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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광복 후에도 이어지다
    서면경마장은 개장 초기부터 말썽거리였지만, 광복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1946년 봄에는 국군을 위한 경마장으로, 1956년에는 미군 하야리아 부대 동쪽 범전동 산2번지 골짝을 깎아 경마장으로 썼다. 360m 미니 트랙이었지만 명맥은 ‘300번지’와 함께 오래오래 이어졌다. “경마장’ 가자” 또는 “300번지 가자” 그러면 엔간한 기사는 알아들을 정도로, ‘경마장’과 ‘300번지’는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범전동 300번지’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생긴 집창촌이었다. 캠프 하야리아가 건재하던 시절엔 300번지가 범전동의 중심이었다. 인근에 포장마차, 미용실, 주점 등 다양한 업종이 몰려들어 큰 호황을 맞았고, 서구 완월동, 해운대 609번지와 함께 부산의 3대 집창촌으로 꼽혔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부터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부산 대표 시민공원이 들어선 지금은 ‘부산 1번지’로 부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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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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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보천교 교당을 헐고 다시 지은 집,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1940년 고부 지방의 대지주였던 조상원이 지은 집이다. 조상원이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을 1938년경에 사들여 해체한 다음 재목을 활용해 2년에 걸쳐 주택으로 고쳐 지었다.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던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은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썼으며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조상원의 손자인 조재홍 일가가 외지로 이주하면서 집은 방치되었으나 2005년 가옥의 종교·건축·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며 2008년과 2010년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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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슬픈 역사의 사이렌, 임실 오수망루
    임실 오수망루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1940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의견(義犬)의 고장 오수리는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천도교 교세가 커서 반일정신이 강했던 곳이다. 또한,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해서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순사주재소를 만들고 망루를 세웠다. 한국전쟁 시기에 오수망루는 빨치산을 경계하는 초소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화재 감시를 하거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높이 12m인 오수망루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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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제국의 마름들'이 설치던 곳,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 일본인 대지주 하시모토가 지은 건물이다. 하시모토는 1910년대부터 김제에 들어와 농민 수탈과 고리대금업으로 죽산면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농장 사무소는 근대 절충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제국의 마름들’이 만경평야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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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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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포천 영중 금광의 역사와 기억: 일제강점기~해방이후까지 현장 증언
    영중 광산은 영중면에 위치하며, 일제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소규모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후 일본의 재벌 기업 스미토모(住友)가 영중 광산과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의 일광광산을 매입해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광맥은 총 여덟 개로, 동광과 리비끼에서는 금·은·동이 함께 생산되었고, 운까이와 점골에서는 금만 채굴되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발발 후 전략 물자 확보를 위해 이 광산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해방 이후에는 박동성 씨의 부친과 박동성 씨가 대를 이어 광산을 운영해왔으나, 1972년 경제성이 낮아지면서 폐광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관련 시설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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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풍운의 시대 수없이 읊조린 “나무아미타불” - 고양 흥국사 대방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노고산 아래 흥국사 대방은 1912년 혹은 1915년 미타전(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을 성과 속이 혼거하는 공간으로 개조해 지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위계승자인 영친왕이 8세였던 1904년 영친왕의 어머니 엄비(순현황귀비)가 아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만일 기도회’를 흥국사에서 연 일이 계기였다. 궁중의 상궁과 나인을 비롯해 궁궐 사람들이 절에 무시로 드나들게 되자 누각과 공양간과 요사채가 함께 자리 잡은 건물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흥국사 대방의 기도는 계속되었으나, 고종은 1907년 퇴위하고 순종의 왕세제 영친왕은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야 했다.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던 시절 왕실과 백성은 정토 염불 신앙에 의지하고자 했다. 흥국사를 비롯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던 서울과 경기도 등지의 절에는 대방이 지어졌다. 대방은 전통 사찰에는 없는 전각이다. 고양 흥국사 대방, 경기도 남양주 흥국사 대방,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 대방은 근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불교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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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화려한 번화가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새로운 문화자원으로, 고랑포
    고랑포는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에 임진강을 끼고 발달한 포구다. 이 곳은 전통시대부터 물자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수운교통의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에 고랑포 인근에는 화신백화점 분점이 들어설 정도로 번화했던 동네였다. 6.25전쟁이 휴전되면서 고랑포 인근은 군사분계선이 되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고요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고랑포는 마을기록사업의 대상지가 되고 그 인근에 고랑포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고랑포가 다시 한 번 연천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재조명 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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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일본과 연합군 모두의 희생양, 임시 군속들
    태평양전쟁이 고조되면서 동남아엔 연합군 포로들이 늘어났다. 이들 포로를 감시하기 위한 일본군 소속의 임시 군속들의 수요 역시 늘어났다. 일제는 조선인 민간인을 포로 감시원으로 채용한 뒤, 캠프 하야리아 자리에 있던 일본군 임시군속훈련소에서 2개월 동안 이들을 훈련시키고 동남아 각지로 파견했다. 이들은 일본군 말단이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말을 안 들으면 갖가지 죄명으로 옭아맸다. 그러다 보니 전쟁 포로들에겐 원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군 주도의 전범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한국인은 148명. 그중 129명이 부산의 임시군속훈련소 출신이었다. 민간인 신분인데도 B·C급 전범으로 처리됐다. 129명은 징역형을 받았으며 14명은 사형에 처했다. 그들의 원혼은 지금도 구천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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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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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강남구

    한강 개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한강개발기념비
    강남 삼성동과 청담동의 경계에 있는 경기고 사거리에서 한강 쪽으로 직진하면 청담나들목이 나온다. 청담나들목 터널 안에서 층계를 따라 밖으로 나오면 올림픽대로 상행선과 하행선 사이에 생뚱맞게 공원 하나가 있다. 그 길 한가운데 여섯 기둥이 결기있게 세워진 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이 한강종합개발을 기념하기 위해 1986년 세운 한강종합개발기념비이다. 우리 마을 청담동과 삼성동은 한강개발과 함께 성장한 곳이라 이러한 기념비는 우리 마을의 발전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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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중구

    부침 거듭한 화교의 역사, 대구화교협회
    대구화교협회는 대구시 중구 진골목에 있다. 화교가 대구에 이주한 것은 1905년부터인데 이들은 상업, 건축청부업, 주물업 등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펼쳤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은 원래 1929년 서병국이 건립한 붉은 벽돌조 2층 양식(洋式) 주택인데 1949년경 대구화교협회가 매입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의 설계와 시공은 중국인 건축기술자 모문금이 맡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돌은 평양에서 구워오고 나무는 금강산에서 베어왔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대구화교협회는 얼마 남지 않은 1930년대 근대건축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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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동구

    한국 근대철도의 달빛, 대구 구 반야월역사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영천과 경상북도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반야월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반야월은 공식 지명이 아니지만 후삼국 시대부터 전해지는 전설로 유명한 지명이다. 1917년 대구~하양 간 협궤 선로가 놓이면서 기차가 반야월을 지나가게 되었다. 반야월역사는 1938년 협궤가 광궤로 확장 개통될 때 건립되었다. 대구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주민들의 통근과 통학로인 동시에 화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이었다. 1960년 화물전용 홈이 개설되었고, 1971년부터는 안심 지역의 석탄저장소이자 수송 역이 되었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박공이 돋보이는 반야월역사는 일제강점기 후반 남부지방의 표준 역사로 꼽힌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폐쇄되었으나, 2010년 인근 대구선 반야월 공원 내로 이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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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중구

    청라언덕과 대구 사과와 제중원-대구 동산병원 구관
    대구광역시 동산병원은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우드브릿지 존슨이 1899년 시작한 ‘미국약방’과 ‘제중원’에서 시작되었다. 서양 근대 의학의 힘으로 고질병이 낫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중원을 찾는 환자도 점차 증가했다. 제중원은 1903년 무렵 동산으로 위치를 옮겼다. 선교사들은 병원과 선교사 사택을 짓고,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나무 묘목을 조선 토종 능금과 접붙여 ‘대구 사과’를 탄생시켰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언덕이라 하여 청라언덕이라 불리게 된 동산에서 제중원은 동산기독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대 원장인 플레처는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1930년대에 병원을 새로 지었다. 이 건물이 2002년 등록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대구 동산병원 구관이다. 동산병원은 일제 강점기 말에는 일본군 경찰병원으로, 한국전쟁 시기에는 국립 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쓰였으나, 다시 동산병원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구 의료계를 선도하는 병원의 역할을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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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솟대 장인들, 세계수를 축약하여 민족의 염원을 담는 사람들
    솟대는 지역에 따라 ‘짐대’, ‘솔대’, ‘별신대’, ‘진또배기’ 등 다양하게 불린다. 2004년 서울 세계박물관대회의 엠블럼으로 솟대가 채택된 이후 취미로 혹은 전문적으로 솟대를 제작하는 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통 기술을 되살리고 전수하는 장인들을 통해 솟대는 민예품으로 자리 잡았다. 솟대는 세계수를 한국적으로 추상화하고 단순화한 것이다. 이를 제작하고 전시하는 것은 생태주의적 흐름과 일치한다. 그래서 각종 단체뿐 아니라 지자체 및 국가적 행사에 예술가로 참여하여 솟대를 제작하고 전시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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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담양군

    담양의 죽공예
    전라남도 담양은 예로부터 대나무가 풍부한 고장으로, 대나무로 만든 물건인 ‘죽물(竹物)’이 많이 생산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5세기부터 삿갓·대나무그릇·부채·채상·채침·화살대·부채·대나무바구니 등이 생산되었다. 1919년 진소계라는 참빗조합이 설립되었고, 1947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죽제품이 수출되기도 했다. 지금은 플라스틱의 범람과 해외의 값싼 죽제품 수입으로 생산량이 줄었지만, 담양은 죽공예 명산지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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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구덕으로 대표되는 제주도의 죽공예품
    제주도는 다른 공예에 비해 목공예의 제작과 사용이 많았으며 특히 서귀포 지역에서는 죽공예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대표적인 죽공예품이 바로 ‘구덕’이다. 구덕은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로, 여성들의 일상생활 전체에서 쓰임새가 가장 많은 도구였다. 아기를 눕혀놓는 애기구덕, 물동이를 넣는 물구덕, 테왁 등을 담는 물질구덕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는 제주의 자연 환경과 인문적 배경에서 발생한 독특한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바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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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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