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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한·미협정 정식 체결로 한국과 미국, 진일보하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과 미국, 일반인과 미군의 이분법적인 시각이 팽배해졌다. 한국 정부와 일반인은 지나치게 저자세였고, 미국과 미군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한국과 미국은 여러 차례 법을 마련했다. 1950년 대전협정을 맺었고, 1966년 7월에는 대전협정의 불평등성을 제거하고 내용을 대폭 보완해 군대 지위에 관한 새로운 한미행정협정을 맺었다. 유솜(USOM)과 소파(SOFA)도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협력 체계였다. 주한 원조 당국을 일컫는 유솜의 진원지가 캠프 하야리아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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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한국과 미국의 공존, 부산과 미군의 공존
    하야리아(Hialeah)는 무슨 뜻일까. 미국 인디언 언어로 아름다운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다. 2차대전 당시 유명했던 미국 플로리다주의 하야리아 경마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군이 처음 부산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16일이었다. 해방되고 나서 한 달 후였다.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일부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했다. 미군이 다시 돌아온 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연합군으로 참전한 미군은 서면경마장 자리에 기존 조성했던 주둔 기지를 캠프 하야리아로 명명하고, 군수물자 보급과 후방 기지 지휘 임무를 맡았다. 캠프 하야리아는 이후 반세기 넘게 군사 기능을 위한 독립적 공간으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부산과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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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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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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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 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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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보천교 교당을 헐고 다시 지은 집,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1940년 고부 지방의 대지주였던 조상원이 지은 집이다. 조상원이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을 1938년경에 사들여 해체한 다음 재목을 활용해 2년에 걸쳐 주택으로 고쳐 지었다.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던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은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썼으며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조상원의 손자인 조재홍 일가가 외지로 이주하면서 집은 방치되었으나 2005년 가옥의 종교·건축·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며 2008년과 2010년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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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슬픈 역사의 사이렌, 임실 오수망루
    임실 오수망루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1940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의견(義犬)의 고장 오수리는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천도교 교세가 커서 반일정신이 강했던 곳이다. 또한,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해서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순사주재소를 만들고 망루를 세웠다. 한국전쟁 시기에 오수망루는 빨치산을 경계하는 초소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화재 감시를 하거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높이 12m인 오수망루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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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제국의 마름들'이 설치던 곳,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 일본인 대지주 하시모토가 지은 건물이다. 하시모토는 1910년대부터 김제에 들어와 농민 수탈과 고리대금업으로 죽산면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농장 사무소는 근대 절충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제국의 마름들’이 만경평야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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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역사콘텐츠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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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동구

    무등산 깃대봉의 민립대학,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무등산 깃대봉 중턱의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은 광주의 랜드 마크 가운데 하나다. 370m 길이에 19개 박공 건물이 늘어선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본관 19개 건물 가운데 초기에 세워진 5개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 94호다. 5개 동은 1947년부터 1955년까지 8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이어진 건물들은 후에 증축한 것이다. 조선대학은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진행된 민간 차원의 대학설립 운동이 결실을 맺은 최초의 사례다. 당시 호남 각지에서 7만2,000명이 조선대학 설립동지회에 가입해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이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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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동구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별관·체육관
    광주 서석초등학교는 광주광역시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공립학교다. 1896년 소학 교령에 따라 공립소학교로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광주 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1930년 강당 겸 체육관[현재의 서석당]이 세워졌고, 1935년 본관, 1943년 별관이 건축되었다. 학교의 이름은 1938년 광주 서석 공립 심상소학교가 되어, 서석이라는 유서 깊은 이름을 붙였다. 서석은 무등산의 이칭이자, 광주의 옛 이름이 서석읍이다. 해방 후에도 서석이라는 교명은 계속 사용되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과 강당, 별관은 정성 들여 지은 붉은 벽돌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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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남구

    ‘서양촌’으로 들어온 근대 - 광주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식민지 근대가 도래하기 전 개신교 선교사들의 계몽적 근대가 먼저 당도한 지역이다. 미국 남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광주 선교를 위해 양림동의 땅을 사들였다.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땅값이 쌌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교회와 사택을 짓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양림동에 ‘서양촌’을 형성해 나갔다. 일제강점기 들어 광주 중심부는 조선총독부의 계획 아래 근대 도시가 되었으나, 양림동은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 제중원 등 종교와 교육과 의료를 통해 근대를 접하게 되었다. 양림동에는 기독교 근대의 자취 외에도 전통 한옥이나 문화예술인들의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고, 광주가 팽창하면서 양림동에 터 잡고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삶 또한 곳곳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양림동을 한 바퀴 돌면서 다양한 근대의 의미 지층을 탐색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근현대사 산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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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일제강점기의 시장
    일제 강점기는 조선의 전통시장이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다. 특히 일제는 조선의 모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1914년 『시장규칙』을 발포(發布)한다. 이 규칙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상거래의 자유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육의전과 객주는 몰락하고, 그 자리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공설시장과 상설점포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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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의 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은 고려 시대와 유사한 형태로 경시와 향시 그리고 국제시장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을 육성하면서 전기보다 발전했다. 특히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장악했고, 지방의 향시들은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시장에서는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일본 및 중국과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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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고려시대의 시장
    고려시대는 화폐를 중심으로 한 매매가 활발하였다. 고려시대의 시장도 신라나 통일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시’를 설치하였다. 개성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던 ‘방시[경시]’와 각 주현에는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기 위한 ‘향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한편 고려는 중국을 비롯해서 일본, 중동의 사라센제국 등과도 무역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들과 교역을 하던 국제시장인 ‘호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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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근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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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항쟁과 학살 사이에 서있는 돌담 – 제주 4‧3 수악주둔소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제주도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제주 4‧3항쟁의 비극이 숨어있다. 4‧3항쟁을 생생히 증언하는 문화재가 소화산인 물오름(수악)에 있다. ‘제주 4‧3 수악주둔소’다. 수악주둔소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존재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기록에 따르면 수악주둔소는 무장 세력이 궤멸 직전이던 1949년 가을경에 만들어졌다. 한편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수악주둔소는 한국전쟁 이후 축조되었다. 경찰이 얼마 남지 않은 무장대 토벌작전을 위해 1952년 4월 제주에 32개의 주둔소를 설치하였는데, 수악주둔소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 1952년 창설된 100전투경찰사령부가 수막주둔소를 확장, 수리하여 본격적인 소탕작전을 펼쳤다. 수악주둔소는 제주 4․3사건 유적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문화재청은 제주 4‧3 수악주둔소를 등록문화재 제716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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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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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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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의 금석문

    출처 :충청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충남 >청양군

    청양의 금석문
    충남 청양에 소재한 금석문의 사진과 이에 대한 전문가 해설을 담은 영상이다. 금석문은 쇠붙이나 돌로 만든 비석에 새겨진 글로써 옛사람들의 행적과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무등의 품에 안긴 광주북구문화유산

    출처 :광주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광주 >북구

    무등의 품에 안긴 광주북구문화유산
    광주 북구에 위치한 무등산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전남 광주 북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는데 환벽당, 취가정 같은 정자와 누각이 많기로 유명하다. 관동별곡, 사미인곡을 쓴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 등 문화재와 연관된 인물과 사건, 설화 등을 소개한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남 >함안군

    400년 전 지역 사랑이 담긴 「금라전신록」
    함안 사람 조임도가 1639년에 펴낸 『금라전신록』은 함안에 전해오는 믿을 만한 기록이다. 함안의 문학사전(事典)인 동시에 인물사전인데, 수록된 인물은 30명, 문장은 245편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으로 인물·문물·서적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후세 사람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인물·문화를 전하기 위해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다시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금라전신록』은 지역의 가치와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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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풍운의 시대 수없이 읊조린 “나무아미타불” - 고양 흥국사 대방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노고산 아래 흥국사 대방은 1912년 혹은 1915년 미타전(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을 성과 속이 혼거하는 공간으로 개조해 지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위계승자인 영친왕이 8세였던 1904년 영친왕의 어머니 엄비(순현황귀비)가 아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만일 기도회’를 흥국사에서 연 일이 계기였다. 궁중의 상궁과 나인을 비롯해 궁궐 사람들이 절에 무시로 드나들게 되자 누각과 공양간과 요사채가 함께 자리 잡은 건물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흥국사 대방의 기도는 계속되었으나, 고종은 1907년 퇴위하고 순종의 왕세제 영친왕은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야 했다.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던 시절 왕실과 백성은 정토 염불 신앙에 의지하고자 했다. 흥국사를 비롯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던 서울과 경기도 등지의 절에는 대방이 지어졌다. 대방은 전통 사찰에는 없는 전각이다. 고양 흥국사 대방, 경기도 남양주 흥국사 대방,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 대방은 근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불교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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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화려한 번화가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새로운 문화자원으로, 고랑포
    고랑포는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에 임진강을 끼고 발달한 포구다. 이 곳은 전통시대부터 물자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수운교통의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에 고랑포 인근에는 화신백화점 분점이 들어설 정도로 번화했던 동네였다. 6.25전쟁이 휴전되면서 고랑포 인근은 군사분계선이 되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고요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고랑포는 마을기록사업의 대상지가 되고 그 인근에 고랑포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고랑포가 다시 한 번 연천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재조명 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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