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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풍운의 시대 수없이 읊조린 “나무아미타불” - 고양 흥국사 대방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노고산 아래 흥국사 대방은 1912년 혹은 1915년 미타전(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을 성과 속이 혼거하는 공간으로 개조해 지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위계승자인 영친왕이 8세였던 1904년 영친왕의 어머니 엄비(순현황귀비)가 아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만일 기도회’를 흥국사에서 연 일이 계기였다. 궁중의 상궁과 나인을 비롯해 궁궐 사람들이 절에 무시로 드나들게 되자 누각과 공양간과 요사채가 함께 자리 잡은 건물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흥국사 대방의 기도는 계속되었으나, 고종은 1907년 퇴위하고 순종의 왕세제 영친왕은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야 했다.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던 시절 왕실과 백성은 정토 염불 신앙에 의지하고자 했다. 흥국사를 비롯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던 서울과 경기도 등지의 절에는 대방이 지어졌다. 대방은 전통 사찰에는 없는 전각이다. 고양 흥국사 대방, 경기도 남양주 흥국사 대방,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 대방은 근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불교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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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연천군

    화려한 번화가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새로운 문화자원으로, 고랑포
    고랑포는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에 임진강을 끼고 발달한 포구다. 이 곳은 전통시대부터 물자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수운교통의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에 고랑포 인근에는 화신백화점 분점이 들어설 정도로 번화했던 동네였다. 6.25전쟁이 휴전되면서 고랑포 인근은 군사분계선이 되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고요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고랑포는 마을기록사업의 대상지가 되고 그 인근에 고랑포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고랑포가 다시 한 번 연천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재조명 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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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자리에 들어선 일본군 군용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면경마장 자리에는 일본군의 군용지(軍用地)가 차례대로 들어섰다. 맨 처음 들어선 부대는 군사용 마필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일본군 10288기마부대였다. 1938년 5월 조선과 대만 등지의 물자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는 10288기마부대와 제72병참 경비대가 주둔했다. 제72병참 경비대는 1개 대대 규모였지만 작전 지역은 대단히 넓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교와 터널, 주요 기차역의 경비를 담당했다. 1942년 6월에는 병참부대에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했다. 임시군속훈련소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동남아 각지 포로 감시원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캠프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선 일본의 군용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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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보천교 교당을 헐고 다시 지은 집,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1940년 고부 지방의 대지주였던 조상원이 지은 집이다. 조상원이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을 1938년경에 사들여 해체한 다음 재목을 활용해 2년에 걸쳐 주택으로 고쳐 지었다.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던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은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썼으며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조상원의 손자인 조재홍 일가가 외지로 이주하면서 집은 방치되었으나 2005년 가옥의 종교·건축·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며 2008년과 2010년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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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슬픈 역사의 사이렌, 임실 오수망루
    임실 오수망루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1940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의견(義犬)의 고장 오수리는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천도교 교세가 커서 반일정신이 강했던 곳이다. 또한,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해서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순사주재소를 만들고 망루를 세웠다. 한국전쟁 시기에 오수망루는 빨치산을 경계하는 초소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화재 감시를 하거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높이 12m인 오수망루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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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제국의 마름들'이 설치던 곳,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 일본인 대지주 하시모토가 지은 건물이다. 하시모토는 1910년대부터 김제에 들어와 농민 수탈과 고리대금업으로 죽산면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농장 사무소는 근대 절충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제국의 마름들’이 만경평야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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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1945년 군산 경마장 폭발사건
    일제는 경장리에 국내 최초로 공식 규모를 갖춘 경마장을 조성했으나, 전쟁 말 미군 항공기 착륙을 막기 위해 주로가 폭파되며 기능을 잃었다. 광복 후 이곳은 미군 무기고로 사용되다 1945년 11월, 포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42명이 숨지고 1천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이후 미군기지는 군산소방서에 장비를 지원했고, 매년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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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동구

    무등산 깃대봉의 민립대학,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무등산 깃대봉 중턱의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은 광주의 랜드 마크 가운데 하나다. 370m 길이에 19개 박공 건물이 늘어선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본관 19개 건물 가운데 초기에 세워진 5개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 94호다. 5개 동은 1947년부터 1955년까지 8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이어진 건물들은 후에 증축한 것이다. 조선대학은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진행된 민간 차원의 대학설립 운동이 결실을 맺은 최초의 사례다. 당시 호남 각지에서 7만2,000명이 조선대학 설립동지회에 가입해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이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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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동구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별관·체육관
    광주 서석초등학교는 광주광역시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공립학교다. 1896년 소학 교령에 따라 공립소학교로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광주 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1930년 강당 겸 체육관[현재의 서석당]이 세워졌고, 1935년 본관, 1943년 별관이 건축되었다. 학교의 이름은 1938년 광주 서석 공립 심상소학교가 되어, 서석이라는 유서 깊은 이름을 붙였다. 서석은 무등산의 이칭이자, 광주의 옛 이름이 서석읍이다. 해방 후에도 서석이라는 교명은 계속 사용되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과 강당, 별관은 정성 들여 지은 붉은 벽돌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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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남구

    ‘서양촌’으로 들어온 근대 - 광주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식민지 근대가 도래하기 전 개신교 선교사들의 계몽적 근대가 먼저 당도한 지역이다. 미국 남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광주 선교를 위해 양림동의 땅을 사들였다.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땅값이 쌌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교회와 사택을 짓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양림동에 ‘서양촌’을 형성해 나갔다. 일제강점기 들어 광주 중심부는 조선총독부의 계획 아래 근대 도시가 되었으나, 양림동은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 제중원 등 종교와 교육과 의료를 통해 근대를 접하게 되었다. 양림동에는 기독교 근대의 자취 외에도 전통 한옥이나 문화예술인들의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고, 광주가 팽창하면서 양림동에 터 잡고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삶 또한 곳곳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양림동을 한 바퀴 돌면서 다양한 근대의 의미 지층을 탐색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근현대사 산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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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군산 영화동, 미군기지와 함께한 거리의 기억
    군산 영화동, 장미동, 중앙로1가는 개항 후 일제 수탈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광복과 6·25전쟁 이후 미군 주둔과 기지촌 형성에 따라 상점, 클럽, 오락실이 밀집한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이곳은 ‘깡통경제’라 불릴 만큼 미군 물자가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따라 베이스택시·잡화점·환전·수입품 상점 등이 번성했다. 현재는 근대문화역사 지구로 주목받고,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이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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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봉사

연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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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의 신앙 산실, 점촌동성당 100년 기록
    점촌동 성당은 1922년 공소에서 시작해 1959년 본당을 완공하며 문경 지역 가톨릭의 중심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속에서도 신자들의 신앙은 굳건했고, 성당은 피난처와 공동체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이후 신자 수가 늘어나며 교육·문화 활동과 함께 성가대, 청년회 등이 활발히 운영되었고, 상지유치원 개원과 나눔 봉사, 빈첸시오회 활동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도 기여했다. 특히 건축가 알빈 신부가 설계한 성당은 독특한 한국적 건축미를 갖춰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오늘날 점촌동 성당은 신앙의 산실이자 지역 공동체의 상징으로, 나눔과 연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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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봉래 양사언의 날 비(飛)이야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봉래 양사언이 지은 태산가 한시이다. 봉래(蓬萊)는 바로 금강산과 양사언의 호칭이다, 금강산을 가장 사랑한 묵객 이며 청빈한 관리였다. 봉래 양사언(楊士彦, 1517년~1584년)은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 응빙(應聘)이며 호는 봉래(蓬萊)이다. 詩와 글씨에 모두 능했는데, 특히 초서(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 ·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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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구국의 혼 포천의 면암 최익현과 최면식
    포천 구국의 혼 면암의 일생은 고난과 형극의 연속이었다. 오직 대의와 구국의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제주도 위리안치, 절해고도 흑산도 유배, 두 번에 걸친 일본 헌병대 구금, 그리고 대마도 구금 순국 등 난국 때마다 역사의 전면에서 우국충정과 대의로서 저항하였다. 그의 손자 염재 최면식역시 항일 군자금 모금, 광복회 가입, 군자금 수합 등 항일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독립군 조직과 연락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43년 운명하였다. 포천 구국의 혼 최익현과 손자 최면식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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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다리에 숨겨진 이야기
    ‘한다리’는 대교(大橋)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것이다. 이는 ‘큰 다리’라는 뜻으로 지금의 인천(부평·계양)과 부천을 구분하는 굴포천을 건너는 옛 다리의 이름이자 해당 다리 인근의 20~30여 호를 구성하던 옛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한다리는 당시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산 기슭에서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주변의 부(府), 군(郡), 현(縣)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량이었다. 18세기에 그려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 대교(한다리)는 김포로(金浦路), 공암진로(孔岩津路), 양화진로(陽花津路), 노량진로(露梁津路), 안산로(安山路), 인천영종로(仁川永宗路)로 등의 도로를 연결하는 분기점으로 표시되고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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