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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손돌신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김포시

    손돌신
    고려시대의 뱃사공인 손돌은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으나 왕의 오해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가 죽은 이후 그 날이면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주민들은 그 바람을 손돌의 죽음 때문으로 인식하여 마을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순간적 착오로 목숨을 잃은 손돌의 억울한 넋을 주민들이 달래준 셈이다. 지금도 손돌과 관련된 제의와 풍습은 경기도 일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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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대학 연계 지역N문화 맞춤형 콘텐츠] 신미양요, 그 처절한 전투 속으로
    본 영상은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해 한성대학교·성북문화원·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에서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창작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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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강화 전등사 업경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7호)
    강화도 전등사에는 업경대가 1쌍 있다. 업경대는 불교에서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전등사의 업경대는 화염문 거울을 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색사자와 황색사자 한 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1627년(인조 5)에 제작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불교 목공예품의 편년 설정 및 상호비교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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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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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한국 보호국화를 일찍부터 거론하고 있던 일본은 1905년 들어 러일전쟁에서 승세가 굳어지자 이토 히로부미를 파견하여 보호늑약 체결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고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을사늑약은 강제로 체결되었고,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간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국권침탈에 분노한 의병들도 다시 봉기하여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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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마을신앙

연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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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일하다 봉변당한 뱃사공, 강화도 손돌신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김포시

    열심히 일하다 봉변당한 뱃사공, 강화도 손돌신
    경기도 김포시의 대곶면 신안리에는 '손돌신'과 관련된  흥미로운 유래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뱃사공인 손돌은 강화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배로 태워주면서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날  강화도로 피난가는 공민왕을 배에 태웠는데 왕의 오해로 손돌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손돌의 시신과 묘는 오늘날에도 강화도 통진의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손돌이 죽은 날에는 이따금 일대에서 돌풍이 몰아쳤다. 강화도 주민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바람을 '손돌풍'이라 부르고, 그의 죽음을 달래주기 위해 매년 음력 10월 경에 손돌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뱃사공의 억울한 넋을 기리며 모시는 손돌신
    고려시대의 뱃사공인 손돌은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으나 왕의 오해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가 죽은 이후 그 날이면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주민들은 그 바람을 손돌의 죽음 때문으로 인식하여 마을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순간적 착오로 목숨을 잃은 손돌의 억울한 넋을 주민들이 달래준 셈이다. 지금도 손돌과 관련된 제의와 풍습은 경기도 일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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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에서 돈대와 봉수대터를 다지면서 부르는 「성터 다지는 소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는 해안에 3개의 돈대(墩臺) 터와 외포리 북쪽에 봉수대의 터가 남아 있다. 강화도의 돈대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방위시설이다. 돈대와 봉수대 터 등을 쌓기 위해서는 터를 다져야 한다. 「성터 다지는 소리」는 소리는 노역꾼과 군인들이 돈대와 봉수대 터를 다지면서 부르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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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를 운반하는 배를 노저으며 부르는 강화도의 시선뱃노래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는 서해와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시선뱃노래」는 연평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떼다가 운반하는 시선배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시선배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포장까지 운항하였다. 「시선뱃노래」의 가사에는 강을 거슬러 가면서 만나는 한강 곳곳의 지명과 물 때가 나오며, 노를 저으면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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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잡이배에서 만선의 기쁨을 노래한 바디질 소리와 배치기 소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서는 조기를 운반한 시선배에서 부르는 노동요가 전승되어 온다. 「바디질 소리」는 조기를 그물로 된 바디로 퍼서 배에 실을 때 부르는 노래이다. 「배치기소리」는 고기를 잡아서 무사하게 돌아온 것을 자축하는 노래로 닻을 내리고 배에서 부르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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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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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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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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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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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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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왕조의 생명선,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3년(고종 20) 해안 방어를 위해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 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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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군에게 패배를 안긴 강화 삼랑성
    삼랑성은 경기도 강화도의 남쪽 옛 하도면, 즉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해발 231m의 정족산에 있다. 길상산의 북쪽, 마니산의 동북동, 강화부의 30~35리에 있으며 3개의 봉우리가 솥발처럼 서로 맞서서 대치한 형세여서 생긴 이름이 정족산성이라 한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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