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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유교적 여성규범을 실천한 여중군자, 장계향
    장계향은 어릴 때는 여성에게 금지된 지식 세계에 도전해 성인이 되길 꿈꾸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은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책을 멀리하고, 출가해서 시부모와 남편을 섬기고, 어머니로서 유교적 여성규범을 충실히 실천한 여중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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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노원구

    두 차례의 국난과 충성, 이상길
    이상길(李尙吉, 1556~1637년)은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선비다. 조선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모두 겪은 그는 선비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직한 성품에 충심이 깊었던 그는 정유재란 당시 몸소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맞아 싸우기도 했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부임지였던 용천에서 청군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격화되기 시작한 붕당정치는 간간이 그의 발목을 잡았으며, 관직에서의 진퇴가 반복되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묘사(廟社)를 모시고 인조를 호종하여 강화도에 따라 들어갔던 이상길은 전세가 기울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비분강개의 마음으로 자결했다. 이상길의 묘소는 그가 은사로 거처했던 노원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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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조선 사회의 개화를 꿈꿨던 지식인 지석영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池錫永, 1855~1935년)은 조선의 개화를 꿈꿨던 지식인이었다. 19세기 조선의 위태로운 운명 아래, 그는 조선의 살길이 개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서양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지석영은 조선 사회에 종두법을 보급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천연두의 위협에서 조선의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지석영은 어려운 한문의 사용이 조선의 개화를 늦추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에 한자를 새롭게 풀이한 한자사전 『자전석요』를 저술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 가로쓰기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1910년 조선은 국권을 빼앗겼고 모든 공직을 내려놓은 지석영은 어린이 치료에 힘쓰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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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례 등 주요행사 때 입었던 왕실 여성의 최고 예복, 적의
    적의(翟衣)는 조선시대 왕비의 의복으로 왕비가 큰 제례에 참여할 때와 가례를 올리거나 책례(册禮)를 받을 때 대수(大首)머리와 함께 착용하였다. 조선 초기와 국말 적의의 구성이 달랐으며 대한제국 시대의 적의는 왕의 면복 제도처럼 옷과 부속품으로 이루어진다. 상하의로는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中單)을 입고 허리에는 대대(大帶)와 옥대(玉帶)를 매었으며 청말(靑襪, 푸른색 버선)에 청석(靑舃)을 신었다. 그 외에는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하피(霞帔), 규(圭)를 갖췄으며, 마지막으로 머리에는 대수(大首)를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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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 위에 신는 덧신, 투혜
    투혜(套鞋)는 방한이나 방습 또는 오염을 막기 위하여 화(靴) 위에 신는 덧신이다. 투혜의 형태는 신발을 오염이나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는 덧신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발보다 크기가 크고 가죽을 겉감으로 사용하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가죽으로 만들어 귀하게 여겨진 투혜는 왕이 사신, 관리에게 내리는 중요한 하사품이기도 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거나 사신이 왔을 때 피화(皮靴)에 투혜를 갖추어 하사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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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류사회의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 대슘치마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 입던 속치마이다. 대슘치마는 주로 모시로 만들었는데 색깔은 모시 본래의 색깔인 소색(素色)이나 흰색으로 하였다. 대슘치마의 형태는 끌리지 않을 정도 길이의 모시 12폭으로 지었다. 치마 아랫단에는 창호지 또는 넝마 등을 두껍게 겹붙인 ‘배악비’를 높이 4cm, 길이는 치마폭 정도로 만들어 풀을 먹인 모시로 붙였다. 대슘치마 밑단에 다는 백비단과 빳빳한 창호지는 여러 겹 입은 속옷과 치마를 받쳐 주어 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준다.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같이 입으면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부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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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을 대표하는 의장용 보검, 삼인검과 사인검
    검은 흔히 만병의 왕, 곧 모든 병기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곤 한다. 이러한 검은 사람을 해하는 무기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사에서 사용하는 의례용구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검을 소지하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의장용·장식용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삼인검과 사인검은 조선의 왕실에서 제작한 대표적인 의장용 검이다. 이 검들은 아무나, 아무 때나, 아무 공간에서나 만들 수 없는, 제작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검이었다. 그 이유는 까다로운 제작 조건을 통해 삼인검과 사인검에 나쁜 귀신과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또한 삼인검과 사인검을 살펴보면 글자와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검이 지닌 벽사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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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적 여성규범을 실천한 여중군자, 장계향
    장계향은 어릴 때는 여성에게 금지된 지식 세계에 도전해 성인이 되길 꿈꾸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는 것은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책을 멀리하고, 출가해서 시부모와 남편을 섬기고, 어머니로서 유교적 여성규범을 충실히 실천한 여중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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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중구

    조선 천주교의 시작점, 김범우
    김범우(金範禹, ?~1786년)은 조선 최초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토마스다. 그는 중인 출신으로 역관(譯官)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역관의 특성상 비교적 잦은 해외 경험과 외국 서적이 김범우의 자유로운 사유 체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중 중국을 통해 조선에 유입된 서학서(西學書)는 김범우를 천주교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김범우는 이벽을 비롯한 남인계열의 문인과 가깝게 지냈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김범우의 집에서 비밀 집회를 정기적으로 가졌으나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었다. 양반출신의 신도들은 모두 풀려났으나 김범우는 체포되어 형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도 배교하지 않았고 결국 유배지인 단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모였던 김범우의 집터는 한국 천주교가 시작된 곳으로 현재 명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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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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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 달성군

    용연사 석조계단
    보물 제539호 용연사 석조계단은 본래 동화사 말사인 용연사는 신라 하대 신덕왕 3년(914) 보양(寶壤)이 창건한 사찰로, 창건 이후 고려 시대까지 연혁은 알려지지 않았다. 용연사 석조계단은 불사를 봉안한 통도사 금강계단을 모방한 것으로 통도사에 있던 부처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하였다. 이곳에 통도사 사리를 봉안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부터다. 당시 승장 유정이 왜구를 피해 제자 청진(淸振)으로 하여금 통도사 사리를 용연사에 봉안하게 한 것이다. 용연사 경내에 세운 사바교주석가여래부도비명 기록을 통해 광해군 5년(1613)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754년 세워진 용연사사적비와 석가여래중수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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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이덕남 장군묘
    의병장 이덕남(李德男, ?~1592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 안성에서 그의 외삼촌 홍자수와 함께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과 싸웠다. 후에 서운산성에서 토성을 쌓아 왜적을 무찌르다가 적의 기습공격에 전사하였다. 1718년(숙종 44)에 정려가 내려지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묘는 그의 부인과 합장으로 되어 있으며, 원래 조형물이 없었으나 그의 후손들이 1975년에 조성했다. 1975년 9월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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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단종 복위 운동 충신, 김문기
    김문기는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사단동에서 태어났고, 마을 이름을 따서 호를 백촌으로 삼았으며, 백촌동은 그의 효행이 알려져 효자동이라 불렸다. 김문기는 문신으로서 훌륭한 학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무신의 자격까지 함께 갖추고 있었으며, 강직한 성격에 청렴결백하여 세종에 이어 문종에게까지 총애를 받았다. 김문기는 사육신 묘에 가묘가 추가될 만큼 단종 복위 운동 당시에 큰 역할을 한 충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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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박학다식의 대명사, 어세공
    어세공은 어려서부터 슬기롭고 민첩했다. 1453년에 진사와 생원, 두 과거시험을 모두 합격하였고,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에 들어가 여러 요직을 맡으며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주변 동료들에게 업무에 아주 통달했다며 많은 칭찬을 받았다. 성균관 직강, 사예, 동부승지 등을 지냈고, 경학에도 능하고 역학에도 밝았던 충직한 문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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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
    추사체를 만든 조선후기 문신이자 실학자, 서화가이다. 김정희는 학문뿐만 아니라 그림과 초서, 해서, 전서, 예서 등의 글씨에까지 뛰어났던 인물이다. 학문, 예술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북한산에 있던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라는 것을 고증학적으로 밝혀냈다. 말년에 그만의 글씨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산수화와 난초 그림을 잘 그렸다. 그가 남긴 「세한도」에는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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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궁중정재를 집대성한 김창하
    김창하는 조선 후기 가전악, 전악, 집박아가를 역임한 음악가이자 무용가다. 정조 때 악사 대건의 둘째 아들로, 대대로 음악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김창하는 가얏고와 정재를 전공하였으며, 1816년(순조16)가전악에 임명, 1827년 전악으로 임명되었다. 궁중무용을 집대성하고 정재를 안무하기도 하였으며 당시의 정재를 정리하여 정재의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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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누항사』를 지은 조선의 3대 시인 박인로
    박인로는 정철, 윤선도와 함께 조선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1561년에 태어나 1642년에 돌아가셨는데, 생의 전반부는 무인으로, 생의 후반부는 문인이자 가객으로 살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 활동에 가담했다가 1599년에는 무과에 합격해 수문관, 선전관을 했으며 조라포 만호였던 시절 선정비도 세워졌다. 40세를 전후해 이덕형을 비롯한 문인들과 교유했는데, 그때 쓴 시조로 「조홍시가」, 「선상탄」, 「사제곡」, 「누항사」, 「영남가」, 「노계가」, 「입암별곡」, 「소유정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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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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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조선시대의 옛 도로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은 전국 각 지방과 왕실을 연결하는 외방 도로를 만들어 중앙집권을 강화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6개의 대로가 방사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조선 후기 들어서는 10개의 대로를 확립했다. 도읍지인 한양과 그 주변 지역이 육상 교통로와 물길을 통한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한강 하류 지역은 한반도 교류의 중심지로서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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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0대 간선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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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통영시

    한양에서 경상도 서부로 향하던 통영로(統營路)
    통영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한강을 지나 충청도 및 전라도를 경유하여 경상도 서부로 이어지던 간선도로로 통영별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문물이 통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통로이기도 했다. 통영로의 종점인 통영은 임진왜란 이후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수군을 관할하던 삼도수군통제영(三島水軍統制營)이 있던 수군의 본거지였다. 통제사가 새로 부임하거나 떠날 때 한양과 통제영을 오가던 길이라 하여 통제사길로 불리기도 했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이 옛길을 통해 서로 어울리고 함께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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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우리나라의 최초의 어류도감, 김려의 우해이어보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우해이어보는 진해 지역의 바다생물을 소상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53종의 어류(연체동물을 포함)와 8종의 갑각류, 그리고 10여 종의 패류가 기록돼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들은 주로 진해 지역의 수산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책이 지닌 가치는 무궁무진하겠지만 그중에서 특히 바다 생물의 이칭과 습성, 그리고 생김새를 비롯해 잡는 방식과 유통 등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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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충의공엄선생실기
    강원도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충직한 인물로 알려진 엄흥도에 관한 기록이 『충의공엄선생실기』에 실려 전하고 있다. 후손들이 엄흥도와 관련된 기록을 모아 1817년에 최초로 간행하였다. 엄흥도와 단종의 만남, 단종의 시신 수습 과정, 이후 엄흥도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충의공엄선생실기』는 조선시대 충절 인물이 어떻게 발굴되었으며, 후손에 의해 어떻게 추숭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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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기의 슬픈 어업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한국수산지
    식민지 시기 우리네 어업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책 중에 하나가 조선총독부 산하의 농상공부수산국農商工部水産局)에서 발간한『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어업과 수산업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될 정도로 내용이 상세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당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놓았다. 모두 4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1권에서는 총괄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으며, 2권에서는 개별 지역의 어족과 어로 활동, 그리고 해류 등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3권에서는 전라남도를 비롯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바다 상황을, 제4권에서는 경기도를 비롯해,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등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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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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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조선후기 방패 역할을 한 입암산성
    높이 654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 협축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5.18㎞에 달한다. 전라도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호남정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산성에 대한 최초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확인되는데, 1256년(고종 43)에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방어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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