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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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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인천 >계양구

    삼국시대부터 한강 서부지역과 해안 방어를 위한 전략적 거점, 계양산성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10호인 계양산성은 축조 시기가 정확하지 않지만, 다년간의 발굴조사와 연구로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계양산성은 계양산이 아닌 고성산에 축조되어 경기만 방어체계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삼국시대의 계양산성은 군사적 방어시설과 더불어 지방행정과 통치의 중심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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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고려 왕조의 생명선,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3년(고종 20) 해안 방어를 위해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 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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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프랑스군에게 패배를 안긴 강화 삼랑성
    삼랑성은 경기도 강화도의 남쪽 옛 하도면, 즉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해발 231m의 정족산에 있다. 길상산의 북쪽, 마니산의 동북동, 강화부의 30~35리에 있으며 3개의 봉우리가 솥발처럼 서로 맞서서 대치한 형세여서 생긴 이름이 정족산성이라 한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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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계양구

    이응신 효자를 기리는 ‘부평향교 효를 나누는 응다방’
    ‘부평향교 효를 나누는 응다방’은 효(孝)의 중요성을 알리는 효에 대한 사유 축제이다. 이 축제는 인천 부평에 살던 효자 이응신의 효성을 바탕으로 효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만든 축제이다. ‘부평향교 효를 나누는 응다방’은 효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과 현대적인 효의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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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서구

    허암 정희량을 기리는 ‘허암예술제’
    ‘허암예술제’는 조선 중기의 학자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 1469~1502년)의 학문적 기량과 선비정신을 선양하며, 그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에서 행한 예술제이다. 허암은 글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기 때문에 백일장이 주축이 된다. 그리고 미술대회를 열어 그림에 뛰어난 학생들을 칭찬하고, 춤도 빠질 수 없으므로 춤 대회도 열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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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미추홀구

    미디어 문화를 만나자 ‘주안미디어문화축제’
    주안미디어문화축제는 2004년에 ‘디지털 말 걸기’로 시작했다.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주최하는데 장소는 옛 시민회관 쉼터 일원이다. 매년 9월 말에 열린다. 미디어를 주제로 열리는 이색축제로 지역주민들이 미디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공부하고 만들고 즐기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미추홀 미디어에 미치다’라는 표어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형 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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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는 1903년 인천광역시 중구 팔미도에 세워진 등대이다. 1900년대 초 일본은 동아시아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우리나라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고자 했다. 이에 우리나라 주요 섬에 등대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천 팔미도 등대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로 알려져 있다. 팔미도 등대는 6.25 전쟁 당시 연합군의 시야를 밝혀줌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을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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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인천 시민들이 사랑한 극장, 인천 애관극장
    애관극장은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극장이다. 애관극장의 전신은 한국인이 세운 국내 최초의 공연장 협률사이다. 인천 협률사는 서울 협률사보다도 7년이나 앞서 개관했다. 초기에는 남사당패나 굿중패가 공연을 하던 곳이었는데, 후에는 신파극, 신극, 무성영화, 유성영화 등 당대 인기를 끌었던 공연 및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6.25 전쟁으로 극장이 소실되었다가 1960년에 재건하여 현재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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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동구

    근대 산업화와 노동자의 자취, 인천 동일방적 의무실
    일제강점기 대규모 방적 업체 동양방적은 1955년 주인이 바뀌면서 동일방직이 되었다. 동일방직 인천 공장 부지 내에는 공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한옥 형태 건물이 남아 있다. 동일방직 의무실로 쓰였던 이곳은 단층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한국의 전통 양식과 일본 양식이 어우러진 형태로 지어졌다. 동일방직 인천공장에는 의무실뿐만 아니라 기숙사, 정자, 관리동 등 역사적 건물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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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또한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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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민주주의가 자라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성덕당은 1935년 인천 공립중학교의 강당으로 세워졌다. 일본인 학교였던 인천 공립학교는 해방 후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이 되었다. 제물포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초대 교장이었던 교육자 길영희 선생은 ‘성덕당’에서 전교생에게 양심적인 나라의 일꾼이 되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1930년대 세워졌던 옛 학교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성덕당은 남아 제물포고등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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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바다보다 역동적인 제물포의 근대 - 인천 개항장 근대역사문화지구
    제물포는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일본과 청나라,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인 지역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 조계를 설정하자, 청과 다른 나라들이 뒤따랐다. 초기 모습은 청 조계지가 일본 쪽보다 나았다. 상권에서도 청 상인들이 우세한 편이었으나,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는 일본이 앞서기 시작했고,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친 뒤에는 일본의 절대 우세가 확정되었다. 일본은 금융기관을 앞세워 해운업과 화물운송업을 장악했고, 인천은 일본 주도 아래 식민지 근대의 대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자유공원(만국공원)은 일본 조계지와 청국 조계지(훗날 인천 차이나타운)를 비롯해 개항 이후 인천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답사하기 적당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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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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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철종의 소박한 잠저, 강화 용흥궁 누마루
    용흥궁 사랑채의 누마루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동문안길에 있는 용흥궁 내에 있는 가옥형 정자로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흥궁은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1853년 강화유수 정기세가 현재와 같은 건물을 세우고 용흥궁이라 이름하였다. 그 뒤 1903년에 이재순이 중건하였고, 그 뒤 많이 퇴락하여 1973년 보수 정화를 하였다. 이 가운데 사랑채가 정자 형태로 지어져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외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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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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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강화도를 대표하는 놀이, 강화산성 성돌이 놀이
    강화산성 성돌이 놀이는 강화도 지역의 옛 산성을 따라 도는 놀이를 말한다. 강화산성은 그 길이가 무려 7122m이며, 사적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화도 주민들은 윤달이 드는 해에 강화산성을 도는데, 특히 사월초파일에 성을 돌면 마을이 평안하고 항상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었다. 요즘에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단풍드는 계절로 행사를 옮겼다. 오랫동안 중단된 놀이를 1980년대에 여러 사람들의 고증을 거쳐 새롭게 재현했으며, 지금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놀이문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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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옹진군

    띠배를 만들어 바다에서 태우는 장봉도 띠뱃놀이
    인천 옹진군 북도면 장봉도에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지역에서 전해오는 띠뱃놀이와 유사한 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이 띠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운 뒤에 태우면서 한 해의 풍어와 안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러나 어업환경이 바뀌고 마을공동체가 약화되면서 현재 이 놀이는 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89년도에 경기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을 하여 전승 환경을 마련했으나 점차 주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중이라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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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잠시나마 장례의 슬픔을 잊기위한 인천의 곱사치기놀이
    인천광역시에서 행해지던 곱사치기놀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투전과 유사하다. 놀이의 방식은 24장의 카드를 3장씩 나눠 가지고 앞 사람이 내는 패의 숫자에 따라 패를 내거나 혹은 뒤집거나 등을 반복한다. 그리고 놀이 과정에서는 패의 숫자와 관련된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놀이는 과거 상갓집에서 많이 하던 것으로 상장례 문화가 바뀌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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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위의 기암괴석, 백령도 두무진 연화마을
    우리나라 최북단에 속한 백령도는 섬이지만 육지처럼 커서 여러 마을이 있다. 그 중 특색있는 마을이 선착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두무진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닮은 바위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바다에 여러 형태의 바위가 서 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더욱 멋진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두무진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천주교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유럽의 신부들이 이곳에 도착한 다음, 우리나라 본토로 들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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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미추홀구

    49년 재래시장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든 숭의평화예술시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앞쪽의 옛건물 사이 골목길에 숭의평화시장이 있다. 1980년대 이곳은 북적이는 동네 시장이었지만,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그러다 2015년 인천시와 미추홀구에서 빈 점포 6개동을 창작공간으로 만들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옛 가게와 새로운 창작공간이 공존하는 이곳은 현재 숭의평화예술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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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연수구

    국내 1호 공립박물관,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량산 기슭에 위치한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1946년 4월 1일 개관한 우리나라 1호 공립박물관이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1970년 6월 국가 사적 211호로 지정된 서구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를 발굴하여 학계의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외관이 고인돌 형상인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역사1실, 역사2실, 실감영상실, 고미술실, 기증실, 야외전시장에서 인천 관련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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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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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관할아버지를 비웃어 벌 받은 부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문학산(文鶴山)이 있다. 문학산 정상 봉수대가 있던 자리 아래에 ‘안관당’이라 부르는 사당이 있었는데, 김민선(金敏善) 부사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이었다. 이 사당에 얽힌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안관당에 나무로 깎아 만든 할아버지와 할머니 상이 있었고, 마을 주민들이 이들을 마을신으로 모셨다. 그런데 한 부인이 안관할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는 흉을 보았다. 그 후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생긴 것이 안관할아버지 목상처럼 생겼으며, “씨익, 씨익.”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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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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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부대 건설로 사라진 인천 성산봉수
    성산봉수(城山烽燧)는 인천시 남구 문학동 164-69번지 문학산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성산봉수는 문학산 봉수(文鶴山烽燧)로 불리기도 한다. 문학산에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테뫼식 석축산성이 있어서 수차례 지표조사가 이뤄졌다. 산꼭대기에 3m 정도의 둑을 쌓아 봉화대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봉화둑산 또는 배꼽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1959년 미군부대를 건설하면서 흙을 파내서 봉수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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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의 관방을 끼고 있는 강화 대모성 봉수
    대모성 봉수(大母城烽燧)는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신현리 산113-16번지 대모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봉수의 명칭은 대모성 봉수 또는 대모성산 봉수나 대모산 봉수라고도 한다. 대응봉수는 김포의 약산 봉수로부터 신호를 받아 서쪽의 진강산 봉수에 응했다. 봉수 정상에 1.6m 가량의 토석이 연대 형태로 남아 있다. 강화에는 봉수와 진성 및 보루 등 관방시설이 많은데 그만큼 침략이 많았던 곳이고 국방의 요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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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제를 올린 봉천대 제단이 있는 강화 하음산 봉수
    하음산 봉수(河陰山烽燧)는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신봉리 산63번지 하음산(해발291.1m) 정상에 있다. 하음산은 봉천산(奉天山)이라고도 하는데 산꼭대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음산 봉수, 하음성산 봉수(河陰城山烽燧) 등으로 불리다가 봉천산 봉수(奉天山烽燧)라 부르기도 한다. 하음산 봉수는 조선중기에 별립산 봉수가 폐지되고 대신 쌓았다고 한다. 이 봉수는 여수의 돌산도봉수에서 이어져 오는 연변봉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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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
    대불호텔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현재 인천광역시 중앙동 1가에 복원되어 중국 생활사 전시관 1관으로 사용 중이다. 1887년 일본인 호리 히사타로가 건립해 운영했으며, 당시 인천과 서울은 우마차로 12시간 거리여서 외국인들이 숙박에 이용했다. 그러나 1899년 경인선 개통으로 숙박업이 쇠퇴하며 1907년 폐업했다. 이후 1918년 중국인들에게 인수되어 중국음식점 ‘중화루’로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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