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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영덕 침수정
    영덕 침수정은 우리나라 누정 가운데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침수정은 청정한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침수정은 손성을이 1784년(정조 8) 지은 정자이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의미로, 침수정의 유래나 자연 조건을 잘 반영한 누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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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거북의 보은으로 부역이 없어진 마을, 영덕 거무역리
    박제상의 자손인 박세통이 어느 마을 현령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부가 등에 왕(王)자가 새겨진 거북을 잡아 왔다. 기이하게 여긴 박세통이 거북을 사서 바다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삼대에 걸쳐 정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박세통은 물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시중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삼대가 정승이 된 마을이라 하여 부역을 면해주었는데, 이후 부역이 없다하여 ‘거무역’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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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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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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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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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뱃사공 손돌공의 한이 서린 경기도 김포의 손돌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뱃사공 손돌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고려 때 몽골이 침략하자 고종은 강화로 천도를 결심하고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탔다. 고종은 뱃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손돌을 의심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알았지만, 고종 일행이 무사히 악명 높은 해협을 건너길 바랐다. 그래서 바가지를 띄어 길을 안내했고, 손돌 덕분에 강화에 도착한 고종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죽은 손돌의 장례를 거하게 치러주고, 사당을 세워 넋을 위로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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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평창군

    관기 청심이가 강릉 부사 양수를 따라가지 못하자 투신한 평창 청심대
    청심대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 산 34에 있는 절벽인데, 여기에서 강릉대도호부의 관기인 청심(淸心)이가 죽은 곳이라 ‘청심대(淸心臺)’라 부른다. 강릉대도호부 부사로 양수가 부임하자 관기인 청심이가 시중을 들었다. 그러던 사이 두 사람은 정이 들었는데, 부사가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깊은 정이 들었던 청심은 자신을 한양에 데려가도록 청했으나 부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청심은 인락원(仁樂院) 근처의 경치 좋은 곳에 주안상을 준비하고 대접하였다. 그리고는 한양에 데려갈 것을 다시 청했으나 부사는 거절하였다. 이에 청심이는 오대천 낭떠러지에 몸을 날렸다. 부사는 청심이를 기리는 뜻에서 청심이가 죽은 곳을 청심대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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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평창군

    총각이 유부녀를 짝사랑하다 죽은 평창 돌모고개
    돌모고개는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4리에 있는 고개인데, 이 고개 이름은 ‘돌모’라는 총각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돌모 총각은 가난하여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하고 남의 여인을 짝사랑하다가 죽었다. 이후 신부를 태운 가마가 고개를 지날 때면 신부에게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을에서는 돌모의 혼이 그런 것이라 여기고 고사를 지낸 후 고개 이름을 돌모 이름을 따서 ‘돌모고개’라 했다. 이렇게 고사를 지내고 돌모 이름을 넣어 ‘돌모고개’라고 불러주자 고개를 넘는 가마 탄 신부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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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평창군

    임진왜란 때 민관이 함께 싸운 평창 응암리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응암리(鷹巖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평창강가에 있는 자연굴을 응암굴이라 하고, 모래재는 원주에서 평창으로 넘어오는 고개 이름이다. 이 고개에서 왜군에게 잡혔던 군수가 탈출하여 돌아왔다. 그 군수를 칭송하며 노래했다고 노래재라 부르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모래재로 바뀌었다. 평창의 백성과 군수가 숨어서 싸웠던 매화굴은 매를 날려 소식을 전했다고 해서 매 응(鷹)자를 써서 응암굴로 바뀌었다. 응암굴 덕분에 응암리라는 마을이름이 생겼다. 또 새우치고개는 군수가 밤을 새워 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평창군지』에 그 유래가 자세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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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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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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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 동암리의 마을별 지명 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은 통일신라시대에 부유현으로 순천에 속하였다가 현재 12개리로 개편되어 곡성군에 속한다. 목사동면 내 마을엔 절터가 많아 불당골이나 도장마을 같은 이름에 영향을 미쳤다. 평호마을, 고두마을, 궁두마을 등처럼 마을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되거나 유치마을이나 호곡마을처럼 마을 주변의 산세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해져 오는 이름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용암마을, 구룡마을, 용전마을 등 용과 거북이 대나무와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 외에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로 신기한 행적과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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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5건)
  • 지방문화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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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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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다섯 무사가 내려와 자라바위 목을 자른 진주 오무마을
    경남 진주 명석면 오미리의 자연마을 오무에는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하루는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본 후,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자라바위 목을 칠 장사를 구하기 위해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바위의 목을 치도록 했다. 이후 마을은 잘살게 되었다. 다섯 무사나 내려왔다고 마을 이름을 오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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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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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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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옛날 밀양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모두 죽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어느 해, 소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소를 부렸다. 하지만 소를 너무 심하게 부린 탓에 과로한 소 두 마리가 다 죽고 말았다. 그제야 잘못을 뉘우친 마을 사람들은 소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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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논밭 갈다 죽은 소를 언덕에 묻어준 밀양 우곡마을
    우곡(牛谷)마을은 경상북도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의 자연마을로 해발 674m의 만어산과 해발 640.1m의 구천산 사이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우곡(牛谷)마을은 우곡리 한 가운데 있는 중심마을로 우실·웁실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 우곡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도 소 돌림병이 돌아 몇 년 동안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면 수확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소 두 마리가 나타나 마을에서는 돌아가면서 소를 부려 밭을 갈았는데 소가 너무 힘들어 두 마리가 동시에 죽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스스로 ‘우곡(牛谷)마을’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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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임진왜란 때 충효열 삼강이 실현된 밀양 삼강동
    임진왜란 때, 손인갑과 노개방은 의병장으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손인갑의 아들 손약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싸우다 또한 전사했다. 노개방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이들은 모두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일대에서 태어났다. 선조는 삼강오륜 중 충효열을 실현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이 마을을 삼강동이라고 이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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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신선이 노는 것을 시기해 장군이 칼로 내리친 문경 칠봉산 사선암
    사선암(四仙岩)은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갈동리와 상주시 은척면 남곡리 경계에 있는 칠봉산 정상에 있는 바위이다. 예전에는 황령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산에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조자룡이 태어나 무술을 연마한 ‘조자룡굴’이 있다. 전국에 ‘칠봉산’이 여럿이나 문경시와 상주시 사이에 있는 칠봉산이 가장 높다. 사선암은 갈라져 있는데, 전설에는 어느 장군이 신선들이 노는 것을 시기해 칼로 내리쳐 갈라졌다고 하는데, 칠봉산 주변에 조자룡이 태어나 용마를 얻어 무술을 연마했다고 하니 사선암을 칼로 내리친 인물은 조자룡으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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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문경시

    지하수를 파지 않는 마을 문경 뱃들
    뱃들은 경상북도 문경시 신기동에 있던 들로 영강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형이 배처럼 생겼다고 ’뱃들‘이라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주평(舟坪)’이 된다. 1945년 이전 뱃들에는 몇 가구 살지 않았으나 1950년대 이후 탄광개발 및 시멘트공장이 건설되고 점촌역과 불정역 사이에 주평역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자 식수 개발을 위하여 관정을 여러 곳에 팠으나 지하수의 양은 많지 않았다. 이는 뱃들이 배의 형국이므로 지하수를 파는 행위는 항해하는 배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으므로 마을 수호신이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위하여 지하수 개발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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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처녀와 결혼해서 아홉 아들을 낳은 문경 구랑리
    옛날 한 마을에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총각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낮잠에 빠졌는데, 꿈에서 노인이 나타나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십 년 동안 벙어리로 살면 자손들이 삼정승 육판서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총각은 반대하는 어머니 몰래 묘를 옮기고 벙어리 행세를 했다. 그 사이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딱 십 년 째 되는 날이었다. 동네의 아홉 처녀들이 총각을 잡아서 나무에 매달고 놀렸다. 그때 10년이 딱 지났고, 총각이 소리를 쳤다. 이에 처녀들은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후 총각은 아홉 처녀를 부인으로 맞아 아홉 아들을 낳았다. 훗날 그 아들들은 모두 삼정승 육판서가 되었다고 한다. 아홉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이 마을을 ‘구랑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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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계양구

    3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오류동은 마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 ‘오리울’, ‘오릿골’, ‘오류울’, ‘오류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 오류동은 ‘효자마을’, ‘효자동’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효행심 깊은 마을로 유명했다. 오류동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었다. 파평 윤씨 문중 가운데 정직한 윤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효성 깊은 선비였다. 그는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잉어를 구해 봉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윤선비의 효행이 감화가 되어 오류동은 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는 마을이 되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칭송하기 위해 효자문을 내렸다고 한다.
  • 4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계양구

    4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오류동은 마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 ‘오리울’, ‘오릿골’, ‘오류울’, ‘오류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 오류동은 ‘효자마을’, ‘효자동’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효행심 깊은 마을로 유명했다. 오류동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었다. 파평 윤씨 문중 가운데 정직한 윤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효성 깊은 선비였다. 그는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잉어를 구해 봉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윤선비의 효행이 감화가 되어 오류동은 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는 마을이 되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칭송하기 위해 효자문을 내렸다고 한다.
  • 2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인천 >계양구

    2화 효자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오류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오류동은 마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 ‘오리울’, ‘오릿골’, ‘오류울’, ‘오류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 오류동은 ‘효자마을’, ‘효자동’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효행심 깊은 마을로 유명했다. 오류동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었다. 파평 윤씨 문중 가운데 정직한 윤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효성 깊은 선비였다. 그는 엄동설한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잉어를 구해 봉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윤선비의 효행이 감화가 되어 오류동은 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는 마을이 되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칭송하기 위해 효자문을 내렸다고 한다.
  • 테마스토리 경북 >고령군

    고개가 너무 높아 넘다보면 머리카락이 희게 되는 고령 모로현
    모로현(毛老峴)은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나대리·하림리 등을 이어주는 고개로 모리터 또는 모리티라고도 하는데 해발 687.9m의 북두산 자락에 있다. 모로현에 대한 전설은 두 가지가 전하는데, 하나는 모로현을 넘으려면 높고 지루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이렇듯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할 정도라고 모로현(毛老峴)이라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정구(鄭逑)와 정승 정인홍(鄭仁弘)의 관계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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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야의 궁녀들이 비녀를 풀고 간 고령 옥잠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의 자연마을 옥담(옥잠)은 신라와 대가야의 전투와 관련이 있다. 이사부가 대가야를 침략하자 대가야의 왕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 마을에서 옥대를 풀어놓고 떠나 옥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신라군을 피해 도망을 치던 대가야의 왕비와 궁녀들이 이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옥비녀를 풀어놓았다고 해서 옥잠이라고도 부른다. 혹은 마을 주변에 쌓은 방죽이 반지 모양이라 하여 옥담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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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 코 위에 얹힌 마을, 명곡이 서유재로 바뀐 까닭
    경북 고령군 덕곡면 노리의 명곡마을은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깊었다. 한 스님이 마을의 지형을 둘러본 후, 마을 앞산이 코끼리 코 모양으로 생겼으며 마을은 코 위에 얹힌 형국이라 코끼리가 코를 움직일 때마다 마을에 불행한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서유재(鼠留在)로 바꾸면 코끼리의 움직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마을 이름을 서유재로 바꾸자 신기하게도 불행한 일이 딱 끊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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