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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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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표충비의 눈물
    경남 밀양시 무안면에는 땀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표충비가 있다. 조선 영조 때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충비에는 나라에 큰 일이 날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역사적으로 갑오농민전쟁, 한일합방, 3.1만세운동, 광복, 한국전쟁 등의 시기마다 이 비석이 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 표충비의 눈물을 직접 본 경험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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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추억여행을 떠나는 곳, 원릉역
    원릉역은‘원당’과 ‘서삼릉’의 한 글자씩을 합쳐 만든 역명으로, 1961년 세워진 오래된 기차역이다. 고양시와 서울을 잇는 교외선의 주요 역으로서 한때는 하루 수천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곳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역장님이 계셨던 곳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영화 [파수꾼]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여객영업이 완전히 중단된 뒤 역사의 출입과 횡단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철책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2014년 지하보도가 만들어지면서 불편이 해소되고, 지금은 주민들의 산책과 운동 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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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송파구

    고난의 대홍수를 기억하다, 을축년대홍수기념비
    1925년 7월 7일부터 9월 초까지 태풍이 대한민국을 강타, 4개 태풍으로 대한민국 일대에 피해가 컸다. 한강일대에서 일어난 사상 최고의 대홍수였다. 4회에 걸친 호우로 한강이 범람하고 이재민 발생, 가옥침수, 논밭유실 등 피해가 막심했고 그 재해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세워진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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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룬 약봉 서성 이야기
    약봉 서성의 대구 서씨는 문과 합격자 105명, 3대 정승에 이어 3대 대제학 등 6대에 걸쳐 최고위직 관리를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이다. 서성은 3조 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대구 서씨가 포천 선단동에 입향 한것은 서고(1489-1550)의 묘와 아들 서해 (1537-1559), 손자인 서성(1558-1631) 3대의 묘를 쓰면서 포천 설운동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후 5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서성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맹인(盲人)이면서도 시대를 보는 안목과 자식교육을 위한 결단력으로 대구 서씨 가문을 조선 최고의 인재 산실로 만든 약봉의 어머니 고성 이씨 부인의 자녀 교육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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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직업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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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뒤에서 달라를 거래하던 암달러상
    불법으로 몰래 달러를 사고파는 장사꾼을 암달러상, 달러장사라고 한다. 미군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암달러상이 주로 활동했다. 암달러상은 주로 여자들이 했기 때문에 달러아줌마, 딸라아줌마라고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미군 주둔 지역을 중심으로 미군부대의 물품이 유통되면서 달러를 사고파는 장사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미군부대의 물품이 통용되고 암달러상 역시 가장 많았던 곳 중의 하나였던 남대문 역시 현재 활동하는 암달러상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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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서울굿의 장구 반주자, 기대
    기대는 서울굿에서 앉아서 연행하는 앉은굿이나 장구치는 것을 전담하는 장구잽이를 말한다. 기대는 광복 이전부터 점차 소멸되기 시작해서 1960년대까지는 존속했지만 그 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기대가 담당했던 서울굿은 부정청배, 가망청배, 안당말미, 말미, 황제풀이 등으로 모두 앉아서 장구를 치면서 연행하는 거리이다. 이렇게 앉은굿 부분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만신이 연행하는 굿놀이에서 재담을 받아주는 상대역을 하거나 노랫가락을 할 때 만신과 서로 주고받으면서 노랫가락을 짜임새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굿에서는 기대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과거 기대가 전담했던 앉은굿과 소리부분은 모두 무당인 만신이 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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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호남지역의 무당, 단골
    혈연으로 대를 이어 세습되는 무당을 호남지역에서는 단골이라고 부른다. 단골네, 당골네, 당골에미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강신체험을 겪고 내림굿을 통해 공식적으로 무당이 되는 강신무와 달리 대를 이어 단골권을 세습받는 세습무이다. 단골이란 호남지역의 무당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신도들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 단골들의 지역을 단골권이라고 한다. 이 단골권 역시 무당인 단골에게 대를 이어 세습된다. 호남지역에서도 강신체험을 바탕으로 무속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단골과 구별되며 점바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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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4건)
  • 지역문화 Pick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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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문화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양주시

    양주문화재
    600여 년의 역사가 숨 쉬는 양주의 역사와 문화재를 소개한 영상. 양주관아, 양주향교, 온릉, 조소앙기념관, 해유령전첩지, 회암사지 등 대표 유형문화재 6곳과 양주별산대놀이 와 양주소놀이굿 등 무형문화재를 영상으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콘텐츠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6.25 전쟁 유적, 포천 방어벙커
    포천 방어벙커가 있는 43번 국도는 서울과 강원도, 함경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벙커는 서부전선, 중부 전선, 동해 전선에 있었다고 하는데 다른 지역의 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이곳에 벙커가 생긴 이유는 양문 근처는 38선이 있는 곳이기에 국경이 가까워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하며, 이곳은 38선 남쪽 15리 정도 거리의 길모퉁이에 있고, 옆은 절벽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유리한 위치라고 한다. 포천 방어벙커는 전쟁유적으로 희소성이 있어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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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일제 수리사업과 반전농장 그리고 굴포천
    1920년대 일제는 일본 내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畫)을 실시하였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 일본인 지주를 중심으로 한 수리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당시 부천 지역(부천군)에서도 일본인 지주인 반전선사랑(半田善四郞) 등을 중심으로 1923년 부평수리조합이 설립되었고, 굴포천 양안의 저습지(低濕地)를 대상으로 수리관개사업을 추진해 농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1923년부터 시작된 수리관개공사는 1925년 3월 1차로 완공되었으나, 같은 해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대부분의 공사 시설이 유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1차 공사를 둘러싼 부실 시공 논란 속에서도 수년간의 수해 복구 공사가 이어졌고, 그 결과 1929년에 이르러 2차 완공이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경지 정리 사업이 추진되면서 농지의 형태와 규모가 점차 정비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부평(부천) 평야가 형성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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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산시

    시우골 내시 무덤의 비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시동에는 이경희, 유인묵, 임의복 등 조선 시대 내시의 무덤 3기가 있다. 지금은 돌보는 이가 없어 무연고 묘로 남아 있지만 조선 시대 내시들의 경제와 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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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중국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중국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국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일본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일본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일본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망우리를 가다 (본편 영어)

    출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서울 >중랑구

    망우리를 가다 (본편 영어)
    서울시 중랑구에 묘지공원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망우리 공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어 자막 본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한용운,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는 물론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망우리 지명의 유래와 묘지에 안장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광복 후에도 이어지다
    서면경마장은 개장 초기부터 말썽거리였지만, 광복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1946년 봄에는 국군을 위한 경마장으로, 1956년에는 미군 하야리아 부대 동쪽 범전동 산2번지 골짝을 깎아 경마장으로 썼다. 360m 미니 트랙이었지만 명맥은 ‘300번지’와 함께 오래오래 이어졌다. “경마장’ 가자” 또는 “300번지 가자” 그러면 엔간한 기사는 알아들을 정도로, ‘경마장’과 ‘300번지’는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범전동 300번지’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생긴 집창촌이었다. 캠프 하야리아가 건재하던 시절엔 300번지가 범전동의 중심이었다. 인근에 포장마차, 미용실, 주점 등 다양한 업종이 몰려들어 큰 호황을 맞았고, 서구 완월동, 해운대 609번지와 함께 부산의 3대 집창촌으로 꼽혔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부터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부산 대표 시민공원이 들어선 지금은 ‘부산 1번지’로 부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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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동구

    대전발 0시50분이 떠나기 전에 -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탐방로
    대전광역시는 경부선(1905)와 호남선(1914)이 분기하는 철도의 도시다. 조그마한 한촌이었던 대전은 충청남도 도청이 1932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옮겨옴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중심가는 충청남도 도청과 대전역을 잇는 도로(현재의 중앙로) 변으로 확장되었다. 대전의 원도심인 중구와 동구 일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가지는 근대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대전시는 2010년대 들어 원도심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2017년부터 근대문화예술 특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구 사업의 일환으로 5㎞가 넘는 근대문화탐방로를 지정했는데, 탐방로를 따라 9곳의 근현대 건축물을 둘러볼 수 있다. 탐방로가 아니더라도 대전 원도심 곳곳에서 근현대사를 배우고 성찰케 하는 근대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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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중구

    도청으로 변한 공주 갑부 김갑순의 보리밭 -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의 옛 충청남도 도청 본관은 1932년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올 때 지어졌다. 공주는 유서 깊은 고도(古都)이나, 경부선 개통 이후 빠르게 성장한 대전이 도청을 유치했다. 공주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으나, 조선총독부는 대전 이전을 계획하고 있었고, 거부(巨富) 김갑순이 자신의 보리밭을 도청과 관사 부지로 내놓아 도청 청사 공사가 진행되었다. 2층 벽돌 건물로 지어진 대전의 충청남도 도청 옛 본관은 스크래치 타일로 외관을 장식했고, 마무리까지 세심하게 시공한 근대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해방 후에도 2012년 내포신도시로 충청남도 도청이 옮겨갈 때까지 충청남도 행정의 중심 공간 역할을 했다. 현재는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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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유성구

    하늘의 마음은 곧 하나이니, 대전 수운교 본부법회당
    수운교는 1923년 설립된 동학 계열의 민족종교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영이 자신에게 옮겨왔다고 주장하는 이상룡이 수운교를 시작했다. 수운교는 1925년 근거지를 계룡산 근처 금병산 자락으로 옮겼다. 봉령각·도솔천궁과 함께 수운교 3대 중심 공간인 본부 법회당은 1936년 건립되었다. 법회당 중앙에는 불상과 유불선을 융합한 우주관을 드러내는 탱화 등을 설치한 불단이 있다. 수운교 본부는 1980년대 계룡산 일대에 군사시설이 들어서면서, 철거와 추방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5년에 걸친 투쟁으로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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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한·미협정 정식 체결로 한국과 미국, 진일보하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과 미국, 일반인과 미군의 이분법적인 시각이 팽배해졌다. 한국 정부와 일반인은 지나치게 저자세였고, 미국과 미군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한국과 미국은 여러 차례 법을 마련했다. 1950년 대전협정을 맺었고, 1966년 7월에는 대전협정의 불평등성을 제거하고 내용을 대폭 보완해 군대 지위에 관한 새로운 한미행정협정을 맺었다. 유솜(USOM)과 소파(SOFA)도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협력 체계였다. 주한 원조 당국을 일컫는 유솜의 진원지가 캠프 하야리아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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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한국과 미국의 공존, 부산과 미군의 공존
    하야리아(Hialeah)는 무슨 뜻일까. 미국 인디언 언어로 아름다운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다. 2차대전 당시 유명했던 미국 플로리다주의 하야리아 경마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군이 처음 부산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16일이었다. 해방되고 나서 한 달 후였다.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일부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했다. 미군이 다시 돌아온 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연합군으로 참전한 미군은 서면경마장 자리에 기존 조성했던 주둔 기지를 캠프 하야리아로 명명하고, 군수물자 보급과 후방 기지 지휘 임무를 맡았다. 캠프 하야리아는 이후 반세기 넘게 군사 기능을 위한 독립적 공간으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부산과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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