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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남 >무안군

    후청계를 조직하여 지켰던 무안 성남리 장승
    무안 성남리 장승은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남리에 있다. 장승은 원래 성남리 후청마을에 세워져 있었으나, 1984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후청마을은 장승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여 장승백이라 불리기도 했다. 성남리 장승은 붉은 반점이 있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장승에는 동방대장군과 서방대장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후청마을에는 후청계안이 있어 장승의 제작연대, 제작목적, 제의 관련 내용들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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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음성군

    오미마을의 정계대장군, 충북 음성 마송리 석장승
    마송리 석장승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다. 석장승은 총 3기로 조성연대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장승의 형태와 풍화 정도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마송리 오미마을 주민들을 석장승을 “장성님”, “미륵할아버지”, “정계대장군”이라 부르며, 매년 정월 초가 되면 장승제를 지내고 있다. 마송리 석장승이 있는 길 건너에 있는 보천장터 주변에는 “7080 추억의 거리”라는 주제로 벽화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석장승과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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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담양군

    풍수지리상 뱃사공 역할을 한 전남 담양 천변리 석인상
    천변리 석인상은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에 세워져 있다. 천변리 석인상은 1쌍 2기인데, 주민들은 ‘할아버지 비석’과 ‘할머니 비석’이라고 부른다. 천변리 석인상이 세워진 것은 담양읍이 풍수지리상 행주형국으로 배가 지나다니는 형국이고, 천변리가 뱃머리에 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뱃사공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변리 석인상을 '사공불' 또는 '사공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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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마포구

    국가의 재정을 좌지우지했던 궁방전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어업이라는 생업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경제적 가치이다. 특히 조선후기 상업자본이 출현하면서 자본가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어업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대로 어업에서 다양한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궁방전이다. 주요 어장과 어살 등에서 걷어 들인 세금은 궁방을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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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자녀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문서, 경북 경주 손소선생분재기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마을 손동만 가옥에는 손소선생분재기가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손소는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워 노비와 전답 등을 하사받고 부를 축적하여 사회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손소선생분재기는 자녀 5남 2녀가 남녀 구별 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나누게 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조선 전기의 혼인사, 사회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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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제약이 많았던 조선시대의 혼인풍속
    조선시대에는 혼례에 많은 제한이 있었다. 계급과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다양한 제한이 있었다. 왕실은 사대부 이하의 여인과 결혼할 수 없었고, 양반은 천민과 결혼할 수 없었다. 또 조혼 풍습을 막기 위해 나이에 대한 제한이 생겨났다. 재혼이나 이혼의 경우, 칠거지악과 자녀안 등 여성 차별적인 규정이 심했다. 남성은 쉽게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었으나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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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병자호란의 마침표가 된 삼학사의 남한산성 현절사
    남한산성의 현절사는 삼학사를 배향하는 곳이다. 삼학사는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한 척화파의 수괴로 청나라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였다. 삼학사 중 한 명인 홍익한은 청 태종 앞에서 명나라와 맺은 군신의 의를 깨고 청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였다. 전쟁의 승패를 떠나 대의와 도리가 있어 화친을 반대했다는 주장에 청 태종도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송시열은 삼학사의 전기를 집필해 그들의 죽음이 의리와 절개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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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은 정묘호란
    조선은 인조가 집권한 이후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웠고, 후금에서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주전론자인 태종이 즉위하였다. 또한, 후금은 명과의 전투 때문에 심한 물자 부족 현상을 해결해야 했으므로 조선을 침략하여 명을 공격하기에 앞서 후환을 없애고자 하였다. 이에 후금군은 조선을 침략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으나 후방을 공격당할 염려에 조선과 형제의 맹약을 맺어 화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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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존망의 위기에 선조의 명을 받은 병자의병
    후금은 1636년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다시 조선을 쳐들어왔다. 청의 침입 소식이 전해지자 호남지역 의병이 먼저 일어나 자진하여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어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던 인조로부터 위급을 알리며 의병을 규합하고 군량과 무기를 수집하여 청의 침략을 무찌르라는 교서가 전달되자 의병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 외 황해도․경기도․경상도 등지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의승군의 활약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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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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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한양에서 일본으로 이동하던 조선통신사의 길
    조선 통신사는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 왕실에서 일본에 보낸 외교사절단으로, 1607년부터 1811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파견되었다. 사절단은 한양을 출발하여 중부 내륙에 자리한 충주, 안동, 경주, 부산 등지를 지난 후 뱃길과 육로를 이용해 일본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통신사의 국내 이동 구간은 한양에서 동래로 향하던 하행로와 동래에서 한양으로 복귀하는 상행로의 구간이 달랐다. 한양에서 문경까지의 구간은 상하행로가 동일했지만, 하행로는 문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안동을 거쳐 경주를 경유했으며, 상행로는 양산에서 대구를 거쳐 상주를 통과했다. 근래 들어서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조선 통신사의 길’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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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무릎 보호대, 호슬
    호슬(護膝)은 무릎 보호대로 왕실 및 반가의 남자들이 무릎을 보호하기 위하여 착용하였으며, 슬갑(膝甲)이라고도 한다. 호슬은 무릎 보호대였지만, 화려한 비단에 자수 장식을 하여 장식품의 역할과 하사품으로 쓰였으며, 혼례 복식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사신에게 주는 선물을 하거나 종친의 선물이나 백관의 하사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신분에 따라 금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실이나 관리 계층에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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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 위에 신는 덧신, 투혜
    투혜(套鞋)는 방한이나 방습 또는 오염을 막기 위하여 화(靴) 위에 신는 덧신이다. 투혜의 형태는 신발을 오염이나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는 덧신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발보다 크기가 크고 가죽을 겉감으로 사용하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가죽으로 만들어 귀하게 여겨진 투혜는 왕이 사신, 관리에게 내리는 중요한 하사품이기도 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거나 사신이 왔을 때 피화(皮靴)에 투혜를 갖추어 하사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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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고 높은 여성의 가발 중 하나, 궤계
    궤계(簂髻)는 조선시대 사대부 여인들이 머리모양을 장식하기 위해 철사로 뼈대를 만든 후 머리카락, 실, 동물의 털 등 별도의 재료들로 크고 높게 형태를 만들어 머리 위에 올려서 치장하던 가발의 하나이다. 궤계는 여성들이 머리 위에 쓰는 별도의 가계로 시대별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였고 의례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간편하게 의례용 머리모양을 완성할 수 있었던 여성들만의 장식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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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의 능침사찰 신륵사의 다층석탑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왕릉인 영릉을 수호하기 위한 능침사찰이었다. 고려 말 나옹화상이 입적한 곳으로 중창된 이후, 세종대왕의 능을 이장하면서 신륵사를 능침(陵寢)사찰로 지정하여 왕릉수호 역할을 부여했다. 다층석탑은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고려 말 경천사지 십층석탑 양식을 계승해 수미단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공예적인 조형의 탑신석을 올린 구조를 취했다. 상층기단 면석에 조각된 용 문양은 조선 왕실과의 관련이 높고, 성종 3년(1472)에 이루어진 신륵사 중창을 염두에 둔다면 석탑 역시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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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논의 허한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세운 제주 무릉리 방사탑
    무릉리 방사탑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 세워져 있다. 무릉리 방사탑은 ‘앞논’의 허약한 기운을 보강하고 부정과 액운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것으로 음양을 고려하여 4기를 배치했다. 마을주민들은 석상이 방사탑의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것에 대해 높은 곳에 올라서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과 액운을 막아낼 수 있는 수호신의 모습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방사탑은 1910년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쟁기의 볏, 보습, 솥 등을 묻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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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큰개탑과 오다리탑이라 불리는 제주 신흥리 방사탑
    신흥리 방사탑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다. 이곳의 지형이 게형국인 탓에 주민들이 늘 쫓기듯 허덕이며 살 운명이라 탑을 세우면 그 지형을 누를 수 있다고 하여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5기이던 탑은 현재 2기가 남아있는데, ‘큰개탑’과 ‘오다리탑’이라고 불린다. 큰개탑은 음탑을 의미하며, 오다리탑은 양탑을 의미한다. 신흥리에서는 매년 정초가 되면 남성들은 포제(酺祭)를 지내고, 여성들은 당굿을 지내고, 어촌계원들은 해신제(海神祭)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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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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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조선후기 방패 역할을 한 입암산성
    높이 654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 협축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5.18㎞에 달한다. 전라도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호남정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산성에 대한 최초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확인되는데, 1256년(고종 43)에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방어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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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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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조선을 떠바친 한 기둥 사직단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漢陽)에 정하로 국가 의례를 고려 제도를 따라 사직단을 경복궁 서쪽에 설치하였다. 사직단 공사는 1395년(태조 4) 착수하여 설단(設壇)을 쌓고 담장을 두었으며, 안쪽에 신실(神室), 신문(神門)을 두었다. 사직단은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다. 1963년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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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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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었을까? 고조선 농업
    고조선은 BC 108년까지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존재한 한국 최초의 국가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건국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신시와 고조선사회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고조선 시기에 농경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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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에 담긴 조선시대 경제 이야기, 부석사명 은입사 철제 향로
    부처님께 음식과 물건을 올리고 의식을 행하는 공양을 할 때 사용하는 물품을 공양구라고 한다. 이 중 향로는 공양구 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향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나 그 예시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고려시대의 향로는 주로 청동 또는 청자로 제작되었고, 조선시대의 향로는 유기와 백제로 제작되었으며 간혹 철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향로는 청동, 유기와 같은 금속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동전 주조 정책과 더불어 구리 확보가 힘들어지자 철제 향로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부석사명 은입사 향로는 향로의 구연부부터 받침대에 이르기까지 당초문과 연화문이 은입사 기법으로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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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正祖)의 시가 새겨진 철제 은상감 자
    조선시대의 자는 사용 목적에 따라 이름과 크기가 달랐다. 제사와 관련된 물건을 만들 때 사용한 조례기척(造禮器尺), 악기를 제작할 때 사용한 황종척(黃鐘尺), 건축에 이용한 영조척(營造尺), 옷감의 길이를 재는 포백척(布帛尺) 등이 있다. 이러한 자는 표준 길이로써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러 번 사용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아야 했다. 따라서 주로 쇠나 놋쇠로 만들어졌으며 가볍게 사용하기 위해 대나무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정조 재위 20년이었던 1796년 음력 2월 1일, 정조는 농사철의 시작을 기념하는 중화절(中和節)을 연회를 열고 신하들에게 중화척(中和尺)을 하사했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철제 은상감 자 또한 중화척으로 하사되었다. 특히 철제 은상감 자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시도 새겨져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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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미 넘치는 용문양이 그려진 백자철화용문호
    부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17세기 백자철화용문호는 2012년 5월 17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38.4㎝로 몸체의 윤곽선이 풍만하면서도 원형에 가까운 이른바 '달 항아리'의 모습이다. 대형 항아리는 몸통의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였는데, 이 항아리 역시 커다란 발(鉢) 두 개를 구연끼리 맞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하여 동체 중앙부에 깎아 다듬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문양은 항아리를 휘감은 용과 풀처럼 보이는 구름이며, 얼굴이 해체된 듯한 용의 모습은 파격미가 돋보이는 지방 가마의 작품임을 추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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