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지명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남 >태안군

    차돌바위가 깨져서 재로 변한 마을, 잿말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이곡리에는 잿말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 노랑이 영감이 살았다. 이 영감은 재산이 넉넉함에도 받는 것만 알았지 베푸는 것을 몰랐다. 탁발 온 스님에게 처음 왔는데 왜 빈손으로 왔냐고 할 정도였다. 스님은 선물로 마을에 있는 차돌바위를 깨면 부자가 된다는 비밀을 알려줬다. 영감은 인부를 얻어 바위를 깨게 했는데 바위조각이 떨어지면서 재로 변했다. 인부들은 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갔고, 영감은 그날부터 앓더니 곧 죽고 말았다. 마을 또한 가난한 마을로 변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차돌바위를 깨서 재로 변했기에 그런 것이라며 이 마을을 ‘잿말’이라 불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태안군

    거북이가 용으로 승천한 용해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 효자가 있었다. 하루는 물고기가 먹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낚시질하던 효자는 물고기 대신 거북이를 잡았다. 이후에 계속 효자만 없으면 부엌에 상이 차려졌다. 몰래 살피니 거북이가 여인으로 변하여 밥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효자에게 들킨 거북은 부득이 용이 되어서 승천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마을에서는 정당리 동쪽 바다에서 나온 거북이가 용으로 변하여 승천하였다고 하여 이 동쪽의 바다를 용해라 부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태안군

    형 때문에 명당 효험을 잃은 태안군 태안읍의 파명당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도내리에 ‘파명당’이라 부르는 곳이 소재한다. ‘파명당’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명당자리가 소실된 곳”이라는 의미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지만 도내리에 아들 형제를 둔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형제 가운데 형은 남달리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었다. 노부부도 큰아들 때문에 한시라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반대로 동생은 형과는 달리 효성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남의 일을 자신 일처럼 돕기에 마을 주민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다.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자, 동생은 이름난 지관을 불러 아버지를 좋은 자리에 모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형 때문에 명당자리로서의 효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조마루, 사라지지 않은 마을의 이름
    조마루는 부천 원미산 기슭, 오늘날의 원미동 일대에 있었던 오래된 마을 이름이다.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부천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朝宗里(조종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조마루’가 ‘조종리’로 한자화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침 조(朝)’와 ‘으뜸 종(宗)’이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 ‘조마루’를 억지로 옮긴 표음적 표기였다. 일본은 여러 마을의 고유한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행정화함으로써 언어와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조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기억을 지켰다. ‘조마루’는 ‘조’와 ‘마루’로 이루어지며, ‘마루’는 ‘산마루’나 ‘등마루’처럼 언덕의 으뜸을 뜻한다. 원미산을 중심으로 도당마루, 역곡마루 등 ‘마루’가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부천의 지형이 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의 의미를 곡식 조(粟)로 보고 있다. 과거 밭이 많던 언덕 마을에서 조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조가 심어진 마루’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부천의 농경 환경과 생활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해석이다. 나아가 ‘조마루’는 문자 이전 구어로 불리던 마한 시대 언어의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천이 마한의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마루’는 고대부터 이어진 생활 언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예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종리’로 바뀐 뒤에도 사람들은 본래 이름을 잊지 않았고, 해방 후 자연스럽게 다시 ‘조마루’로 불렀다. 오늘날 ‘조마루 감자탕’ 같은 음식점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가 아니라 지역 기억의 연장선이다. 언덕에서 조를 재배하고 돼지를 길러 먹거리를 이어가던 마을의 삶이 음식 문화 속에 되살아난 것이다. 조마루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사람들의 말과 음식,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름이며, 부천의 농경과 공동체, 언어와 문명이 깃든 삶의 이야기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하마비가 서 있는 부산광역시 양정동의 하마정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화지산(和池山)’이 소재해 있다. 화지산에는 동래 정씨 기세조인 정문도(鄭文道)의 묘소가 있다. 정문도가 유명을 달리하자, 그 아들 정목이 화지산에 묘를 썼다. 그런데 도깨비들이 나타나 목관을 파헤쳤다. 백발노인이 보릿짚이 도깨비들에게는 금빛으로 보이니, 보릿짚으로 목관을 쓰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더 이상 도깨비들이 파헤치지 않았다. 정문도 묘소 앞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장도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부산 >해운대구

    푸른 뱀이 나타난 부산광역시 송정동의 청사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1동에 ‘청사포(靑沙浦)’라 불리는 포구가 소재해 있다. 원래는 푸른 뱀이 나타난 포구라는 의미로 ‘청사포(靑蛇浦)’라 불렀지만, 지명에 뱀[蛇]이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해서 모래 사(沙)로 바꾸었다고 한다. 옛날 청사포 인근 마을에 정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정씨 부부는 금실이 좋아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면 부인은 마을 입구 바위에 올라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 나간 남편이 몇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을 기다리던 정씨 부인 앞에 푸른 뱀 한 마리가 나타나 용궁으로 안내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부산 >기장군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를 묻은 부산광역시 반송동의 개좌골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기장군 철마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부산에 속해 있는 각 진영에 입방군(入防軍)으로 복무를 해야 했다. 당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살던 ‘서홍인(徐弘仁)’도 부산성에서 입방군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노부모를 봉양하기에 집에서 매일같이 24㎞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던 중 부산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개좌산 고갯길 입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불이 나서 서홍인이 위험해지자 그가 길동무 삼아 데리고 다니던 개가 개울물을 묻혀 서홍인 주변에 번지는 불을 껐다. 그런데 개는 연기 속에서 질식해 죽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홍천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2건)
  • 지방문화툰 (1건)
자세히보기
  • 우리 마을에 임금님이 왔었다고요?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홍천군

    우리 마을에 임금님이 왔었다고요?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에는 마을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때 숙종대왕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홍천을 찾았다. 숙종대왕의 일행을 맞이한 청량리 사람들은 올챙이묵과 산에서 따온 벌꿀을 내주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숙종 대왕은 임금이라 말을 못하였지만 한양의 가장 큰 집에 사는 이씨라고만 밝혔다. 청량리 이씨는 한양에 산다던 이씨를 만나기 위해 가장 큰 집인 대궐로 찾아갔다. 대궐에서 만나게 된 이씨에게 꿀단지를 전하였고, 이씨가 사실은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올챙이묵과 꿀로 맺은 인연, 홍천군 청량리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淸凉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미복차림으로 홍천을 찾았던 숙종대왕 일행은 촌로가 내온 올챙이묵을 맛있게 먹고, 산에서 따온 벌꿀까지 대접받았다. 임금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숙종대왕은 한양의 가장 큰집에 사는 이 씨라고만 했다. 촌로는 한양을 찾아 가장 큰 집인 대궐에서 이 씨를 만났고, 꿀단지를 주러 왔다고 했다. 그 이씨가 임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홍천의 청량리가 생긴 유래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남녀 산신의 결혼과 홍천 가리산
    강원도 홍천에 있는 가리산은 산신이 여산신인데 부끄럼을 타서 봉우리 세 개 중 하나는 꼭 가린다고 해서 가리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지체 높은 양반집 딸이 결혼도 못 하고 죽어 조상신에게 부탁하여 가리산의 여신이 되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양반집의 아들이 죽어 가리산을 내놓으라고 와서 산이 점점 황폐해지자 둘이 결혼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용두사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용두사 철당간
    2025년 대학생 웹툰&애니메이션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지역N문화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의 충북 청주' 콘텐츠를 바탕으로,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인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의 역사와 그에 담긴 설화를 웹툰 형식으로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창작 작품입니다. *관련 링크 : https://ncms.nculture.org/origin-of-place-names/story/4713
  • 테마스토리

    [지역대학 연계 지역N문화 맞춤형 콘텐츠] 무덤에 새긴 그리움: 600년의 기다림
    본 영상은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해 한성대학교·성북문화원·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에서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창작 콘텐츠입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거창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7건)
  • 지방문화툰 (2건)
자세히보기
  •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테마스토리 경남 >거창군

    무 맛이 좋아 원님이 산에다 상을 내린 거창 감투봉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에는 무릉리와 접해 있는 해발 518.6m의 산이 있는데, 이 산은 감토산·감투산·감토봉·감투봉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예전에는 이 산을 ‘사임산’이라 불렀으나 거창에 부임한 원님이 대바지에서 생산한 무를 맛보고 상으로 산에 감투를 주었다고 해서 마을에서는 ‘감투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바지에서 생산한 무가 맛있는 까닭은 황강을 따라 흘러온 퇴적물이 이곳 대바지에 많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한겨울 숭어를 구해온 효자 이돌대, 거제시 효촌
    옛날 거제시 연초면에 이돌대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병든 어머니가 숭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이돌대는 숭어를 구하기 위해 통영까지 갔다가 빈손으로 배에 올랐다. 그때 숭어 한 마리가 갑판에 떨어졌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돌대는 겨울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 숭어를 잡았다. 마침 배에 타고 있던 통제사가 이를 나라에 알려 이돌대에게는 벼슬이 내려졌으며 정려문도 세워졌다. 정려문이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효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남해의 대구(大口) 집산지, 거제 외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 있는 외포(外浦)는 거제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바깥쪽의 갯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대마도가 수평선으로 바라다보여 일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외침을 가장 많이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1971년에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후 1985년 기본 시설을 완공하고, 1993년 정비계획을 수립하였다. 외포항은 전국에서 대구 물량의 30% 이상이 집산하는 남해안 최대의 대구 집산지로, 겨울철 내내 어판장에는 신선한 대구가 가득하다. 새벽 어판장에는 전국에서 대구를 경매받기 위해 찾아온 상인과 수산물 운송 차량이 즐비하다.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생대구에 갖은 양념을 넣고 찐 대구찜은 외포항의 별미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거제시

    아질아질하게 하룻밤을 보낸 거제 아지랑이
    옛날 한 부인이 한산도로 가기 위해 바닷가에 도착했다. 배를 놓쳐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바위 아래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부인은 다음 날 아침 바위 아래에서 나오다 깜짝 놀랐다. 바로 옆 바위 아래에서 스님이 나온 까닭이다. 스님과 하룻밤을 가까이서 보내 아질아질(=아슬아슬)하다하여 그 마을 이름이 아지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진주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5건)
  • 지방문화툰 (1건)
자세히보기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다섯 무사가 내려와 자라바위 목을 자른 진주 오무마을
    경남 진주 명석면 오미리의 자연마을 오무에는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하루는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본 후,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자라바위 목을 칠 장사를 구하기 위해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바위의 목을 치도록 했다. 이후 마을은 잘살게 되었다. 다섯 무사나 내려왔다고 마을 이름을 오무라고 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태조 왕건의 꿈 해몽을 잘 해줘서 받은 왕밭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 전쟁 중 잠깐 쉬는 동안 꿈을 꾸었다. 꿈이 하도 기이해서 해몽을 잘한다는 무당이 사는 논산 부적면 부인리로 가서 만났다. 무당은 곧 후삼국을 통일할 꿈이라고 풀이를 했다. 이에 고무된 태조와 부하들은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이후 태조는 꿈풀이를 잘해준 보답으로 무당에게 밭을 하사했는데, 이를 지역 사람들은 왕이 준 밭이라 해서 왕밭이라 했다. 이곳이 충남 논산 광석면 왕전리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은혜갚은 한조, 한골
    옛날 논산시 은지면 방축리에 김 부자가 살았다. 그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았다. 어느 날 곡광에 둥지를 튼 한조를 돌봐준 김부자는 새끼 한조까지 부화해서 보내주었다. 그 후 김부자는 원인 모를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한조가 날아와 약그릇에 열매 하나를 떨구고 갔다. 그 열매가 든 약을 먹은 김 부자는 완쾌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한조가 김 부자를 살렸다며 김 부자가 사는 마을을 한조골이라 불렀고, 이것을 줄여 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허리나 다리가 아프면 개재다리로 오시오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는 개재다리가 있다. 이 다리에는 예부터 허리나 다리가 아픈 사람이 다리를 왕복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망나니 남편과 부지런한 아내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아내가 밭에 거름을 주다가 백사를 보고 놀라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 아내의 꿈에 백사가 노인으로 변하여 나타나 치료 방법을 일러주었고, 아내는 백사 노인의 말대로 개재다리를 오가서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청송 지명유래 마을지

    출처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북 >청송군

    청송 지명유래 마을지
    경북 청송군의 지역민의 역사, 문화의 요람이자 삶의 터전인 마을의 지명유래와 그와 얽힌 이야기를 수집한 책이다. 총 8개 읍면, 86개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 등을 수록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배경이 된 주산지, 절골, 현비암과 같은 명소를 찾아볼 수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입향조와 전란의 전설이 서린 곳, 청송 영모정과 갈전당
    영모정과 갈전당은 안동임씨 청송 입향조 조선 중기 유학자 갈전 임동을 추모하는 정자와 재실이다. 영모정은 3칸 규모로, 앞쪽 기둥에 주련과 이해팔경 편액이 걸려있으며 갈전당에는 임동의 입향 과정과 피난 역사를 기록한 유허비가 있다. 임진왜란 후 배나무를 심어 '이전'이라는 지명이 되었으나, 2019년 주산지가 소재한 마을이라 하여 주산지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때 읍면의 호칭도 부동면에서 주왕산면으로 함께 바꾸었다. 두 건축물은 지역의 토 전승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청송의 향토문화유산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다섯 가구가 살면 망하는 청송 오망가
    옛날 경북 청송 한 마을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부지런히 일한 부부는 부자가 되었다. 부부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우애가 좋지 못했다. 부부가 죽자 재산은 두 아들만이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아들들은 재산을 탕진했다. 마침 도박으로 돈을 번 세 가구가 상월리로 이사를 와 모두 다섯 가구가 되었다. 그러자 마을에는 가뭄에 홍수가 들어 살 수가 없었다. 이후 마을 가구 수가 다섯이 되면 재앙이 생겨 마을이 망했다고 하여, ‘오망가’라고 불렀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