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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성남 스토리여행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성남시

    성남 스토리여행
    성남지역의 지명, 설화, 전설, 역사, 문화유산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 경기도 성남은 예로부터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 대표적인 옛길인 ‘영남대로’와 영남대로 주변에 산재한 이야기를 엮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용인의 설화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용인시

    용인의 설화
    경기도 용인지역을 기반으로 문헌에 산재한 설화들을 수집·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전설, 지명, 명당, 효행, 인물 편으로 분류하고, 특정 지역이나 시대를 소재로 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민담은 별도로 정리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강화도 온라인 고지도

    출처 :인천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인천 >강화군

    강화도 온라인 고지도
    강화도 내 고려 시대의 흔적을 담아낸 온라인 전자 지도이다. 인천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를 만큼 유물자원이 풍부하다. 고려 시대의 강화(강도)의 지명, 궁궐, 사찰, 사적지 등과 관련된 위치정보 및 설명을 찾을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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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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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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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혜운스님이 창건한 청용사가 있던 마을, 청주 청용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의 청용리는 청용사의 절 이름에 빗대어 마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 청용사는 경주 황룡사 주지인 혜운스님이 창건한 절로, 부처님의 파자를 받아 청용사라 이름 지었다. 과천에 똑같은 이름의 절이 있다가 이곳 청용사가 부흥하면서 쇠퇴했다. 청용사는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번성하였으나 명나라 이여송이 청용사 뒤에 있는 산의 정기를 끊는 바람에 절은 퇴락하였다. 청용사가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 이름을 절의 이름을 따서 청용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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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무장이 영조의 태실을 보호하는 충청북도 청주의 무성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는 ‘무성리(武城里)’라는 마을이 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확산할 때, ‘학도사’라 불리는 풍수가 명당자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자리에 부친의 무덤을 썼다. 그런데 학도사의 꿈에 한 무장(武將)이 나타나 호통을 치면서 형틀에 몸을 묶어 놓고 때렸다. 다음 날 아침에 그곳에 가보니 그 오래된 건물은 왕의 태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무장이 태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무성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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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용이 영웅의 정기를 빼앗아 올라간 충북 청주의 용박골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용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용박’은 용바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을에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소재해 있어서 원래는 ‘용바위골’로 부르다가 ‘용박골’이 되었다. 옛날 영웅이 되기 위해 용박골에 한 무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용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해 결국 무사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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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원님의 욕심에 청춘남녀가 돌이 된 영천 입석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에 이르러 금호강과 봉동천이 합류하여 주변에 강물이 흐르는 소규모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이곳에 중죄인을 가두는 요도가 있었다. 영천고을의 사또는 자신에게 딸을 주지 않는다고 구씨 노인네를 때리고 요도로 유배 보냈다. 구씨 딸과 사위가 될 청년이 인근의 유봉산에 정상에 올라가 삼각주 요도에 구씨 노인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울부짖다가 아버지가 죽자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며 딸과 사위 될 청년은 산 아래에서 돌이 나란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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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채정승이 귀양 와 살던 정읍시 구룡동의 채서방골
    전라북도 정읍시 구룡동에 ‘귀양실’또는 ‘구량마을’, ‘양실마을’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조선시대 무렵, 채정승이라 부르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실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채정승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낮에는 산에 나가 나물과 약초를 캐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에는 달빛에 의지해 자연과 벗 삼으며 세월을 보냈다. 채정승은 자신의 억울한 누명이 밝혀지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무고를 밝히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을 주민들은 귀양실 뒤 산골짜기를 ‘채서방골’이라 부르며, 채정승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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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신부 순이가 빠져 죽은 정읍시 고부면의 순이방죽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소재하는 방죽을 ‘순이방죽’ 또는 ‘통울방죽’ 등으로 부른다. 고부면 신중마을에 ‘창식’이라는 총각이 살았고, 주산마을에는 ‘순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창식과 순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양쪽 집안에서 혼인을 반대해, 두 사람은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창식이 다른 마을에 사는 처녀를 만나 집을 나가버리고, 순이는 저녁마다 방죽에 나와 창식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집으로 돌아온 창식은 착각으로 순이를 방죽에 밀어 넣어 죽이고, 창식도 귀신이 된 순이에게 이끌려 방죽에 빠져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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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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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가 살았던 포항 효자동
    옛날 경북 포항 한 마을에 홀어머니와 효자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어 했다. 아들은 대구로 시집간 누나를 찾아가기로 했다. 밤중에 산길을 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정을 들은 호랑이는 아들을 태워 순식간에 누나에게 데려다주었다. 마침 누나의 집에 홍시가 있어 아들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다. 이후 효자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효자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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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가장 궁금한 포항지명 ‘ 나루끝 ’
    1968년 포항은 국가 기간산업인 포항제철(포스코)을 건설하면서 작은 어촌마을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겪었다. 산업기지 건설과 급속한 도시화는 쌩쌩 달리는 도로로 대변되듯 물길 많은 포항 땅을 아스팔트로 덮어갔다. 학산천로, 양학천로, 삼호로 등이 생겼다. 예전에 강이 흐르던 곳에 있던 나루터가 포항에서는 도심 한가운데로 변해 버렸다. 그것도 나루터의 끝지점인 ‘나루끝’이 이제는 시외버스 경유지가 되었다. 아마 처음 포항 땅을 밟으면 가장 의아하며 궁금한 지명이 나루끝이 아닐까 생각되어 그 나루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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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승려 지명이 세운 포항 보경사
    보경사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번지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래깊은 사찰이다. 사찰 주변에 12개의 폭포가 존재하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보물거울과 관련한 창건설화 두 편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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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평창군

    관기 청심이가 강릉 부사 양수를 따라가지 못하자 투신한 평창 청심대
    청심대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 산 34에 있는 절벽인데, 여기에서 강릉대도호부의 관기인 청심(淸心)이가 죽은 곳이라 ‘청심대(淸心臺)’라 부른다. 강릉대도호부 부사로 양수가 부임하자 관기인 청심이가 시중을 들었다. 그러던 사이 두 사람은 정이 들었는데, 부사가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깊은 정이 들었던 청심은 자신을 한양에 데려가도록 청했으나 부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청심은 인락원(仁樂院) 근처의 경치 좋은 곳에 주안상을 준비하고 대접하였다. 그리고는 한양에 데려갈 것을 다시 청했으나 부사는 거절하였다. 이에 청심이는 오대천 낭떠러지에 몸을 날렸다. 부사는 청심이를 기리는 뜻에서 청심이가 죽은 곳을 청심대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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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평창군

    총각이 유부녀를 짝사랑하다 죽은 평창 돌모고개
    돌모고개는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4리에 있는 고개인데, 이 고개 이름은 ‘돌모’라는 총각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돌모 총각은 가난하여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하고 남의 여인을 짝사랑하다가 죽었다. 이후 신부를 태운 가마가 고개를 지날 때면 신부에게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을에서는 돌모의 혼이 그런 것이라 여기고 고사를 지낸 후 고개 이름을 돌모 이름을 따서 ‘돌모고개’라 했다. 이렇게 고사를 지내고 돌모 이름을 넣어 ‘돌모고개’라고 불러주자 고개를 넘는 가마 탄 신부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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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평창군

    임진왜란 때 민관이 함께 싸운 평창 응암리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응암리(鷹巖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평창강가에 있는 자연굴을 응암굴이라 하고, 모래재는 원주에서 평창으로 넘어오는 고개 이름이다. 이 고개에서 왜군에게 잡혔던 군수가 탈출하여 돌아왔다. 그 군수를 칭송하며 노래했다고 노래재라 부르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모래재로 바뀌었다. 평창의 백성과 군수가 숨어서 싸웠던 매화굴은 매를 날려 소식을 전했다고 해서 매 응(鷹)자를 써서 응암굴로 바뀌었다. 응암굴 덕분에 응암리라는 마을이름이 생겼다. 또 새우치고개는 군수가 밤을 새워 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평창군지』에 그 유래가 자세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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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하마비가 서 있는 부산광역시 양정동의 하마정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화지산(和池山)’이 소재해 있다. 화지산에는 동래 정씨 기세조인 정문도(鄭文道)의 묘소가 있다. 정문도가 유명을 달리하자, 그 아들 정목이 화지산에 묘를 썼다. 그런데 도깨비들이 나타나 목관을 파헤쳤다. 백발노인이 보릿짚이 도깨비들에게는 금빛으로 보이니, 보릿짚으로 목관을 쓰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더 이상 도깨비들이 파헤치지 않았다. 정문도 묘소 앞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장도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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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해운대구

    푸른 뱀이 나타난 부산광역시 송정동의 청사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1동에 ‘청사포(靑沙浦)’라 불리는 포구가 소재해 있다. 원래는 푸른 뱀이 나타난 포구라는 의미로 ‘청사포(靑蛇浦)’라 불렀지만, 지명에 뱀[蛇]이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해서 모래 사(沙)로 바꾸었다고 한다. 옛날 청사포 인근 마을에 정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정씨 부부는 금실이 좋아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면 부인은 마을 입구 바위에 올라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 나간 남편이 몇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을 기다리던 정씨 부인 앞에 푸른 뱀 한 마리가 나타나 용궁으로 안내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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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기장군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를 묻은 부산광역시 반송동의 개좌골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기장군 철마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부산에 속해 있는 각 진영에 입방군(入防軍)으로 복무를 해야 했다. 당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살던 ‘서홍인(徐弘仁)’도 부산성에서 입방군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노부모를 봉양하기에 집에서 매일같이 24㎞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던 중 부산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개좌산 고갯길 입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불이 나서 서홍인이 위험해지자 그가 길동무 삼아 데리고 다니던 개가 개울물을 묻혀 서홍인 주변에 번지는 불을 껐다. 그런데 개는 연기 속에서 질식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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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영덕 침수정
    영덕 침수정은 우리나라 누정 가운데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침수정은 청정한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침수정은 손성을이 1784년(정조 8) 지은 정자이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의미로, 침수정의 유래나 자연 조건을 잘 반영한 누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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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거북의 보은으로 부역이 없어진 마을, 영덕 거무역리
    박제상의 자손인 박세통이 어느 마을 현령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부가 등에 왕(王)자가 새겨진 거북을 잡아 왔다. 기이하게 여긴 박세통이 거북을 사서 바다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삼대에 걸쳐 정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박세통은 물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시중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삼대가 정승이 된 마을이라 하여 부역을 면해주었는데, 이후 부역이 없다하여 ‘거무역’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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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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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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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땅에서 검은 먹이 나온 영암군 학산면의 먹뱅이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먹뱅이’ 또는 ‘묵동리’라 부르는 마을이 소재한다. 옛날 ‘고연규’와 ‘곽진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척 친한 사이였는데, 모두 집안이 가난해서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다. 두 친구는 농사지을 수 있는 농토를 찾아 마을을 나섰고, 넓은 벌판을 개간하기로 하였다. 벌판을 논과 밭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을 일구었다. 그러던 중 땅에서 이상하게 생긴 검은 돌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냥 돌이 아니고 질이 좋은 먹이었다. 두 친구는 먹을 채취해서 독천장에 내다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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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행으로 전란을 피한 영암군 금정면의 와운리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와운리 또는 운동리 등으로 부르는 마을이 소재해 있다. 조선시대 선조 때 와운리에 ‘유공신’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공신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고, 너무 어려서 시묘살이를 하지 못했던 아버지 묘 앞에도 초막을 짓고 다시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적들이 와운리로 들어오려 하자 어디선가 구름과 안개가 마을을 뒤덮어 왜적들의 발길을 돌렸다. 왜적이 간 후 마을 주민들은 구름과 안개가 별안간 나타난 것은 공신의 효심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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