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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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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에서 돈대와 봉수대터를 다지면서 부르는 「성터 다지는 소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는 해안에 3개의 돈대(墩臺) 터와 외포리 북쪽에 봉수대의 터가 남아 있다. 강화도의 돈대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방위시설이다. 돈대와 봉수대 터 등을 쌓기 위해서는 터를 다져야 한다. 「성터 다지는 소리」는 소리는 노역꾼과 군인들이 돈대와 봉수대 터를 다지면서 부르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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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를 운반하는 배를 노저으며 부르는 강화도의 시선뱃노래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는 서해와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시선뱃노래」는 연평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떼다가 운반하는 시선배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시선배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포장까지 운항하였다. 「시선뱃노래」의 가사에는 강을 거슬러 가면서 만나는 한강 곳곳의 지명과 물 때가 나오며, 노를 저으면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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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잡이배에서 만선의 기쁨을 노래한 바디질 소리와 배치기 소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서는 조기를 운반한 시선배에서 부르는 노동요가 전승되어 온다. 「바디질 소리」는 조기를 그물로 된 바디로 퍼서 배에 실을 때 부르는 노래이다. 「배치기소리」는 고기를 잡아서 무사하게 돌아온 것을 자축하는 노래로 닻을 내리고 배에서 부르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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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옷을 쌓아 배를 타러 갔던 인천 강화 갑곶나루
    강화군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을 오가는 나룻배를 운영하던 나루인데, 강화도와 뭍을 연결하는 중요 통로였다. 정묘호란(1627년)이 발발하자 인조가 후금을 피해 건넜던 나루이며, 그의 아들 봉림대군도 병자호란 때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로 들어왔다. 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신하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병인양요(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읍으로 진입한 곳이다. 세종대에 박신(朴信)이 경비를 부담하고, 주민들 노역하여 14년간 선착장 석축로를 쌓았으며, 그 후로 1920년에 김포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를 신설하기 이전까지 중요 나루로 활용되었다. 1970년에 강화대교가 생기면서 나루터는 제 기능을 잃었고, 제방 공사로 인해 나루터 시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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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위기종 농게가 서식하는 황산도의 ‘황산포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속한 섬인 황산도의 유일한 포구가 황산포구이다. 강화도 초지대교를 지나 황산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지나면 황산도 초입에 포구가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여섯 가구만이 살던 작은 섬인데 1962년에 간척지 매립공사로 뭍이 되면서 농사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50여 호가 거주하는 큰 섬이 되었다. 황산도의 유일한 작은 포구는 매립되고, 지금은 한쪽 면만이 남아 있다. 마을 앞쪽 포구 인근에는 썰물이 되면 갯벌이 수 킬로미터 드러나는데 이 곳에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농게가 서식한다. 유독 큰 집게발을 자랑하는 농게는 갯벌의 청소부로 황산 포구의 명물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화 연안에서 산란하는 밴댕이도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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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향민과 함께 교동을 지켜온 동산약방
    동산약방은 나의환이 1961년 경부터 문을 연 약방이다. 1950년 6·25전쟁 전까지도 교동도에는 장터가 없었다. 교동 생활권은 황해도 연백읍이었기 때문에 큰 장터가 없었던 것이다. 교동 대룡리에 시장이 생기게 된 것은 피란민 연락소가 있어 실향민들은 자연스럽게 대룡리에 모여들게 되면서 부터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교동에서 약방은 응급실과도 같은 소중한 가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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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당배로 잡은 뻘 밴댕이, 은빛 냉정함에 살살 녹는 속살이 최고”
    밴댕이는 꽁당배(안강망, 鮟鱇網)로 잡은 뻘 밴댕이가 맛있다. 닻배(정선망, 碇船網)로 잡은 밴댕이는 그물에 있던 다른 물고기들과 부딪혀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꽁당배로 밴댕이를 잡을 때는 그 길목에 그물을 펼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밴댕이가 어느 정도 그물에 차면 물살 방향으로 그물을 끌어 올린다. 예전에는 지금의 닻 대신 삼나무나 박달나무로 닻을 만들어 꽁당배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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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좁고 성질은 급하지만 맛은 일품인 밴댕이회
    밴댕이는 서해와 남해에서 두루 잡히지만, 인천 강화도가 최고 유명산지이다. 겨우내 깊은 바닷속에 머물다 수온이 오르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이동한다. 7월 산란기를 앞둔 오뉴월이 제철인 밴댕이는 영양분을 한껏 비축하여 살이 올라 회로 먹으면 고소함은 물론 부드럽게 녹아드는 식감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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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가 하사품(下賜品)으로 내린 오뉴월 밴댕이 한 두름”
    강화도에는 5월부터 7월 사이에 밴댕이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밴댕이는 이 시기에 산란을 준비하기 때문에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가장 많다. 겨우내 바다 깊은 곳에 있다가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먹이활동을 한다. 바로 이때, 살이 오른 통통한 밴댕이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다가 산란기를 마치면 살도 기름기도 빠져서 맛이 조금 덜하다.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있다. 밴댕이의 맛이 가장 좋은 제철에 대접을 받는 것, 바로 후한 대접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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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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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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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종의 잠저, 강화 용흥궁
    용흥궁(龍興宮)은 1853(철종 4)년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지금과 같은 모습의 건물을 세웠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기와집으로 확장하고 왕의 잠저(潛邸)로서 용흥궁이라 명명하였다.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고, 1903(광무 7)년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용흥궁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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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난방시설과 목욕시설이 있는 강화 고대섭 가옥
    강화 고대섭 가옥은 ‘미음(ㅁ)’자 형태의 반가(班家)로, 집의 크기는 99칸〔間〕이다. 일반 사대부가 지을 수 있는 최대의 집 크기다. 강화 고려인삼을 경작하고 인삼무역을 했던 고대섭은 개성의 집을 본 따 황해도의 자재로 전통 한옥과 일식을 결합한 집을 지었다. 그래서 이 집에는 지하 난방시설, 쇠솥이 있는 목욕시설 등 독특한 시설들이 있다. 2020년부터는 한옥스테이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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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의승병장 사명대사의 생가지와 유적지
    사명대사 유적지는 밀양 출신 사명대사의 호국정신과 애민애족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 위해 사명대사 동상과 사명대사 기념관, 추모공원 기념비 등을 2006년에 조성하여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승병을 일으켜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며, 왜란 중에 일본군과의 강화를 위해 적진에 들어가 가토 기요마사와 회담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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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돌신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김포시

    손돌신
    고려시대의 뱃사공인 손돌은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으나 왕의 오해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가 죽은 이후 그 날이면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주민들은 그 바람을 손돌의 죽음 때문으로 인식하여 마을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순간적 착오로 목숨을 잃은 손돌의 억울한 넋을 주민들이 달래준 셈이다. 지금도 손돌과 관련된 제의와 풍습은 경기도 일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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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대학 연계 지역N문화 맞춤형 콘텐츠] 신미양요, 그 처절한 전투 속으로
    본 영상은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해 한성대학교·성북문화원·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에서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창작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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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전등사 업경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7호)
    강화도 전등사에는 업경대가 1쌍 있다. 업경대는 불교에서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전등사의 업경대는 화염문 거울을 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색사자와 황색사자 한 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1627년(인조 5)에 제작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불교 목공예품의 편년 설정 및 상호비교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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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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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개소문이 태어난 고려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에는 고려산이 있다. 고려산은 강화부의 진산으로 강화도를 수호해주는 산으로 여겨졌다. 고려산은 연개소문이 출생한 곳이자 무예를 단련했던 곳이라는 전설을 여럿 품고 있다. 또 고려산은 과거에 오련산으로도 불렸는데, 이 이름은 한 고승이 연못에 다섯 색깔의 연꽃을 뽑아 던져 각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에 유래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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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머리를 파서 부자로 만들어준 산, 강화군 교동도의 부시미산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교동도’라는 섬이 있다. 교동도는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교동도 내부에는 높이 100m가 되지 않은 낮은 산들이 둘러 있는데 그 가운데 양갑리와 대룡2리 매바지마을 사이에 있는 산이 ‘부시미산’이다. 부시미산은 ‘말’을 닮았다고 해서 ‘말산’이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양갑리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농사가 잘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을을 지나던 한 스님이 말산의 머리 부분을 파내면 풍년이 들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양갑리 사람들은 스님의 말을 듣고 말산의 머리 부분을 파냈다. 그 후 양갑리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게 해준 산이라고 하여 부시미산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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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고종이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올랐던 강화도의 견자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견자산이 소재해 있다. 견자산은 고려시대 때 나라 잃은 슬픔이 담긴 산이다. 13세기, 몽골이 고려를 여섯 차례에 걸쳐서 30여 년 동안 침공하였다. 고려 조정은 몽골군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그러나 전쟁은 조정에서 생각한 것보다 길어졌고, 육지에 남아 있던 고려 백성들은 몽골군의 만행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국 강화도로 피신에 있던 고종(高宗)은 오랜 항쟁을 끝내려 결심하고, 몽골과의 회담에 나섰다. 회담 결과, 고종은 둘째 아들을 몽골로 보내게 되고,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견자산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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