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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안동 하회 염행당 고택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한 서애 유성룡의 9대손인 애운(厓雲) 류치목(柳治睦, 1771~1836)이 분가하며 지은 가옥이다. 하회리 남촌마을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대문채, 몸채, 새사랑채, 사당, 별당으로 구성된 규모가 큰 상류주택이었다. 1954년에 화재로 몸채와 새사랑채가 소실되었기에 2010년도에 후손들이 방앗간채와 몸채를 복원했다. 안채와 사랑채의 구들 연기를 하나의 큰 굴뚝으로 뽑아낼 정도로 뛰어난 건축기술로 지어졌다. 하회의 대표적인 두 가옥인 북촌댁과 비교할 때에 웅걸(雄傑)한 북촌댁과 달리 남촌댁은 아담하고 짜임새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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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평택시

    경기도 평택의 심순택과 능성구씨 고택과 송덕비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는 한말 정치가이자 영의정을 지낸 문충공 심순택과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능성구씨가 말년에 진위면 봉남리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하였다. 이에 봉남리에는 심순택과 능성구씨의 유허비가 남아 있다. 이들이 살던 고택이 남아 있으며, 청송심씨의 묘역과 심순택신도비가 남아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능성구씨(구택희)는 여성으로는 드물게 진위향교 선정비각에 정경부인능성구씨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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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 달성군

    싸리기둥 칠기봇장 초가집 달성 조길방 고택
    달성 조길방 고택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된 고택이다. 초가집이지만 싸리기둥에 칠기나무로 된 집이라는 자랑으로 ‘싸리기둥에 칠기봇장’으로 불리던 가옥이다. 조선후기에 지어진 초가로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초가집으로는 드물게 안채의 개구부는 그 규모나 성격이 오래된 유구로 주택발달사의 연구자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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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국가에서 허가받은 장사꾼 시전상인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상설 상점을 ‘전(廛)’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시전은 국가에서 일정한 건물들을 지어 주고, 상인들은 시전 건물들을 빌려서 물건을 팔거나 거래를 하였다. 대신 국가에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지불하거나, 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였다. 조선시대의 시전상인들은 국가로부터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과 임시로 길가에 벌여 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난전(亂廛)을 금지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민간 상공업이 발달하고, 개항 이후 외국 상품이 유입되어 ‘금난전권’은 붕괴가 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았던‘시전상인’ 들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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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의 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은 고려 시대와 유사한 형태로 경시와 향시 그리고 국제시장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을 육성하면서 전기보다 발전했다. 특히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장악했고, 지방의 향시들은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시장에서는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일본 및 중국과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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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일본과의 개시무역을 담당한 동래상인
    조선시대 동래는 일본과의 관계로 경제적으로 중시되었던 곳이다. 1407년에 왜인의 왕래를 허락하고 동래의 부산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동래상인은 동래왜관과 왜관 주변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상인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좁은 의미의 동래상인은 개시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래상인들 가운데 ‘도중’은 왜관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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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동대문구

    조선시대 한양의 강우량을 측정하다. 서울 청계천 수표
    청계천은 조선시대에도 비가 적은 시기에는 건천이지만 우기에는 홍수가 날 정도로 유량의 차이가 큰 하천이었다. 청계천은 도성의 한가운데 위치했기 때문에, 청계천의 범람은 인근지역의 수몰과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따라서 청계천의 유량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으며, 세종은 청계천 정비 과정에서 수표를 설치하여 수위를 측정하게 하였다. 오늘날 서울 청계천 수표는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원래는 수표동 수표교 옆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1960년에 장충단으로 옮겨졌으며 197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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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흥선대원군의 쇄국 의지, 척화비
    척화비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서구 열강의 침략을 경계하고자 전국 곳곳에 세운 비석이다. 조선의 개항을 두고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이 일어났고 결정적으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무덤 도굴 사건이 독일인 오페르트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경계하고 쇄국의지를 알리기 위해 척화비를 설치하였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는 내용의 척화비는 그러나 조선의 개항을 거치며 철거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척화비는 20여기로 일제강점기 이후에 다시 발견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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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남양주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려라, 광릉 하마비
    옛날 사람들은 타고 있던 말에서 내림으로써 특정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공경심을 드러냈다. 하마비는 말에서 내려야하는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석으로 조선시대에 처음 설치되었다. 조선에서 하마비는 궁궐의 입구를 비롯하여 종묘 및 왕릉・조선 시대 교육 시설인 성균관・왕실과 관련된 사찰 앞에도 놓여졌다. 말을 타고 온 사람은 하마비에 이르면 말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걸어가야 했다. 광릉 하마비는 조선 왕릉의 하마비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광릉은 세조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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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금정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성곽 금정산성
    해발 801m의 금정산 꼭대기에서 서남쪽 계곡을 따라 돌로 쌓은 석성으로 전체길이는 약 18km이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동래읍성과 더불어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국내에서 가장 큐모가 큰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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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사천시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이 혈전을 벌인 경남 사천의 사천읍성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와 정의리 일부, 수양공원 일대에 사천읍성이 있다. 사천읍성은 1442년에 왜구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의 명으로 쌓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점령당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당시 조명연합군의 선봉장이었던 정기룡 장군에 의해 탈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수양공원에 있는 성벽 일부를 복원하여 사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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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결정하고, 그해 10월에는 국왕과 정부관리들이 한양으로 옮겨갔다. 조선 전기에는 산성 축성이 크게 유행하여 태종 10년경을 전후로 북방의 여러 거점 성곽과 경상도·전라도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하여 약 111개의 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 산성은 점차 퇴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에 읍성 축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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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해남군

    귀양 길에 터를 잡은 해남 정명식 가옥
    해남 정명식 가옥은 1871년에 지어진 반가이다. 이 집은 이참판댁으로 불렸는데,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9대손 이명석이 1730년 진도로 귀양가던 중 풍랑으로 우항마을에 머물다 터를 잡았고, 그의 4대손인 이재량이 1857년 이 가옥을 지었기 때문이다. 정명식 가옥은 조선후기 전형적인 상류주택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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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철종의 잠저, 강화 용흥궁
    용흥궁(龍興宮)은 1853(철종 4)년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지금과 같은 모습의 건물을 세웠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기와집으로 확장하고 왕의 잠저(潛邸)로서 용흥궁이라 명명하였다.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고, 1903(광무 7)년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용흥궁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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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전형적인 안동 지역의 사대부가옥인 안동 학암종택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 위치한 조선 중종대의 청백리 허백당(虛白堂)의 12대손인 학암(鶴巖) 김중휴(金重休, 1797~1863)가 분가하면서 지은 건물이다. 김중휴가 제릉참봉을 지냈기에 ‘참봉댁’이라고도 부른다. 안동 지역에 보편적인 형태인 ㅁ자형 몸채로 ㄱ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정면 하단에 ⏌자형 사랑채와 일자형 중간채에 연접해 있다. 안채 우측에는 4칸 규모의 곳간채가 있어 이 집의 경제적 부유함을 느낄 수 있다. 조선 후기로 오면 사랑채 공간이 이전보다 규모가 확장되는데, 학암고택에서는 사랑채 앞쪽 우측에 새사랑채를 건립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중문간채와 연결된 사랑채를 한 단 높게 건립함으로써 신분적 위상을 높이고자 한 의도도 엿보인다. 별도로 사당건물을 건립하지 않고 사랑채 대청 위쪽에 벽감을 설치해 공간 활용이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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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경주를 지키는 경주읍성
    경상북도의 중심도시인 경주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이다. 완전한 평지성으로 방형이며 성벽 양쪽을 돌로 쌓아 올리는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2,412m에 이른다. 경주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경상도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행정읍성이었다. 특히 성벽 주위에 너비 3m의 해자를 둘렀는데 지금도 북쪽은 하수구로 이용되며 동쪽에도 일제강점기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읍성의 남문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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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결정하고, 그해 10월에는 국왕과 정부관리들이 한양으로 옮겨갔다. 조선 전기에는 산성 축성이 크게 유행하여 태종 10년경을 전후로 북방의 여러 거점 성곽과 경상도·전라도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하여 약 111개의 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 산성은 점차 퇴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에 읍성 축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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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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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조선후기 방패 역할을 한 입암산성
    높이 654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 협축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5.18㎞에 달한다. 전라도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호남정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산성에 대한 최초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확인되는데, 1256년(고종 43)에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방어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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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허미수(許眉叟)의 지네 퇴치와 허적(許積)의 출생담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조선 시대 후기의 학자인 허목(許穆)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허미수(허목) 설화들은 대부분 그의 이인적(異人的)인 풍모를 강조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허적과 관련된 출생담도 그중 하나다. 허미수가 지네를 죽이고 난 후에 동생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허미수가 죽인 지네가 환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는 족족 없앴다. 하지만 셋째 아이를 낳자 허적의 아버지는 가문의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며 아이를 죽일 수 없다고 한다. 결국 허적으로 인해 동생의 집안은 삼족이 멸하는 화를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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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의 능침사찰 신륵사의 다층석탑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왕릉인 영릉을 수호하기 위한 능침사찰이었다. 고려 말 나옹화상이 입적한 곳으로 중창된 이후, 세종대왕의 능을 이장하면서 신륵사를 능침(陵寢)사찰로 지정하여 왕릉수호 역할을 부여했다. 다층석탑은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고려 말 경천사지 십층석탑 양식을 계승해 수미단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공예적인 조형의 탑신석을 올린 구조를 취했다. 상층기단 면석에 조각된 용 문양은 조선 왕실과의 관련이 높고, 성종 3년(1472)에 이루어진 신륵사 중창을 염두에 둔다면 석탑 역시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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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앞논의 허한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세운 제주 무릉리 방사탑
    무릉리 방사탑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 세워져 있다. 무릉리 방사탑은 ‘앞논’의 허약한 기운을 보강하고 부정과 액운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것으로 음양을 고려하여 4기를 배치했다. 마을주민들은 석상이 방사탑의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것에 대해 높은 곳에 올라서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과 액운을 막아낼 수 있는 수호신의 모습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방사탑은 1910년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쟁기의 볏, 보습, 솥 등을 묻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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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큰개탑과 오다리탑이라 불리는 제주 신흥리 방사탑
    신흥리 방사탑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다. 이곳의 지형이 게형국인 탓에 주민들이 늘 쫓기듯 허덕이며 살 운명이라 탑을 세우면 그 지형을 누를 수 있다고 하여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5기이던 탑은 현재 2기가 남아있는데, ‘큰개탑’과 ‘오다리탑’이라고 불린다. 큰개탑은 음탑을 의미하며, 오다리탑은 양탑을 의미한다. 신흥리에서는 매년 정초가 되면 남성들은 포제(酺祭)를 지내고, 여성들은 당굿을 지내고, 어촌계원들은 해신제(海神祭)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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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혼례 등 주요행사 때 입었던 왕실 여성의 최고 예복, 적의
    적의(翟衣)는 조선시대 왕비의 의복으로 왕비가 큰 제례에 참여할 때와 가례를 올리거나 책례(册禮)를 받을 때 대수(大首)머리와 함께 착용하였다. 조선 초기와 국말 적의의 구성이 달랐으며 대한제국 시대의 적의는 왕의 면복 제도처럼 옷과 부속품으로 이루어진다. 상하의로는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中單)을 입고 허리에는 대대(大帶)와 옥대(玉帶)를 매었으며 청말(靑襪, 푸른색 버선)에 청석(靑舃)을 신었다. 그 외에는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하피(霞帔), 규(圭)를 갖췄으며, 마지막으로 머리에는 대수(大首)를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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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 위에 신는 덧신, 투혜
    투혜(套鞋)는 방한이나 방습 또는 오염을 막기 위하여 화(靴) 위에 신는 덧신이다. 투혜의 형태는 신발을 오염이나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는 덧신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발보다 크기가 크고 가죽을 겉감으로 사용하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가죽으로 만들어 귀하게 여겨진 투혜는 왕이 사신, 관리에게 내리는 중요한 하사품이기도 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거나 사신이 왔을 때 피화(皮靴)에 투혜를 갖추어 하사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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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류사회의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 대슘치마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 입던 속치마이다. 대슘치마는 주로 모시로 만들었는데 색깔은 모시 본래의 색깔인 소색(素色)이나 흰색으로 하였다. 대슘치마의 형태는 끌리지 않을 정도 길이의 모시 12폭으로 지었다. 치마 아랫단에는 창호지 또는 넝마 등을 두껍게 겹붙인 ‘배악비’를 높이 4cm, 길이는 치마폭 정도로 만들어 풀을 먹인 모시로 붙였다. 대슘치마 밑단에 다는 백비단과 빳빳한 창호지는 여러 겹 입은 속옷과 치마를 받쳐 주어 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준다.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같이 입으면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부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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