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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남 >무안군

    전라도의 출생의례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가지는 것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의례를 말한다. 기자속을 전라도에서는 지앙맞이라고 한다. 그렇게 아이를 가지면 태몽이나 산모의 상태를 통해서 성별을 예측해보기도 했다. 산모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주의하고 먹는 것부터 행동까지 주의했다. 산실을 마련하고 삼신상을 차린다. 대문에는 삼칠일간 금줄을 걸어둔다. 금줄을 걷어내고 나면 아이와 산모는 첫 나들이로 친정집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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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경기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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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4건)
  • 지역문화 Pick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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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가평군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
    경기도 가평지역에 소재한 참전 기념비, 전투 기념비, 창의탑, 위령탑 등을 담은 영상이다. 6·25전쟁의 양상과 참전용사들의 호국영웅 정신을 알아본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인천 >옹진군

    옹진군 홍경애씨의 증언
    6.25전쟁을 생각하면 지금도 지옥 같은 생각이 난다. 죄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무고하게 죽었다. 전쟁의 잔상으로 황량해진 거리엔 죽은 엄마 젖을 빨며 철없이 엄마 시체를 넘으며 노는 아이의 모습, 전깃줄에 수두룩하게 사람 손을 묶어 끌고 가며 여자들이 뒤쫓아 통곡하던 모습, 끌고 가던 사람들을 묶은 채로 창고에 넣고 불태워 죽이던 장면, 9·28 이후에 인민군이 도망가고 땅에 묻힌 시체를 꺼내서 늘어놓았던 장면들은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특히 끔찍한 것은 철없는 둘째 아들이 11살이 되도록 우리 엄마는 전쟁 중에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하는 소리이다. 함포사격을 하는 통에 피난민들이 혼비백산해서 뛰는데 잠시 놓쳤다가 겨우 찾은 것을 그렇게 말해서 어미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의 말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시에 애를 버리고 간 사람도 많았고, 젖먹이 애 때문에 모두 죽는다고 갓난애를 포대로 싸서 바다에 넣었던 사례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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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정배리 한경석씨의 증언
    슬프다! 나의 선친께서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날벼락 같은 참화를 당하셨는가? 어찌 사람을 이렇게 참혹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공산당의 북한은 지금 어떤가? 그런데 한심한 것은 요즈음 전후세대들은 대개가 북한(공산당)이 이렇게 무자비하고 잔인한 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나라는 정체가 불분명한 나라다. 내가 병들어 죽게 된 몸이지만 앞날이 걱정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6.25당시 나는 16세의 어린 나이였기에, 이미 돌아가신 어머님이나 형님들로부터 들은 바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형님과 어른들의 말씀을 들은 바 기억을 더듬어 이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내가 이미 병들어 있거늘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거짓 없이 들은바 사실대로 기억을 더듬어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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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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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부평구

    미군기지 빵 공장에서 빵 굽는 내음에 美치다
    부평 분지 서남쪽에 위치했던 빵 공장은 저기압과 서풍이 부는 날에는 어김없이 온 시내에 빵 굽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빵이 귀하던 시절 냄새만으로도 하루 종일 배고픈 기억과 함께 오후에는 가끔 어머니께서 새참으로 김치전이나 밀기울 개떡을 해 주시던 행복했던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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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속초시

    설악산의 숨은 성곽 – 권금성 이야기
    권금성은 설악산 해발 860m 준봉에 자리한 고려시대 산성이다. 항몽 전쟁 당시 백성들의 피난처이자 방어 거점이었으며,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다. 성 내부에는 봉수대와 절구 등 생활 흔적이 남아 있고 진전사와의 연계, 불교 방어 성곽으로서의 성격도 주목된다. 2007년 조사로 내성과 외성,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군사적, 문화적 가치를 입증했다. 오늘날 관광지이자 역사적 증언의 공간으로 전쟁과 신앙, 민초의 삶이 중첩된 유산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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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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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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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순천시

    신선이 거닐던 선암사 승선교
    보물 제400호 순천 선암사 승선교 (順天 仙巖寺 昇仙橋)는 선암사 입구 부도군을 지나 경내에 이르기 전, 주산인 조계산에서 유출되는 계곡물이 선암사 앞으로 흐르는 곳에 세워진 다리다. 이곳에서 대소 규모의 다리가 2개소에 설치되어 있는데, 상류 쪽 다리를 상승선교, 하류 쪽 다리를 하승선교라고 부른다. 이중 상승선교가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선암사 승선교다. 숙종(肅宗) 33년(1707) 12월 처음 가설되었다가 숙종 38년(1712) 홍수로 인한 수재를 만나, 숙종 39년(1713) 중수 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나 대규모의 중수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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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여수시

    흥국사 홍교
    흥국사 앞 계곡에 설치된 이 다리는 흥국사 중수 15년 후인 인조 17년(1639)에 설치되었다. 그동안 홍수피해로 여러 차례 수리가 되었으나 자연 암반을 기초로 하고 잘 가공된 석재를 이용해 견고하게 조성한 아치(arch) 구조의 홍예교(虹蜺橋)다. 홍예란 무지개란 의미로 무지개와 같이 반원형 구조로 만들어진 다리를 홍예교 또는 홍교라고 한다. 바닥이 점토로 된 다리로 멍에 돌과 다리 가장자리에 갓 돌이 갖추어진 드문 예로서 우리나라 홍예교 중 온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귀중한 다리다. 이 다리는 국내에 현존하는 홍교 가운데 가장 크고 다리를 제작한 기술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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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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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목포시

    신안군 섬의 초분, 익상장과 구토롱
    전라남도 신안군에서는 2000년대까지 초분 풍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초분의 형태는 섬마다 달랐는데, 하태도에선 통나무로 기둥을 새우고 연결하여 관을 올리는 익상장으로 치러졌고, 도초도, 비금도, 우이도에선 돌을 쌓아 기단을 올리고 이엉마름을 올리는 석단장으로 치러졌다. 구토롱이라고 하여 이엉 대신 흙을 올리는 초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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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전쟁은 없어야
    심병관 씨는 말 수가 상당히 적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서화리에 있던 시간보다는 피난을 나가서 원주에 머문 기간이 더 길었다. 거실 탁자 위에는 6.25한국전쟁의 피해 상황을 적어놓은 메모지와 처세술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처세술을 읽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말고, 더 가지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가려하려 하지도 말고,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생각하라”였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 自厚)니라."라는 『명심보감』의 내용도 있었다. 곧 온갖 일에 너그러우면 그 복이 스스로 두터워진다는 뜻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을 겪고,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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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딱국총을 들고 싸웠지
    조병수 씨는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하셨고 거실이 울릴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기억력도 좋으셔서 구술을 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구술은 두시간씩 두번 진행되었다. 구술을 하는 조병수 씨는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배우처럼 때로는 홍 분했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에서 스스로 부끄럽다 고 생각되는 부분을 포장해서 말했다가 스스로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조병수 씨의구술에 상당한 신뢰가 갔다. 특히 조병수 씨의 구술은 일제강점기의 모습과 생활에서 강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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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동개골의 밤
    <면담상황> 이곳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곳이었다. 이정화 씨는 구술 중 한숨을 자주 내쉬고, 삶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으로 얼룩졌다고 했다. 지주라는 이유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살다가 둘은 품 안에서 보냈다. 이처럼 이정화 씨는 6.25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그 전쟁을 몸으로 겪은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아래의 구술은 인제군의 전쟁 전후사와 우리의 근대사를 재조명 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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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시 대정읍의 역사자료전시관, 기억의 눌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은 알뜨르 비행장, 선알오름 학살터 등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 기억들을 모아놓은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의 이름이 기억의 눌이다. 눌은 제주 방언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더미'이다. 기억의 눌이 있는 건물은 1955년 지어진 대정면사무소 건물로, 2005년 등록문화재 157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억의 눌은 대정읍의 주민들이 직접 지역 공간의 기억과 기록을 모아 만든 전시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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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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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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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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