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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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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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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 동암리의 마을별 지명 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은 통일신라시대에 부유현으로 순천에 속하였다가 현재 12개리로 개편되어 곡성군에 속한다. 목사동면 내 마을엔 절터가 많아 불당골이나 도장마을 같은 이름에 영향을 미쳤다. 평호마을, 고두마을, 궁두마을 등처럼 마을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되거나 유치마을이나 호곡마을처럼 마을 주변의 산세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해져 오는 이름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용암마을, 구룡마을, 용전마을 등 용과 거북이 대나무와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 외에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로 신기한 행적과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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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하동군

    천 마리 닭으로 지네를 없앤 하동 봉계마을
    옛날 경남 하동군 횡천면 애치리 봉계마을에서는 섣달그믐날이면 사람 하나씩이 사라졌다. 마을사람들은 밤새 망을 보았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도사가 나타나 닭 천 마리를 길러 섣달그믐날 닭장문을 열어놓으라고 했다. 도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 봉닭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다른 닭들이 따르며 커다란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다음 날 바위 틈새에는 천년 묵은 지네와 닭들이 죽어 있었다. 닭들이 독지네를 쪼아 죽인 것이다. 이후 이 마을을 봉닭에서 따와 봉계마을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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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하동군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어 화를 면한 하동군 진교면
    옛날 고관대작들이 낳은 딸들이 한쪽 눈이 머는 일이 일어났다. 원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들은 하동군 이명산 달구봉에서 호수를 발견했다. 호수에는 늙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고, 그 일들은 이무기가 벌인 짓이었다. 사람들이 화철석을 호수에 집어넣자, 견디지 못한 이무기가 물 밖으로 나와 광포바다로 도망쳤다. 사람들은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어주면 못된 짓을 그만두리라 생각하고 마을 이름을 용 진(辰)에 다리 교(橋)를 써서 진교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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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하동군

    걸어오다가 멈춘 갈미봉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는 갈미봉이 있다. 갈미봉은 그 모양이 꼭 물을 마시려는 말을 닮았다하여 갈모봉이라고도 불린다. 갈미봉에 관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낙노국의 번영을 위해 갈미봉을 움직이려 하였으나, 한 여인이 발견하여 지금의 자리에 멈춰섰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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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혜운스님이 창건한 청용사가 있던 마을, 청주 청용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의 청용리는 청용사의 절 이름에 빗대어 마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 청용사는 경주 황룡사 주지인 혜운스님이 창건한 절로, 부처님의 파자를 받아 청용사라 이름 지었다. 과천에 똑같은 이름의 절이 있다가 이곳 청용사가 부흥하면서 쇠퇴했다. 청용사는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번성하였으나 명나라 이여송이 청용사 뒤에 있는 산의 정기를 끊는 바람에 절은 퇴락하였다. 청용사가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 이름을 절의 이름을 따서 청용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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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무장이 영조의 태실을 보호하는 충청북도 청주의 무성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는 ‘무성리(武城里)’라는 마을이 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확산할 때, ‘학도사’라 불리는 풍수가 명당자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자리에 부친의 무덤을 썼다. 그런데 학도사의 꿈에 한 무장(武將)이 나타나 호통을 치면서 형틀에 몸을 묶어 놓고 때렸다. 다음 날 아침에 그곳에 가보니 그 오래된 건물은 왕의 태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무장이 태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무성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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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용이 영웅의 정기를 빼앗아 올라간 충북 청주의 용박골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용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용박’은 용바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을에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소재해 있어서 원래는 ‘용바위골’로 부르다가 ‘용박골’이 되었다. 옛날 영웅이 되기 위해 용박골에 한 무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용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해 결국 무사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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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 과천 관문동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官門洞)은 과천고을의 관문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삼남지방의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려면 다섯 번의 문세(門稅)를 내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이 관문동에 있는 과천 동헌 앞이었다. 그 외에 남태령 고개, 노량진, 남대문, 육조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인 통과세를 거둬가는 자들이 많았다. 현재 관문동에는 정부 제2청사가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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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부터 삼남(경상, 전라, 충청)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으로 행차하실 때 지나셨던 효행의 길로써 유서가 깊은 길이다. 남태령 옛길 따라 과천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탐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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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고려 충신 조윤이 오른 경기도 과천의 망경대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은 마을을 흐르는 내가 맑아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막계동 뒷산인 청계산도 같은 의미다. 청계산의 주봉에 해당하는 석대(石臺) 이름이 ‘망경대(望京臺)’인데, 고려말 충신인 조윤(趙胤)이 오른 이후 ‘만경(萬景)’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망경(望京)’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를 향한 조윤의 충성심을 지명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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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창군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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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울주군

    원효스님이 도를 닦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도통골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에 ‘도통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님 가운데 한 분인 원효(元曉)가 도를 통한 골짜기라서 불리는 지명이다. 원효는 도통골에서 수행하면서, 장안사에 ‘척판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놓고, 제자들과 함께 기거하였다. 하루는 원효가 척판암에 거주하고 있을 때, 한 제자에게 체에다 물을 떠 오라고 하였다. 제자는 체에다 물을 담아 원효에게 갔다. 원효는 체에 담긴 물을 공중에 뿌렸는데, 오색구름이 일어나더니 불국사 대웅전에 난 불을 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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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죽은 용이 썩어 냄새가 나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구리내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동대리(銅大里)’라는 마을이 소재한다. 동대리의 옛 지명은 ‘동천(銅川)’으로 한글로 표기하면 ‘구리내’다. 당나라군이 백제를 공격하였을 때, 백제군은 당나라군에 맞서 항전하였다. 백제군의 항전으로 당나라군이 전멸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계룡산에 가서 기도하였다. 하루는 그의 꿈에 백발도인이 나타나 백제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금강에 있는 용을 잡아 죽이는 것이었다. 소정방이 낚시로 금강에 사는 용을 잡았는데, 그 용이 떨어진 곳이 현재의 동대리다. 용은 육지에 떨어지면서 썩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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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영덕 침수정
    영덕 침수정은 우리나라 누정 가운데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침수정은 청정한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침수정은 손성을이 1784년(정조 8) 지은 정자이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의미로, 침수정의 유래나 자연 조건을 잘 반영한 누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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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거북의 보은으로 부역이 없어진 마을, 영덕 거무역리
    박제상의 자손인 박세통이 어느 마을 현령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부가 등에 왕(王)자가 새겨진 거북을 잡아 왔다. 기이하게 여긴 박세통이 거북을 사서 바다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삼대에 걸쳐 정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박세통은 물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시중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삼대가 정승이 된 마을이라 하여 부역을 면해주었는데, 이후 부역이 없다하여 ‘거무역’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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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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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장님과 앉은뱅이가 부처님을 만난 연천군 신서면의 불견이 고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에 ‘불견이’ 또는 ‘불현’ 등으로 부르는 고개가 소재한다. 고려시대 제7대 목종 때 심원사에서 큰 종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대광리에 살던 장님 이덕기와 앉은뱅이 박춘식은 시주를 온 스님의 말을 듣고, 3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시주하기를 청하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심원사에서 큰 종을 만들고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 이덕기와 박춘식도 심원사로 가기 위해 “나무대자대비관세음보살”을 외우고 고개를 넘다가 부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고, 다리도 펴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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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수레와 철마가 멈춘 연천 차탄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車灘里)는 수레여울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옛날 고을 원이 수레를 타고 민정을 살피다가 여울에 빠져 죽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망곡산(望哭山)이 있어 고종과 순종황제의 죽음을 애통해했고, 철도중단지점이 있어 애타게 북녘을 향해 기차는 달리고 싶어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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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줄 잘 타는 재인이 줄이 끊어져 죽은 연천 재인폭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古文里)와 재인폭포(才人瀑布)에는 줄을 잘 타는 재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재인의 아내가 자신을 탐내는 사또의 코를 깨물어 코문리라 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고문리로 변했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반대로 예쁜 아내를 둔 마을 사람이 재인과 내기를 했다가 마음이 다급해져 줄을 끊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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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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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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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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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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