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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피난 온 인조를 도와준 충청남도 공주시의 조왕동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조왕동(助王洞)’ 또는 ‘조왕골’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인조 때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켰다. 인조는 공주시 인근으로 피난을 왔다. 동곡리에 도착해 ‘노숙(盧潚)’이라는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인조가 노숙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이괄의 난이 모두 평정되었다. 한양으로 돌아간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인한 피해들을 모두 복구하고, 자신이 공주로 피난 갔을 때 며칠 동안 따뜻하게 대해주던 노숙과 동곡리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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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바위에서 금비둘기가 날아간 충청남도 공주시의 유구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유구읍이라는 곳이 있다. 유구의 옛 지명은 ‘창말’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창말에 도적 떼가 들어 와 노략질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관군을 보내 도적 떼를 소탕하고, 마을에 수비병 몇백 명을 두었는데, 수비병들은 마을 길을 넓히기로 하였다. 수비병들이 마을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폭약으로 한 바위를 폭파하였다. 그때 금비둘기 한 쌍이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수비병들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지명을 ‘유구’로 바꾸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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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이성계가 지은 불당이 있던 충청남도 공주시의 불당마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경천리(敬天里)라는 마을이 있다. 경천리를 ‘불당리(佛堂里)’ 또는 ‘불당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찾아온 마을이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의 도읍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가 계룡산 일대에 도읍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계룡산 일대에 새로운 도읍지를 짓기 위한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도읍지 건설 현장에 내려온 이성계의 꿈에 계룡산 산신령이 나타나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라며, 딸에게 길을 안내해 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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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원님의 욕심에 청춘남녀가 돌이 된 영천 입석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에 이르러 금호강과 봉동천이 합류하여 주변에 강물이 흐르는 소규모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이곳에 중죄인을 가두는 요도가 있었다. 영천고을의 사또는 자신에게 딸을 주지 않는다고 구씨 노인네를 때리고 요도로 유배 보냈다. 구씨 딸과 사위가 될 청년이 인근의 유봉산에 정상에 올라가 삼각주 요도에 구씨 노인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울부짖다가 아버지가 죽자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며 딸과 사위 될 청년은 산 아래에서 돌이 나란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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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채정승이 귀양 와 살던 정읍시 구룡동의 채서방골
    전라북도 정읍시 구룡동에 ‘귀양실’또는 ‘구량마을’, ‘양실마을’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조선시대 무렵, 채정승이라 부르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실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채정승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낮에는 산에 나가 나물과 약초를 캐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에는 달빛에 의지해 자연과 벗 삼으며 세월을 보냈다. 채정승은 자신의 억울한 누명이 밝혀지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무고를 밝히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을 주민들은 귀양실 뒤 산골짜기를 ‘채서방골’이라 부르며, 채정승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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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신부 순이가 빠져 죽은 정읍시 고부면의 순이방죽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소재하는 방죽을 ‘순이방죽’ 또는 ‘통울방죽’ 등으로 부른다. 고부면 신중마을에 ‘창식’이라는 총각이 살았고, 주산마을에는 ‘순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창식과 순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양쪽 집안에서 혼인을 반대해, 두 사람은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창식이 다른 마을에 사는 처녀를 만나 집을 나가버리고, 순이는 저녁마다 방죽에 나와 창식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집으로 돌아온 창식은 착각으로 순이를 방죽에 밀어 넣어 죽이고, 창식도 귀신이 된 순이에게 이끌려 방죽에 빠져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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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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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옛날 밀양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모두 죽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어느 해, 소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소를 부렸다. 하지만 소를 너무 심하게 부린 탓에 과로한 소 두 마리가 다 죽고 말았다. 그제야 잘못을 뉘우친 마을 사람들은 소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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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논밭 갈다 죽은 소를 언덕에 묻어준 밀양 우곡마을
    우곡(牛谷)마을은 경상북도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의 자연마을로 해발 674m의 만어산과 해발 640.1m의 구천산 사이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우곡(牛谷)마을은 우곡리 한 가운데 있는 중심마을로 우실·웁실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 우곡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도 소 돌림병이 돌아 몇 년 동안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면 수확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소 두 마리가 나타나 마을에서는 돌아가면서 소를 부려 밭을 갈았는데 소가 너무 힘들어 두 마리가 동시에 죽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스스로 ‘우곡(牛谷)마을’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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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밀양시

    임진왜란 때 충효열 삼강이 실현된 밀양 삼강동
    임진왜란 때, 손인갑과 노개방은 의병장으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손인갑의 아들 손약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싸우다 또한 전사했다. 노개방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 이들은 모두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일대에서 태어났다. 선조는 삼강오륜 중 충효열을 실현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이 마을을 삼강동이라고 이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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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정생원이 호환당한 충주 정생원골
    생원과에 급제했던 정생원은 당파싸움으로 인한 벼슬아치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충주 산골에 내려와 농부로 살았다. 어느 해 정월 열나흗날, 작은 보름에 정생원은 아내와 내기를 했다. 나무 아홉 짐과 무명실 아홉 꾸러미를 누가 더 빨리하는지 내기했다. 마지막 아홉 짐의 나무를 하러 간 정생원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계곡으로 갔다가 정생원이 호환을 당해 머리만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주고, 마을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정생원골이라 하고, 그 산을 두갈봉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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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아기장수를 태우려던 용마가 태어난 충주 용마골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다. 마을에 괴산에서 이주한 소리실 내외가 살았는데, 임신한지 20달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태어나자 선반에 오르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아기장수였다. 내외는 집안이 망할 것이 두려워 아이를 맷돌과 다듬잇돌로 압사시켰다. 그때 건너편의 산에서 바위가 무너지면서 괴성을 지르듯 용마가 나오더니 울부짖으며 날아 갈마고개 너머 개천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사람들은 용마가 태어난 곳을 용마골, 죽은 곳을 용천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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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충주시

    신령한 온수가 나오던 충북 충주의 온수골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는 ‘온수골[溫水谷]’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영조 무렵 문경새재를 넘어서 충주로 온 나병환자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싸리고개를 넘다가 그만 길가에 쓰러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거적에 말아 길 아래로 굴렸다. 나병환자는 거적을 헤치고 나와 근처 웅덩이에서 온수를 마셨다, 그리고는 온수로 매일 같이 목욕을 하여 나병을 치료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나병환자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여들었다. 충주의 원님은 나병환자들이 몰려드는 것이 싫어 나병환자들을 생매장해버렸다. 그 이후 온수가 수안보로 옮겨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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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두 하천 이야기와 물결 따라 흐르는 역사
    현존하는 지리지 및 고지도가 존재하는 조선시대 이후 굴포천을 기준으로 동쪽인 현재의 부천 지역에는 농업에 필요한 용수를 가두는 제언(堤堰) 등의 시설이 없어 하천의 물길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고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굴포천의 제2지류인 여월천은 제3지류인 베르네천, 고리울천, 여월천의 물길을 밭아 들이면서 과거 곡창지대였던 부평평야의 일부인 주화곶면, 상오정면 지역 대부분 농토를 적시고 마을의 형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여월천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한 수리관개사업과 경지정리로 원래의 하천 모습은 크게 변하였으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원래의 물줄기를 찾아보기 어려워 근대 측량 기술로 제작된 일제강점기 1919년의 지도를 활용하여 여월천과 그 지류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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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하동군

    천 마리 닭으로 지네를 없앤 하동 봉계마을
    옛날 경남 하동군 횡천면 애치리 봉계마을에서는 섣달그믐날이면 사람 하나씩이 사라졌다. 마을사람들은 밤새 망을 보았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도사가 나타나 닭 천 마리를 길러 섣달그믐날 닭장문을 열어놓으라고 했다. 도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 봉닭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다른 닭들이 따르며 커다란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다음 날 바위 틈새에는 천년 묵은 지네와 닭들이 죽어 있었다. 닭들이 독지네를 쪼아 죽인 것이다. 이후 이 마을을 봉닭에서 따와 봉계마을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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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하동군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어 화를 면한 하동군 진교면
    옛날 고관대작들이 낳은 딸들이 한쪽 눈이 머는 일이 일어났다. 원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들은 하동군 이명산 달구봉에서 호수를 발견했다. 호수에는 늙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고, 그 일들은 이무기가 벌인 짓이었다. 사람들이 화철석을 호수에 집어넣자, 견디지 못한 이무기가 물 밖으로 나와 광포바다로 도망쳤다. 사람들은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어주면 못된 짓을 그만두리라 생각하고 마을 이름을 용 진(辰)에 다리 교(橋)를 써서 진교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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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하동군

    걸어오다가 멈춘 갈미봉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는 갈미봉이 있다. 갈미봉은 그 모양이 꼭 물을 마시려는 말을 닮았다하여 갈모봉이라고도 불린다. 갈미봉에 관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낙노국의 번영을 위해 갈미봉을 움직이려 하였으나, 한 여인이 발견하여 지금의 자리에 멈춰섰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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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렀던 경기도 의정부
    경기도 북부에는 서울 북쪽의 관문 도시로 알려진 의정부가 있다. 의정부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며, 조선 시대 최고의 행정 기관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정 기관의 명칭이 도시 이름이 된 까닭은 태종 이방원과 그의 아버지였던 태조 이성계와 연관되어 있다. 조선 초 이방원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그러자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났고, 방원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사신을 보낸다. 그러나 크게 화가 났던 태조는 보내는 사신들 모두 죽여버렸다. 이후 무학대사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돌린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의정부 지역에 머물게 된다. 그때 조정의 대신들이 이곳으로 와서 태조에게 업무를 보고했다고 하여, 이 지역을 ‘의정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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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군마 목장에서 유래된 의정부 녹양동과 군마 목장 녹양평
    경기도 의정부시 최북단에 위치한 녹양동은 조선시대 군마 사육 목장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녹양이란 지명은 『고려사』, 『보한집』, 『조선왕조실록』 등에 등장한다. 군마 목장은 조선왕조 개국 초기인 1406년에 경기도 시흥군에서 녹양동으로 옮겨졌다. 군마 목장이 설치된 이후 태종을 비롯해 여러 임금이 녹양동으로 거둥하여 강무장으로 활용한다. 현재 녹양동에 예전에 군마 목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녹양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말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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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하금오리의 지명 변천과 연주현씨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는 금곡리와 서오리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것으로, 상금오리․중금오리․하금오리로 나뉜다. 하금오리는 6.25 전쟁 이전까지 연주현씨 세거지였다. 하금오리에 소림사를 비롯한 여러 개의 절이 들어서면서 절동네로 이름이 바뀐다. 마을 주민들은 본래의 동명인 하금오리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동네에 꽃을 심고 꽃동네로 홍보하여 현재는 하금오리보다 꽃동네로 널리 알려졌다. 하금오리에서는 음력 10월 1일 산치성을 드리는데,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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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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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우애 있는 형제가 살았던 군포시 군포1동의 아구랑
    경기도 군포시 군포1동에 ‘아구랑’ 또는 ‘아우랑’ 등으로 부르는 자연마을이 소재해 있다. 아구랑은 '아람다운 언덕의 솟을대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조선시대 선조의 열한 번째 왕자 경평군의 증손자인 ‘혜평군’이 낙향해서 지은 집이 있었기에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한편, 흰 개 두 마리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넘어간 곳이라서, 마을의 지형이 입을 벌리고 있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아구랑이라고 한다는 설도 전한다. 또한 우애 깊은 형제가 살았던 곳이라고 해서 아우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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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좋은 형제가 살았던 경기도 군포의 아구랑
    경기도 군포시 군포1동에는 아구랑 마을이 있다. 이곳이 아구랑이란 이름을 갖게 된 까닭은 조선시대 선조의 고손자였던 해평군이 ‘언덕 위 솟을대문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에서 ‘아구랑(阿邱閬)’이라 이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아구랑 마을을 아우랑 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아구랑 마을에 살던 의좋은 형제가 한 처녀를 사랑하게 되고, 동생을 아꼈던 형은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난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의좋던 형제가 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우랑’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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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생과 사랑한 경기도 군포의 삼성마을 처녀와 감투봉
    경기도 군포시 군포2동에 ‘삼성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삼성마을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이기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삼성마을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유생과 마을 처녀가 사랑하게 되었다. 유생과 마을 처녀는 달이 떠오르면 달을 향해서 유생의 과거 합격을 정성을 다해서 함께 빌었다. 유생이 장원급제해서 삼성마을로 돌아온 날 삼성마을 처녀를 놓고 호랑이와 용이 겨루었다. 그 모습을 본 처녀가 기절하고, 장원 급제한 유생도 처녀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감투봉을 장원 급제한 벼슬아치의 관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관모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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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이 승천하는 등용문의 어등산
    어등산은 자연 지리적으로 등성이 길고 계곡이 깊어 한말 의병들이 지형지물의 전략적 이용이 쉬워 광주지역 의병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어등산에서는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약 3년간 일제의 군경과 110여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룬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폐사지의 흔적으로 보아 한때 광주지역 불교문화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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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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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아의 숨결이 아른거리는 소촌동
    소촌동은 소촌 1 · 2동 남계(南溪)마을. 선계(仙溪)마을, 금봉산 기슭의 신역(新驛)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2.65㎢이다. 지명 의미상으로 소(所)자가 들어간 땅이름은 동구 소태동 북구 삼소동 등 장인촌의 뜻을 가지고 있어, 이웃마을이 역촌이고 솥머리라는 지명으로 보아 어등산록에 위치한 사찰들과 병부관할의 역촌에서 필요로 하는 대장간 일꾼과 선암장에 내놓을 가내수공품 생산자들이 몰려 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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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4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3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3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2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대전 >유성구

    2화 부싯돌 만드는 돌이 많았던 대전 봉산동 부시골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鳳山洞)에 ‘큰 부시골’, ‘작은 부시골’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머슴살이를 하기 위해 부 씨네로 찾아온 박 씨는 야산 개간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가 부싯돌을 만드는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간을 하면서 부싯돌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