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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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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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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잉어 구워준 효부 며느리 이름을 딴 영산강
    옛날 옛적 나주에 사는 정노인은 근심 걱정이 없었다. 고을 원님이 불러 물어도 근심 걱정이 없다고 하니 원님은 구슬을 선물로 주고, 뱃사공에게 부탁해 구슬을 잃어버리도록 일을 꾸몄다. 강에서 구슬을 잃어버린 정 영감은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고, 걱정된 큰며느리 영산은 잉어를 사서 통구이를 해드렸다. 그런데 잉어 배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원님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꾸몄다고 시인하고, 정노인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정 노인은 강변에 며느리의 이름을 딴 영산서원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강 이름을 서원 이름에서 따 영산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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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드들이가 제물이 된 나주시 남평읍의 드들강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 ‘드들강’ 또는 ‘지석천’이라 부르는 하천이 소재해 있다. 옛날, 남평읍에 ‘드들’이라 부르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드들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드들이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마을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마을 주민들도 드들이에게 쌀을 내주어 아버지를 모시게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하루는 마을 주민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더 이상 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드들이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자청해서 제물이 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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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용머리 아래 위치한 나주시 동강면의 용동마을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장동리에 용동마을이 소재해 있다. 용동마을은 마을 뒤로 낮은 산이 위치하고, 삼면이 영산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옛날 한 지관이 용동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뒷산을 넘어 다니면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뒷산을 넘어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정에 다녀오던 임산부가 마을 뒷산을 넘지 않고 영산강을 따라 돌아가려 하였으나, 밀물 때라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뒷산을 넘어 마을로 들어갔는데, 며칠 후 그만 유산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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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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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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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우애 있는 형제가 살았던 군포시 군포1동의 아구랑
    경기도 군포시 군포1동에 ‘아구랑’ 또는 ‘아우랑’ 등으로 부르는 자연마을이 소재해 있다. 아구랑은 '아람다운 언덕의 솟을대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조선시대 선조의 열한 번째 왕자 경평군의 증손자인 ‘혜평군’이 낙향해서 지은 집이 있었기에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한편, 흰 개 두 마리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넘어간 곳이라서, 마을의 지형이 입을 벌리고 있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아구랑이라고 한다는 설도 전한다. 또한 우애 깊은 형제가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아우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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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사이좋은 형제가 살았던 경기도 군포의 아구랑
    경기도 군포시 군포1동에는 아구랑 마을이 있다. 이곳이 아구랑이란 이름을 갖게 된 까닭은 조선시대 선조의 고손자였던 해평군이 ‘언덕 위 솟을대문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에서 ‘아구랑(阿邱閬)’이라 이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아구랑 마을을 아우랑 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아구랑 마을에 살던 의좋은 형제가 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고, 동생을 아꼈던 형은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난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의좋던 형제가 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우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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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유생과 사랑한 경기도 군포의 삼성마을 처녀와 감투봉
    경기도 군포시 군포2동에 ‘삼성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삼성마을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이기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삼성마을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유생과 마을 처녀가 사랑하게 되었다. 유생과 마을 처녀는 달이 떠오르면 달을 향해서 유생의 과거 합격을 정성을 다해서 함께 빌었다. 유생이 장원급제해서 삼성마을로 돌아온 날 삼성마을 처녀를 놓고 호랑이와 용이 겨루었다. 그 모습을 본 처녀가 기절하고, 장원 급제한 유생도 처녀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감투봉을 장원 급제한 벼슬아치의 관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관모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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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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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5건)
  • 지방문화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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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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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다섯 무사가 내려와 자라바위 목을 자른 진주 오무마을
    경남 진주 명석면 오미리의 자연마을 오무에는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하루는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본 후,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자라바위 목을 칠 장사를 구하기 위해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바위의 목을 치도록 했다. 이후 마을은 잘살게 되었다. 다섯 무사나 내려왔다고 마을 이름을 오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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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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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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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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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고개가 너무 높아 넘다보면 머리카락이 희게 되는 고령 모로현
    모로현(毛老峴)은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하림리 등을 이어주는 고개로 모리터 또는 모리티라고도 하는데 해발 687.9m의 북두산 자락에 있다. 모로현에 대한 전설은 두 가지가 전하는데, 하나는 모로현을 넘으려면 높고 지루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이렇듯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할 정도라고 모로현(毛老峴)이라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정구(鄭逑)와 정승 정인홍(鄭仁弘)의 관계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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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대가야의 궁녀들이 비녀를 풀고 간 고령 옥잠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의 자연마을 옥담(옥잠)은 신라와 대가야의 전투와 관련이 있다. 이사부가 대가야를 침략하자 대가야의 왕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 마을에서 옥대를 풀어놓고 떠나 옥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신라군을 피해 도망을 치던 대가야의 왕비와 궁녀들이 이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옥비녀를 풀어놓았다고 해서 옥잠이라고도 부른다. 혹은 마을 주변에 쌓은 방죽이 반지 모양이라 하여 옥담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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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코끼리 코 위에 얹힌 마을, 명곡이 서유재로 바뀐 까닭
    경북 고령군 덕곡면 노리의 명곡마을은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깊었다. 한 스님이 마을의 지형을 둘러본 후, 마을 앞산이 코끼리 코 모양으로 생겼으며 마을은 코 위에 얹힌 형국이라 코끼리가 코를 움직일 때마다 마을에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서유재(鼠留在)로 바꾸면 코끼리의 움직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마을 이름을 서유재로 바꾸자 신기하게도 불행한 일이 딱 끊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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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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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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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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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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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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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호랑바우
    옛날엔 바위 밑에 호랑이가 많았다. 어느 날 나물 뜯으러 어느 골짜기를 가니까 아주 예쁜 새끼 호랑이 두 마리가 있어서 바구니에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 후 둥지를 틀어놓고 막아 놓았다. 밤이 되자 호랑이가 와서 자기 새끼를 모두 데려갔다. 이튿날 다시 그 바위를 찾아가자 바위 꼭대기에서 호랑이가 어흥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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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성주군

    관리들이 피해 다니는 성주 대티고개
    대티고개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금산리와 초전면 칠선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가리킨다. 현재 김천과 상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인 주천로가 고개를 지나고 있으나 도로확장 및 포장 등으로 고개의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다. ‘대티고개’는 ‘대야(大也)’, ‘대야티(大也티)’, ‘대티현(大也峴)’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지만, 현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지명이 아니므로 지역의 어른들만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대티고개의 대티(大티)는 대치(大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대티’를 ‘큰 고개’ 또는 ‘높은 고개’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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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사람을 희생하여 완성한 상주 공검지
    공검지(恭儉池)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공검지는 공검호(恭儉湖) 또는 공갈못 등으로도 불리는데, 인공 저수지로 제천시 의림지, 김제시 벽골제, 밀양시 수산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공검지의 축조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50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성덕대왕신종의 속칭인 에밀레종은 771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에밀레종의 전설에서는 공검지의 전설처럼 사람을 희생하여 종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공검지의 축조가 에밀레종의 완성보다 200년 이상이 앞서니 에밀레종의 인신공양은 공검지의 그것을 따른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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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홍수에 떠내려가는 산이 부인의 외치는 소리에 멈춘 상주 서산
    서산(西山)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청리면 가천리와 하초리 그리고 공성면 인창리·초오리, 외남면 구서리에 접해 있는 산이다. 서산은 해발 512.9m로 그리 높지 않으나 산자락이 비교적 넓게 퍼져 여러 마을이 서산과 접하고 있다. 서산의 지명유래와 관련해서는 여럿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때 창리현의 서쪽에 있으므로 명명(命名)되었다는 방위에 대한 얘기가 있고, 돛단배처럼 생긴 산이 물 위를 떠내려가다가 멈춘 곳이라는 얘기(서다+산), 그리고 서산대사가 왜군들을 물리치고 잠시 쉬던 곳이므로 ‘서산’이라고 했다는 등 세 가지 전설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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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4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3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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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2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2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