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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북도 >정읍시

    ‘2·8 독립선언’ 주역의 고향,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1919년 3·1 운동을 촉발시킨 2·8 독립선언의 주역 중에 나용균이 있다. 동경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나용균은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후 야당 정치인을 하며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평생 독립투사 및 정치 지도자로 국가에 공헌한 나용균은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받았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나용균의 생가와 사당이 있다. 사랑채, 문간채, 고방, 사당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사당 건축은 호남의 유명한 목수 중 한 명인 심사일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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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봉화군

    독립투사들의 회합 장소였던 산골 교회 – 봉화 척곡교회
    대한제국 탁지부 관리였던 김종숙은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에 내려가 척곡교회와 명동서숙을 세웠다. 명동서숙은 1907년 문을 열었고, 척곡교회 예배당은 1909년 건립되었다. 산골 교회인 척곡교회는 개신교 전파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봉화의병장과 독립투사들이 비밀 회합을 가지는 장소였고, 간도로 보내는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통로였다. 명동서숙은 북간도의 명동학교와 명칭이 같다. 척곡교회를 세울 당시 김종숙은 평신도였다. 척곡교회는 처음부터 일제의 삼엄한 감시 아래 놓여 있었다. 김종숙은 1920년대에 일경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해방 직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옥에 갇혔다. 김종숙의 처남인 봉화의병장 석태산은 소백산에서 잡혀 현장에서 처형됐다. 명동서숙은 정식 학교가 되지 못한 채 운영되다가 1943년 폐교되었다. 미음 자 형태로 지어진 척곡교회와 초가집 명동서숙은 산골 오지에서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6년에야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척곡교회가 소장하고 있는 문서들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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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예천군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28세 독립운동가 - 예천 윤우식 생가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남석 윤우식 선생의 생가는 16세기에 지어진 고택이다. 1922년 화재로 예전 집은 불탔고, 같은 자리에 규모를 줄여 지은 집이 현재 남아있는 기와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튼 입구 자로 배치되어 있고, 옆에는 사당(죽호당)이 있다. 윤우식은 1920년대 후반부터 농민운동을 벌였고, 1934년 ‘예천 무명당’이 결성될 때 참여하여 지보면의 조직을 책임졌다. ‘예천 무명당’은 농민을 넘어 각계각층의 조직을 통해 항일 독립운동을 벌이려 했던 조직이다. 예천 무명당은 1934년 초 일경에 발각되어 무더기로 체포되었고, 윤우식은 지도부 11인으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국했다. 낙동강이 바라다 보이는 윤우식 생가는 등록문화재 제57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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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남도 >고성군

    제2의 만해, 초월대선사 백인영
    근대 한국 불교계의 애국자 중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순절자(殉節者)인 초월(初月) 구국당(龜國堂) 백인영(白寅榮) 대선사는 1876년 2월 3일 경남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에서 부친 백하진(白河鎭)과 모친 김해심씨(金海金氏)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진양군 정촌면 관봉리에서 살다가 14세 되던 1892년에 지리산 영원사(零源寺) 주지 이남파(李南坡) 스님의 상좌로 출가하여 수학하던 중, 1910년 32세 때 경술국치를 당하게 된다. 1914년 한국민단본부(韓國民團本部)라는 구국단체를 조직하여 단장으로 선출되고 일심교(一心敎)를 창안 해 일심교를 선양하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르며 혹독한 고문으로 거의 페인이 되어 서울 은평구의 진관사(津寬寺)와 신촌 봉원사(奉元寺)에 은신한다. 그 후, 용산철도사건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대전형무소로 이감되고 다시 청주형무소로 이감하여 3년 형의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6월에 향년 66세를 일기로 옥사를 하나 시신마저 찾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1986년 12월 16일 대통령건국포장을 수여했으며 경남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에 백초월대선사(白初月大禪師)의 순국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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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북도 >정읍시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천석꾼 아버지와 아들-정읍 영주정사와 영양사
    전라북도 정읍시의 영주정사와 영양사는 대한제국기에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영주정사는 창암 박만환이 1903년에 설립했고, 영양사는 1909년 지어졌다. 영주정사는 경학을 통해 국권 회복을 도모하려는 목적 아래 6년 동안 130명을 길러냈다. 당대 석학 간재 전우가 제자들을 지도했고, 창암은 사재를 털어 지원했다. 창암은 동학혁명에 이어 의병운동, 독립운동 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한 천석꾼이었다. 창암의 아들 금둔 박승규 역시 몸소 독립운동을 꾀했으며, 1919년 승동학원을 설립해 교육 구국에도 힘을 쏟았다. 영주정사와 승동학원은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를 상당수 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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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도 >강릉시

    독립운동에 앞장 선 서화가 박기정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서화가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 예서(隸書) 등 각 서체에 두루 능하였고, 사군자(四君子)를 비롯하여 괴석(怪石)에 이르기까지 문인화에도 뛰어났다. 난을 칠 때는 뿌리가 드러난 노근란을 주로 그렸는데, 이는 일제식민지인 조선 땅에는 난초를 심지 않겠다는 지조의 표현이었다. 을미의병에 참여했고 독립운동에 앞장선 우국지사이기도 했다. 17세 때부터 강원도에 살면서 평생 강원도를 떠나지 않은 강원도의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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