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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숭고한 의병의 넋이 있는 700의총과 옥천 조헌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4호 옥천 조헌 묘소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헌의 묘이다. 조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 당시 조헌이 이끈 의병은 700명인데 금산전투에서 모두 전사하였다. 승병을 이끌었던 영규대사의 승병도 모두 전사하였다. 이때 죽은 의병 700명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일명 '칠백의총'이라 한다. 그때 700의총을 만들면서 의병장의 무덤은 따로 했는데, 그 무덤이 현재 옥천으로 이장해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1976년 12월 충청북도에서는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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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남구

    의병장 고경명 집안의 충, 효, 열, 절의를 기린 정려문 고씨삼강문
    한 집안의 7명이 정려를 받아 세워진 고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씨삼강문은 고씨의 문중일가 중에 7명이 충․효․열의 삼강(三綱)을 실천한 사람들이 정려를 받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임진왜란 때 무려 6,0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싸운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1충과 고종후, 고인후, 고부금의 3효행, 노상룡의 처와 노거후의 처 광산정씨의 2열녀, 고경형의 1절의가 그것이다. 이들 7명의 정려각을 한 곳에 지어서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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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조헌의병장의 표충사
    표충사는 조헌의병장의 묘 아래쪽으로 영모재와 함께 있는 사당으로 조헌의병장 순절 후 1608년에 처음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세워 이듬해 조정에서 편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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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코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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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Pick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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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중구

    절제된 화려함과 교태미의 진수, 무용가 임이조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이자 제97호 살풀이 이수자인 임이조는 여러 스승에게 배운 발레, 신무용, 전통무용 등을 바탕으로 창작 작품을 만들어 대중에게 다가갔다. 난해하게 느껴지는 예술이 아닌 대중이 좋아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추구하였고, 관객과의 교감을 중요시한 무용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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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서구

    조선땅 황톳빛의 화가 이동훈(李東勳)
    한국의 대표적인 풍경화가이자 교육자이다. 평안북도 태천 출생으로, 1세대 서양화가이지만 일본풍이나 계파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토속풍경을 복원한 화가다. 광복 직전 대전으로 내려와 시골 농가의 풍경이나 전원의 들판, 소박한 어촌 마을 등을 따뜻하고 소박한 시선의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렸다. 40여 년간 교육자로서 많은 미술가들을 길러내며, 대전 화단의 기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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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사형 직전에 남긴 <세기의 유서>
    부산시민공원 역사관에는 ‘한국인 포로 감시원의 유언’이란 자료집이 비치돼 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전범 재판에서 사형당한 전범들의 유고를 엮어서 출간한 「세기의 유서」에 실렸던 조선인 다섯 명의 유언을 따로 추린 자료집이다. 평안도 출신 장수업을 비롯해 1946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 사형당한 부산 임시군속훈련소 출신 군속들의 육필 유언이 실렸다. 싱기포르 창이(Changi) 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창이형무소는 한민족 슬픈 현대사가 담긴 통한의 장소다. 태평양전쟁 전쟁의 전범으로 내몰린 조선인 포로감사원들이 거기서 재판을 받았다. 전쟁을 직접 계획하고 준비했던 일본인 A급 전범 재판은 도쿄에서 열려 자국의 보호를 최대한 받았지만, 조선인 전범 재판은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뤄져 불공정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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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일본과 연합군 모두의 희생양, 임시 군속들
    태평양전쟁이 고조되면서 동남아엔 연합군 포로들이 늘어났다. 이들 포로를 감시하기 위한 일본군 소속의 임시 군속들의 수요 역시 늘어났다. 일제는 조선인 민간인을 포로 감시원으로 채용한 뒤, 캠프 하야리아 자리에 있던 일본군 임시군속훈련소에서 2개월 동안 이들을 훈련시키고 동남아 각지로 파견했다. 이들은 일본군 말단이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말을 안 들으면 갖가지 죄명으로 옭아맸다. 그러다 보니 전쟁 포로들에겐 원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군 주도의 전범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한국인은 148명. 그중 129명이 부산의 임시군속훈련소 출신이었다. 민간인 신분인데도 B·C급 전범으로 처리됐다. 129명은 징역형을 받았으며 14명은 사형에 처했다. 그들의 원혼은 지금도 구천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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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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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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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해남군

    성산대교들에서 순절한 만의총
    만의총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 9월 성산대교들에서 일본군을 맞아 싸우다가 순절한 1만 명의 의병과 백성들의 시신을 묻은 무덤이다. 이곳 성산대교들에서 조우한 의병과 일본군은 3일간 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의병은 거의 없었다. 윤륜·윤신은 조카 윤치경과 윤동철 등과 함께 전사했다. 치열했던 전투가 종료된 후 의병들의 시신을 거두어 합장한 것이 지금의 만의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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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경기도 가평 금대리 쇠터 산신제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쇠터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마을제사를 지낸다. 이것을 금대리 쇠터 산신제라고 한다. 과거에는 음력 9월 1일에 날짜를 따로 잡아서 산신제를 지냈지만 현재는 음력 9월 8일로 정해서 지내고 있다. 금대리는 토박이가 마을을 떠나고, 남이섬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이 관광지로 변하면서 적지 않은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금대리 쇠터 마을 산신제는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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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불을 놓아 농지를 개척하는 화전
    화전은 산림의 입목이나 잡초를 건조한 시기에 소각하고 그 장소에 작물을 파종하여 몇 해 농사를 지은 다음 지력이 쇠퇴해지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같은 방법을 되풀이하는 경작지 또는 이러한 경작방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 화전정리법에 따라 화전의 경작이 금지되어 현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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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화전에서 키우는 작물들
    화전은 산이나 숲을 불태우고 그 자리에 농사를 짓는 경작 방식을 말한다. 따로 비료를 주지 않고 불탈 때 나온 재와 및 토지가 원래 가지고 있는 양분에 의존해 작물을 키운다. 따라서 화전에서 키우는 작물은 지력의 소모와 관련이 있다. 화전에 의한 농업은 유랑화전농업(流浪火田農業)과 정착화전농업(定着火田農業)으로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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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충청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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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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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잊지못할 351고지
    치열한 교전 속에서 나는 총탄을 맞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수류탄으로 자폭하려 했다. 그때 순간적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온 힘을 다해 적진에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지 3일째 되던 날에 사단장과 연대장, 사단 참모들이 351고지 탈환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피 흘려 왔는가? 6.25전쟁을 보고 겪은 날은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悲運)을 가져온 날로 기억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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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말없이 사라져간 군번(軍番) 없는 용사(勇士)들
    그동안 대둔산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우리 군번 없는 용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사(戰寫)자를 내야 했으며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학선 대원은 실탄을 몸속에 지닌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다시 6.25와 같은 참혹한 전쟁은 이 땅에 없어야 하겠고 두 번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산화(散華)한 무명용사(無名勇士)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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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적도평양점령(赤都平壤占領) 선두부대
    나의 소대는 베티고지 아군의 전초진지(前確陣地)에 배치되었다. 적과의 거리는 불과 얼마 안 되어 육안으로도 관측할 정도였다. 밀고 밀리는 전투는 계속 되었고 피아(波我)구분이 안되어 육박전을 할 때면 서로 머리를 만져 보고 피아를 구분하면서 난투를 하는 진경은 차마눈뜨고 볼수없는 처절한 생지옥이었다. 베티고지에서 전투중 휴전을 맞아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나는 92연대 인사주임및 부관을 끝으로 1964년 2월 29일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성평리에서 여생을 보내며 우리 생애에 가장 최악의 비운(悲運)을 가져온 6.25를 회상하고 무엇하나 우리들의 피와 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고귀한 국토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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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북구

    장단에서 서울, 영천 대구를 거쳐 구포까지
    김영귀(1938년생)의 고향은 장단군 군내면 읍내리로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로 편입된 곳이다. 6·25전쟁이 나고 부산까지 피난을 간 그녀는 국제시장에서 엿, 오징어, 양담배 장사를 하였다.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중 제2국민병으로 뽑혀가 소식이 끊겼던 오빠와 가까스로 상봉하였다. 다시 고향을 찾았으나 폭격으로 어머니의 묘가 소실되었다. 지금은 고향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그 땅을 밟을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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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정선군

    부모가 없는 고아의 피난살이
    신원교는 1926년 정선 덕송리에서 출생하고 어린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산속에 피란생활을 했지만 먹을 것을 챙겨다주는 가족이 없어 굶으며 생활해야 했다. 방위군으로 끌려가서 부산까지 걸어갔다. 방위군은 군복도 군번은 물론 그 어떤 혜택도 없었다. 관리나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다행히 그는 살아 돌아왔다. 전쟁 중 인민군은 민간인의 식량을 가져갔고, 아군은 그들보다 더한 횡포를 일삼았으며, 민간인들은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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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남구

    장단에서 서울, 계룡산, 온양, 수원을 거쳐 부산으로
    김예순(1936년생)의 고향은 장단군 군내면 군내리로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로 편입된 곳이다. 그녀는 뒷산에 떨어진 포탄의 파편을 보고 6·25전쟁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녀의 가족은 계룡산으로 가서 피난생활을 하였고, 귀향길에 수용소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이후 서울과 부산 등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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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읍실마을 동제
    읍실마을의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가장 신성한 의례였다. 제관을 정한 후 황송아지를 제물로 올리고 당산나무에 금줄을 치며 온 마을이 정성을 다했다. 동아줄을 꼬아 하늘 높이 매다는 행위는 주민들의 단합을 상징했다. 음복과 떡,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액을 막고 복을 비는 풍습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성대한 의식으로 치러졌으나 지금은 쇠고기 몇 근과 전깃대에 걸린 줄 정도로 형식만 남아 있다. 이는 산촌 공동체의 기억과 생활신앙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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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동두천시

    동두천 미군과 함께 74년, 그 흔적을 찾아서_낙화
    보산동에는 독특한 미술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곳이 있다. 인두를 불에 달궈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일명 ‘낙화’라고 한다. 뜨겁게 달군 인두로 작업하지만 표현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결과물도 매우 정교하다. 미군들에게는 특히 이 낙화가 이색적인 그림으로 다가와 한때 많은 사람이 찾으며 성업했다. 그러나 보산동의 다른 점포들과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군 주둔 규모가 줄면서 찾는 이가 드물어졌고, 이제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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