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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분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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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분식 일상화의 기반이 된 밀가루
    밀가루는 조선시대까지 국내 생산으로 필요를 충당하였다. 술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누룩은 밀가루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근대시기 밀가루는 귀했다. 그러나 일제시대 만주와 미국, 호주 등지에서 밀이 수입되고 한반도에 제분공장이 세워진다. 1920년대 제분공장은 진남포와 경성에 하나씩 존재했다. 진남포의 제분공장은 만주와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의 밀을 제분했고, 경성의 풍국제분공장은 호주와 미국에서 수입되는 밀을 주로 제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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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광복 후에도 이어지다
    서면경마장은 개장 초기부터 말썽거리였지만, 광복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1946년 봄에는 국군을 위한 경마장으로, 1956년에는 미군 하야리아 부대 동쪽 범전동 산2번지 골짝을 깎아 경마장으로 썼다. 360m 미니 트랙이었지만 명맥은 ‘300번지’와 함께 오래오래 이어졌다. “경마장’ 가자” 또는 “300번지 가자” 그러면 엔간한 기사는 알아들을 정도로, ‘경마장’과 ‘300번지’는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범전동 300번지’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생긴 집창촌이었다. 캠프 하야리아가 건재하던 시절엔 300번지가 범전동의 중심이었다. 인근에 포장마차, 미용실, 주점 등 다양한 업종이 몰려들어 큰 호황을 맞았고, 서구 완월동, 해운대 609번지와 함께 부산의 3대 집창촌으로 꼽혔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부터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부산 대표 시민공원이 들어선 지금은 ‘부산 1번지’로 부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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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주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유교 국가 조선이 후원한 불교사찰의 위엄
    양주회암사지박물관은 조선시대 왕실 후원으로 크게 번성한 회암사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관람객들에게 전하기 위해 2012년에 문을 열었다. 회암사지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1964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고, 1997년부터 지속적인 발굴이 이루어져 전각의 배치와 구조가 드러났으며,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역사 현장이다. 양주회암사지박물관을 방문하면 유교 국가였던 조선의 불교문화를 엿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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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주시

    지공, 나옹, 무학의 얼이 깃든, 회암사지 쌍사자석등
    무학대사 부도 앞에는 사각형 석재 위에 연꽃을 조각한 지대석과 그 위로 사자 2구가 직립한 채 서로 맞잡고 서 있는 형식의 간주석, 사각 평면의 화사석으로 구성된 독특한 석등이 설치되어 있다. 화사석에는 네 귀퉁이에 겹우주가 표현되어 있고, 낙수면이 유려한 곡선을 형성하고 있는 옥개석이 올려져 있다. 사자는 불교의 호법신이면서 동시에 부처를 상징하기 때문에,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불상 대좌뿐 아니라 화엄사 4사자 석등처럼 통일신라 석등의 조형으로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고려 말 이후에는 만들어지지 않다가 무학대사 부도에 다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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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양주시

    숫맷돌만 2기 남아 있는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맷돌
    맷돌은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는 생활도구이다. 회암사지 맷돌은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 14번지에 있다. 회암사의 창건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권11에 언급되어 고려시대에도 존재하였던 사찰로 여겨진다. 회암사지 맷돌은 고려시대 큰스님인 나옹이 회암사를 중건할 때 석조와 함께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남아있는 것은 숫맷돌 2기이며, 1978년에 경기도 민속문화재 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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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전주시

    평생 갓을 쓰고 붓을 든 강암 송성용
    한국 서단의 흐름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 이후 전라도 남쪽은 특히 회화가 발달했고, 전북 지역은 서예와 사군자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전북의 역대 서예가 계보를 보면 조선 중기의 송일중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는 이삼만이 활약하며 지역 서단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 일제강점기에는 조벽하·이정직·송기면 등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고, 근현대에 이르러 시·서·화를 모두 겸비한 ‘시서화 삼절’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 바로 강암 송성룡이다. 강암의 위상은 오늘날에도 여러 사찰과 문화 명소에서 그의 글씨를 쉽게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높다. 대표적으로 경상도의 석굴암과 불국사, 내장산 내장사 일주문, 호남제일문 편액, 한벽당 편액 등이 그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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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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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섬진강 참게탕은 들깻물을 넣고 부글부글 끓여야 옛 맛”
    섬진강은 수질이 좋은 하천으로 봄에는 은어, 가을에는 참게가 난다. 은어는 회와 튀김으로 먹는데, 가시가 많아 뼈에 걸리기 십상이다. 은어튀김을 꼬리부터 먹으면 가시가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살이 차지고 향긋한 섬진강 참게를 탕으로 끓일 때는 들깻물과 된장을 넣는다. 참게딱지에 밥까지 비벼 먹으면 밥 한그릇이 모자라다. 참게맛을 알게 되면 대게는 심심해서 못 먹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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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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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 권승욱
    권승욱은 고창고보 스승인 정인승의 권유로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때문에 1년 옥고를 치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1938년 6월부터 1957년 한글날까지 『조선말 큰사전』여섯 권이 발간될 때까지 20년 동안 조선어사전 편찬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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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권덕규
    권덕규는 김포출신으로 휘문의숙에 출강하던 주시경(周時經)을 만나 사제 인연을 맺고 한글연구를 시작하였다. 권덕규는 신현순(申鉉順)과 결혼하고 한글연구자·교육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권덕규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글 덕분에 이름을 알렸으며 1929년에는 한글사전편찬 발기인, 1931년 조선어학회 주요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당시 권덕규는 중풍으로 와병(臥病) 중이었기 때문에 불구속 입건 후 기소정지 처분을 받았다. 광복 후 1950년까지 대외활동을 하다 3월 5일 집을 나간 후 실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권덕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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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장수군

    우리말 사랑을 강조하며 국어사전을 집필한 정인승
    정인승은 1897년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북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비롯해 학문을 두루 공부하였으며, 부친 정상조를 보며 애국심을 키웠다.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경하여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정인승은 고상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후 그는 국어 교육과 국어사전 편찬에 힘쓰며 독립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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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몸을 던지다, 이회영
    이회영(李會榮 , 1867~1932년)은 조선 최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랫사람에게 교만하게 굴지 않고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였으며 혁신적인 사상으로 국민을 계몽하고자 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이회영 6형제 일가는 전 재산을 처분한 채 만주로 망명했다. 무장독립운동의 방향에 따라 교육 기관 및 독립군 양성 기관 설립에 기여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힘썼던 이회영은 대련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해 순국하였다. 오늘날, 서울특별시 중구에는 이회영을 포함한 6형제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이회영기념관이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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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서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차리석
    차리석(車利錫, 1881~1945년)은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실력양성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다. 신학문을 배웠던 그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 생각하여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민족 교육에 힘썼다. 신민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차리석은 일제의 105인 사건 날조로 옥살이를 하였으나 독립에 대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3.1운동 이후에는 변화하는 독립운동 양상에 따라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가 집필한 기사는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를 응원하고 우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후에는 임시정부의 요인으로서 활동하였는데 주변에서 임시정부 무용론을 내세우며 존폐가 거론될 때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책임을 다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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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 단체인 상무동사
    '상무동사'는 일제의 경제 침략에 맞서 우리 민족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신민회에 의해 1908년 평안북도 용천에 만들어진 회사이다. 상무동사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수익금 일부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제정을 지원하였다. 또한, 시장세 납부를 거부하는 ‘백일세항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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