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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청도군

    호랑이와 살던 여인이 묻힌 청도 호산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은 보물 문화재를 여럿 갖고 있는 운문사가 유명하다. 운문댐 건설로 운문면의 여러 마을이 수몰되어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 호산(虎山)은 운문면 순지리에 있는 해발 313.9m의 산을 가리킨다. 옛날 이곳에 나이 든 내외가 어린 딸과 살았는데, 어느 날 딸이 호환을 당했다. 1년 후 딸이 호랑이와 함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으나 딸은 호랑이와 있기를 원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딸이 죽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호랑이와 함께 있던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서는 이 산을 호산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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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도군

    숙종이 이름 붙인 샛별 아랫마을, 청도 샛별장터
    경북 청도군 이서면에는 샛별장터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이름과 관련하여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숙종이 순시를 나왔다가 팔조령에서 머물렀다. 새벽녘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샛별 아랫마을이 있는 것을 보고 마을 이름을 ‘샛별’이라고 부르라고 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또는 이서면의 지형이 소를 닮아, ‘쇠(소)별’에서 ‘새별’또는 ‘샛별’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고려 말 두촌 박양무 선생이 이곳으로 내려와 새 벌판을 발견하고는 ‘새벌’이라고 칭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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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도군

    산이 험준해 구름이 산허리를 넘지 못해 멈추어 있는 청도 운문재
    운문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와 울산광역시 상북면 덕현리를 연결하는 해발 739m의 고개로, 소금의 수송로였다. 운문재는 예전에 울산과 경주지역에서 해산물을 지고 내륙인 대구·경산·창녕·고령지역으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이었다. 과거 보부상들이 땀 흘리고 다녔을 운문재를 우리는 터널을 뚫고 자동차를 이용하여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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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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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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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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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영덕 침수정
    영덕 침수정은 우리나라 누정 가운데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침수정은 청정한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침수정은 손성을이 1784년(정조 8) 지은 정자이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의미로, 침수정의 유래나 자연 조건을 잘 반영한 누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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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거북의 보은으로 부역이 없어진 마을, 영덕 거무역리
    박제상의 자손인 박세통이 어느 마을 현령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부가 등에 왕(王)자가 새겨진 거북을 잡아 왔다. 기이하게 여긴 박세통이 거북을 사서 바다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삼대에 걸쳐 정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박세통은 물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시중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삼대가 정승이 된 마을이라 하여 부역을 면해주었는데, 이후 부역이 없다하여 ‘거무역’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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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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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성, 마을을 품다

    출처 :대구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구 >달성군

    달성, 마을을 품다
    대구시 인근 달성군이 도시화함에 따라 사라지는 자연마을의 모습을 기록한 책자이다. 달성군 9개의 면의 각 마을의 개요, 지리, 변천사, 문화재를 충실하게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대구 >북구

    칠성바위에 일곱 아들의 이름을 새긴 대구광역시 북구의 칠성동
    대구광역시 북구에 ‘칠성동(七星洞)’이 소재해 있다. 칠성동은 칠성바위가 소재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명이다. 조선시대 정조 때 경상감사로 부임한 이태영(李泰永)이 대구읍성 북문 밖에 북두칠성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확인해 보니, 대구읍성 북문에 꿈에서 보았던 일곱 개의 바위가 북두칠성처럼 놓여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곱 아들들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 그 이후 경상감사의 아들들의 성품이 각자 이름을 새긴 바위와 닮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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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동구

    역적이 나온 마을에 둑을 쌓아 못을 만든 대구 모단
    대구 동구 둔산동에는 옻골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옻골은 ‘빼골’ 또는 ‘모단’이라고도 불린다. ‘빼골’은 ‘빼어난 골짜기’라는 뜻이며 ‘모단’은 ‘못안에 산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옛날, 이 마을은 지세가 뛰어나 한 나라의 수도가 되거나 또는 역적이 나올만 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어느 해에 역적이 나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사람들은 마을 주변에 둑을 쌓고 물을 채워 마을을 못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월이 흘러 둑이 무너지고 물이 빠지면서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후, 사람들이 “못 안에 산다.”하여 ‘못안’에서 ‘모단’으로 이름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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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3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2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2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1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1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태조 왕건의 꿈 해몽을 잘 해줘서 받은 왕밭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 전쟁 중 잠깐 쉬는 동안 꿈을 꾸었다. 꿈이 하도 기이해서 해몽을 잘한다는 무당이 사는 논산 부적면 부인리로 가서 만났다. 무당은 곧 후삼국을 통일할 꿈이라고 풀이를 했다. 이에 고무된 태조와 부하들은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이후 태조는 꿈풀이를 잘해준 보답으로 무당에게 밭을 하사했는데, 이를 지역 사람들은 왕이 준 밭이라 해서 왕밭이라 했다. 이곳이 충남 논산 광석면 왕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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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은혜갚은 한조, 한골
    옛날 논산시 은지면 방축리에 김 부자가 살았다. 그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았다. 어느 날 곡광에 둥지를 튼 한조를 돌봐준 김부자는 새끼 한조까지 부화해서 보내주었다. 그 후 김부자는 원인 모를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한조가 날아와 약그릇에 열매 하나를 떨구고 갔다. 그 열매가 든 약을 먹은 김 부자는 완쾌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한조가 김 부자를 살렸다며 김 부자가 사는 마을을 한조골이라 불렀고, 이것을 줄여 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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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허리나 다리가 아프면 개재다리로 오시오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는 개재다리가 있다. 이 다리에는 예부터 허리나 다리가 아픈 사람이 다리를 왕복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망나니 남편과 부지런한 아내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아내가 밭에 거름을 주다가 백사를 보고 놀라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 아내의 꿈에 백사가 노인으로 변하여 나타나 치료 방법을 일러주었고, 아내는 백사 노인의 말대로 개재다리를 오가서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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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성주군

    관리들이 피해 다니는 성주 대티고개
    대티고개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금산리와 초전면 칠선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가리킨다. 현재 김천과 상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인 주천로가 고개를 지나고 있으나 도로확장 및 포장 등으로 고개의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다. ‘대티고개’는 ‘대야(大也)’, ‘대야티(大也티)’, ‘대티현(大也峴)’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지만, 현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지명이 아니므로 지역의 어른들만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대티고개의 대티(大티)는 대치(大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대티’를 ‘큰 고개’ 또는 ‘높은 고개’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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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사람을 희생하여 완성한 상주 공검지
    공검지(恭儉池)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공검지는 공검호(恭儉湖) 또는 공갈못 등으로도 불리는데, 인공 저수지로 제천시 의림지, 김제시 벽골제, 밀양시 수산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공검지의 축조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50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성덕대왕신종의 속칭인 에밀레종은 771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에밀레종의 전설에서는 공검지의 전설처럼 사람을 희생하여 종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공검지의 축조가 에밀레종의 완성보다 200년 이상이 앞서니 에밀레종의 인신공양은 공검지의 그것을 따른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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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홍수에 떠내려가는 산이 부인의 외치는 소리에 멈춘 상주 서산
    서산(西山)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청리면 가천리와 하초리 그리고 공성면 인창리·초오리, 외남면 구서리에 접해 있는 산이다. 서산은 해발 512.9m로 그리 높지 않으나 산자락이 비교적 넓게 퍼져 여러 마을이 서산과 접하고 있다. 서산의 지명유래와 관련해서는 여럿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때 창리현의 서쪽에 있으므로 명명(命名)되었다는 방위에 대한 얘기가 있고, 돛단배처럼 생긴 산이 물 위를 떠내려가다가 멈춘 곳이라는 얘기(서다+산), 그리고 서산대사가 왜군들을 물리치고 잠시 쉬던 곳이므로 ‘서산’이라고 했다는 등 세 가지 전설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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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 이황의 숨결이 느껴지는, 안동 고산정
    고산정은 천하의 명산 청량산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마주하는 절경에 위치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제자 금산수가 건립한 고산정은 창건 당시부터 안동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퇴계를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자주 왕래하며 남긴 시가 수백 수에 달한다. 청량산을 유난히 좋아했던 퇴계 이황도 고산정을 자주 왕래하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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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청나라를 멀리하는 절의의 상징, 안동 청원루
    청원루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장동김씨(壯洞金氏)의 시조인 김번(金璠:1479~1544)이 지은 살림집이었는데, 김번의 증손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다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자 조상의 고향인 안동 풍산읍 소산리의 종택으로 내려와 ‘청원루’란 현판을 내결고 은거하였다. ‘청원루’라는 정자이름은 ‘청나라를 멀리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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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전주유씨 강학처, 안동 삼산정
    삼산정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94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4호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유정원(1703∼1761)이 1750년(영조 26)경에 건립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삼산정이라는 정자명은 창건자 유정원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그의 호는 그의 집 앞산의 세 개의 봉우리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유정원의 덕행을 기리며 자손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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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천자가 태어난 창원 천자봉
    천자봉(天子峯)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죽곡동·풍호동에 걸쳐있는 해발 506m의 산이다. 천자(天子)는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를 말하는데, 보통 황제(皇帝)를 가리킨다. 이러한 천자가 이곳 산에서 태어났으므로 천자봉이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연못에 살던 이무기가 명나라 태조 주원장으로 환생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천자봉’이라 불렀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곧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있는 산이 ‘천자’와 관련된 그 무엇이 있다고 믿기에 그것을 확대 해석하여 ‘천자봉’이라 명명(命名)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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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머슴과 혼인하여 일가를 이룬 오동, 창원시 오동동
    옛날 진주의 최대감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딸 오동이 있었다. 그런데 오동이 집안 머슴 돌쇠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실을 안 최대감은 둘을 광에 가두었다. 최 대감의 부인이 딱하게 여겨 노자와 패물을 준 후, 도망쳐 살도록 했다. 오동과 돌쇠는 마산 작은 포구에 도착해 살림을 차렸다. 돌쇠는 옹기를 구워 팔아 꽤 많은 돈을 모았고 오동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 부부는 돈을 주고 참봉 벼슬을 사서 아들에게 성을 물려주었다. 아들은 잘 자라 장원급제를 했다. 부모님께 자신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오동은 몇십 년 만에 식구들과 진주로 찾아갔고, 최대감과 눈물의 화해를 했다. 이 사실이 마을에 퍼지면서 그 마을을 ‘오동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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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창원 웅산
    웅산(熊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에 있는 해발 710m의 산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산은 여러 마을과 닿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웅산 또한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과 진해구 자은동·소사동 마을과 접해 있으며 ‘곰산’, ‘곰메’, ‘곰실바위’, ‘시루봉’, ‘시루바위’, ‘천자봉’ 등으로 불린다. 웅산의 지명유래는 산봉우리의 바위 모양이 마치 포효하는 곰처럼 생겼으므로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웅산(熊山)이라 한 것이다. 웅산과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과 조선의 태조 이성계 탄생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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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