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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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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남도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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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광역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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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 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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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근대역사

연관자료

  • 지역문화 이야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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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항쟁과 학살 사이에 서있는 돌담 – 제주 4‧3 수악주둔소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제주도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제주 4‧3항쟁의 비극이 숨어있다. 4‧3항쟁을 생생히 증언하는 문화재가 소화산인 물오름(수악)에 있다. ‘제주 4‧3 수악주둔소’다. 수악주둔소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존재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기록에 따르면 수악주둔소는 무장 세력이 궤멸 직전이던 1949년 가을경에 만들어졌다. 한편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수악주둔소는 한국전쟁 이후 축조되었다. 경찰이 얼마 남지 않은 무장대 토벌작전을 위해 1952년 4월 제주에 32개의 주둔소를 설치하였는데, 수악주둔소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 1952년 창설된 100전투경찰사령부가 수막주둔소를 확장, 수리하여 본격적인 소탕작전을 펼쳤다. 수악주둔소는 제주 4․3사건 유적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문화재청은 제주 4‧3 수악주둔소를 등록문화재 제716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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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남양주시

    천년 고찰 속의 현대식 법당, 남양주 봉선사 큰법당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는 고려 광종 시기인 서기 697년에 창건된 운악사에서 비롯된 천년 고찰이다. 조선 예종 때 세조의 능인 광릉을 받드는 절로 중창되어 봉선사가 되었다. 봉선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전란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중건됐다. 봉선사 큰법당은 운허 스님이 주지이던 1970년 지어졌다. 석가여래를 모신 전각인데도 운허 스님이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큰법당이라는 풀어 쓴 이름을 붙였다. 봉선사 큰법당은 철근 콘크리트로 전통 목조 사찰을 정교하게 재현해냈다. 큰법당의 기단과 앞 층계, 뒤편 화계는 조선시대 것이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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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가평군

    댐이 된 근로보국대의 땀, 가평 청평댐
    청평댐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건설된 북한강 수계 최초의 댐이다. 수문만 25개이고, 높이가 31m, 길이가 470m인 대형 댐을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근로 보국대라는 미명 하에 강제 동원되었다. 근로 보국대는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조직된 노동력 수탈 기구였다. 그들의 희생으로 청평댐이 건설되었고 그로 인해 거대한 청평호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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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안양시

    건축예술과 공장의 만남, 안양 유유산업 옛 공장(현 김중업건축박물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옛 유유산업 공장 부지는 신라 시대 고찰 중초사와 고려 시대 대가람 안양사가 있던 자리다. 유유산업 유특한 회장은 1950년대 말 석수동에 의약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고, 젊은 건축가 김중업에게 설계를 맡겼다. 프랑스 파리에서 르코르뷔지에로부터 건축과 도시를 배우고 1956년 돌아온 김중업은 유유산업의 건물 5개 동을 설계했다. 사무동, 생산동, 수위실, 굴뚝, 보일러실을 설계한 김중업은 ‘구축체계의 노출’과 ‘투명성’이라는 자신의 건축 정신을 건축물에 구현해 냈다. 유유산업 이전 후 공장 건물은 현재 김중업 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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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근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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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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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세종특별자치시

    산업설비의 전모가 간직된 조치원읍의 산업유산 - 세종 구 산일제사 공장
    구 산일제사 공장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최초로 등록문화재가 된 산업유산이다. 조치원은 경부선 역이 설치되면서 교통요충지로 부상했다. 산일제사는 조치원읍 남리(당시 적송정)에 1927년 세워졌다. 비단실을 생산하는 업체로서 종업원 50명 규모였다. 해방이 되면서 산일제사는 문을 닫았고,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조치원여자고등학교(현 세종여자고등학교)의 임시 교사로 사용되었다. 1958년에는 메리야스를 생산하는 삼중편물이었다가, 1969년부터는 크라프트 종이를 생산하는 한림제지로 바뀌었다. 한림제지가 2000년 문을 닫은 뒤 방치되다가 세종특별자치시가 2015년 매입해 조치원읍 도시 재생사업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구 산일제사 공장 터는 2019년 공장 건물 1개 동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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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부산광역시 >서구

    뜨거운 가마솥 같았던 피란 수도,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총 1,023일간 피란 내려온 대한민국 정부의 청사로 쓰였다. 원래 1925년 경상남도 도청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경상남도 도청의 체육관 격인 무덕관은 임시수도의 국회로 사용되었다. 피란 수도 부산은 급격히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임시수도 정부청사와 국회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둘러싼 정치 소용돌이[부산 정치파동]로 들끓었다.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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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부산광역시 >금정구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 김중업이 설계한 - 부산대학교 구 본관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교 구 본관은 김중업이 설계한 작품이다. 금정산 자락의 경사지를 자연스럽게 이용해 1층을 필로티로 구성하고, 주 출입구 부분 좌우를 커튼월 통유리로 처리했으며, 중앙홀의 계단은 날아오르듯 설치한, 빼어난 건물로 평가된다. 더욱이 건물을 지은 시기가 1950년대 말 한국전쟁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때여서, 건물의 규모와 건축 방식은 부산대학교 학생과 관계자뿐만 아니라 부산시민들에게도 자랑거리가 되었다. 부산대학교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당시 미 군정청 경상남도 학무국장인 윤인섭이 주도하여 세워졌다. 대학 설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시민들은 기꺼이 성금을 내놓았다. 윤인구는 1953년 부산대학교가 국립 종합대학으로 승격할 때 초대 총장이 되어 대학 발전에 정성을 쏟았다. 윤 총장은 미군 장성을 설득하여 현재의 학교 부지를 확보했고, 학생들의 기상을 키워주기 위해 종(鐘) 형태의 캠퍼스에 종을 울리는 추의 궤적을 형상화한 대학 본부 건물을 구상했다. 김중업이 실현시킨 구 본관은 1995년까지 대학본부 겸 강의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인문대학 건물로 쓰인다. 부산대학교 구 본관은 2014년 등록문화재 제641호로, 역시 김중업이 설계한 무지개문 및 수위실은 제64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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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 이바구길의 곡절 많은 터줏대감-부산 구 백제병원
    부산역 맞은편 초량 이바구길 초입에 위치한 백제병원 건물은 1927년 지어졌다. 백제병원은 부산 최초의 개인병원으로서, 부산부립병원, 철도병원과 함께 부산 3대 병원으로 꼽혔다. 백제병원 건물은 4층 건물과 잇달아 지은 6층 건물을 이어 붙였는데, 단층과 2~3층이 고작이던 당시 부산에서 우뚝 솟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설립자인 외과의사 최용해가 건축 과정에서 무리하게 빚을 끌어다 쓴데다 행려병자 시신으로 인체 표본을 제작해 보관하다 적발되면서, 급기야 설립자가 병원 문을 닫고 일본으로 도주하였다. 백제병원 건물은 중국인이 인수하여 봉래각이라는 청요릿집으로 개조되었다. 객실을 120개나 설치한 봉래각 또한 부산 명물로 명성을 날렸으나, 중일전쟁 이후 주인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1942년 폐업했다. 이후 일본군 장교숙소였다가 해방 후에는 부산치안사령부, 전쟁 시기에는 중화민국 임시 대사관으로 쓰였다. 1953년 신라예식장으로 용도가 바뀌었으나, 예식장도 196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1972년에는 이웃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의 3분의 2가 불에 타, 5층 이상은 철거되었다. 다행히 골조와 1~2층은 옛 모습을 모두 잃지는 않았다. 2009년 새 주인이 인수하였고, 복원에 준하는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부터 카페 겸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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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남도 >영광군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영광 원불교 영산대각전
    전라남도 영광군 영산성지는 원불교 5대 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서, 원불교가 태동한 근원 성지로 불린다. 소태산 박중빈 대법사가 태어난 곳인 동시에, 큰 진리를 깨달아 종교 활동을 시작한 곳이 영산성지다. 영산성지의 영산대각전은 1936년에 건립된 종교 집회 시설이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강당인 영산대각전은 불단 부분의 법신불 일원상 외에는 장식이 없는 일체형 공간이다. 영산대각전은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고, 우주의 이법이자 힘인 일원상의 교리만을 간결하고 정갈하게 전하는 민족 종교의 모습을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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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남도 >영광군

    ‘파시’를 아십니까,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법성포 일본식 여관은 1930년대 초 ‘기쿠야’라는 상호의 숙박업소였다. 당시 법성포는 파시가 불야성을 이루던 흥성하는 항구였으므로 여러 곳의 여관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기쿠야 여관만 남았다. 2층으로 지어진 기쿠야 여관은 한눈에 일본식을 직감하게 하지만 해방 이후 소유권을 갖게 된 집안이 살림집으로 사용하면서 꾸준히 손질하고 가꾸어온 덕에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법성포의 옛 영화는 쇠락했지만, 건축물은 남아 근현대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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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남도 >여수시

    마음 맞잡은 청년들, 여수 구 청년회관
    여수 구 청년회관은 1931년 여수청년회가 주동하여 건립되었다. 여수 지역은 1920년대 초부터 3.1운동에 관계되어 낙향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이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계몽 활동과 민족의식 고취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수 구 청년회관은 전라좌수영 좌청의 연못(덕지)이 있던 자리에 2층으로 건립됐다. 1층은 서양식, 2층은 한식 팔작지붕인 여수 구 청년회관은 건립 이래 여수의 교육·문화 공간으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 회관의 2층은 철거된 전라좌수영 좌청의 자재를 그대로 살려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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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남도 >밀양시

    표충비의 눈물
    경남 밀양시 무안면에는 땀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표충비가 있다. 조선 영조 때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충비에는 나라에 큰 일이 날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역사적으로 갑오농민전쟁, 한일합방, 3.1만세운동, 광복, 한국전쟁 등의 시기마다 이 비석이 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 표충비의 눈물을 직접 본 경험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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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고양시

    추억여행을 떠나는 곳, 원릉역
    원릉역은‘원당’과 ‘서삼릉’의 한 글자씩을 합쳐 만든 역명으로, 1961년 세워진 오래된 기차역이다. 고양시와 서울을 잇는 교외선의 주요 역으로서 한때는 하루 수천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곳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역장님이 계셨던 곳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영화 [파수꾼]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여객영업이 완전히 중단된 뒤 역사의 출입과 횡단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철책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2014년 지하보도가 만들어지면서 불편이 해소되고, 지금은 주민들의 산책과 운동 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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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송파구

    고난의 대홍수를 기억하다, 을축년대홍수기념비
    1925년 7월 7일부터 9월 초까지 태풍이 대한민국을 강타, 4개 태풍으로 대한민국 일대에 피해가 컸다. 한강일대에서 일어난 사상 최고의 대홍수였다. 4회에 걸친 호우로 한강이 범람하고 이재민 발생, 가옥침수, 논밭유실 등 피해가 막심했고 그 재해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세워진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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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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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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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남도 >창원시

    자여도의 중심 자여역
    자여역은 조선시대 경상도 창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자여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경상남도 동부의 남해안과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고을을 통과하는 역로를 관할했다. 자여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역로가 뻗어 있었다. 자여역이 있던 마을에는 찰방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 3기가 남아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역사의 고장’이라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자여역터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이후 다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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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안동시

    선비 정신과 기독교 문화가 만나다 - 안동교회 예배당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교회는 1908년 김병우가 안동 서문 밖에 기독서점을 열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림의 고장 안동에 책방을 낸 미 북장로회의 선교전략은 주효했다. 김병우는 1909년 첫 예배를 드렸다. 안동교회는 그날을 창립일로 한다. 북장로회는 1909년 성소병원도 개원했다. 1911년에는 계명학원을 개원해 초등교육을 시작했다. 서점, 의료, 교육을 앞세운 덕분에 안동교회는 자리를 잡아 나갔다. 1919년 3·1운동 당시 안동장터 시위는 김영옥 목사를 비롯해 안동교회 교인들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안동교회 예배당은 1937년 화강암 예배당으로 건립되었다. 안동교회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교회가 안동 지역에서 20여 곳을 헤아린다. 문화재청은 안동 개신교 역사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안동교회 예배당의 가치를 인정해 201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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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울릉군

    수탈의 역사와 근대의 궤적,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
    19세기 이전부터 울릉도의 어업자원과 산림자원을 탐내던 일본은 1906년 울릉도에 자유 이주어촌을 형성했다.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은 울릉도에서 고리대금업과 벌목업으로 부를 쌓은 사카모토 나이지로라는 인물이 1910년대에 지은 주택이다. 사무실과 접객 공간 겸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집은 2층 목조 건물로서 전형적인 일본 상점 주택[마치야]으로 분류된다. 건축 기법은 현재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본 전통 방식과 수법을 보여준다. 울릉도 도동항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지어진 사카모토의 집은 해방 이후 한국인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변형되기는 했으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은 현재 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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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봉화군

    독립투사들의 회합 장소였던 산골 교회 – 봉화 척곡교회
    대한제국 탁지부 관리였던 김종숙은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에 내려가 척곡교회와 명동서숙을 세웠다. 명동서숙은 1907년 문을 열었고, 척곡교회 예배당은 1909년 건립되었다. 산골 교회인 척곡교회는 개신교 전파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봉화의병장과 독립투사들이 비밀 회합을 가지는 장소였고, 간도로 보내는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통로였다. 명동서숙은 북간도의 명동학교와 명칭이 같다. 척곡교회를 세울 당시 김종숙은 평신도였다. 척곡교회는 처음부터 일제의 삼엄한 감시 아래 놓여 있었다. 김종숙은 1920년대에 일경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해방 직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옥에 갇혔다. 김종숙의 처남인 봉화의병장 석태산은 소백산에서 잡혀 현장에서 처형됐다. 명동서숙은 정식 학교가 되지 못한 채 운영되다가 1943년 폐교되었다. 미음 자 형태로 지어진 척곡교회와 초가집 명동서숙은 산골 오지에서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6년에야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척곡교회가 소장하고 있는 문서들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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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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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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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

    선덕여왕에 칼을 겨눈 비담의 난이 일어난 경주 명활성
    명활산성은 북쪽 봉우리 해발 252m의 흰둥산과 남쪽 봉우리 해발 269m의 장군봉 등 2개의 산정을 감싸고 있는 석축산성이다. 길이는 4.5km에 달하는 대규모 산성이며 551년(진흥왕 12)에 축성되었다. 이 산성은 천연의 요새로 수도방어의 중요한 역할 뿐만 아니라 왕이 일정기간 거처했으며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 그 근거지가 되었던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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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구의 경주 공격을 막는 관문성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722년(성덕왕 21) 쌓은 석성이다. 관문성은 ‘장성’과 ‘신대리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장성’은 경주시 외동읍 서편부터 남쪽을 따라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 아래까지 뻗어있는 약 12km의 석성이고 ‘신대리성’은 해발 590m 의 ‘성말랭이’를 에워싼 타원형 석성으로 약 1.2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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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를 지키는 경주읍성
    경상북도의 중심도시인 경주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이다. 완전한 평지성으로 방형이며 성벽 양쪽을 돌로 쌓아올리는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2,412m에 이른다. 경주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경상도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행정읍성이었다. 특히 성벽 주위에 너비 3m의 해자를 둘렀는데 지금도 북쪽은 하수구로 이용되며 동쪽에도 일제강점기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읍성의 남문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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