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지명유래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남 >아산시

    개가 토한 밥을 시부모에게 올린 며느리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에 속한 '풍기동'에는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시대 때 마을에 '기득'과 '풍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부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한편 남편 기득은 문주왕의 명령으로 나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풍순은 먹을 것이 없어 이웃 마을로 음식을 구하러 갔다. 그때 개 한 마리가 풍순 앞에 나타나 보리밥을 토하자 풍순은 이를 주워담아 깨끗이 씻어 시부모님께 드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쳤고, 풍순은 죄를 말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벼락이 떨어져 황금이 담긴 바위를 깨뜨렸다. 이후 풍순은 걱정없이 시부모를 봉양했다.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강씨의 재산을 물려받은 이간이 살았던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외암리가 소재해 있다. 외암리는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리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흘러서 지명이 생긴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조선시대 후기 학자인 이간(李柬)의 호를 따서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옛날 송악에는 목씨와 강씨들이 먼저 들어와 살았고, 예안이씨들이 조선시대 단종 무렵에 들어오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을에서 부자로 소문난 강씨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모든 재산을 이씨에게 물려주라고 한다. 강씨는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이씨를 찾았는데, 그가 바로 이간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아산시

    마을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회룡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 절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온 황룡이 살고 있었다. 황룡은 절터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며 3년을 살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하루는 세종대왕과 그 일행이 온양온천을 가는 도중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농부로 변신하여 도와주었다. 그러나 절터를 벗어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탓에 이무기로 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대왕이 절을 다시 짓게 했고, 하늘에서는 황룡에게 다시 절터로 가서 지내도록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황룡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념해 회룡리(回龍里)라 이름 붙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용두사 철당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충북 >청주시

    용두사 철당간
    2025년 대학생 웹툰&애니메이션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지역N문화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의 충북 청주' 콘텐츠를 바탕으로,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인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의 역사와 그에 담긴 설화를 웹툰 형식으로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창작 작품입니다. *관련 링크 : https://ncms.nculture.org/origin-of-place-names/story/4713
  • 테마스토리

    [지역대학 연계 지역N문화 맞춤형 콘텐츠] 무덤에 새긴 그리움: 600년의 기다림
    본 영상은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해 한성대학교·성북문화원·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에서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창작 콘텐츠입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오정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기억들
    지금의 부천시 오정구는 고속도로와 산업단지가 얽힌 교통 중심지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이 이어진 평야 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물대는 소리와 허수아비가 들판을 채우던 이곳은 ‘오쟁이’라고도 하고 ‘오쟁이→오정이→오정’으로 변했다는 속설도 전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오동나무 정자인 오정(梧亭)에서 오정동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후적으로 붙인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이 지역에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기록은 드물기 때문에 토박이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오정(吾丁)’을 고대 중국 문헌에서처럼 ‘나’와 ‘정직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보고, 주민들이 자신을 낮추며 부르던 민속적 어감을 반영한 이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큰 마을을 뜻하는 용어로 풀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정은 행정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었다. 1973년 부천군 폐지로 김포군에 편입됐다가 1975년 다시 부천시로 환원되며, 주민들은 “우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되었다. 지명이 바뀌고 행정구역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 ‘오정’은 변하지 않았다. 장에 나서던 어머니,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 들녘의 김매기 풍경은 모두 이 이름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오정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과 기억의 그릇이었다. 오늘날 오정은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농촌의 흔적과 마을 공동체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과거를 불러오고, 현재를 이어 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산업화의 속도 속에서도 오정의 따뜻한 기억을 잊지 않는 한, 부천은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오정’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대로 부르는 일은 이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기억의 회복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태조 왕건의 꿈 해몽을 잘 해줘서 받은 왕밭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 전쟁 중 잠깐 쉬는 동안 꿈을 꾸었다. 꿈이 하도 기이해서 해몽을 잘한다는 무당이 사는 논산 부적면 부인리로 가서 만났다. 무당은 곧 후삼국을 통일할 꿈이라고 풀이를 했다. 이에 고무된 태조와 부하들은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이후 태조는 꿈풀이를 잘해준 보답으로 무당에게 밭을 하사했는데, 이를 지역 사람들은 왕이 준 밭이라 해서 왕밭이라 했다. 이곳이 충남 논산 광석면 왕전리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은혜갚은 한조, 한골
    옛날 논산시 은지면 방축리에 김 부자가 살았다. 그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았다. 어느 날 곡광에 둥지를 튼 한조를 돌봐준 김부자는 새끼 한조까지 부화해서 보내주었다. 그 후 김부자는 원인 모를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한조가 날아와 약그릇에 열매 하나를 떨구고 갔다. 그 열매가 든 약을 먹은 김 부자는 완쾌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한조가 김 부자를 살렸다며 김 부자가 사는 마을을 한조골이라 불렀고, 이것을 줄여 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허리나 다리가 아프면 개재다리로 오시오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는 개재다리가 있다. 이 다리에는 예부터 허리나 다리가 아픈 사람이 다리를 왕복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망나니 남편과 부지런한 아내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아내가 밭에 거름을 주다가 백사를 보고 놀라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 아내의 꿈에 백사가 노인으로 변하여 나타나 치료 방법을 일러주었고, 아내는 백사 노인의 말대로 개재다리를 오가서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달성, 마을을 품다

    출처 :대구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구 >달성군

    달성, 마을을 품다
    대구시 인근 달성군이 도시화함에 따라 사라지는 자연마을의 모습을 기록한 책자이다. 달성군 9개의 면의 각 마을의 개요, 지리, 변천사, 문화재를 충실하게 담았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대구 >북구

    칠성바위에 일곱 아들의 이름을 새긴 대구광역시 북구의 칠성동
    대구광역시 북구에 ‘칠성동(七星洞)’이 소재해 있다. 칠성동은 칠성바위가 소재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명이다. 조선시대 정조 때 경상감사로 부임한 이태영(李泰永)이 대구읍성 북문 밖에 북두칠성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확인해 보니, 대구읍성 북문에 꿈에서 보았던 일곱 개의 바위가 북두칠성처럼 놓여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곱 아들들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 그 이후 경상감사의 아들들의 성품이 각자 이름을 새긴 바위와 닮았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대구 >동구

    역적이 나온 마을에 둑을 쌓아 못을 만든 대구 모단
    대구 동구 둔산동에는 옻골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옻골은 ‘빼골’ 또는 ‘모단’이라고도 불린다. ‘빼골’은 ‘빼어난 골짜기’라는 뜻이며 ‘모단’은 ‘못안에 산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옛날, 이 마을은 지세가 뛰어나 한 나라의 수도가 되거나 또는 역적이 나올만 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어느 해에 역적이 나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사람들은 마을 주변에 둑을 쌓고 물을 채워 마을을 못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월이 흘러 둑이 무너지고 물이 빠지면서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후, 사람들이 “못 안에 산다.”하여 ‘못안’에서 ‘모단’으로 이름 붙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5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4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3화 의좋은 체제공 형제가 살던 서울 종로 돈의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은 서울 도심지에 있는 주택가다. 1914년 돈령동의 ‘돈(敦)’자와 어의동의 ‘의(義)’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채제민"은 장사 경험이 없어 한양으로 돌아올 차비도 없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다. 그리고는 평양에 머물던 하숙집 주인 딸과 혼인을 하였는데 어느날, 채제공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오자 그가 자신의 사촌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 채제민의 처지를 모두 알게 된 채제공은 그의 사촌 형이 되어주었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채제민도 함께 따라와 돈의동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나주 지명유래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4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잉어 구워준 효부 며느리 이름을 딴 영산강
    옛날 옛적 나주에 사는 정노인은 근심 걱정이 없었다. 고을 원님이 불러 물어도 근심 걱정이 없다고 하니 원님은 구슬을 선물로 주고, 뱃사공에게 부탁해 구슬을 잃어버리도록 일을 꾸몄다. 강에서 구슬을 잃어버린 정 영감은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고, 걱정된 큰며느리 영산은 잉어를 사서 통구이를 해드렸다. 그런데 잉어 배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원님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꾸몄다고 시인하고, 정노인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정 노인은 강변에 며느리의 이름을 딴 영산서원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강 이름을 서원 이름에서 따 영산강이라 불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드들이가 제물이 된 나주시 남평읍의 드들강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 ‘드들강’ 또는 ‘지석천’이라 부르는 하천이 소재해 있다. 옛날, 남평읍에 ‘드들’이라 부르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드들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드들이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마을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마을 주민들도 드들이에게 쌀을 내주어 아버지를 모시게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하루는 마을 주민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더 이상 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드들이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자청해서 제물이 되기로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용머리 아래 위치한 나주시 동강면의 용동마을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장동리에 용동마을이 소재해 있다. 용동마을은 마을 뒤로 낮은 산이 위치하고, 삼면이 영산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옛날 한 지관이 용동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뒷산을 넘어 다니면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뒷산을 넘어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정에 다녀오던 임산부가 마을 뒷산을 넘지 않고 영산강을 따라 돌아가려 하였으나, 밀물 때라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뒷산을 넘어 마을로 들어갔는데, 며칠 후 그만 유산을 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땅에서 검은 먹이 나온 영암군 학산면의 먹뱅이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먹뱅이’ 또는 ‘묵동리’라 부르는 마을이 소재한다. 옛날 ‘고연규’와 ‘곽진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척 친한 사이였는데, 모두 집안이 가난해서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다. 두 친구는 농사지을 수 있는 농토를 찾아 마을을 나섰고, 넓은 벌판을 개간하기로 하였다. 벌판을 논과 밭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을 일구었다. 그러던 중 땅에서 이상하게 생긴 검은 돌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냥 돌이 아니고 질이 좋은 먹이었다. 두 친구는 먹을 채취해서 독천장에 내다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효행으로 전란을 피한 영암군 금정면의 와운리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와운리 또는 운동리 등으로 부르는 마을이 소재해 있다. 조선시대 선조 때 와운리에 ‘유공신’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공신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고, 너무 어려서 시묘살이를 하지 못했던 아버지 묘 앞에도 초막을 짓고 다시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적들이 와운리로 들어오려 하자 어디선가 구름과 안개가 마을을 뒤덮어 왜적들의 발길을 돌렸다. 왜적이 간 후 마을 주민들은 구름과 안개가 별안간 나타난 것은 공신의 효심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5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4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웹툰 경북 >상주시

    3화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북 상주 구름지마을
    경상북도 상주시 북동부에 ‘사벌국면(沙伐國面)’이라는 곳이 있다. ‘사벌국면’은 상주의 옛 이름인 ‘사벌국’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벌국면 덕가리에는 ‘구름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구름지에 살고 있던 부부가 옥황상제에게 치성을 드려 용란이라는 딸을 낳았다. 부부는 어디를 가든 용난을 데리고 갔다. 하루는 밭일하던 중에 용란 위에서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를 지나가던 고려시대 예종이 보고, 용란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 부르게 되었다.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 이황의 숨결이 느껴지는, 안동 고산정
    고산정은 천하의 명산 청량산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마주하는 절경에 위치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제자 금산수가 건립한 고산정은 창건 당시부터 안동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퇴계를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자주 왕래하며 남긴 시가 수백 수에 달한다. 청량산을 유난히 좋아했던 퇴계 이황도 고산정을 자주 왕래하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청나라를 멀리하는 절의의 상징, 안동 청원루
    청원루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장동김씨(壯洞金氏)의 시조인 김번(金璠:1479~1544)이 지은 살림집이었는데, 김번의 증손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다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자 조상의 고향인 안동 풍산읍 소산리의 종택으로 내려와 ‘청원루’란 현판을 내결고 은거하였다. ‘청원루’라는 정자이름은 ‘청나라를 멀리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전주유씨 강학처, 안동 삼산정
    삼산정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94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64호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유정원(1703∼1761)이 1750년(영조 26)경에 건립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삼산정이라는 정자명은 창건자 유정원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그의 호는 그의 집 앞산의 세 개의 봉우리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유정원의 덕행을 기리며 자손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