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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남 >부여군

    “껍데기는 가라!”, 부여 신동엽 가옥 터
    부여 신동엽 가옥 터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로 유명한 신동엽 시인이 유년기부터 신접살림 시절까지 살았던 집의 터이다. 신동엽은 고통 받는 민중의 저항의식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1930년 부여에서 태어난 시인은 한국전쟁과 4·19혁명 등 격동의 역사를 겪으며 민족과 민중의 아픔을 시로 형상화했다. 간암으로 39세에 요절했지만 그의 시는 한국인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탓에 신동엽 가옥 터에 세워진 기념관과 문학관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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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서산시

    해미성지의 순교자 유해를 발굴하다 - 서산 동문동성당 상홍리공소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동문동성당 상홍리 공소는 내포 지역 천주교회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19세기 중반 형성된 상홍리 교우촌의 ‘가재 공소’로 시작되어, 1920년부터 1937년까지 본당의 역할을 했다. 본당 승격 직후인 1921년 당시 현재의 건물을 지었다. 한옥 외양에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른 성당으로 건축되었다. 1923년에는 본당 바로 앞에 3칸 솟을대문으로 종탑을 세웠다. 본당 시절인 1935년 중요한 발굴을 진행했다. 주임 사제인 범 바로 신부와 백낙선 신도회장이 병인박해를 목격한 고령의 증인들의 말대로 서산 해미 지역을 발굴하여, 순교자들의 유해를 찾아냈다. 병인박해 당시 해미에서 순교한 교인은 이름이 밝혀진 사람만 122명에 이른다. 유해는 상홍리로 옮겨졌다가 해미순교성지로 이장되었다. 상홍리 본당은 1937년 다시 공소가 되었으나, 신축 당시 지어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당시의 유물이 남아 있다. 2007년 서산 동문동 성당이 등록문화재 321호로 지정된데 이어 상홍리 공소도 33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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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곰나루 근현대사를 품다, 공주제일교회 구 예배당
    공주 제일 교회의 연원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청도 3.1만세운동의 중심지였던 공주 제일 교회는 1931년 현재의 자리에 예배당을 지었다. 공주 제일 교회는 일제강점기 말에는 교회가 폐쇄되는 비운을 겪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교인들은 1956년 개축을 하면서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예배당을 복원하였다. 그 파란만장했던 예배당은 현재 공주 제일 교회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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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3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2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2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1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1화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세운 용두사지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봉래 양사언의 날 비(飛)이야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봉래 양사언이 지은 태산가 한시이다. 봉래(蓬萊)는 바로 금강산과 양사언의 호칭이다, 금강산을 가장 사랑한 묵객 이며 청빈한 관리였다. 봉래 양사언(楊士彦, 1517년~1584년)은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 응빙(應聘)이며 호는 봉래(蓬萊)이다. 詩와 글씨에 모두 능했는데, 특히 초서(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 ·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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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구국의 혼 포천의 면암 최익현과 최면식
    포천 구국의 혼 면암의 일생은 고난과 형극의 연속이었다. 오직 대의와 구국의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제주도 위리안치, 절해고도 흑산도 유배, 두 번에 걸친 일본 헌병대 구금, 그리고 대마도 구금 순국 등 난국 때마다 역사의 전면에서 우국충정과 대의로서 저항하였다. 그의 손자 염재 최면식역시 항일 군자금 모금, 광복회 가입, 군자금 수합 등 항일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독립군 조직과 연락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43년 운명하였다. 포천 구국의 혼 최익현과 손자 최면식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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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군산 영화동, 미군기지와 함께한 거리의 기억
    군산 영화동, 장미동, 중앙로1가는 개항 후 일제 수탈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광복과 6·25전쟁 이후 미군 주둔과 기지촌 형성에 따라 상점, 클럽, 오락실이 밀집한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이곳은 ‘깡통경제’라 불릴 만큼 미군 물자가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따라 베이스택시·잡화점·환전·수입품 상점 등이 번성했다. 현재는 근대문화역사 지구로 주목받고,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이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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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영광 원불교 영산대각전
    전라남도 영광군 영산성지는 원불교 5대 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서, 원불교가 태동한 근원 성지로 불린다. 소태산 박중빈 대법사가 태어난 곳인 동시에, 큰 진리를 깨달아 종교 활동을 시작한 곳이 영산성지다. 영산성지의 영산대각전은 1936년에 건립된 종교 집회 시설이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강당인 영산대각전은 불단 부분의 법신불 일원상 외에는 장식이 없는 일체형 공간이다. 영산대각전은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고, 우주의 이법이자 힘인 일원상의 교리만을 간결하고 정갈하게 전하는 민족 종교의 모습을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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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파시’를 아십니까,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법성포 일본식 여관은 1930년대 초 ‘기쿠야’라는 상호의 숙박업소였다. 당시 법성포는 파시가 불야성을 이루던 흥성하는 항구였으므로 여러 곳의 여관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기쿠야 여관만 남았다. 2층으로 지어진 기쿠야 여관은 한눈에 일본식을 직감하게 하지만 해방 이후 소유권을 갖게 된 집안이 살림집으로 사용하면서 꾸준히 손질하고 가꾸어온 덕에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법성포의 옛 영화는 쇠락했지만, 건축물은 남아 근현대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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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여수시

    마음 맞잡은 청년들, 여수 구 청년회관
    여수 구 청년회관은 1931년 여수청년회가 주동하여 건립되었다. 여수 지역은 1920년대 초부터 3.1운동에 관계되어 낙향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이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계몽 활동과 민족의식 고취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수 구 청년회관은 전라좌수영 좌청의 연못(덕지)이 있던 자리에 2층으로 건립됐다. 1층은 서양식, 2층은 한식 팔작지붕인 여수 구 청년회관은 건립 이래 여수의 교육·문화 공간으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 회관의 2층은 철거된 전라좌수영 좌청의 자재를 그대로 살려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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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한·미협정 정식 체결로 한국과 미국, 진일보하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과 미국, 일반인과 미군의 이분법적인 시각이 팽배해졌다. 한국 정부와 일반인은 지나치게 저자세였고, 미국과 미군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한국과 미국은 여러 차례 법을 마련했다. 1950년 대전협정을 맺었고, 1966년 7월에는 대전협정의 불평등성을 제거하고 내용을 대폭 보완해 군대 지위에 관한 새로운 한미행정협정을 맺었다. 유솜(USOM)과 소파(SOFA)도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협력 체계였다. 주한 원조 당국을 일컫는 유솜의 진원지가 캠프 하야리아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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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한국과 미국의 공존, 부산과 미군의 공존
    하야리아(Hialeah)는 무슨 뜻일까. 미국 인디언 언어로 아름다운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다. 2차대전 당시 유명했던 미국 플로리다주의 하야리아 경마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군이 처음 부산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16일이었다. 해방되고 나서 한 달 후였다.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일부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했다. 미군이 다시 돌아온 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연합군으로 참전한 미군은 서면경마장 자리에 기존 조성했던 주둔 기지를 캠프 하야리아로 명명하고, 군수물자 보급과 후방 기지 지휘 임무를 맡았다. 캠프 하야리아는 이후 반세기 넘게 군사 기능을 위한 독립적 공간으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부산과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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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삼척시

    『제왕운기』로 발해의 역사를 정리한 이승휴
    이승휴는 1224년(고종 11) 경산부 가리현에서 태어나 일생 대부분을 어머니 고향인 삼척에서 보냈다. 그는 가라이씨의 시조로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29세에 과거 급제하였으나 두타산 구동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를 봉양했다. 경흥부 서기, 도병마록사, 서장관을 역임하고 감찰어사, 우정언, 우사간을 거쳐 양광충청안렴사로 파견되었으나 동주부사로 좌천되었다. 그 후 전중시사에 임명되었다가 파직되자 다시 구동으로 돌아와 용안당(容安堂)에서 은거하며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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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조선왕조실록 지킴이 손홍록
    손홍록은 안의와 함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사재를 털어 말과 식량을 마련해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 등을 옮기고, 밤 새워 숙직하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재를 지켜낸 ‘문화재 지킴이’이다. 손홍록은 안의와 함께 1592년 6월 22일 전주 경기전의 태조(太祖) 어용(御容), 태조실록에서 예종실록까지, 『고려사』 등 각종 서적 1,322책을 우마 30여 마리에 싣고 정읍 내장산 용굴암(龍窟庵)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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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성남시

    조선 전기 7차례 대외 정벌의 역사, 국조정토록
    『국조정토록』은 조선 전기에 일어났던 7차례의 대외 정벌의 역사를 기록한 서적이다. 정벌의 원인과 지휘 체계, 동원된 병사 수 등 조선 전기 전쟁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무정보감』, 『승정원일기』 등을 참고하여 완성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국조정토록』은 국내 유일본으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전쟁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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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면경마장 자리에 들어선 일본군 군용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면경마장 자리에는 일본군의 군용지(軍用地)가 차례대로 들어섰다. 맨 처음 들어선 부대는 군사용 마필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일본군 10288기마부대였다. 1938년 5월 조선과 대만 등지의 물자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는 10288기마부대와 제72병참 경비대가 주둔했다. 제72병참 경비대는 1개 대대 규모였지만 작전 지역은 대단히 넓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교와 터널, 주요 기차역의 경비를 담당했다. 1942년 6월에는 병참부대에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했다. 임시군속훈련소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동남아 각지 포로 감시원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캠프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선 일본의 군용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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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국의 혼 포천의 면암 최익현과 최면식
    포천 구국의 혼 면암의 일생은 고난과 형극의 연속이었다. 오직 대의와 구국의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제주도 위리안치, 절해고도 흑산도 유배, 두 번에 걸친 일본 헌병대 구금, 그리고 대마도 구금 순국 등 난국 때마다 역사의 전면에서 우국충정과 대의로서 저항하였다. 그의 손자 염재 최면식역시 항일 군자금 모금, 광복회 가입, 군자금 수합 등 항일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독립군 조직과 연락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43년 운명하였다. 포천 구국의 혼 최익현과 손자 최면식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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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의 금석문

    출처 :충청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충남 >청양군

    청양의 금석문
    충남 청양에 소재한 금석문의 사진과 이에 대한 전문가 해설을 담은 영상이다. 금석문은 쇠붙이나 돌로 만든 비석에 새겨진 글로써 옛사람들의 행적과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무등의 품에 안긴 광주북구문화유산

    출처 :광주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광주 >북구

    무등의 품에 안긴 광주북구문화유산
    광주 북구에 위치한 무등산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전남 광주 북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는데 환벽당, 취가정 같은 정자와 누각이 많기로 유명하다. 관동별곡, 사미인곡을 쓴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 등 문화재와 연관된 인물과 사건, 설화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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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년 전 지역 사랑이 담긴 「금라전신록」
    함안 사람 조임도가 1639년에 펴낸 『금라전신록』은 함안에 전해오는 믿을 만한 기록이다. 함안의 문학사전(事典)인 동시에 인물사전인데, 수록된 인물은 30명, 문장은 245편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으로 인물·문물·서적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후세 사람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인물·문화를 전하기 위해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다시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금라전신록』은 지역의 가치와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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