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세종시 대백과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세종

    세종시 대백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탄생 전후 역사문화자원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제작한 '세종시 대백과'이다. 관련 문헌과 100인의 구술조사를 통해서 세종시의 모든 것을 개괄했다. 역사, 문화와 예술, 산업과 경제, 인물, 교육, 교통, 비전까지 7개 부분에 걸쳐 과거부터 미래까지 세종시를 조망할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세종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피난 온 인조를 도와준 충청남도 공주시의 조왕동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조왕동(助王洞)’ 또는 ‘조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인조 때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켰다. 인조는 공주시 인근으로 피난을 왔다. 동곡리에 도착해 ‘노숙(盧潚)’이라는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인조가 노숙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이괄의 난이 모두 평정되었다. 한양으로 돌아간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인한 피해들을 모두 복구하고, 자신이 공주로 피난 갔을 때 며칠 동안 따뜻하게 대해주던 노숙과 동곡리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바위에서 금비둘기가 날아간 충청남도 공주시의 유구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유구읍이라는 곳이 있다. 유구의 옛 지명은 ‘창말’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창말에 도적 떼가 들어 와 노략질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관군을 보내 도적 떼를 소탕하고, 마을에 수비병 몇백 명을 두었는데, 수비병들은 마을 길을 넓히기로 하였다. 수비병들이 마을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폭약으로 한 바위를 폭파하였다. 그때 금비둘기 한 쌍이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수비병들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지명을 ‘유구’로 바꾸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이성계가 지은 불당이 있던 충청남도 공주시의 불당마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경천리(敬天里)라는 마을이 있다. 경천리를 ‘불당리(佛堂里)’ 또는 ‘불당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찾아온 마을이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의 도읍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가 계룡산 일대에 도읍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계룡산 일대에 새로운 도읍지를 짓기 위한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도읍지 건설 현장에 내려온 이성계의 꿈에 계룡산 산신령이 나타나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라며, 딸에게 길을 안내해 주라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신안군

    섬 속의 천년의 샘, 신안 비금도 고운정
    전남 신안군 비금면 수대리 관청동 뒷산에 오르면 천년의 샘이라 크게 써놓은 곳이 있다. 이곳은 신라말 최치원의 호를 따서 고운정(孤雲井)이라 이름한 곳이다. 최치원이 중국 사신길 또는 유학길에 이 곳으로 지나다가 우물을 판 데서 유래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천년 이상 존재한 우물이다. 물맛이 워낙 좋아서 “무지허게 좋다.”고 지역 사람들은 말한다. 고운정은 비금도 옆 우이도에도 있으니 우이도도 최치원의 발길이 닿은 곳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신안군

    표류했던 부부가 탑을 쌓은 신안 홍도의 탑상골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紅島)’에 ‘탑상골’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계곡에 남탑(男塔), 여탑(女塔) 등으로 불리는 바위가 소재한다. 옛날 흑산도 청년이 바닷일을 갔다가 풍랑을 만나 홍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그 무렵 홍도 근처를 지다던 중국 배가 난파를 당해 유일하게 생존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흑산도 청년과 중국 여인은 부부가 되었다. 한편, 이들 부부는 다른 곳에 각각 돌탑을 쌓았다. 돌탑을 쌓던 아내는 남편이 보고 싶어 가다가 암초에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 죽고, 돌탑을 완성한 남편은 부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흑산도가 보이는 바닷가로 나가 울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신안군

    물에 잠겨버린 도둑들의 본거지, 도둑골
    옛날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송공산 사방으로 도둑질을 일삼는 무리가 있었다. 도둑들은 밤이면 마을을 다니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마을 사람들은 몽둥이와 돌멩이 그리고 농기구로 도둑들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침 마을에 한양에서 귀양 온 부부가 있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부부는 물로 도둑들의 근거지를 잠기게 하자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송공산으로 피하고, 정상에서 기우제를 드렸다. 얼마 후 구름이 몰려오더니 폭우가 쏟아지고 도둑들의 근거지는 물에 잠겼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도둑들의 본거지가 있던 골짜기를 도둑골이라 불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한자지명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힘센 가래와 도치가 살았던 가평군 가평읍의 보납골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보납골이 소재해 있다. 보납골에는 신기한 것이 많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가 힘을 솟아나게 하는 물이다. 옛날 보납산에 불도를 닦지 않고, 고기와 술은 물론 마을에 사는 부녀자들까지 희롱하는 가래와 도치로 불리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임금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남이’라는 현명한 관리를 보납골로 보냈다. 작은 암자에서 가래, 도치와 함께 살게 된 남이는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바위를 들고, 물을 마시는 것을 몰래 보았다. 남이는 풀로 만든 빨대로 물을 먹었다. 그 후 가래와 도치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되어 두 사람을 잡아 관가로 넘길 수 있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구리로 만든 떡 안반이 묻힌 가평군 가평읍의 안반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안반지’또는 ‘암반지’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있다. 예전에 ‘안반탄’이라는 하천이 있었고, 안반탄 용소 위에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안반’이 있기에 생긴 지명이다. 한편, ‘장자골’에 만석지기로 소문난 장씨 성을 가진 인색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주를 청하기 위해 찾아온 스님에게 두엄을 담아주었다. 이를 보고 장부자의 며느리가 곡간에 가서 쌀을 가져다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다음 날 정오에 뒷산으로 오르라고 하였다. 다음날 스님의 말을 듣고 며느리는 뒷산으로 올랐다. 그러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다 보았는데,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일어나더니, 장부잣집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이 화로 누구 것이오?', 가평 이화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는 장승 고개 아랫마을이다. 황 씨가 꼴을 베고 오다가 어떤 여인을 만난 꿈을 꾸었다. 그 여인이 시신이 묻힌 곳을 알려주며 발이 밖으로 나와 있으니 제대로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황 씨는 제대로 묻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그랬더니 황금 화로를 받게 되었다. 혹시 화로 주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이 화로 누구 것이오?” 외치고 다녔는데, 여기서 '이화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황 씨는 황금 화로를 팔아 황부자가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 과천 관문동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官門洞)은 과천고을의 관문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삼남지방의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려면 다섯 번의 문세(門稅)를 내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이 관문동에 있는 과천 동헌 앞이었다. 그 외에 남태령 고개, 노량진, 남대문, 육조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인 통과세를 거둬가는 자들이 많았다. 현재 관문동에는 정부 제2청사가 들어와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부터 삼남(경상, 전라, 충청)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으로 행차하실 때 지나셨던 효행의 길로써 유서가 깊은 길이다. 남태령 옛길 따라 과천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탐방해 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고려 충신 조윤이 오른 경기도 과천의 망경대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은 마을을 흐르는 내가 맑아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막계동 뒷산인 청계산도 같은 의미다. 청계산의 주봉에 해당하는 석대(石臺) 이름이 ‘망경대(望京臺)’인데, 고려말 충신인 조윤(趙胤)이 오른 이후 ‘만경(萬景)’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망경(望京)’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를 향한 조윤의 충성심을 지명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장님과 앉은뱅이가 부처님을 만난 연천군 신서면의 불견이 고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에 ‘불견이’ 또는 ‘불현’ 등으로 부르는 고개가 소재한다. 고려시대 제7대 목종 때 심원사에서 큰 종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대광리에 살던 장님 이덕기와 앉은뱅이 박춘식은 시주를 온 스님의 말을 듣고, 3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시주하기를 청하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심원사에서 큰 종을 만들고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 이덕기와 박춘식도 심원사로 가기 위해 “나무대자대비관세음보살”을 외우고 고개를 넘다가 부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고, 다리도 펴지게 되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수레와 철마가 멈춘 연천 차탄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車灘里)는 수레여울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옛날 고을 원이 수레를 타고 민정을 살피다가 여울에 빠져 죽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망곡산(望哭山)이 있어 고종과 순종황제의 죽음을 애통해했고, 철도중단지점이 있어 애타게 북녘을 향해 기차는 달리고 싶어 하는 곳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줄 잘 타는 재인이 줄이 끊어져 죽은 연천 재인폭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古文里)와 재인폭포(才人瀑布)에는 줄을 잘 타는 재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재인의 아내가 자신을 탐내는 사또의 코를 깨물어 코문리라 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고문리로 변했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반대로 예쁜 아내를 둔 마을 사람이 재인과 내기를 했다가 마음이 다급해져 줄을 끊은 이야기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옥천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 지방문화툰 (3건)
자세히보기
  • 3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3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2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2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1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1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혜운스님이 창건한 청용사가 있던 마을, 청주 청용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의 청용리는 청용사의 절 이름에 빗대어 마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 청용사는 경주 황룡사 주지인 혜운스님이 창건한 절로, 부처님의 파자를 받아 청용사라 이름 지었다. 과천에 똑같은 이름의 절이 있다가 이곳 청용사가 부흥하면서 쇠퇴했다. 청용사는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번성하였으나 명나라 이여송이 청용사 뒤에 있는 산의 정기를 끊는 바람에 절은 퇴락하였다. 청용사가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 이름을 절의 이름을 따서 청용리라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무장이 영조의 태실을 보호하는 충청북도 청주의 무성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는 ‘무성리(武城里)’라는 마을이 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확산할 때, ‘학도사’라 불리는 풍수가 명당자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자리에 부친의 무덤을 썼다. 그런데 학도사의 꿈에 한 무장(武將)이 나타나 호통을 치면서 형틀에 몸을 묶어 놓고 때렸다. 다음 날 아침에 그곳에 가보니 그 오래된 건물은 왕의 태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무장이 태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무성리’라 부르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용이 영웅의 정기를 빼앗아 올라간 충북 청주의 용박골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용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용박’은 용바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을에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소재해 있어서 원래는 ‘용바위골’로 부르다가 ‘용박골’이 되었다. 옛날 영웅이 되기 위해 용박골에 한 무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용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해 결국 무사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