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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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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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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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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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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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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 동암리의 마을별 지명 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은 통일신라시대에 부유현으로 순천에 속하였다가 현재 12개리로 개편되어 곡성군에 속한다. 목사동면 내 마을엔 절터가 많아 불당골이나 도장마을 같은 이름에 영향을 미쳤다. 평호마을, 고두마을, 궁두마을 등처럼 마을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되거나 유치마을이나 호곡마을처럼 마을 주변의 산세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해져 오는 이름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용암마을, 구룡마을, 용전마을 등 용과 거북이 대나무와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 외에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로 신기한 행적과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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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4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3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3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2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2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3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3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2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2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1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1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성남 스토리여행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성남시

    성남 스토리여행
    성남지역의 지명, 설화, 전설, 역사, 문화유산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 경기도 성남은 예로부터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 대표적인 옛길인 ‘영남대로’와 영남대로 주변에 산재한 이야기를 엮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용인의 설화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용인시

    용인의 설화
    경기도 용인지역을 기반으로 문헌에 산재한 설화들을 수집·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전설, 지명, 명당, 효행, 인물 편으로 분류하고, 특정 지역이나 시대를 소재로 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민담은 별도로 정리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강화도 온라인 고지도

    출처 :인천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인천 >강화군

    강화도 온라인 고지도
    강화도 내 고려 시대의 흔적을 담아낸 온라인 전자 지도이다. 인천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를 만큼 유물자원이 풍부하다. 고려 시대의 강화(강도)의 지명, 궁궐, 사찰, 사적지 등과 관련된 위치정보 및 설명을 찾을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풍수지리 박사 꼬맹이 만난 썰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전남 >구례군

    풍수지리 박사 꼬맹이 만난 썰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의 사도리는 마을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때는 신라 말기, 풍수리지에 밝은 도선이라는 스님이 화엄사 주변을 걸었다. 그때 한 노인이 도선에게 절을 하며 내일 섬진강에서 어떤 분이 스님을 만나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다음 날, 도선은 섬진강에서 한 아이가 풍수지리도를 모래에 그리고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도선이 깜짝 놀라 부처님께 감사의 정성을 드리는 사이 아이는 사라졌다. 이후 사람들은 이 설화에서 이름을 따 마을의 이름을 사도리라 불렀다고 한다.
  • 강진의 마을이야기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전남 >강진군

    강진의 마을이야기
    한반도의 서남부 끝자락 강진의 마을 이름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자. 강진읍과 성전면의 73개 마을을 찾아가 마을과 땅 이름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고 당대의 삶 이야기를 채록해서 현대적 스토리텔링으로 담았다. 마을 이름을 넘어 도로명까지 탐색한 강진군 연혁 콘텐츠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화'를 입지 않도록 이름을 바꾼 오산면 마을별 지명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은 옥과군 화석면(火石面)이 화면(火面)이 되었다가 지명에 화(火)가 들어 있어서 화재가 자주 발생하니 지명을 바꾸자는 주민 의견이 모아져 지형과 특징을 살려 오산면(梧山面)으로 개칭되었다. 오산면에는 풍수지리에 따라 오동나무나 봉황,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절과 관련된 지명으로는 관음사마을, 성덕마을, 가곡마을 등이 있다. 경치와 관련된 지명으로는 운곡마을, 등구마을, 세곡마을 등이 있다. 부들마을, 초현마을, 성덕마을 등 지명과 전설이 한데 어우러져 인상적인 지명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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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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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 지방문화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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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3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2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2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1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1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정생원이 호환당한 충주 정생원골
    생원과에 급제했던 정생원은 당파싸움으로 인한 벼슬아치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충주 산골에 내려와 농부로 살았다. 어느 해 정월 열나흗날, 작은 보름에 정생원은 아내와 내기를 했다. 나무 아홉 짐과 무명실 아홉 꾸러미를 누가 더 빨리하는지 내기했다. 마지막 아홉 짐의 나무를 하러 간 정생원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계곡으로 갔다가 정생원이 호환을 당해 머리만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주고, 마을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정생원골이라 하고, 그 산을 두갈봉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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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아기장수를 태우려던 용마가 태어난 충주 용마골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다. 마을에 괴산에서 이주한 소리실 내외가 살았는데, 임신한지 20달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태어나자 선반에 오르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아기장수였다. 내외는 집안이 망할 것이 두려워 아이를 맷돌과 다듬잇돌로 압사시켰다. 그때 건너편의 산에서 바위가 무너지면서 괴성을 지르듯 용마가 나오더니 울부짖으며 날아 갈마고개 너머 개천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사람들은 용마가 태어난 곳을 용마골, 죽은 곳을 용천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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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신령한 온수가 나오던 충북 충주의 온수골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는 ‘온수골[溫水谷]’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영조 무렵 문경새재를 넘어서 충주로 온 나병환자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싸리고개를 넘다가 그만 길가에 쓰러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거적에 말아 길 아래로 굴렸다. 나병환자는 거적을 헤치고 나와 근처 웅덩이에서 온수를 마셨다, 그리고는 온수로 매일 같이 목욕을 하여 나병을 치료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나병환자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여들었다. 충주의 원님은 나병환자들이 몰려드는 것이 싫어 나병환자들을 생매장해버렸다. 그 이후 온수가 수안보로 옮겨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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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영덕 침수정
    영덕 침수정은 우리나라 누정 가운데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침수정은 청정한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침수정은 손성을이 1784년(정조 8) 지은 정자이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의미로, 침수정의 유래나 자연 조건을 잘 반영한 누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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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거북의 보은으로 부역이 없어진 마을, 영덕 거무역리
    박제상의 자손인 박세통이 어느 마을 현령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부가 등에 왕(王)자가 새겨진 거북을 잡아 왔다. 기이하게 여긴 박세통이 거북을 사서 바다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삼대에 걸쳐 정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박세통은 물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시중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삼대가 정승이 된 마을이라 하여 부역을 면해주었는데, 이후 부역이 없다하여 ‘거무역’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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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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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시 대백과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세종

    세종시 대백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탄생 전후 역사문화자원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제작한 '세종시 대백과'이다. 관련 문헌과 100인의 구술조사를 통해서 세종시의 모든 것을 개괄했다. 역사, 문화와 예술, 산업과 경제, 인물, 교육, 교통, 비전까지 7개 부분에 걸쳐 과거부터 미래까지 세종시를 조망할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세종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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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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