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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1954년 이후부터 통용된 애칭 ‘캠프 하야리아’
    1950년 6월 6·25전쟁이 발발한 뒤 캠프 하야리아에 처음 주둔한 미군은 부산과 가까이에 있던 제8069보충대였다. 보충대는 서면경마장 자리의 일본 군용지(軍用地) 동편에 배치됐다. 개전 초기라서 시설과 장비가 태부족이었다. 숙소가 따로 없어서 천막과 목조건물에서 지냈다. 미 육군 주력부대인 미 24사단은 1950년 7월 부산에 상륙했다. 이들은 군용지 서편에 배치됐다. 1953년 미군 부대 근무자의 증언에 따르면, 휴전 이후 1954년 보충대가 해체되면서 보충대 부지까지 한 부대가 사용했다. 그때부터 캠프 하야리아가 부대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 애칭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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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광복 후에도 이어지다
    서면경마장은 개장 초기부터 말썽거리였지만, 광복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1946년 봄에는 국군을 위한 경마장으로, 1956년에는 미군 하야리아 부대 동쪽 범전동 산2번지 골짝을 깎아 경마장으로 썼다. 360m 미니 트랙이었지만 명맥은 ‘300번지’와 함께 오래오래 이어졌다. “경마장’ 가자” 또는 “300번지 가자” 그러면 엔간한 기사는 알아들을 정도로, ‘경마장’과 ‘300번지’는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범전동 300번지’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생긴 집창촌이었다. 캠프 하야리아가 건재하던 시절엔 300번지가 범전동의 중심이었다. 인근에 포장마차, 미용실, 주점 등 다양한 업종이 몰려들어 큰 호황을 맞았고, 서구 완월동, 해운대 609번지와 함께 부산의 3대 집창촌으로 꼽혔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부터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부산 대표 시민공원이 들어선 지금은 ‘부산 1번지’로 부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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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지역사회의 이해를 공동으로 추구하는 계
    계는 상호부조라는 주된 목적 아래 취미 또는 생활양식의 공통분야에서 성립되는 모임을 말한다. 계의 성격은 조합 또는 종친회・사설금융기관의 성격을 띤 것으로 그 종류를 보면, 친목・단결을 위한 계로서 종족일문의 종계(宗契)인 종중계(宗中契)・종약계(宗約契)・문중계(門中契) 등이 있고, 동년자의 동갑계, 동갑의 노인의 친목을 위한 노인계(老人契), 동성자(同姓者)의 화수계(花樹契)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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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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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영광 원불교 영산대각전
    전라남도 영광군 영산성지는 원불교 5대 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서, 원불교가 태동한 근원 성지로 불린다. 소태산 박중빈 대법사가 태어난 곳인 동시에, 큰 진리를 깨달아 종교 활동을 시작한 곳이 영산성지다. 영산성지의 영산대각전은 1936년에 건립된 종교 집회 시설이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강당인 영산대각전은 불단 부분의 법신불 일원상 외에는 장식이 없는 일체형 공간이다. 영산대각전은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고, 우주의 이법이자 힘인 일원상의 교리만을 간결하고 정갈하게 전하는 민족 종교의 모습을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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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파시’를 아십니까,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법성포 일본식 여관은 1930년대 초 ‘기쿠야’라는 상호의 숙박업소였다. 당시 법성포는 파시가 불야성을 이루던 흥성하는 항구였으므로 여러 곳의 여관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기쿠야 여관만 남았다. 2층으로 지어진 기쿠야 여관은 한눈에 일본식을 직감하게 하지만 해방 이후 소유권을 갖게 된 집안이 살림집으로 사용하면서 꾸준히 손질하고 가꾸어온 덕에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법성포의 옛 영화는 쇠락했지만, 건축물은 남아 근현대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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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여수시

    마음 맞잡은 청년들, 여수 구 청년회관
    여수 구 청년회관은 1931년 여수청년회가 주동하여 건립되었다. 여수 지역은 1920년대 초부터 3.1운동에 관계되어 낙향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이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계몽 활동과 민족의식 고취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수 구 청년회관은 전라좌수영 좌청의 연못(덕지)이 있던 자리에 2층으로 건립됐다. 1층은 서양식, 2층은 한식 팔작지붕인 여수 구 청년회관은 건립 이래 여수의 교육·문화 공간으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 회관의 2층은 철거된 전라좌수영 좌청의 자재를 그대로 살려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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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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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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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자여도의 중심 자여역
    자여역은 조선시대 경상도 창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자여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경상남도 동부의 남해안과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고을을 통과하는 역로를 관할했다. 자여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역로가 뻗어 있었다. 자여역이 있던 마을에는 찰방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 3기가 남아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역사의 고장’이라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자여역터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이후 다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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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일제강점기의 시장
    일제 강점기는 조선의 전통시장이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다. 특히 일제는 조선의 모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1914년 『시장규칙』을 발포(發布)한다. 이 규칙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상거래의 자유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육의전과 객주는 몰락하고, 그 자리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공설시장과 상설점포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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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은 고려 시대와 유사한 형태로 경시와 향시 그리고 국제시장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을 육성하면서 전기보다 발전했다. 특히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장악했고, 지방의 향시들은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시장에서는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일본 및 중국과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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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의 시장
    고려시대는 화폐를 중심으로 한 매매가 활발하였다. 고려시대의 시장도 신라나 통일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시’를 설치하였다. 개성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던 ‘방시[경시]’와 각 주현에는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기 위한 ‘향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한편 고려는 중국을 비롯해서 일본, 중동의 사라센제국 등과도 무역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들과 교역을 하던 국제시장인 ‘호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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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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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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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 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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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광복 후에도 이어지다
    서면경마장은 개장 초기부터 말썽거리였지만, 광복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1946년 봄에는 국군을 위한 경마장으로, 1956년에는 미군 하야리아 부대 동쪽 범전동 산2번지 골짝을 깎아 경마장으로 썼다. 360m 미니 트랙이었지만 명맥은 ‘300번지’와 함께 오래오래 이어졌다. “경마장’ 가자” 또는 “300번지 가자” 그러면 엔간한 기사는 알아들을 정도로, ‘경마장’과 ‘300번지’는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범전동 300번지’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생긴 집창촌이었다. 캠프 하야리아가 건재하던 시절엔 300번지가 범전동의 중심이었다. 인근에 포장마차, 미용실, 주점 등 다양한 업종이 몰려들어 큰 호황을 맞았고, 서구 완월동, 해운대 609번지와 함께 부산의 3대 집창촌으로 꼽혔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부터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부산 대표 시민공원이 들어선 지금은 ‘부산 1번지’로 부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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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대통령의 휴양지, 제주 이승만 별장
    한국 대통령의 전용 별장은 이승만 때부터 여러 곳에 있었다. 그중 귀빈사라고 불렸던 제주도 이승만 별장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목장 안에 있는데, 1957년 특호관사로 만들어진 것이다. 진입로 양편에 높이 15m 정도의 측백나무가 도열해 풍광이 좋으며 별장 건물은 벽돌조 박공지붕 형태의 전원형 단독주택이다. 이승만은 1959년 마지막으로 별장을 찾았고 이듬해인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이승만이 수많은 양민을 희생시킨 제주 4·3사건의 책임자라는 논란 속에서 별장은 50년 넘게 방치되다가 2014년 정비 사업이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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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의 솟은 해를 가슴에 안고”,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은 1950년 8월 5일 한국전쟁 시기에 제주도에서 모병된 해병대 3기가 훈련을 받은 곳이다. 돌과 시멘트로 지은 막사와 세면장이 남아 있다. 세면장은 출입구 동선과 목욕 시설 등이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됐다. 훈련시설에서 ‘지옥훈련’을 받은 해병대 3기 1,500명은 1950년 8월 30일 입대한 4기 1,500명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한국군 해병대는 인천과 서울 수복에 이어 1951년 강원도 양구군 ‘도솔산지구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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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 덮어야 할 일제 군사 요새,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는 미군의 공습 시 지휘소 겸 통신시설로 건설되었다. 알뜨르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바다 건너 상하이, 난징 등을 폭격하기 위해 비행기들이 출격하던 장소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제는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미군의 제주도 점령을 결사적으로 막는다는 작전을 세웠다. 알뜨르비행장과 인접한 송악산 해안에 ‘인간 어뢰’ 공격을 위한 동굴 진지를 만드는 등 제주도 곳곳을 요새화했다.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를 비롯한 일제의 군사 시설 건립에는 제주도민들이 강제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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