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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또한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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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민주주의가 자라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성덕당은 1935년 인천 공립중학교의 강당으로 세워졌다. 일본인 학교였던 인천 공립학교는 해방 후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이 되었다. 제물포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초대 교장이었던 교육자 길영희 선생은 ‘성덕당’에서 전교생에게 양심적인 나라의 일꾼이 되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1930년대 세워졌던 옛 학교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성덕당은 남아 제물포고등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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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바다보다 역동적인 제물포의 근대 - 인천 개항장 근대역사문화지구
    제물포는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일본과 청나라,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인 지역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 조계를 설정하자, 청과 다른 나라들이 뒤따랐다. 초기 모습은 청 조계지가 일본 쪽보다 나았다. 상권에서도 청 상인들이 우세한 편이었으나,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는 일본이 앞서기 시작했고,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친 뒤에는 일본의 절대 우세가 확정되었다. 일본은 금융기관을 앞세워 해운업과 화물운송업을 장악했고, 인천은 일본 주도 아래 식민지 근대의 대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자유공원(만국공원)은 일본 조계지와 청국 조계지(훗날 인천 차이나타운)를 비롯해 개항 이후 인천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답사하기 적당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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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동구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에 세워진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에 있는 송현근린공원에는 달동네를 테마로 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국산은 본래 만수산 또는 송림산으로 불리던 산으로, 1908년 송현배수지가 준공되면서 수도국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1960~1970년대의 달동네 서민들의 생활사를 테마로 한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개최하고,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체험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생활문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기증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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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미추홀구

    통통 튀는 음악방송과 즐거운 쇼핑, 인천 용현시장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용현시장은 1963년에 개설한 등록시장이다. 용현시장은 수봉산 일대에 이주촌이 형성되면서 이 일대에 상권이 생겨났고, 이후 용현동, 숭의동, 제물포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2005년 전통시장시설 현대화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하여 전통시장 중에서 활성화가 제일 잘 된 시장으로 탈바꿈하였다. 최근 위생사업 시범시장으로 선정된 용현시장은 즉석식품과 깨끗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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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계양구

    3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오류동은 마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 ‘오리울’, ‘오릿골’, ‘오류울’, ‘오류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 오류동은 ‘효자마을’, ‘효자동’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효행심 깊은 마을로 유명했다. 오류동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었다. 파평 윤씨 문중 가운데 정직한 윤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효성 깊은 선비였다. 그는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잉어를 구해 봉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윤선비의 효행이 감화가 되어 오류동은 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는 마을이 되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칭송하기 위해 효자문을 내렸다고 한다.
  • 4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계양구

    4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오류동은 마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 ‘오리울’, ‘오릿골’, ‘오류울’, ‘오류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 오류동은 ‘효자마을’, ‘효자동’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효행심 깊은 마을로 유명했다. 오류동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었다. 파평 윤씨 문중 가운데 정직한 윤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효성 깊은 선비였다. 그는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잉어를 구해 봉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윤선비의 효행이 감화가 되어 오류동은 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는 마을이 되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칭송하기 위해 효자문을 내렸다고 한다.
  • 2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계양구

    2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오류동은 마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 ‘오리울’, ‘오릿골’, ‘오류울’, ‘오류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 오류동은 ‘효자마을’, ‘효자동’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효행심 깊은 마을로 유명했다. 오류동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었다. 파평 윤씨 문중 가운데 정직한 윤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효성 깊은 선비였다. 그는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잉어를 구해 봉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윤선비의 효행이 감화가 되어 오류동은 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는 마을이 되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칭송하기 위해 효자문을 내렸다고 한다.
  • 테마스토리 충북 >진천군

    「사미인곡」을 쓴 가사와 시조의 대가, 정철
    정철은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자 박인로, 윤선도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문인이다. 똑똑하고 실력이 있어 좌랑, 현감, 암행어사, 사간, 승지를 거쳐 관찰사, 도승지, 우의정, 좌의정까지 최고의 관직을 거쳤지만, 때로 파면당하거나 유배당하는 등 고초도 많이 겪었다. 그럴때 마다 고향 담양의 창평에 내려와 시를 썼다. 저서로 시문집인 『송강집』과 시가 작품집인 『송강가사』가 전한다. 정철의 작품으로는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4편의 가사와 함께 107수의 시조가 남아있다. 특히 그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최고의 국문 시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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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사씨남정기」,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
    김만중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저자이다. 광성부원군인 김만기의 동생이고, 인경왕후의 숙부였다. 아버지는 정축호란 때 강화도에서 자결한 김익겸이다. 김만중은 외부에 스승을 두지 않고, 어머니와 형, 어머니의 할아버지에게서 교육받았다. 이런 가정교육으로 14세에 향시에 합격하고 16세에는 진사에 1등으로 합격하였고, 29살에 정시에서 1등으로 합격하였다. 이후 60여개의 직책을 120여 차례 맡는 등 관직생활을 했으나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그의 작품으로 고전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외에 수필집과 비평집인 『서포만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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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우리 미술사 정립이라는 독립운동의 횃불, 고유섭
    고유섭은 우리 문화에 대해 제대로 말하거나 듣거나 가르칠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고분과 건축, 불상과 도자와 회화 등 현장답사를 다니며 그는 한국미술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조선 미술사 연구와 문화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적 기록과 해석은 한국미술사학 연구의 실질적인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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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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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무지개처럼 생긴 홍예문을 통과하는 인천 홍예문 길
    홍예문이 세워진 송학동은 인천 항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저택이 많았다. 2002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홍예문은 화감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든 석문으로, 그 모양이 무지개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항 당시 교통 요지의 하나인 홍예문 길은 일본인들이 편안하게 동인천역을 왕래하기 위해 만든 길이다. 홍예문을 통해 2차선의 좁은 도로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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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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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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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미추홀구

    미군부대 건설로 사라진 인천 성산봉수
    성산봉수(城山烽燧)는 인천시 남구 문학동 164-69번지 문학산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성산봉수는 문학산 봉수(文鶴山烽燧)로 불리기도 한다. 문학산에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테뫼식 석축산성이 있어서 수차례 지표조사가 이뤄졌다. 산꼭대기에 3m 정도의 둑을 쌓아 봉화대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봉화둑산 또는 배꼽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1959년 미군부대를 건설하면서 흙을 파내서 봉수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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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해안의 관방을 끼고 있는 강화 대모성 봉수
    대모성 봉수(大母城烽燧)는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신현리 산113-16번지 대모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봉수의 명칭은 대모성 봉수 또는 대모성산 봉수나 대모산 봉수라고도 한다. 대응봉수는 김포의 약산 봉수로부터 신호를 받아 서쪽의 진강산 봉수에 응했다. 봉수 정상에 1.6m 가량의 토석이 연대 형태로 남아 있다. 강화에는 봉수와 진성 및 보루 등 관방시설이 많은데 그만큼 침략이 많았던 곳이고 국방의 요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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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제를 올린 봉천대 제단이 있는 강화 하음산 봉수
    하음산 봉수(河陰山烽燧)는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신봉리 산63번지 하음산(해발291.1m) 정상에 있다. 하음산은 봉천산(奉天山)이라고도 하는데 산꼭대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음산 봉수, 하음성산 봉수(河陰城山烽燧) 등으로 불리다가 봉천산 봉수(奉天山烽燧)라 부르기도 한다. 하음산 봉수는 조선중기에 별립산 봉수가 폐지되고 대신 쌓았다고 한다. 이 봉수는 여수의 돌산도봉수에서 이어져 오는 연변봉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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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는 1903년 인천광역시 중구 팔미도에 세워진 등대이다. 1900년대 초 일본은 동아시아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우리나라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고자 했다. 이에 우리나라 주요 섬에 등대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천 팔미도 등대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로 알려져 있다. 팔미도 등대는 6.25 전쟁 당시 연합군의 시야를 밝혀줌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을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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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시민들이 사랑한 극장, 인천 애관극장
    애관극장은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극장이다. 애관극장의 전신은 한국인이 세운 국내 최초의 공연장 협률사이다. 인천 협률사는 서울 협률사보다도 7년이나 앞서 개관했다. 초기에는 남사당패나 굿중패가 공연을 하던 곳이었는데, 후에는 신파극, 신극, 무성영화, 유성영화 등 당대 인기를 끌었던 공연 및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6.25 전쟁으로 극장이 소실되었다가 1960년에 재건하여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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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산업화와 노동자의 자취, 인천 동일방적 의무실
    일제강점기 대규모 방적 업체 동양방적은 1955년 주인이 바뀌면서 동일방직이 되었다. 동일방직 인천 공장 부지 내에는 공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한옥 형태 건물이 남아 있다. 동일방직 의무실로 쓰였던 이곳은 단층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한국의 전통 양식과 일본 양식이 어우러진 형태로 지어졌다. 동일방직 인천공장에는 의무실뿐만 아니라 기숙사, 정자, 관리동 등 역사적 건물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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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림도의 중심 중림역
    중림역은 조선 시대에 한양에서 인천으로 연결되는 역로인 중림도를 관할하던 중심역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서 금곡도에 속했다가, 1413년에 경기도와 황해도의 역을 정비하면서 중림도에 편제되었다. 중림역은 찰방역 이었음에도 한양 주변의 다른 찰방역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았다. 중림역은 조선 시대에 한양에서 인천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당시에는 역촌도 꽤 번창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소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역 터가 사라져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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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비롯된 양조간장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선땅에 살게 되면서 일본인 거주구역에 일본간장공장 즉, 장유공장이 설립되었다. 일본은 1882년 이후 간장의 양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공장에서 간장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1차 세계대전 후 아미노산 간장을 대량으로 제조했다. 그 대표적인 회사인 야전장유공장에서 만드는 기꼬망간장은 일본 궁내성에도 납품할 정도였다. 야전장유공장의 분점이 인천에도 설치되었고, 이곳은 관광지로 견학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조선인들은 양조간장을 낯설어했지만 곧 익숙해지게 되었고 지금 한국인의 부엌에는 양조간장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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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한국에 들어온 자장면
    자장면(炸醬麵)은 장을 튀겨 면에 비벼먹은 음식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튀기는 장은 콩 70%와 밀 30%를 섞어 짜게 발효시킨 면장(麵醬)인데 중국 산둥지역에서 주로 담궈 먹었다고 한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난 후 청나라와 조선은 ‘상민수륙무역장정(商民水陸貿易章程이라는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으로 청나라와 조선의 상인들은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민수륙무역장정에 따라 청나라 사람들 특히 주로 중국 산둥 지방 사람들이 인천등 개항장에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산동지방의 향토음식이 한국에 정착한 것이 짜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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