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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보천교 교당을 헐고 다시 지은 집,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1940년 고부 지방의 대지주였던 조상원이 지은 집이다. 조상원이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을 1938년경에 사들여 해체한 다음 재목을 활용해 2년에 걸쳐 주택으로 고쳐 지었다.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던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은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썼으며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조상원의 손자인 조재홍 일가가 외지로 이주하면서 집은 방치되었으나 2005년 가옥의 종교·건축·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며 2008년과 2010년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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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슬픈 역사의 사이렌, 임실 오수망루
    임실 오수망루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1940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의견(義犬)의 고장 오수리는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천도교 교세가 커서 반일정신이 강했던 곳이다. 또한,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해서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순사주재소를 만들고 망루를 세웠다. 한국전쟁 시기에 오수망루는 빨치산을 경계하는 초소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화재 감시를 하거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높이 12m인 오수망루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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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제국의 마름들'이 설치던 곳,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 일본인 대지주 하시모토가 지은 건물이다. 하시모토는 1910년대부터 김제에 들어와 농민 수탈과 고리대금업으로 죽산면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농장 사무소는 근대 절충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제국의 마름들’이 만경평야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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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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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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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 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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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공원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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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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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
    캠프 하야리아에는 기지촌이 두 군데 있었다. 정문 맞은편 연지동과 후문에 해당하는 게이트 3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범전동이었다. 범전동 기지촌의 시작은 마을 빨래터였다. 범전동 주민 박 할머니에 따르면, 한국 군인에게서 빨래해달라는 부탁을 먼저 받았고, 이후 미군의 부탁을 받았다. 군인도 좋고 주민도 좋은 상생의 시작이었다. 6·25전쟁 초기에는 캠프 하야리아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눈치가 빨랐던 아이들은 어찌어찌 램프를 구해 와서는 1달러에 팔았다. 영어가 짧았던 꼬마들이 미군에게 접근하면서 했던 콩글리시가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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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3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2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2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1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1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테마스토리 서울 >노원구

    뒤늦게 출발한 식민지 공학교육, 서울대학교 구 공과대학 본관과 교사
    경성제국대학은 1924년 법의학부와 의학부로 출발했다. 조선총독부가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밀려 마지못해 식민지에도 대학을 세운 것이다. 농학부, 이학부, 공학부도 설치하겠다고 해놓고 비용 문제를 앞세워 계속 미루다가 1938년에야 이공학부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공학부는 1942년 교외 지역인 태릉에 들어섰다. 본관과 교사 2개 동으로 된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흡수되어 고등 공학 교육의 요람이 되었다. 현재는 국립 서울과학기술대학의 교사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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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시기 등 우리 민족이 위기와 고난에 처해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어려웠을 때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켰다. 간송이 지켜낸 문화유산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형필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립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만들어 어렵게 모은 문화재를 간직했다. 등록문화재 제 521호인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은 그의 민족혼이 배어있는 집이다. 간송이 생전에 머물렀던 가옥으로는 현재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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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서대문구

    ‘식민지 근대’ 국가폭력의 맨얼굴, 구 서울구치소
    구 서울구치소의 최초 명칭은 경성감옥이다. 경성감옥은, 갑오개혁으로 사법과 행형 영역에도 근대적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정착되지는 못했던 1907년 짓기 시작해 1908년 운영을 시작했다. 정미년 의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성감옥의 제1호 사형수도 의병장 허위다.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500명 수용 규모로 지어진 감옥은 의병, 독립운동가 등의 수감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증축을 거듭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주로 사상범이 수감되었다. 서대문형무소는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고, ‘짐승 우리’를 방불케 하는 열악한 시설로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도 국가폭력의 역사로 얼룩진 면모를 이어가다가, 1987년 폐쇄되었다. 1988년 일부 남은 시설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90년대에 서대문 독립공원이 되었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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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동구

    무등산 깃대봉의 민립대학,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무등산 깃대봉 중턱의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은 광주의 랜드 마크 가운데 하나다. 370m 길이에 19개 박공 건물이 늘어선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본관 19개 건물 가운데 초기에 세워진 5개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 94호다. 5개 동은 1947년부터 1955년까지 8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이어진 건물들은 후에 증축한 것이다. 조선대학은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진행된 민간 차원의 대학설립 운동이 결실을 맺은 최초의 사례다. 당시 호남 각지에서 7만2,000명이 조선대학 설립동지회에 가입해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이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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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별관·체육관
    광주 서석초등학교는 광주광역시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공립학교다. 1896년 소학 교령에 따라 공립소학교로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광주 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1930년 강당 겸 체육관[현재의 서석당]이 세워졌고, 1935년 본관, 1943년 별관이 건축되었다. 학교의 이름은 1938년 광주 서석 공립 심상소학교가 되어, 서석이라는 유서 깊은 이름을 붙였다. 서석은 무등산의 이칭이자, 광주의 옛 이름이 서석읍이다. 해방 후에도 서석이라는 교명은 계속 사용되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과 강당, 별관은 정성 들여 지은 붉은 벽돌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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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촌’으로 들어온 근대 - 광주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식민지 근대가 도래하기 전 개신교 선교사들의 계몽적 근대가 먼저 당도한 지역이다. 미국 남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광주 선교를 위해 양림동의 땅을 사들였다.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땅값이 쌌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교회와 사택을 짓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양림동에 ‘서양촌’을 형성해 나갔다. 일제강점기 들어 광주 중심부는 조선총독부의 계획 아래 근대 도시가 되었으나, 양림동은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 제중원 등 종교와 교육과 의료를 통해 근대를 접하게 되었다. 양림동에는 기독교 근대의 자취 외에도 전통 한옥이나 문화예술인들의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고, 광주가 팽창하면서 양림동에 터 잡고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삶 또한 곳곳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양림동을 한 바퀴 돌면서 다양한 근대의 의미 지층을 탐색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근현대사 산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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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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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의 신앙 산실, 점촌동성당 100년 기록
    점촌동 성당은 1922년 공소에서 시작해 1959년 본당을 완공하며 문경 지역 가톨릭의 중심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속에서도 신자들의 신앙은 굳건했고, 성당은 피난처와 공동체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이후 신자 수가 늘어나며 교육·문화 활동과 함께 성가대, 청년회 등이 활발히 운영되었고, 상지유치원 개원과 나눔 봉사, 빈첸시오회 활동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도 기여했다. 특히 건축가 알빈 신부가 설계한 성당은 독특한 한국적 건축미를 갖춰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오늘날 점촌동 성당은 신앙의 산실이자 지역 공동체의 상징으로, 나눔과 연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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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중구

    일제강점기의 시장
    일제 강점기는 조선의 전통시장이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다. 특히 일제는 조선의 모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1914년 『시장규칙』을 발포(發布)한다. 이 규칙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상거래의 자유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육의전과 객주는 몰락하고, 그 자리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공설시장과 상설점포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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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의 시장
    조선시대의 시장은 고려 시대와 유사한 형태로 경시와 향시 그리고 국제시장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을 육성하면서 전기보다 발전했다. 특히 한양의 상권은 육의전이 장악했고, 지방의 향시들은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 향상에 힘입어 양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시장에서는 개성상인을 중심으로 일본 및 중국과의 거래가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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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고려시대의 시장
    고려시대는 화폐를 중심으로 한 매매가 활발하였다. 고려시대의 시장도 신라나 통일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시’를 설치하였다. 개성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던 ‘방시[경시]’와 각 주현에는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기 위한 ‘향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한편 고려는 중국을 비롯해서 일본, 중동의 사라센제국 등과도 무역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들과 교역을 하던 국제시장인 ‘호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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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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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포천 영중 금광의 역사와 기억: 일제강점기~해방이후까지 현장 증언
    영중 광산은 영중면에 위치하며, 일제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소규모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후 일본의 재벌 기업 스미토모(住友)가 영중 광산과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의 일광광산을 매입해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광맥은 총 여덟 개로, 동광과 리비끼에서는 금·은·동이 함께 생산되었고, 운까이와 점골에서는 금만 채굴되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발발 후 전략 물자 확보를 위해 이 광산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해방 이후에는 박동성 씨의 부친과 박동성 씨가 대를 이어 광산을 운영해왔으나, 1972년 경제성이 낮아지면서 폐광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관련 시설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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