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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국가에서 허가받은 장사꾼 시전상인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상설 상점을 ‘전(廛)’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시전은 국가에서 일정한 건물들을 지어 주고, 상인들은 시전 건물들을 빌려서 물건을 팔거나 거래를 하였다. 대신 국가에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지불하거나, 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였다. 조선시대의 시전상인들은 국가로부터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과 임시로 길가에 벌여 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난전(亂廛)을 금지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민간 상공업이 발달하고, 개항 이후 외국 상품이 유입되어 ‘금난전권’은 붕괴가 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았던‘시전상인’ 들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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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시전 상인과 난전 상인의 갈등을 기록한 『각전기사』
    조선시대 난전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시전 상인과의 갈등 또한 증가하였다. 『각전기사』는 조선시대 정조 연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시전 상인과 난전 상인들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전기사』는 현재 교토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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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전설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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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산정호수와 김일성 별장
    산정호수는 1923년 3월 20일, 일본인들이 영북면 운천리 주변의 황무지를 개발해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짓기 위해 조성한 저수지이다. 그러나 산정호수 하나만으로는 물이 충분하지 않아, 이후 강포리에도 또 하나의 저수지를 만들고 두 저수지를 수로로 연결하여 자일1리 남쪽 1km 지점에서 물길이 만나도록 설계하였다. 이 지역은 북위 38도 4분에 위치해 있어,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소련 군정의 관할로 넘어가 한때 북한의 통치 아래에 놓이기도 했으나, 정전협정 후 수복되었다. ‘김일성 별장’이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는 1960년대 미 7사단이 산정호수를 주말 휴양소처럼 사용하며 저수지 둑에 지은 기와집 때문이다. 미군이 철수한 뒤, 아주관광이 산정호수를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홍보 전단지에 이 건물을 ‘김일성 별장’이라고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과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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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세 개의 시장이 합쳐진 송정삼색시장
    '송정삼색시장'은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조선시대 개설된 '선암장'의 전통을 잇고 있다. 2015년에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되면서 당시 광산구에 있던 송정매일시장, 송정5일장, 1913송정역시장을 ‘송정삼색시장’이란 이름으로 통합하고, ‘세 가지 색깔을 지닌 전통시장’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전통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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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서구

    광주·전남 시장 가운데 가장 많은 상점이 있는 양동시장
    양동시장은 광주교 아래 백사장에서 2일과 7일에 열렸던 큰 장과 작은 장에서 비롯된다. 현재는 광주광역시뿐만 아니라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이다.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물건의 소매뿐만 아니라 광주와 전라남도 일대를 관할 지역으로 도매까지 전담으로 이루어지던 시장이었다. 전국에서 유통되는 홍어의 90%를 양동시장이 차지할 만큼 홍어가 유명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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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서구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양동시장
    광주광역시 양동시장의 역사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 100년의 시간을 훌쩍 넘었다. 긴 역사만큼 양동시장은 근현대사의 다양한 사건들과 함께 해 왔고, 역사적 현장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에도 양동시장은 함께 했다. 당시 양동시장 상인들은 시민들에게 주먹밥과 음료수, 구급약품 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양동시장은 5.18사적지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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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의 이동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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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문경의병장 신태식 유적
    신태식유적은 한말의병기부터 일제강점기 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신태식이 태어나 살았던 집이다. 신태식은 1895년 을미의병기에 의병투쟁을 시작하여 정미의병기에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을 조직하군자금을 모아 서로군정서를 후원하였다. 그가 살던 생가는 의병투쟁중 1907년 9월 일본 경찰에 의해 본가가 불태워진 것을 2017년 복원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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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목호재에서 못재까지: 한 고개의 지명 유래
    못재(목호재)는 효성이 지극한 청년이 호랑이로부터 어머니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고개다. 여인의 계시에 따라 흰죽과 허수아비로 호랑이를 속여 어머니를 지켰고, 사람들은 이 청년을 ‘목호(牧虎)’라 불렀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효자가 호랑이를 3년간 흰죽으로 길들였다는 내용이 전해지며, 이러한 전설이 목호재 → 모고재 → 못재라는 지명 유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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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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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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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고래등 기와집이 부럽지 않은 초가집, 김제 오영순 가옥
    김제 오영순 가옥은 왕개산 아래에 있는 초가집으로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의 죽절마을에 있다.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지을 당시에는 초가삼간이었으나 20세기 초에 아래쪽을 중·개축한 것으로 여겨진다. 초가집으로는 드물게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고, 부엌 남측에 밥청이 있는 것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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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전북 임실군 지사면에서 논 매며 부르는 싸호소리
    전북 임실군 지사면에서는 논매기를 마무리할 때 싸호소리를 불렀다. 일명 쌈싸는소리라고도 한다. 싸호소리는 2마디짜리 전언가사에, 디딤가사는 “어휘 싸호”, “어허리 사호”처럼 “싸호”와 비슷한 음가의 핵심어를 넣어 선후창으로 부른다. 말장난을 이용해 흥을 돋우고 작업을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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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제2진주성 전투
    영남의 왜적이 1593년(선조 26) 6월 22일에 와서 진주를 공략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분탕질을 쳤다. 이보다 앞서 성안에서는 적이 오려 한다는 것을 듣고서 여러 가지 방비를 해 두었다.23일부터 수많은 적이 와서 일진일퇴를 거듭하였으나 드디어 성이 함락되었다.성이 함락되자 좌우가 김천일을 부축해 일으켜서 피하기를 권하였으나, 천일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좌우를 돌아보며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하고, 마침내 아들 김상건과 더불어 서로 끌어안고서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적이 성을 함락하고 모두 허물고 평지를 만들었는데 성안에 죽은 자가 6만여 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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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용맹하게 성을 지킨 제1진주성 전투
    1592년 10월 5일에 적이 1만 명을 셋으로 나누어 곧바로 진주를 침범하였다. 처음 전투에서 수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고, 진주 목사 김시민과 지역의 관리들이 성을 지킬 계책을 세우고 여러 장수와 함께 각 문을 나누어 지켰다. 7일부터 시작된 전투는 밤낮 5일간을 버티면서 목사 김시민을 비롯하여 곤양 군수 이광악, 성수경, 최덕량 등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군사들과 함께 용맹을 떨치며 힘껏 싸워 마침내 한 성을 온전하게 지켜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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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김시민 장군의 3대첩이 이루어진 진주성
    남강변 절벽위에 세워진 진주성은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1379년(우왕 5)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둘레는 1.7㎞이다. 원래 백제의 거열성지였다고 전하며 고려 말에는 왜구 방비의 기지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김시민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란 3대첩의 전승을 이룬 곳이다. 촉석성(矗石城), 진주읍성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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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강진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강진 염걸장군 묘소
    강진의 염걸 장군 묘소(康津廉傑將軍墓所)는 전라남도기념물제36로 1978년 9월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산61번지이다. 묘의 주인공 염걸은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했으며, 글재주 또한 뛰어나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비범함을 인정받았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서 능력을 발휘해서 수문장(守門將)의 벼슬에 올랐으나 도망가던 왜군을 추격하다가 거제도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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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해남군

    승병의 전라도 활약, 처영대사
    처영은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군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처영의 호는 뇌묵, 휴정(서산대사)의 제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이 8도의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 의승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자 호남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일으켜 싸웠다. 이후에도 3,800명의 병력과 함께 해우주산성에 주둔했을 때, 700명의 승병으로 적병 3만과 대전하여 2만 4천 명의 사상자를 내어 임진왜란의 최대 승첩을 이루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절충장군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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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화순군

    화순의 의병장 최경회
    최경회(崔慶會, 1532∼1593)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면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다. 전라도 화순에서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나 진주성 싸움에서 패했다. 그래서 최경회는 김천일, 고종후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북쪽을 향해 4배를 한 후 인장과 병부를 가슴에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결국, 최경회와 문홍헌을 비롯한 동향의 의병들은 죽음을 함께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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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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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밤나무 숲 전설
    횡성읍 모평리 앞뜰의 밤나무 숲과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 숲에 많은 황새와 왜가리들이 둥지를 짓고 번식을 하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은 둥지를 튼 새들을 아끼고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개혁이 일기 시작했고, 일제에 의해 숲들이 하루 아침에 잘리우고, 보금자리를 잃은 황새와 왜가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후 마을에는 불미스러운 일들과 열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동네 굿을 한 달 반 동안이나 벌였고, 오늘날까지도 그루터기만 남은 이곳을 신성히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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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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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남원시

    김기수의 현몽으로 찾아낸 전북 남원 주천석장승
    주천석장승은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 신기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주천석장승을 ‘미륵’이라 부른다. 석장승은 높이 270cm, 둘레 221cm, 폭 35cm의 크기로, 머리에는 벙거지 혹은 패랭이 같은 모자를 썼으며, 목은 없이 얼굴이 가슴에 붙어 있는 형상이다. 조선 후기에 살았던 김기수가 죽었다 3일 만에 살아나 캐낸 것이 주천석장승이라고 한다. 지금도 김기수의 자손들은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주천석장승에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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