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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안기도(安奇道)
    안기도는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에 있던 안기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며, 경상북도 북부 내륙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동해안으로 연결되던 역로를 관할했다. 조선시대 들어 여러 차례의 역로 재편을 거쳐 최종적으로 안기도가 획정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창락도를 통합하기도 했고 일부 역을 송라도에 이속시키기도 했다. 안기도 가운데 안동시에서 의성군, 군위군을 지나 영천시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국도와 함께 중앙선 철도가 통과한다. 안동에서 동해안의 영덕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동해안에서 잡은 고등어가 안동으로 이동하던 안동 간고등어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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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국가에서 허가받은 장사꾼 시전상인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상설 상점을 ‘전(廛)’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시전은 국가에서 일정한 건물들을 지어 주고, 상인들은 시전 건물들을 빌려서 물건을 팔거나 거래를 하였다. 대신 국가에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지불하거나, 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였다. 조선시대의 시전상인들은 국가로부터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과 임시로 길가에 벌여 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난전(亂廛)을 금지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민간 상공업이 발달하고, 개항 이후 외국 상품이 유입되어 ‘금난전권’은 붕괴가 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았던‘시전상인’ 들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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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의 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은 고려 시대와 유사한 형태로 경시와 향시 그리고 국제시장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을 육성하면서 전기보다 발전했다. 특히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장악했고, 지방의 향시들은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시장에서는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일본 및 중국과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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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일본과의 개시무역을 담당한 동래상인
    조선시대 동래는 일본과의 관계로 경제적으로 중시되었던 곳이다. 1407년에 왜인의 왕래를 허락하고 동래의 부산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동래상인은 동래왜관과 왜관 주변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상인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좁은 의미의 동래상인은 개시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래상인들 가운데 ‘도중’은 왜관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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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중구

    향로에 담긴 조선시대 경제 이야기, 부석사명 은입사 철제 향로
    부처님께 음식과 물건을 올리고 의식을 행하는 공양을 할 때 사용하는 물품을 공양구라고 한다. 이 중 향로는 공양구 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향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나 그 예시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고려시대의 향로는 주로 청동 또는 청자로 제작되었고, 조선시대의 향로는 유기와 백제로 제작되었으며 간혹 철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향로는 청동, 유기와 같은 금속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동전 주조 정책과 더불어 구리 확보가 힘들어지자 철제 향로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부석사명 은입사 향로는 향로의 구연부부터 받침대에 이르기까지 당초문과 연화문이 은입사 기법으로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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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정조(正祖)의 시가 새겨진 철제 은상감 자
    조선시대의 자는 사용 목적에 따라 이름과 크기가 달랐다. 제사와 관련된 물건을 만들 때 사용한 조례기척(造禮器尺), 악기를 제작할 때 사용한 황종척(黃鐘尺), 건축에 이용한 영조척(營造尺), 옷감의 길이를 재는 포백척(布帛尺) 등이 있다. 이러한 자는 표준 길이로써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러 번 사용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아야 했다. 따라서 주로 쇠나 놋쇠로 만들어졌으며 가볍게 사용하기 위해 대나무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정조 재위 20년이었던 1796년 음력 2월 1일, 정조는 농사철의 시작을 기념하는 중화절(中和節)을 연회를 열고 신하들에게 중화척(中和尺)을 하사했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철제 은상감 자 또한 중화척으로 하사되었다. 특히 철제 은상감 자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시도 새겨져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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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남구

    파격미 넘치는 용문양이 그려진 백자철화용문호
    부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17세기 백자철화용문호는 2012년 5월 17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38.4㎝로 몸체의 윤곽선이 풍만하면서도 원형에 가까운 이른바 '달 항아리'의 모습이다. 대형 항아리는 몸통의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였는데, 이 항아리 역시 커다란 발(鉢) 두 개를 구연끼리 맞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하여 동체 중앙부에 깎아 다듬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문양은 항아리를 휘감은 용과 풀처럼 보이는 구름이며, 얼굴이 해체된 듯한 용의 모습은 파격미가 돋보이는 지방 가마의 작품임을 추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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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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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조선후기 방패 역할을 한 입암산성
    높이 654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 협축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5.18㎞에 달한다. 전라도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호남정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산성에 대한 최초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확인되는데, 1256년(고종 43)에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방어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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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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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고려 충신이었으나 조선에서 추앙받은 포은 정몽주 선생묘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인 정몽주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격동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이성계가 의지하던 인물이었고, 정도전의 둘도 없는 정치적 동반자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정몽주는 고려를 버릴 수 없었기에 결국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당했다. 정몽주 묘는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이장하려다가 이장 행렬이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명정(銘旌)이 날아가 현재 묘 자리에 떨어지자 그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몽주의 묘에는 묘비, 문인석, 상석, 곡담 등의 석물 등을 배치하며 정몽주를 필두로 하는 정치적 대척세력을 포용하고자 하였다. 정몽주 묘의 석물 중 묘비와 문인석 1쌍, 상석, 곡담 등은 조성될 당시의 원형이 보존되어 내려오는 것으로 고려시대 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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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김해시

    김해에 남아있는 사대부의 묘의 석물양식, 김해 능동 석인상 및 상석
    김해 능동 석인상 및 상석은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 능동마을의 뒷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인상과 상석이다. 이곳에 있는 무덤은 가야 왕릉으로도 전해지고 있으나 석인상과 석상의 제작 기법을 볼 때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석인상은 두 기가 있는데, 키가 대략 160cm, 폭이 45cm 정도이며, 직사각형 돌기둥을 깎아 만들었다. 상석 중앙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는데, 양 끝에 안상의 일부가 남아있어 좌우로 상석이 더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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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혼례 등 주요행사 때 입었던 왕실 여성의 최고 예복, 적의
    적의(翟衣)는 조선시대 왕비의 의복으로 왕비가 큰 제례에 참여할 때와 가례를 올리거나 책례(册禮)를 받을 때 대수(大首)머리와 함께 착용하였다. 조선 초기와 국말 적의의 구성이 달랐으며 대한제국 시대의 적의는 왕의 면복 제도처럼 옷과 부속품으로 이루어진다. 상하의로는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中單)을 입고 허리에는 대대(大帶)와 옥대(玉帶)를 매었으며 청말(靑襪, 푸른색 버선)에 청석(靑舃)을 신었다. 그 외에는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하피(霞帔), 규(圭)를 갖췄으며, 마지막으로 머리에는 대수(大首)를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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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 위에 신는 덧신, 투혜
    투혜(套鞋)는 방한이나 방습 또는 오염을 막기 위하여 화(靴) 위에 신는 덧신이다. 투혜의 형태는 신발을 오염이나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는 덧신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발보다 크기가 크고 가죽을 겉감으로 사용하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가죽으로 만들어 귀하게 여겨진 투혜는 왕이 사신, 관리에게 내리는 중요한 하사품이기도 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거나 사신이 왔을 때 피화(皮靴)에 투혜를 갖추어 하사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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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류사회의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 대슘치마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 입던 속치마이다. 대슘치마는 주로 모시로 만들었는데 색깔은 모시 본래의 색깔인 소색(素色)이나 흰색으로 하였다. 대슘치마의 형태는 끌리지 않을 정도 길이의 모시 12폭으로 지었다. 치마 아랫단에는 창호지 또는 넝마 등을 두껍게 겹붙인 ‘배악비’를 높이 4cm, 길이는 치마폭 정도로 만들어 풀을 먹인 모시로 붙였다. 대슘치마 밑단에 다는 백비단과 빳빳한 창호지는 여러 겹 입은 속옷과 치마를 받쳐 주어 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준다.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같이 입으면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부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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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안동 하회 염행당 고택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한 서애 유성룡의 9대손인 애운(厓雲) 류치목(柳治睦, 1771~1836)이 분가하며 지은 가옥이다. 하회리 남촌마을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대문채, 몸채, 새사랑채, 사당, 별당으로 구성된 규모가 큰 상류주택이었다. 1954년에 화재로 몸채와 새사랑채가 소실되었기에 2010년도에 후손들이 방앗간채와 몸채를 복원했다. 안채와 사랑채의 구들 연기를 하나의 큰 굴뚝으로 뽑아낼 정도로 뛰어난 건축기술로 지어졌다. 하회의 대표적인 두 가옥인 북촌댁과 비교할 때에 웅걸(雄傑)한 북촌댁과 달리 남촌댁은 아담하고 짜임새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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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평택시

    경기도 평택의 심순택과 능성구씨 고택과 송덕비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는 한말 정치가이자 영의정을 지낸 문충공 심순택과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능성구씨가 말년에 진위면 봉남리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하였다. 이에 봉남리에는 심순택과 능성구씨의 유허비가 남아 있다. 이들이 살던 고택이 남아 있으며, 청송심씨의 묘역과 심순택신도비가 남아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능성구씨(구택희)는 여성으로는 드물게 진위향교 선정비각에 정경부인능성구씨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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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 달성군

    싸리기둥 칠기봇장 초가집 달성 조길방 고택
    달성 조길방 고택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된 고택이다. 초가집이지만 싸리기둥에 칠기나무로 된 집이라는 자랑으로 ‘싸리기둥에 칠기봇장’으로 불리던 가옥이다. 조선후기에 지어진 초가로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초가집으로는 드물게 안채의 개구부는 그 규모나 성격이 오래된 유구로 주택발달사의 연구자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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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선비정신과 충효정신을 갖춘 무신, 선형
    선형은 조선전기 의주목사, 황해도병마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던 무신이다. 그는 일찍부터 제사지내는 절차와 예절을 익혔고, 시문을 잘 지을 만큼 한학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칭찬이 자자했다. 후손들이 뜻을 모아 선형이 국가에 공헌한 업적들을 계승하고, 영원토록 사모하는 충정을 모아서 세운다는 의미로 영모제를 창건하였고, 1970년도에 중수하여 선형의 문무겸전의 선비정신과 진충보국의 충효정신을 기리는 불천위제사를 지금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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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정국공신 3등에 추록되어 파천군에 봉해진 윤탕로
    윤탕로는 공조참의, 형조참판,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던 조선 전기 무신이다.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윤호(尹壕)로 윤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윤호의 딸이자 윤탕로의 누이가 정현왕후가 되면서 영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렇게 가문은 대를 이어 부원군이 되는 경사를 맞이했다. 1508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시호는 영평(靈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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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동구

    왜적도 두려워한 흑의장군 정발(鄭撥)
    정발(鄭撥)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자고(子固), 호는 백운(白雲)이다. 판윤 정지례(鄭之欚)의 고손으로, 조부는 돈녕부도정 정세현(鄭世賢), 부는 군수 정명선(鄭明善), 모는 관찰사 남궁숙(南宮淑)의 딸이다. 1577년 무과에 급제하고 출사하여 선전관, 해남현감·거제현령, 비변사 낭관, 위원군수·훈련원부정을 역임했다. 1592년 부산진첨절제사로 부임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부산진을 지키다 순절했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 동래의 충렬사(忠烈祠:安樂書院)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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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황희의 선정을 기리는 강원도 삼척 소공대비
    강원도 삼척시에 소재한 「소공대비」는 황희가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펼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1423년에 강원도 일대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힘겹게 살고 있었다. 이때 황희가 임금의 명을 받고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백성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황희가 돌아간 후에도 백성들은 황희의 선정을 잊지 못하고 소공대를 지어 그리움을 달랬다. 이후에 소공대의 내력과 황희의 공적을 새긴 「소공대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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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조선 사대부들이 바위에 새긴 방선문 마애석각
    신선이 방문하는 문이라는 의미를 지닌 제주 방선문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 명소 중 하나이다. 방선문은 한라산 등반을 하기 위해 지나가는 곳이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이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찾아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산수를 유람하면서 경치가 빼어난 곳을 방문하면 자신의 이름이나 시를 바위에 새겨 넣는 일이 많았다. 「방선문 마애석각」도 방선문의 경치를 보고 감탄한 사대부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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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근에 맞서 제주도민을 구한 의녀(義女) 김만덕 묘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선입동에 위치한 모충사에는 김만덕(金萬德)의 묘비가 건립되어 있다. 김만덕은 1795년 제주도에 대기근과 전염병이 돌았을 당시 사재를 털어 도민을 구휼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당시 기녀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을 돌보기 위해 앞장선 행적은 널리 칭송 받았다. 이에 정조로부터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직책을 하사 받기에 이르렀다. 김만덕 묘비는 그녀의 사후 1812년에 지역민이 협심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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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시장에서 거래물건의 대체방식
    한국의 전통시장에서는 다양한 상품들이 거래되었으며, 거래 관행에 따라 거래물건의 대체하는 다양한 거래문서들이 생겨났다. 특히 상품을 거래할 때는 수표, 임치장, 출차표 등을, 돈을 빌릴 때는 어음, 환간, 보음지, 삭채표 등의 문서들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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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도구
    전통시장에 물건을 운반하는 도구에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의 한 종류인 '달구지'가 있다. 달구지는 가장 능률적인 운반수단으로 대규모의 상단이 이동하는 경우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달구지를 대신한 운반도구에는 수레가 다니기 어려운 지역에서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하던 '썰매'와 '구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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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꿈꾸던 사회가 담긴 태평성시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미터가 넘는 비단에 그린 8폭짜리 그림이 있다.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그림을 “태평성시도”라고 부른다.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조선 후기 그림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따름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상점과 그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의 모습은 무엇을, 왜,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문자등으로 밝힌 ‘태평’을 통해 당대 태평한 도시를 꿈꾸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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