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인기태그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땅에서 검은 먹이 나온 영암군 학산면의 먹뱅이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먹뱅이’ 또는 ‘묵동리’라 부르는 마을이 소재한다. 옛날 ‘고연규’와 ‘곽진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척 친한 사이였는데, 모두 집안이 가난해서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다. 두 친구는 농사지을 수 있는 농토를 찾아 마을을 나섰고, 넓은 벌판을 개간하기로 하였다. 벌판을 논과 밭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을 일구었다. 그러던 중 땅에서 이상하게 생긴 검은 돌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냥 돌이 아니고 질이 좋은 먹이었다. 두 친구는 먹을 채취해서 독천장에 내다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효행으로 전란을 피한 영암군 금정면의 와운리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와운리 또는 운동리 등으로 부르는 마을이 소재해 있다. 조선시대 선조 때 와운리에 ‘유공신’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공신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고, 너무 어려서 시묘살이를 하지 못했던 아버지 묘 앞에도 초막을 짓고 다시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적들이 와운리로 들어오려 하자 어디선가 구름과 안개가 마을을 뒤덮어 왜적들의 발길을 돌렸다. 왜적이 간 후 마을 주민들은 구름과 안개가 별안간 나타난 것은 공신의 효심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애국충절과 전통이 숨 쉬는 동호동
    동호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속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동, 본촌, 신촌, 용호마을이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후 조성한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을 수입현(水入縣) 또는 수천현(水川縣)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본량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여황현(艅艎縣)으로 바뀌었는데 ‘여황’이란 뜻도 나룻배를 의미한다. 이렇듯 땅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강물이 넘쳐 나룻배가 아니면 생활할 수 없는 고을이란 뜻으로 여황이라고 이름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곡성군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 동암리의 마을별 지명 유래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은 통일신라시대에 부유현으로 순천에 속하였다가 현재 12개리로 개편되어 곡성군에 속한다. 목사동면 내 마을엔 절터가 많아 불당골이나 도장마을 같은 이름에 영향을 미쳤다. 평호마을, 고두마을, 궁두마을 등처럼 마을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되거나 유치마을이나 호곡마을처럼 마을 주변의 산세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해져 오는 이름들도 있다. 이와 함께 용암마을, 구룡마을, 용전마을 등 용과 거북이 대나무와 관련된 이름들도 있다. 그 외에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로 신기한 행적과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두 하천 이야기와 물결 따라 흐르는 역사
    현존하는 지리지 및 고지도가 존재하는 조선시대 이후 굴포천을 기준으로 동쪽인 현재의 부천 지역에는 농업에 필요한 용수를 가두는 제언(堤堰) 등의 시설이 없어 하천의 물길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고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굴포천의 제2지류인 여월천은 제3지류인 베르네천, 고리울천, 여월천의 물길을 밭아 들이면서 과거 곡창지대였던 부평평야의 일부인 주화곶면, 상오정면 지역 대부분 농토를 적시고 마을의 형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여월천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한 수리관개사업과 경지정리로 원래의 하천 모습은 크게 변하였으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원래의 물줄기를 찾아보기 어려워 근대 측량 기술로 제작된 일제강점기 1919년의 지도를 활용하여 여월천과 그 지류를 살펴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힘센 가래와 도치가 살았던 가평군 가평읍의 보납골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보납골이 소재해 있다. 보납골에는 신기한 것이 많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가 힘을 솟아나게 하는 물이다. 옛날 보납산에 불도를 닦지 않고, 고기와 술은 물론 마을에 사는 부녀자들까지 희롱하는 가래와 도치로 불리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임금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남이’라는 현명한 관리를 보납골로 보냈다. 작은 암자에서 가래, 도치와 함께 살게 된 남이는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바위를 들고, 물을 마시는 것을 몰래 보았다. 남이는 풀로 만든 빨대로 물을 먹었다. 그 후 가래와 도치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되어 두 사람을 잡아 관가로 넘길 수 있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구리로 만든 떡 안반이 묻힌 가평군 가평읍의 안반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안반지’또는 ‘암반지’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있다. 예전에 ‘안반탄’이라는 하천이 있었고, 안반탄 용소 위에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안반’이 있기에 생긴 지명이다. 한편, ‘장자골’에 만석지기로 소문난 장씨 성을 가진 인색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주를 청하기 위해 찾아온 스님에게 두엄을 담아주었다. 이를 보고 장부자의 며느리가 곡간에 가서 쌀을 가져다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다음 날 정오에 뒷산으로 오르라고 하였다. 다음날 스님의 말을 듣고 며느리는 뒷산으로 올랐다. 그러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다 보았는데,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일어나더니, 장부잣집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가평군

    '이 화로 누구 것이오?', 가평 이화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는 장승 고개 아랫마을이다. 황 씨가 꼴을 베고 오다가 어떤 여인을 만난 꿈을 꾸었다. 그 여인이 시신이 묻힌 곳을 알려주며 발이 밖으로 나와 있으니 제대로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황 씨는 제대로 묻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그랬더니 황금 화로를 받게 되었다. 혹시 화로 주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이 화로 누구 것이오?” 외치고 다녔는데, 여기서 '이화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황 씨는 황금 화로를 팔아 황부자가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원님의 욕심에 청춘남녀가 돌이 된 영천 입석
    경상북도 영천시 도동에 이르러 금호강과 봉동천이 합류하여 주변에 강물이 흐르는 소규모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이곳에 중죄인을 가두는 요도가 있었다. 영천고을의 사또는 자신에게 딸을 주지 않는다고 구씨 노인네를 때리고 요도로 유배 보냈다. 구씨 딸과 사위가 될 청년이 인근의 유봉산에 정상에 올라가 삼각주 요도에 구씨 노인이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울부짖다가 아버지가 죽자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며 딸과 사위 될 청년은 산 아래에서 돌이 나란히 서 있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채정승이 귀양 와 살던 정읍시 구룡동의 채서방골
    전라북도 정읍시 구룡동에 ‘귀양실’또는 ‘구량마을’, ‘양실마을’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조선시대 무렵, 채정승이라 부르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실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채정승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낮에는 산에 나가 나물과 약초를 캐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에는 달빛에 의지해 자연과 벗 삼으며 세월을 보냈다. 채정승은 자신의 억울한 누명이 밝혀지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무고를 밝히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을 주민들은 귀양실 뒤 산골짜기를 ‘채서방골’이라 부르며, 채정승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신부 순이가 빠져 죽은 정읍시 고부면의 순이방죽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소재하는 방죽을 ‘순이방죽’ 또는 ‘통울방죽’ 등으로 부른다. 고부면 신중마을에 ‘창식’이라는 총각이 살았고, 주산마을에는 ‘순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창식과 순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양쪽 집안에서 혼인을 반대해, 두 사람은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창식이 다른 마을에 사는 처녀를 만나 집을 나가버리고, 순이는 저녁마다 방죽에 나와 창식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집으로 돌아온 창식은 착각으로 순이를 방죽에 밀어 넣어 죽이고, 창식도 귀신이 된 순이에게 이끌려 방죽에 빠져 죽게 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홍천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2건)
  • 지방문화툰 (1건)
자세히보기
  • 우리 마을에 임금님이 왔었다고요?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강원 >홍천군

    우리 마을에 임금님이 왔었다고요?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에는 마을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때 숙종대왕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홍천을 찾았다. 숙종대왕의 일행을 맞이한 청량리 사람들은 올챙이묵과 산에서 따온 벌꿀을 내주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숙종 대왕은 임금이라 말을 못하였지만 한양의 가장 큰 집에 사는 이씨라고만 밝혔다. 청량리 이씨는 한양에 산다던 이씨를 만나기 위해 가장 큰 집인 대궐로 찾아갔다. 대궐에서 만나게 된 이씨에게 꿀단지를 전하였고, 이씨가 사실은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올챙이묵과 꿀로 맺은 인연, 홍천군 청량리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淸凉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미복차림으로 홍천을 찾았던 숙종대왕 일행은 촌로가 내온 올챙이묵을 맛있게 먹고, 산에서 따온 벌꿀까지 대접받았다. 임금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숙종대왕은 한양의 가장 큰집에 사는 이 씨라고만 했다. 촌로는 한양을 찾아 가장 큰 집인 대궐에서 이 씨를 만났고, 꿀단지를 주러 왔다고 했다. 그 이씨가 임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홍천의 청량리가 생긴 유래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강원 >홍천군

    남녀 산신의 결혼과 홍천 가리산
    강원도 홍천에 있는 가리산은 산신이 여산신인데 부끄럼을 타서 봉우리 세 개 중 하나는 꼭 가린다고 해서 가리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지체 높은 양반집 딸이 결혼도 못 하고 죽어 조상신에게 부탁하여 가리산의 여신이 되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양반집의 아들이 죽어 가리산을 내놓으라고 와서 산이 점점 황폐해지자 둘이 결혼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영덕 침수정
    영덕 침수정은 우리나라 누정 가운데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산과 동대산의 계곡물이 합류하는 지점의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침수정은 청정한 자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침수정은 손성을이 1784년(정조 8) 지은 정자이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의미로, 침수정의 유래나 자연 조건을 잘 반영한 누정도 없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영덕군

    거북의 보은으로 부역이 없어진 마을, 영덕 거무역리
    박제상의 자손인 박세통이 어느 마을 현령이었을 때 이야기다. 어부가 등에 왕(王)자가 새겨진 거북을 잡아 왔다. 기이하게 여긴 박세통이 거북을 사서 바다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삼대에 걸쳐 정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과연 박세통은 물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시중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삼대가 정승이 된 마을이라 하여 부역을 면해주었는데, 이후 부역이 없다하여 ‘거무역’이라 불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영양군

    원님이 여우꿈을 꾸고 비가 내린 영양 원터
    옛날 어느 고을의 원님이 아내가 사는 영덕군 영해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다리를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뭄에 타들어 가는 들이 보였다.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몇 달 전 산사태에 깔려 죽었으며 그때 뼈가 두 군데로 나뉘어 묻혔다고 한다. 그 뼈를 수습해주면 비를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원님은 여우 뼈를 찾아 잘 묻어주었다. 그러자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 이후 원님이 앉았던 자리를 원터라고 불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진주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5건)
  • 지방문화툰 (1건)
자세히보기
  •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남 >진주시

    가난한 마을, 앞산의 자라바위 때문?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의 '오무마을'에는 마을 이름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날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보고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베어버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의 목을 베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살림이 몰라보게 불어나 덕분에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마을에 다섯 무사가 내려왔다고 하여 다섯 무사가 내려온 마을 즉, ‘오무(五武)’라 불렀다.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진주시

    다섯 무사가 내려와 자라바위 목을 자른 진주 오무마을
    경남 진주 명석면 오미리의 자연마을 오무에는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하루는 노승이 지나가다 마을의 지세를 본 후, 앞산 자라바위의 목을 치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자라바위 목을 칠 장사를 구하기 위해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렸다. 마침내 옥황상제가 다섯 무사를 내려보내 자라바위의 목을 치도록 했다. 이후 마을은 잘살게 되었다. 다섯 무사나 내려왔다고 마을 이름을 오무라고 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 과천 관문동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官門洞)은 과천고을의 관문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삼남지방의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려면 다섯 번의 문세(門稅)를 내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이 관문동에 있는 과천 동헌 앞이었다. 그 외에 남태령 고개, 노량진, 남대문, 육조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인 통과세를 거둬가는 자들이 많았다. 현재 관문동에는 정부 제2청사가 들어와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부터 삼남(경상, 전라, 충청)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으로 행차하실 때 지나셨던 효행의 길로써 유서가 깊은 길이다. 남태령 옛길 따라 과천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탐방해 본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과천시

    고려 충신 조윤이 오른 경기도 과천의 망경대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은 마을을 흐르는 내가 맑아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막계동 뒷산인 청계산도 같은 의미다. 청계산의 주봉에 해당하는 석대(石臺) 이름이 ‘망경대(望京臺)’인데, 고려말 충신인 조윤(趙胤)이 오른 이후 ‘만경(萬景)’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망경(望京)’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를 향한 조윤의 충성심을 지명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