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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한자지명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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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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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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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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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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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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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 지방문화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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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3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2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2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1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옥천군

    1화 장 냄새가 나는 충청북도 옥천의 장내마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는 ‘장야리(長夜里)’라는 마을이 있다. 장천마을의 장(長)과 배미의 야(夜)를 따서 ‘장야리’라고 하였다. 장천은 ‘장내’라고도 부르는데, 지명에 관련된 자린고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유명한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담그는데,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파리 세 마리가 장에 앉았다가 날아가버렸다. 구두쇠는 파리를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파리를 쫓던 구두쇠가 장내[長川]마을에 이르러서 그만 파리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천자가 태어난 창원 천자봉
    천자봉(天子峯)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죽곡동·풍호동에 걸쳐있는 해발 506m의 산이다. 천자(天子)는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를 말하는데, 보통 황제(皇帝)를 가리킨다. 이러한 천자가 이곳 산에서 태어났으므로 천자봉이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연못에 살던 이무기가 명나라 태조 주원장으로 환생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천자봉’이라 불렀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곧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있는 산이 ‘천자’와 관련된 그 무엇이 있다고 믿기에 그것을 확대 해석하여 ‘천자봉’이라 명명(命名)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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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머슴과 혼인하여 일가를 이룬 오동, 창원시 오동동
    옛날 진주의 최대감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딸 오동이 있었다. 그런데 오동이 집안 머슴 돌쇠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실을 안 최대감은 둘을 광에 가두었다. 최 대감의 부인이 딱하게 여겨 노자와 패물을 준 후, 도망쳐 살도록 했다. 오동과 돌쇠는 마산 작은 포구에 도착해 살림을 차렸다. 돌쇠는 옹기를 구워 팔아 꽤 많은 돈을 모았고 오동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 부부는 돈을 주고 참봉 벼슬을 사서 아들에게 성을 물려주었다. 아들은 잘 자라 장원급제를 했다. 부모님께 자신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오동은 몇십 년 만에 식구들과 진주로 찾아갔고, 최대감과 눈물의 화해를 했다. 이 사실이 마을에 퍼지면서 그 마을을 ‘오동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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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창원 웅산
    웅산(熊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에 있는 해발 710m의 산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산은 여러 마을과 닿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웅산 또한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과 진해구 자은동·소사동 마을과 접해 있으며 ‘곰산’, ‘곰메’, ‘곰실바위’, ‘시루봉’, ‘시루바위’, ‘천자봉’ 등으로 불린다. 웅산의 지명유래는 산봉우리의 바위 모양이 마치 포효하는 곰처럼 생겼으므로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웅산(熊山)이라 한 것이다. 웅산과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과 조선의 태조 이성계 탄생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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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피난 온 인조를 도와준 충청남도 공주시의 조왕동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조왕동(助王洞)’ 또는 ‘조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인조 때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켰다. 인조는 공주시 인근으로 피난을 왔다. 동곡리에 도착해 ‘노숙(盧潚)’이라는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인조가 노숙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이괄의 난이 모두 평정되었다. 한양으로 돌아간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인한 피해들을 모두 복구하고, 자신이 공주로 피난 갔을 때 며칠 동안 따뜻하게 대해주던 노숙과 동곡리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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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바위에서 금비둘기가 날아간 충청남도 공주시의 유구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유구읍이라는 곳이 있다. 유구의 옛 지명은 ‘창말’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창말에 도적 떼가 들어 와 노략질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관군을 보내 도적 떼를 소탕하고, 마을에 수비병 몇백 명을 두었는데, 수비병들은 마을 길을 넓히기로 하였다. 수비병들이 마을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폭약으로 한 바위를 폭파하였다. 그때 금비둘기 한 쌍이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수비병들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지명을 ‘유구’로 바꾸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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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이성계가 지은 불당이 있던 충청남도 공주시의 불당마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경천리(敬天里)라는 마을이 있다. 경천리를 ‘불당리(佛堂里)’ 또는 ‘불당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찾아온 마을이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의 도읍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가 계룡산 일대에 도읍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계룡산 일대에 새로운 도읍지를 짓기 위한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도읍지 건설 현장에 내려온 이성계의 꿈에 계룡산 산신령이 나타나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라며, 딸에게 길을 안내해 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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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백이정의 부모가 큰 대문 집을 짓고 살았던 남해 대문골
    옛날 성이 백 씨인 한 총각이 머슴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해서 산에서 내려오다가 한 처녀를 만났다. 산에 잠을 자러 간다는 처녀의 말에 총각은 처녀를 데리고 주인집으로 와서 재워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부부가 되었다. 아들딸 낳고 대문 달린 큰 집을 짓고 살던 중, 부인이 자신은 원래 서울 출신이라며 친정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고, 부부는 아들 하나를 외가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아들이 고려 문신 백이정이다. 훗날 큰 대문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백이정의 아버지가 살던 마을을 대문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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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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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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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