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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역사 속 직업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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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뒤에서 달라를 거래하던 암달러상
    불법으로 몰래 달러를 사고파는 장사꾼을 암달러상, 달러장사라고 한다. 미군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암달러상이 주로 활동했다. 암달러상은 주로 여자들이 했기 때문에 달러아줌마, 딸라아줌마라고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미군 주둔 지역을 중심으로 미군부대의 물품이 유통되면서 달러를 사고파는 장사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미군부대의 물품이 통용되고 암달러상 역시 가장 많았던 곳 중의 하나였던 남대문 역시 현재 활동하는 암달러상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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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서울굿의 장구 반주자, 기대
    기대는 서울굿에서 앉아서 연행하는 앉은굿이나 장구치는 것을 전담하는 장구잽이를 말한다. 기대는 광복 이전부터 점차 소멸되기 시작해서 1960년대까지는 존속했지만 그 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기대가 담당했던 서울굿은 부정청배, 가망청배, 안당말미, 말미, 황제풀이 등으로 모두 앉아서 장구를 치면서 연행하는 거리이다. 이렇게 앉은굿 부분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만신이 연행하는 굿놀이에서 재담을 받아주는 상대역을 하거나 노랫가락을 할 때 만신과 서로 주고받으면서 노랫가락을 짜임새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굿에서는 기대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과거 기대가 전담했던 앉은굿과 소리부분은 모두 무당인 만신이 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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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호남지역의 무당, 단골
    혈연으로 대를 이어 세습되는 무당을 호남지역에서는 단골이라고 부른다. 단골네, 당골네, 당골에미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강신체험을 겪고 내림굿을 통해 공식적으로 무당이 되는 강신무와 달리 대를 이어 단골권을 세습받는 세습무이다. 단골이란 호남지역의 무당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신도들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 단골들의 지역을 단골권이라고 한다. 이 단골권 역시 무당인 단골에게 대를 이어 세습된다. 호남지역에서도 강신체험을 바탕으로 무속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단골과 구별되며 점바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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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강일순, 민중을 구제하는 증산교를 만들다
    강일순은 동학혁명에 희망을 가지고 참여했던 민중들이 좌절하며 겪는 고통을 보면서 민중을 구제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구제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세상과 민중을 구제할 방법은 많은 희생이 따르는 동학혁명 같은 것이 아니라 종교라고 생각하고 증산교를 창교한다. 자신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내려온 미륵이며, 우리 인류가 꿈꾸는 이상사회 ‘용화회상’이 곧 올 것이라고 하여 민중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줌으로써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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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강릉시

    구한말 의병들이 전쟁터로 활용한 오성정
    강릉 오성정(五星亭)은 강릉시 남대천 남산공원에 위치해 있다. 1974년 9월에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1627년(인조 5)에 처음 지었으나 중간에 소실되고, 현재 있는 건물은 강릉에 사는 정묘생 동갑계에서 1927년에 지은 것이다. 강릉객사 건물의 일부를 옮겼다. 1666년(현종 7)에 송광연이 정자 아래 작은 집을 짓고 노닐었다. 구한말 의병들이 이곳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정자 안에는 12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밖에는 김규진과 석둔거사가 쓴 오성정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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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한국이민사박물관, 절망 속 희망을 찾아 해외로 떠난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곳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대한민국 이민 역사 100주년을 맞이하여, 해외 개척의 의미를 되새기고 선조들의 강인한 삶에 대한 의지와 그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2008년에 세워졌다. 인천은 1902년 하와이로 떠난 102명의 첫 번째 공식 이민자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조국의 땅이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만주 황무지로, 사할린 군수 공장으로, 독일 탄광과 중동 건설 현장으로 떠난 이민 초기 재외 교포와 보이지 않는 끈이 인천항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음을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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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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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9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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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세종

    번성했던 금강의 과거를 추억한다, 불티교
    백제의 역사가 흐르는 금강 상류에는 이름부터 인상적인 불티교가 있다. 빨간 아치형태의 불티교는 금남면과 장군면을 잇는 교량으로 그 이름은 이전 이곳에 자리했던 불티나루에서 따온 것이다. 옛날 소금을 실은 상선이 나루에 배를 대면 이를 구입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었다. ‘불티나듯’ 소금이 팔리는 모습에 나루에는 불티라는 이름이 붙었고 인근 지역에는 아직 불티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불티나루를 비롯해 금강 상류에 있는 여러 나루는 역할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운 자연은 수려한 풍경으로 다시금 사람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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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청송군

    산을 베개로 삼아 숨은 배학순의 재사, 청송 낙은재
    낙은재는 1897년에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에 세워진 교육 건물로, 당시 의금부도사였던 배학순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했다. 낙은재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재호(齋號)한 것이며, 대문에는 ‘창화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낙은’은 경상도관찰사 이헌영이 기문에서 ‘산을 베개 삼고 숨는 즐거움’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을 반영한 배학순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을미의병 시기에 배학순의 장남이 유림과 함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후에 청송군 면장 및 학교평의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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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통사회의 승과 현대사회의 명승
    우리나라는 국토는 좁지만 다양한 자연 지형들이 분포하며,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많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부터 자연을 유람하고, 자연을 바라본 심회를 글이나 그림을 통해 남기기도 하였다. 전통사회에서 현재의 명승을 가리키는 말이‘승(勝)’일 것이다. 승은 경관적 가치가 높은 대상뿐만 아니라, 장소적 가치가 높은 대상까지도 포함한다. 일반인들에게 명승은 ‘유적지’라는 의미보다는 ‘자연 기념물적 요소’가 더 큰 의미로 이해된다. 그래서 명승에 유적지보다는 자연적인 요소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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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보천교 교당을 헐고 다시 지은 집,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1940년 고부 지방의 대지주였던 조상원이 지은 집이다. 조상원이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을 1938년경에 사들여 해체한 다음 재목을 활용해 2년에 걸쳐 주택으로 고쳐 지었다.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던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은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썼으며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조상원의 손자인 조재홍 일가가 외지로 이주하면서 집은 방치되었으나 2005년 가옥의 종교·건축·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며 2008년과 2010년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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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임실군

    슬픈 역사의 사이렌, 임실 오수망루
    임실 오수망루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1940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의견(義犬)의 고장 오수리는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천도교 교세가 커서 반일정신이 강했던 곳이다. 또한,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해서 일본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순사주재소를 만들고 망루를 세웠다. 한국전쟁 시기에 오수망루는 빨치산을 경계하는 초소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화재 감시를 하거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높이 12m인 오수망루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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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김제시

    '제국의 마름들'이 설치던 곳,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 일본인 대지주 하시모토가 지은 건물이다. 하시모토는 1910년대부터 김제에 들어와 농민 수탈과 고리대금업으로 죽산면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농장 사무소는 근대 절충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제국의 마름들’이 만경평야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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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부산 >부산진구

    서면경마장 자리에 들어선 일본군 군용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면경마장 자리에는 일본군의 군용지(軍用地)가 순차적으로 들어섰다. 맨 처음 들어선 부대는 군사용 마필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일본군 10288기마부대였다. 1938년 5월 조선과 대만 등지의 물자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징발하고 인력을 통제하기 위한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는 10288기마부대와 제72병참 경비대가 주둔했다. 제72병참 경비대는 1개 대대 규모였지만 작전 지역은 대단히 넓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교와 터널, 주요 기차역의 경비를 담당했다. 1942년 6월에는 병참부대에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했다. 임시군속훈련소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나는 동남아 각지 포로감시원의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이 글에선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캠프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선 일본의 군용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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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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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문화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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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병대장 유세열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서울 >노원구

    의병대장 유세열
    노원구 당현천에는 유세열 의병대장의 항일 의병활동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공적을 기리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인 최익현과 이강년등과 항일 의거를 도모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 관헌에 붙잡혔을 때는 오히려 큰 소리로 "너희는 너희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나는 내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말인가."하고 당당하게 맞섰다. 상계리로 돌아온 그는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내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마라.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역사는 올바로 써야 한다. 덕은 크다고 그치지 말고 악은 작다고 범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 마스마로 2화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서울 >노원구

    마스마로 2화
    과거 조선시대까지 노원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목 노원면에 속하였다. 그러나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도봉구를 거쳐 1988년 노원구로 분리되었다. 노원의 지명유래는 갈대가 많은 들판이라는 뜻인 노원(盧原)에서 시작됐다는 설과 동북 교통의 중심지로 말이 많은 들판이라고 해서 마들이라고도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마스마로 2화>는 노원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지명유래를 소개함으로써 사랑하고 살아가기 좋은 노원구를 알려준다.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두 하천 이야기와 물결 따라 흐르는 역사
    현존하는 지리지 및 고지도가 존재하는 조선시대 이후 굴포천을 기준으로 동쪽인 현재의 부천 지역에는 농업에 필요한 용수를 가두는 제언(堤堰) 등의 시설이 없어 하천의 물길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고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굴포천의 제2지류인 여월천은 제3지류인 베르네천, 고리울천, 여월천의 물길을 밭아 들이면서 과거 곡창지대였던 부평평야의 일부인 주화곶면, 상오정면 지역 대부분 농토를 적시고 마을의 형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여월천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한 수리관개사업과 경지정리로 원래의 하천 모습은 크게 변하였으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원래의 물줄기를 찾아보기 어려워 근대 측량 기술로 제작된 일제강점기 1919년의 지도를 활용하여 여월천과 그 지류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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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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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부천의 고대국가, 우휴모탁국 이야기
    지금의 부천은 아파트와 문화예술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나 그 땅 아래에는 고대 국가의 흔적이 잠들어 있다. 부천의 고강동 일대에서 발견된 환호형 제사 유적은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등장하는 마한 54개 소국 중 하나인 우휴모탁국의 실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돌을 둥글게 쌓고 그 주변에 도랑을 판 적석환구 구조는 마한의 제사 중심지인 소도(蘇塗)의 전형적인 형태로 당시 제사장들이 북과 방울을 울리며 공동체를 이끌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이는 부천이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제사와 정치가 공존한 도시국가이었음을 시사한다. 부천의 지리 또한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굴포천 유역의 비옥한 평야와 한강 하류, 서해와 맞닿은 교통망은 농업과 해상무역의 발전에 유리했고, 『삼국지』에 묘사된 마한인의 생활양식인 면포 짜기와 평야 거주와 같은 특성과 정확히 부합한다. 일부 학자들은 백제 건국 전설의 주인공인 비류의 활동 무대가 바로 이 부천 일대였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 외에 마한의 문화는 농경적이면서도 유목적이었다. 하천과 구릉, 해안이 만나는 부천은 제사와 교역, 농경과 이동이 공존한 복합적 문화를 키운 터전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부천을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고대 문명의 교차로로 만들었다. 지금은 도시로 변했지만, 고강동의 흙 속에는 북과 방울의 울림, 제사와 공동체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영화와 만화, 예술로 대표되는 오늘의 부천이 지닌 상상력의 뿌리는 바로 이 우휴모탁국이라는 고대 서사에 닿아 있다. 부천은 ‘고대의 제사 도시’에서 ‘현대의 문화 도시’로 이어지는 긴 시간의 서사를 품고 있으며, 우휴모탁국은 그 역사적 상상력을 되살릴 수 있는 원형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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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공원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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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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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
    ‘캠프 하야리아’는 기지촌이 두 군데 있었다. 정문 맞은편의 연지동에 있었고 후문에 해당하는 ‘게이트 3’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범전동에 있었다. 범전동 기지촌의 시작은 ‘마을 빨래터’였다. 범전동 주민 박 할머니에 따르면 한국 군인에게서 빨래를 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먼저 받았고 이후 미군의 부탁을 받았다. 군인 좋고 주민 좋은 ‘윈-윈’의 시작이었고 상생의 시작이었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캠프 하야리아’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눈치가 빨랐던 아이들은 어찌어찌 램프를 구해 와서는 1달러에 팔았다. 영어가 짧았던 꼬마들이 미군에게 접근하면서 했던 콩글리시가 “해피 뉴욕! 유 바이 램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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