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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세종시 대백과

    출처 :대전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세종

    세종시 대백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탄생 전후 역사문화자원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제작한 '세종시 대백과'이다. 관련 문헌과 100인의 구술조사를 통해서 세종시의 모든 것을 개괄했다. 역사, 문화와 예술, 산업과 경제, 인물, 교육, 교통, 비전까지 7개 부분에 걸쳐 과거부터 미래까지 세종시를 조망할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세종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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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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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백이정의 부모가 큰 대문 집을 짓고 살았던 남해 대문골
    옛날 성이 백 씨인 한 총각이 머슴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해서 산에서 내려오다가 한 처녀를 만났다. 산에 잠을 자러 간다는 처녀의 말에 총각은 처녀를 데리고 주인집으로 와서 재워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부부가 되었다. 아들딸 낳고 대문 달린 큰 집을 짓고 살던 중, 부인이 자신은 원래 서울 출신이라며 친정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고, 부부는 아들 하나를 외가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아들이 고려 문신 백이정이다. 훗날 큰 대문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백이정의 아버지가 살던 마을을 대문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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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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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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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지명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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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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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밀양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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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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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옛날 밀양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모두 죽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어느 해, 소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소를 부렸다. 하지만 소를 너무 심하게 부린 탓에 과로한 소 두 마리가 다 죽고 말았다. 그제야 잘못을 뉘우친 마을 사람들은 소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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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논밭 갈다 죽은 소를 언덕에 묻어준 밀양 우곡마을
    우곡(牛谷)마을은 경상북도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의 자연마을로 해발 674m의 만어산과 해발 640.1m의 구천산 사이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우곡(牛谷)마을은 우곡리 한 가운데 있는 중심마을로 우실·웁실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 우곡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도 소 돌림병이 돌아 몇 년 동안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면 수확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소 두 마리가 나타나 마을에서는 돌아가면서 소를 부려 밭을 갈았는데 소가 너무 힘들어 두 마리가 동시에 죽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스스로 ‘우곡(牛谷)마을’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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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임진왜란 때 충효열 삼강이 실현된 밀양 삼강동
    임진왜란 때, 손인갑과 노개방은 의병장으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손인갑의 아들 손약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싸우다 또한 전사했다. 노개방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이들은 모두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일대에서 태어났다. 선조는 삼강오륜 중 충효열을 실현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이 마을을 삼강동이라고 이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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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녹고가 흘린 눈물이 고여서 샘이 된 제주 녹고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는 물이 솟아나는 용천수가 있다. 지역에서는 이 용천수를 용운천(龍雲泉)이라고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보통 ‘녹고천’이라고 부른다. 녹고물을 이야기할 때는 수월봉이 함께 등장한다. 수월봉은 해발 78m의 작은 산으로 제주지역에서는 이러한 산을 오름이라 하는데, 오름에는 분화구가 있는 것이 일반적지만 수월봉에는 분화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녹고물 이야기는 수월봉과 더불어 100가지에서 하나가 부족한 99개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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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백마가 바위로 변한 제주 용머리바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은 용담1동과 용담2동 등 2개의 행정리로 나뉘어있는데, 용암2동 바닷가에는 ‘용머리바위’가 있고 그 주변에는 도로를 따라 카페촌이 형성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용머리바위’에 대한 전설은 힘센 장수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백마를 죽인 이야기와 용이 한라산 신령의 구슬을 훔쳤기에 신령이 화살로 용을 죽인 이야기 등 두 가지가 전한다. 이들 이야기에 투영된 ‘용머리바위’는 완벽하게 용이 되지 못한 미완의 용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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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도채비불을 끄기 위해 마을 이름을 바꾼 제주도 제주시의 한동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한동리’라는 마을이 있다. 한동리의 옛 이름은 ‘궤’, ‘궤이’, ‘괴리’였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괴이리(槐伊里)’다. 150여 년 전 마을에 도채비(도깨비)불이 바다로부터 날아와 불이 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제주 목사가 마을 이름에 ‘괴(槐)자’를 써서 불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에 한수(漢水)를 끌어온다는 의미로 ‘한(漢)’자를 쓰기로 하였다. 또한, 마을이 한라산 백록담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기에, 백록담의 물을 당긴다는 의미에서 동(東)자를 쓰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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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천자가 태어난 창원 천자봉
    천자봉(天子峯)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죽곡동·풍호동에 걸쳐있는 해발 506m의 산이다. 천자(天子)는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를 말하는데, 보통 황제(皇帝)를 가리킨다. 이러한 천자가 이곳 산에서 태어났으므로 천자봉이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연못에 살던 이무기가 명나라 태조 주원장으로 환생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천자봉’이라 불렀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곧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있는 산이 ‘천자’와 관련된 그 무엇이 있다고 믿기에 그것을 확대 해석하여 ‘천자봉’이라 명명(命名)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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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머슴과 혼인하여 일가를 이룬 오동, 창원시 오동동
    옛날 진주의 최대감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딸 오동이 있었다. 그런데 오동이 집안 머슴 돌쇠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실을 안 최대감은 둘을 광에 가두었다. 최 대감의 부인이 딱하게 여겨 노자와 패물을 준 후, 도망쳐 살도록 했다. 오동과 돌쇠는 마산 작은 포구에 도착해 살림을 차렸다. 돌쇠는 옹기를 구워 팔아 꽤 많은 돈을 모았고 오동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 부부는 돈을 주고 참봉 벼슬을 사서 아들에게 성을 물려주었다. 아들은 잘 자라 장원급제를 했다. 부모님께 자신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오동은 몇십 년 만에 식구들과 진주로 찾아갔고, 최대감과 눈물의 화해를 했다. 이 사실이 마을에 퍼지면서 그 마을을 ‘오동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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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창원 웅산
    웅산(熊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에 있는 해발 710m의 산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산은 여러 마을과 닿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웅산 또한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과 진해구 자은동·소사동 마을과 접해 있으며 ‘곰산’, ‘곰메’, ‘곰실바위’, ‘시루봉’, ‘시루바위’, ‘천자봉’ 등으로 불린다. 웅산의 지명유래는 산봉우리의 바위 모양이 마치 포효하는 곰처럼 생겼으므로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웅산(熊山)이라 한 것이다. 웅산과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과 조선의 태조 이성계 탄생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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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5건)
  • 지방문화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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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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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다섯 무사가 내려와 자라바위 목을 자른 진주 오무마을
    경남 진주 명석면 오미리의 자연마을 오무에는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하루는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본 후,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자라바위 목을 칠 장사를 구하기 위해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바위의 목을 치도록 했다. 이후 마을은 잘살게 되었다. 다섯 무사나 내려왔다고 마을 이름을 오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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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한겨울 숭어를 구해온 효자 이돌대, 거제시 효촌
    옛날 거제시 연초면에 이돌대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병든 어머니가 숭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이돌대는 숭어를 구하기 위해 통영까지 갔다가 빈손으로 배에 올랐다. 그때 숭어 한 마리가 갑판에 떨어졌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돌대는 겨울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 숭어를 잡았다. 마침 배에 타고 있던 통제사가 이를 나라에 알려 이돌대에게는 벼슬이 내려졌으며 정려문도 세워졌다. 정려문이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효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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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의 대구(大口) 집산지, 거제 외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 있는 외포(外浦)는 거제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바깥쪽의 갯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대마도가 수평선으로 바라다보여 일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외침을 가장 많이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1971년에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후 1985년 기본 시설을 완공하고, 1993년 정비계획을 수립하였다. 외포항은 전국에서 대구 물량의 30% 이상이 집산하는 남해안 최대의 대구 집산지로, 겨울철 내내 어판장에는 신선한 대구가 가득하다. 새벽 어판장에는 전국에서 대구를 경매받기 위해 찾아온 상인과 수산물 운송 차량이 즐비하다.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생대구에 갖은 양념을 넣고 찐 대구찜은 외포항의 별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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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질아질하게 하룻밤을 보낸 거제 아지랑이
    옛날 한 부인이 한산도로 가기 위해 바닷가에 도착했다. 배를 놓쳐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바위 아래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부인은 다음 날 아침 바위 아래에서 나오다 깜짝 놀랐다. 바로 옆 바위 아래에서 스님이 나온 까닭이다. 스님과 하룻밤을 가까이서 보내 아질아질(=아슬아슬)하다하여 그 마을 이름이 아지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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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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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