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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인천 >부평구

    사진신부 민함나,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함께하다
    민함나(閔함나)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출생으로 1914년 민의식의 사진신부로 미국 하와이에 들어온 이민자였다. 1938년 대한부인구제회 와히아와 대표, 1939년 5월 대한부인구제회 부회장 및 힐로 지방대표, 1940년 1월 하와이 한인기독교회 평신대 대표회 대표원, 1941년 5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준비위원회 부인구제회 대표 및 의사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독립금수봉위원, 1941~1943년까지 대한인부인구제회 중앙부장, 1944년 회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전후조선구제위원회 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38~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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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몸 바치다
    김철은 전남 함평군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재산을 처분하여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고 임시정부 수립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군무장, 재무장 등을 역임하고 임시정부가 독립운동단체의 분열을 막고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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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대륙에서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독립을 준비한 광복군 청년 장교 김동수
    김동수(金東洙)는 1916년 인천 출생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어린 시절부터 민족의식과 기독교의 종교적 믿음이 있는 가풍 속에서 성장하였다. 1923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인성소학교, 공시중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중국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입학하여 훈련을 받았다. 1936년 7월 중국 육군 제25사단 견습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남경으로 가 피난길의 임시정부를 경호했다. 1939년 10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부대장이 되었다. 1945년 4월 중경에 토교대(土橋隊) 설치로 3대 대장을 역임, 광복 후 한국독립당 감찰위원, 상해지당부 특파원 등으로 선임되어 활동을 이어갔다. 1946년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동북특파원으로 교포의 귀국을 도왔고, 본인은 1948년 6월에 귀국하였다. 정부에서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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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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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조화를 꿈꾸다, 여운형
    여운형(呂運亨, 1886~1947년)은 경기도 양평군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의 청년들을 계몽하고 교육하는데 힘썼다. 그는 국내에서 항일결사단체인 신민회에서 활동하고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신한청년당의 발기인으로서 참여했던 여운형은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하였는데, 그가 사장으로 있을 때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인해 신문이 폐간되기도 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광복을 맞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47년 극우파 한지근의 총격을 받아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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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몸을 던지다, 이회영
    이회영(李會榮 , 1867~1932년)은 조선 최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랫사람에게 교만하게 굴지 않고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였으며 혁신적인 사상으로 국민을 계몽하고자 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이회영 6형제 일가는 전 재산을 처분한 채 만주로 망명했다. 무장독립운동의 방향에 따라 교육 기관 및 독립군 양성 기관 설립에 기여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힘썼던 이회영은 대련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해 순국하였다. 오늘날, 서울특별시 중구에는 이회영을 포함한 6형제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이회영기념관이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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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족대동단’ 조직책 한기동지사
    한기동(韓基東)은 인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전국적으로 파급되던 시기에 경기도 장단군 진남면 성화학교에서 군중들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비밀결사조직 대동단 단원들과 함께 의친왕(義親王)을 상해로 망명시켜 망명정부를 세워 제2의 독립만세시위 추진을 계획했다. 그러나 계획이 실패하여 의친왕은 연금되고 한기동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체포됐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8월 15일 출옥했다. 그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6.25전쟁으로 충남 서산에 피난 내려와 살다가 1997년 향년 99세에 별세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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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숙, 만세운동을 하다가 팔을 잘리다
    윤형숙은 1919년 3월 10일에 광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팔 하나가 잘렸는데도 다른 팔로 태극기를 다시 잡고 만세를 불러서 ‘남도의 유관순’ㆍ‘제2의 유관순’으로 불린다. 3.1 만세운동으로 팔과 눈에 장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윤형숙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한평생을 학생을 가르치고 기독교 선교와 반공운동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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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으로서의 여성, 주체를 꿈꾸다. 차미리사
    차미리사(車美理士, 1879~1955년)는 조선의 여느 여자아이와 다름없이 홀대를 받으며 태어났다. 여성인권은커녕 남존여비가 당연시 되었던 시절, 그는 섭섭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였으나 2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상동교회에서 미리사라는 세례명과 함께 근대 여성으로의 삶을 시작했다. 선진국으로 떠난 유학을 떠나 우리나라 여성의 성장은 생계와 직결된 것이며,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도 여성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여성 교육을 외치고 근화학원을 세웠다. 현 덕성여자대학교는 그가 설립한 근화학원의 후신으로서 현재까지도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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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잔다르크’ 여장군 김명시
    김명시는 중국혁명에 참여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독립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조선의용군으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인물이다. 해방 후에는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를 뺀 모든 사람들과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 데 헌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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