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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원님의 욕심에 청춘남녀가 돌이 된 영천 입석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에 이르러 금호강과 봉동천이 합류하여 주변에 강물이 흐르는 소규모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이곳에 중죄인을 가두는 요도가 있었다. 영천고을의 사또는 자신에게 딸을 주지 않는다고 구씨 노인네를 때리고 요도로 유배 보냈다. 구씨 딸과 사위가 될 청년이 인근의 유봉산에 정상에 올라가 삼각주 요도에 구씨 노인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울부짖다가 아버지가 죽자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며 딸과 사위 될 청년은 산 아래에서 돌이 나란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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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채정승이 귀양 와 살던 정읍시 구룡동의 채서방골
    전라북도 정읍시 구룡동에 ‘귀양실’또는 ‘구량마을’, ‘양실마을’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조선시대 무렵, 채정승이라 부르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실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채정승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낮에는 산에 나가 나물과 약초를 캐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에는 달빛에 의지해 자연과 벗 삼으며 세월을 보냈다. 채정승은 자신의 억울한 누명이 밝혀지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무고를 밝히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을 주민들은 귀양실 뒤 산골짜기를 ‘채서방골’이라 부르며, 채정승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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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신부 순이가 빠져 죽은 정읍시 고부면의 순이방죽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소재하는 방죽을 ‘순이방죽’ 또는 ‘통울방죽’ 등으로 부른다. 고부면 신중마을에 ‘창식’이라는 총각이 살았고, 주산마을에는 ‘순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창식과 순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양쪽 집안에서 혼인을 반대해, 두 사람은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창식이 다른 마을에 사는 처녀를 만나 집을 나가버리고, 순이는 저녁마다 방죽에 나와 창식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집으로 돌아온 창식은 착각으로 순이를 방죽에 밀어 넣어 죽이고, 창식도 귀신이 된 순이에게 이끌려 방죽에 빠져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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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가 살았던 포항 효자동
    옛날 경북 포항 한 마을에 홀어머니와 효자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어 했다. 아들은 대구로 시집간 누나를 찾아가기로 했다. 밤중에 산길을 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정을 들은 호랑이는 아들을 태워 순식간에 누나에게 데려다주었다. 마침 누나의 집에 홍시가 있어 아들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다. 이후 효자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효자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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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가장 궁금한 포항지명 ‘ 나루끝 ’
    1968년 포항은 국가 기간산업인 포항제철(포스코)을 건설하면서 작은 어촌마을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겪었다. 산업기지 건설과 급속한 도시화는 쌩쌩 달리는 도로로 대변되듯 물길 많은 포항 땅을 아스팔트로 덮어갔다. 학산천로, 양학천로, 삼호로 등이 생겼다. 예전에 강이 흐르던 곳에 있던 나루터가 포항에서는 도심 한가운데로 변해 버렸다. 그것도 나루터의 끝지점인 ‘나루끝’이 이제는 시외버스 경유지가 되었다. 아마 처음 포항 땅을 밟으면 가장 의아하며 궁금한 지명이 나루끝이 아닐까 생각되어 그 나루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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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승려 지명이 세운 포항 보경사
    보경사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번지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래깊은 사찰이다. 사찰 주변에 12개의 폭포가 존재하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보물거울과 관련한 창건설화 두 편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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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힘센 가래와 도치가 살았던 가평군 가평읍의 보납골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보납골이 소재해 있다. 보납골에는 신기한 것이 많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가 힘을 솟아나게 하는 물이다. 옛날 보납산에 불도를 닦지 않고, 고기와 술은 물론 마을에 사는 부녀자들까지 희롱하는 가래와 도치로 불리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임금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남이’라는 현명한 관리를 보납골로 보냈다. 작은 암자에서 가래, 도치와 함께 살게 된 남이는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바위를 들고, 물을 마시는 것을 몰래 보았다. 남이는 풀로 만든 빨대로 물을 먹었다. 그 후 가래와 도치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되어 두 사람을 잡아 관가로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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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구리로 만든 떡 안반이 묻힌 가평군 가평읍의 안반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안반지’또는 ‘암반지’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있다. 예전에 ‘안반탄’이라는 하천이 있었고, 안반탄 용소 위에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안반’이 있기에 생긴 지명이다. 한편, ‘장자골’에 만석지기로 소문난 장씨 성을 가진 인색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주를 청하기 위해 찾아온 스님에게 두엄을 담아주었다. 이를 보고 장부자의 며느리가 곡간에 가서 쌀을 가져다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다음 날 정오에 뒷산으로 오르라고 하였다. 다음날 스님의 말을 듣고 며느리는 뒷산으로 올랐다. 그러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다 보았는데,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일어나더니, 장부잣집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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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이 화로 누구 것이오?', 가평 이화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는 장승 고개 아랫마을이다. 황 씨가 꼴을 베고 오다가 어떤 여인을 만난 꿈을 꾸었다. 그 여인이 시신이 묻힌 곳을 알려주며 발이 밖으로 나와 있으니 제대로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황 씨는 제대로 묻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그랬더니 황금 화로를 받게 되었다. 혹시 화로 주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이 화로 누구 것이오?” 외치고 다녔는데, 여기서 '이화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황 씨는 황금 화로를 팔아 황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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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마을 입구에 돌을 묻으면 부자가 된다고?!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전북 >정읍시

    마을 입구에 돌을 묻으면 부자가 된다고?!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장학리의 '장재동'에는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백 년 전 장학리에는 장재라는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염불을 외우며 장재의 집에 시주를 청했다. 고약한 성격의 장재는 스님의 바랑에 모래를 집어넣고, 머리에 대쪽을 씌워 창피를 주었다. 수모를 겪은 스님은 장재에게 더 부자가 될 수 있다며, 옛집에 묻혀 있는 두 개의 돌을 마을 입구에 묻으라고 했다. 장재는 스님을 말을 따랐고, 이후 장재 부부는 원인 모를 병을 앓다 죽고 말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장재가 돌을 묻었다고 하여 이 마을을 '장재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 테마스토리 전북 >고창군

    뱀 알로 아버지의 병을 고친 고창 뱀내골의 달래
    옛날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 뱀내골에는 늙은 아버지와 달래라는 열두 살짜리 딸이 살았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여러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달래는 새벽으로 절에 다니며 아버지 병을 고쳐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노인이 나타나 버드나무 아래 뱀알을 파내서 끓여 먹이면 낫는다고 했다. 달래는 꿈에서 시킨 대로 해서 아버지의 병이 완쾌되었다. 이후 냇가에 빨래하러 갔더니 뱀이 우글거렸는데, 꿈에서 구렁이가 구해줘서 고맙다며 내의 뱀들은 떠날 거라고 했다. 이후 마을에서는 이 내를 뱀내, 이 골짜기를 뱀내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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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진안군

    호랑이로 둔갑해 개를 잡은 효자, 진안 범바위
    옛날 진안군 용담면 범바위 마을에 김효자가 살았다. 하루는 노모가 개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 개가 없는 김효자는 친구의 둔갑술 책을 빌려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 왔다. 이후 노모가 개고기를 다 먹을 즈음이면 김효자는 어김없이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 왔다. 이를 의심한 부인이 어느 날 밤 몰래 따라갔다가 김효자가 둔갑술 책을 보고 광에서 호랑이로 둔갑한 것을 봤다. 부인은 놀라서 김효자가 개를 잡으러 간 사이에 책을 불태웠다. 김효자는 책이 없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마을 주변을 맴돌다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범바위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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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황룡이 승천하는 등용문의 어등산
    어등산은 자연 지리적으로 등성이 길고 계곡이 깊어 한말 의병들이 지형지물의 전략적 이용이 쉬워 광주지역 의병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어등산에서는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약 3년간 일제의 군경과 110여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룬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폐사지의 흔적으로 보아 한때 광주지역 불교문화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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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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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용아의 숨결이 아른거리는 소촌동
    소촌동은 소촌 1 · 2동 남계(南溪)마을. 선계(仙溪)마을, 금봉산 기슭의 신역(新驛)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2.65㎢이다. 지명 의미상으로 소(所)자가 들어간 땅이름은 동구 소태동 북구 삼소동 등 장인촌의 뜻을 가지고 있어, 이웃마을이 역촌이고 솥머리라는 지명으로 보아 어등산록에 위치한 사찰들과 병부관할의 역촌에서 필요로 하는 대장간 일꾼과 선암장에 내놓을 가내수공품 생산자들이 몰려 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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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고개가 너무 높아 넘다보면 머리카락이 희게 되는 고령 모로현
    모로현(毛老峴)은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하림리 등을 이어주는 고개로 모리터 또는 모리티라고도 하는데 해발 687.9m의 북두산 자락에 있다. 모로현에 대한 전설은 두 가지가 전하는데, 하나는 모로현을 넘으려면 높고 지루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이렇듯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할 정도라고 모로현(毛老峴)이라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정구(鄭逑)와 정승 정인홍(鄭仁弘)의 관계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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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대가야의 궁녀들이 비녀를 풀고 간 고령 옥잠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의 자연마을 옥담(옥잠)은 신라와 대가야의 전투와 관련이 있다. 이사부가 대가야를 침략하자 대가야의 왕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 마을에서 옥대를 풀어놓고 떠나 옥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신라군을 피해 도망을 치던 대가야의 왕비와 궁녀들이 이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옥비녀를 풀어놓았다고 해서 옥잠이라고도 부른다. 혹은 마을 주변에 쌓은 방죽이 반지 모양이라 하여 옥담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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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코끼리 코 위에 얹힌 마을, 명곡이 서유재로 바뀐 까닭
    경북 고령군 덕곡면 노리의 명곡마을은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깊었다. 한 스님이 마을의 지형을 둘러본 후, 마을 앞산이 코끼리 코 모양으로 생겼으며 마을은 코 위에 얹힌 형국이라 코끼리가 코를 움직일 때마다 마을에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서유재(鼠留在)로 바꾸면 코끼리의 움직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마을 이름을 서유재로 바꾸자 신기하게도 불행한 일이 딱 끊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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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백이정의 부모가 큰 대문 집을 짓고 살았던 남해 대문골
    옛날 성이 백 씨인 한 총각이 머슴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해서 산에서 내려오다가 한 처녀를 만났다. 산에 잠을 자러 간다는 처녀의 말에 총각은 처녀를 데리고 주인집으로 와서 재워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부부가 되었다. 아들딸 낳고 대문 달린 큰 집을 짓고 살던 중, 부인이 자신은 원래 서울 출신이라며 친정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고, 부부는 아들 하나를 외가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아들이 고려 문신 백이정이다. 훗날 큰 대문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백이정의 아버지가 살던 마을을 대문골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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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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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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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정생원이 호환당한 충주 정생원골
    생원과에 급제했던 정생원은 당파싸움으로 인한 벼슬아치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충주 산골에 내려와 농부로 살았다. 어느 해 정월 열나흗날, 작은 보름에 정생원은 아내와 내기를 했다. 나무 아홉 짐과 무명실 아홉 꾸러미를 누가 더 빨리하는지 내기했다. 마지막 아홉 짐의 나무를 하러 간 정생원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계곡으로 갔다가 정생원이 호환을 당해 머리만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주고, 마을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정생원골이라 하고, 그 산을 두갈봉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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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장수를 태우려던 용마가 태어난 충주 용마골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다. 마을에 괴산에서 이주한 소리실 내외가 살았는데, 임신한지 20달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태어나자 선반에 오르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아기장수였다. 내외는 집안이 망할 것이 두려워 아이를 맷돌과 다듬잇돌로 압사시켰다. 그때 건너편의 산에서 바위가 무너지면서 괴성을 지르듯 용마가 나오더니 울부짖으며 날아 갈마고개 너머 개천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사람들은 용마가 태어난 곳을 용마골, 죽은 곳을 용천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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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령한 온수가 나오던 충북 충주의 온수골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는 ‘온수골[溫水谷]’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영조 무렵 문경새재를 넘어서 충주로 온 나병환자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싸리고개를 넘다가 그만 길가에 쓰러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거적에 말아 길 아래로 굴렸다. 나병환자는 거적을 헤치고 나와 근처 웅덩이에서 온수를 마셨다, 그리고는 온수로 매일 같이 목욕을 하여 나병을 치료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나병환자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여들었다. 충주의 원님은 나병환자들이 몰려드는 것이 싫어 나병환자들을 생매장해버렸다. 그 이후 온수가 수안보로 옮겨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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