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조선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국

    상투가 풀어지지 않게 고정하는 장신구, 동곳
    동곳은 남성의 상투가 풀어지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해 정수리에 꽂는 장신구이다.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어왔으며, 시대에 따라 형태나 재료는 변화하였으나 머리를 단정히 하여 남성의 격식과 체면을 유지해주는 본질적인 기능에는 변함이 없었다. 동곳은 상투를 틀었던 조선시대 남성들의 필수품이자 장신구로 귀천고하(貴賤高下)를 막론한 모든 성인 남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지조와 절개를 담은 자존감의 상징이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남자가 상을 치를 때 입는 상복 상의, 최의
    최의(衰衣)는 상중(喪中)에 있는 상제나 복인(服人)이 입는 남자 상복의 상의이다. 조선시대에는 『가례』를 기본으로 한 유교식 의례를 시행하여 유교식 삼년상과 함께 상의인 최의(衰衣)와 하복인 최상(衰裳)이 상복의 기본이 되었다. 최의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상징하는 적(適), 최(衰), 부판(負板)가지, 총 세 가지의 상징물이 부착되어 상장례에 입는 의복 중 표현성이 가장 크다. 유교를 국가의 기본 통치 철학으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는 상례 의식을 중요시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상복은 상례 행위가 갖는 의미를 가장 압축하여 표현한 복식이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철릭과 한삼 사이에 입는 상의류이면서 배싸개, 과두
    과두(裹肚)는 조선 전기 남자의 상의류이자 조선 후기의 배싸개이다. 19세기 이후 20세기 초까지의 「궁중발기[件記]」에는 과두가 상의류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지만, 조선 후기 예서(禮書)에는 배싸개 종류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과두는 철릭과 한삼 사이에 입는 옷으로 일반 저고리보다는 길고 포보다는 짧은 상의 종류였으며, 후기에는 배 또는 가슴 보호를 위해 남녀 모두 착용한 넓은 허리띠를 말한다. 상의류의 과두 재료는 모두 견으로 되어 있고, 겹옷·솜옷 등으로 만들었고 속에 털을 대어 사계절 모두 사용되었으며 배싸개는 주(紬)나 면포(綿布)로 만들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조선인양조업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전국

    희석식 소주의 탄생
    전근대의 소주는 막걸리 등 발효주를 증류하여 만들었다. 때문에 생산량은 적고 가격이 비쌌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에 세운 소주 회사에서는 대만산 당밀을 수입해 누룩 등으로 발효하고 화학처리하여 함수 알코올을 만든 후 희석한 희석식 소주를 만들었다. 희석식 소주는 대량생산이 가능해 가격이 저렴해 전통적 증류 방식으로 소주를 만드는 조선인 양조업자들은 타격을 입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조선팔경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전남 >구례군

    구례와 노고단 이야기
    구례는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노고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장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노고단 영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왕시루봉 능선은 섬진강을 향해 유려하게 내려온다. 지리산 삼대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노고단이 바로 눈앞에 자리한 탓에, 구례 사람들은 날마다 그 산을 우러르며 살아간다. 이처럼 삶의 배경이자 정신의 근원인 노고단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역사와 문화를 다시 살피고, 날로 심화되는 이상기후의 시대에 이 산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서울 >중구

    향로에 담긴 조선시대 경제 이야기, 부석사명 은입사 철제 향로
    부처님께 음식과 물건을 올리고 의식을 행하는 공양을 할 때 사용하는 물품을 공양구라고 한다. 이 중 향로는 공양구 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향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나 그 예시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고려시대의 향로는 주로 청동 또는 청자로 제작되었고, 조선시대의 향로는 유기와 백제로 제작되었으며 간혹 철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향로는 청동, 유기와 같은 금속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동전 주조 정책과 더불어 구리 확보가 힘들어지자 철제 향로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부석사명 은입사 향로는 향로의 구연부부터 받침대에 이르기까지 당초문과 연화문이 은입사 기법으로 새겨져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정조(正祖)의 시가 새겨진 철제 은상감 자
    조선시대의 자는 사용 목적에 따라 이름과 크기가 달랐다. 제사와 관련된 물건을 만들 때 사용한 조례기척(造禮器尺), 악기를 제작할 때 사용한 황종척(黃鐘尺), 건축에 이용한 영조척(營造尺), 옷감의 길이를 재는 포백척(布帛尺) 등이 있다. 이러한 자는 표준 길이로써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러 번 사용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아야 했다. 따라서 주로 쇠나 놋쇠로 만들어졌으며 가볍게 사용하기 위해 대나무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정조 재위 20년이었던 1796년 음력 2월 1일, 정조는 농사철의 시작을 기념하는 중화절(中和節)을 연회를 열고 신하들에게 중화척(中和尺)을 하사했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철제 은상감 자 또한 중화척으로 하사되었다. 특히 철제 은상감 자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시도 새겨져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부산 >남구

    파격미 넘치는 용문양이 그려진 백자철화용문호
    부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17세기 백자철화용문호는 2012년 5월 17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38.4㎝로 몸체의 윤곽선이 풍만하면서도 원형에 가까운 이른바 '달 항아리'의 모습이다. 대형 항아리는 몸통의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였는데, 이 항아리 역시 커다란 발(鉢) 두 개를 구연끼리 맞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하여 동체 중앙부에 깎아 다듬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문양은 항아리를 휘감은 용과 풀처럼 보이는 구름이며, 얼굴이 해체된 듯한 용의 모습은 파격미가 돋보이는 지방 가마의 작품임을 추정하게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부산 >금정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성곽 금정산성
    해발 801m의 금정산 꼭대기에서 서남쪽 계곡을 따라 돌로 쌓은 석성으로 전체길이는 약 18km이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동래읍성과 더불어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국내에서 가장 큐모가 큰 산성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사천시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이 혈전을 벌인 경남 사천의 사천읍성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와 정의리 일부, 수양공원 일대에 사천읍성이 있다. 사천읍성은 1442년에 왜구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의 명으로 쌓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점령당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당시 조명연합군의 선봉장이었던 정기룡 장군에 의해 탈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수양공원에 있는 성벽 일부를 복원하여 사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결정하고, 그해 10월에는 국왕과 정부관리들이 한양으로 옮겨갔다. 조선 전기에는 산성 축성이 크게 유행하여 태종 10년경을 전후로 북방의 여러 거점 성곽과 경상도·전라도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하여 약 111개의 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 산성은 점차 퇴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에 읍성 축조가 계속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홍성군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성을 동시에 볼 수있는 홍주읍성
    홍주읍성은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가 남아있고 높이 4~5m이다. 동쪽을 제외하고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는 삼태기형의 돌로 쌓은 평지읍성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1451년(문종 1)에 새로 고쳐 쌓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순천시

    임진왜란 시기, 조선을 지켜낸 왜성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왜군은 조선 남부 해안선 일대에 전략적 거점으로 왜성을 축성하였다. 특히 왜군은 전면적으로 후퇴하여 남해안을 따라 왜성을 짓기 시작하여 장기전에 돌입하였다. 당시 도산성이라 불린 울산 왜성을 지은 지휘관은 청적(淸敵)이라 불린 가등청정이었다. 당시 왜군 지휘관 가등청정은 서생포왜성, 흑전장정은 기장왜성, 소서행장은 순천왜성을 건축하였다.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왜성은 20곳 이상이며 경상남도의 해안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전라남도에도 순천성이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삼척 임원산 봉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번지에 있는 임원산(141.1.m)에 임원산봉수가 있었다. 바닷가에 있는 연변봉수로 조선시대 삼척에 있던 5개의 봉수 중 하나이다. 이 봉수는 직봉이 아니라 간봉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안감시소를 설치하여 운영했고, 현재는 인근 주민들의 등산로와 해맞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일부 훼손되었으나 봉수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응봉수로 북으로 초곡산 봉수에 응하고, 남으로 가곡산 봉수에 응한다고 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북 >완주군

    화구 두 개의 거대한 완주 기린 봉수
    전북 완주군 봉림산 또는 기린산이라 불리는 곳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이 산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경천리와 고산면 삼기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삼기리에는 삼기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하연이 지은 시 '고산정기' 중 이 산에 대한 칭찬이 있다. 봉수가 있던 곳은 돌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조선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구는 2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한 곳은 허물어졌고, 한 곳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강원 >고성군

    반암해수욕장 근처 바닷가에 위치한 고성 정양산 봉수
    정양산 봉수(正陽山烽燧)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산14-5번지의 정양산 정상에 있다. 정양산은 바닷가에 있어서 조망이 아주 좋다. 정양산 옆에는 반암 해수욕장이 있고, 정양산에는 군사시설이 있어서 그동안 조사가 잘 이뤄지지 못하였다. 각종 지리지에는 신라시대에 봉수가 축조되었다가 조선 중기에 폐지된 것으로 나오는데, 2015년에 문화재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가 인조원년에 폐하였다고 한다. 대응봉수는 북으로 술산에 응하고 남으로 죽도에 응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병자호란의 마침표가 된 삼학사의 남한산성 현절사
    남한산성의 현절사는 삼학사를 배향하는 곳이다. 삼학사는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한 척화파의 수괴로 청나라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였다. 삼학사 중 한 명인 홍익한은 청 태종 앞에서 명나라와 맺은 군신의 의를 깨고 청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였다. 전쟁의 승패를 떠나 대의와 도리가 있어 화친을 반대했다는 주장에 청 태종도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송시열은 삼학사의 전기를 집필해 그들의 죽음이 의리와 절개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칭송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은 정묘호란
    조선은 인조가 집권한 이후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웠고, 후금에서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주전론자인 태종이 즉위하였다. 또한, 후금은 명과의 전투 때문에 심한 물자 부족 현상을 해결해야 했으므로 조선을 침략하여 명을 공격하기에 앞서 후환을 없애고자 하였다. 이에 후금군은 조선을 침략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으나 후방을 공격당할 염려에 조선과 형제의 맹약을 맺어 화의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국가존망의 위기에 선조의 명을 받은 병자의병
    후금은 1636년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다시 조선을 쳐들어왔다. 청의 침입 소식이 전해지자 호남지역 의병이 먼저 일어나 자진하여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어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던 인조로부터 위급을 알리며 의병을 규합하고 군량과 무기를 수집하여 청의 침략을 무찌르라는 교서가 전달되자 의병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 외 황해도․경기도․경상도 등지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의승군의 활약도 있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청백리의 품격을 지닌 평도공 박은
    박은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그는 조선의 개국을 같이하며 깊은 충성심으로 재상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태종 이방원의 측근이 된다. 박은은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근검·도덕·경효·인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이상적인 관료상인 청백리의 품격을 유지하였다. 박은은 하늘을 숭배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을 근간으로 민생안정과 백성의 안외에 기반을 두고 문물제도 개혁에 앞장섰다. 이러한 그의 공덕을 인정받아 나라에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이천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던 문신, 한숙창
    한숙창은 조선 전기 문신이다. 한숙창은 젊어서부터 용모가 수려하고 수염이 그림같이 아름다우며 언행이 선비답고 우아한 모습을 지녀 누구나 경애하고 사모하였다고 전해진다. 한숙창은 대대로 명망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교만하거나 사치스러운 태도가 전혀 없었다. 성품이 활달하고 매사에 능숙하고 넓은 마음과 식견이 남달랐다. 여러 큰 마을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백성들에게 은혜와 사랑으로써 대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박상, 불의에 맞서다
    박상은 호남시단을 최고 수준으로 만든 문인이며 백성들에게 선정을 펼친 목민관이다. 1506년 박상은 연산군의 애첩인 딸의 권세를 믿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던 우부리를 장살하여 연산군에 맞선다. 이 일로 사약을 받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다. 1515년(중종 10) 10년 전에 폐위돼서 쫓겨난 신씨를 복위시키고, 지아비로 하여금 지어미를 쫓아내게 해서 인륜을 범한 죄가 더 크기 때문에 반정공신들의 관직을 삭탈하라는 ‘신비복위상소’를 올려 반정공신에 맞선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혼례 등 주요행사 때 입었던 왕실 여성의 최고 예복, 적의
    적의(翟衣)는 조선시대 왕비의 의복으로 왕비가 큰 제례에 참여할 때와 가례를 올리거나 책례(册禮)를 받을 때 대수(大首)머리와 함께 착용하였다. 조선 초기와 국말 적의의 구성이 달랐으며 대한제국 시대의 적의는 왕의 면복 제도처럼 옷과 부속품으로 이루어진다. 상하의로는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中單)을 입고 허리에는 대대(大帶)와 옥대(玉帶)를 매었으며 청말(靑襪, 푸른색 버선)에 청석(靑舃)을 신었다. 그 외에는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하피(霞帔), 규(圭)를 갖췄으며, 마지막으로 머리에는 대수(大首)를 얹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신발 위에 신는 덧신, 투혜
    투혜(套鞋)는 방한이나 방습 또는 오염을 막기 위하여 화(靴) 위에 신는 덧신이다. 투혜의 형태는 신발을 오염이나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는 덧신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발보다 크기가 크고 가죽을 겉감으로 사용하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가죽으로 만들어 귀하게 여겨진 투혜는 왕이 사신, 관리에게 내리는 중요한 하사품이기도 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거나 사신이 왔을 때 피화(皮靴)에 투혜를 갖추어 하사하곤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상류사회의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 대슘치마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 입던 속치마이다. 대슘치마는 주로 모시로 만들었는데 색깔은 모시 본래의 색깔인 소색(素色)이나 흰색으로 하였다. 대슘치마의 형태는 끌리지 않을 정도 길이의 모시 12폭으로 지었다. 치마 아랫단에는 창호지 또는 넝마 등을 두껍게 겹붙인 ‘배악비’를 높이 4cm, 길이는 치마폭 정도로 만들어 풀을 먹인 모시로 붙였다. 대슘치마 밑단에 다는 백비단과 빳빳한 창호지는 여러 겹 입은 속옷과 치마를 받쳐 주어 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준다.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같이 입으면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부풀려졌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