫)가 있던 경상도 봉화 지방으로 연결되던 간선도로로서, 태백산로라 불리기도 했다. 봉화로는 노선이 거의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어 최상의 교통조건을 구비한 곳이었다. 이 길은 죽령을 넘어 경상도를 잇기 때문에 한강 유역에서 상업활동을 하던 상인들에게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한강 수로와 나란히 뻗었기 때문에, 한강을 건너거나 접하면서 여러 상업이 번창한 포구를 발달시켰다. 그 가운데 송파장은 한양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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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죽산박씨 대종가에 전해오고 있는 유물
    죽산박씨 문정공파의 대종가인 임곡동의 박홍종가에 소중하게 전수보관 되어온 상아홀과 포도연, 앵무배는 중국 명나라 영종으로부터 하사받았다는 사실이 『竹山朴氏文靖公派譜』에 보이는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그 시기는 문정공 박원정이 세조 때 명나라의 사은사로 파견되었던 1464년(세조11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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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평택시

    양세충효정문, 이대에 걸친 충과 효를 쌓은 부자를 기리다
    원주원씨의 집성촌이 있는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상리 안골에는 충과 효를 쌓은 원연(1543~1594)과 원사립(1569~1610) 부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양세충효정문(兩世忠孝旌門)이 있다. 원연은 선조 때의 무관으로 임진왜란에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아, 나라를 지켰고 전쟁 후에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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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나는 고려를 버릴 수 없나이다, 광주 범세동 묘지
    고려 말 포은 정몽주의 제자인 복애 범세동은 공민왕 18년(1369)에 과거에 합격 덕녕부윤, 간의대부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저서로 화해사전, 동방연원록이 있다. 조선왕조의 개창에 반대하여 복만동에 은거하였으며 사후 후덕군에 봉해지고 문충의 시호를 받았다. 묘지안의 문인석 특징은 조선시대 사대부 묘지의 대표적 형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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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의 능침사찰 신륵사의 다층석탑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왕릉인 영릉을 수호하기 위한 능침사찰이었다. 고려 말 나옹화상이 입적한 곳으로 중창된 이후, 세종대왕의 능을 이장하면서 신륵사를 능침(陵寢)사찰로 지정하여 왕릉수호 역할을 부여했다. 다층석탑은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고려 말 경천사지 십층석탑 양식을 계승해 수미단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공예적인 조형의 탑신석을 올린 구조를 취했다. 상층기단 면석에 조각된 용 문양은 조선 왕실과의 관련이 높고, 성종 3년(1472)에 이루어진 신륵사 중창을 염두에 둔다면 석탑 역시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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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앞논의 허한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세운 제주 무릉리 방사탑
    무릉리 방사탑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 세워져 있다. 무릉리 방사탑은 ‘앞논’의 허약한 기운을 보강하고 부정과 액운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것으로 음양을 고려하여 4기를 배치했다. 마을주민들은 석상이 방사탑의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것에 대해 높은 곳에 올라서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과 액운을 막아낼 수 있는 수호신의 모습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방사탑은 1910년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쟁기의 볏, 보습, 솥 등을 묻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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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큰개탑과 오다리탑이라 불리는 제주 신흥리 방사탑
    신흥리 방사탑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다. 이곳의 지형이 게형국인 탓에 주민들이 늘 쫓기듯 허덕이며 살 운명이라 탑을 세우면 그 지형을 누를 수 있다고 하여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5기이던 탑은 현재 2기가 남아있는데, ‘큰개탑’과 ‘오다리탑’이라고 불린다. 큰개탑은 음탑을 의미하며, 오다리탑은 양탑을 의미한다. 신흥리에서는 매년 정초가 되면 남성들은 포제(酺祭)를 지내고, 여성들은 당굿을 지내고, 어촌계원들은 해신제(海神祭)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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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물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6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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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강진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강진 염걸장군 묘소
    강진의 염걸 장군 묘소(康津廉傑將軍墓所)는 전라남도기념물제36로 1978년 9월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산61번지이다. 묘의 주인공 염걸은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했으며, 글재주 또한 뛰어나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비범함을 인정받았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서 능력을 발휘해서 수문장(守門將)의 벼슬에 올랐으나 도망가던 왜군을 추격하다가 거제도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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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조형도가 교유 장소로 활용했던 청송 동계정
    동계정은 동계 조형도의 정자이다. 조선 후기에 관직에서 물러난 조형도가 교유(交遊)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1613년(광해군 5) 덕성리 절벽 위에 동계정을 지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 전투에서 활약하고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에까지 올랐으나 광해군 때 불의를 보고도 충언하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낙향하여 동계정을 지었다. 정자는 원래 보현산 북쪽 용연의 동쪽에 있었다고 하나 6.25 전쟁과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규모도 더 증축하여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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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기수(沂水)와 무우(舞雩)의 즐거움이 있는 곳, 청송 풍호정
    풍호정은 풍호 신지(申祉)가 말년에 진보현 합강에 세운 정자이다. 신지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으로,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지만, 벼슬을 거부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신지는 그의 아버지 유언에 따라 합강마을에 풍호정을 지었다. 풍호정은 논어에 나오는 '기수(沂水)'는 멀고 '무우(舞雩)'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기수와 무우의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며 동생과 함께 풍류를 즐겼다. 풍호정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킨 신예남과 그의 부인 여흥민씨를 기리는 쌍절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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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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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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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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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황희의 선정을 기리는 강원도 삼척 소공대비
    강원도 삼척시에 소재한 「소공대비」는 황희가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펼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1423년에 강원도 일대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힘겹게 살고 있었다. 이때 황희가 임금의 명을 받고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백성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황희가 돌아간 후에도 백성들은 황희의 선정을 잊지 못하고 소공대를 지어 그리움을 달랬다. 이후에 소공대의 내력과 황희의 공적을 새긴 「소공대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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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조선 사대부들이 바위에 새긴 방선문 마애석각
    신선이 방문하는 문이라는 의미를 지닌 제주 방선문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 명소 중 하나이다. 방선문은 한라산 등반을 하기 위해 지나가는 곳이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이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찾아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산수를 유람하면서 경치가 빼어난 곳을 방문하면 자신의 이름이나 시를 바위에 새겨 넣는 일이 많았다. 「방선문 마애석각」도 방선문의 경치를 보고 감탄한 사대부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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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대기근에 맞서 제주도민을 구한 의녀(義女) 김만덕 묘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선입동에 위치한 모충사에는 김만덕(金萬德)의 묘비가 건립되어 있다. 김만덕은 1795년 제주도에 대기근과 전염병이 돌았을 당시 사재를 털어 도민을 구휼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당시 기녀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을 돌보기 위해 앞장선 행적은 널리 칭송 받았다. 이에 정조로부터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직책을 하사 받기에 이르렀다. 김만덕 묘비는 그녀의 사후 1812년에 지역민이 협심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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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마포구

    조선의 변호사 외지부
    조선시대에 다른 사람들의 소송을 부추기거나 대신해서 소송하던 사람들을 외지부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활동한 일종의 변호사인 셈이다. 조선시대 동안 외지부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죄인 취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금지된 직업이었다. 이러한 외지부는 근대화와 개항으로 인해 합법화되었다. 1895년 사실상 변호인이 도입되었고, 1905년 대한제국기에 변호사법이 통과되었다. 현재 변호사는 고소득 직업이자 사회에서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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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과학자 하백원
    하백원은 조선후기 때 과학문명의 꽃을 피워낸 과학자이자 성리학자로, 위백규(전남 장흥), 신경준(전북 순창), 황윤석(전북 고창)과 더불어 호남 실학의 4걸(傑)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농민들에게 필요한 양수기 ‘자승차’를 발명하고,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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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천안시

    조선시대 뛰어난 과학사상가 홍대용
    홍대용은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地轉說)과 독창적인 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실학자이다. 홍대용은 작은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군관으로 북경을 방문하게 되었고, 북경에서 우연히 항저우(杭州) 출신 중국 학자들과 친교를 맺었으며, 서양 선교사들을 찾아가 서양 문물을 접하고 필담을 나누었다. 또한 그가 남긴 『담헌서(湛軒書)』의 내용은 약간의 시·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홍대용이 북경에서 돌아온 후 10여 년 사이에 쓴 것으로 홍대용의 북경방문은 그의 사상적 성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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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가, 조선 사회에 일으킨 거침없는 파장
    박제가(朴齊家, 1750~1805년)는 조선 후기의 서얼 출신 실학자이다. 어려서부터 시, 서, 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집안이 어려워졌으나 어머니와 장인의 덕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제가는 그와 같은 처지에 있던 서얼 출신들과 교우했는데, 이들을 ‘백탑시파’라고 부른다. 박제가는 당시 조선의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우고 상공업과 소비를 중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가 조선 사회에 일으킨 파장은 조선 후기의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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