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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부산시민공원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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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
    캠프 하야리아에는 기지촌이 두 군데 있었다. 정문 맞은편 연지동과 후문에 해당하는 게이트 3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범전동이었다. 범전동 기지촌의 시작은 마을 빨래터였다. 범전동 주민 박 할머니에 따르면, 한국 군인에게서 빨래해달라는 부탁을 먼저 받았고, 이후 미군의 부탁을 받았다. 군인도 좋고 주민도 좋은 상생의 시작이었다. 6·25전쟁 초기에는 캠프 하야리아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눈치가 빨랐던 아이들은 어찌어찌 램프를 구해 와서는 1달러에 팔았다. 영어가 짧았던 꼬마들이 미군에게 접근하면서 했던 콩글리시가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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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부여군

    “껍데기는 가라!”, 부여 신동엽 가옥 터
    부여 신동엽 가옥 터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로 유명한 신동엽 시인이 유년기부터 신접살림 시절까지 살았던 집의 터이다. 신동엽은 고통 받는 민중의 저항의식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1930년 부여에서 태어난 시인은 한국전쟁과 4·19혁명 등 격동의 역사를 겪으며 민족과 민중의 아픔을 시로 형상화했다. 간암으로 39세에 요절했지만 그의 시는 한국인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탓에 신동엽 가옥 터에 세워진 기념관과 문학관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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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서산시

    해미성지의 순교자 유해를 발굴하다 - 서산 동문동성당 상홍리공소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동문동성당 상홍리 공소는 내포 지역 천주교회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19세기 중반 형성된 상홍리 교우촌의 ‘가재 공소’로 시작되어, 1920년부터 1937년까지 본당의 역할을 했다. 본당 승격 직후인 1921년 당시 현재의 건물을 지었다. 한옥 외양에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른 성당으로 건축되었다. 1923년에는 본당 바로 앞에 3칸 솟을대문으로 종탑을 세웠다. 본당 시절인 1935년 중요한 발굴을 진행했다. 주임 사제인 범 바로 신부와 백낙선 신도회장이 병인박해를 목격한 고령의 증인들의 말대로 서산 해미 지역을 발굴하여, 순교자들의 유해를 찾아냈다. 병인박해 당시 해미에서 순교한 교인은 이름이 밝혀진 사람만 122명에 이른다. 유해는 상홍리로 옮겨졌다가 해미순교성지로 이장되었다. 상홍리 본당은 1937년 다시 공소가 되었으나, 신축 당시 지어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당시의 유물이 남아 있다. 2007년 서산 동문동 성당이 등록문화재 321호로 지정된데 이어 상홍리 공소도 33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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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곰나루 근현대사를 품다, 공주제일교회 구 예배당
    공주 제일 교회의 연원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청도 3.1만세운동의 중심지였던 공주 제일 교회는 1931년 현재의 자리에 예배당을 지었다. 공주 제일 교회는 일제강점기 말에는 교회가 폐쇄되는 비운을 겪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교인들은 1956년 개축을 하면서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예배당을 복원하였다. 그 파란만장했던 예배당은 현재 공주 제일 교회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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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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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포천 영중 금광의 역사와 기억: 일제강점기~해방이후까지 현장 증언
    영중 광산은 영중면에 위치하며, 일제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소규모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후 일본의 재벌 기업 스미토모(住友)가 영중 광산과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의 일광광산을 매입해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광맥은 총 여덟 개로, 동광과 리비끼에서는 금·은·동이 함께 생산되었고, 운까이와 점골에서는 금만 채굴되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발발 후 전략 물자 확보를 위해 이 광산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해방 이후에는 박동성 씨의 부친과 박동성 씨가 대를 이어 광산을 운영해왔으나, 1972년 경제성이 낮아지면서 폐광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관련 시설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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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중구

    부침 거듭한 화교의 역사, 대구화교협회
    대구화교협회는 대구시 중구 진골목에 있다. 화교가 대구에 이주한 것은 1905년부터인데 이들은 상업, 건축청부업, 주물업 등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펼쳤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은 원래 1929년 서병국이 건립한 붉은 벽돌조 2층 양식(洋式) 주택인데 1949년경 대구화교협회가 매입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의 설계와 시공은 중국인 건축기술자 모문금이 맡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돌은 평양에서 구워오고 나무는 금강산에서 베어왔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대구화교협회는 얼마 남지 않은 1930년대 근대건축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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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동구

    한국 근대철도의 달빛, 대구 구 반야월역사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영천과 경상북도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반야월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반야월은 공식 지명이 아니지만 후삼국 시대부터 전해지는 전설로 유명한 지명이다. 1917년 대구~하양 간 협궤 선로가 놓이면서 기차가 반야월을 지나가게 되었다. 반야월역사는 1938년 협궤가 광궤로 확장 개통될 때 건립되었다. 대구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주민들의 통근과 통학로인 동시에 화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이었다. 1960년 화물전용 홈이 개설되었고, 1971년부터는 안심 지역의 석탄저장소이자 수송 역이 되었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박공이 돋보이는 반야월역사는 일제강점기 후반 남부지방의 표준 역사로 꼽힌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폐쇄되었으나, 2010년 인근 대구선 반야월 공원 내로 이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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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중구

    청라언덕과 대구 사과와 제중원-대구 동산병원 구관
    대구광역시 동산병원은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우드브릿지 존슨이 1899년 시작한 ‘미국약방’과 ‘제중원’에서 시작되었다. 서양 근대 의학의 힘으로 고질병이 낫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중원을 찾는 환자도 점차 증가했다. 제중원은 1903년 무렵 동산으로 위치를 옮겼다. 선교사들은 병원과 선교사 사택을 짓고,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나무 묘목을 조선 토종 능금과 접붙여 ‘대구 사과’를 탄생시켰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언덕이라 하여 청라언덕이라 불리게 된 동산에서 제중원은 동산기독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대 원장인 플레처는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1930년대에 병원을 새로 지었다. 이 건물이 2002년 등록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대구 동산병원 구관이다. 동산병원은 일제 강점기 말에는 일본군 경찰병원으로, 한국전쟁 시기에는 국립 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쓰였으나, 다시 동산병원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구 의료계를 선도하는 병원의 역할을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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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중국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중국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국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일본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일본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일본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영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영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세종근대역사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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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세종 >세종시

    산업설비의 전모가 간직된 조치원읍의 산업유산 - 세종 구 산일제사 공장
    구 산일제사 공장은 세종특별자치시 최초의 등록문화재 산업유산이다. 조치원읍 남리에 1927년 비단실 생산 공장으로 설립됐으며, 해방 후 폐업했다. 1951~1956년 조치원여자고등학교 임시 교사로 사용되었고, 1958년 삼중편물, 1969년 한림제지로 변경되어 크라프트 종이를 생산했다. 한림제지가 2000년 폐업한 후 방치되었으나,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가 매입해 도시 재생사업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2019년 공장 건물 1개 동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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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산시

    버스에 부딪혀 넘어진 꼬마기차
    일제강점기 수탈의 도구로 부설된 수인선 협궤열차는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서민들의 발이 되어준 ‘꼬마기차’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도로교통의 발달과 버스 충돌 사고 등으로 쇠퇴하여 1995년 운행을 마쳤다. 현재 그 노선은 수도권 서남부를 잇는 수인분당선으로 부활하여 안산의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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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 기록물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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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봉화군

    한양에서 태백산 사고를 연결하던 봉화로(奉化路)
    봉화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태백산 사고(太白山史庫)가 있던 경상도 봉화 지방으로 연결되던 간선도로로서, 태백산로라 불리기도 했다. 봉화로는 노선이 거의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어 최상의 교통조건을 구비한 곳이었다. 이 길은 죽령을 넘어 경상도를 잇기 때문에 한강 유역에서 상업활동을 하던 상인들에게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한강 수로와 나란히 뻗었기 때문에, 한강을 건너거나 접하면서 여러 상업이 번창한 포구를 발달시켰다. 그 가운데 송파장은 한양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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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복개와 복개(復開) 사이, 심곡천
    일제강점기가 끝나갈 무렵 일본인 오카다 타쿠(岡田卓)는 당시 부천군 소사읍에서 태어나고 소사읍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재 조선 일본인이었다. 즉 부천의 소사는 오카다의 고향인 셈이다. 1945년 당시 소사소학교를 졸업한 오카다는 그해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자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오카다는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고향을 소사에 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지내다 소사소학교를 졸업한 동창들과 함께 옛 소사읍의 전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냈다. 현재 부천문화원이 소장하고 있는 A2용지 크기의 지도가 그것이다. 이 지도에는 1940년대 당시 옛 소사읍의 하천, 도로, 취락, 건물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 지도의 주요 내용과 함께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물줄기를 해석하여 소사천 등 여러 하천의 원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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