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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룬 약봉 서성 이야기
    약봉 서성의 대구 서씨는 문과 합격자 105명, 3대 정승에 이어 3대 대제학 등 6대에 걸쳐 최고위직 관리를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이다. 서성은 3조 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대구 서씨가 포천 선단동에 입향 한것은 서고(1489-1550)의 묘와 아들 서해 (1537-1559), 손자인 서성(1558-1631) 3대의 묘를 쓰면서 포천 설운동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후 5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서성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맹인(盲人)이면서도 시대를 보는 안목과 자식교육을 위한 결단력으로 대구 서씨 가문을 조선 최고의 인재 산실로 만든 약봉의 어머니 고성 이씨 부인의 자녀 교육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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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부 설화집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설화집
    경기 의정부 지역의 설화 205편을 집대성한 총서이다. 김시습과 같은 유명 인물의 설화를 포함하여 의정부 지역의 사건, 인물, 지역과 관련된 전설을 다루고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의정부 인물열전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인물열전
    경기 의정부 지역의 향토문화재와 관련 역사 인물 54인에 대한 열전을 수록한 책자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등 왕실 인물부터 김구 같은 재야의 인물까지, 조선 시대부터 근대 인물까지 다양하게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추억의 철도 '옥구선'
    옥구선은 1953년 한국전쟁 중 군산비행장 보급품을 운송하기 위해 개통된 군사용 철도로, 군산~옥구 11.8km를 잇는 짧은 지선이었다. 이후 주민 요청으로 비둘기호 여객열차가 운행되며 군산 시민의 일상 교통수단이 되었고, 198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다. 전쟁·산업·생활의 흔적을 담은 옥구선은 운행 중단 후 폐선 상태로 남았지만, 군산 근대사의 중요한 흔적이자 세대의 기억 속 추억의 철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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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근대역사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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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세종 >세종시

    산업설비의 전모가 간직된 조치원읍의 산업유산 - 세종 구 산일제사 공장
    구 산일제사 공장은 세종특별자치시 최초의 등록문화재 산업유산이다. 조치원읍 남리에 1927년 비단실 생산 공장으로 설립됐으며, 해방 후 폐업했다. 1951~1956년 조치원여자고등학교 임시 교사로 사용되었고, 1958년 삼중편물, 1969년 한림제지로 변경되어 크라프트 종이를 생산했다. 한림제지가 2000년 폐업한 후 방치되었으나,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가 매입해 도시 재생사업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2019년 공장 건물 1개 동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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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병자호란의 마침표가 된 삼학사의 남한산성 현절사
    남한산성의 현절사는 삼학사를 배향하는 곳이다. 삼학사는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한 척화파의 수괴로 청나라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였다. 삼학사 중 한 명인 홍익한은 청 태종 앞에서 명나라와 맺은 군신의 의를 깨고 청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였다. 전쟁의 승패를 떠나 대의와 도리가 있어 화친을 반대했다는 주장에 청 태종도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송시열은 삼학사의 전기를 집필해 그들의 죽음이 의리와 절개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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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은 정묘호란
    조선은 인조가 집권한 이후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웠고, 후금에서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주전론자인 태종이 즉위하였다. 또한, 후금은 명과의 전투 때문에 심한 물자 부족 현상을 해결해야 했으므로 조선을 침략하여 명을 공격하기에 앞서 후환을 없애고자 하였다. 이에 후금군은 조선을 침략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으나 후방을 공격당할 염려에 조선과 형제의 맹약을 맺어 화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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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국가존망의 위기에 선조의 명을 받은 병자의병
    후금은 1636년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다시 조선을 쳐들어왔다. 청의 침입 소식이 전해지자 호남지역 의병이 먼저 일어나 자진하여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어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던 인조로부터 위급을 알리며 의병을 규합하고 군량과 무기를 수집하여 청의 침략을 무찌르라는 교서가 전달되자 의병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 외 황해도․경기도․경상도 등지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의승군의 활약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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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구국의 혼 포천의 면암 최익현과 최면식
    포천 구국의 혼 면암의 일생은 고난과 형극의 연속이었다. 오직 대의와 구국의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제주도 위리안치, 절해고도 흑산도 유배, 두 번에 걸친 일본 헌병대 구금, 그리고 대마도 구금 순국 등 난국 때마다 역사의 전면에서 우국충정과 대의로서 저항하였다. 그의 손자 염재 최면식역시 항일 군자금 모금, 광복회 가입, 군자금 수합 등 항일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독립군 조직과 연락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43년 운명하였다. 포천 구국의 혼 최익현과 손자 최면식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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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보천교 교당을 헐고 다시 지은 집,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1940년 고부 지방의 대지주였던 조상원이 지은 집이다. 조상원이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을 1938년경에 사들여 해체한 다음 재목을 활용해 2년에 걸쳐 주택으로 고쳐 지었다.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던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은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썼으며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조상원의 손자인 조재홍 일가가 외지로 이주하면서 집은 방치되었으나 2005년 가옥의 종교·건축·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며 2008년과 2010년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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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슬픈 역사의 사이렌, 임실 오수망루
    임실 오수망루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1940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의견(義犬)의 고장 오수리는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천도교 교세가 커서 반일정신이 강했던 곳이다. 또한,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해서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순사주재소를 만들고 망루를 세웠다. 한국전쟁 시기에 오수망루는 빨치산을 경계하는 초소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화재 감시를 하거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높이 12m인 오수망루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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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제국의 마름들'이 설치던 곳,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 일본인 대지주 하시모토가 지은 건물이다. 하시모토는 1910년대부터 김제에 들어와 농민 수탈과 고리대금업으로 죽산면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농장 사무소는 근대 절충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제국의 마름들’이 만경평야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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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봉사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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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문경의 신앙 산실, 점촌동성당 100년 기록
    점촌동 성당은 1922년 공소에서 시작해 1959년 본당을 완공하며 문경 지역 가톨릭의 중심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속에서도 신자들의 신앙은 굳건했고, 성당은 피난처와 공동체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이후 신자 수가 늘어나며 교육·문화 활동과 함께 성가대, 청년회 등이 활발히 운영되었고, 상지유치원 개원과 나눔 봉사, 빈첸시오회 활동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도 기여했다. 특히 건축가 알빈 신부가 설계한 성당은 독특한 한국적 건축미를 갖춰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오늘날 점촌동 성당은 신앙의 산실이자 지역 공동체의 상징으로, 나눔과 연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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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의성군

    이여송이 석불의 목을 벤 의성 부처목이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병사를 이끌고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자신의 조선 파병이 조선 사신의 계책임을 알고 그 사신을 쫓던 중, 의성군 점곡면 구암리에 이르렀다. 달리던 말이 갑자기 꼼짝을 못하는 바람에 사신을 놓치고 말았다. 주위를 돌아보니 석불이 하나 있었다. 화가 난 이여송은 칼로 석불의 목을 베었다. 그랬더니 말이 기운을 차리고 다시 달렸다고 한다. 그 후 이 마을은 목이 잘린 석불이 있다해서 ‘부처목이’라고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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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시흥시

    암호로 적을 물리친 시흥 피흘리고개와 3천병마골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피흘리고개와 3천병마골[三千兵馬谷]은 임진왜란 때 노파의 재치로 왜군을 무찔러 생긴 지명이다. 신립 장군이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동태를 알지 못해 공격 시기를 잡지 못했는데, 자식들을 전쟁으로 잃고 자진하여 의병이 된 노파가 나타나서 꾀를 써서 왜군을 대파할 수 있었다. 그때 흘린 왜군의 피가 이 고개를 붉게 물들였으며, 신립 장군이 거느린 3천 병마가 이곳에서 대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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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몽고 장수 살리타이가 죽은 용인 살장(殺將)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살장(殺將)터는 몽고 장수 살리타이가 죽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고려 고종 19년 (1232) 12월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해 왔다. 몽고군은 용인시까지 침범했으나 우리 의병들이 몽고 장수 살리타이의 눈을 화살로 맞춰 전사시키고 몽고군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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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노원구

    뒤늦게 출발한 식민지 공학교육, 서울대학교 구 공과대학 본관과 교사
    경성제국대학은 1924년 법의학부와 의학부로 출발했다. 조선총독부가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밀려 마지못해 식민지에도 대학을 세운 것이다. 농학부, 이학부, 공학부도 설치하겠다고 해놓고 비용 문제를 앞세워 계속 미루다가 1938년에야 이공학부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공학부는 1942년 교외 지역인 태릉에 들어섰다. 본관과 교사 2개 동으로 된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흡수되어 고등 공학 교육의 요람이 되었다. 현재는 국립 서울과학기술대학의 교사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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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시기 등 우리 민족이 위기와 고난에 처해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어려웠을 때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켰다. 간송이 지켜낸 문화유산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형필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립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만들어 어렵게 모은 문화재를 간직했다. 등록문화재 제 521호인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은 그의 민족혼이 배어있는 집이다. 간송이 생전에 머물렀던 가옥으로는 현재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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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서대문구

    ‘식민지 근대’ 국가폭력의 맨얼굴, 구 서울구치소
    구 서울구치소의 최초 명칭은 경성감옥이다. 경성감옥은, 갑오개혁으로 사법과 행형 영역에도 근대적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정착되지는 못했던 1907년 짓기 시작해 1908년 운영을 시작했다. 정미년 의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성감옥의 제1호 사형수도 의병장 허위다.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500명 수용 규모로 지어진 감옥은 의병, 독립운동가 등의 수감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증축을 거듭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주로 사상범이 수감되었다. 서대문형무소는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고, ‘짐승 우리’를 방불케 하는 열악한 시설로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도 국가폭력의 역사로 얼룩진 면모를 이어가다가, 1987년 폐쇄되었다. 1988년 일부 남은 시설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90년대에 서대문 독립공원이 되었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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