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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순창군

    연꽃무늬가 새겨진 순창 산동리 남근석
    산동리 남근석은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 팔왕터에 있다. 팔왕터는 설씨부인이 8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산동리 남근석은 약 1500년대에 여장사(청상과부)가 2기의 남근석(미륵님)을 가져오다가 하나는 창덕리(미륵쟁이)에 버리고, 하나는 산동리(팔왕터)에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산동리 남근석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현재 남근석과 여근곡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제의는 없지만 아이가 없는 사람은 남근석에서 기도를 하고, 젖이 부족한 산모는 여근곡 인정샘 부근에서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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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백암리 12당산 중 하나인 전북 정읍 남근석
    남근석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에 있다. 백암리는 마을에 흰 바위가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남근석은 백암리의 12당산 중에 하나이다. 매년 음력 1월 4일이 되면 마을주민들이 모여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백암리에는 원래 24방위에 맞춰 24개의 당산이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현재는 12당산만 남아있다. 백암리의 남근석은 당산, 남근 당산, 남근석, 자지바위라고도 불리고 있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남근석에서 기도를 하거나, 남근석 주위를 돌며 껴안거나, 남근석의 돌이끼를 긁어 달여 먹으면 아이를 낳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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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부안군

    마을 주민들에게 이정표같은 존재, 부안군의 우금바위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2021년 명승으로 지정된 ‘부안 우금바위 일원’이 위치한다. 우금바위는 ‘우금암’으로도 부르는데, 우금산 정상에 솟아 있는 바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크게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쪽에 있는 바위를 ‘묘암’, 서쪽에 있는 바위를 ‘개암’으로 부른다. 우금바위는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의 글에도 나오며, 조선시대 서화가인 강세황은 ‘우금암도’를 그리기도 하였다. 우금바위는 마을 주민들에게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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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남한에서 제일 긴 다리
    1101공병단 소대장으로 남한에서 제일 긴 양양교 다리를 놓았다. 단기하사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3개월간 교육을 받고 1952년 8월 28일 공병소위로 임관 특별휴가를 마치고, 1101공병단 308대대 3중대 3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양양교 건설현장 소대장으로 첫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소대원은 30~40명 공사에 투입되었고 감독은 공병단장 서윤택 대령이었고 다리공사 재료는 목재로 1801부대에서 가져왔다. 특수 장비는 601 경장비 부대에서 크레인, 콤프레셔, 도져, 발전기, 용접기 등을 가져왔고 다리 길이는 300여 미터 공사 기간은 1952년 6월에서부터 초겨울로 짐작되는데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공사하였다. 공사 방법은 목교로 방부제를 발라 파일을 박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우는 방식이고 남한에서 군인이 가설한 다리 중 제일 긴 다리였으며. 당시 남한 전체 다리 중 낙동강 김해~부산 간의 후포다리가 제일 긴 다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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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첩보부대가 침투
    나는 가평리에서 태어났고, 이후 청년단을 결성 후 4863 첩보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전쟁이 나자 재향 양양군민이 똘똘 뭉쳐, 원주에서 이복길, 박세각, 손봉환과 대관령을 걸어서 양양에 들어왔다. 그리고 청년단 읍면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200명 정도 조직하였고, 제1군단 수도사단 제1연대의 민사처의 지원을 받아 함홍기, 이인영 등과 교육을 시켰다. 1951년 5월 1일 G2 HID가 4863부대 첩보대를 개편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 적정 탐지 과업을 받았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100고지인 봉우리에서 대피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통신병이 수도사단에 알렸다. 해군 함대와 연락이 되어 조명탄이 올려주어 간신히 빠져나오는 도중에 인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해왔다. 이복길 대원과 부대장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군사훈련에서 배운 대로 옷을 찢고 지혈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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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양양군

    미군부대와 공병단에 이발봉사
    1950년 7월 23일부터 양양에는 공습과 함포사격이 심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양양사람 중 일부가 거마리로 피난을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는 시기에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할 당시 양양지역에도 북상하던 인민군들이 우리 집 식구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집 식구들과 일부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인민위원장과 여맹위원장이 설두하며 다그치는 바람에 거부하면 잘못될까 봐 마지못해 따라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넘나들며 후퇴하는 대열에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감시가 조금 뜸하고 느슨한 틈을 타 상복 마을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주위가 잠잠해지자 우리 식구들은 산길로 도망을 나왔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모두 타 없어지고 피양(평양)집 등 몇 집만 남았다. 우리는 성내리 군청 뒤에 토막집에서 지냈다. 16살 소년이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발소에 나가 손님들에게 머리도 감겨주고 청소도 하고 이발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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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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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남평 문씨의 시조 문다성이 태어난 나주 문바위 문암
    나주 문바위 문암은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에 위치하고 있다. 나주 문바위 문암은 남평문씨의 시조인 문다성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바위이다. 문바위는 경사지에 놓여 있어 앞에서 보면 높이 6m, 폭 5m의 크기로 보이지만, 뒤에서 보면 1m 정도로 보인다. 문바위 문암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21년(1731)에 쓰여진 남평문씨 창간보 『신해보』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남읍지』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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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구례군

    구산리 지석묘의 표석으로 추정되는 전남 구례 구산리입석
    구산리입석은 전라남도 구례면 토지면 구산리 구만마을에 세워져 있다. 구산리입석이 있는 구만마을은 마을에 9만 가구가 살았다고 하여 구만(九萬), 혹은 아홉 물굽이가 모인 곳이라 하여 구만(九灣)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구산리입석은 높이 240cm, 상단 폭 110cm, 하단 폭 140cm, 두께 25~35cm의 크기이며, 전체적으로 네모지고 두툼한 모습의 판상석의 형태이다. 구산리입석이 구산리지석묘의 묘 표석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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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국가에서 허가받은 장사꾼 시전상인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상설 상점을 ‘전(廛)’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시전은 국가에서 일정한 건물들을 지어 주고, 상인들은 시전 건물들을 빌려서 물건을 팔거나 거래를 하였다. 대신 국가에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지불하거나, 관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였다. 조선시대의 시전상인들은 국가로부터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과 임시로 길가에 벌여 놓고 물건을 판매하는 난전(亂廛)을 금지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민간 상공업이 발달하고, 개항 이후 외국 상품이 유입되어 ‘금난전권’은 붕괴가 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았던‘시전상인’ 들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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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시전 상인과 난전 상인의 갈등을 기록한 『각전기사』
    조선시대 난전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시전 상인과의 갈등 또한 증가하였다. 『각전기사』는 조선시대 정조 연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시전 상인과 난전 상인들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전기사』는 현재 교토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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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매듭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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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한국 전통매듭공예의 역사
    우리나라의 전통매듭공예의 역사는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선 시기에도 매듭공예가 있었긴 하나 문헌에 남아 있는 것이 삼국시대부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데, 특히 조선시대는 오늘날 볼 수 있는 다양한 매듭공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오늘날에 이르면서 매듭공예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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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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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동구

    이 보게 출세하면 오자 했던 그곳, 전통차 마시러 오게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는 1943년에 건축된 일본식 목조 2층 건물이 있다. 기와를 얹은 예스러운 대문, 잔디가 깔린 마당, 나무로 만든 미닫이문과 윤기가 흐르는 마루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 건물은 일본의 건축 양식인 쇼인즈쿠리(書院造)로 지어졌다. 한때 유명한 요릿집 정란각이었던 이 건물을 문화재청에서 구입해 동네 이름에 맞게 문화공감 수정으로 바꾸었다. 문화공감 수정은 2007년에 등록문화재 33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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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동북부 산악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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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금산군

    전라도 금산의 제원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원도(濟原道)
    제원도는 조선시대 전라도 금산(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던 제원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로이다. 현재의 전라북도 동북부 산악구간을 통과하던 역로가 제원도에 포함되었다. 산악구간을 통과하던 역로였던 관계로 제원도가 관할했던 역의 수는 많지 않았다. 당시 제원도에 포함되었던 역로는 전라북도 진안군, 무주군, 완주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었으며, 이들 구간은 현재 국도가 통과한다. 금산군은 전라북도의 동북부 지역과 하나의 생활권이었지만, 충청남도로 이속된 이후에는 대전과의 연계가 훨씬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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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전통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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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인원수와 성격에 따라 나누어지는 개인놀이와 집단놀이
    민속놀이는 분류 기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분이 가능한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개인놀이와 집단놀이다. 이것은 놀이에 참여하는 인원수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놀이 성격의 차이에 기인한다. 개인놀이는 유희성이 강한 반면 집단놀이는 주술성이 강하다. 자신들이 바라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다 같이 협력하는 게 집단놀이의 특징이다. 줄다리기, 고싸움, 화전놀이, 달집태우기 등이 집단놀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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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민속놀이의 역사와 변화양상
    민속놀이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노동과 놀이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 밀양의 백중놀이, 장치기 등이 농사, 나무하기 등과 관련해서 만들어졌다. 또한 놀이는 주술적인 성격도 나타난다. 씨름, 줄다리기 등은 풍년을 점치는 주술적인 성격이 강한 놀이이다. 우리 전통놀이는 조선시대에 생업활동과 관련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의 놀이가 대거 유입되었고, 전쟁을 거치며 탄피, 지뢰 등을 가지고 놀다가, 1970~80년대에는 골목놀이로 변화했다. 그리고 지금은 전통놀이 자리를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이 대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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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놀이의 개념과 분류방법
    민속놀이는 전래놀이, 전통놀이라고도 부른다. 어떠한 시기부터 행해진 놀이를 민속놀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별로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전해오던 놀이를 민속놀이라고 한다. 민속놀이는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놀이 참여인원에 따라 단체놀이와 개인놀이, 성별에 따라 남성놀이와 여성놀이, 시기에 따라 세시놀이와 일상놀이, 장소에 따라 실외놀이와 실내놀이 등으로 나눈다. 놀이의 종류가 많고, 복합적인 성격이 있어서 기준이 정해지더라도 단칼로 무를 자르듯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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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여주시

    남한강 도하작전과 무어 장군 추모전적비
    무어 장군은 제9군단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1951년 2월 24일 남한강에서 도하작전을 지휘하다가 헬리콥터가 고압전선에 부딪히면서 추락사했다. 다행히 3월 4일 미 제1해병사단이 횡성 점령에 성공하였으나 이러한 미 육군 소장 장군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여주 한강변에 무어 장군 추모전적비가 1951년 10월 1일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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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평군

    양평군 참전비
    지평리 전투에서 미 2사단 23연대와 배속된 프랑스 대대는 중공군 4차공세 때인 1951년 2월 중공군 3개 사단 규모의 집중공격을 16:1의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막아 내었다. 이 전투는 중공군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UN군에게 안겨준 최초의 전투이다. 그리고 UN군이 결정적으로 2차 반격작전의 토대가 되는 계기가 되었고, 대표적인 ‘사주방어(All Around Defence)' 전투로 2차 세계대전의 ‘벌지전투’와 함께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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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쥴 장 루이 소령상
    프랑스의 쥴 장 루이 소령은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전투에서 1951년 5월 8일 한국군 부상병 두 명을 구출하고 자신은 지뢰를 밟아 34세의 한창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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