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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강화도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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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가 없어진 백련사 미륵불
    「코가 없어진 백련사 미륵불」은 기자습속(祈子習俗)과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강화군 백련사 미륵불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미륵불의 코를 가져가면 신기하게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미륵불에 불공을 드렸다. 그런데 아들을 낳지 못해 쫓겨난 어느 부인이 욕심이 많아서 미륵불의 코를 몽땅 떼어냈다. 그 뒤부터 미륵불의 영험이 사라졌다고 하여 더 이상 불공을 드리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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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창의진을 이끈 이능권
    이능권은 경기도 강화 출신으로 강화진위대 장교였다. 그는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되어 특사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기도 하였고, 한말 후기의병기에 해산 군인들을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그는 1908년 해산군인을 이끌고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대동창의진이라 하고 전등사의 삼랑성을 근거지로 일제에 항거하며 군자금을 모으는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1909년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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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허 스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인천 정수사
    낙가산에서 수행하던 회정 선사에 의해 639년에 창건된 정수사는 조선 세종 때 험허 선사가 중창하면서 정수사(淨水寺)로 절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후 절의 역사에 대해서 전해오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1848년 이후 여러 비구니에 의해 법당이 중수되고 삼성각이 중건되며, 보살상과 후불탱화 등이 조성되었다. 보물 제16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매우 우수한 건축물로, 건축 당시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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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인천 전등사
    전등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성 내에 자리하고 있다. 381년에 창건된 전등사는 조선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화재로 전소된다. 1631년에 중건된 전등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사고를 관리하는 사찰이 된다. 전등사는 숱한 전란 속에서도 대웅보전(보물 제178호), 약사전(보물 제 179호), 범종(보물 제 393호), 대조루(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 등의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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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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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옷을 쌓아 배를 타러 갔던 인천 강화 갑곶나루
    강화군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을 오가는 나룻배를 운영하던 나루인데, 강화도와 뭍을 연결하는 중요 통로였다. 정묘호란(1627년)이 발발하자 인조가 후금을 피해 건넜던 나루이며, 그의 아들 봉림대군도 병자호란 때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로 들어왔다. 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신하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병인양요(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읍으로 진입한 곳이다. 세종대에 박신(朴信)이 경비를 부담하고, 주민들 노역하여 14년간 선착장 석축로를 쌓았으며, 그 후로 1920년에 김포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를 신설하기 이전까지 중요 나루로 활용되었다. 1970년에 강화대교가 생기면서 나루터는 제 기능을 잃었고, 제방 공사로 인해 나루터 시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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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위기종 농게가 서식하는 황산도의 ‘황산포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속한 섬인 황산도의 유일한 포구가 황산포구이다. 강화도 초지대교를 지나 황산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지나면 황산도 초입에 포구가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여섯 가구만이 살던 작은 섬인데 1962년에 간척지 매립공사로 뭍이 되면서 농사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50여 호가 거주하는 큰 섬이 되었다. 황산도의 유일한 작은 포구는 매립되고, 지금은 한쪽 면만이 남아 있다. 마을 앞쪽 포구 인근에는 썰물이 되면 갯벌이 수 킬로미터 드러나는데 이 곳에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농게가 서식한다. 유독 큰 집게발을 자랑하는 농게는 갯벌의 청소부로 황산 포구의 명물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화 연안에서 산란하는 밴댕이도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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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향민과 함께 교동을 지켜온 동산약방
    동산약방은 나의환이 1961년 경부터 문을 연 약방이다. 1950년 6·25전쟁 전까지도 교동도에는 장터가 없었다. 교동 생활권은 황해도 연백읍이었기 때문에 큰 장터가 없었던 것이다. 교동 대룡리에 시장이 생기게 된 것은 피란민 연락소가 있어 실향민들은 자연스럽게 대룡리에 모여들게 되면서 부터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교동에서 약방은 응급실과도 같은 소중한 가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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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또한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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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문석으로 유명했던 강화읍장과 강화풍물시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곳리에는 강화풍물시장이 있다. 강화풍물시장은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상설시장뿐만 아니라 매월 2일과 7일 오일장도 함께 열린다. 장날이면 풍물시장 공터와 도로변에 300여 개의 노점들이 조성되며, 지역의 농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모인 상인들은 각종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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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티지한 멋이 살아있는 강화 조양방직
    강화 조양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공장이다. 1960년대까지 최고 품질의 인조직물을 생산하던 조양방직은 이후 20~30년 정도 폐공장으로 방치되다가 서울에서 유럽 빈티지샵을 운영하던 이용철 대표를 만나 탈바꿈했다.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는 신조로 공장 형태를 그대로 남기고 심지어 마네킨과 트랙터까지 낡은 물건을 끌어들여 빈티지한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 '신문리 미술관'이라는 또다른 이름이 있는 이곳은 강화의 관광명소이자 이색카페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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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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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의 정중앙 혈구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에는 혈구산이 있다. 혈구산은 정상까지 이르는 길이 매우 험준하고 골짜기가 많은 편이다. 혈구산은 강화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과거에는 강화군 지역을 수호하는 진산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산 정상에서는 다양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또 혈구산은 험준한 산세로 인하여 과거에 수많은 절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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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따로 떨어져 있는 별립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에는 별립산이 있다. 별립산은 다른 산과는 외따로 떨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별립산은 강화군 북쪽에 높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방향마다 각기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쪽을 바라보면 가까이에 위치한 황해도 연백군을 볼 수 있다. 또 별립산 서쪽에서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원층사의 터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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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랑캐의 침입에 죽음을 택한 순절자들의 배향, 강화도 충렬사
    강화도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정신으로 죽음을 선택한 39인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물살이 거세 적군이 들어올 수 없다는 철옹성이라 여기던 강화도에 청나라군이 들이닥치자 도성의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오랑캐 여진족에게 굴복하기보다 자결로 절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김상용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충렬사에 배향된 인물들 외에도 자결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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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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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한국 보호국화를 일찍부터 거론하고 있던 일본은 1905년 들어 러일전쟁에서 승세가 굳어지자 이토 히로부미를 파견하여 보호늑약 체결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고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을사늑약은 강제로 체결되었고,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간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국권침탈에 분노한 의병들도 다시 봉기하여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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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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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개소문이 태어난 고려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에는 고려산이 있다. 고려산은 강화부의 진산으로 강화도를 수호해주는 산으로 여겨졌다. 고려산은 연개소문이 출생한 곳이자 무예를 단련했던 곳이라는 전설을 여럿 품고 있다. 또 고려산은 과거에 오련산으로도 불렸는데, 이 이름은 한 고승이 연못에 다섯 색깔의 연꽃을 뽑아 던져 각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에 유래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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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머리를 파서 부자로 만들어준 산, 강화군 교동도의 부시미산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교동도’라는 섬이 있다. 교동도는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교동도 내부에는 높이 100m가 되지 않은 낮은 산들이 둘러 있는데 그 가운데 양갑리와 대룡2리 매바지마을 사이에 있는 산이 ‘부시미산’이다. 부시미산은 ‘말’을 닮았다고 해서 ‘말산’이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양갑리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농사가 잘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을을 지나던 한 스님이 말산의 머리 부분을 파내면 풍년이 들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양갑리 사람들은 스님의 말을 듣고 말산의 머리 부분을 파냈다. 그 후 양갑리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게 해준 산이라고 하여 부시미산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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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고종이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올랐던 강화도의 견자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견자산이 소재해 있다. 견자산은 고려시대 때 나라 잃은 슬픔이 담긴 산이다. 13세기, 몽골이 고려를 여섯 차례에 걸쳐서 30여 년 동안 침공하였다. 고려 조정은 몽골군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그러나 전쟁은 조정에서 생각한 것보다 길어졌고, 육지에 남아 있던 고려 백성들은 몽골군의 만행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국 강화도로 피신에 있던 고종(高宗)은 오랜 항쟁을 끝내려 결심하고, 몽골과의 회담에 나섰다. 회담 결과, 고종은 둘째 아들을 몽골로 보내게 되고,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견자산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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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에서 돈대와 봉수대터를 다지면서 부르는 「성터 다지는 소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는 해안에 3개의 돈대(墩臺) 터와 외포리 북쪽에 봉수대의 터가 남아 있다. 강화도의 돈대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방위시설이다. 돈대와 봉수대 터 등을 쌓기 위해서는 터를 다져야 한다. 「성터 다지는 소리」는 소리는 노역꾼과 군인들이 돈대와 봉수대 터를 다지면서 부르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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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를 운반하는 배를 노저으며 부르는 강화도의 시선뱃노래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는 서해와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시선뱃노래」는 연평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떼다가 운반하는 시선배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시선배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포장까지 운항하였다. 「시선뱃노래」의 가사에는 강을 거슬러 가면서 만나는 한강 곳곳의 지명과 물 때가 나오며, 노를 저으면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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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잡이배에서 만선의 기쁨을 노래한 바디질 소리와 배치기 소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서는 조기를 운반한 시선배에서 부르는 노동요가 전승되어 온다. 「바디질 소리」는 조기를 그물로 된 바디로 퍼서 배에 실을 때 부르는 노래이다. 「배치기소리」는 고기를 잡아서 무사하게 돌아온 것을 자축하는 노래로 닻을 내리고 배에서 부르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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