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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조선시대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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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 달성군

    용연사 석조계단
    보물 제539호 용연사 석조계단은 본래 동화사 말사인 용연사는 신라 하대 신덕왕 3년(914) 보양(寶壤)이 창건한 사찰로, 창건 이후 고려 시대까지 연혁은 알려지지 않았다. 용연사 석조계단은 불사를 봉안한 통도사 금강계단을 모방한 것으로 통도사에 있던 부처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하였다. 이곳에 통도사 사리를 봉안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부터다. 당시 승장 유정이 왜구를 피해 제자 청진(淸振)으로 하여금 통도사 사리를 용연사에 봉안하게 한 것이다. 용연사 경내에 세운 사바교주석가여래부도비명 기록을 통해 광해군 5년(1613)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754년 세워진 용연사사적비와 석가여래중수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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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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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고려 충신이었으나 조선에서 추앙받은 포은 정몽주 선생묘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인 정몽주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격동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이성계가 의지하던 인물이었고, 정도전의 둘도 없는 정치적 동반자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정몽주는 고려를 버릴 수 없었기에 결국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당했다. 정몽주 묘는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이장하려다가 이장 행렬이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명정(銘旌)이 날아가 현재 묘 자리에 떨어지자 그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몽주의 묘에는 묘비, 문인석, 상석, 곡담 등의 석물 등을 배치하며 정몽주를 필두로 하는 정치적 대척세력을 포용하고자 하였다. 정몽주 묘의 석물 중 묘비와 문인석 1쌍, 상석, 곡담 등은 조성될 당시의 원형이 보존되어 내려오는 것으로 고려시대 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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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김해시

    김해에 남아있는 사대부의 묘의 석물양식, 김해 능동 석인상 및 상석
    김해 능동 석인상 및 상석은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 능동마을의 뒷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인상과 상석이다. 이곳에 있는 무덤은 가야 왕릉으로도 전해지고 있으나 석인상과 석상의 제작 기법을 볼 때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석인상은 두 기가 있는데, 키가 대략 160cm, 폭이 45cm 정도이며, 직사각형 돌기둥을 깎아 만들었다. 상석 중앙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는데, 양 끝에 안상의 일부가 남아있어 좌우로 상석이 더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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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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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경기도 광주 경안역을 중심으로 연결된 경안도(慶安道)
    경안도는 조선 시대 경기도 광주에 있던 경안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로이며, 경안역은 1457년 종6품인 찰방으로 승격되었다. 이 역로는 한양에서 지금의 경기 동남부에 해당하는 광주-이천-여주-충주 방향으로 이어지던 역로와 이천-음죽 방향으로 이어지던 역로를 관할하였다. 중심이 되는 경안역을 비롯하여 광주의 덕풍역, 여주의 양화역·신진역·안평역, 이천의 아천역·오천역, 음죽의 유춘역 등 7개 역이 포함되었다. 경안도는 경상도의 동부인 경상좌도 및 일본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는 물건의 수송로상에 있던 역들을 담당하였다. 또한 왕이 한양에서 출발하여 여주의 왕릉으로 향하던 능행로의 구간에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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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금정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성곽 금정산성
    해발 801m의 금정산 꼭대기에서 서남쪽 계곡을 따라 돌로 쌓은 석성으로 전체길이는 약 18km이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동래읍성과 더불어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국내에서 가장 큐모가 큰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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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사천시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이 혈전을 벌인 경남 사천의 사천읍성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와 정의리 일부, 수양공원 일대에 사천읍성이 있다. 사천읍성은 1442년에 왜구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의 명으로 쌓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점령당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당시 조명연합군의 선봉장이었던 정기룡 장군에 의해 탈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수양공원에 있는 성벽 일부를 복원하여 사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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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결정하고, 그해 10월에는 국왕과 정부관리들이 한양으로 옮겨갔다. 조선 전기에는 산성 축성이 크게 유행하여 태종 10년경을 전후로 북방의 여러 거점 성곽과 경상도·전라도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하여 약 111개의 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 산성은 점차 퇴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에 읍성 축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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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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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조선후기 과학자 하백원
    하백원은 조선후기 때 과학문명의 꽃을 피워낸 과학자이자 성리학자로, 위백규(전남 장흥), 신경준(전북 순창), 황윤석(전북 고창)과 더불어 호남 실학의 4걸(傑)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농민들에게 필요한 양수기 ‘자승차’를 발명하고,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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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무안군

    후청계를 조직하여 지켰던 무안 성남리 장승
    무안 성남리 장승은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남리에 있다. 장승은 원래 성남리 후청마을에 세워져 있었으나, 1984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후청마을은 장승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여 장승백이라 불리기도 했다. 성남리 장승은 붉은 반점이 있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장승에는 동방대장군과 서방대장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후청마을에는 후청계안이 있어 장승의 제작연대, 제작목적, 제의 관련 내용들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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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음성군

    오미마을의 정계대장군, 충북 음성 마송리 석장승
    마송리 석장승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다. 석장승은 총 3기로 조성연대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장승의 형태와 풍화 정도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마송리 오미마을 주민들을 석장승을 “장성님”, “미륵할아버지”, “정계대장군”이라 부르며, 매년 정월 초가 되면 장승제를 지내고 있다. 마송리 석장승이 있는 길 건너에 있는 보천장터 주변에는 “7080 추억의 거리”라는 주제로 벽화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석장승과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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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담양군

    풍수지리상 뱃사공 역할을 한 전남 담양 천변리 석인상
    천변리 석인상은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에 세워져 있다. 천변리 석인상은 1쌍 2기인데, 주민들은 ‘할아버지 비석’과 ‘할머니 비석’이라고 부른다. 천변리 석인상이 세워진 것은 담양읍이 풍수지리상 행주형국으로 배가 지나다니는 형국이고, 천변리가 뱃머리에 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뱃사공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변리 석인상을 '사공불' 또는 '사공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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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동대문구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총통, 경희고소총통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약무기는 총통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된 화통도감에서 화약무기 연구를 시작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화약 무기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었다. 특히 세종은 재위 29년에 무기 개혁을 추진하여 조선의 화약무기는 성능이 한층 상승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세종의 무기 개혁 이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경희고소총통이 남아있다. 경희고소총통은 외부 형태가 명나라 초기의 것과 유사하며, 내부 구조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총의 구조와 비슷하다. 조선시대 무기 발전사를 이해함에 있어 경희고소총통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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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구리활자에서 철활자로 바뀐 금속활자의 역사
    조선시대 활자 종류로는 태종 3년(1403) 계미자, 세종 2년(1420) 경자자, 세종 16년(1434) 갑인자 및 병용 한글자, 세종 18년(1436) 병진자, 문종 즉위년(1450) 경오자, 세조 원년(1455) 을해자, 세조 3년(1457) 정축자, 세조 4년(1458) 무인자, 세조 11년(1465) 을유자 및 을유 한글자 등 무수히 많으며 마지막으로 제작된 활자는 19세기 후반 한글 성경을 인쇄한 서양식 압활자인 신열활자가 있다. 철활자는 무쇠인 주철로 주조했는데, 주철이 철 중에서 가장 무르고 녹기 쉽기 때문에 섬세한 주조에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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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남구

    조선을 대표하는 의장용 보검, 삼인검과 사인검
    검은 흔히 만병의 왕, 곧 모든 병기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곤 한다. 이러한 검은 사람을 해하는 무기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사에서 사용하는 의례용구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검을 소지하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의장용·장식용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삼인검과 사인검은 조선의 왕실에서 제작한 대표적인 의장용 검이다. 이 검들은 아무나, 아무 때나, 아무 공간에서나 만들 수 없는, 제작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검이었다. 그 이유는 까다로운 제작 조건을 통해 삼인검과 사인검에 나쁜 귀신과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또한 삼인검과 사인검을 살펴보면 글자와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검이 지닌 벽사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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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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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강진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강진 염걸장군 묘소
    강진의 염걸 장군 묘소(康津廉傑將軍墓所)는 전라남도기념물제36로 1978년 9월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산61번지이다. 묘의 주인공 염걸은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했으며, 글재주 또한 뛰어나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비범함을 인정받았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서 능력을 발휘해서 수문장(守門將)의 벼슬에 올랐으나 도망가던 왜군을 추격하다가 거제도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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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조형도가 교유 장소로 활용했던 청송 동계정
    동계정은 동계 조형도의 정자이다. 조선 후기에 관직에서 물러난 조형도가 교유(交遊)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1613년(광해군 5) 덕성리 절벽 위에 동계정을 지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 전투에서 활약하고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에까지 올랐으나 광해군 때 불의를 보고도 충언하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낙향하여 동계정을 지었다. 정자는 원래 보현산 북쪽 용연의 동쪽에 있었다고 하나 6.25 전쟁과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규모도 더 증축하여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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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기수(沂水)와 무우(舞雩)의 즐거움이 있는 곳, 청송 풍호정
    풍호정은 풍호 신지(申祉)가 말년에 진보현 합강에 세운 정자이다. 신지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으로,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지만, 벼슬을 거부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신지는 그의 아버지 유언에 따라 합강마을에 풍호정을 지었다. 풍호정은 논어에 나오는 '기수(沂水)'는 멀고 '무우(舞雩)'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기수와 무우의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며 동생과 함께 풍류를 즐겼다. 풍호정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킨 신예남과 그의 부인 여흥민씨를 기리는 쌍절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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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삼척 임원산 봉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번지에 있는 임원산(141.1.m)에 임원산봉수가 있었다. 바닷가에 있는 연변봉수로 조선시대 삼척에 있던 5개의 봉수 중 하나이다. 이 봉수는 직봉이 아니라 간봉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안감시소를 설치하여 운영했고, 현재는 인근 주민들의 등산로와 해맞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일부 훼손되었으나 봉수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응봉수로 북으로 초곡산 봉수에 응하고, 남으로 가곡산 봉수에 응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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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완주군

    화구 두 개의 거대한 완주 기린 봉수
    전북 완주군 봉림산 또는 기린산이라 불리는 곳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이 산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경천리와 고산면 삼기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삼기리에는 삼기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하연이 지은 시 '고산정기' 중 이 산에 대한 칭찬이 있다. 봉수가 있던 곳은 돌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조선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구는 2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한 곳은 허물어졌고, 한 곳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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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고성군

    반암해수욕장 근처 바닷가에 위치한 고성 정양산 봉수
    정양산 봉수(正陽山烽燧)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산14-5번지의 정양산 정상에 있다. 정양산은 바닷가에 있어서 조망이 아주 좋다. 정양산 옆에는 반암 해수욕장이 있고, 정양산에는 군사시설이 있어서 그동안 조사가 잘 이뤄지지 못하였다. 각종 지리지에는 신라시대에 봉수가 축조되었다가 조선 중기에 폐지된 것으로 나오는데, 2015년에 문화재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가 인조원년에 폐하였다고 한다. 대응봉수는 북으로 술산에 응하고 남으로 죽도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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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적 여성규범을 실천한 여중군자, 장계향
    장계향은 어릴 때는 여성에게 금지된 지식 세계에 도전해 성인이 되길 꿈꾸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은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책을 멀리하고, 출가해서 시부모와 남편을 섬기고, 어머니로서 유교적 여성규범을 충실히 실천한 여중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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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차례의 국난과 충성, 이상길
    이상길(李尙吉, 1556~1637년)은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선비다. 조선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모두 겪은 그는 선비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직한 성품에 충심이 깊었던 그는 정유재란 당시 몸소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맞아 싸우기도 했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부임지였던 용천에서 청군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격화되기 시작한 붕당정치는 간간이 그의 발목을 잡았으며, 관직에서의 진퇴가 반복되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묘사(廟社)를 모시고 인조를 호종하여 강화도에 따라 들어갔던 이상길은 전세가 기울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비분강개의 마음으로 자결했다. 이상길의 묘소는 그가 은사로 거처했던 노원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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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회의 개화를 꿈꿨던 지식인 지석영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池錫永, 1855~1935년)은 조선의 개화를 꿈꿨던 지식인이었다. 19세기 조선의 위태로운 운명 아래, 그는 조선의 살길이 개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서양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지석영은 조선 사회에 종두법을 보급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천연두의 위협에서 조선의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지석영은 어려운 한문의 사용이 조선의 개화를 늦추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에 한자를 새롭게 풀이한 한자사전 『자전석요』를 저술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 가로쓰기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1910년 조선은 국권을 빼앗겼고 모든 공직을 내려놓은 지석영은 어린이 치료에 힘쓰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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