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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황룡이 승천하는 등용문의 어등산
    어등산은 자연 지리적으로 등성이 길고 계곡이 깊어 한말 의병들이 지형지물의 전략적 이용이 쉬워 광주지역 의병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어등산에서는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약 3년간 일제의 군경과 110여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룬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폐사지의 흔적으로 보아 한때 광주지역 불교문화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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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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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용아의 숨결이 아른거리는 소촌동
    소촌동은 소촌 1 · 2동 남계(南溪)마을. 선계(仙溪)마을, 금봉산 기슭의 신역(新驛)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2.65㎢이다. 지명 의미상으로 소(所)자가 들어간 땅이름은 동구 소태동 북구 삼소동 등 장인촌의 뜻을 가지고 있어, 이웃마을이 역촌이고 솥머리라는 지명으로 보아 어등산록에 위치한 사찰들과 병부관할의 역촌에서 필요로 하는 대장간 일꾼과 선암장에 내놓을 가내수공품 생산자들이 몰려 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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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영덕 침수정
    영덕 침수정은 우리나라 누정 가운데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침수정은 청정한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침수정은 손성을이 1784년(정조 8) 지은 정자이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의미로, 침수정의 유래나 자연 조건을 잘 반영한 누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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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거북의 보은으로 부역이 없어진 마을, 영덕 거무역리
    박제상의 자손인 박세통이 어느 마을 현령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부가 등에 왕(王)자가 새겨진 거북을 잡아 왔다. 기이하게 여긴 박세통이 거북을 사서 바다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삼대에 걸쳐 정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박세통은 물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시중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삼대가 정승이 된 마을이라 하여 부역을 면해주었는데, 이후 부역이 없다하여 ‘거무역’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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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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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피난 온 인조를 도와준 충청남도 공주시의 조왕동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조왕동(助王洞)’ 또는 ‘조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인조 때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켰다. 인조는 공주시 인근으로 피난을 왔다. 동곡리에 도착해 ‘노숙(盧潚)’이라는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인조가 노숙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이괄의 난이 모두 평정되었다. 한양으로 돌아간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인한 피해들을 모두 복구하고, 자신이 공주로 피난 갔을 때 며칠 동안 따뜻하게 대해주던 노숙과 동곡리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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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바위에서 금비둘기가 날아간 충청남도 공주시의 유구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유구읍이라는 곳이 있다. 유구의 옛 지명은 ‘창말’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창말에 도적 떼가 들어 와 노략질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관군을 보내 도적 떼를 소탕하고, 마을에 수비병 몇백 명을 두었는데, 수비병들은 마을 길을 넓히기로 하였다. 수비병들이 마을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폭약으로 한 바위를 폭파하였다. 그때 금비둘기 한 쌍이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수비병들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지명을 ‘유구’로 바꾸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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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이성계가 지은 불당이 있던 충청남도 공주시의 불당마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경천리(敬天里)라는 마을이 있다. 경천리를 ‘불당리(佛堂里)’ 또는 ‘불당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찾아온 마을이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의 도읍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가 계룡산 일대에 도읍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계룡산 일대에 새로운 도읍지를 짓기 위한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도읍지 건설 현장에 내려온 이성계의 꿈에 계룡산 산신령이 나타나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라며, 딸에게 길을 안내해 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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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시 대백과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세종

    세종시 대백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탄생 전후 역사문화자원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제작한 '세종시 대백과'이다. 관련 문헌과 100인의 구술조사를 통해서 세종시의 모든 것을 개괄했다. 역사, 문화와 예술, 산업과 경제, 인물, 교육, 교통, 비전까지 7개 부분에 걸쳐 과거부터 미래까지 세종시를 조망할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세종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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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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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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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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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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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4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3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3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2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2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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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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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 동암리의 마을별 지명 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은 통일신라시대에 부유현으로 순천에 속하였다가 현재 12개리로 개편되어 곡성군에 속한다. 목사동면 내 마을엔 절터가 많아 불당골이나 도장마을 같은 이름에 영향을 미쳤다. 평호마을, 고두마을, 궁두마을 등처럼 마을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되거나 유치마을이나 호곡마을처럼 마을 주변의 산세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해져 오는 이름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용암마을, 구룡마을, 용전마을 등 용과 거북이 대나무와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 외에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로 신기한 행적과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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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녹고가 흘린 눈물이 고여서 샘이 된 제주 녹고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는 물이 솟아나는 용천수가 있다. 지역에서는 이 용천수를 용운천(龍雲泉)이라고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보통 ‘녹고천’이라고 부른다. 녹고물을 이야기할 때는 수월봉이 함께 등장한다. 수월봉은 해발 78m의 작은 산으로 제주지역에서는 이러한 산을 오름이라 하는데, 오름에는 분화구가 있는 것이 일반적지만 수월봉에는 분화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녹고물 이야기는 수월봉과 더불어 100가지에서 하나가 부족한 99개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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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백마가 바위로 변한 제주 용머리바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은 용담1동과 용담2동 등 2개의 행정리로 나뉘어있는데, 용암2동 바닷가에는 ‘용머리바위’가 있고 그 주변에는 도로를 따라 카페촌이 형성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용머리바위’에 대한 전설은 힘센 장수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백마를 죽인 이야기와 용이 한라산 신령의 구슬을 훔쳤기에 신령이 화살로 용을 죽인 이야기 등 두 가지가 전한다. 이들 이야기에 투영된 ‘용머리바위’는 완벽하게 용이 되지 못한 미완의 용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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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도채비불을 끄기 위해 마을 이름을 바꾼 제주도 제주시의 한동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한동리’라는 마을이 있다. 한동리의 옛 이름은 ‘궤’, ‘궤이’, ‘괴리’였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괴이리(槐伊里)’다. 150여 년 전 마을에 도채비(도깨비)불이 바다로부터 날아와 불이 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제주 목사가 마을 이름에 ‘괴(槐)자’를 써서 불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에 한수(漢水)를 끌어온다는 의미로 ‘한(漢)’자를 쓰기로 하였다. 또한, 마을이 한라산 백록담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기에, 백록담의 물을 당긴다는 의미에서 동(東)자를 쓰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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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백이정의 부모가 큰 대문 집을 짓고 살았던 남해 대문골
    옛날 성이 백 씨인 한 총각이 머슴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해서 산에서 내려오다가 한 처녀를 만났다. 산에 잠을 자러 간다는 처녀의 말에 총각은 처녀를 데리고 주인집으로 와서 재워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부부가 되었다. 아들딸 낳고 대문 달린 큰 집을 짓고 살던 중, 부인이 자신은 원래 서울 출신이라며 친정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고, 부부는 아들 하나를 외가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아들이 고려 문신 백이정이다. 훗날 큰 대문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백이정의 아버지가 살던 마을을 대문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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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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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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