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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부산 >금정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성곽 금정산성
    해발 801m의 금정산 꼭대기에서 서남쪽 계곡을 따라 돌로 쌓은 석성으로 전체길이는 약 18km이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동래읍성과 더불어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국내에서 가장 큐모가 큰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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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문화재가 살아 숨쉬는 남한산성
    남한산성 내에는 성곽시설은 물론 산성의 중심 건물인 행궁을 비롯하여 사직, 관아, 옥, 객사, 사찰, 정자, 창고, 종각, 연못 등이 설치되었다. 4개의 장대 중 하나인 수어장대(서장대)는 인조 때 단층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1751년(영조 27)에 2층으로 중건하였다. 인조 시기 축성 시작과 함께 성곽 쌓는 일을 주로 맡은 승병을 주둔시켜 수성에 필요한 훈련을 했다. 이때 승병 주둔을 위해 전부터 있던 망월, 옥정사 외 7개의 사찰이 새로 들어섰다. 이외에도 현절사, 청량당, 침괘정, 지수당, 연무관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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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조선왕조의 권력을 보여준 조선성곽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을 결정하고, 그해 10월에는 국왕과 정부관리들이 한양으로 옮겨갔다. 조선 전기에는 산성 축성이 크게 유행하여 태종 10년경을 전후로 북방의 여러 거점 성곽과 경상도·전라도에 대규모 산성을 축조하여 약 111개의 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 산성은 점차 퇴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바닷가에 읍성 축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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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노원구

    일제시기 광산전문가 양성의 요람, 경성광산전문학교는 왜 노원에 위치했을까?
    경성광산전문학교는 1939년 조선총독부가 전시 광물 수요 충족을 위해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광산학과를 분리·독립시켜 설립한 관립 전문학교로, 채광·야금·광산기계 3개 학과를 두고 실무형 기술자를 양성하였다. 1943년 현 노원구 공릉동으로 이전했으며, 해방 후에는 한국인 교원으로 전원 교체되었고, 194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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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익산시

    호남 최초 기차역이 익산에 생긴 이유는?
    익산은 오랫동안 교통의 도시 또는 호남의 관문으로 불렸다. 호남고속도로의 첫 나들목이 익산 IC이며, 전라도의 첫 KTX 정차역도 익산역이다. 전라북도의 동부권은 산악지대이고 서부권은 평야 지대다. 이에 철도와 도로를 만들기 가장 좋은 지리적 여건을 갖춘 곳이 익산이라는 점은 지도를 펼쳐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익산의 도시화는 과거 이리라고 불리던 작은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이 점은 대전도 마찬가지이다. 일제는 왜 한적한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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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산시

    국가폭력의 근대화 – 안산 선감학원 자리
    경기도 단원구 선감동에 일제 강점기 말 설치된 선감학원은 ‘부랑아 수용소’였다. 식민지 행정 기관과 경찰은 길거리에서 자의적 잣대로 청소년들을 단속해 정확한 신원 확인 없이 선감도로 보냈다. 선감도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들어선 선감학원은 수용된 청소년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다. 소년들은 가혹한 매질과 배고픔에 시달렸으며, 바다를 건너 탈출하려다가 익사한 경우도 많았다. 선감학원은 심한 구타로 숨지거나 익사한 수용생들을 암매장했다. 해방 후에도 식민지 시절의 관행은 그대로 이어져 1982년 폐원될 때까지 선감학원은 행정기관과 경찰이 조사 없이 보낸 하층민 청소년들을 수용했다. 현재 선감학원 자리는 경기창작센터로 변했다.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가 1989년 자전적 소설로 선감학원의 비극을 알렸다. 하지만 지금도 선감학원에서 일어났던 참상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에게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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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수군재진출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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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구례군

    구례에서 시작된 이순신의 조선 수군 재건
    구례읍에는 ‘조선수군재건출정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원은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 재건’을 시작한 여정의 출발점이 구례였음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날 가장 먼저 들른 곳이 구례의 석주관성이었다. 또한 구례 출신의 손인필 부자는 장군을 따라 진도까지 동행하며 큰 공을 세웠으나, 노량해전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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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마포구

    국가의 재정을 좌지우지했던 궁방전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어업이라는 생업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경제적 가치이다. 특히 조선후기 상업자본이 출현하면서 자본가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어업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대로 어업에서 다양한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궁방전이다. 주요 어장과 어살 등에서 걷어 들인 세금은 궁방을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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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자녀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문서, 경북 경주 손소선생분재기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마을 손동만 가옥에는 손소선생분재기가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손소는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워 노비와 전답 등을 하사받고 부를 축적하여 사회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손소선생분재기는 자녀 5남 2녀가 남녀 구별 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나누게 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조선 전기의 혼인사, 사회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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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제약이 많았던 조선시대의 혼인풍속
    조선시대에는 혼례에 많은 제한이 있었다. 계급과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다양한 제한이 있었다. 왕실은 사대부 이하의 여인과 결혼할 수 없었고, 양반은 천민과 결혼할 수 없었다. 또 조혼 풍습을 막기 위해 나이에 대한 제한이 생겨났다. 재혼이나 이혼의 경우, 칠거지악과 자녀안 등 여성 차별적인 규정이 심했다. 남성은 쉽게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었으나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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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죽산박씨 대종가에 전해오고 있는 유물
    죽산박씨 문정공파의 대종가인 임곡동의 박홍종가에 소중하게 전수보관 되어온 상아홀과 포도연, 앵무배는 중국 명나라 영종으로부터 하사받았다는 사실이 『竹山朴氏文靖公派譜』에 보이는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그 시기는 문정공 박원정이 세조 때 명나라의 사은사로 파견되었던 1464년(세조11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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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평택시

    양세충효정문, 이대에 걸친 충과 효를 쌓은 부자를 기리다
    원주원씨의 집성촌이 있는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상리 안골에는 충과 효를 쌓은 원연(1543~1594)과 원사립(1569~1610) 부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양세충효정문(兩世忠孝旌門)이 있다. 원연은 선조 때의 무관으로 임진왜란에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아, 나라를 지켰고 전쟁 후에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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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나는 고려를 버릴 수 없나이다, 광주 범세동 묘지
    고려 말 포은 정몽주의 제자인 복애 범세동은 공민왕 18년(1369)에 과거에 합격 덕녕부윤, 간의대부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저서로 화해사전, 동방연원록이 있다. 조선왕조의 개창에 반대하여 복만동에 은거하였으며 사후 후덕군에 봉해지고 문충의 시호를 받았다. 묘지안의 문인석 특징은 조선시대 사대부 묘지의 대표적 형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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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주시

    창락도의 중심 창락역
    창락역은 조선시대 경상도 풍기(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창락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죽령 이남에 해당하는 경상북도 북부 내륙의 역로를 관할했다. 창락역이 관할하던 역은 모두 9개였다. 풍기는 죽령을 통해 영남지방과 한양으로 연결되던 영남대로의 길목이었던 만큼, 조선시대에 창락역은 많은 사람으로 붐비던 곳이다. 역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죽령 옛길을 넘는 사람들이 창락역의 역촌을 많이 찾았지만, 중앙선 철도가 개통한 이후 창락역 일대는 지나는 길손의 발길이 뜸해졌다. 최근 영주시가 죽령 옛길을 복원하고 창락역터 주변에 다양한 시설을 설치해 다시 창락리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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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흥군

    전라도 장흥의 벽사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벽사도(碧沙道)
    벽사도는 조선시대 전라도 장흥에 있던 벽사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다. 현재의 전라남도 장흥군을 중심으로 해남군, 고흥군, 강진군 등 전라남도 서남해안 일대를 통과하던 역로이며, 모두 10개의 역이 포함되었다. 중심역인 벽사역은 벽산역이었으나 조선 초기에 벽사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일부 역의 이속을 거쳐 재편성된 것이 벽사도이다. 벽사로는 동학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장흥 주변 지방의 동학도들이 이동하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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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경양도의 중심 경양역
    경양역은 조선시대 전라도 광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경양도의 찰방역이었으며, 광주광역시의 동부․남부․북부를 연결하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조선 초기 경양역이 관할했던 역은 모두 8개였다.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우산동에 경양역터가 있었으며, 광주광역시 북구에서는 아름다운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경양역터 찰방비를 새롭게 조성하는 사업을 실시했다. 경양역은 광주의 북부에서 광주로 진입하는 관문역할을 했으며, 주변에는 거대한 역촌과 함께 상설시장이 개설되었다. 상설시장은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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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장인의 이름이 새겨진 현감 원만춘 청백선정 영세불망비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연봉리에 세워졌던 현감 원만춘 청백선정 영세불망비는 탑신이 철로 만들어진 철비이다. 원만춘은 홍천현감으로 재직할 때 주민들의 과중한 역을 조정하여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이 철비에는 다른 비석과 달리 장인 내금이가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간지에 따르면 1661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 머리에는 좌우로 돌기를 표현했으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홍천군 향토사료관으로 이전,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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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 천년의 기다림
    우리옛돌박물관은 천신일 관장이 설립한 돌 조각 전문 사립 박물관이다. 2000년 개관 당시에는 ‘세중옛돌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용인에 있었으나, 2015년부터 성북구로 옮겨 이름을 바꾸고 전시, 연구, 교육 활동을 더욱 활발히 벌이고 있다. 소장품으로는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벅수 등이 있는데 이 중 47점은 천신일 관장의 노력으로 일본에서 환수받은 것들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은 오랫동안 관심받지 못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우리의 소중한 옛 돌 조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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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삼척 임원산 봉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번지에 있는 임원산(141.1.m)에 임원산봉수가 있었다. 바닷가에 있는 연변봉수로 조선시대 삼척에 있던 5개의 봉수 중 하나이다. 이 봉수는 직봉이 아니라 간봉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안감시소를 설치하여 운영했고, 현재는 인근 주민들의 등산로와 해맞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일부 훼손되었으나 봉수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응봉수로 북으로 초곡산 봉수에 응하고, 남으로 가곡산 봉수에 응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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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완주군

    화구 두 개의 거대한 완주 기린 봉수
    전북 완주군 봉림산 또는 기린산이라 불리는 곳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이 산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경천리와 고산면 삼기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삼기리에는 삼기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하연이 지은 시 '고산정기' 중 이 산에 대한 칭찬이 있다. 봉수가 있던 곳은 돌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조선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구는 2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한 곳은 허물어졌고, 한 곳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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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고성군

    반암해수욕장 근처 바닷가에 위치한 고성 정양산 봉수
    정양산 봉수(正陽山烽燧)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산14-5번지의 정양산 정상에 있다. 정양산은 바닷가에 있어서 조망이 아주 좋다. 정양산 옆에는 반암 해수욕장이 있고, 정양산에는 군사시설이 있어서 그동안 조사가 잘 이뤄지지 못하였다. 각종 지리지에는 신라시대에 봉수가 축조되었다가 조선 중기에 폐지된 것으로 나오는데, 2015년에 문화재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가 인조원년에 폐하였다고 한다. 대응봉수는 북으로 술산에 응하고 남으로 죽도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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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
    추사체를 만든 조선후기 문신이자 실학자, 서화가이다. 김정희는 학문뿐만 아니라 그림과 초서, 해서, 전서, 예서 등의 글씨에까지 뛰어났던 인물이다. 학문, 예술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북한산에 있던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라는 것을 고증학적으로 밝혀냈다. 말년에 그만의 글씨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산수화와 난초 그림을 잘 그렸다. 그가 남긴 「세한도」에는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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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조선시대 궁중정재를 집대성한 김창하
    김창하는 조선 후기 가전악, 전악, 집박아가를 역임한 음악가이자 무용가다. 정조 때 악사 대건의 둘째 아들로, 대대로 음악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김창하는 가얏고와 정재를 전공하였으며, 1816년(순조16)가전악에 임명, 1827년 전악으로 임명되었다. 궁중무용을 집대성하고 정재를 안무하기도 하였으며 당시의 정재를 정리하여 정재의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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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누항사』를 지은 조선의 3대 시인 박인로
    박인로는 정철, 윤선도와 함께 조선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1561년에 태어나 1642년에 돌아가셨는데, 생의 전반부는 무인으로, 생의 후반부는 문인이자 가객으로 살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 활동에 가담했다가 1599년에는 무과에 합격해 수문관, 선전관을 했으며 조라포 만호였던 시절 선정비도 세워졌다. 40세를 전후해 이덕형을 비롯한 문인들과 교유했는데, 그때 쓴 시조로 「조홍시가」, 「선상탄」, 「사제곡」, 「누항사」, 「영남가」, 「노계가」, 「입암별곡」, 「소유정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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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허미수(許眉叟)의 지네 퇴치와 허적(許積)의 출생담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조선 시대 후기의 학자인 허목(許穆)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허미수(허목) 설화들은 대부분 그의 이인적(異人的)인 풍모를 강조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허적과 관련된 출생담도 그중 하나다. 허미수가 지네를 죽이고 난 후에 동생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허미수가 죽인 지네가 환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는 족족 없앴다. 하지만 셋째 아이를 낳자 허적의 아버지는 가문의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며 아이를 죽일 수 없다고 한다. 결국 허적으로 인해 동생의 집안은 삼족이 멸하는 화를 입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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