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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북 >제천시

    이황이 청풍군수에게 청해 단양에 속하게 된 제천 옥순봉
    옥순봉(玉筍峯)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위치한 높이 283m의 산으로, 희고 푸른 천여 척의 바위들이 죽순 모양으로 높이 치솟아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옥순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과거에 단양군수였던 이황이 청풍군수를 찾아가 당시 청풍 땅에 속했던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담행정기(島潭行程記)』(1823년)를 쓴 한진호는 유람을 함께한 사람들과 옥순봉의 석벽 위에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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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단양군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구담봉
    구담봉(龜潭峰)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걸쳐 있는 높이 338m의 산이다. 단양팔경 중 제5경으로, ‘단양 구담봉’의 이름으로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담’은 기암절벽 꼭대기의 바위 형상이 거북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담봉의 수려한 경관은 이황, 이이, 김만중, 권섭 등 많은 문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시가나 산문 등으로 기록되었다. 조선시대 문인 이지번은 벼슬을 버리고 구담봉에 은거할 때 칡덩굴을 강 양쪽에 묶고 학처럼 생긴 비학(飛鶴)을 매달아 왕래하여 신선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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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충주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마즈막재
    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에는 마즈막재가 있다. 마즈막재는 계명산과 남산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마즈막재는 산에 접해있어 충주시민들이 등산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마즈막재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계명산의 옛이름인 심항산의 뜻을 우리말로 푼 ‘마수막재’가 변해 마즈막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곳을 넘어 충주 감영으로 가던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충주를 바라보던 곳이어서 마즈막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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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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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이괄에게 쫓겨 임금이 숨은 공주 공산성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둘레 약 2.5km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475년(백제 문주왕 1) 고구려에 쫓겨서 한성으로부터 수도를 옮긴 다음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538년(성왕 16) 부여 사비성으로 거듭 옮길 때까지 5대 63년간 백제 중기의 도읍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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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청양군

    55년 동안 벼를 빻아온 청양군 영양정미소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에 있는 영양정미소는 1962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배석기 씨로 1980년에 영양정미소를 인수했다. 그때로부터 39년간 쌀을 찧어왔다. 한창 때는 곡주들한테 위탁을 받는 일도 있어 전국의 낯선 도시에 쌀을 내려주러 방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이 많지 않다. 벼는 석발기, 현미기, 도정기, 정미기 3단, 미각기, 연미기를 통과해 쌀이 되어 나온다. 이곳으로 길이 날 예정이라 영양정미소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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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보은군

    지역발전의 밑거름이 된 박기종 고가
    박기종 고가는 충청북도 보은에 있는 초가집으로 비룡소라 불리는 마을에 있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건물은 안채와 창고이다. 2010년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박기종은 보은 제일의 부자이고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9개월 만에 5·16군사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끝내 야당을 고집했다. 그의 큰아들 맹호는 우리나라 출판계를 선도한 민음사를 창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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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단양군

    중부와 남부 형태가 결합된 단양 조덕수 고택
    단양 조덕수 고택은 충청북도 단양에 있는 고택이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형태와 남부지방의 형태가 결합된 민가로,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일반적인 집들과 달리 행랑채 대문간이 돌아앉아 있고, 부엌 다음에 아랫방을 둔 남도 형태의 영향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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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고려시대 용장(勇將) 김취려, 충의와 정직의 아이콘
    김취려(金就礪)의 본관은 언양(彦陽)이고, 고려 고종(高宗)대의 무신으로 거란(契丹)의 침략을 맞서 큰 전공을 세웠다. 사후 위열(威烈)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고종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김취려는 무신집안에서 성장하여 음서로 선발된 뒤 전공을 쌓아 승차하며 용장으로 명성이 높았고 지덕까지 겸비하여 관료로서도 출중한 인물이었다. 훌륭한 무신집안의 혈통은 그의 13대손 영의정(贈領議政) 문열공(文烈公) 김천일(金千鎰)로 이어져 임진왜란 시 수원 독성산성(禿城山城)과 강화에서 항쟁하였으나,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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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원주시

    이방원의 은사이자 절의지사(節義之士) 원천석
    원천석은 고려말 조선초 문인으로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사람이다. 원주원씨의 중시조(中始祖)로,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이다. 1365년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낙향하여 원주 치악산(雉岳山)에서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며 은사(隱士)로 지내며 평생을 학문연구에 전념했다. 이방원의 어린 시절 스승이었던 그는 태종이 즉위하자 정사(政事)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모두 거절하고 치악산 변암촌에서 평생 학문에 전념하여 유학자, 고승, 관리들과 글을 짓고 교유하였다. 그의 사상은 삼교일리론(三敎一理論), 또는 유불동도론(儒彿同道論)이다. 시문집으로 『운곡시사(耘谷詩史)』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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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서천군

    목은 이색, 고려의 충절을 지키다
    이색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이색은 원나라 명나라 교체기 때 친명정책을 지지하였다. 또 고려시대 말 성리학이 수용되고 불교를 배척하는 경향이 대두되는 시기 불교를 역사적 현상 중 하나로 보고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통해 태조 왕건 때의 부흥을 주장하였다. 아울러 그의 문하에서 고려 왕조에 충절을 다한 제자와 조선 왕조 건립에 큰 역할을 한 제자, 그리고 삼은(三隱)이라 불리는 이색과 정몽주, 길재의 학문을 계승하여 조선 왕조 초기 성리학의 주류를 이룬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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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의노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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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충북 충주의 갈짐지며 부르는 입타령소리
    충청북도 충주시에서는 「갈짐지는소리」로 입타령소리를 불렀다. 갈은 떡갈나무잎으로 거름으로도 썼고, 바닥에 깔아놓으면 잡초가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갈짐지는소리」는 소만(小滿) 무렵 떡갈나무 가지를 꺾어 지게에 지고 산을 내려오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입타령소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가사 없이 “에헤 에 에헤 오하 에이여라 아하호”와 같은 모음계 음가를 자유롭게 부른다. 다른 지역에서는 「논매는소리」로도 불린다. 산행의 지루함과 고단함을 잊고자 하는데 노래의 주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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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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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논산시 들돌들기
    들돌들기는 마을의 남자들이 명절에 즐기는 놀이이자 통과의례이다. 어린 머슴들이나 두레의 막내인 소동들이 한 명의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마을 내에 당산나무 아래나 장자집 마당 등 1, 2개 많으면 7개까지 있으며, 평상시에도 힘을 기르기 위해 많이 이용한다. 충청남도 논산시에서는 백중날 이루어지며, 평야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 널리 행해진다. 일반적으로는 사용되는 들돌은 완전한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무게는 쌀 한 가마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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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도의 출생의례
    출생의례는 새로운 생명을 기원하거나 태어난 생명을 무탈하게 키워내기 위하여 행하는 의례를 말한다. 아이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의례에는 자연의 생명력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를 낳은 집의 생명력을 가져오기도 한다. 충청도에선 아이 갖기를 기원해 아이 낳은 집의 도끼, 작두비녀, 배냇저고리, 고추, 절구대 등을 출산의 주구로 놓고 아들을 기원했다. 아이를 가지고 유산의 기미가 느껴지면 오이넝쿨이나 호박넝쿨을 달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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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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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예산군

    일산이수정
    대술면에서 시작되는 화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작은 산봉우리가 둘이 있다. 그중 한 봉우리 위에 아담한 정자인 ‘일산이수정’이 있다. 김정희는 이 정자에 초대를 받아 4-5일간 주인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면서 정자의 이름을 휘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정희가 떠나던 날 그중의 한 장만을 주인에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집어서 주머니에 넣어갔다. 이것을 본 동리 사람들은 추사가 가난해서 헌 종이를 가져간다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예산에 유일한 정자인 ‘일산이수정’을 통해 우리는 서예라는 낱말의 뜻을 느낄 수 있으며 김정희가 희세의 천재예술가였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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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녀바위
    암하리(옛 지명)에는 역단층의 병풍같은 바위와 이에 둘리어 물이 담긴 작은 호수가 있다. 이 바위를 열녀바위라고 한다. 옛날 유복하게 살아온 신동지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신씨의 외아들이 공부를 하다가 호반을 거닐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돌풍이 불어 쓰고 있던 갓이 호수에 떨어졌다. 아들은 갓을 건지려고 물가로 다가서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절벽바위에서 몸을 던져 순사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병풍바위는 열녀바위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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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와 수덕도령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수덕사가 세워진 것에 대한 전설이 있다. 어느 양반집에 수덕이라는 도령이 있었다. 가을의 어느 날 수덕도령은 하인들을 데리고 사냥을 갔다. 수덕도령은 노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화살을 쏘려다가 한 낭자를 발견하고 그는 활시위를 놓지 않았다. 수덕도령은 그 낭자에게 빠지게 되었고, 혼인을 간청했다. 낭자는 자신과 혼인하려면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세워달라고 했고, 낭자는 여자만 생각했기 때문에 절을 짓는 일은 헛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마자 절에서 불기둥이 솟아 올랐고, 도령은 다시 절을 지었다.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그 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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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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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군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은 청주성 3인의 청주 표충사
    청주의 표충사는 이인좌의 반란군이 청주성을 함락할 때 성을 지키던 이봉상, 남연년, 홍림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청주성은 영남과 호남의 중간지점으로 군대가 무기를 갖춘 병영이 설치되어 있어 반란군이 가장 먼저 점령한 곳이었다. 청주성을 지키던 무신들은 반란군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반란군을 꾸짖고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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