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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사대부 출신 우리 연극의 개척자, 박승희
    박승희는 전통 사회의 사대부 출신 지식인으로, 연극이며 광대들이 천시되던 편견에 맞서 문화 행위의 중요 영역으로 한국 근대연극을 격상시킨 대표적인 선구자이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일본 현지의 조선인 유학생들과 예술 전반의 문예 동아리로 시작한 “이상은 하늘에 두지만,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서자”는 뜻의 토월회 조직을 주도했고, 열정과 애국심에 불타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만주 땅까지 순회공연을 하며 연극운동이라는 가시밭길을 꿋꿋이 걸어간 우리 연극의 개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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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북구

    화가의 대표 이름이었던 1930년대 한국의 고갱, 이인성
    이인성은 문화의 암흑기로 불리던 일제시기, 일본 화가들이 도입했던 유럽의 근대 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능란한 실력을 발휘해 일제 치하 조선과 일본의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면서 천재이다. 한국의 고갱 소리를 들었던 당대 최고의 서양화가 이인성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향토적 심미주의’라 불리는 고유의 화풍을 펼치며, 한국의 서양화 분야 많은 후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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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근대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김종영은 서예를 통해 예술세계에 진입한 대한민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이다. 조선 후기 건축된 경남 사대부의 전통한옥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선친에게 한학과 서도를 익힌 그는 훗날 한국 현대조각의 지평을 열어 보였다. 동양과 서양미술을 꿰뚫어 살피며 무심한 돌덩어리와 나무토막에서 생명의 근원을 찾아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불각(不刻)의 미’라는 예술론을 완성하였고, 이를 실천하며 세계 속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찾아 그 위상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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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강경포구로 돛배 줄지어 들어오던 시절 – 논산 강경갑문과 배수지
    충청남도 강경읍 강경 갑문과 채운산 배수지는 강경의 전성시대를 떠받친 주요 토목 시설이다. 강경은 조선 2대 포구, 조선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번성하던 고장이다. 금강과 논산천, 강경천, 대흥천이 합류하는 강경은 천혜의 내륙 포구다. 개항 이전부터 중국과 일본의 상인들이 드나들었던 번성하는 포구였던 강경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하천 직선화 등을 통해 물길을 다스리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1924년 대흥천에 갑문을 설치함으로써 신 강경 포구가 안정적으로 하역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고질적인 강경의 홍수에도 대처하고자 했다. 강경 갑문은 일제강점기에 내륙 하천에 설치된 유일한 갑문이다. 채운산 배수지도 1924년 건설되어 강경 거주 일본인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했다. 두 시설은 강경의 전성시대를 보여주는 시설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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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생명연장의 꿈이 붐비던 곳,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건물은 1923년 지어졌다. 1926년부터는 연수당이라는 간판으로 건재 한약방이 운영되었다. 연수당은 병이 난 사람들, 보약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강경의 대표적 한약방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때 남일당이 이름을 바꾼 한약방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남일당은 인근에서 성업했다가 사라진 다른 한약방이다. 연수당 건재 한약방은 전통의약 시대 보통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준 상징적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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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도청을 빼앗기고 대신 받은 다리 – 충남 공주 금강철교
    충청남도 공주는 조선 후기 강경, 청주 등지와 더불어 물산이 집결하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철도가 발달하게 되자 수운을 중심으로 한 공주의 번영은 서서히 막을 내렸다. 당초 조선총독부는 경부선과 호남선을 공주에 부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철도는 대전으로 가고 말았다. 연이어 충남 도청마저 대전으로 이전하자 공주 사람들은 반대 시위에 나섰다. 일제는 분노한 공주 시민들에게 도청 이전에 대한 보상으로 공주에 금강철교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금강철교는 1932년 1월 2일에 착공하여 1933년 10월 23일에 준공되었다. 당시 철교는 대부분 철도교(鐵道橋)로 건설되었지만 금강철교는 도로교(道路橋)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금강철교는 1950년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교량의 2/3 가량이 파괴되었다. 1952년 복구공사에 들어가 1956년 9월에 준공하였다. 문화재청은 금강철교가 교량건설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하여 2006년 3월 2일 등록문화재 제232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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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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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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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근대의 기억과 근대의 건축
    근대 건축은 근대의 기억이 응축된 타임캡슐이다. 2001년부터 지정되기 시작한 등록문화재 가운데 근대 건축이 단연 많은 이유는 건축 공간 속에서 풍부한 역사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영욕으로 점철되었다. 근대 건축물에는 파란만장한 영욕의 역사가 배어 있다. 근대 건축과 근대 문화유산에 관한 관심이 근년에 높아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전국 곳곳에는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채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는 공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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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근대의 산실, 학교
    학교는 한국의 근대를 기른 공간이었다. 한국에서 전근대 신분제 사회가 해체되고, 교육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게 되자 교육열은 급팽창했다.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각종 학교는 근대 교육을 소개하고 확장하였다.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백성을 ‘황국 신민’으로 묶어두려고 했으므로 더 많고 높은 교육을 갈망하는 조선인과 마찰과 갈등이 이어졌다. 해방 후 한국인의 교육열이 폭발하면서 각급 교육기관이 설립되어 학교는 순응하는 근대인과 저항하는 근대인을 동시에 길러냄으로써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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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산업화의 꿈이 영근 곳들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공간들은 현재도 사용 중이거나, 초기의 시설들이 교체되어 사라진 곳이 많다. 1960년대 중반에야 산업화가 본격화되었으므로 산업화 유산은 향후 시간을 두고 정리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도 몇 곳의 장소는 단편적이나마 산업화의 꿈이 어떻게 잉태되고, 성장해 갔는지를 성찰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농업의 근대화를 이끈 배수펌프장에서부터 공장 건축을 예술과 접목시킨 사례에 이르기까지 산업화의 꿈을 배태했거나, 전사(前史)를 써나간 공간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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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중구

    대구 지역 최초의 서양식 주거 양식인 선교사블레어주택
    대구 청라언덕에 자리 잡은 선교사 블레어 주택은 개항장 부산을 통해 대구로 온 선교사 블레어가 살던 집이다. 선교사들이 집을 지은 청라언덕은 당시 공동묘지였다. 선교사 블레어주택은 1910년경 건축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인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기초를 다지고 지하실을 만든 다음 2층 벽돌집으로 건립하였다. 선교사 블레어주택은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서양식 주거 양식과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건축 유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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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선조들의 희생과 독립을 향한 노력이 기록된 제주항일기념관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끝내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과 독립의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주 항일기념관이 3.1운동이 일어났던 제주시 조천읍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항일기념관은 제주도에서 진행된 항일운동에 대해 자세히 전시하고 있다. 또한 외부전시와 조천면 비석거리까지 항일운동의 희생과 노력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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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근대 집단 주택의 한 모습, 제주 성이시돌 목장 테시폰
    성이시돌 목장은 1961년에 아일랜드 출신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황무지를 개간해 세운 목장이다.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시 한림 본당에 부임하여 제주도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성이시돌 목장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마치 야외 텐트를 연상시키는 모양을 한 ‘테시폰’이라는 이색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다. 테시폰은 내부에 기둥이 없어 자재비를 절약할 수 있고 빠르게 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테시폰은 맥그린치 신부의 개척정신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근대 집단 주택의 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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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나비박사 석주명이 근무한 구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에는 구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 건물이 있다. 이곳은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최근 국가등록문화재 제785호로 지정되었다. 나비박사 석주명이 근무했던 장소로 더 유명하다. 석주명은 1943년부터 2년간 생약연구소에 근무하며 제주의 자연과 문화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제주도 총서 6권을 집필하였으며 제주학의 선구자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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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진군

    한국 추상미술의 대부, 유영국(劉永國)
    한국 모더니즘의 제1세대 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산’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1960년대 말부터 산을 모티브로 하는 비구상적 형태로서의 자연을 선, 면, 색채로 탐구했다. 강렬한 원색과 절제된 구성이 특징인 유영국의 추상화에는 절정과 달관의 경지에서 구축한 장대한 자연의 숭고미가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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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릉군

    수탈의 역사와 근대의 궤적,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
    19세기 이전부터 울릉도의 어업자원과 산림자원을 탐내던 일본은 1906년 울릉도에 자유 이주어촌을 형성했다.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은 울릉도에서 고리대금업과 벌목업으로 부를 쌓은 사카모토 나이지로라는 인물이 1910년대에 지은 주택이다. 건축 기법은 현재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본 전통 방식과 수법을 보여준다. 도동항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지어진 사카모토의 집은 해방 이후 한국인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변형되기는 했으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현재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은 현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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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진군

    변함없이 깜빡이는 희망의 빛 - 울진 죽변등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항의 죽변등대는 1910년 건립된 16m 높이의 8각형 등대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54호이다. 처음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이후 100년 넘게 어선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죽변항은 대게와 오징어잡이, 미역 특산지로 유명하며, 특히 대게 서식지인 ‘왕돌짬’을 기반으로 한 활발한 어업이 이루어진다. 오징어 성어기에는 하루 3,000t의 어획량을 기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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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도군

    문학사에 빛나는 오누이, 청도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
    경상북도 청도군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는 한국 시조문학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오누이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정서적 바탕을 키운 곳이다. 이호우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남로당 간부라는 누명을 쓰거나 그의 작품이 반공법에 걸리는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가 남긴 185편의 시조는 한국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여동생 이영도는 평생 폐침윤 등의 지병으로 고생했으나, 빼어난 시조집과 수필집을 남겼다. 1910년경에 건축된 생가 인근에는 두 사람의 시비(詩碑)가 서있는 ‘오누이공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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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근대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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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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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괴산군

    70년간 군수 관사로 쓰인 100년 전통 한옥 - 괴산군수 관사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괴산군수 관사는 1910년대에 지어진 전통 한옥이다. 괴산읍 중심가는 조선총독부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괴산·연풍·청안을 통합하여 괴산군으로 설정한 이후 형성되었다. 전통 한옥도 그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 한옥은 1950년 최 씨 성을 가진 부자가 괴산군에 기증한 이후 지금까지 군수 관사로 사용되었다. 관사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나뉘는데 각기 독립적인 공간이면서 동선을 고려해 유기적으로 배치되었다. 한옥 관사 근처에는 괴산의 명물인 고추 오일장이 열린다. 한옥에서 동진천 건너편에는 경술국치 당시 자결 순국한 홍범식 선생의 고택이자. 역사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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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청주 우암산을 깎은 자리에 세워진 충청북도지사 구 관사
    충청북도지사 구 관사는 1939년부터 71년간 충청북도지사 관사로 쓰이다가 현재는 충북문화관 ‘문화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관사는 충청북도청이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하면서 신축된 것이다. 1937년 도청이 새로 지어지기 전에는 현재 중앙공원 내에 있었던 청주 관아와 병영의 건물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다. 잉어배미라고 불리는 연못이 있는 곳에 도청부지가 선정되었고, 우암산 자락을 깎아 연못을 메꾸어 그곳에 건물을 올렸다. 우암산 자락에는 충청북도지사 관사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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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최신 상품을 과시하던 공간, 구 충북산업장려관
    충청북도 청주시 충북 산업 장려관은 충청북도에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936년 12월 충청북도 도청 신축청사보다 6개월 빠르게 완공되었다. 근대 공업 생산품들을 전시하여 소비를 촉진할 목적으로 건립된 충북 산업 장려관의 개관 당시 명칭은 충북 물산 장려관이었다. 원래 충청북도 청사의 부속 건물로 지어진 충북산업장려관은 해방 후 1957년부터는 충북상공장려관으로 과거 기능을 이어갔으나, 산업이 발달하면서 국가 행정이 주도하는 전시 공간으로서의 성격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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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영화동, 미군기지와 함께한 거리의 기억
    군산 영화동·장미동·중앙로1가는 개항 후 일제의 수탈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미군 주둔과 기지촌 형성에 따라 상점·클럽·오락실이 밀집한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깡통경제’라 불릴 만큼 미군 물자가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베이스택시·잡화점·환전·수입품 상점 등이 번성했다. 현재는 근대문화역사 지구로 주목받으며 근대 건축물이 남아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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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근대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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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닌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에는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이 있다. 이 건물은 1920년대 농장의 지주였던 구마모토가 정읍 화호리를 방문할 때 사용하기 위해 지은 가옥이다. 두 개의 공간이 복도로 이어져 앞쪽은 일본인 지주의 가족이 머물고 뒤쪽은 일본인 경리과장이 머물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농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쌀을 수탈하고 부를 축적한 일본인의 행적이 고스란히 남은 곳으로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2005년 11월 1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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