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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 이황의 숨결이 느껴지는, 안동 고산정
    고산정은 천하의 명산 청량산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마주하는 절경에 위치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제자 금산수가 건립한 고산정은 창건 당시부터 안동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퇴계를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자주 왕래하며 남긴 시가 수백 수에 달한다. 청량산을 유난히 좋아했던 퇴계 이황도 고산정을 자주 왕래하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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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청나라를 멀리하는 절의의 상징, 안동 청원루
    청원루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장동김씨(壯洞金氏)의 시조인 김번(金璠:1479~1544)이 지은 살림집이었는데, 김번의 증손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다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자 조상의 고향인 안동 풍산읍 소산리의 종택으로 내려와 ‘청원루’란 현판을 내결고 은거하였다. ‘청원루’라는 정자이름은 ‘청나라를 멀리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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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전주유씨 강학처, 안동 삼산정
    삼산정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94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4호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유정원(1703∼1761)이 1750년(영조 26)경에 건립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삼산정이라는 정자명은 창건자 유정원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그의 호는 그의 집 앞산의 세 개의 봉우리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유정원의 덕행을 기리며 자손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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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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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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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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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렀던 경기도 의정부
    경기도 북부에는 서울 북쪽의 관문 도시로 알려진 의정부가 있다. 의정부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며, 조선 시대 최고의 행정 기관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정 기관의 명칭이 도시 이름이 된 까닭은 태종 이방원과 그의 아버지였던 태조 이성계와 연관되어 있다. 조선 초 이방원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그러자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났고, 방원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사신을 보낸다. 그러나 크게 화가 났던 태조는 보내는 사신들 모두 죽여버렸다. 이후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돌린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의정부 지역에 머물게 된다. 그때 조정의 대신들이 이곳으로 와서 태조에게 업무를 보고했다고 하여, 이 지역을 ‘의정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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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군마 목장에서 유래된 의정부 녹양동과 군마 목장 녹양평
    경기도 의정부시 최북단에 위치한 녹양동은 조선시대 군마 사육 목장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녹양이란 지명은 『고려사』, 『보한집』, 『조선왕조실록』 등에 등장한다. 군마 목장은 조선왕조 개국 초기인 1406년에 경기도 시흥군에서 녹양동으로 옮겨졌다. 군마 목장이 설치된 이후 태종을 비롯해 여러 임금이 녹양동으로 거둥하여 강무장으로 활용한다. 현재 녹양동에 예전에 군마 목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녹양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말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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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하금오리의 지명 변천과 연주현씨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는 금곡리와 서오리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것으로, 상금오리․중금오리․하금오리로 나뉜다. 하금오리는 6.25 전쟁 이전까지 연주현씨 세거지였다. 하금오리에 소림사를 비롯한 여러 개의 절이 들어서면서 절동네로 이름이 바뀐다. 마을 주민들은 본래의 동명인 하금오리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동네에 꽃을 심고 꽃동네로 홍보하여 현재는 하금오리보다 꽃동네로 널리 알려졌다. 하금오리에서는 음력 10월 1일 산치성을 드리는데,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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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입구에 돌을 묻으면 부자가 된다고?!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전북 >정읍시

    마을 입구에 돌을 묻으면 부자가 된다고?!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장학리의 '장재동'에는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백 년 전 장학리에는 장재라는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염불을 외우며 장재의 집에 시주를 청했다. 고약한 성격의 장재는 스님의 바랑에 모래를 집어넣고, 머리에 대쪽을 씌워 창피를 주었다. 수모를 겪은 스님은 장재에게 더 부자가 될 수 있다며, 옛집에 묻혀 있는 두 개의 돌을 마을 입구에 묻으라고 했다. 장재는 스님을 말을 따랐고, 이후 장재 부부는 원인 모를 병을 앓다 죽고 말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장재가 돌을 묻었다고 하여 이 마을을 '장재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 테마스토리 전북 >고창군

    뱀 알로 아버지의 병을 고친 고창 뱀내골의 달래
    옛날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 뱀내골에는 늙은 아버지와 달래라는 열두 살짜리 딸이 살았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여러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달래는 새벽으로 절에 다니며 아버지 병을 고쳐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노인이 나타나 버드나무 아래 뱀알을 파내서 끓여 먹이면 낫는다고 했다. 달래는 꿈에서 시킨 대로 해서 아버지의 병이 완쾌되었다. 이후 냇가에 빨래하러 갔더니 뱀이 우글거렸는데, 꿈에서 구렁이가 구해줘서 고맙다며 내의 뱀들은 떠날 거라고 했다. 이후 마을에서는 이 내를 뱀내, 이 골짜기를 뱀내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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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진안군

    호랑이로 둔갑해 개를 잡은 효자, 진안 범바위
    옛날 진안군 용담면 범바위 마을에 김효자가 살았다. 하루는 노모가 개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 개가 없는 김효자는 친구의 둔갑술 책을 빌려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 왔다. 이후 노모가 개고기를 다 먹을 즈음이면 김효자는 어김없이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 왔다. 이를 의심한 부인이 어느 날 밤 몰래 따라갔다가 김효자가 둔갑술 책을 보고 광에서 호랑이로 둔갑한 것을 봤다. 부인은 놀라서 김효자가 개를 잡으러 간 사이에 책을 불태웠다. 김효자는 책이 없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마을 주변을 맴돌다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범바위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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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4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3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3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2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기 >동두천시

    2화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테마스토리 경남 >거창군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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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울산 >울주군

    원효스님이 도를 닦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도통골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에 ‘도통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님 가운데 한 분인 원효(元曉)가 도를 통한 골짜기라서 불리는 지명이다. 원효는 도통골에서 수행하면서, 장안사에 ‘척판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놓고, 제자들과 함께 기거하였다. 하루는 원효가 척판암에 거주하고 있을 때, 한 제자에게 체에다 물을 떠 오라고 하였다. 제자는 체에다 물을 담아 원효에게 갔다. 원효는 체에 담긴 물을 공중에 뿌렸는데, 오색구름이 일어나더니 불국사 대웅전에 난 불을 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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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죽은 용이 썩어 냄새가 나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구리내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동대리(銅大里)’라는 마을이 소재한다. 동대리의 옛 지명은 ‘동천(銅川)’으로 한글로 표기하면 ‘구리내’다. 당나라군이 백제를 공격하였을 때, 백제군은 당나라군에 맞서 항전하였다. 백제군의 항전으로 당나라군이 전멸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계룡산에 가서 기도하였다. 하루는 그의 꿈에 백발도인이 나타나 백제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금강에 있는 용을 잡아 죽이는 것이었다. 소정방이 낚시로 금강에 사는 용을 잡았는데, 그 용이 떨어진 곳이 현재의 동대리다. 용은 육지에 떨어지면서 썩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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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가 살았던 포항 효자동
    옛날 경북 포항 한 마을에 홀어머니와 효자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어 했다. 아들은 대구로 시집간 누나를 찾아가기로 했다. 밤중에 산길을 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정을 들은 호랑이는 아들을 태워 순식간에 누나에게 데려다주었다. 마침 누나의 집에 홍시가 있어 아들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다. 이후 효자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효자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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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가장 궁금한 포항지명 ‘ 나루끝 ’
    1968년 포항은 국가 기간산업인 포항제철(포스코)을 건설하면서 작은 어촌마을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겪었다. 산업기지 건설과 급속한 도시화는 쌩쌩 달리는 도로로 대변되듯 물길 많은 포항 땅을 아스팔트로 덮어갔다. 학산천로, 양학천로, 삼호로 등이 생겼다. 예전에 강이 흐르던 곳에 있던 나루터가 포항에서는 도심 한가운데로 변해 버렸다. 그것도 나루터의 끝지점인 ‘나루끝’이 이제는 시외버스 경유지가 되었다. 아마 처음 포항 땅을 밟으면 가장 의아하며 궁금한 지명이 나루끝이 아닐까 생각되어 그 나루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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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승려 지명이 세운 포항 보경사
    보경사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번지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래깊은 사찰이다. 사찰 주변에 12개의 폭포가 존재하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보물거울과 관련한 창건설화 두 편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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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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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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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우애 있는 형제가 살았던 군포시 군포1동의 아구랑
    경기도 군포시 군포1동에 ‘아구랑’ 또는 ‘아우랑’ 등으로 부르는 자연마을이 소재해 있다. 아구랑은 '아람다운 언덕의 솟을대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조선시대 선조의 열한 번째 왕자 경평군의 증손자인 ‘혜평군’이 낙향해서 지은 집이 있었기에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한편, 흰 개 두 마리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넘어간 곳이라서, 마을의 지형이 입을 벌리고 있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아구랑이라고 한다는 설도 전한다. 또한 우애 깊은 형제가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아우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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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좋은 형제가 살았던 경기도 군포의 아구랑
    경기도 군포시 군포1동에는 아구랑 마을이 있다. 이곳이 아구랑이란 이름을 갖게 된 까닭은 조선시대 선조의 고손자였던 해평군이 ‘언덕 위 솟을대문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에서 ‘아구랑(阿邱閬)’이라 이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아구랑 마을을 아우랑 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아구랑 마을에 살던 의좋은 형제가 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고, 동생을 아꼈던 형은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난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의좋던 형제가 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우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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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생과 사랑한 경기도 군포의 삼성마을 처녀와 감투봉
    경기도 군포시 군포2동에 ‘삼성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삼성마을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이기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삼성마을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유생과 마을 처녀가 사랑하게 되었다. 유생과 마을 처녀는 달이 떠오르면 달을 향해서 유생의 과거 합격을 정성을 다해서 함께 빌었다. 유생이 장원급제해서 삼성마을로 돌아온 날 삼성마을 처녀를 놓고 호랑이와 용이 겨루었다. 그 모습을 본 처녀가 기절하고, 장원 급제한 유생도 처녀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감투봉을 장원 급제한 벼슬아치의 관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관모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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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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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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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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