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 동암리의 마을별 지명 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은 통일신라시대에 부유현으로 순천에 속하였다가 현재 12개리로 개편되어 곡성군에 속한다. 목사동면 내 마을엔 절터가 많아 불당골이나 도장마을 같은 이름에 영향을 미쳤다. 평호마을, 고두마을, 궁두마을 등처럼 마을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되거나 유치마을이나 호곡마을처럼 마을 주변의 산세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해져 오는 이름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용암마을, 구룡마을, 용전마을 등 용과 거북이 대나무와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 외에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로 신기한 행적과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렀던 경기도 의정부
    경기도 북부에는 서울 북쪽의 관문 도시로 알려진 의정부가 있다. 의정부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며, 조선 시대 최고의 행정 기관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정 기관의 명칭이 도시 이름이 된 까닭은 태종 이방원과 그의 아버지였던 태조 이성계와 연관되어 있다. 조선 초 이방원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그러자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났고, 방원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사신을 보낸다. 그러나 크게 화가 났던 태조는 보내는 사신들 모두 죽여버렸다. 이후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돌린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의정부 지역에 머물게 된다. 그때 조정의 대신들이 이곳으로 와서 태조에게 업무를 보고했다고 하여, 이 지역을 ‘의정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군마 목장에서 유래된 의정부 녹양동과 군마 목장 녹양평
    경기도 의정부시 최북단에 위치한 녹양동은 조선시대 군마 사육 목장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녹양이란 지명은 『고려사』, 『보한집』, 『조선왕조실록』 등에 등장한다. 군마 목장은 조선왕조 개국 초기인 1406년에 경기도 시흥군에서 녹양동으로 옮겨졌다. 군마 목장이 설치된 이후 태종을 비롯해 여러 임금이 녹양동으로 거둥하여 강무장으로 활용한다. 현재 녹양동에 예전에 군마 목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녹양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말 동상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하금오리의 지명 변천과 연주현씨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는 금곡리와 서오리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것으로, 상금오리․중금오리․하금오리로 나뉜다. 하금오리는 6.25 전쟁 이전까지 연주현씨 세거지였다. 하금오리에 소림사를 비롯한 여러 개의 절이 들어서면서 절동네로 이름이 바뀐다. 마을 주민들은 본래의 동명인 하금오리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동네에 꽃을 심고 꽃동네로 홍보하여 현재는 하금오리보다 꽃동네로 널리 알려졌다. 하금오리에서는 음력 10월 1일 산치성을 드리는데,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지명설화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호랑바우
    옛날엔 바위 밑에 호랑이가 많았다. 어느 날 나물 뜯으러 어느 골짜기를 가니까 아주 예쁜 새끼 호랑이 두 마리가 있어서 바구니에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 후 둥지를 틀어놓고 막아 놓았다. 밤이 되자 호랑이가 와서 자기 새끼를 모두 데려갔다. 이튿날 다시 그 바위를 찾아가자 바위 꼭대기에서 호랑이가 어흥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백이정의 부모가 큰 대문 집을 짓고 살았던 남해 대문골
    옛날 성이 백 씨인 한 총각이 머슴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해서 산에서 내려오다가 한 처녀를 만났다. 산에 잠을 자러 간다는 처녀의 말에 총각은 처녀를 데리고 주인집으로 와서 재워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부부가 되었다. 아들딸 낳고 대문 달린 큰 집을 짓고 살던 중, 부인이 자신은 원래 서울 출신이라며 친정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고, 부부는 아들 하나를 외가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아들이 고려 문신 백이정이다. 훗날 큰 대문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백이정의 아버지가 살던 마을을 대문골이라고 불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남 >아산시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에 속한 '풍기동'에는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시대 때 마을에 '기득'과 '풍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부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한편 남편 기득은 문주왕의 명령으로 나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풍순은 먹을 것이 없어 이웃 마을로 음식을 구하러 갔다. 그때 개 한 마리가 풍순 앞에 나타나 보리밥을 토하자 풍순은 이를 주워담아 깨끗이 씻어 시부모님께 드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쳤고, 풍순은 죄를 말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벼락이 떨어져 황금이 담긴 바위를 깨뜨렸다. 이후 풍순은 걱정없이 시부모를 봉양했다.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강씨의 재산을 물려받은 이간이 살았던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외암리가 소재해 있다. 외암리는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리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흘러서 지명이 생긴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조선시대 후기 학자인 이간(李柬)의 호를 따서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옛날 송악에는 목씨와 강씨들이 먼저 들어와 살았고, 예안이씨들이 조선시대 단종 무렵에 들어오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을에서 부자로 소문난 강씨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모든 재산을 이씨에게 물려주라고 한다. 강씨는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이씨를 찾았는데, 그가 바로 이간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마을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회룡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 절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온 황룡이 살고 있었다. 황룡은 절터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며 3년을 살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하루는 세종대왕과 그 일행이 온양온천을 가는 도중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농부로 변신하여 도와주었다. 그러나 절터를 벗어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탓에 이무기로 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대왕이 절을 다시 짓게 했고, 하늘에서는 황룡에게 다시 절터로 가서 지내도록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황룡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념해 회룡리(回龍里)라 이름 붙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3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3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2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2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 1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영월군

    1화 숯가마에 물을 뿌려 망한 부자가 살았던 강원도 영월의 숯가마
    강원도 영월군 연하리에는 ‘숯가마’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숯을 굽는 ‘숯가마’가 있었기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숯가마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영월군에서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손님들이 빈번하게 찾았다. 손님 접대가 힘들었기에 부잣집 아녀자가 스님의 말을 듣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 손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밭을 논으로 바꾼 것은 숯가마에 물을 뿌려 불을 끈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밀양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3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옛날 밀양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모두 죽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어느 해, 소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소를 부렸다. 하지만 소를 너무 심하게 부린 탓에 과로한 소 두 마리가 다 죽고 말았다. 그제야 잘못을 뉘우친 마을 사람들은 소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이라 불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논밭 갈다 죽은 소를 언덕에 묻어준 밀양 우곡마을
    우곡(牛谷)마을은 경상북도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의 자연마을로 해발 674m의 만어산과 해발 640.1m의 구천산 사이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우곡(牛谷)마을은 우곡리 한 가운데 있는 중심마을로 우실·웁실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 우곡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도 소 돌림병이 돌아 몇 년 동안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면 수확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소 두 마리가 나타나 마을에서는 돌아가면서 소를 부려 밭을 갈았는데 소가 너무 힘들어 두 마리가 동시에 죽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스스로 ‘우곡(牛谷)마을’이라 불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임진왜란 때 충효열 삼강이 실현된 밀양 삼강동
    임진왜란 때, 손인갑과 노개방은 의병장으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손인갑의 아들 손약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싸우다 또한 전사했다. 노개방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이들은 모두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일대에서 태어났다. 선조는 삼강오륜 중 충효열을 실현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이 마을을 삼강동이라고 이름 내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피난 온 인조를 도와준 충청남도 공주시의 조왕동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조왕동(助王洞)’ 또는 ‘조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인조 때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켰다. 인조는 공주시 인근으로 피난을 왔다. 동곡리에 도착해 ‘노숙(盧潚)’이라는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인조가 노숙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이괄의 난이 모두 평정되었다. 한양으로 돌아간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인한 피해들을 모두 복구하고, 자신이 공주로 피난 갔을 때 며칠 동안 따뜻하게 대해주던 노숙과 동곡리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바위에서 금비둘기가 날아간 충청남도 공주시의 유구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유구읍이라는 곳이 있다. 유구의 옛 지명은 ‘창말’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창말에 도적 떼가 들어 와 노략질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관군을 보내 도적 떼를 소탕하고, 마을에 수비병 몇백 명을 두었는데, 수비병들은 마을 길을 넓히기로 하였다. 수비병들이 마을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폭약으로 한 바위를 폭파하였다. 그때 금비둘기 한 쌍이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수비병들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지명을 ‘유구’로 바꾸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이성계가 지은 불당이 있던 충청남도 공주시의 불당마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경천리(敬天里)라는 마을이 있다. 경천리를 ‘불당리(佛堂里)’ 또는 ‘불당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찾아온 마을이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의 도읍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가 계룡산 일대에 도읍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계룡산 일대에 새로운 도읍지를 짓기 위한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도읍지 건설 현장에 내려온 이성계의 꿈에 계룡산 산신령이 나타나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라며, 딸에게 길을 안내해 주라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성남 스토리여행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성남시

    성남 스토리여행
    성남지역의 지명, 설화, 전설, 역사, 문화유산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 경기도 성남은 예로부터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 대표적인 옛길인 ‘영남대로’와 영남대로 주변에 산재한 이야기를 엮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용인의 설화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용인시

    용인의 설화
    경기도 용인지역을 기반으로 문헌에 산재한 설화들을 수집·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전설, 지명, 명당, 효행, 인물 편으로 분류하고, 특정 지역이나 시대를 소재로 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민담은 별도로 정리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강화도 온라인 고지도

    출처 :인천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인천 >강화군

    강화도 온라인 고지도
    강화도 내 고려 시대의 흔적을 담아낸 온라인 전자 지도이다. 인천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를 만큼 유물자원이 풍부하다. 고려 시대의 강화(강도)의 지명, 궁궐, 사찰, 사적지 등과 관련된 위치정보 및 설명을 찾을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