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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렀던 경기도 의정부
    경기도 북부에는 서울 북쪽의 관문 도시로 알려진 의정부가 있다. 의정부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며, 조선 시대 최고의 행정 기관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정 기관의 명칭이 도시 이름이 된 까닭은 태종 이방원과 그의 아버지였던 태조 이성계와 연관되어 있다. 조선 초 이방원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그러자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났고, 방원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사신을 보낸다. 그러나 크게 화가 났던 태조는 보내는 사신들 모두 죽여버렸다. 이후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돌린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의정부 지역에 머물게 된다. 그때 조정의 대신들이 이곳으로 와서 태조에게 업무를 보고했다고 하여, 이 지역을 ‘의정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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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군마 목장에서 유래된 의정부 녹양동과 군마 목장 녹양평
    경기도 의정부시 최북단에 위치한 녹양동은 조선시대 군마 사육 목장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녹양이란 지명은 『고려사』, 『보한집』, 『조선왕조실록』 등에 등장한다. 군마 목장은 조선왕조 개국 초기인 1406년에 경기도 시흥군에서 녹양동으로 옮겨졌다. 군마 목장이 설치된 이후 태종을 비롯해 여러 임금이 녹양동으로 거둥하여 강무장으로 활용한다. 현재 녹양동에 예전에 군마 목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녹양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말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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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하금오리의 지명 변천과 연주현씨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는 금곡리와 서오리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것으로, 상금오리․중금오리․하금오리로 나뉜다. 하금오리는 6.25 전쟁 이전까지 연주현씨 세거지였다. 하금오리에 소림사를 비롯한 여러 개의 절이 들어서면서 절동네로 이름이 바뀐다. 마을 주민들은 본래의 동명인 하금오리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동네에 꽃을 심고 꽃동네로 홍보하여 현재는 하금오리보다 꽃동네로 널리 알려졌다. 하금오리에서는 음력 10월 1일 산치성을 드리는데,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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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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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잉어 구워준 효부 며느리 이름을 딴 영산강
    옛날 옛적 나주에 사는 정노인은 근심 걱정이 없었다. 고을 원님이 불러 물어도 근심 걱정이 없다고 하니 원님은 구슬을 선물로 주고, 뱃사공에게 부탁해 구슬을 잃어버리도록 일을 꾸몄다. 강에서 구슬을 잃어버린 정 영감은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고, 걱정된 큰며느리 영산은 잉어를 사서 통구이를 해드렸다. 그런데 잉어 배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원님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꾸몄다고 시인하고, 정노인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정 노인은 강변에 며느리의 이름을 딴 영산서원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강 이름을 서원 이름에서 따 영산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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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드들이가 제물이 된 나주시 남평읍의 드들강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 ‘드들강’ 또는 ‘지석천’이라 부르는 하천이 소재해 있다. 옛날, 남평읍에 ‘드들’이라 부르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드들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드들이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마을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마을 주민들도 드들이에게 쌀을 내주어 아버지를 모시게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하루는 마을 주민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더 이상 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드들이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자청해서 제물이 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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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용머리 아래 위치한 나주시 동강면의 용동마을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장동리에 용동마을이 소재해 있다. 용동마을은 마을 뒤로 낮은 산이 위치하고, 삼면이 영산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옛날 한 지관이 용동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뒷산을 넘어 다니면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뒷산을 넘어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정에 다녀오던 임산부가 마을 뒷산을 넘지 않고 영산강을 따라 돌아가려 하였으나, 밀물 때라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뒷산을 넘어 마을로 들어갔는데, 며칠 후 그만 유산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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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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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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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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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원님의 욕심에 청춘남녀가 돌이 된 영천 입석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에 이르러 금호강과 봉동천이 합류하여 주변에 강물이 흐르는 소규모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이곳에 중죄인을 가두는 요도가 있었다. 영천고을의 사또는 자신에게 딸을 주지 않는다고 구씨 노인네를 때리고 요도로 유배 보냈다. 구씨 딸과 사위가 될 청년이 인근의 유봉산에 정상에 올라가 삼각주 요도에 구씨 노인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울부짖다가 아버지가 죽자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며 딸과 사위 될 청년은 산 아래에서 돌이 나란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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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채정승이 귀양 와 살던 정읍시 구룡동의 채서방골
    전라북도 정읍시 구룡동에 ‘귀양실’또는 ‘구량마을’, ‘양실마을’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조선시대 무렵, 채정승이라 부르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실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채정승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낮에는 산에 나가 나물과 약초를 캐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에는 달빛에 의지해 자연과 벗 삼으며 세월을 보냈다. 채정승은 자신의 억울한 누명이 밝혀지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무고를 밝히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을 주민들은 귀양실 뒤 산골짜기를 ‘채서방골’이라 부르며, 채정승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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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신부 순이가 빠져 죽은 정읍시 고부면의 순이방죽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소재하는 방죽을 ‘순이방죽’ 또는 ‘통울방죽’ 등으로 부른다. 고부면 신중마을에 ‘창식’이라는 총각이 살았고, 주산마을에는 ‘순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창식과 순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양쪽 집안에서 혼인을 반대해, 두 사람은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창식이 다른 마을에 사는 처녀를 만나 집을 나가버리고, 순이는 저녁마다 방죽에 나와 창식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집으로 돌아온 창식은 착각으로 순이를 방죽에 밀어 넣어 죽이고, 창식도 귀신이 된 순이에게 이끌려 방죽에 빠져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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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남 >아산시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에 속한 '풍기동'에는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시대 때 마을에 '기득'과 '풍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부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한편 남편 기득은 문주왕의 명령으로 나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풍순은 먹을 것이 없어 이웃 마을로 음식을 구하러 갔다. 그때 개 한 마리가 풍순 앞에 나타나 보리밥을 토하자 풍순은 이를 주워담아 깨끗이 씻어 시부모님께 드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쳤고, 풍순은 죄를 말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벼락이 떨어져 황금이 담긴 바위를 깨뜨렸다. 이후 풍순은 걱정없이 시부모를 봉양했다.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강씨의 재산을 물려받은 이간이 살았던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외암리가 소재해 있다. 외암리는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리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흘러서 지명이 생긴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조선시대 후기 학자인 이간(李柬)의 호를 따서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옛날 송악에는 목씨와 강씨들이 먼저 들어와 살았고, 예안이씨들이 조선시대 단종 무렵에 들어오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을에서 부자로 소문난 강씨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모든 재산을 이씨에게 물려주라고 한다. 강씨는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이씨를 찾았는데, 그가 바로 이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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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마을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회룡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 절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온 황룡이 살고 있었다. 황룡은 절터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며 3년을 살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하루는 세종대왕과 그 일행이 온양온천을 가는 도중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농부로 변신하여 도와주었다. 그러나 절터를 벗어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탓에 이무기로 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대왕이 절을 다시 짓게 했고, 하늘에서는 황룡에게 다시 절터로 가서 지내도록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황룡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념해 회룡리(回龍里)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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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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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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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 동암리의 마을별 지명 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은 통일신라시대에 부유현으로 순천에 속하였다가 현재 12개리로 개편되어 곡성군에 속한다. 목사동면 내 마을엔 절터가 많아 불당골이나 도장마을 같은 이름에 영향을 미쳤다. 평호마을, 고두마을, 궁두마을 등처럼 마을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되거나 유치마을이나 호곡마을처럼 마을 주변의 산세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해져 오는 이름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용암마을, 구룡마을, 용전마을 등 용과 거북이 대나무와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 외에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로 신기한 행적과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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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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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 지역문화 Pick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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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 땅이 품은 '문림의향 장흥설화'

    출처 :전라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전남 >장흥군

    장흥 땅이 품은 '문림의향 장흥설화'
    전남 장흥군의 마을 신화, 전설, 민담 중 장흥 주민의 슬기로운 지혜와 경험이 투사된 대표 이야기 17편을 선별하여 만든 만화책이다. 할미꽃 이야기처럼 보편적인 설화부터 옥녀단자나 옥녀바위 관련 설화 같은 지역색이 강한 이야기까지 모두 찾을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남 >장흥군

    도깨비가 지켜주는 장흥 용곡마을의 도채비샘
    용곡마을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두룡리에 있는 자연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전설도 많지만 마을사람들이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샘이 있다. 곧 탑골샘, 도채비샘, 용물소이다. 이들 샘은 용곡마을 사람들에게 더위와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샘이기도 하지만 마을에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도 하는 신앙이 깃든 샘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용곡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자연에 의지해서 활력이 넘치는 장수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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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흥군

    욕심많은 모씨가 숫돌바위에 못질한 정암마을
    옛날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하산리에 머슴 생활을 하던 모씨가 살고 있었다. 모씨는 살림이 넉넉해지자 장동면 북교리 감나무재로 이주하였다. 이후 많은 돈을 모아 일대에서는 부자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모씨는 남에게 베푸는 것을 모르는 구두쇠였다. 마을 사람에게는 물론 스님에게도 시주를 한 적이 없었다. 하루는 탁발 온 노승이 연못을 허물고 숫돌바위에 구멍을 내면 더 높은 벼슬을 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걸 믿고 그대로 했지만 해마다 흉작이다가 결국 모씨네는 몰락했다. 이후 사람들은 숫돌바위에 구멍을 뚫기 위해 망치질을 했다고 해서 못질할 정(釘)자와 바위 암(岩)자를 써서 이 마을을 정암(釘岩)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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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녹고가 흘린 눈물이 고여서 샘이 된 제주 녹고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는 물이 솟아나는 용천수가 있다. 지역에서는 이 용천수를 용운천(龍雲泉)이라고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보통 ‘녹고천’이라고 부른다. 녹고물을 이야기할 때는 수월봉이 함께 등장한다. 수월봉은 해발 78m의 작은 산으로 제주지역에서는 이러한 산을 오름이라 하는데, 오름에는 분화구가 있는 것이 일반적지만 수월봉에는 분화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녹고물 이야기는 수월봉과 더불어 100가지에서 하나가 부족한 99개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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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백마가 바위로 변한 제주 용머리바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은 용담1동과 용담2동 등 2개의 행정리로 나뉘어있는데, 용암2동 바닷가에는 ‘용머리바위’가 있고 그 주변에는 도로를 따라 카페촌이 형성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용머리바위’에 대한 전설은 힘센 장수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백마를 죽인 이야기와 용이 한라산 신령의 구슬을 훔쳤기에 신령이 화살로 용을 죽인 이야기 등 두 가지가 전한다. 이들 이야기에 투영된 ‘용머리바위’는 완벽하게 용이 되지 못한 미완의 용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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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도채비불을 끄기 위해 마을 이름을 바꾼 제주도 제주시의 한동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한동리’라는 마을이 있다. 한동리의 옛 이름은 ‘궤’, ‘궤이’, ‘괴리’였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괴이리(槐伊里)’다. 150여 년 전 마을에 도채비(도깨비)불이 바다로부터 날아와 불이 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제주 목사가 마을 이름에 ‘괴(槐)자’를 써서 불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에 한수(漢水)를 끌어온다는 의미로 ‘한(漢)’자를 쓰기로 하였다. 또한, 마을이 한라산 백록담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기에, 백록담의 물을 당긴다는 의미에서 동(東)자를 쓰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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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절의의 상징 거북바위 정자, 영양 삼귀정
    삼귀정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 945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시도유형문화재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계(龍溪) 오흡(吳潝:1576~1641)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비분강개하여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고향인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 반월산 아래에 초가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개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삼귀정이란 정자명은 삼귀정 앞에 정자를 등에 업은 듯한 형상의 세 거북바위가 엎드려 있는 모습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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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얼음 구멍으로 잉어가 날아 나온 영양 비릿골
    경북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에는 비릿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소문난 효자인 조금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병이 들어 누워있던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조금은 잉어를 구하기 위해 강으로 갔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강물도 꽁꽁 얼어있었다. 조금이 잉어를 잡기 위해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얼음 구멍으로 잉어 한 마리가 날아오르듯 튀어나왔다. 조금이 잡은 잉어를 먹은 아버지는 병이 싹 나았다. 이후 사람들은 조금이 살던 마을을 잉어가 날아오른 곳이라 하여 비리골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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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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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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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