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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용두사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용두사 철당간
    2025년 대학생 웹툰&애니메이션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지역N문화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의 충북 청주' 콘텐츠를 바탕으로,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인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의 역사와 그에 담긴 설화를 웹툰 형식으로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창작 작품입니다. *관련 링크 : https://ncms.nculture.org/origin-of-place-names/story/4713
  • 테마스토리

    [지역대학 연계 지역N문화 맞춤형 콘텐츠] 무덤에 새긴 그리움: 600년의 기다림
    본 영상은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해 한성대학교·성북문화원·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에서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창작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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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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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 과천 관문동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官門洞)은 과천고을의 관문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삼남지방의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려면 다섯 번의 문세(門稅)를 내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이 관문동에 있는 과천 동헌 앞이었다. 그 외에 남태령 고개, 노량진, 남대문, 육조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인 통과세를 거둬가는 자들이 많았다. 현재 관문동에는 정부 제2청사가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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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부터 삼남(경상, 전라, 충청)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으로 행차하실 때 지나셨던 효행의 길로써 유서가 깊은 길이다. 남태령 옛길 따라 과천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탐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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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고려 충신 조윤이 오른 경기도 과천의 망경대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은 마을을 흐르는 내가 맑아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막계동 뒷산인 청계산도 같은 의미다. 청계산의 주봉에 해당하는 석대(石臺) 이름이 ‘망경대(望京臺)’인데, 고려말 충신인 조윤(趙胤)이 오른 이후 ‘만경(萬景)’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망경(望京)’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를 향한 조윤의 충성심을 지명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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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두 하천 이야기와 물결 따라 흐르는 역사
    현존하는 지리지 및 고지도가 존재하는 조선시대 이후 굴포천을 기준으로 동쪽인 현재의 부천 지역에는 농업에 필요한 용수를 가두는 제언(堤堰) 등의 시설이 없어 하천의 물길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고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굴포천의 제2지류인 여월천은 제3지류인 베르네천, 고리울천, 여월천의 물길을 밭아 들이면서 과거 곡창지대였던 부평평야의 일부인 주화곶면, 상오정면 지역 대부분 농토를 적시고 마을의 형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여월천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한 수리관개사업과 경지정리로 원래의 하천 모습은 크게 변하였으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원래의 물줄기를 찾아보기 어려워 근대 측량 기술로 제작된 일제강점기 1919년의 지도를 활용하여 여월천과 그 지류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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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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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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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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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혜운스님이 창건한 청용사가 있던 마을, 청주 청용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의 청용리는 청용사의 절 이름에 빗대어 마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 청용사는 경주 황룡사 주지인 혜운스님이 창건한 절로, 부처님의 파자를 받아 청용사라 이름 지었다. 과천에 똑같은 이름의 절이 있다가 이곳 청용사가 부흥하면서 쇠퇴했다. 청용사는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번성하였으나 명나라 이여송이 청용사 뒤에 있는 산의 정기를 끊는 바람에 절은 퇴락하였다. 청용사가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 이름을 절의 이름을 따서 청용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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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무장이 영조의 태실을 보호하는 충청북도 청주의 무성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는 ‘무성리(武城里)’라는 마을이 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확산할 때, ‘학도사’라 불리는 풍수가 명당자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자리에 부친의 무덤을 썼다. 그런데 학도사의 꿈에 한 무장(武將)이 나타나 호통을 치면서 형틀에 몸을 묶어 놓고 때렸다. 다음 날 아침에 그곳에 가보니 그 오래된 건물은 왕의 태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무장이 태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무성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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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용이 영웅의 정기를 빼앗아 올라간 충북 청주의 용박골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용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용박’은 용바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을에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소재해 있어서 원래는 ‘용바위골’로 부르다가 ‘용박골’이 되었다. 옛날 영웅이 되기 위해 용박골에 한 무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용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해 결국 무사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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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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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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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횡성군

    호랑바우
    옛날엔 바위 밑에 호랑이가 많았다. 어느 날 나물 뜯으러 어느 골짜기를 가니까 아주 예쁜 새끼 호랑이 두 마리가 있어서 바구니에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 후 둥지를 틀어놓고 막아 놓았다. 밤이 되자 호랑이가 와서 자기 새끼를 모두 데려갔다. 이튿날 다시 그 바위를 찾아가자 바위 꼭대기에서 호랑이가 어흥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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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장님과 앉은뱅이가 부처님을 만난 연천군 신서면의 불견이 고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에 ‘불견이’ 또는 ‘불현’ 등으로 부르는 고개가 소재한다. 고려시대 제7대 목종 때 심원사에서 큰 종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대광리에 살던 장님 이덕기와 앉은뱅이 박춘식은 시주를 온 스님의 말을 듣고, 3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시주하기를 청하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심원사에서 큰 종을 만들고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 이덕기와 박춘식도 심원사로 가기 위해 “나무대자대비관세음보살”을 외우고 고개를 넘다가 부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고, 다리도 펴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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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수레와 철마가 멈춘 연천 차탄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車灘里)는 수레여울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옛날 고을 원이 수레를 타고 민정을 살피다가 여울에 빠져 죽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망곡산(望哭山)이 있어 고종과 순종황제의 죽음을 애통해했고, 철도중단지점이 있어 애타게 북녘을 향해 기차는 달리고 싶어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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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줄 잘 타는 재인이 줄이 끊어져 죽은 연천 재인폭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古文里)와 재인폭포(才人瀑布)에는 줄을 잘 타는 재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재인의 아내가 자신을 탐내는 사또의 코를 깨물어 코문리라 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고문리로 변했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반대로 예쁜 아내를 둔 마을 사람이 재인과 내기를 했다가 마음이 다급해져 줄을 끊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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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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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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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하늘에서 복숭아가 떨어진 마을, 인제 천도리
    천도리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서화면 소재지이다. 천도리는 천도 또는 천도촌으로 불리다가 1900년대 초에 현재와 같이 천도리라 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하늘에서 커다란 복숭아가 떨어진 곳이 길지라고 생각하여 하나둘 모이다 보니 마을을 이루었다. 그래 주변 사람들이 ‘하늘에서 복숭아가 떨어진 마을’을 강조하면서 현재와 같이 천도(天桃)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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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한국 1호 람샤르습지 용늪이 있는 인제 대암산
    대암산은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북면과 양구군 동면·해안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대암산 정상부근에는 1.06㎢의 고원습원이 있는데, 여기에는 큰 용늪과 작은 용늪이 있다. 대암산 용늪을 신성한 곳으로 믿는 인근의 인제군 및 양구군 주민들은 날이 가물 때면 이곳 용늪에서 정성을 드렸다. 지금은 용늪을 비롯한 대암산 고원습원에 오르려면 탐방신청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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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호랑이에게 물려간 여인을 화장한 인제 화장터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화장터는 원래 큰살두라고 불렀던 골짜기다. 부부가 사는 화전민 부락에 호랑이가 와서 아내를 물고 갔다. 남편은 아내를 찾아 나섰는데 아내는 호랑이에게 모두 먹히고 머리뼈만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나무를 모아 남은 유골을 화장을 하고 장사를 지냈다. 그때부터 그곳을 화장터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이야기가 많다.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으면 그곳에 묘를 쓰는데 그런 무덤을 호식총이라 한다. 이 이야기는 호식총을 쓸 때 화장했다고 하여 화장터라는 지명이 생긴 내력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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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송 지명유래 마을지

    출처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북 >청송군

    청송 지명유래 마을지
    경북 청송군의 지역민의 역사, 문화의 요람이자 삶의 터전인 마을의 지명유래와 그와 얽힌 이야기를 수집한 책이다. 총 8개 읍면, 86개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 등을 수록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배경이 된 주산지, 절골, 현비암과 같은 명소를 찾아볼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입향조와 전란의 전설이 서린 곳, 청송 영모정과 갈전당
    영모정과 갈전당은 안동임씨 청송 입향조 조선 중기 유학자 갈전 임동을 추모하는 정자와 재실이다. 영모정은 3칸 규모로, 앞쪽 기둥에 주련과 이해팔경 편액이 걸려있으며 갈전당에는 임동의 입향 과정과 피난 역사를 기록한 유허비가 있다. 임진왜란 후 배나무를 심어 '이전'이라는 지명이 되었으나, 2019년 주산지가 소재한 마을이라 하여 주산지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때 읍면의 호칭도 부동면에서 주왕산면으로 함께 바꾸었다. 두 건축물은 지역의 토 전승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청송의 향토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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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다섯 가구가 살면 망하는 청송 오망가
    옛날 경북 청송 한 마을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부지런히 일한 부부는 부자가 되었다. 부부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우애가 좋지 못했다. 부부가 죽자 재산은 두 아들만이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아들들은 재산을 탕진했다. 마침 도박으로 돈을 번 세 가구가 상월리로 이사를 와 모두 다섯 가구가 되었다. 그러자 마을에는 가뭄에 홍수가 들어 살 수가 없었다. 이후 마을 가구 수가 다섯이 되면 재앙이 생겨 마을이 망했다고 하여, ‘오망가’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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