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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역사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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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 기록물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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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봉화군

    한양에서 태백산 사고를 연결하던 봉화로(奉化路)
    봉화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태백산 사고(太白山史庫)가 있던 경상도 봉화 지방으로 연결되던 간선도로로서, 태백산로라 불리기도 했다. 봉화로는 노선이 거의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어 최상의 교통조건을 구비한 곳이었다. 이 길은 죽령을 넘어 경상도를 잇기 때문에 한강 유역에서 상업활동을 하던 상인들에게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한강 수로와 나란히 뻗었기 때문에, 한강을 건너거나 접하면서 여러 상업이 번창한 포구를 발달시켰다. 그 가운데 송파장은 한양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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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근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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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항쟁과 학살 사이에 서있는 돌담 – 제주 4‧3 수악주둔소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제주도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제주 4‧3항쟁의 비극이 숨어있다. 4‧3항쟁을 생생히 증언하는 문화재가 소화산인 물오름(수악)에 있다. ‘제주 4‧3 수악주둔소’다. 수악주둔소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존재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기록에 따르면 수악주둔소는 무장 세력이 궤멸 직전이던 1949년 가을경에 만들어졌다. 한편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수악주둔소는 한국전쟁 이후 축조되었다. 경찰이 얼마 남지 않은 무장대 토벌작전을 위해 1952년 4월 제주에 32개의 주둔소를 설치하였는데, 수악주둔소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 1952년 창설된 100전투경찰사령부가 수막주둔소를 확장, 수리하여 본격적인 소탕작전을 펼쳤다. 수악주둔소는 제주 4․3사건 유적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문화재청은 제주 4‧3 수악주둔소를 등록문화재 제716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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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제왕운기』로 발해의 역사를 정리한 이승휴
    이승휴는 1224년(고종 11) 경산부 가리현에서 태어나 일생 대부분을 어머니 고향인 삼척에서 보냈다. 그는 가라이씨의 시조로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29세에 과거 급제하였으나 두타산 구동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를 봉양했다. 경흥부 서기, 도병마록사, 서장관을 역임하고 감찰어사, 우정언, 우사간을 거쳐 양광충청안렴사로 파견되었으나 동주부사로 좌천되었다. 그 후 전중시사에 임명되었다가 파직되자 다시 구동으로 돌아와 용안당(容安堂)에서 은거하며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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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조선왕조실록 지킴이 손홍록
    손홍록은 안의와 함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사재를 털어 말과 식량을 마련해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 등을 옮기고, 밤 새워 숙직하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재를 지켜낸 ‘문화재 지킴이’이다. 손홍록은 안의와 함께 1592년 6월 22일 전주 경기전의 태조(太祖) 어용(御容), 태조실록에서 예종실록까지, 『고려사』 등 각종 서적 1,322책을 우마 30여 마리에 싣고 정읍 내장산 용굴암(龍窟庵)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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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성남시

    조선 전기 7차례 대외 정벌의 역사, 국조정토록
    『국조정토록』은 조선 전기에 일어났던 7차례의 대외 정벌의 역사를 기록한 서적이다. 정벌의 원인과 지휘 체계, 동원된 병사 수 등 조선 전기 전쟁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무정보감』, 『승정원일기』 등을 참고하여 완성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국조정토록』은 국내 유일본으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전쟁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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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릉군

    수탈의 역사와 근대의 궤적,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
    19세기 이전부터 울릉도의 어업자원과 산림자원을 탐내던 일본은 1906년 울릉도에 자유 이주어촌을 형성했다.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은 울릉도에서 고리대금업과 벌목업으로 부를 쌓은 사카모토 나이지로라는 인물이 1910년대에 지은 주택이다. 건축 기법은 현재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본 전통 방식과 수법을 보여준다. 도동항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지어진 사카모토의 집은 해방 이후 한국인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변형되기는 했으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현재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은 현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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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진군

    변함없이 깜빡이는 희망의 빛 - 울진 죽변등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항의 죽변등대는 1910년 건립된 16m 높이의 8각형 등대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54호이다. 처음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이후 100년 넘게 어선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죽변항은 대게와 오징어잡이, 미역 특산지로 유명하며, 특히 대게 서식지인 ‘왕돌짬’을 기반으로 한 활발한 어업이 이루어진다. 오징어 성어기에는 하루 3,000t의 어획량을 기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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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도군

    문학사에 빛나는 오누이, 청도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
    경상북도 청도군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는 한국 시조문학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오누이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정서적 바탕을 키운 곳이다. 이호우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남로당 간부라는 누명을 쓰거나 그의 작품이 반공법에 걸리는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가 남긴 185편의 시조는 한국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여동생 이영도는 평생 폐침윤 등의 지병으로 고생했으나, 빼어난 시조집과 수필집을 남겼다. 1910년경에 건축된 생가 인근에는 두 사람의 시비(詩碑)가 서있는 ‘오누이공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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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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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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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 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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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일제강점기의 시장
    일제 강점기는 조선의 전통시장이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다. 특히 일제는 조선의 모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1914년 『시장규칙』을 발포(發布)한다. 이 규칙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상거래의 자유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육의전과 객주는 몰락하고, 그 자리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공설시장과 상설점포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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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은 고려 시대와 유사한 형태로 경시와 향시 그리고 국제시장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을 육성하면서 전기보다 발전했다. 특히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장악했고, 지방의 향시들은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시장에서는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일본 및 중국과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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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의 시장
    고려시대는 화폐를 중심으로 한 매매가 활발하였다. 고려시대의 시장도 신라나 통일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시’를 설치하였다. 개성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던 ‘방시[경시]’와 각 주현에는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기 위한 ‘향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한편 고려는 중국을 비롯해서 일본, 중동의 사라센제국 등과도 무역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들과 교역을 하던 국제시장인 ‘호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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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또한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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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가 자라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성덕당은 1935년 인천 공립중학교의 강당으로 세워졌다. 일본인 학교였던 인천 공립학교는 해방 후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이 되었다. 제물포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초대 교장이었던 교육자 길영희 선생은 ‘성덕당’에서 전교생에게 양심적인 나라의 일꾼이 되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1930년대 세워졌던 옛 학교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성덕당은 남아 제물포고등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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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보다 역동적인 제물포의 근대 - 인천 개항장 근대역사문화지구
    제물포는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일본과 청나라,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인 지역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 조계를 설정하자, 청과 다른 나라들이 뒤따랐다. 초기 모습은 청 조계지가 일본 쪽보다 나았다. 상권에서도 청 상인들이 우세한 편이었으나,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는 일본이 앞서기 시작했고,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친 뒤에는 일본의 절대 우세가 확정되었다. 일본은 금융기관을 앞세워 해운업과 화물운송업을 장악했고, 인천은 일본 주도 아래 식민지 근대의 대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자유공원(만국공원)은 일본 조계지와 청국 조계지(훗날 인천 차이나타운)를 비롯해 개항 이후 인천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답사하기 적당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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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철도 '옥구선'
    옥구선은 1953년 한국전쟁 중 군산비행장 보급품을 운송하기 위해 개통된 군사용 철도로, 군산~옥구 11.8km를 잇는 짧은 지선이었다. 이후 주민 요청으로 비둘기호 여객열차가 운행되며 군산 시민의 일상 교통수단이 되었고, 198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다. 전쟁·산업·생활의 흔적을 담은 옥구선은 운행 중단 후 폐선 상태로 남았지만, 군산 근대사의 중요한 흔적이자 세대의 기억 속 추억의 철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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