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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혜운스님이 창건한 청용사가 있던 마을, 청주 청용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의 청용리는 청용사의 절 이름에 빗대어 마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 청용사는 경주 황룡사 주지인 혜운스님이 창건한 절로, 부처님의 파자를 받아 청용사라 이름 지었다. 과천에 똑같은 이름의 절이 있다가 이곳 청용사가 부흥하면서 쇠퇴했다. 청용사는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번성하였으나 명나라 이여송이 청용사 뒤에 있는 산의 정기를 끊는 바람에 절은 퇴락하였다. 청용사가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 이름을 절의 이름을 따서 청용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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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무장이 영조의 태실을 보호하는 충청북도 청주의 무성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는 ‘무성리(武城里)’라는 마을이 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확산할 때, ‘학도사’라 불리는 풍수가 명당자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자리에 부친의 무덤을 썼다. 그런데 학도사의 꿈에 한 무장(武將)이 나타나 호통을 치면서 형틀에 몸을 묶어 놓고 때렸다. 다음 날 아침에 그곳에 가보니 그 오래된 건물은 왕의 태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무장이 태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무성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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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청주시

    용이 영웅의 정기를 빼앗아 올라간 충북 청주의 용박골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용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용박’은 용바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마을에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소재해 있어서 원래는 ‘용바위골’로 부르다가 ‘용박골’이 되었다. 옛날 영웅이 되기 위해 용박골에 한 무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용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해 결국 무사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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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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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잉어 구워준 효부 며느리 이름을 딴 영산강
    옛날 옛적 나주에 사는 정노인은 근심 걱정이 없었다. 고을 원님이 불러 물어도 근심 걱정이 없다고 하니 원님은 구슬을 선물로 주고, 뱃사공에게 부탁해 구슬을 잃어버리도록 일을 꾸몄다. 강에서 구슬을 잃어버린 정 영감은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고, 걱정된 큰며느리 영산은 잉어를 사서 통구이를 해드렸다. 그런데 잉어 배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원님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꾸몄다고 시인하고, 정노인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정 노인은 강변에 며느리의 이름을 딴 영산서원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강 이름을 서원 이름에서 따 영산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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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드들이가 제물이 된 나주시 남평읍의 드들강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 ‘드들강’ 또는 ‘지석천’이라 부르는 하천이 소재해 있다. 옛날, 남평읍에 ‘드들’이라 부르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드들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드들이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마을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마을 주민들도 드들이에게 쌀을 내주어 아버지를 모시게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하루는 마을 주민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더 이상 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드들이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자청해서 제물이 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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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용머리 아래 위치한 나주시 동강면의 용동마을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장동리에 용동마을이 소재해 있다. 용동마을은 마을 뒤로 낮은 산이 위치하고, 삼면이 영산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옛날 한 지관이 용동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뒷산을 넘어 다니면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뒷산을 넘어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정에 다녀오던 임산부가 마을 뒷산을 넘지 않고 영산강을 따라 돌아가려 하였으나, 밀물 때라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뒷산을 넘어 마을로 들어갔는데, 며칠 후 그만 유산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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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두 하천 이야기와 물결 따라 흐르는 역사
    현존하는 지리지 및 고지도가 존재하는 조선시대 이후 굴포천을 기준으로 동쪽인 현재의 부천 지역에는 농업에 필요한 용수를 가두는 제언(堤堰) 등의 시설이 없어 하천의 물길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고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굴포천의 제2지류인 여월천은 제3지류인 베르네천, 고리울천, 여월천의 물길을 밭아 들이면서 과거 곡창지대였던 부평평야의 일부인 주화곶면, 상오정면 지역 대부분 농토를 적시고 마을의 형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여월천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한 수리관개사업과 경지정리로 원래의 하천 모습은 크게 변하였으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원래의 물줄기를 찾아보기 어려워 근대 측량 기술로 제작된 일제강점기 1919년의 지도를 활용하여 여월천과 그 지류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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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2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거창군

    1화 암자 바위에서 쌀이 나온 경상남도 거창군의 쌀골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는 ‘쌀골’, ‘쌀굴’, ‘쌀바위’ 등으로 부르는 골짜기와 동굴, 바위 등이 있다.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견사(古見寺)에서 가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옛날 쌀바위 근처 암자에 한 스님과 스님을 보좌하는 상좌가 살고 있었다. 쌀바위에는 사람 주먹 한 개정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이면 쌀이 나왔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한 사이에 상좌가 싸리 꼬챙이로 쌀 나오는 바위의 구멍을 팠다. 그 이후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4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4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3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3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2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2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테마스토리 경북 >성주군

    관리들이 피해 다니는 성주 대티고개
    대티고개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금산리와 초전면 칠선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가리킨다. 현재 김천과 상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인 주천로가 고개를 지나고 있으나 도로확장 및 포장 등으로 고개의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다. ‘대티고개’는 ‘대야(大也)’, ‘대야티(大也티)’, ‘대티현(大也峴)’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지만, 현재 지역에서 사용하는 지명이 아니므로 지역의 어른들만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대티고개의 대티(大티)는 대치(大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대티’를 ‘큰 고개’ 또는 ‘높은 고개’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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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사람을 희생하여 완성한 상주 공검지
    공검지(恭儉池)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공검지는 공검호(恭儉湖) 또는 공갈못 등으로도 불리는데, 인공 저수지로 제천시 의림지, 김제시 벽골제, 밀양시 수산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공검지의 축조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50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성덕대왕신종의 속칭인 에밀레종은 771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에밀레종의 전설에서는 공검지의 전설처럼 사람을 희생하여 종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공검지의 축조가 에밀레종의 완성보다 200년 이상이 앞서니 에밀레종의 인신공양은 공검지의 그것을 따른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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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홍수에 떠내려가는 산이 부인의 외치는 소리에 멈춘 상주 서산
    서산(西山)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청리면 가천리와 하초리 그리고 공성면 인창리·초오리, 외남면 구서리에 접해 있는 산이다. 서산은 해발 512.9m로 그리 높지 않으나 산자락이 비교적 넓게 퍼져 여러 마을이 서산과 접하고 있다. 서산의 지명유래와 관련해서는 여럿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때 창리현의 서쪽에 있으므로 명명(命名)되었다는 방위에 대한 얘기가 있고, 돛단배처럼 생긴 산이 물 위를 떠내려가다가 멈춘 곳이라는 얘기(서다+산), 그리고 서산대사가 왜군들을 물리치고 잠시 쉬던 곳이므로 ‘서산’이라고 했다는 등 세 가지 전설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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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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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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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마을에 임금님이 왔었다고요?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홍천군

    우리 마을에 임금님이 왔었다고요?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에는 마을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때 숙종대왕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홍천을 찾았다. 숙종대왕의 일행을 맞이한 청량리 사람들은 올챙이묵과 산에서 따온 벌꿀을 내주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숙종 대왕은 임금이라 말을 못하였지만 한양의 가장 큰 집에 사는 이씨라고만 밝혔다. 청량리 이씨는 한양에 산다던 이씨를 만나기 위해 가장 큰 집인 대궐로 찾아갔다. 대궐에서 만나게 된 이씨에게 꿀단지를 전하였고, 이씨가 사실은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올챙이묵과 꿀로 맺은 인연, 홍천군 청량리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淸凉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미복차림으로 홍천을 찾았던 숙종대왕 일행은 촌로가 내온 올챙이묵을 맛있게 먹고, 산에서 따온 벌꿀까지 대접받았다. 임금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숙종대왕은 한양의 가장 큰집에 사는 이 씨라고만 했다. 촌로는 한양을 찾아 가장 큰 집인 대궐에서 이 씨를 만났고, 꿀단지를 주러 왔다고 했다. 그 이씨가 임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홍천의 청량리가 생긴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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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남녀 산신의 결혼과 홍천 가리산
    강원도 홍천에 있는 가리산은 산신이 여산신인데 부끄럼을 타서 봉우리 세 개 중 하나는 꼭 가린다고 해서 가리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지체 높은 양반집 딸이 결혼도 못 하고 죽어 조상신에게 부탁하여 가리산의 여신이 되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양반집의 아들이 죽어 가리산을 내놓으라고 와서 산이 점점 황폐해지자 둘이 결혼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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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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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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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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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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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땅에서 검은 먹이 나온 영암군 학산면의 먹뱅이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먹뱅이’ 또는 ‘묵동리’라 부르는 마을이 소재한다. 옛날 ‘고연규’와 ‘곽진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척 친한 사이였는데, 모두 집안이 가난해서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다. 두 친구는 농사지을 수 있는 농토를 찾아 마을을 나섰고, 넓은 벌판을 개간하기로 하였다. 벌판을 논과 밭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을 일구었다. 그러던 중 땅에서 이상하게 생긴 검은 돌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냥 돌이 아니고 질이 좋은 먹이었다. 두 친구는 먹을 채취해서 독천장에 내다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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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효행으로 전란을 피한 영암군 금정면의 와운리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와운리 또는 운동리 등으로 부르는 마을이 소재해 있다. 조선시대 선조 때 와운리에 ‘유공신’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공신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고, 너무 어려서 시묘살이를 하지 못했던 아버지 묘 앞에도 초막을 짓고 다시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적들이 와운리로 들어오려 하자 어디선가 구름과 안개가 마을을 뒤덮어 왜적들의 발길을 돌렸다. 왜적이 간 후 마을 주민들은 구름과 안개가 별안간 나타난 것은 공신의 효심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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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남 >아산시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에 속한 '풍기동'에는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시대 때 마을에 '기득'과 '풍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부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한편 남편 기득은 문주왕의 명령으로 나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풍순은 먹을 것이 없어 이웃 마을로 음식을 구하러 갔다. 그때 개 한 마리가 풍순 앞에 나타나 보리밥을 토하자 풍순은 이를 주워담아 깨끗이 씻어 시부모님께 드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쳤고, 풍순은 죄를 말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벼락이 떨어져 황금이 담긴 바위를 깨뜨렸다. 이후 풍순은 걱정없이 시부모를 봉양했다.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강씨의 재산을 물려받은 이간이 살았던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외암리가 소재해 있다. 외암리는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리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흘러서 지명이 생긴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조선시대 후기 학자인 이간(李柬)의 호를 따서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옛날 송악에는 목씨와 강씨들이 먼저 들어와 살았고, 예안이씨들이 조선시대 단종 무렵에 들어오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을에서 부자로 소문난 강씨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모든 재산을 이씨에게 물려주라고 한다. 강씨는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이씨를 찾았는데, 그가 바로 이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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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회룡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 절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온 황룡이 살고 있었다. 황룡은 절터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며 3년을 살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하루는 세종대왕과 그 일행이 온양온천을 가는 도중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농부로 변신하여 도와주었다. 그러나 절터를 벗어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탓에 이무기로 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대왕이 절을 다시 짓게 했고, 하늘에서는 황룡에게 다시 절터로 가서 지내도록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황룡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념해 회룡리(回龍里)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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